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自由
3105 왕희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복음 8:32)
벌써 곧 있으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고등학교 생활이 끝을 향해 가면서 "졸업하기 싫다"라고 말하는 친구들도 많았지만, 나에게 '졸업'은 구례고 입학 전부터 기다려 왔던 매우 중대한 이벤트이기 때문에 그 친구들에게 진심이 담긴 공감을 해줄 수 없었다. 누군가에겐 고등학교 생활이 정말 행복하고, 기다려지고,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일어날까 기대가 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었다. 중3 여름방학 시작쯤 등 떠밀려 간 학원이 시작이었을까, 거의 처음으로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묶이고 억눌린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 학원은 작은오빠가 먼저 다니기 시작한 학원이다. 휴일에도 가야 하고 거의 하루 종일 있다가 오는 조금 강압적인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물론 내 개인적인 감정과 생각이고 선생님들도 좋으신 분들이셨다. 그러나 원래도 학원을 안 좋아하고 낯선 사람이 많은 곳을 싫어하는 나에게 '예체능도 아닌 공부 학원+작은오빠 외엔 모두 낯선 사람+장시간' 조합은 정말... 솔직히 말하면 끔찍했다. 그러는 사이에 내 안에 조금씩 불안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고등학교 생활에 고민이 많던 때. 그 학원을 다니면서 '아, 나는 이제 이런 무미건조한 생활을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정말 고1 1학기, 특히 중간고사 때까지는 완전 긴장 상태로 학교를 다녔다. 앞서 말한 학원만이 원인은 아닐 것이다. 중학교까지 욕도 많이 안 하는 비교적 순수한(?) 친구들과 친근한 분위기의 학교를 다니다가 고등학교에 와서 좀 많이 거친 아이들과 수많은 수행평가, 왜 이렇게 많이 보는지도 도움이 되는지도 모르겠는 모의고사, 딱딱한 느낌을 주는 학교 등을 마주하게 되어 감당이 안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별것도 아닌 것들은 나에게 거대한 불안과 긴장감과 스트레스를 안겨주었다. 그러다 결국 2학기가 시작하고 좀 아프게 되면서 많이 힘들었었다. 정말 진지하게 자퇴를 고민했는데 그때 할걸 그랬다.라고 할 때 할걸. 그래도 후회는 하지 않는다. 아무튼 이건 학원 때문이다, 학원이 문제다 하는 그런 말도 아니고 너무 힘들고 우울하다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 모든 상황이 나에게 안 좋게 작용했고 지금까지의 내 고등학교 생활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좋은 친구들도 많고 친구들과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학교가 좋아지진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 어떻게 다녔는지도 모르겠는 고1 2학기... 당시에 항상 신경 써주시느라 고생하신 담임 선생님과 부모님께는 정말 감사드린다. 그리고 오빠, 엄마와 많은 대화 끝에 나는 2학기 중반 학원을 그만두게 된다. 얼마 만의 학교 끝나고 맛보는 자유였는지, 그때의 행복한 감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 뒤로 2학기를 마무리하고 방학 동안 열심히 쉬고 2학년을 맞이했다. 2학년은 정말 은혜로 큰 사건 사고 없이 지나간 것 같다. 방학 사이에 확고해진 진로 덕분에 원하는 동아리도 마음이 맞는 친구와 함께 만들었다. 남들이 뭐라 하든 전보다 더욱 나의 감정과 선택에 중점을 두었다. 나는 조금씩 자유를 찾아가고 있었다.
난 아직도 가끔 코로나19 시절을 되돌아보곤 한다. 많은 피해가 있었고 그때부터 시간이 멈춘 것 같다고 하는 사람도 종종 있지만 사실 나에게는 좋은 영향을 준 시절이었다. 모든 학원과 학교를 가지 않고 강제로 집에 격리되었을 때, 마치 천국 같았다. 그렇게 집에 있으면서 오히려 더 자유를 느꼈다. 그래서 코로나19는 굉장히 안타까운 사태였지만 도움이 많이 되기도 했다. 내가 다닌 중학교는 작고 화목한 가족 같은 분위기였기 때문에 새로운 일상에 적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창의적 체험을 많이 경험하게 해준 학교 덕분에 중학교 3년 동안도 난 꽤 만족하며 자유롭게 살았다.
초등학교 중학교 모두 창의 활동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고 인성을 더 중요시하는 나에게 잘 맞는 곳이어서 고등학교가 이렇게 적응하기 더 힘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과정은 나를 단련시키는 훈련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과정을 지나며 얻은 경험은 분명히 앞으로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고, 나는 내가 자퇴를 하지 않고 지금까지 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사실이 이미 이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무슨 일이 닥쳐와도 이겨내고 자유한 삶을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