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좋아 하셨다 / 교정 중
세월의 장막에 부대끼다 가는 길을 잊었다. 진짜로 향수라는 감성이 남아 있기는 했을까? 글로서만 읽는 밉밉한 감상품으로 전락이 되어 채감을 모르고 있었다. 이제 보게 되었다. 윤 경화님의 수필 ‘사랑, 그 아름다운 그릇’을 읽고 나서다. 이 작품이 참 따뜻하고 곱다. 질투가 다 난다. 고향의 향수와 엄니의 언덕을 만들 줄 모른 나였기에 더 샘이난다. 자책 자학적 욕심의 파문이다. 묻혀만 있던 아이 때의 추억이 들춰졌다. 감정 채증이라 하고 싶다. 보리 고개 시절 철없는 때의 행동 하나하나 지금 보면 얼마나 한심이냐. 그립다. 속으로 감춰진 정말로 돌아가고 싶은 갈증이 아니던가. 소리 없이 울게 한다.
초가집은 오랜 짚 향기로 누렇게 누리다. 가을 맛이고 봄 내음으로 마음 단장하고 있다. 봉선화는 연분홍이다. 하늘 향한 가지마다 꽃송이 들고 봄빛을 험벅 먹고 있다. 채송화는 돌담따라 흙터를 아담하게 안고 촐랑인다. 돌담, 도랑가 들가에서 주어다 만든 토속적 담이다. 그때는 지겨운 담장이었다. 담쌓기를 위하여 돌 주어 나르기 얼마였을까? 기억이 없다. 지금은 아주 귀여운 한 그림으로 향수를 자극하는 추억의 물건이다. 매년 봉선화와 채송화가 피었다. 왜 여기서 피는지는 모른다. 피고 있으니 당연히 있는 꽃으로만 기억난다. 봉선화는 동네 여자아이들의 손톱물들이기 재료감이며 장난감 놀이 대상이었다. 누가 심었는지 왜 꽃이 피는지 그 자체를 생각하지 않았다. 엄니 품 안에서는 알 필요가 없었으니까. 엄니는 그중에서 채송화를 알뜰히 더 가꾸셨다.
지금은 좋은 포장길 되어 있다. 찾기 쉬운 동네로 잘 다듬어져 있다. 집도 초가집은 아니지만 다른 모습의 집이 있다. 주인도 바뀌었다. 한 번씩 지나면서 어릴 적의 그 집를 보곤 했다. 도로가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진입 길과 모퉁이 돌아가는 담장의 형태는 그대로다. 다만 블록담으로 바뀌어 있다. 새마을 운동의 해택을 당당히 받은 모습이다. 잘 살아 보세 함성 소리가 담겨 있지만 나의 추억거리는 행불이 되었다. 담장길에 꽃들이 있을 자리가 없어 보인다. 봉선화 채송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몰랐던 까마득한 향수다. 육순 중반 나이 아픔이 달겨 든다. 같이 하던 이가 없음이 더 해 독고獨孤 엄습이다. 애잔한 세월의 시간 서성 거린다. 어벙한 한 사람으로 엉뚱한 합리화를 한다. 바보 천추라고.
부산에서 군 전역을 하고 대구 수성구 동네로 전세 얻어 일단 이사를 왔다. 직장은 경산이다. 아이들 학교 문제 해결이 우선이었다. 학교 공부를 마치고 준비해 두었던 지금 살고 있는 이 아파트로 다시 이사 했다. 지금의 경산 옥산 2지구 동네이다. 20여 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났다. 엄니를 이 집에 모시기도 했다. 그때는 허리를 다쳐시어 불편하신 몸 관리가 우선이었다. 어릴 적 생활과 동네 이야기 주로 들었다. 돌담이야기는 별로 없었었다. 근데 나는 돌담과 꽃 추억이 올라 왔다. 산전리 비내골에 텃밭하나 구해 관리하고 있다. 나름 호작질이라며 시간놀이를 하려 한다. 화단 같은 분위기 살리는 거리도 해 볼까 생각 한다. 아직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는 밭이라 견주고만 있다. 밭갈이용 굴착기로 정리작업을 하고 나면 꼭 만들 거라며 스스로 약속을 한다.
아이들을 염두에 둔 생각이다. 나의 추억처럼 아픈 기억으로 남기 전 그리움으로 남아 지기를 바라 서다. 한 손의 땀과 하나의 얻음으로 시간을 당기면서 한 점으로 기분 좋게 찾아오기 퍼즐게임 남기기다. 나의 마음이지 아이들의 마음은 아직 아니다. 요망사항으로 연줄 핑계 대며 끌어 드리고 있는 것이다. 자기들도 나이를 먹어 가니까. 채송화를 구해 키워 보기도 했다. 이리저리 치이다 몇 번 실패했다. 이제는 밭 정리 다 될 때까지 미룬다. 굴착기 작업 비용이 만만찮아 시간만 지나고 있다. 매년 연초에 언약을 하지만 작심삼일의 결과만 남긴다. 그래도 무 배추 고추는 맛있게 먹고 있으니 위로를 삼는다.
성주 우성 공원 양지쪽이다. 만들어진 꽃송이가 양쪽에 꽂혀 있다. 수선화 같은 꽃들이다. 생꽃를 참 좋아 햇음을 왜 몰랐을까? 한 번씩 찾아뵐 때도 정말 무심함 그대로 다. 아직도 철부지 아이로 남아서 보고 있는 것이다. 봉선화란 글을 보고 우매한 눈시울 지울 줄은 알면서. 별안간 나이라는 숫자에 겁을 먹었나 보다. 참꽃도 좋아 하심을 안다. 참꽃 한송이를 갖다 심어? 웃음이 난다. 나도 모르겠다. 회심인지 비소 인지. 눈등이 잔 주름이 이는 건 자율 신경 반응이리라. 다음 찾아 뵐때는 꼭 채송화 화분 하나 챙겨 가자. 보드로운 손질질 해보시게. 봉선화 한 송이도 심자. 벌떡 일어나 손톱 물도 드리게. 햇살은 중천을 향한다. 하늘가 파란 물 저곳에 울고 계심일까? 더 깊게 높아지고 있다.
24. 03. 14.
채송화를 그리 좋아하셨는데 / 초안
봉선화가 연분홍이었다. 돌담, 들 가에서 주어다 만든, 그때는 지겨운 담장이었다. 봉선화와 채송화가 왜 피었는지를 몰랐다. 동네 여자아이들의 손톱물들이기 재료감이다. 누가 심었는지 왜 꽃이 피는지 그 자체를 생각하지 않았다. *엄니 품 안에서는 알 필요가 없었으니까.
세월의 장막에 부대끼다 가는 길을 잊었다. 진짜로 향수라는 감성이 글자로만 남아 있었다. 보게 되었다. 윤 경화님의 수필 ‘사랑, 그 아름다운 그릇’을 읽고 나서다. 참 따뜻하고 곱다. 질투가 다 난다. 하지 못한 나의 자책으로 자학이기도 하다. 묻어만 있던 아이 때의 추억이 들춰졌다. 감정의 채증이라 하고 싶다. 보리 고개 시절 각자의 환경에서 철없는 때의 행동이 지금 보면 얼마나 한심이냐. 정말로 돌아가고 싶은 갈증이 아니던가. 나를 소리 없이 울게 했다.
지금은 더 좋은 포장길이 되어 있다. 돌담이 블록 담으로 바뀌었다. 찾아가기 더 쉬운 동네로 만들어져 있다. 집도 없어진 것도 아니다. 주인만 바뀌었다. 한 번씩 지나면서 보면 어릴 적 집 그대로 있다. 도로가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진입 길과 모퉁이 돌아가는 담장은 아직도 변하지 않은 상태 그대로다. 봉선화는 없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몰랐던 까마득한 향수다. 육순 중반 나이임에도 아픔이 달 겨 던다. 같이 하던 이가 없는 독고獨孤다.
성주 우성 공원 양지쪽이다. 만들어진 꽃송이가 양쪽에 꽂혀 있다. 수선화 같은 꽃이다. 생화를 참 좋아하고 있다는 걸 왜 몰랐을까? 한 번씩 찾아뵐 때도 정말 무심했다. 봉선화란 글을 보고 우매한 눈시울 지울 줄은 알면서. 봉선화 씨를 넣어야겠다. 마당이 아니라도 송송 난 잔디면 어때.
아니, 채송화를 그리 좋아하셨는데….
*엄니 : 글 쓸 때 즐겨 사용하는 어머니를 줄여서 표현 말 단어
2019. 9.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