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배경이 있다면?
찔레꽃 공주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복장이 중세 유럽인가요?
이야기에 등장하는 100년이란 시간은 무얼 뜻하는 것일까?
이건 그냥 한번 추측 해보는 건데요...영불간 백년전쟁 이후로 프랑스는
왕권이 강화되었고 영국은 내란을 겪는다고 되어있는데...
이이야기의 시대와 나라의 배경을 추측 해보는 것도 재미가 있을것
같아요. 물론 전래동화는 시작부터 시대와 공간을 배제하지만...
백설공주 이야기도 권력 싸움에서 밀린 공주가 오스트리아(당시
짤스부르크 사람들은 난장이같이 키가 매우 작았다고함)에서
칼을 갈면서 다시 권력을 장악할 기회를 엿보았다는 실제역사를
배경으로 했다는 말도 있쟎아요...
[공주의 잠/김성옥]
.. 공주의 잠을 전쟁으로인한 황폐함으로 볼 수도 있지만(온나라가 마비될 정도의 상처,공포라면 곧바로 전쟁을 떠올리게 된다.)
성숙한 여인으로 재탄생 하기위한 통과의례로 보는 관점도 있네요.
근데 저는 이 두가지가 일맥 상통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쟁의 참혹함은 인간의 모든 생기와 여유를 앗아가고 왜곡시키기에
충분하기에...폭력의 공포 속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사랑과 성의
정체성을 찾을 수가있을까?
지나친 억압도 폭력적이어서 개개인의 정당한 원초성을 왜곡시키고
정체성을 상실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표지그림의 왕이 어린공주를 감싸안고 있다지만 벼랑끝에 서게해서
북을 태우는 장면을 보게하죠.왕은 그것이 공주를 보호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바로 그러한 완강함 때문에 공주는
북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방어력이 젼혀없는 소녀로 성장하게되죠.
공주가 북에 찔리자마자 잠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가시 돋친 찔레
꽃덩굴만이 무성해(펠릭스 호프만은 이것을 거대한 하나의 덩어리처럼 그렸는데 와닿는 표현인 것같아요.시간의 흐름을 백지로 표현한 점,노인의 이야기 부분에선 실루엣으로만 표현것도...) 그누구도 용납치않고 탑 속에 고립되는 것,
그러한 고립과 고독으로부터 빠져나오는데는(그녀의 왕자-왕자가 있어야 공주도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왕자도 역시 높고 높은 그곳 까지 하챦은 짐승 부터 병사,하녀,요리사,시종, 공주의 부모까지 그들 모두를 다 통과,설득,감싸안을 정도의 너그러움과 용기가 있어야만 공주와 만날 수가 있다는듯이...)
100년이나되는기나긴 댓가를 치뤄야 하는것...그런 오랜 기간의 고통의 세월이란 우리인생과도 닮아있는것 같아요.아이들이 이런 이야기들을 좋아하는 이유가 무얼까?
무시무시한 이야기,고난을 넘고,마술에 걸려 참혹한 세월을 견뎌야하고...그런걸 헤쳐나가는 주인공이되어 이야기 하나에 인생을 살아내는
것같아요.
[답글] 바다
.. 그림책은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던가요?
아이들을 위한 것도 이렇게 많은 메세지를 담아야 하나요?
아니, 담을 수는 있되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을 님처럼 역사와 철학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지 않을까요?
제겐 넘 잔인하게 보이네요.
그림책의 작가가 무엇을 담았는지를 뜯어 분석하기 보다
아이들에게 어떤 느낌을 줄 지를 나누고 싶다면
문외한인 제 느낌인가요?
문학이니까 비평하기에 따라 역사적인 관점에서, 철학적인 관점에서
비평할 수 있긴 하지만,
그림책은 아이들을 위한 책이니만치
그 비평을 누가 읽든 아이들의 관점에서 비평해야 하지 않을까요?
섣부른 판단인지는 모르지만 예술을 비평하는 것은 그 예술을
음미하고 향유하는 계층을 위한 보조적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좋은 밤되세요...
뱀다리. 옆에서 가끔 뵈가지고는 어떤 생각이신지 정말 모르겠군요!!!
[재답글] 김성옥
그림책이 아이들을 위해야 함은 물론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이런 장을 통해서라도 좌충우돌을 기꺼이
해야 한다고봅니다.그런 의미에서 반갑고 고맙습니다.
솔찍히 인문학적인 통과시기가 없는 저로서는 겁나고 챙피해서...
뭣 모르고 떠드는 제가 한없이 한심해서...어떤때는 모르면 입다물고
있으면 중간이나 갈텐데 하면서 제머리칼을 쥐어뜯어요.^^.그렇지만
그게 두려워 말못하면 서로들 고립밖에 더 되겠어요...정리도 하나도
않되고 말이죠...
챙피함을 무릎서고 이얘기 저얘기를 할 수있는 장이란 바로 이 채널에 아이가 없다는 강점이 있지요...실수해도 이선에서 끝나니까...
우리끼리(어른) 피터지게 치고 받아서 아이에게 갈때는 그런 흔적
안 남기고 가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서설이 너무 길었죠!
아이들 먹여야 하기에 더더욱 어린 시절에 또한 앞으로 겪어야할 고통 들에대해서, 그 속에서 어떻게 밝음을 잃지않고 좌절하지 않을 수 있는지를, 지시하거나 윽박지르거나 원색적이거나 심파적이거나 지나친
교훈의 과잉 때문에 질식하거나...그러지 않기위해서 어떻게 전달
하기힘든, 인생의 많은 양면적이고 명쾌하지앟은 질곡들을 이야기
해줄건지...그러니까 어떻게가 관건이겠죠...
어떻게 전달 해줘야할지 철학적, 심리학적...내능력 밖의
어떤 것이라도,고민 해야된다고 봅니다.
그런고민이 있은 후에 결과물이 아이에게 어떤느낌으로
다가갈지 결정되겠죠.이 시간 만큼이라도(이런 study를 하는동안
만이라도... 왜냐면 집중하기가 힘들어요 계기가 없이는)
왜 찔레꽃이어야 하는지 알아야 될 것같아요.
작가가 무엇을 담았는지를 모르고 아이들이 무엇을
받아들일지를 어떻게 알 수있을까요? 그래서 잠의 의미는 무엇이고,
찔레꽃의 의미는 무엇이고 하는걸, 이렇게 저렇게 추측해보고 다른
글들도 읽어보고...
때론 제가 심심치 않게 저지르는 억측도 해보고, 님처럼 분석의 수위도 가늠 해보고...그러는거겠죠.아마도 님께서 말씀하신 뜻은 아이들에게 작가의 의도를드러내느냐 아니면 감추느냐하는 문제에 가있다고 봅니다.
아이들은 몰라야된다고 봅니다...그러니까 직접적으로는(인생에는
어긋남이 존재하고 그걸 견디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용기가 필요하고...이걸 원색적으로 전달하면
아이들은 금방 질리니까...)그렇지만 또 알아야된다고도 봅니다.
이야기에 담긴 메시지를 어떻게 알아야 할까?
읽고난 후의 통쾌함으로,감동의 눈물 한방울로,흥미 진진함으로...
뭐물론 작가들은 최종적으로는 강박을 떨치고 자신도 흥미진진
해야겠지만...
아이들 책이기에 오히려 다루기 힘들고 어려운 성의 정체성,
복잡한 비극적 인과관계를 이렇게 명료하게 다룰 수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또 어른들이 흔히 생각 하듯 성의 정체성과
정착과 밝은세계로의 귀환이 어른이 되어서 이야기될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그것은 무척이나 뿌리깊고, 합리적이고 이성적
사고로도 뛰어넘기가 어려운 부분을 분명히 갖고 있다고봅니다.
그렇기에 어린시절에 꼭 다루어야 할 문제가 아닐까요?
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이야기들에 살육과 식인과 생이별과
홀로 고립됨이 등장 할까요? 그런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것들이
왜 이야기 되어야 할까요? 교훈 보다도 왜 그런관점으로
접근된 이야기가 아이들의 사랑을 더 받을까요?
[고양이] 김성옥
.. 찔레꽃 공주에 고양이가 많이 등장하는데
그냥 등장 하는 것 같지는 않고...
무슨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제랄다와 거인에서도 고양이가
등장하는데 찔레꽃 공주에서처럼
계속 끌어왔던 문제가 해결되는 시점에선
사라집니다.
푸른개에서도 검은 표범이 등장하는데
푸른개와 검은표범의 결투후에 사라집니다.
앤터니 브라운의 터널에서도
나중에 공과책이 나란히 있는 것으로
끝났던것 같은데...
[또다른 고양이]김성옥
호프만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저로서는 그냥 일반적인 코드로 읽을 수 밖에 없었죠.^^.
그런데 개인적인 고양이를 일반적으로 상징성을 갖는
고양이 자리에 가져다 놓아도 아무 무리가
없는 걸까요?아니면 고양이가 갖는 상징성을 채워지지 않는 생명력에
대한 욕구의 표현으로 보아선 안돼는 건지?호프만의 딸이
앓고 있었다니 더더욱 심증이 가네요.그리고 왕자가 공주를 구하러
가는 장면에서 왜 공주에게 가장 근접 해있는 마지막 계단에
요리사를 배치했을가요?
이렇게 끝내면 뭔가가 허전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그림책을 읽을때는 그것을 영화처럼
읽어야 한다고 봅니다.
영화는 장면을 만들때 뒤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보행 방향 까지도
표현 하려는 목적에 부합되도록 하잖아요.
그렇다면 그림책에
등장하는 모든 소품과 장면의 분할과 색상과
등장인물의 표정...모든것을
작가의 의도에 충실하게 복무시킬 수 있다면(물론
그것이 엄청나게 어려운 작업이니까
우리가 이렇게 만나서 서로를 끌어주고
있는 것이겠죠.^^.)우선 전달은 제대로 되겠죠.
그러니까 어떤 의미이든 그것이 의도적이어야
될것이 자명합니다.
그렇다면 먼저 제가 제기한 의문으로 돌아가서
제잘다와 거인에 등장하는 고양이와 거인의 식탐
그리고 요리를 잘하는 제랄다,
푸른개에등장하는 표범과 푸른개
터널에 등장 하는 공과 책을 어떤 코드로
볼것인지가 남죠?물론 그것을 다 같은 맥락으로
보는데는 무리가있으리라고 봅니다.그렇다면 어떻게
차별성이 있는지 저는 좀 명명백백히
알고가고 싶네요.
[답글] 김윤주
호프만의 책들은 모두 그의 자식들에게 헌사하는 것입니다.
찔레꽃공주는 아파누워있는 딸에 대한 안타까움이죠.
고양이는 그 딸이 아주 좋아하는 고양이랍니다.
그의 책에서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소품이 곳곳에 등장합니다.
'일곱마리 까마귀'는 막내아들에게 바치는것인데,
빨간바지를 입은 소년이 등장하지요.
막내아들이 즐겨입는 바지라더군요.
'늑대와 일곱마리 아기염소'에서 나오는 초록대문집도
호프만이 아이들과 함께 살았던 집이구요.
그의 책들은 아버지의 사랑이 담겨있습니다.
[재답글]
호프만의 새로운 해석을 지극한 아버지의 사랑을
바탕으로한 새로운 이미지의 구축으로 보아야
할 것 같네요...-작가란 나름의 관점을 살려내고
전통과 일반을 뛰어넘을 수 있는 독창성을
지녀야 할것 같네요.
고양이의 등장을 특정한 코드로 읽지않고
호프만의 가정에 따듯한 분위기와 공주를
딸로 고양이를 실제 딸이 사랑하는 고양이로
읽어야 할 것 같네요.^^.
[김윤주]
.. 어릴때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읽었을때의 느낌은, 정말 멋진 왕자와 예쁜공주를 상상하며, 나에게도 나만의 왕자님이 있을거야라고 꿈꾸었던 기억이 난다.
펠릭스 호프만의 '찔레꽃 공주' 는 같은 내용이지만, 작가의 해석과 시점이 다르게 느껴진다.
옛이야기는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얘기들이다.
그리고, 여러작가들이 시대와 상황의 변화에 따라 계속해서 재해석하여 만들어지고, 또 만들어진다.
그런의미에서 이 책은 작가 펠릭스 호프만에게 중심이 실어진다.
호프만은 스위스의 대표적인 판화가이다.
나는 판화의 기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석판화는 가장 어려운 분야라고 한다. 돌을 골라 일일이 판에 맞게 자르고, 새기고 찍는 손끝의 절묘한 감각을 필요로 하며, 까딱 잘못하면 처음부터 다시 작업해야하는 매우 까다로운 작업이라한다.
호프만의 다른책, '늑대와 일곱마리 아기염소' 와 '일곱마리 까마귀'도 모두 석판화 작업이다.
그리고, 세권모두 그의 아이들에게 바치는 책이다.
찔레꽃 공주의 표지그림에서도 느낄수있듯이 아버지의 딸에 대한 사랑이 담겨있다. 우리가 호프만에 대해서 모른다 하더라도 이 책은 저주받은 공주와 왕자의 얘기보다, 아버지의 사랑이 더 크게 느껴진다.
같은 이야기라도 작가의 시점과 해석에 따라 느낌은 달라지고, 그림의 흐름은 달라지게된다.
호프만의 책들은 이렇게 자신만의 경험과 상황에서 만들어진, 개인에게는 특별한의미가있는 책들이고, 우리는 또 그것들을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충분히 함께 느낄수가 있다.
나는 이 점이 그림작가로서 훌륭한점 이라고 생각한다.
그림의 기법이나 스타일의 문제가 아닌, 이야기를 풀어가는 자신만의 어법이 있다는 것이다.
그의 그림들속에는 그가 들어있고, 자연스럽게 그가 배어나고, 우리는 그것을 느낄수가 있는것이다.
그는 분명히 진지하고,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애처로울만큼 지극하고, 작업에 있어서도 예술가의 정열이 대단했을것같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만일 내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그린다면 어땠을까....생각해보았다.
나의 경험, 나의 인생, 나의 생각-- 모든것을 진지하게 나만의 어법으로 풀어낼수 있엇을까.
내가 그린 숲속의 공주는 분명 '허접' 이었을것이다.
우리는 늘 '나만의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들한다.
분명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많이 어설프고 부족하다.
(여기에 대한 얘기는 일러스트레이터로서 마지막과제에 좀 더 자세히 얘기하겠다)
이렇게 훌륭한 여러 외국작가들의 책을 접할때마다 배우고 느낀다.
하지만, 계속해서 다듬고 또 다듬어 갈것이다.
"나"다운 그림을 위해서 말이다.
[요리사] 김성옥
찔레꽃 공주에 등장 하는 요리사가 왜
하필이면 접시가 12개 밖에 없어서
마지막 13번째 요정에겐 요리를
대접하지 못했을까?
그래서 결국 못만든 한접시 때문에
그런 재앙을 당하게 됬을까?
제랄다와 거인에서
요리를 아주 잘 하는 못만드는 요리가 없는
제랄다는 결국 무시무시한 거인을 잘 길들여
사람으로 만들지 않습니까?
생명력이 없는 아버지(엄격한
기독교적 도덕관에 갇혀 있는)
에게서는 자신의 생명력과 그것을
꽃피우는 능력을
정당히 인정받지 못하지만
그래도 찔레꽃 공주에서
처럼 잠든다거나
왕자들의 접근을 막는다거나 하는
고통으로의 침잠대신
제랄다는 직면하고 처리(요리)함으로서
원초적 본능의 파괴적인 공격성을
아주 잘 문화적인 것으로 바꾸어 놓죠.
한번도 요리를 먹어보지 못한
거인이 마을로 내려오면
교육도 문화도 존재 할 수없는
무서운 세상이 되버리는데
제랄다는 그런의미에서
본받을 만한 인간상 인것 같아요.
.. 요리사에게 꾸중만 듣던 시종도
대단원에서는 정말 근사한
보기만해도 아이들의 군침을
돌게하기에 충분한 케익을
들고있지 않습니까?혹시 만들었나!
유머와 결론...작가가 어린이들에게
보내는 윙크 같은 깔끔한 마무리 같아요.
첫장의 공주가 잠든 모습과 대조의 짝을 이루기도하고...
참~ 보면 볼수록 새로운 것이 나오네요.
뜻이 있다면 표현은 반드시 가능하리라는
자신감을 주내요.
[바다]
.. 찔레꽃 공주 - 그림만
다른 수강생들이 거의 대부분 디자인이나 일러스트 하시는 분들이시니까 그림만 비평하면 다른 의견들 많이 주시겠죠? 그럼 그림에 문외한인 저도 좀 배울 수 있으리란 욕심에 그림책에서 중요한 그림, 그럼에도 소홀했던 부분을 열심히 들여다 보았습니다.
우선, 요소요소에 유머러스한 장치를 해놓은 기발한 그림책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새 서점에 나가보면 책을 읽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책으로 끌어들인다고 전래동화를 쓰고 그리며 숨은 그림찾기나 달라진 곳 찾기 등의 이벤트를 책 속에 늘어놓는 경우를 간혹 마주칩니다. 하지만 전 소장할 책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흥미위주로 만드는 동화책은 개인적으로 싫어합니다.
이 그림책에서 유머를 느낀 장면들입니다.
첫째, 왕비의 욕실이라면 어른들이 상상하는 호화로운 원형의 대리석 욕조가 아닌 정말 개구리가 튀어나올 법한 야외 욕조 장면입니다.
둘재, 생일에 초대할 요정들의 초청장에 침을 바르고 있는 신하의 얼굴이나, 12개의 금접시뿐이란 것을 강조하기 위해 꼭 열두개를 들고 있는 요리사의 조수가 있는 장면입니다.
셋째, 물레를 태우는 장면에서 왕과 공주 옆에 붙어 있는 한 마리 고양이가 꽤 비중있는 출연자라는 점입니다. 아이들은 동물을 좋아하는데, 이 고양이는 꽤 여러 장면에 등장하고 있거든요.
넷째, 공주가 15살 되는 날 탑으로 올라가는 장면에 요리사와 조수의 그림을 같은 평면으로 펼쳐 보인 점입니다. 요리사가 조수를 꼬집는 익살스런 장면을 표현하기 위한 설정이 아이들의 눈에 딱 맞춰졌다는 느낌입니다.
다섯째, 벽에 붙어 잠드는 파리가 문자 사이 하얀 벽면 같은 공간에 들어가 있는 설정입니다.
여섯재, 전면으로 보이는 잠든 궁전 풍경 속에 말엉덩이와 요리사와 조수 등등 익살이 곳곳에 숨어 배어나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아이들의 시각에 맞춘 그리고 글과 함께 자아내는 긴장감을 유지하는 요소를 유머라고 읽어내는 것이 좀 과언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전체적으로 간결한 내용의 그림으로 배경 하나 없이 처리된 이 그림이 정말 마음에 듭니다. 마치 티끌 한 점 없는 하늘에 선명한 모양의 구름 하나가 태양을 가리고 있는 것처럼 간결하고 간단한 그림 속에서 큰 것을 찾아내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간명한 터치에도 불구하고 13번째 요정의 저주 장면을 처리함에 있어서는 정확히 12명의 요정을 왼쪽에 세워두고 오른쪽과 다른 색감으로 근심스런 표정과 분위기를 살리는 등 소통의 형태가 완벽해 보입니다.
[김윤정]
.. 펠릭스 호프만은 워낙 유명한 사람입니다. <늑대와 일곱 마리 어린 양>도 좋고, <일곱 마리 까마귀>도 좋지요.
하지만 아무리 명작이라고 해도 실제로 아이에게 보여주었을 때 그닥 명작에 기대했던 만큼의 열렬한 호응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이 책 또한 그러해서 적잖이 저를 실망시킨 책이지요.
하지만 언젠가 이 책이 호프만이 병상에 누워 앓고 있는 자신의 딸을 위해 만들었다는 얘기를 듣고 다시 한번 보게 되더군요. 역시나 서문에도 "사랑하는 딸 크리스티안느에게"라고 적혀 있습니다.
우선 이 얘기는 전래동화 <잠자는 숲 속의 공주>입니다. 이 얘기에는 두 가지의 버전이 있습니다. 호프만이 취한 그림 형제의 버전이 있고, 잠에서 깨어난 공주가 다시 한번 시어머니 되는 사람에게 모진 시련을 겪게 되는 페로의 버전이 있습니다. 딸을 위한 그림책이었다면 역시 그림의 버전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표지부터 살펴보면 어린아이를 뒤에서 안아주고 있는 아빠의 모습입니다. 높은 탑 위에 불안하게 서 있는 아이를 지키려는 부성애가 간절하게 느껴집니다. 아무 이유없이 등장한 것 같은 고양이 역시 딸이 굉장히 좋아하는 동물이라고 합니다.
면지는 제목과 어울리는 찔레꽃이 가득 비어 있습니다.
도비라에는 제목 위로 창백하게 잠든 소녀가 보입니다. 그림책의 정면성의 원칙에 따라 찔레꽃 공주가 누구인가를 한번쯤 보여주고 가는 것이겠지요.
2~3쪽의 글은 아기를 갖고 싶어하는 왕비에게 개구리가 소원이 이루어 질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왜 개구리일까? <개구리 왕자>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전래동화에서 개구리는 종종 성적인 코드로 사용된다고 하는군요. 또한 옛이야기에서는 말로 들은 것이 반드시 사건으로 되풀이되는 구조를 자주 보여줍니다.
여기서도 개구리는 예언을 하고 다음 장에서는 그 예언처럼 왕비가 예쁜 공주를 낳게 됩니다. 뒤로 가면 열 세 번째 요정이 내뱉은 저주도 그대로 실행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번 내뱉은 말은 반드시 실현되는 극단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4~5쪽 예언대로 아기를 낳은 왕비와 평화롭게 잠든 아기, 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왕의 모습입니다. 자칫 행복할 수만 있는 이 장면을 호프만은 천장에서 드리워진 커튼의 수직 구도를 통해서 불안한 운명을 예시하는 듯합니다.(제 눈에는) 검게 드리워지는 운명의 그림자라고나 할까요?
6~7쪽 공주님의 세례식 준비입니다. 왕이 살고 있는 궁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호프만은 과감하게 배경을 생략해 버렸습니다. 옛이야기의 경우 배경이 복잡해지면 실제로 주목받아야 할 등장인물의 행위가 축소가 되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상당히 명쾌합니다. 글에는 열 세 명의 요정이 있다고 합니다. 13은 서양에서 불길하게 취급되는 숫자입니다. 마침 금접시도 12개밖에 없으니 여전히 불안한 사건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8~9쪽 열 두 명의 착하게 생긴 요정들입니다. 아기 침대 옆에 표지에 등장했던 고양이가 여전히 나옵니다. 앞장에서 불안한 운명을 예고했지만, 막 바로 저주로 이어가지 않고 한번의 지연을 통해서 저주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있습니다.
10~11쪽 11번째 요정의 축복 뒤에 초대받지 못한 손님 13번째 요정이 끼어 듭니다. 그러고는 불길한 숫자대로 저주를 퍼붓고 사라집니다. 이 때 서양에서 7과 함께 행운의 숫자로 여겨지는 12번째 요정이 나타나 이를 약화시킵니다. 죽음대신 잠으로 .
12~13쪽 표지 장면이 등장합니다. 가혹한 운명으로부터 딸을 지키려는 아빠의 눈물겨운 노력이지요.
14~15쪽 드디어 열 다섯이 되고 마침 왕과 왕비는 외출합니다. 화면은 네부분으로 분활이 되어 있는데 사람의 시선이 가장 많이 가는 오른쪽 하단에서 시작되어 시선의 방향이 절묘하게 흘러갑니다. 요리사는 탁자 밑에서 장난치는 아이에게로 시선을 주고 또 문 밖을 내다보는 아이로 이어져 왕과 왕비를 지나 계단 위에 놓인 꽃병을 따라 2층으로 가면서 주황색 기둥을 따라간 복도 끝에서 공주를 보게 됩니다. 이 공주는 오래된 탑을 향합니다. (앞서가는 고양이 찾으셨나요?)독자에게 긴장감을 줄뿐더러 시선의 움직임만으로도 진짜로 이방저방 거친 느낌이 들지 않으세요?
16~17쪽 이 장면도 저주가 실행이 되는 장면입니다. 공주 밝은 곳에 있고, 노파는 어두운 그림자 안에 존재합니다.
18~19쪽 그림은 높은 탑에 잠든 공주를 보여 주지만 글은 온갖 것이 잠든 모습을 적고 있습니다. 아주 작고 사소한 것 같지만 구체적인 예를 들어줌으로써 상상할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것이지요. 파리도 화롯불도 잠이 들다니?!
20~21쪽 글은 없고 그림이 빽빽하게 뒤덮었습니다. 찔레꽃에 비참하게 갇혀 있는 사람들과 공주와 왕궁을 절실하게 보여줍니다. 그 밖을 서성이는 왕자들의 무기력한 모습도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22~23쪽 주욱 끌어올려졌던 감정은 여기서 흰 여백과 함께 일단락됩니다. 호프만은 오랜 세월을 하얀 여백으로 처리했습니다. 묘한 여운과 공백이 조화롭게 느껴질뿐더러 앞장에서 가득했던 그림의 효과를 단단히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런 곳이야말로 대가만이 할 수 있는 모험이 아닐까요?
24~25쪽 드디어 우리의 구원자가 등장합니다. 사실 저는 이 이야기의 왕자야말로 맘에 안 드는 왕자인데 도무지 한 일이라고는 키스한 것 밖에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맹렬하게 싸움을 한 것도 아니고, 그치만 앞에서 많은 왕자가 죽어갔음에도 공주를 찾아갔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한 용기의 소유자라고 인정해야겠지요? (아직도 동의할 수 없음)
26~29쪽 용기 있는 왕자는 저절로 쫙 갈라져 열린 찔레꽃을 지난 시선의 방향도 위를 향하고 있어 그가 탑을 향해 올라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 시선의 꼭대기에 공주가 누어서 자고 있지요. 호프만도 어디선가 이런 씩씩한 왕자가 나타나 자신의 딸을 병상에서 일어나도록 해 주었으면 하는 염원이 있었겠지요. 혹은 자신이 딸을 위해 만든 이 책이 왕자의 키스와 같은 힘을 발휘했으면 하는 염원을 담았겠지요.
30~31쪽 성대한 결혼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성장하여 독립하는 공주에게 고양이는 이제 필요 없나 보네요. 사라졌어요.
너무 길게 쓴 것 같네요. 부족한 글을 끝까지 참으시고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김경미]
.. <찔레꽃 공주>
이것은 '잠자는 숲 속의 공주'와 같은 내용이다. '찔레꽃 공주'라고 하니 이전의 제목보다 왠지 모르게 친근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찔레꽃과 얽힌 사연이 있을 것만 같다.
시작부분에서 왕비는 숲 속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데, 개구리 한 마리가 등장한다. 보통은 실내에서 목욕을 하는데, 여기에서는 왜 굳이 실외에서 하는 것으로 설정했을까? 거기에다 개구리까지... 개구리는 성적인 것을 상징한다고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일까? 개구리는 왕비에게 곧 아이가 생길 것이라고 말하고, 그것은 실현된다.
다음장면은 드디어 아기가 태어나고, 아기침대 밑에는 고양이가 한 마리 있다. 여기에서 고양이는 공주가 잠에 들기 전에 공주 옆에 종종 등장하는데, 공주가 이 고양이에게 친근감을 나타내는 것 같지는 않다. 작가가 어떤 설정으로 고양이를 그려 넣었는지 궁금하다. 공주가 잠들기 전에, 그러니까 공주가 어렸을 때를 나타내는 상징물은 아닐까?
공주의 탄생을 축하하는 잔치를 열려고 준비하는 장면은 인상깊었다. 왕은 누구를 부를까 고민하고 있고, 그 뒤에는 그것을 받아 적는 신하와, 봉투에 침을 발라서 초대장을 붙이는 신하가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주방장이 접시가 12개뿐이라고 하인을 시켜서 보여주고 있다. 잔치를 준비하는 분주한 모습과 누구를 초대할지 고민하는 것이 동시에 잘 나타나 있다.
드디어 잔치는 열리고 요정들은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등장한다. 그러나 초대받지 못한 요정은 나쁘고 침울할 것이라는 것을 나타내기라도 하듯이 검은 망토를 두르고 나타나서, 공주에게 저주를 내린다. 요정들이 잘 묘사되었고, 초대받지 못한 요정이 누군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중간부분은 잠자는 숲속의 미녀와 같은데, 왕이 공주를 보호하려고 나라안의 물레를 보두 태우는 장면에서 왕이 공주를 안고 있는 모습은 왕이 얼마나 공주를 사랑하는지 잘 나타내주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 고양이는 무엇을 나타내는 것일까??^^;
왕과 왕비가 외출한 사이에 공주는 궁궐 안을 마음대로 돌아다닌다. 왕이 공주를 너무 아껴서 잘 나돌아다니지 못하게 한 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이 장면을 각 층이 한눈에 보이도록 그린 것은 좋은 시도로 보인다.
그 다음 마녀와 만나는 장면, 마녀 할머니는 공주는 쳐다보지도 않고, 자기 할 일을 계속하는데, 공주 혼자 호기심에 가득 찬 얼굴을 하고 있다. 그리고 공주가 결국 물레에 찔리자, 온 나라가 다 순간 시간이 멈추듯이 잠에 빠져든다. 여기에서의 설정이 재미있는 것은, 어떤 행동을 하던 사람들이 그 행동 그대로 몸이 궂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깨어났을 때 그때 하려던 행동들을 다시 한다. 아무일이 없었다는 듯이.
공주와 온 나라 사람들이 잠에 빠져들자, 그 나라는 온통 찔레꽃으로 뒤덮힌다. 그리고 요정의 예언대로 100년동안 아무도 그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찔레꽃, 가시덤불은 공주가 결혼을 하기 전에..어른이 되는 관문 같기도 하다. 어떤 운 좋은 한 왕자가 100년이 되는해에 그곳에 찾아왔다가 드디어 공주를 발견하고 키스를 해준다.이 부분은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할 것 같다. 키스를 해주자 공주님과 온 나라 사람들이 다시 잠에서 깨어나고, 둘을 결혼을 해서 오래 오래 행복했다는 이야기.
전형적인 해피엔팅의 구조다. 내가 어렸을 때에 백설공주와 인어공주와 더불어 많이 좋아했던 내용이었다.
그런데, 나는 솔직히 이 그림책을 보고 그림이 그다지 아이들의 눈 속에 쏙 들어올 것 같지 않았다. 스케치한 것 같은 선에 색깔도 어두운 식으로 들어가 있다. 물론 이야기를 이해하는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림을 이렇게 그린 데는 이유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옛이야기라서 이렇게 그린 것인가? 어쨌든, 이 책은 내 기억속에 있던 디즈니의[잠자는 숲속의 미녀]만큼 예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의 분위기가 있었다.
[bangku]
.. <찔레꽃 공주>가 재미있었습니까?
한미화
어린이책을 만드는 회사에 다닐 적에 그림책을 보면서 이 책이 잘 팔릴까 어떨까를 고민했다. 그래서 아이가 어릴 때는 어서 어서 아이가 커서 아이에게 책을 읽어 주고 이 책을 아이가 좋아하는지 아닌지 알고 싶었다. 한마디로 아이를 실험대상으로 활용했으면 하고 바랐던 것이다.
이제 아이는 그림책을 충분히 이해하고 즐길 정도로 컷다. 그러나 또 막상 아이가 크니 재미있냐고 물으면 시큰둥하게 반응한다. 물론 아이가 좋아하는 책도 있다. 공룡책, 뱀책 그리고 만들기 하는 책 뭐 그런 것들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심층취재를 하고 싶으면 정색을 하고 아이에게 손 마이크를 들이댄다. “아 아 . 지금부터 조형택씨에게 묻겠습니다. 찔레꽃 공주는 뭐가 재미있었나요?” 아이의 대답인즉 찔레꽃 덩굴이 왕자에게 길을 비켜줄 때, 공주가 물레를 갖고 있는 할머니를 만날 때, 꼬마 요리사의 파마머리와 13번째 요정의 모습이 재미있단다.
다른 왕자는 실패한 길을 한 왕자만 너무도 쉽게 성공했으니 당연히 궁금할 수밖에. 그러나 연구자들이 이를 소녀가 여자가 되는 성적이고 생리적인 순간으로 이해하고 있으니 그냥 넘어가야겠다. 꼬마 요리사의 파마머리는 문화적 차이 때문에 재미있어 하는 것 같다. “조그만 녀석이 머리를 파마하다니 쯧쯧” 하는 게 아이의 생각이 아닐까.
이제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차례다. “아 아∼ 당신은 <찔레꽃 공주>가 재미있었습니까?” <찔레꽃 공주>는 백설공주나 콩쥐팥쥐처럼 어릴 때부터 많이 들었던 옛이야기 중 하나다. 내게는 잠자는 숲 속의 공주로 기억되는 바로 그 이야기다. 이 이야기가 잠자는 숲 속의 공주라는 걸 눈치챈 순간부터 그림책은 별 재미가 없었다. 결말을 뻔히 아는 이야기가 아닌가?. 김이 좀 빠지기는 했지만, 그렇다면 작가는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를 어떻게 풀었을까?하는 점이 또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찔레꽃 공주>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그림책이라는 평면적 공간을 능수 능란에게 활용해낸 작가의 솜씨다. 그림책은 아주 절제된, 배경조차 생략된 단순한 그림으로 13번째 요정을 보고 흠씬 놀라는 요정들의 모습, 찔레꽃 공주를 보호하고자 하는 임금아버지의 모습, 공주를 구하러 가는 왕자의 움직임 등을 표현해내고 있다. 1차원적 공간의 연속적 배열을 통해서 움직임과 공간감, 시간의 흐름 등을 표현해내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필요한 것 이상을 그리고 있지 않다.
낱장의 그림을 이어놓은 것만으로도 이런 느낌이 전달되는데 예컨대 임금님이 편지를 보내려고 고민하는 장면 옆에 요리사가 접시를 가리키고 있는 장면도 그렇다. 두 장면에 그려진 인물들의 크기와 위치만으로도 요리사가 임금님 바로 앞에서 접시가 모자란다는 보고를 하고 있구나 하는 걸 느끼게 한다. 열세번째 요정이 불쑥 들어온 장면은 어떤가? 한쪽 면에는 단색으로 열두 명의 요정이 경악하고 있는 장면이, 다른 쪽에는 검은 천을 두른 13번째 요정과 임금님이 대치한 장면이 그려져 있다. 판면의 위쪽으로 치우쳐 그려진 12명의 요정과 임금님 사이의 거리감은 13번째 요정의 등장으로 흠씻 놀라며 뒤로 물러선 요정들의 모습을 짐작케 한다.
물레를 모두 태워버리는 장면은 공간감을 가장 경제적으로 보여준 장면이 아닌가 싶다. 임금님이 어린 공주를 안고 아래를 보고 있는 시선의 그림과 아래쪽에 치우쳐 작게 그려진 사람들을 모습이 펼침면으로 연결됨으로서 城위에서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물레를 태우고 있는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
작가의 이런 1차원적 공간의 다면적 활용은 왕자가 공주를 구하러 가는 대목에서 압권을 이룬다. 펼침 면에는 사선으로 계단임을 알려주는 선이 그려져 있고 거기에는 여러 사람들이 잠들어 있다. 사선의 아래에서 왕자는 위를 웅시한 채 서있다. 하지만 이 모습으로 독자는 지금 그가 찔레꽃 공주가 잠들어있는 성 맨 위로 나아갈 것임을 알 수 있다. 더 긴 설명이 필요 없다. 이어 다음 장에서는 사선의 방향으로 그려진 계단 위를 덮고 있는 가시덤불과 사람들을 지나 왕자가 공주에게 키스를 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어느새 왕자가 가시덤불을 지나 공주에게 다다랐을 정도로 걸었고 시간이 흘렀고 성공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이런 효과를 위해 작가가 많은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다. 배경을 모두 거둬 내고, 우리식으로 말하면 여백을 철저히 활용하며 꼭 필요한 만큼만 그리고도 많은 걸 그림으로 말하고 있다.
또한 펼침면을 주기적으로 사용하는 방식도 인상적이다. <찔레꽃 공주>의 장면을 연결해보면 무시무시한 사건을 앞두고 아무것도 모르는 불안한 평화로움을 강조하기 위해 펼침면이 사용된다. 요정들이 모두 모여 공주에게 축복을 하는 장면, 열다섯 살이 된 공주가 커다란 성을 여기저기 둘러보는 평화로운 성안의 풍경이 특히 그러하다, 왕자들이 가시덤불이 된 성을 올려다보고 있는 장면의 경우도 지금까지와 예외적으로 왕자에게만 가시덤불이 길을 내어주는 의외의 상황을 암시하고 있다는 면에서 의외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짐작된다.
마지막 결혼식 장면을 제외하고는 하나같이 앞으로 펼쳐질 놀랍고 새로운 사건의 전개를 까맣게 모른채 기쁘고 수선스럽게 지금 현재 벌어진 일들을 즐기거나 혹은 어쩌지 못한 채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이런 낱장과 펼침면의 활용을 통해 앞날을 모르는 인간의 기쁨, 깊은 절망 뒤 찾아오는 새로운 희망 등의 반전을 그려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아마 이런 일러스트레이션의 강약만으로는 왠지 성이 차지 않은 듯 그림책에서 자기만이 아는 몇 가지 장난을 하고 있는 듯하다. 처음장면에 등장하는 개구리야 원작에도 있었고 성적인 상징임을 알지만 고양이, 요리사와 보조요리사의 등장은 작가가 등장시킨 인물이다.
요리사와 보조 요리사는 조연이 영화를 감칠 맛나게 하는 것처럼 임금님과 공주 그리고 왕자 같은 동화 속 세계에 현실적 인물들을 슬쩍 집어넣어 놓은 것 같다. 왕자와 공주만 있다면 누가 결혼식 케이크를 만들고 접시가 12개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줄 것인가?
마쓰이 다다시에 의하면 작가의 둘째 딸이 아팠을 때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이 책을 만들었고 일부러 딸 크리스티네가 좋아하는 고양이와 케이크를 그려 넣었다고 한다. 하긴 내가 작가라면 나도 내 맘대로 아들이 좋아하는 공룡하나쯤 그려 넣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혀노기]
.. 시골에서 자란 저는 봄이면 산으로 찔레를 꺾으러 다녔습니다.
동네 아이들과 이 산, 저 산 우르르 몰려다니며 찔레를 먹는 일은
봄이면 즐겨하는 하나의 놀이였지요.
보드라운 찔레 순의 껍질을 벗기면 하얀 속살이 나옵니다.
아삭아삭 씹히는 찔레는... 사실 별맛은 없어요.
그리고, 유난히 찔레 덤불 근처에는 뱀이 많았어요.
연한 순을 발견하고 끌어당기는 순간!
시원한(?) 뱀이 손등을 스치고 지나가기 일쑤였거든요.
찔레꽃 공주... 제목을 보면서 떠오른 찔레에 대한 저의 기억입니다.
그러면서 드는 우스운 궁금증 하나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왜? 찔레꽃 공주가 되었을까?
성을 친친 감고 있는 덤불이 찔레꽃인가?
원작에 wild rose라고 되어 있었나?
뭐 그런 궁금증이었습니다.
이야기를 쭉 읽으면서는
정말 재미없게 썼구나, 혹은 번역했구나였습니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다 알고 있고,
어떤 이야기가, 결말이 날지 다 아는데
그걸 다시 똑같이 들려주는 글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리 다 아는 얘기지만
새로운 그림으로 새롭게 보여 준다고 할 때는
그림뿐 아니라 글도 더욱 재미있게 표현되었으면
아이들도 좋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그림 그리시는 분들은 그림에 중점을 두고
좋은 말씀 많이 나누시는데,
저는 그림을 볼 줄 몰라서
그냥 글에 대한 간단한 느낌만 적었습니다.
[나리]
많은 분들의 이런저런 얘기를 읽고 나니 나는 무슨 말을 써야 하나... 막막해지더군요.
더군다나 화요일도 훌쩍 넘어 버렸으니...
그냥 쓰지 말까 하다가... 적어도 두 개는 숙제를 하라시던 문선생님 말씀이 귓가를 맴돌아...짧은 느낌이나마 써 보려 합니다-^^***
찔레꽃 공주는 이번 기회에 새로 알게 된 책입니다.
첫장을 펼치는 순간 '잠자는 숲 속의 공주'란 걸 알았지요.
옛이야기는 정말 대단한 힘을 가진 것 같습니다.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재구성되니까요.
우선 쭉욱 그림만 넘겨 보고, 그림이 독특한 매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화려하진 않지만, 정감 어린... 옛이야기에는 오히려 원색적인 그림보다 어울리는 기법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릴 때 애니메이션으로, 그야말로 포~옥 빠져서 봤던 '잠자는 숲 속의 공주'와는 다른 재미를 찾을 수 있었지요.
다른 분 글을 보니 석판화군요, 이 그림이-. 독특하다고 느낀 건 기법 때문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백을 이용한 공간의 배치-, 성벽에서 물레를 태우는 장면을 바라 보는 모습이나 공주와 왕자가 계단을 올라갈 때의 장면들이요. 정말 감탄했습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함에 상상할 여지가 많은 그림이랄까요. 그리고 마지막 결혼식 장면에서의 채색-, 공주와 왕자에 중점적으로 색을 입히고 배경으로 나오는 군중들은 아예 칠하지도 않았더군요. 형태 자체도 자세하지 않고요. 대단한 시선 집중 효과인 거 같아요. 그리고 마지막 장면의 커다란 케이크-, 저도 와- 하면서 계속 봤어요. 꼬마 요리사의 표정도 익살스럽고요.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의 집을 보면서 와- 하는 기쁨을 느꼈던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이들이라면 더 좋아할 것 같아요. 이런 재미나 익살은 여러분이 말씀해 주셨죠. 대표적으로 봉투에 침을 바르는 장면 같은 것들이요. 이런 요소가 책을 볼 때 줄거리와 상관없이 더 얻어지는 기쁨 같아요.
그리고 글은-, 저는 그림에 어울리는 잔잔한 말투라고 생각하면서 읽었습니다. 크게 놀라거나 호들갑을 떨거나 하는 거 없이요. 아이한테 읽어 줄 때는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요. 좀 큰 아이들이어야겠죠. 장면당 글이 많으니까요. 좀 의문이 들기도 한 건, 사소한 거긴 한데요, 공주가 잠이 들고 성 안의 모두가 잠이 들면서 요리사가 소년을 놓아 주었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왕자가 성의 계단을 올라가는 장면에서는 요리사가 소년의 귀를 잡고 있어요. 순간 어라? 하는 느낌이 들어서 앞의 글을 다시 봤지요. 저만 이런 의문을 가진 걸까요? 사소한 걸로 꼬투리를 잡는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냥 걸려서요. 전 앞에 글로만 나왔던 장면이 뒤에서 그림으로 나와서 재미있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앞에서 본 글하고 달라서...
별 걸 갖고 다 그러네...라고 하신다면...민망...^^;;;
'잠자는 숲 속의 공주'라는 이야기 자체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어요. 여러 가지 해석이 있고 100년 동안 죽어 간 왕자들은 소녀가 성에 눈을 뜰 때까지의 희생자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하지만 제가 그런 분석에 대해 잘 몰라서 여기에는 길게 얘기 못 할 것 같습니다.
어쨌든 저는 이 책이 웬지 따뜻하게 느껴졌어요.
다른 분이 써 주신 이 책의 탄생 배경-팰릭스 호프만이 딸을 위해 그렸다는-을 읽고 그런 작가의 마음이 담겨 있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들었답니다.
설마... 이 글을 내일 문샘께서 읽히시는 건 아니겠지요?
주절주절 느낌만 쓴 것이라...숙제에 써 있는 찔레꽃 공주 '비평'은 절대 될 수 없는...하니 제발 그런 일은 없길...^^;;;
첫댓글 옛 이야기 읽다가 손님이 왔서나갑니다. 다음에 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