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정착지
1. 페루지아(Perugia)
<도착했다. 내려라!>
<예!>
나는 선배의 말에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차에서 내렸다. 잠결에 차에서 내린 나는 놀라운 광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거대한 성곽과 성문이 가늠할 수 없는 세월을 머금고 권위 있는 모습으로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캄캄한 밤이었지만 그 위용은 참으로 이국적이면서도 장엄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외국 어디서나 쉽게 발견되는 평범한 유적이지만 외국을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나에겐 표현 불능의 엄청난 감동을 준 이탈리아의 첫 모습이었다.
잠을 자다가 갑자기 밖으로 나오니 견딜 수 없는 추위가 느껴졌다.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렸고, 앞니가 위아래로 부딫혀 선배들 앞에서 창피스러웠다.
선배는 성문을 바라보고 있는 내게 뚱뚱한 한 여자를 소개시키며
<인사해라! 이 여자 분이 네 집을 구해주신 원이(가명)씨다.>
<안녕하세요? 권우용입니다.>
그러자 그 여자는 고개만 살짝 끄덕이고는 담배를 들고 있는 손으로 옆 건물을 가리키며,
<네, 내가 나이가 더 많으니까 그냥 편하게 우용씨라고 부를게요. 여기 옆에 건물이 우용씨가 다니게 될 언어학교에요.>
오른편으로 시선을 돌리자 위대해 보이는 거대한 중세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고풍스럽고 권위적이던지.....
<이태리는 언어도 이토록 고풍스런 유적지에서 가르치는구나......!>하는 감동이 밀려왔다.
페루지아는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 주의 수도로서 그 역사가 3천년이 넘는다. 고대 로마 왕정과 공화정 시기 이 지역의 토착민은 쇠를 잘 주조하던 에트루리아(Etruria)인이었다고 한다. 페루지아는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일부 지역이 파괴되기도 했지만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내가 살게 될 집도 800된 집으로 AD 1,200년경에 세워진 집이라고 했다.
2. Via Guerrierra 34.
짧은 인사만을 나눈 후 우리 셋은 모두 선배 차에 다시 올랐고, 원이의 지시에 따라 선배는 좁디좁은 페루지아 골목길을 꼬불꼬불 운전하기 시작했다. 원이씨는 잠시 후 영화에서나 보던 고풍스러운 골목길에 차를 멈춰 세웠다.
<도착했습니다. 내리세요.>하고는 먼저 차에서 내려 옆의 나무대문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자 3층 창 밖에서 중국인처럼 보이는 동양남자 아이가 얼굴을 내밀었고, 원이씨가 그를 향해 <Lui è arrivato.(그 남자 도착했어!)>라고 외치자 그 아이는 빠르게 계단을 뛰어내려와 차에서 내린 3단 가방을 붙들어 들고는 선두에 서서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갔다. 많은 사람들이 초면인 사람을 돕는 일에 멈칫거리는 것과 달리 계단을 뛰어내려와 적극적으로 짐을 들어준 것이 무척 고마웠다.
그 중국인 친구의 도움으로 짐을 모두 옮겨 올리자 집을 구해준 원이씨는 선배의 차에 올라탔고, 두 사람은 짧은 인사만을 남긴 채 떠나버렸다. 며칠 간 나를 도와준 선배가 떠나자 이제 나 홀로 살아가야하는 진정한 의미의 유학이 시작되나보다 하는 생각에 기분이 묘했다. 그 순간 나는 사람들이 살지 않는 깊은 정글 어딘가에 홀로 떨구어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3. Lui Chung(뤼 청)
짐을 다 옮기고 나자 그 중국남자아이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눈이 작았고, 나와 비슷한 키에 많이 마른 체형이었다. 짧은 스포츠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뒷머리가 눌려있었다. 그는 자기의 이름을 『루』라고 일러주었다. 실제 그의 이름은 『뤼』였지만 이태리 사람들이 발음하기 어려워하자 자기이름을 그냥 『루』로 소개했던 것이다. 그는 내게 화장실과 부엌을 안내해 주었는데 화장실은 내 방 바로 옆에 있었고, 부엌은 현관거실 맞은편에 있었다. 『루』는 80년 생으로 일자리를 찾아 8개월 전 이태리에 왔는데 현재 언어학교에서 3단계 수업을 듣고 있노라고 했다. 실제 『루』는 TV를 보며 간간히 웃을 수 있을 만큼 이태리어를 잘했다.
4. Michele Muzio(미켈레 무찌오)
내가 들어간 Via Guerrierra 34번지 3층집은 페루지아 대학교에 다니던 시칠리아 출신의 Michele Muzio란 이태리 청년이 월세로 집을 구해 중국인 『루』와 나에게 다시 월세를 놓은 집이다. 원래 실제 월세가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Michele는 나와 『루』에게 각각 40만 Lira를 월세로 받았다. 내가 이 집에 들어간 당일 Michele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나는 내 방문을 잠근 채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Michele와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나와 동갑인 74년생이었다.
이탈리아엔 여러 인종이 뒤섞여 살아가지만 크게 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는 머리카락이 금발이거나 백발인 푸른 눈동자의 백인계열인데 이들은 키 크고 피부가 희고 덩치가 큰 앵글로 색슨 백인이나 북유럽의 켈트족과는 다른 백인이다. 또 다른 하나는 곱슬머리에 검은 수염이 덥수룩한 키 작은 애매한 백인 인종이다. 나폴리 이남부터 시칠리아 지방은 후자의 인종들이 대부분이고, 피렌체 북쪽은 전자의 인종들이 많지만 이탈리아 반도 전체를 통틀어 보면 키 작은 혼혈 백인이 대부분이다. 시칠리아에서 Perugia로 유학 온 Michele는 시칠리아 태생의 전형적 후자의 계열이었다.
5. 내 방
내 방은 약 2평이 조금 못되는 매우 작은 방이었다. 방 안엔 작은 침대와 소형 장롱, 그리고 창가 쪽엔 책상과 걸상이 하나씩 놓여 있었다. 나는 어차피 내 짐들이 방안에 다 못 들어갈 것 같아 3단 가방을 옆에 세워두었고 간단한 옷가지와 책들만 책상위에 얹어놓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었다.
중국인 『루』가 자주 내 방문을 노크하고는 <화장실 좀 가도 될까?>하고 묻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내 방에 붙은 화장실을 드나들었다. 첫 날은 경황이 없어 잘 몰랐는데 Michele가 들어오자 비로소 집의 구조와 내 방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 현관거실의 오른편 절반을 막아 방을 하나 만들었는데 그것이 중국인 『루』의 방이었고, 그 안으로 들어가 또 하나의 문의 열면 그것이 내 방이었으며 내방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또 하나의 문을 열면 그것이 화장실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루』의 방은 거실에 칸을 댄 것이고 내 방은 애초에 복도였던 것이다. 그래서 난 잠을 잘 때도 방문을 걸어 잠글 수가 없었다. Michele나 『루』가 친구들을 데려다가 파티라도 하는 날은 손님들이 5분에 한 번꼴로 내 방을 드나들어 난 집에 머물러 있기 어려웠다.
6. 언어학교(Universita per stranieri di Perugia)
유학비자든 사업비자든 이탈리아 거주 비자를 받으려는 사람들은 무조건 언어학교 3개월 이상의 이태리어과정을 등록해야 한다. 따라서 비자를 통해 이탈리아에 입국한 사람은 모두 이탈리아 언어학교를 다니게 된다.
페루지아 국립언어학교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언어학교로 손꼽힌다. 이 도시 자체가 역사적으로 유구하여 그 의미가 남다르고,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저렴한 생활비도 외국인들이 선호하는 이유가 된다. 또 이 학교는 많은 학생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규모가 큰데다, 등록금도 비교적 저렴하다. 그래서 매년 7, 8월이 되면 신, 구대륙 각국의 수많은 외국인들로 붐빈다. 이곳에서는 성악, 디자인, 미술을 공부하러 온 한국인 유학생들과 한국외대, 부산외대 등의 이태리어과 학생들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나는 4월부터 6월까지 언어학교에서 Primo Grado(1단계 레벨) 수업을 수강하게 되었다. 우리 반 인원은 약 40여명 이었는데 독일, 미국, 남미, 중동, 뉴질랜드, 중국, 일본, 한국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오늘에 와서 생각해 보면 이탈리아 유학생활에서 가장 꿈같았고, 즐거웠던 시간이 이 언어학교 시기였다. 나뿐 아니라 대부분의 유학생들이 이 언어학교 시기의 기억을 유학시절 최고의 추억으로 손꼽는다. 나는 오늘날도 학교에서 수업을 하면서 많은 대학생들에게 해외 어학연수를 적극 추천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