스마트폰 있는 무인도에서 살기 VS 도시에서 사람들이랑 소통 일절하지 않고 살기 중 하나 선택하고 이유를 쓰시오 _초고 0629
[스마트폰 있는 무인도에서 살기]
캐나다인 John과 한국인 지현은 다음달 부부가 된다. 두 사람은 5년 전 펜팔 친구로 만나 서로의 얼구도 모른 채 4년 간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John은 kim's club에서 산 체크셔츠와 주마다 오는 아이스크림 트럭에 대해 얘기했고 지현은 놀이터로 산책간 것과 길거리 떡볶이에 대해 얘기했다. 사는 곳도 다르고 실제로 만난 적도 없는 두 사람은 메세지 만으로 서로를 궁금해 했다. 만나지 않고도 소통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아마도 '언젠가 만날 수 있다' 라는 희망이 두 사람을 지속적으로 이어준 것이다. 서로가 살고 있는 곳이 무인도라 할지라도 둘의 대화를 막진 못했을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사람들은혼자여도 혼자가 아닐 수 있게됐다. 11인치 작은 스마트폰만 있다면 세상 누구와도 이야기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누군가 '나'를 궁금해 한다는 것, 어떤 메뉴를 점심으로 먹고 어떤 옷을 샀는지 물어보는 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큰 힘을 받는다. 중요한 건 둘의 만남이 아닌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인 것이다.
소통이란 '나'의 일부와 '너'의 일부를 교환하는 것이다. 나의 생각과 너의 생각, 나의 감정과 너의 감정, 나의 경험과 너의 경험. 넓은 관점에서 바라보면 누군가 만든 영상을 보는 것도, 누군가가 올린 글에 댓글을 다는 것도, 누군가의 창작물을 감상하는 것도 모두 소통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나와 너의 일부를 교환하면 '너'는 '나'의 일부가 된다. 나의 세상은 너로 인해 조금 더 넓어지고 너의 세상도 넓어진다. 이런 과정을 거쳐 우리들의 세상은 언젠가 겹치게 된다. 소통이 이해의 첫 걸음이자 사람 사이 상호작용의 첫 단추인 이유이다.
반대로 함께 있지만 소통하지 않는 관계는 생명력이 없다. 서로가 서로를 궁금해하지 않고 서로의 일부를 교환하지 않는 관계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서로를 이해할 수 없으며 가까워질 수도 없다. 중요한 것은 물리적인 가까움보다 심리적인 가까움이 아닐까. 캐나다에 사는 John과 한국에 사는 지현이 주고받았던 펜팔은 단지 몇 줄의 글이 아니라 서로의 일부였다. 둘의 세상은 가까워져 소통의 결실을 맺은 것이다.
피드백
-첫 문단보고 작문인줄 알았다.
-사례로 들었던 존과 지현의 이야기에서 '언젠가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얼굴도 모르는 둘의 연락을 이어줬다'라는 주장이 '스마트폰만 가지고 무인도에 사는 게 도시에서 소통없이 사는 것보다 낫다'를 뒷받침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사례를 진짜 사례로 교체하고 주장을 바꿀 것.
[스마트폰 있는 무인도에서 살기] _퇴고
우리는 본능적으로 타인을 궁금해한다. 직장 동료들의 점심메뉴는 무엇이었는지, 내 또래 사람들은 어떤 직업을 갖는지, 옆집에 사는 4인 가족은 외식을 얼마를 쓰는지, 내가 보기에 예쁜 이 원피스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 이런 가벼운 호기심은 널리 퍼져나가 주변인들뿐만 아니라 지구 건너편에 사는 미지의 누군가에게 까지 퍼져나갔다. 그리고 스마트폰이 보편화 되기도 전 이런 강한 호기심이 멀리 있는 누군가와 연결될 수 있는 아이템을 만들어냈다. 바로 '펜팔'이다. 펜팔은 단순히 타인을 향한 호기심을 채워주는 매개체에서 그치지 않고 소통하는 두 사람을 긴밀하게 이어주는 역할까지 수행했다. 펜팔로 이어진 사람과 훗날 부부가 되는 사례가 종종 들려오는 것이 이제는 그렇게 놀랄만한 이야기도 아니다. 이는 직접 만나지 않고도 서로를 궁금해하고 친밀감을 쌓는 것이 가능하는 것을 방증한다. 어쩌면 물리적인 가까움보다 심리적인 가까움이 사람을 이어주는 데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닐까?
게다가 과학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펜팔보다 더 자주, 그리고 더 간단하게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게 됐다. 11인치 작은 스마트폰만 있다면 세상 누구와도 이야기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누군가 '나'를 궁금해 한다는 것, 어떤 메뉴를 점심으로 먹고 어떤 옷을 샀는지 물어보는 이가 있다는 것. 이러한 느낌만으로도 우리는 살아가는 데에 큰 힘을 얻는다. 중요한 건 누군가와의 직접적인 만남이 아닌 세상 어딘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인 것이다.
우리는 펜팔이나 스마트폰같은 매개체로 타인과 소통하며 '나'의 일부와 '너'의 일부를 교환한다. 나의 생각과 너의 생각, 나의 감정과 너의 감정, 나의 경험과 너의 경험. 넓은 관점에서 바라보면 누군가 만든 영상을 보는 것도, 누군가가 올린 글에 댓글을 다는 것도, 누군가의 창작물을 감상하는 것도 모두 소통이라 할 수 있다. 스마트폰을 이용하면 1:1 채팅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다. 우리는 혼자여도 더 이상 혼자가 아닌 세상을 살수 있게 된 것이다.
반대로 함께 있지만 소통하지 않는 관계는 생명력이 없다. 서로가 서로를 궁금해하지 않고 서로의 일부를 교환하지 않는 관계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서로를 이해할 수 없으며 가까워질 수도 없다. 그렇기에 나는 군중 속에서 소통없이 외롭게 살기보다는 스마트폰만 손에 쥐고 무인도에서 살아가기를 택하겠다. 작은 화면 속 누군가와 끊임없이 소통하며 심리적인 안정을 취하고 무인도에서 꿋꿋하게 살아가겠다. 그렇다면 무인도는 더 이상 무인도처럼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혹시 모른다. 스마트폰을 통해 알고 지내던 누군가가 나를 구하러 무인도로 와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