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개요
1) 우리는 그의 몸으로부터 나온 같은 몸이요, 그의 뼈들로부터 나온 동일한 뼈들이다.
2)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내 나라(바실레이아, 자기 자신)의 실상이 아니다.
2. 본론
1) 우리는 그의 몸으로부터 나온 같은 몸이요, 그의 뼈들로부터 나온 동일한 뼈들이다.
“우리는 그 몸(소마)의 지체임이니라(엡 5:30)” 번역이 잘못되었다.
(호티 멜레 에스멘 투-소마토스-아우투, 에크 테스 사르코스- 아우투, 카이에크 톤-오스테온-아우투)
한글 성경은 ‘에크 테스 사르코스-아우투, 카이 에크 톤-오스테온-아우투 : 우리는 그의 몸으로부터 나온 한 몸이요, 그의 뼈들로부터 나온 같은 뼈들이다)가 생략되었다. 헬라어 원문에는 있으나 한글 번역에서 빠져 있는 부분이다.
진리의 말씀에서는 속사람인 각 사람이 하나님 자신(하나님의 살과 뼈)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인생은 몸과 마음을 자기 자신으로 알고 있지만, 성경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고 있다. 모든 인생의 육체는(마음) 변한다. 변하는 것은 무상하며 허무하다.
그런데 인생들은 이 마음(휘장)을 실상으로 알고 붙들려고 애를 쓴다. 대표적인 것이 감각적 욕망이다. 성경에서는 이생의 자랑,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으로 설명하고 있다. 인생들은 이것들이 없으면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 인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긴다. 그래서 대속 신앙의 종교가 생긴 것이다.
2)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내 나라(바실레이아, 자기 자신)의 실상이 아니다.
인생들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내 나라(바실레이아, 자기 자신)의 실상이 아니다. 하나님의 몸 된 성전에서 보면 이것들은 불행의 요소다.
인생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들은 속사람(그리스도 예수)의 입장에서 보면 하찮은 몸과 마음의 감각적 욕망의 대상에 불과하다. 인생은 갈애(渴愛)에 목말라 있다. 그래서 목마름을 채우기 위해 늘 몸 밖으로 마음이 향해 있다. 이것이 죄 곧 하마르티아(죄)다.
자신의 목마름을 채우기 위해 자신이 원하는 가짜 예수를 세워놓고 섬기며 따른다. 이것은 여기 등장하는 ‘에나쉬’가 아니다. ‘에나쉬’는 하나님과 끊어져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알고 마음을 자신 안으로 향하며 고뇌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실체를 알려고 하는 것이다. 이래야 살길이 열리는 것이다. 바로 요 8장에 간음한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끌려 나와 침묵하고 있는 장면이다.
하나님은 몸 된 성전 안에 거하시며 겉 사람이 원하는 것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겉 사람이 원하는 것에 대하여는 무아(無我)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베레쉬트’다. ‘베레쉬트’는 인생들이 원하는 것을 인식할 수도 없고 아는 기능도 없다.
생명의 빛과 그 안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