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3장
제 3 장 열 두 제자
[대 지]
一,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심(1-6)
二. 낙은 사람이 예수를 따르며 병 고침을 받음(7-12)
三. 열 두 제자를 세우시고 권능을 주심(13-19)
四. 전속들이 예수님을 붙들러 옴(20-22)
五. 예수님 훼방과 성령 훼방죄(23-30)
六. 주의 참된 모친과 동생들(31-35)
[본문강해]
一.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심(1-6)
. 3: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 편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예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시고 정을 고쳐 주시는 일을 부지런히 하셨다.
. 3:2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엿보거늘
엿보거늘 바리새인들은 예수의 하시는 귀한 새 생명 운동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안식일에 대한 장로들의 유전을 어기는 일이 있으면 송사하려고 예수님을 엿보고 있었다.
. 3:3-4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 일어서라 하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고으냐 하시니 저희가 잠잠하거늘
예수께서 반대하는 자들이 송사하려고 엿보는 것을 아시면서도 그 일에 개의치 않으시고 한편 손 마른 사람을 일으켜 세우고 모든 사람에게 안식일에 대한 근본 정신을 가르쳐 주셨다.
안식일에도 다음과 같은 일은 할 수 있다.
①선을 행하는 일, ②생명을 구원하는 일이다. 더욱 중요한 일은 영적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바리새인들은 의식적으로만 안식일을 지키면서 이러한 일까지 반대하였다.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것은 앞에서 말한 세 가지 이외의 육신을 위한 일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성도가 오늘날 주일을 지키는 것도 구약 시대에 안식일을 지키는 정신으로 지켜야 한다.
하나님이 주일에 성도들에게 공동으로 영적 안식을 주신다. 그러므로 주일에는 우리 성도가 모든 육신의 일을 그치고 하나님을 섬기며 그가 주시는 영적 안식에 참여하도록 힘써야 한다. 주일에 신령한 안식을 받아서 한 주간 그 안식 세계에서 살아야 하고, 주일에 신령한 양식인 하나님 말씀을 받아서 한 주간 그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 주일날은 사람의 날이 아니고 하나님의 날이다. 그러므로 자기를 위하는 어떠한 일도 하면 안 된다. 구약 시대에는 안식일에 자기를 위해 일한 사람을 죽였다(출35:2). 그러나 그 날에 음식 해 먹는 것은 괜찮다(출12:16). 또 선한 목적으로(돈벌려는 목적이 아닌) 병 고치는 일이나 다른 선을 행할 수 있다. 구약 시대에 제사장이 성전에서 안식 규례를 범했을지라도 그것은 정죄하지 않았다. 즉 안식일에 제사장이 성전에서 하나님께 봉사하는 일을 한 것은 죄로 정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일에 생명에 관계되는 일과 하나님을 위하는 일을 해도 괜찮다. 그러나 자기를 위한 일이나 육신에 관한 일은 작은 것 하나라도 행하면 죄가 된다. 처음에 작은 것을 양보하면 나중에는 전체가 무너져 전혀 지킬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마귀가 물밀듯이 들어와서 영적 생명의 역사가 다 파괴된다. 신앙의 정조이든, 육신의 정조이든 처음 한 번을 양보하지 않는데 힘이 있다. 경계선에서 한 곳이 터지면 다른 곳도 다 터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명의 경계선을 확실히 알고 그것을 지켜 나아가야 생명이 산다.
. 3:5 저희 마음의 완악함을 근심하사 노하심으로 저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예수님께서 무리에게 깨달아 알 수 있도록 질문하셨으나 그들의 마음이 완악하여 성령의 감동과 양심의 역사를 누르고 대답치 않으므로, 예수님이 노하시며 손 마른 사람의 손을 내밀게 하여 고쳐주셨다. 하나님께서 관악한 자는 책망하시고 겸손히 사모하는 자에게는 은혜와 구원을 베푸신다.
. 3:6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꼬 의논 하니라
악한 자들이 예수님의 구원 역사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고 도리어 강퍅해져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의논하였다.
二. 많은 사람이 예수를 따르며 병 고침을 받음(7-12)
. 3:7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가시니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좇으며
예수님은 핍박자들과 군중들을 피하여 고요하고 한적한 곳으로 가시기 위해 바다로 물러 가셨다. 고요한 시간을 가지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이 귀한 일이다. 그러나 온 갈릴리에서 많은 군중들이 그 곳까지 찾아왔다.
. 3:8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강 건너편과 또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허다한 무리가 그의 하신 큰 일을 듣고 나아오는지라
이두매는 예루살렘 서남쪽 약 30km지점에 있는 지방이다. 요단강 건너편은 베뢰아 지방으로 헤롯 안디바스의 통치 구역이었다.
두로와 시돈은 베니게의 주요 도시들이다. 먼데서부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계신 곳으로 찾아 나아왔다. 병자는 병을 고치려고 왔고, 굶주린 심령들은 생명의 꼴을 얻어먹으려고 찾아 온 것이다.
. 3:9-10 예수께서 무리의 에워싸 미는 것을 면키 위하여 작은 배를 등대하도록 제자들에게 명하셨으니 이는 많은 사람을 고치셨으므로 병에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핍근히 함이더라
예수께서 많은 병자를 고치셨으므로 더욱더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고 예수님은 작은 배를 준비하여 타셨다. 그래도 군중들은 여전히 밀려왔다.
. 3:11-12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가로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계하시니라
귀신들린 자들도 고침을 받으려고 많이 왔으며 귀신들도 예수님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소리질렀다. 야고보서2:19에 귀신들도 믿고 떤다고 했다. 예수님은 그 귀신들에게 그런 말을 못하게 하셨다. 왜냐하면 예수님도 귀신들과 같은 종류로 취급받겠기 때문이다. 귀신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한 목적은 하나님의 일을 무너뜨리기 위함이다.
三. 열 두 제자를 세우시고 권능을 주심(13-19)
. 3:13-15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 좇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
누가복음6:12에는 예수님이 밤이 맞도록 산에 가서 기도하시고 내려와서 열 두 제자를 택하셨다고 하였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대로 제자들을 택하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이 열 두 제자를 택하여 그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정과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이러한 권능을 주신다. 우리 성도가 약하고 부족할지라도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권능을 입혀 주셔서 귀신을 내어쫓기도 하고 병 고치는 권능도 행하게 된다. 이렇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자는 자신도 강하여지고, 다른 사람의 약한 것을 고쳐서 강하게 만들어 나가는 권능이 있게 된다.
최 봉석 목사님이 하나님의 복음을 힘있게 전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권능을 입혀 주셔서 권능의 사람이 되었으므로 최 권능 목사라는 절명이 붙여졌다. 하나님이 권능을 주실 때에 그것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일을 해야 자기의 능력이 되고 자기의 인격이 된다. 그러나 그 권능을 쓰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그 권능을 거두어 가신다. 그러므로 누구나 능력이 없고 말할 줄 몰라서 전도를 못한다고 핑계하면 안 된다. 예레미야가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렘1:6-7)고 하였다. 일은 하나님께서 친히 하실 것이므로 사람은 순종만 하라는 것이다. 모세도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출4:10)라고 말할 때에 하나님께서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 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였느뇨 나 여호와가 아니뇨"라고 하셨다(출4:11). 나 여호와가 네 입을 지었고 말할 수 있는 힘을 주었으니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만 하라는 뜻이다. 우리가 아무리 연약하고 말할 줄 몰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나아가면 하나님이 입도 열어 주시고 능력도 주셔서 하나님의 일이 성공되어 가도록 하신다.
. 3:16-19 이 열 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안 인 시몬이며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러라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주에는 학자나 선비나 문벌 좋은 사람이 없다. 또 제사장이나 서기관처럼 명성 있는 종교 지도자도 없으며, 다만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잡이 하던 어부나 세리와 같은 중류 이하의 사람들이었다. 가룟 유다 한 사람만 유대인이고 그 외의 열 한 사람은 모두 천한 갈릴리 사람들이었다.
예수께서 왜 제자들을 유명한 학자나 선비나 지혜 있고 통달할 사람 가운데서 택하지 않으셨을까? 여기에 대한 해답은 고린도전서1:26-29에 잘 나타나 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해 나가는데 있어서 자기의 지혜나 능력을 자랑하지 못하게 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여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려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택하여 제자로 삼은 것이다. 자기의 지혜와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자연히 하나님의 능력만 의지하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항상 어린아이처럼 겸손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줄 알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고린도후서4:7에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다. 우리의 인격은 질그릇과 같이 약하고 보잘 것 없으나 하나님이 우리 속에 보배를 주셨다. 이 보배는 복음이요 복음 전하는 직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 것도 자랑할 것이 없고 복음만 자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제자 중 가를 유다는 불택자인데 왜 예수님이 그를 제자로 택하셨는가?
① 후대 교역자 중에도 불택자가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② 불택자도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이용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③ 택자와 불택자를 추수(심판)때까지 함께 두신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④ 성경을 응하게 하기 위함이다(요13:18, 시41:9 참조).
⑤ 범죄자의 말로가 비참하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이상과 같은 목적에서 예수님은 가론 유다가 불택자이며 예수님을 배반할 것을 미리 알면서도 제자로 택한 것이다.
四. 친속들이 예수님을 붙들러 옴(20-22)
. 3:20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가 점점 많아져서 식사할 겨를도 없게 되었다.
. 3:21 예수의 친속들이 듣고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예수의 친속들은 예수의 모친과 동생들과 누이들로서(3:31, 6:3) 그들은 예수님이 미쳤다 하는 말을 듣고 예수님을 붙들려고 찾아 왔다(요8:52). 그들은 예수님을 가장 많이 받들고 충성해야 할 사람들이었으나 예수님을 대적하는 자들의 비방과 악평하는 말을 그대로 믿고 예수님을 붙들러 나왔다. 그러므로 그들은 마귀의 종노릇을 하게 되었고 예수님의 구원 운동을 방해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우리는 어떤 사람에 대한 비방과 악평하는 말이 돌아갈 때에 무조건 곧이 듣지 말고 사실을 확실히 알아보고 바로 처신해야 한다.
예수님의 친속들이 마귀에게 속아 마귀의 종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나가 보지도 않고,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라고 하셨다(33-35).
. 3:22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저가 바알세불을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바알세불 귀신의 왕을 지칭하는 말이다. 예수님이 귀신을 많이 쫓아내는 것과 또 귀신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소리지르며 나오는 것을 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방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생명 운동을 방해하고 비방할 목적으로 예수님께서 하신 일(하나님의 역사)을 귀신의 역사로 비방하고 악평했다.
五. 예수님 훼방과 성령 훼방죄 (23-30)
. 3:23-26 예수께서 저희를 불러다가 비유로 말씀하시되 사단이 어찌 사단을 발아 낼 수 있느냐 또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 만일 사단이 자기를 거스려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이에 망하느니라
사단이 어씨 사단을 쫓아 낼 수 있느냐 귀신이 귀신을 쫓아낸다면 자기들끼리 서로 싸우는 것이 된다. 나라가 서로 분쟁하면 설 수 없고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듯이 귀신이 귀신을 좇아낸다면 마귀의 나라가 설 수 없고 망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귀신의 왕이 귀신을 쫓아낼 리가 없다. 따라서 바리새인의 말은 이치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귀신, 악귀, 사귀, 악령, 사단 등은 다같이 마귀들의 일종이다.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국가에 내분이 생겨 서로 싸우면 그 나라가 망하지 않을 수 없다. 사단도 그들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다투지 않는데 하물며 성도가 다투면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어 나가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가정이나 단체나 국가 안에서 사랑으로 용서해 주고 서로 돕고, 참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 단체, 국가를 세워 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 3:27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늑탈치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강한 자는 사단을 가리킨다. 결박한 후에야 마귀를 굴복시켜 결박한 후에 그 마귀에게 붙잡힌 생명을 살려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세간을 늑탈한다는 것은 사단에게 붙들린 사람의 영을 살려내는 것을 가리킨다. 예수께서 강한 자인 귀신들을 쫓아내신 것은 마귀를 굴복시키고 그 마귀에게 붙들린 사람의 영혼을 살려낸 것이 분명하다는 뜻이다. 우리도 마귀를 이겨야만 자기 영이 살고 다른 사람의 영을 살려낼 수 있다.
고린도후서10:4-6에 "우리의 싸우는 정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고 하였다.
여기 견고한 진은 하나님과 그 말씀을 대적하는 모든 이론과 사상과 단체와 권세와 능력 등을 가리킨다. 전도자는 그것들을 복음과 성령의 능력(능력)으로 파하여야만 사람의 영을 구원해 낼 수 있다.
. 3:28-2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무릇 훼방하는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 하시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과 인자를 거역한 죄는 사함을 받으나 성령을 훼방한 죄는 영원히 사함을 받지 못한다. 성령 훼방죄는 죽을 때까지 성령의 역사를 훼방하는 죄이다. 이 죄가 왜 영원히 사함을 받지 못하는가? 성령으로라야 예수를 믿을 수 있고 예수를 믿어야 죄 사함을 받는다. 그런데 성령을 훼방하므로 그리스도를 믿을 수가 없고 따라서 죄사함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시적으로 성령의 역사를 훼방하거나 성령 받은 사람을 훼방했다해도 나중에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면 성령 훼방죄가 아니다. 그 이유는 죽을 때까지 성령을 훼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성령을 훼방하던 악한 자가 회개하고 성자가 되었으면 그 사람은 악한 자가 아니고 성자이다. 마태복음21:38 이하에 두 아들의 비유가 있는데 맏아들은 포도원에 가겠다고 하고 후에 가지 않았고, 작은아들은 가지 않겠다고 말한 후에 뉘우치고 갔다. 작은 아들은 처음에 가지 않겠다고 말했으나 후에 뉘우치고 갔으므로 포도원에 가지 않은 자로 취급받지 않고 간 자로 취급을 받는다. 이와 같이 성령을 훼방한 자도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으면 성령을 훼방한 자로 취급받지 않고 성령을 훼방하지 않는 자로 취급받는다. 성(聖)어거스틴도 처음에는 불량한 사람이었으나 나중에 회개하고 성자가 되었다. 그후에는 어거스틴은 불량자가 아니다. 사도 바울도 처음에는 성령 받은 스데반을 죽일 때 가편 투표를 하였고, 주의 일을 훼방하고 핍박한 자이었으나 회개하고 믿음으로 예수님의 사도가 되었다. 그후부터는 훼방자가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이다. 어떤 신비주의 교파의 교역자가 자기는 성령으로 일하므로 자기를 훼방한 자는 성령을 훼방한 자이다. 그러므로 그 죄는 사함 받지 못한다고 했는데 그 말을 들은 사람이 "내 죄가 사함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대단히 염려하고 근심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과거에 그러한 죄를 지었다고 해도 예수를 믿기만 하면 다 사함 받는다. 회개한 후에는 성령 훼방한 사람이 아니다. 또한 우리가 전에 성령 받은 사람을 욕하고 성령을 훼방했다고 할지라도 오늘날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면 다 용서받고 그 죄가 흰눈보다 더 희게 씻음을 받는다. 그러므로 성령 훼방치는 죽을 때까지 성령을 훼방한 죄를 가리킨다. 그는 회개할 기회와 믿을 기회가 없기 때문에 영원히 사함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죄는 불택자가 짓는 죄이다.
. 3:30 이는 저희가 말하기를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함이러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성령의 감화를 소멸하고 끝까지 성령으로 하시는 예수의 역사를 악평하였다.
六. 주의 참된 모친과 동생들 (31-35)
. 3:31 때에 예수의 모친과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사람들이 예수님을 미쳤다고 말하고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귀신의왕 바알세불을 지폈다고 하므로(21-22) 그 소문을 듣고 예수님의 모친과 동생들이 예수님을 붙들러 온 것이다.
. 3:32 무리가 예수를 둘러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무리가 예수를 둘러앉았다가 모친과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예수님을 찾는다고 예수님께 전했다. 동생들은 야고보, 요세(요셉),시몬, 유다이다(막6:3 참조).
. 3:33 대답하시되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모친과 동생들과 누이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으나 예수님은 나가 보시지도 않고 면회를 거절하셨다. 그 이유는 그들이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소문을 들어(3:21-22 참조) 그대로 믿고, 마귀 시험에 빠져 예수님을 붙들러 왔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들에게 나아가게 되면 여러 가지 변론과 소란이 일어나 마귀의 역사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일에 많은 지장이 초래되기 때문이다. 마귀의 시험에 빠져 하나님의 일을 막고, 방해하려고 온 사람은 육신적으로는 모친과 형제요 누이이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마귀의 종인 것이다. 갈릴리 가나 혼인집에서 포도주에 대해서 언급한 모친에게 대해서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하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은 예수의 구원 사업에 있어서는 어머니도 하나의 여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치신 것이다.
누가복음14:26에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라고 했다. 예수님을 따라가고 구속 운동을 이루어나가는데 방해하는 자는 사단의 종인 것이다. 형제나 친척이나 친구가 과거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구속 사업을 방해하면 사단의 종노릇을 하는 것이므로 그 사람들에게 협력하면 안 된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십자가를 멀리하라고 할 때에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사단의 역사를 단호히 물리치지 않으면 생명 길을 걸어 갈 수 없다.
그러나 예수께서 모친과 형제에 대한 자기의 의무를 다 하셨다. 부모에게 순종하여 받드셨고(눅2:51), 십자가상에서 모친을 요한에게 부탁하셨다(요19:26-27). 디모데전서5:8에 "누구든지 자기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하는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고 했다. 이 말씀은 성도가 마땅히 모친과 가정과 친척을 돌볼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 3:34-35 둘러앉은 자들을 둘러보시며 가라사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믿음으로 하나님 안에서 맺어진 형제 관계는 육신적인 혈연 관계에 의해서 맺어지는 것이 아니고 오직 진리와 영적 관계에 의해서 맺어지는 것이다. 복음을 믿고 중생한 자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동일하게 받았으니 영적으로 참된 형제이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한 피로 중생을 하였고, 그리스도의 생명을 같이 받았고, 한 아버지를 섬기며 하나님 말씀이 생명이 되어 있으므로 영적으로는 참 형제이다. 믿지 않는 육신의 형제들은 영적 면에 있어서는 외인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영적인 면에 있어서 그들의 아버지는 마귀요, 그들의 영은 죽어 있으며 그리스도밖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