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리엇의 [황 무 지]
<한번은 쿠마에서 나도 그 무녀가 조롱 속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지요.
애들이 "무녀야 넌 뭘 원하니?"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답했지요.
"죽고 싶어"> 1)
보다 나은 예술가2) 에즈라 파운드에게
1) 이 제사(題詞)는 1세기 로마 네로 황제의 궁정 시인이었던 페드로니우스의 <사티리톤Satyricon>48장 <트피말키오의 향연>에서 인용한 것으로, 술 취한 김에 주인 트리말키오가 신기한 이야기를 해서 술친구들을 압도하려고 하는 장이다.
희랍 신화에서 무녀 Sybil는 앞날을 점치는 힘을 지닌 여자이다. 특히 희랍의 식민 도시였던 이탈리아 쿠마의 무녀는 유명했다. 그녀는 아폴로신에게서 손 안에 든 먼지 만큼 많은 햇수의 수명을 허용받았으나 그만큼의 젊음도 달라는 청을 잊고 안 했기 때문에 늙어 메말라 들어 조롱 속에 들어가 아이들의 구경거리가 된다. 죽음보다도 못한 죽은 상태의 황무지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2) <보다 나은 예술가>는 단테가 <신곡神曲> (연옥편) 26장에서 12세기 이탈리아 시인 다니엘을 찬양한 문구, 혼란 상태에 있던 <황무지>의 초고를 에즈라 파운드가 약 절반의 길이로 고쳐준 데 대한 감사의 찬사이다.
엘리엇
1. 죽은 자의 매장1)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2)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球根)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 주었다.
슈타른버거 호(湖)3) 너머로 소나기와 함께 갑자기 여름이 왔지요.
우리는 주랑(柱廊)에 머물렀다가
햇빛이 나자 호프가르텐 공원4)에 가서
커피를 들며 한 시간 동안 얘기했어요.
저는 러시아인이 아닙니다. 출생은 리투아니아이지만
진짜 독일인입니다.
어려서 사촌 태공집에 머물렀을 때
썰매를 태워주었는데 겁이 났어요
그는 말했죠. 마리 마리5) 꼭 잡아.
그리곤 쏜살같이 내려갔지요.
산에 오면 자유로운 느낌이 드는군요.
밤에는 대개 책을 읽고 겨울엔 남쪽에 갑니다.
1) <죽은 자의 매장>은 영국 정교의 매장성사에서 나온 것임.
2) 가사(假死) 상태를 오히려 원하는 현대의 주민들에게는 모든 것을 일깨우는 사월이 가장 잔인한 달일 수 밖에 없다. 초서(1343~1400)의 시 <켄터베리 이야기>에서는 사월에 주민들이 성지 순례를 떠나지만 황무지의 주민들은 윗 시의 8~9행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쾌락의 관광 여행을 떠난다.
3) 뮌헨 근처에 있는 호수. 휴양지로 유명함.
4) 뮌헨에 있는 공원
5) 마리 마리슈 백작 부인의 <내 과거>가 8~18행의 기조를 이루고 있음은 밝혀진 사실이지만, 여기서 마리를 특정인으로 볼 필요는 없다. 8~18행은 휴양지에서 상류사회 사람들이 하는 의미 없는 대화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이 웅켜잡은 뿌리는무엇이며,
이 자갈더미에서 무슨 가지가 자라 나오는가?
인자여, 너는 말하기는 커녕 짐작도 못하리라 6)
네가 아는 것은 파괴된 우상더미뿐 7)
그곳엔 해가 쪼아대고 죽은 나무에는 쉼터도 없고
귀뚜라미도 위안을 주지 않고 8)
메마른 돌엔 물소리도 없느니라.
단지 이 붉은 바위아래 그늘이 있을 뿐 9)
(이 붉은 바위 그늘로 들어오너라)
그러면 너에게 아침 네 뒤를 따르는 그림자나
저녁에 너를 맞으러 일어서는 네 그림자와는 다른
그 무엇을 보여 주리라.
한줌의 먼지 속에서 공포를 보여 주리라 10)
<바람은 상쾌하게 11)
고향으로 불어요
아일랜드의 님아
어디서 날 기다려 주나?>
"일년 전 당신이 저에게 처음으로 히아신스12)를 주었지요
다들 저를 히아신스 아가씨라 불렀어요"
- 하지만 히아신스 정원에서 밤늦게
한아름 꽃을 안고 머리칼 젖은 너와 함께 돌아왔을 때
나는 말도 못하고 눈도 안 보여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었다.
빛의 핵심인 정적을 들여다보며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황량하고 쓸쓸합니다, 바다는.> 13)
6) 구약 <에스겔> 2장 1절, "그가 내게 이르시되 안자야 일어서라. 내가 네게 말하리라."
엘리엇의 원주.
7) <에스겔> 6장 6절 "너의 우상들이 깨어져 없어지며" 참조
8) <전도서> 12장 5절 노년의 적막을 말하는 곳.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할 것이며
길에서는 놀랄 것이며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원욕이 그치
리니" 참조. 엘리엇 원주.9) <이사야> 32장 2절 "(의로운 왕은) 광풍이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우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참조.
여기서 (의로운 왕)은 예수를 예언한 것으로 풀이됨.
10) 제사의 주 1) 참조.
11)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1막 5~8절 사공의 아리아. 엘리엇 원주.
12) 히아신스 꽃은 풍요제에서 부활한 신의 상징이다.
13) <트리스탄과 이졸데> 3막 24절 이졸데가 배가 오나 살펴보던 목동이 죽어가는 트리스탄
에게 하는 말. 엘리엇 원주.
유명한 천리안 소소스트리스 부인은 14)
독감에 걸렸다. 허지만
영특한 카드 15) 한 벌을 가지고
유럽에서 가장 슬기로운 여자로 알려져 있다.
이것 보세요. 그녀가 말했다.
여기 당신 패가 있어요. 익사한 페니키아 수부16)군요.
(보세요 그의 눈은 진주로 변했어요.) 17)
이건 벨라돈나, 18) 암석의 여인
수상한 여인이예요.
이건 지팡이 셋 짚은 사나이, 19) 이건 바퀴 20)
이건 눈 하나밖에 없는 상인 21)
그리고 아무것도 안 그린 이 패는 그가 짊어지고 가는 무엇인데
내가 보지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교살당한 사내의 패 22)가 안 보이는군요.
물에 빠져 죽는 걸 조심하세요.
수많은 사람들이 원을 그리며 돌고 있군요.
또 오세요. 에퀴톤 부인을 만나시거든
천궁도를 직접 갖고 가겠다고 전해 주세요.
요새는 조심해야죠.
14) 울더스 헉슬리의 소설< 크롬 옐로우> 27장에 가짜 점쟁이 마담 세소스트리스가 등장.
이집트식 이름. "독감에 걸렸다"는 이 부분에 아이러니를 줌.
15) 점쟁이들이 사용하는 태롯카드는 모두 78장으로 되었으며 풍요제와 민화에 기원을 갖고 있다. 엘리엇의 원주에 의하면, 자신은 태롯카드의 구성을 잘 모르며 편의에 맞추어 변형시키기도 했다고 술회하고 있다. <영특한 카드>에서 <요새는 조심해야죠>까지 나오는 상징들은 1. 의식의 타락, 2. 원형적 상징물의 해석이 모호함, 3. 정신 구조를 파헤치기 위한 열쇠가 되는 이미지를 제시하고 있다.
16) 풍요신의 한 전형. 여름의 죽음을 상징하기 위해 매년마다 그를 본뜬 상을 바다에 던진다.
17) 섹익스피어의 <템페스트> 1막 2장, <에어리얼의 노래>에서 인용. 익사한 자의 눈이 진주로 변했다고 함으로써 놀라운 바다의 변화력을 보여 주고 있다.
18) 이탈리아어로 미인, 마리아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다빈치가 그린 암석의 마돈나를 생각하라) 벨라돈나라는 이름을 지닌 눈 화장품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수상한 여인이 되어 제3부의 여자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19) 테롯 카드에 나오는 인물. 엘리엇은 그를 멋대로 어부왕과 연결시켰다고 원주에서 밝히고 있다.
20) 운명의 바퀴
21) 프로필이기 때문에 눈 하나만 보인다. 제3 부 상인 유제니티스와 연결.
22) 태롯 카드에 나오는 인물, T형의 십자가에 한쪽 다리로 매달려 있음. 식물의 재생을 위해 살해당하는 신을 상징함.
현실성 없는 도시 23)
겨울 새벽 갈색 안개 밑으로
한때의 사람들이 런던교 24) 위로 흘러갔다.
그처럼 많은 사람을 죽음이 망쳤다고 나는 생각도 못했다 25)
이따금 짧은 한숨들을 내쉬며
각자 발치만 내려보면서
언덕을 넘어 킹 윌리엄 가 26)를 내려가
성(聖) 메어리 울노스 성당이 27) 죽은 소리로
드디어 아홉시를 알리는 곳으로.
거기서 나는 낯익은 자를 만나
소리쳐서 그를 세웠다. "스테슨! 28)
자네 밀라에 해전 29) 때 나와 같은 배에 탔었지!
작년 뜰에 심은 시체에 싹이 트기 시작했나? 30)
올해엔 꽃이 필까?
혹시 때아닌 서리가 묘상(苗床)을 망쳤나?
오오 개를 멀리하게, 비록 놈이 인가의 친구이긴 해도 31)
그렇잖으면 놈이 발톱으로 시체를 다시 파헤칠 걸세!
그대! 위선적인 독자여! 나와 같은 자 나의 형제여!" 32)
23) 보들레르의 시 <노인 일곱 사람> 참조
24) 탬스강에 놓인 다리. 런던 주택가에서 상업 중심가로 가려면 건너는 다리.
25) 단테의 <지옥편>, 3장 55~57행 참조. 악하지도 선하지도 않은 사람의 무리. 보들레르를 논하는 자리에서 엘리엇은 악하지도 선하지도 않은 상태보다는 차라리 악한 것이 낫다고 말함. 다음 2행은 단테의 <지옥편> 3장 55~57행 참조.
26) 런던 교를 건너면 나타나는 길. 금융 중심지로 들어간다.
27) 킹 윌리엄 가에 있는 성당 이름, 건축가 렌이 설계한 성당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생각한다고 엘리엇은 원주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오전 9시는 런던교를 건너는 군중들의 사무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28) 아마도 흔한 사업가의 이름.
29) 제1차 포에니 전쟁(로마와 카르타고 사이)의 해전. 제1차 세계대전처럼 포에니 전쟁도 경제적 문제로 발생한 것이다.
30) 고대 풍요제에서 신의 형상들을 들에 묻었다. 그 풍요제가 정원 가꾸기로 바뀌었다.
31) 엘리엇의 원주에 의하면 존 웹스터의 비극 <흰 악마> 5막 4장에서 코어닐리어의 조카, 무덤 없는 비정한 시체들을 위한 노래.
"하지만 인간의 적인 늑대들을 조심하시오. 발톱으로 다시 파헤치리니"에서 <늑대>를 <개>로 <인간의 적>을 <인간의 친구>로 바꿈. 이 이미지는 풍요제의 궁극적 속화를 보여주기도 한다. 즉 신이 뒤뜰에 묻혔다가 개가 파내는 물건들로까지 된 상태.
32) 엘리엇의 원주. 보들레르의 <악의 꽃>서시 "독자에게"의 마지막 행. 보들레르처럼 엘리엇도 독자에게 충격을 주어 적극적으로 시에 참여할 것을 종용하는 뜻도 있고, 독자까지 공모자로 만드려는 뜻도 있다.
2. 체스놀이 1)
그네가 앉아 있는 의자는 눈부신 옥좌처럼 2) 대리석 위에서 빛나고, 거울이
열매 연 포도넝클 아로새긴 받침대 사이에 걸려 있다.
넝쿨 뒤에서 금빛 큐피드가 몰래 내다보았다.
(큐피드 또 하나는 날개로 눈을 가리고)
거울은 가지 일곱 촛대에서 타는 불길을 두 배로 해서
테이블 위로 쏟았고, 비단갑들로부터
잔뜩 쏟아 놓은 그녀의 보석들이 그 빛을 받았다.
마개 뽑힌 상아병 색 유리병에는
이상한 합성 향료들이 연고 분 혹은 액체로 숨어서
감각을 괴롭히고 어지럽히고 익사시켰다.
향내는 창에서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에 자극받아
위로 올라가 길게 늘어진 촛불들을 살찌게 하고
연기를 우물반자에 3) 속에 불어넣어
격자무늬를 설레이게 했다.
동박(銅箔) 뿌린 커다란 바다나무는
색 대리석에 둘러싸여 초록빛 주황색으로 타고
그 슬픈 불빛 속에서 조각된 돌고래 한 마리가 헤엄치고 있었다.
그 고풍의 벽난로 위에는
마치 숲 풍경이 내다보이는 창처럼 4)
저 무지한 왕에게 그처럼 무참히 능욕당한
필로멜라5)의 변신 그림이 걸려 있다.
나이팅게일은 밝은 목청으로
온 황야을 채우지만,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그 짓을 계속한다.
그 울음은 더러운 귀에 <젹 젹>6) 소리로 들릴 뿐,
그 밖에도 시간의 시든 꽁초들은 몸을 기울여
자기들이 에워싼 방을 숙연케 했다.
층계에 신발 끄는 소리.
날로 빛을 받아, 빗질한 그네의 머리는
불의 점들처럼 흩어져 달아올라
말(言)이 되려다간 무서울 만치 조용해지곤 했다.
1) 이 제목은 토마스 미들튼(1570~1627) 의 극 <체스 놀이>와 <여자는 여자를 경계하라>를 연상시킨다. 특히 후자의 2막 2장에서의 체스 놀이는 며느리가 겁탈당하는 동안 보호자인 시어머니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능욕당한 필로멜라 이야기가 이 테마를 다시 강조해 준다. 이 마당에서 전개되는 두 개의 장면 모두 무의미한 성(性)의 이야기임을 유의하라.
2) 엘리엇의 원주. 세익스피어의 <앤터니와 클레오파트라> 2막 2장 190행 <그녀가 앉아 있는 거룻배는 눈부신 옥좌처럼 물 위에 빛났다>
3) 버질의 <에네이드> 1권 726 참조. 카르타고의 여왕 디도가 에네이스를 위해 잔치하는 장면. 부정한 사랑의 카르타고 이야기는 제 3부 끝머리에 나온다.
4) 엘리엇 원주. 밀턴의 <실락원> 4권 140행 사탄의 눈으로 보는 에덴 동산 묘사.
5) 오비드의 <매타모르포시스> 6권 필로멜라 참조. 엘리엇 원주. 오비든 희랍 신화의 필로멜라가 형부 테레우스 왕에 의해 능욕당하고 혀가 잘리어 결국 나이팅게일로 변한 것을 노래하고 있다.
6) 나이팅게일의 소리. 성교를 암시하는 말로도 쓰임. 비극적 이야기가 천한 이야기로 변화된 상황을 보여 주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음.
<오늘밤 제 신경이 이상해요. 정말 그래요. 가지 말아요.
얘기를 들려주세요, 왜 안 하죠. 하세요.
뭘 생각하세요? 무슨 생각? 무슨?
당신이 뭘 생각하는 지 통 알 수 없어요. 생각해 봐요.>
나는 죽은 자들이 자기 뼈를 잃은
쥐들의 골목에 우리가 있다고 생각해. 7)
<저게 무슨 소리죠?>
문 밑을 지나가는 바람 소리 8)
<지금 저건 무슨 소리죠? 바람이 무얼하고 있죠?>
아무 것도 하지 않아 아무것도.
<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죠? 아무것도 보지 못하죠.
아무것도 기억 못하죠?>
나는 기억하지
그의 눈이 진주로 변한 것을. 9)
< 당신 살았어요, 죽었어요? 머리 속에 아무것도 없나요?>
그러나
오오오오 세익스피이어식 래그 재즈----10)
그것 참 우아하고
그것 참 지(知)적이여
<저는 지금 무얼 해야 할까요? 무얼 해야 할까요?>
<지금 그대로 거리를 뛰어나가 머리칼을 풀어 헤친 채
거리를 헤매겠어요. 내일은 무얼 해야 할까요?도대체 무얼 해야 할까요?>
열시에 온수(溫水)
만일 비가 오면, 네시에 세단차.
그리고 체스나 한판 두지.
경계하는 눈을 하고 문에 노크나 기다리며. 11)
릴의 남편이 제대했을 때 내가 말했지----12)
노골적으로 말했단 말이야.
<서두르세요. 닫을 시간입니다.>13)
이제 앨버트가 돌아오니 몸치장 좀 해.
이 해 박으라고 준 돈 어떻게 했느나고 물을 거야.
돈 줄 때 내가 있었는 걸.
몽땅 뽑고 참한 걸로 해 넣으라고, 릴,
하고 앨버트가 분명히 말했는 걸, 차마 볼 수 없다고.
나도 차마 볼 수가 없다고 했지. 가엾은 앨버트를 생각해봐.
4년 동안 군대에 있었으니 재미보고 싶을 거야.
네가 재미를 주지 않으면 다른 여자들이 주겠지.
오오 그런 여자들이 있을까, 릴이 말했어.
그럴걸, 하고 대답해 줬지.
그렇다면 고맙다고 노려볼 여자를 알게 되겠군, 하고 말하겠지.
<서두르세요, 닫을 시간입니다.>
그게 싫다면 좋을 대로 해봐, 하고 말했지.
네가 못하면 다른 년들이 할 거야.
혹시 앨버트가 널 버리더라도 내가 귀띔 안 한 탓은 아냐.
그처럼 늙다리로 보이는 게 부끄럽지도 않니? 하고 말했지.
<걔는 아직 설흔 한살인걸.>
할 수 없지,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릴이 말했어.
애를 떼기 위해 먹은 환약 때문일걸.
<걔는 벌써 애가 다섯, 마지막 조지를 낳을 땐 죽다 살았지.>
약제사는 괜찮을 거라고 했지만 그 뒤론 전과 같지 않아.
넌 정말 바보야, 하고 쏘아줬지.
그래 앨버트가 널 가만두지 않는다면 어떡하지.
애를 원치 않는다면 결혼은 왜 했어?
<서두르세요. 닫을 시간입니다.>
<서두르세요. 닫을 시간입니다.>
빌 안녕 루 또 보자. 메이 안녕. 안녕
탁탁, 안녕. 안녕
안녕, 부인님들, 안녕, 아름다운 부인님들, 안녕 안녕. 14)
7) 샛째 마당 195행 참조. 엘리엇 원주.
8) 웹스터의 극 <악마의 소송사건> 3막 2장 162행 참조. 죽은 사람으로 생각한 사람이 신음하는 소리를 들은 의사가 다른 의사에게 하는 말.
9) 첫째 마당의 주 17) 참조
10) <오오오오> 세익스피어의 오델로나 리어왕의 부르짖음 표시로,<O>를 네 번씩 반복하였음.
<래그 재즈>는 제 1차 세계대전 후 유럽에서 유행한 것으로 <신코페이션>이 특색이다. 세익스피어의 스펠링이 변한 것은 이 <신코페이션> 흉내이다. 다만 번역본에서는 그 맛을 살리기 어려움,
11) 둘째 마당 주 1) 참조,
12) 여기서부터 둘째 마당 마지막까지는 술집에서 두 여자가 혹은 한 여자가 다른 여자에게 하는 대화 내지는 말로 되어 있다.
13) 바텐더가 문닫을 시간임을 알리는 말.
14) 오필리어가 물에 빠져 죽기 전에 하는 인사말. <햄릿> 4막 3장 참조.
3. 불의 설교 1)
강의 천막은 찢어졌다 2) 마지막 잎새의 손가락들이
젖은 둑을 움켜쥐며 가라앉는다.
바람은 소리 없이 갈색 땅을 가로지른다.
님프들이 떠나갔다.
고이 흐르라, 템즈 강이여, 내 노래 끝날 때까지 3)
강물 위엔 빈 병도, 샌드위치 쌌던 종이도
명주 손수건도, 마분지 상자도 담배꽁초도
그 밖의 다른 여름밤의 증거품도 아무것도 없다.
님프들은 떠나갔다. 그리고
그네들의 친구들, 빈둥거리는 중역 자제들도
떠나갔다, 주소를 남기지 않고.
레먼 호수가에 앉아 나는 울었노라 4)
고이 흐르라, 템즈 강이여, 내 노래 끝낼 때까지.
고이 흐르라, 템즈 강이여, 내 크게도 길게도 말하지 않으리니.
허나 등 뒤의 한줄기 찬 바람 속에서 나는 듣는다. 5)
뼈들이 덜컹대는 소리와 입이 찢어지도록 낄낄거리는 소리를.
1) 물이 정화시키는 힘과 수사(水死)시키는 힘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것 처럼 불도 정화시키는 힘과 태워 없애는 힘을 동시에 갖고 있다. 불의 설교는 부처가 인간을 파괴하고 재생을 막는 정욕의 불에 대해서 설교한 것이다. 현대적인 설교 장소는 템스 강변, 즉 런던이다.
2) 시각이 주는 이미지만을 생각한다면 천막처럼 위를 덮고 있던 나뭇잎이 가을에 졌다는 뜻임. 그러나 구약성격에 의하면 유목민인 유태인들이 천막을 성소로 사용했으므로 성소가 무너졌다는 뜻임. 또는 일반적으로 여자의 순결이 깨졌음을 뜻할 수도 있음.
3) 에드먼드 스펜서(1552~1599)의 <축혼가>의 후렴. 결혼을 축하하는 장소도 템즈 강임. 그러나 쓰레기가 날린 오늘날의 템스강과는 다름.
4) 구약 <시편> 137편 1절 <우리가 바빌론 강변에 앉아 시온을 생각하고 울었노라> 참조. 레먼 소는 제네바 호의 프랑스식 이름. 이곳에서 엘리엇은 <황무지>의 많은 부분을 썼다. 한편 레먼(leman)이 첩이나 창녀라는 말로도 쓰이므로 욕정과의 관계도 갖고 있다.
5) 앤드류 마블(1621~1678) <수줍은 애인에게>의 1절 <허나 등 뒤로 나는 항상 듣는다. 시간의 날개 달린 천사가 가까이 달려오는 소리를.> 엘리엇 원주.
어느 겨울 저녁 가스 공장 뒤를 돌아
음산한 운하에서 낚시질을 하며 6)
형왕의 난파 7)와 그에 앞서 죽은 부왕의 생각에 잠겨있을 때,
쥐 한 마리가 흙투성이 배를 끌면서
강둑 풀밭을 슬며시 기어갔다.흰 시체들이 발가벗고 낮고 습기찬 땅속에
뼈들은 조그맣고 낮고 메마른 다락에 버려져서
해마다 쥐의 발에만 채어 덜그덕거렸다.
허나 등 뒤에서 나는 때로 듣는다.
클랙슨 소리와 엔진 소리를, 그 소리는
스위니를 샘물 속에 있는 포터 부인에게 데려가리라. 8)
오 달 빛이 포터 부인과
그네의 딸 위로 쏟아진다.
그들은 소다수에 발을 씻는다. 9)
<그리고 오 둥근 천정 속에서 합창하는 아이들의 노랫소리여!> 10)
투윗 투윗 투윗
젹 젹 젹 젹 젹 젹
참 난폭하게 욕보았네
테류. 11)
현실감이 없는 도시
겨울 낮의 갈색 안개 속에서
스미르나 상인 12) 유게니테스 씨는
수염도 깎지 않고 포켓엔 보험료 운임 포함 가격의
건포도 일람 증서를 가득 넣고 속된 불어로
나에게 캐논 스트리트 호텔에서 13) 점심을 하고
주말을 메트로폴 호텔 13)에서 보내자고 청했다.
보랏빛 시간, 눈과 등이
책상에서 일어나고 인간의 내연 기관이
택시처럼 털털대며 기다릴 때,
비록 눈이 멀고 남녀 양성 사이에서 털털대는
시든 여자 젖을 지닌 늙은 남자인 아 타레지어스 15)는 볼 수 있노라.
보랏빛 시간, 귀로를 재촉하고
뱃사람을 바다로부터 집에 데려오는 시간 16)
차(茶) 시간에 돌아온 타이피스트가 조반 설거지를 하고
스토브를 켜고 깡통 음식을 늘어놓는 것을.
창 밖으로 마지막 햇살을 받으며 마르고 있는
그네의 컴비네이션 속옷이 위태롭게 널려 있다.
6) 물고기를 잡는 것은 영원과 구원을 찾는 일임.(어부왕 참조). 그러나 이 행위는 이제 속화 되어 버렸음.
7)<템페스트> 1막 2장. 페르디난도가 아버지를 생각하는 장면. " 둑 위에 앉아 부왕의 난파를 슬퍼했노라" 참조. 엘리엇 원주.
8) 엘리옷의 원주. 존 데이(1574~1640)의 극 <별들의 회의>.(갑자기 귀를 기울이면 들으리/나팔 소리와 사냥감 쫒는 소리/ 그것은 악테온을 샘물 속에 있는 다이아나에게 데려가리라/
거기서 모두들 그녀의 벌거벗은 살을 보리라.) 다이아나가 목욕하는 것을 본 악테온은 사슴으로 변해 동료들에게 죽음을 당한다. 그러나 위의 희랍 신화와는 달리 현대의 악테온 수위니 씨는 다른 운명을 맞는다.
9) 제 1차 세계대전 중 오스트레일리아 병사들간에 유행한 노래. 원주에서 엘리엇은 출처가 선명하지 않음을 술회하고 있다.
10) 엘리엇의 원주, 베를렌의 시 <파르시팔>의 마지막 행. 부상당한 알포르타스(어부왕)에 내린 저주를 기사 파르시팔이 벗겨주기 전 발을 씻는 예식에서 소년들이 합창함. 바그너 작곡 <파르시팔> 참조.
11) 테류는 필로멜라를 능욕한 테레우스의 호격.
12) 스미르나는 터키 서부에 있는 항구. 이곳 상인들은 고대의 신비한 의식을 퍼뜨렸다. 오늘날의 의식은 매트로폴 호텔에서 보내는 주말로 되었다.
13) 유럽 대륙과 거래하는 상인들이 자주 가던 호텔.
14) 영국 남안 브라이튼 시에 있는 호텔. <주말 메트로폴에서>라는 말은 당시 성적인 낌새가 많은 말이었다.
15) 희랍 신화에 등장하는 남녀 양성의 인물. 주노에 의해 눈이 멀었으나 주피터에 의해 예언하는 힘을 얻게 되었다. 엘리엇의 원주는 다음과 같다. <타레지어스는 단순한 방관자이고 등장인물은 아니지만 이 시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기타의 모든 인물을 통합하고 있다. 마치 외눈박이 건포도 상인 페니키아 수부(뱃사람)로 융합되고 다시 그 수부가 나폴리 왕자 페르디난도와 완전히 구분되지 않는 것 처럼, 모든 여자는 한 여자이고 남녀 양성은 티레지어스 속에서 만난다. 티레지어스가 관찰하는 것이 사실상 이 시의 내용이다.>
16) <희랍의 여류 시인 사포의 시행과 꼭 같지는 않으나 나는 해질 무렵에 돌아오는 '근해 어부' 또는 '평저의 어선' 어부를 생각했다.> 엘리엇 원주.
(밤엔 그대의 침대가 되는) 긴 의자 위엔
양말짝들, 슬리퍼, 하의, 코르셋이 쌓여 있다.
시든 것이 달린 늙은 남자 나 티레지어스는
이 장면을 보고 나머지는 예언했다 -
나 또한 놀러 올 손님을 기다렸다.
이윽고 그 여드름투성이의 청년이 도착한다.
군소 가옥 중개소 사원, 당돌한 눈초리,
하류 출신이지만 브랫포드17) 백만장자의 머리에 놓인
실크 모자처럼 뻔뻔스러움을 지닌 젊은이.
식사가 끝나고 여자는 지루하고 노곤해 하니
호기라 짐작하고 그는 그녀를 애무하려 든다.
원치 않지만 내버려둔다.
얼굴 붉히며 결심한 그는 단숨에 달려든다.
더듬는 두 손이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는다.
잘난 체 하는 그는 반응을 필요로 하지 않아
그네의 무관심을 환영으로 여긴다.
(나 티레지어스는 바로 이 긴 의자 혹은 침대 위에서
행해진 모든 것을 이미 겪었노라.
나는 테베 시의 성벽 18) 밑에 앉기도 했고
가장 미천한 죽은 자들 사이를 걷기도 했느니라.)
그는 생색내는 마지막 키스를 해주고
더듬으며 층계를 내려간다, 불 꺼진 층계를....
그네는 돌아서서 잠시 거울을 들여다본다.
애인이 떠난 것 조차 거의 의식치 않는다.
머리 속에는 어렴풋한 생각이 지나간다.
< 이제 일을 다 치뤘으니 좋아.>
사랑스런 여자가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고 19)
혼자서 방을 거닐 때는
무심한 손으로 머리칼을 쓰다듬고
축음기에 판을 하나 건다.
<이 음악이 물결을 타고 내 곁으로 기어 와> 20)
스트랜드 가(街)를 따라 퀸 빅토리아 가(街)로 따라왔다.
오 <도시>도시여, 나는 때로 듣는다.
로우어 템스 가(街) 21) 의 술집 옆에서
달콤한 만돌린의 흐느끼는 소리와
생선 다루는 노동자들이 쉬며 안에서
떠들어대며 지껄이는 소리를, 그곳에는
마그누스 마아터 성당의 벽이 22)
이오니아풍(風)의 흰빛 금빛 형언할 수 없는 화려함을 지니고 있다.
강은 땀을 흘린다 23
기름과 타르로
거룻배들은 썰물을 타고
흘러간다
붉은 돛들이 활짝
육중한 돛대 위에서
바람 반대편으로 돌아간다
거룻배들은 떠 있는
통나무들을 헤치고
개 섬(島) 24) 을 지나
그리니지 하구로 내려간다.
웨이얼랄라 레이어
윌랄라 레이얼랄라
엘리자베스 여왕과 레스터 백작 25)
역풍에 젓는 노
고물은
붉은 빛 금빛 물들인
조개 껍질
힘차게 치는 물결은
양편 기슭을 잔 무늬로 꾸미고
남서풍은
하류로 가지고 갔다.
진주 같은 종소리를,
하얀 탑들을.
웨이얼랄라 레이어
윌랄라 레이얼랄라
(전차(電車)와 먼지 뒤집어 쓴 나무들
하이베리가 저를 낳고 리치몬드와 큐가
저를 망쳤어요 26) 리치몬드에서 저는 좁은 카누 바닥에 누워
두 무릎을 치켜 올렸어요)
(저의 발은 무어게이트에,27) 마음은
발 밑에 있습니다. 그 일이 있은 뒤
그는 울었습니다. 그는 <새 출발>을 약속했으나
저는 아무 말도 안했습니다. 무엇을 원망해야 할까요? )
(마아게이트 28) 모래밭.
저는 하찮은 사람에서 사람으로 옮겨 다녔어요.
더러운 두 손의 찢겨진 손톱.
채 집안 사람들은 불쌍한 사람들
아무 기대도 없는)
랄라
카르타고로 그때 나는 왔다 29)
불이 탄다 탄다 탄다. 30)
오 주여 당신이 저를 건지시나이다 31)
오 주여 당신이 건지시나이다.
탄다.
17) 요크셔에 있는 모직 도시. 제 1차 세계대전 후 많은 갑부가 생겨났다.
18) 고대 희랍 도시. 티레이어스는 이 도시에서 여러 세대 동안 살며 예언했다.
그가 그곳에 있는 동안 오이디푸스 왕의 비극이 있었다.
19) 골드 스미스의 소설 <웨이크필드의 목사> 중의 노래. 여주인공 올리비아는 과거에 유혹받은 장소에 와서 노래부른다. <사랑스런 여자가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고 남자가 배반한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을 때 어떤 마술이 그대의 슬픔을 덜어주랴.> 그리고 <죽는 길>이 있음을 노래한다. 현대의 올리비아는 축음기를 튼다.
20) <템페스트> 1막 2장의 페르디난도의 말. 셋째 마당 주 7) <형왕의 난파> 다음에 이어지는 구.
21) 런던 교 부근에 있는 거리 이름
22) 이 부분의 몇 행은 <달콤한 음악>과 일하고 쉬는 <생선 다루는 노동자>, 그리고 성당 내부의 찬란함이 진정한 가치의 세계를 암시하고 있다. 즉 노동과 휴식이 모두 절실하고 종교적 의미와의 관련 아래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거의 사라져 버린 세계가 순간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23) 세 템스 강 처녀들의 노래는 여기서 시작된다. 192행 즉 <전차와 먼지 뒤집어 쓴 나무들> 부터< 아무 기대도 없는>까지 그들은 교대로 이야기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두 번 반복되는 (웨이얼라라.....) 바그너의 후렴에 의해 대조된다. 이 후렴은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의 제4부 <신들의 항혼> 제 3막 1장에서 라인 강의 처녀들이 부르는 것으로, 라인 강의 황금이 도난당한 후 라인 강의 아름다움이 사라졌으나 곧 그것을 다시 찾을 것을 기대하며 부르는 노래.
24) 개 섬(島)은 런던 중심가로부터 약간 아래에 있는 반도. 첫마디의 <개>의 모티프를 상기시킨다. 그리니지는 개 섬 건너편의 강변.
25) 엘리자베스 여왕(섹익스피어 시대)과 래스터 백작은 서로 연애하는 사이였다고 알려져 있다.프로드의 <영국사> 7편 349쪽 참조.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있는 가운데 템스 강 뱃놀이를 즐겼으며 그리니지 하구 근처에 있는 그리니지 저택에서 여왕이 레스터를 접견하기도 했다.
26) 엘리엇의 원주 단테의 <연옥편> 5장 33행 <저 라피아를 기억해주세요/시에나가 저를 낳고 마렘마가 저를 망쳤어요>에 대한 풍자적 개작. 하이베리는 런던 교외의 저택가. 리치몬드와 큐는보트장과 호텔로 유명한 템스 강변의 지명.
27) 동부 런던의 빈민가.
28) 템스 강 하구의 해변 휴양지.
29) 엘리엇의 원주. 성 오거스틴의 <고백록> 3부 1장 . <카르타고로 그 때 나는 왔다. 한 가마의 사악한 사랑이 내 귓전에서 온통 끓어대는 곳으로.>
30) 엘리엇의 원주에 의하면 부처의 <불의 설교>에 근거한 것이다. <불의 설교>는 그 중요성에 있어 <마태복음> 5장 7절에 나오는 예수의 산상 수훈에 맞먹는 것으로 헨리 클락의 <번역된 불교>(하버드 동양총서) 의 <불의 설교> 부분은, <모든 것은 불탄다. 형태도 타고 눈으로 받은 인상도 탄다. 즐겁고 불쾌한 혹은 무관한 어떤 감각도 눈으로 받은 인상에 의해서 생기며 그것 또한 탄다>
31) <고백록>에서 부처와 성 오거스틴, 즉 동양과 서양의 금욕주의자들을 이 마당의 극점으로 나란히 놓은 것은 의도적인 배려였음을 엘리엇은 원주에서 밝히고 있다.
4. 수사(水死) 1)
페니키아 사람 플레버스는 죽은 지 2주일
갈매기 울음 소리도 깊은 바다 물결도
이익도 손실도 잊었다.
바다 밑의 조류가
소근대며 그의 뼈를 추렸다. 솟구쳤다 가라앉을 때
그는 노년과 청년의 고비들을 다시 겪었다.
소용돌이로 돌아가면서.
이교도이건 유태인이건 2)
오 그대 키를 잡고 바람 부는 쪽을 내다보는 자여
플레버스를 생각하라. 한 때 그대 만큼 미남이었고 키가 컸던 그를.
1) 첫째 마디에서 소소스트리스 부인이 예언한 페니키아 수부의 익사가 이루어진다.
2) 즉 인간이면 누구나 다.
5. 천둥이 한 말 1)
땀 젖은 얼굴들을 2) 붉게 비춘 햇불이 있은 이래
동산에 서리처럼 하얀 침묵이 있은 이래
돌 많은 곳이 고뇌가 있은 이래
아우성 소리와 울음 소리
옥(獄)과 궁궐(宮闕)
먼산을 넘어오는 봄 천둥의 울림
살아 있던 그는 지금 죽었고
살아 있던 우리는 지금 죽어 간다
약간씩 견디어 내면서
여기는 물이 없고 다만 바위뿐
바위 있고 물은 없고 모랫길뿐
길은 구불구불 산들 사이로 오르고
산들은 물이 없는 바위산
물이 있다면 발을 멈추고 목을 축일 것을
바위 틈에서는 멈출 수도 생각할 수도 없다
땀은 마르고 발은 모래 속에 파묻힌다
바위 틈에 물만 있다면
침도 못 뱉는 썩은 이빨의 죽은 산 아가리
여기서는 설 수도 누울 수도 앉을 수도 없다
산 속엔 정적마저 없다
비를 품지 않은 메마른 불모의 천둥이 있을 뿐
산 속엔 고독마저 없다
금간 흙벽집들 문에서
시뻘겋게 성난 얼굴들이 비웃으며 우르렁댈 뿐
만일 물이 있고
바위가 없다면
만일 바위가 있고
물도 있다면
물
샘물
바위 사이에 물웅덩이
다만 물소리라도 있다면
매미 소리도 아니고
마른 풀잎 소리도 아닌
바위 위로 흐르는 물소리가 있다면
티티새 3)가 소나무숲에서 노래하는 곳
뚝뚝 뚝뚝 뚝뚝 또로록 또로록
허지만 물이 없다
1) 비를 기다리는 황무지에 비를 몰아오는 천둥의 소리이다. 이 마디의 첫 부분은 세 개의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즉 <누가복음> 2장 13~31절에 기록된 엠마우스로 가는 여행 <두 제자가 예수가 부활한 날 엠마우스로 간다. 도중에 한 사람이 끼여 들지만 저녁 식사 때까지 그가 부활한 예수임을 모른다>과 웨스톤의 저서에 나오는 위험 성당에의 접근. 그리고 현재 동부 유럽의 피폐상.
엘리엇 원주.
2) 다음 몇 행은 예수의 체포와 재판 게세마네 동산과 골고다 언덕에 대한 암시를 갖고 있으며, 예수가 처형당한 금요일부터 부활한 일요일, 즉 십자가와 부활 사이의 절망적인 상황을 나타내주고 있다. 그것은 어부왕이 죽은 후 황무지에 내린 절망과 연결된다.
3) 물방울 듣는 소리 흉내를 잘 내는 새.
항상 당신 옆에서 걷고 있는 제삼자는 누구요? 4)
세어 보면 당신과 나 둘 뿐인데
내가 이 하얀 길을 내다보면
당신 옆엔 언제나 또 한 사람이
갈색 망토를 휘감고 소리 없이 걷고 있어,
두건을 쓰고 있어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하여간 당신 곁에 있는 사람은 누구요?
공중 높이 들리는 저 소리는 무엇인가 5)
어머니의 비탄 같은 흐느낌 소리
평평한 지평선에 마냥 둘러싸인
갈라진 땅 위를 비틀거리며 끝없는 벌판 위로 떼지어 오는
저 두건 쓴 무리는 누구인가
저 산 너머 보랏빛 하늘 속에
깨어지고 다시 세워졌다가 또 터지는 저 도시는 무엇인가
무너지는 탑들
예루살렘 아테네 알렉산드리아
비엔나 런던
현실감 없는
한 여인이 자기의 길고 검은 머리칼을 팽팽히 당겨 6)
그 현(絃) 위에 가냘픈 곡조를 타고,
어린애 얼굴들을 한 박쥐들이 보랏빛 황혼 속에서
휘파람 소리를 내며 날개치며
머리를 거꾸로 하고 시커먼 벽을 기어 내려갔다
공중엔 탑들이 거꾸로 서 있고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종을 울린다, 시간을 알렸던 종소리
그리고 빈 물통과 마른 우물에서 노래하는 목소리들.
산속의 황폐한 골짜기
희미한 달빛 곳에서 풀들이 노래하고 있다
무너진 무덤들 너머 성당 주위에서,
단지 빈 성당이 있을 뿐, 단지 바람의 집이 있을 뿐 7)
성당엔 창이 없고 문은 삐걱거린다
마른 뼈들이 사람을 해칠 수는 없지.
단지 지붕마루에 수탉 한 마리가 올라
꼬꾜 꼬꾜 꼬꾜 8)
번쩍하는 번개 속에서, 그러자 비를 몰아오는
일진(一陳)의 습풍(濕風).
갠지스 강은 바닥이 나고 맥없는 잎들은
비를 기다렸다. 먹구름은
멀리 히말라야 산봉 너머 보였다.
밀림은 말없이 쭈그려 앉았다.
그러자 천둥이 말했다
다 9)
<다타(주라)> 우리는 무엇을 주었던가?
친구여, 내 가슴을 흔드는 피
한 시대의 사려분별로도 취소할 수 없는
한 순간에의 굴복, 그 엄청난 대담,
이것으로 이것만으로 우리는 존재해 왔다.
그것은 죽은 자의 약전에서도
자비스런 거미가 덮은 죽은 자의 추억에서도 10)
혹은 텅 빈 방에서
바싹 마른 변호사가 개봉하는 유언장 속에도
찾을 수 없다.
다
<다야드 밤(공감하라)> 나는 언젠가 문에서
열쇠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었다. 11) 단 한 번 돌아가는 소리.
각자 자기 감방에서 우리는 그 열쇠를 생각한다.
열쇠를 생각하며 각자 감옥을 확인한다.
다만 해질녘에는 영묘한 속삭임이 들려와
잠시 몰락한 코리올레이누스 12)를 생각나게 한다.
다
<담야타(자제하라)> 보트는 경쾌히
응했다. 돛과 노에 익숙한 사람의 손에.
바다는 평온했다. 그대의 마음도 경쾌히 응했으리라
부름을 받았을 때. 통제하는 손에
순종하여 침로를 바꾸며.
나는 기슭에 앉아
낚시질했다 13) 등뒤엔 메마른 들판.
적어도 내 땅만이라도 바로잡아 볼까?
런던 교가 무너진다 무너진다 14)
<그리고 그는 정화하는 불길 속에 몸을 감추었다> 15)
<언제 나는 제비처럼 될 것인가> 16) --오 제비여 제비여
<황폐한 탑 속에 든 아퀴텐 왕자> 17)
이 단편들로 나는 내 폐허를 지탱해 왔다.
분부대로 합죠 18) 히에로니모는 다시 미쳤다.
다타 다야드밤. 담야타.
샨티 샨티 샨티 19)
4) 엘리엇 원주. <다음 몇 행은 남극 탐험대의 이야기에 자극을 얻어 쓴 것이다. 어느 탐험인지는 잊었으나 아마 색클튼의 탐험 가운데 하나고 생각된다. 탐험대원들이 극도로 피로했을 때 실제 그들의 수효보다 "한 사람이 더 있다'는 환상이 끊임없이 따라녔다고 한다> 또한 이 부분은 엠마우스로 가는 여행을 상기시켜 준다.
5) 이 연은 헤르만 헷세의 <혼돈 속을 보다> 참조. <유럽의 반 부분, 적어도 동구의 반이 혼돈으로 가는 중이다. 성스러운 망상에 취하여 절벽 끝을 따라 달리며 취해서 노래 부른다. 마치 찬송을 부르듯이 마치 드미트리 까라마죠프<토스토엡스키의(까라마죠프가의 형제들)>가 노래한 것처럼. 이 노래를 듣고 기분 상한 부르주아들은 조소하지만 성자와 예언자는 눈물을 흘리며 듣는 다.> 엘리엇 원주.
6) 엘리엇에 의하면 이 연에 사용된 몇몇 세부 사항은 13세기 폴란드 화가인 히에로니무스 보슈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성배 전설의 중세판들에 의하면 위험 성당은 기사의 용기를 시험하기 위하여 악귀들의 영상들로 차 있었다고 한다.
7) 이 아무것도 없다는 환상은 기사에 대한 마지막 시험이다.
8) 닭 울음 소리는 유령과 악령들이 떠나감을 나타내 준다.
9) <우파니샤드> 5의 1 <브리하다란야카>에 실린 설화. 신들과 인간 그리고 악귀들이 차례로 자기들의 부친인 프라야파티에게 물었다, < 저희를 멸하소서> 그들에게 프라야파티는 각각 한 음절의 <다>로 답했다. 각 무리들은 그것을 각기 다른 말로 해석했다. 즉 <다타(주라)>. <다야드밤 (공감하다)>, <담야타( 자제하라)>로. 설화는 < 이것이 신의 소리인 천둥이 다다다 할 때 말하는 것이다>라고 전하고 있다.
10) 웹스터의 <흰 악마> 3막 4장. <그들은 재혼하리라. 벌레가 너의 수의를 좀 쓸기도 전에 거미가 너의 비명에 얇은 그물을 치기도 전에.> 엘리엇 원주.
11) <지옥편> 33 장 46 행. 우골리노는 아이들과 함께 탑에 갇혀 굶어 죽은 일을 회상하고 있다. <그때 아래서 그 무서운 탑의 문이 잠기는 소리를 들었지요. > 엘리엇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자아 속에 갇혀 있기 때문에 공감하라는 명령을 따를 수 없다고 암시하고 있다. 엘리엇의 주는 F.H.브리들리의 <현실과 실제> 346페이지로 계속된다. <외부에서 받는 내 감각도 내 생각이나 감정과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것이다. 두 경우 모두 내 경험은 밖으로 닫혀진 원, 내 자신의 원 안에 속한다. 그리고 모든 요소가 흡사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원은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원에 대해 불투명하다. ---요컨대 영혼에 나타나는 하나의 존재로 간주될 때 전세계는 각자에게 그 영혼에게만 특이하고 개인적인 것이다.>
12) 세익스피어의 <코리올레이누스>참조. 의무보다도 자만심에 의해 행동한 코리올레이누스는 자신의 감방에 갇힌 인간의 전형이다. 자부심을 상하게 했다고 해서 그는 자기가 태어난 도시를 향해 적을 지휘했던 것이다.
13) 웨스튼의 <의식에서 기사 이야기까지>에서 어부왕 참조
14) 영국 민요의 후렴.
15) <지옥편> 26장 148행 참조. 자진해서 고통을 받는 프로방스 시인 아르노 다니엘 이야기에 붙인 단테의 표현. 재생을 찾는 사람에게 희망적인 단편의 하나.
16) 작자 미상의 라틴어 시 <비너스 철야제>로부터 인용, 그곳까지 시인은 자기의 노래를 듣는 사람이 없음을 슬퍼하여 언제 봄이 와서 제비처럼 목소리를 줄 것인가 묻고 있다. 제비는 필로멜라 이야기와도 관련이 있다.
17) 프랑스 시인 제라르드 네르발(1808~1855)의 소네트 <폐적자>로부터 인용.
18) 토머스 키드 (1557~1595)의 극 <스페인의 비극>은 부제가 <히에로니모는 다시 미쳤다>이다. 아들이 암살되자 히에로니모는 미치게 된다. 극 속에서 궁정의 오락을 위해 극을 쓰라는 요청을 받고 그는 대답한다. <분부대로 합죠> 그리곤 그 짧은 극 속에 아들을 암살한 자들이 죽도록 만든다. 그 극중극은 <황무지>처럼 여러 나라의 말로 되어있다.
19) 우피니샤드의 형식적인 결어로 쓰이는 산스크리트어. <이해를 초월한 평화>라는 뜻.
*번역: 황동규 (시인, 서울대 교수)
[출처] [공유] 세계 명시 감상 및 해설 : 황무지(T.S ELIOT)|작성자 옥토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