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란의 20년대 Roaring Twenties.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의 끝과 함께 유럽에서 시작된 광기는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마저 지배했다. 종교적, 그리고 사회적 이념 하에 오래도록 억압되어 왔던 인류는 처음 맛보는 해방감에 주체할 수 없는 전율을 느꼈다. 자유와 해방이 물결쳤다. 이성과 계몽을 외치던 지식인들은 전부 산 채로 땅에 묻혔다. 술기운을 그득 풍기는 그 입은 마치 바늘로 꿰기라도 한 듯 열릴 줄 몰랐다. 오직 새빨간 유리잔을 가져다 댈 때만을 제하고 말이다. 이성은 알싸한 알코올과 함께 휘발했다. 월 스트리트는 전례 없는 호황을 누렸다. 주가와 함께 빌딩은 끝도 없이 치솟았다. 80년대에 이른 지금 독일에 베를린 장벽이 있다면, 당시엔 켜켜이 쌓아 올린 마천루가 뉴욕을 분단시켰다. 아! 그곳은 참으로 기이하고 황홀스런 땅이었지. 밤낮 없이 술과 파티에 열광하는 백인들의 드레스 자락과 블레이저 재킷이 뒤섞여 환락을 자아내는 거리가 있는 반면, 맨몸으로 탄광에 들어갔다 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검댕과 땀에 찌든 노동자들이 광채 없이 죽은 눈을 끔뻑이는 볕 들지 않는 골목이 공존했으니까.
그러나 우습게도 미국인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술을 마셨다. 어퍼맨해튼의 부자들과 할렘가의 빈민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럼과 위스키를 들이켰다. 침대에서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며 한 잔, 점심때 채권 시장의 번잡함을 잊기 위해 또 한 잔, 퇴근 후 약국에 들러 산 밀주를 들이키며 파티장으로 향해선, 그날 달이 떨어지도록 유명 배우, 마피아, 정치인, 대학 교수들과 열띤 토론을 늘어놓았다. 물론 술을 마시면서. 파티 막바지에 이르러서 그들은 귀를 끝까지 붉게 물들인 채 어눌한 발음으로 서로를 모욕했다. 이 한심한 작자 같으니라고! 당신 같은 사람들의 불온한 사상이 사회를 망치고 있는 거요! 어찌나 거센 토론이 오갔던지 코피를 터뜨리는 이들이 보이는가 하면, 종종 귀가하지 않는 남편을 찾아 나온 아낙들이 개와 돼지를 나르는 모습도 보였다.
특별히 술 없이 버티기 힘들 정도로 삶이 팍팍하고 사회가 암울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뉴욕은 부유했다. 웃음 가스를 사방에 풀어둔 것만 같은 광경이 뉴욕 전 거리에 펼쳐졌다. 전쟁은 끝났지, 발아래선 금맥이 터지고 손에 쥔 주식은 그 한도를 모르고 치솟지……. 돌이켜 생각건대 그 당시 미국은 역사에 다시 없을 호황기였을 것이다. 그저,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상시 부족했던 것이 바로 술이었을 뿐이다. 그들은 겨울의 혹독한 한파를 견디기 위해서 술을 마셔야 했다. 공장과 자동차가 내뿜는 매연, 철제 자재만이 들어차선 마음이 결여된 도시는 무척이나 추웠다. 어떻게든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선 술을 마시는 수밖에.
또 그들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도 술이 필요했다. 관심사 밖인 전쟁이나 정치 얘기를 듣고 난 뒤 미간이 구겨질 정도로 활짝 웃으며 호탕한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선 알딸딸한 기분을 유지해야 했다. 목에 핏대를 세우며 고래고래 소리치는 짓은 신사답지 않은 추태처럼 여겨졌지만, 술을 마시고 이탈리아 출신의 마피아 흉내를 내며 폭소를 쏟아내는 것은 퍽 유머러스해 보였다. 백인들의 파란 눈동자는 이따금 녹색으로 물들었다. 그들의 흰자위는 수시로 붉었다. 밤이면 파티장을 전전하고, 아침이면 전날 밤의 기억을 모조리 잃은 채 낯선 곳에서 눈을 뜨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직장에 나가서 채권을 파는, 그런 한심한 행태를 누구도 기이하게 여기지 않았다 모던한건물양식에어울리지않는샹들리에여름이채되기도전꺼내다놓은요트소독약과진통제대신위스키를팔아넘기는약국가십을사고파는지식인들펄럭이는푸른깃발과기만적이고몰가치한헌법과급락한술값그야말로세상은광기에휩싸여있었다 모든 뉴욕인은 술을 필요로 했다! 사과가 썩어 문드러졌기에 독한 알콜 속에 담그지 않고선 악취를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치열했던 겨울 끝에 미국이 맞은 봄은 따뜻하다 못해 뜨거웠다. 나는 한때 다이아몬드를 조각해 만든 것과 같다 생각했던 그 도시가 실은 봄의 뜨거운 태양 아래 천천히 부식되고 있었음을 알지 못했다. 그렇게 막연한 동경을 안은 채 갓 성인이 된 나는 마침 그 도시로 이사했었다.
-추후 첨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