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수 선생님께서 장장 15년에 걸쳐 집필,
현재 출간 준비 중인 <전라도 사람들>(총 6권)이란
책에 관한 보고서입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
“어이, 김사장! 이젠 걱정 말게. 건강은 많이 좋아졌네. 지난 여름엔 하도 몸이 안 좋고 해서 원고를 몽땅 불태워버릴 그런 생각도 잠깐 했었네만…….”
“다행이십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설혹 원고를 불태워 버리셨더라도 결국 책은 나올 겁니다. 원고 파일이 모두 저에게 있잖습니까?”
“허허, 그게 그런가?”
지난해 11월 어느 날, 안양에 있는 작은 아파트에서 책 속에 묻혀 홀로 지내시는 김정수 선생님을 만났을 때다.
선생님은 원고와 책 출간 문제로 이런저런 고민이 많으셨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불태워버릴 뻔했다는 원고는 다름 아닌, <전라도 사람들>이란 타이틀로 출간될 예정인 6권 분량의 방대한 원고를 말한다.
#2.
1930년생이시니 올해 팔순을 맞으신 은사(恩師) 김정수 선생님.
30여 년 전,
금호고에 다녔던 우리 3회 가운데 ‘영원한 시어머니’이자 빠른 걸음걸이에 매사 열정 넘치셨던, 당시 40대 후반의 김정수 교감선생님을 기억하지 못할 동기생은 없을 것이다. 선생님은 이후 중앙여중고 교장, 금호고 교장 등을 역임하신 후, 1995년 모교 금호고에서 정년퇴임을 맞으신다.
놀랍게도 나이 18살 때부터 시작하셨다는 교직, 이후 선생님은 장장 47년 동안 장성중, 목포고, 순천여고, 광주일고, 금호고 등, 오로지 전라남도 지역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며 보내신다. 그야말로 교단(校壇)에서 한 평생을 살아오신 분이었다.
그러나 선생님의 새로운 삶은 이때부터 다시 시작된다.
정년퇴직 후 노년의 한가로운 여유를 즐기는 대신, 새롭고 방대한 작업에 착수하신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에 등장하는 전라도 출신 인물들에 대한 탐구와 집대성이 바로 그것이었다.
“퇴직 후에 무엇을 하며 지낼 것인가, 그런 고민을 했었지. 그때 생각한 것이 역사 속에 묻힌 전라도 인물들에 대한 탐구였네. 그런데 막상 그런 인물들을 찾아내고 자료를 모아 정리하는 작업은 정말 보통일이 아니었다네.”
자녀들이 살던 과천 부근에 따로 작은 거처를 마련하신 선생님은
국립중앙도서관, 국회도서관, 규장각 등지를 터전 삼아, 1,000년 전 우리 역사의 숲속을 샅샅이 탐사하신다. 관련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한편, 동양고전과 한문 공부도 더욱 깊게 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 숱한 자료를 뒤적인 지 5년여…….
마침내 선생님은 1차로 원고지 3,000장 분량으로 문신, 무신, 학자 등 총 99명에 달하는 고려시대 전라도 출신 인물들의 평전을 집대성하신다.
선생님은 왜 이런 주제에 관심을 가지셨을까.
“고려 태조의 <훈요십조>의 허구성, 그리고 10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부정적으로 남아있는 전라도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불식시키고, 우리나라 역사에서 소홀히 취급된 전라도의 의맥(義脈)을 철저히 되짚어내고자 했던 것이지. 내가 바로 그 분들의 후손이기에, 그리고 전라도 사람으로서 반드시 그 일을 해내고 싶었다네.”
#3.
그동안 선생님을 곁에서 지켜본 나의 외람된 판단이지만, 사실 이 작업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런 일이 아니었다.
역사 속 인물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치밀한 조사가 수반되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한 그런 일이었다. 더욱이 대부분의 인물들이 천 년 전 이 땅에 살았던 분들이었기에 관련 자료가 충분치 못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을 갖고 계셨다.
그리고 전라도 인물들의 면면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숱한 사료(史料)의 오류, 기록의 누락과 착오 등을 새롭게 밝혀냈으며, 문중(門中)을 찾아가 관련 자료를 입수하고, 묘지(墓誌) 및 문집을 다시 해석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1,000년 전 고려시대를 살았던 전라도 인물 99명의 생애와 사상을 총 망라하신 셈이다. 역사책에 한 줄 정도로 소개되거나 혹은 아예 누락된, 그러나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인물들을 재발굴, 그들의 삶을 새롭게 조명하는 발판을 마련하신 것이었다.
#4.
우리가 지금 무심코 사용하고 있는 본관(本貫)이란 용어가 있다.
김해김씨, 전주이씨, 밀양박씨 같은…….
선생님은 <전라도 사람들>(-고려시대 편)에서 그동안 해당 문중에서만 전설처럼 전해져오는, 전라도 땅에 본관을 갖고 있는 각 성씨 시조(始祖)들의 생애와 면면을 역사적 사실에 입각해 명확히 정리하셨다.
예를 들어, 순천朴씨, 전주柳씨, 전주崔씨, 반남朴씨, 영광金씨, 광산金씨, 광양金씨, 흥덕張씨, 익산李씨, 부안金씨, 옥구林씨, 정안任씨, 장흥魏씨, 무송庾씨, 무송尹씨, 담양田씨, 남평文씨, 옥천趙씨, 김제趙씨, 순창薛씨, 고창吳씨, 옥구高씨, 여산宋씨 등등…….
본관이란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고려시대 때부터였다고 한다.
그렇다고 충신이나 명장(名將)등, 역사에 훌륭한 업적을 남긴 전라도 사람들만 선별해 정리한 것도 아니었다. 전라도 출신의 충신과 폐신(嬖臣), 혹은 당시 시대 상황에 따라 영욕이 부침한 정치가, 관료, 장군, 학자들의 행적을 사실(史實) 그대로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이다.
즉, 전라도 땅에 터전을 두고, 이른바 가문(家門)을 일궈낸 인물들의 면면을 재정리한 것인데,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하지 않았던, 아니 너무 복잡하고 자료가 터무니없이 부족해 어느 누구도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그런 놀라운 일을, 선생님께서 이뤄내신 것이었다.
#5.
9년 전인 2000년 7월,
선생님의 첫 번째 노작(勞作)은 <전라도 사람들-고려시대>란 제목을 달고 마침내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 총 2권으로, 영광스럽게도 내가 운영하는 장문산 출판사에서 출간했다.
이 책은 단순히 한 개인의 저작물이라기보다, 1000년 전 전라도 인물들에 대한 평전이자 그의 후손들에 대한 방대한 기록물 성격이었던 탓에, 선생님과 나는 그해 9월 쯤 출판기념회를 열어볼 그런 계획을 세웠다.
이 무렵, 금호고 동문들을 위시해 광주 일고 출신 제자들, 관련 문중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드러냈다.
그러나 출판기념회 준비과정에서 선생님께 뜻밖의 일이 터졌다. 그해 8월 중순 경, 당시 나이 40대 초반으로 여수에서 의사로 일하던 선생님의 막내아드님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는 참척(慘慽)의 아픔을 당하신 것이었다.
“김사장, 이 상황에서 도저히 출판기념회는 못하겠네. 자네가 이해를 좀 해야겠네.”
“선생님, 심려치 마십시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2000년 8월 어느 날 밤,
선생님의 연락을 받고 여수로 내려간 나는 아드님 영안실이 차려진 빈소가 아닌, 그 병원 입원실에서 하얗게 탈진해 누워계시는 선생님을 뵈었다.
선생님은 희미한 전등불 아래서 아들을 잃은 황망함에 앞서 제자이자 출판업자인 나에게 먼저 미안해하셨다. 출판기념회를 통해 책을 어느 정도 소화해야만 나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여기셨던 탓이리라.
#6.
출간 당시, 몇몇 동문들과 모교인 금호고에서 <전라도 사람들>을 구입해주기도 했었지만, 서점 판매는 그리 활발치 못했다.
이 문제로 선생님께선 나에게 늘 미안해하셨다. 나 역시 그런 책을 내가 만들어냈다는 자부심을 느끼는 선에서 만족해야 했다. 그런데, 김정수 선생님에 대한 나의 존경심은 그때부터 다시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2년쯤 지난 어느 날,
아들 앞세운 슬픔을 딛고 일어선 70대 중반의 선생님은 애당초 당신이 세우셨던 목표에 따라, 고려시대에 이어 2차로 조선시대에 혁혁한 업적을 남겼던 전라도 인물들에 대한 정리에 들어가시겠다는 계획을 나에게 전해오신 것이었다.
“이 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지낼까 싶네. 그리고 이왕 벌여놓은 일이니 건강이 허락하는 한, 능력이 닿는 한 어떻게든 마무리를 지어야 하지 않겠는가?”
“선생님, 감사합니다.”
책은 일단 만들어놓으면 세세생생 이어지는 역사적 기록으로 남는다.
그리고 내가 그때 선생님께 감사하다는 표현을 쓴 것은,
그런 책을 열정을 갖고 쓸 수 있는 사람이 오로지 선생님 밖에 없다는 그런 절박함 때문이었다.
#7.
그날부터, 그러니까 2000년 <전라도사람들>-(고려시대 편) 출간이후 9년여 세월이 물처럼 흘러갔고, 마침내 선생님은 조선시대를 살았던 전라도 인물 8명의 생애를 천착한 장장 4,000매 분량의 원고 집필을 마치신다. 350쪽의 책으로 3권 분량에 달했다.
최부, 박상, 이희맹, 최산두, 양팽손, 안처순, 안서순, 그리고 김인후…….
솔직히 나에겐 사뭇 생소한 이름들이었다. 그러나 역사 속 조상들과 먼저 만나보셨던 선생님의 그분들에 대한 애정과 감동은, 나의 이런 무지(無知) 정도는 훌쩍 건너뛰신다.
“정말 훌륭하신 분들이네. 그런 의기(義氣) 넘치는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전라도 인물이었다는 점에 그 분들의 자료를 정리하는 동안 나 역시 내내 감사하는 마음이었다네……. 우리는 조선시대 유학자 가운데 경상도 출신의 퇴계(이황)나 율곡(이이)을 높이 평가하지만, 그것은 통일신라의 학맥이 고려조에 그대로 이어진 탓이 컸고……. 음, 북한에서는 조선시대 유학(儒學)의 3대 최고봉을 꼽을 때 전라도 출신의 거유(巨儒) 하서(김인후)를 제 1로 치고 있는데…….”
#8.
현재 <전라도사람들>이란 책은 총 6권으로 편집중이다.
2000년 출간했던 고려시대 편이 활자가 너무 작고 450쪽으로 너무 두껍다는 일부 독자들의 지적을 받아들여, 관련 사진 등을 함께 편집하고 출간 이후 새롭게 밝혀진 내용들을 보완해, 다시 3권으로 만들 예정이다.
여기에 새롭게 저술한 조선시대 편 3권 등, 총 6권이 그것이다.
#9.
선생님의 그간의 노력을 생각할 때, 가슴 벅차는 일이었지만 이때 선생님과 나는 새로운 국면에 봉착한다. 책의 성격상 아무래도 판매량이 한정될 수밖에 없는데다, 작금의 극심한 경기불황 탓에 6권을 한꺼번에 출판하는데 따른 막대한 제작비용이 출간에 앞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로 등장한 것이었다.
어림잡아 권당 1,000부씩 총 6,000부만 제작한다 하더라도, 대략 3,500~4,000여만 원의 실(實)제작비가 소요되는 이 문제는, 비단 출판사 대표인 나의 고민거리만은 아니었다. 선생님 역시 난감해하셨다.
“어이, 자네가 이 책을 출판해 행여 경제적 손해를 보면 안 되네!”
앞서 출판했던 <전라도 사람들> 2권의 경우엔 내가 독자적으로 출판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출판시장 상황도 그렇고 해서 나 역시 쉽게 덤벼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 더욱이 선생님의 성격에 설혹 내가 독자적으로 출판한다고 하더라도, 판매 결과를 염려하신 나머지 반대하실 것이 너무도 뻔했고, 실제로 그렇게 말씀하시고 계셨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뭇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지난해, 원고 수정 틈틈이 선생님은 여기저기 출판 후 책의 판로를 알아보시는 것 같았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과 관련해 해당 문중에 책 구입 여부를 문의하시기도 하고, 출판 관련 단체에 제작지원 가능성 여부를 타진하시기도 하셨다. 그러나 출판기념회를 통해 제자들에게 일정량의 책을 판매하는 대목에 이르러선 말씀을 아예 아끼셨다.
“내가 책을 만들어 무슨 이득을 얻자는 것도 아닌데,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네. 제자들에게 책을 파는 문제는 좀 더 생각해봐야겠네.”
지난 10년 세월, 선생님을 곁에서 뵈어온 나는 정말 송구스러웠다.
남들에게 그런 아쉬운 소리를 하실 성격도 아니셨고, 더욱이 <전라도 사람들>이 굳이 그런 전략을 세우면서까지 힘겹게 출판을 해야 할 성격의 책이 아니란 판단 때문이었다.
#10.
출판 여부는 차후 논하기로 하고,
지난해 가을부터 일단 완성된 원고의 편집 작업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2월 말, 선생님으로부터 1차 교정을 마친 교정지를 넘겨받기로 약속한 며칠 전이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나는 번뜩 한 가지 방안을 떠올린다.
선생님의 15년에 걸친 노작(勞作)이자 역작(力作)을, 선생님의 오랜 노력과 향토애에 대한 은공을 기리는 취지로 우리 금호고 총동문회 이름으로 출간해드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그것이었다.
제자들이 힘을 모아 스승의 저작물을 헌정(獻呈)하는 방식, 일단 대외적으로 모양새는 좋을 것 같았다.
‘금호고 동문들 대단하네, 스승의 책도 출판해드리고…….’
단지 세인들로부터 이런 칭송을 듣고자 하는 것만은 물론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 책의 성격이 그랬다. 개인적인 저술이 아니라, 사실 전라도 사람 전체를 위한 책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또다른 문제도 있었다. 금호동문회에서 출간을 주관할 경우, 내가 독자적으로 이 책을 출판하는데 따른 오해의 소지도 미리 없앨 수 있다고 생각했다.
즉, 출판기념회 개최는 이 책의 성격상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향후 출판기념회를 열게 될 것이고, 그 행사장에는 광주일고 등, 다른 학교 출신 선생님의 제자들도 많이 참석할 것이다. 예를 들어 민주당의 이낙연 의원 같은 분은 아직도 선생님의 열렬한 애제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출판기념회 행사는, 선생님의 교단 이력과 금호고에 대한 애정을 감안할 때 마땅히 금호고 동문들이 주축이 되어야 할 것이다. 또 판매량이 얼마가 되던 간에 우리 동문들은 일정량의 책을 사게 될 것이다.
이때 한 가지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책을 출판하고 판매하는 사람이 ‘금호3회 제자’라는 점이다. 앞서 서술한 바의 출판 과정을 알게 되면 그럴 사람이야 없겠지만, 만에 하나 ‘저 놈이 혹시 선생님을 등에 업고 책장사를?’ 그런 의혹도 생길 법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우리 금호고 총동문회가 이 문제를 주관해 선생님의 책을 제작할 경우, 이런 의혹을 깨끗이 불식시킬 수 있으며, 광주지역 사회와 대외적으로 금호고 동문들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것은 물론, 선생님이 가장 염려하시는 ‘제자들을 대상으로 한 책 판매’ 문제 역시 한꺼번에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즉, 나는 어쩌면 이 방법이야말로 현재로선 <전라도 사람들> 출간과 관련, 선생님과 우리 금호고동문회가 명분과 실리를 얻어내는 가장 바람직한 이른바 윈윈(Win-win)의 해결책일 것으로 생각한 것이었다.
#11.
지난 2월 18일 오후,
나는 일단 재경총동문회 박홍용 회장, 김상훈 동기회장 등을 만나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을 개진했다. 예상했던 대로 다들 흔쾌한 반응이었지만, 최종적인 판단은 재경동문회 및 총동문회 회장단에서 결정할 문제였기에, 일단 안건을 상정해보기로 했다.
나는 이왕이면 올해 5월 ‘스승의 날’ 즈음해 출판기념회를 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덧붙였고, 며칠 후 선생님을 만나 뵈었을 때, 이런 식으로 출판문제를 검토 중이라고 말씀드렸다.
“잘 알겠네. 정말 고마운 일이네. 하지만 동문이나 제자들에게 책 구입 문제로 부담을 줘서는 절대 안 되네…….”
짐작했던 바, 선생님은 내 나름의 묘안에 대한 공감보다, 제자들에게 행여 누를 끼칠까 하는 걱정부터 앞세우셨다.
#12.
내가 현재 생각하고 있는 해법은 이렇다.
-. 선생님의 <전라도 사람들> 제작에 동문들이 두루 참여한다. 표지 및 편집 디자인은 이미 90%이상 마친 상태이기에 내가 마무리를 짓고, 도서의 인쇄 및 제본, 용지 공급 등은 예상 제작비 범위 내에서 이왕이면 관련업계에 종사하는 동문이 맡는다.
-. 책의 판권이나 첫 페이지에 ‘이 책은 스승의 은혜와 노고를 기리기 위해, 제자들인 금호고등학교 총동문회에서 발간해 삼가 헌정한다.’고 명시하는 멋들어진 헌정사를 삽입한다.
-. 총동문회가 주관해 출판기념회용 책을 1,000질(총 6천권) 정도 발행한다(최소 예상 부수). 이때 소요되는 순수 제작비는 대략 3,500~4,000만 원 선으로 추산된다.
-. 책은 각권 350쪽 내외로 정가는 권당 15,000원 정도가 무난한데, 총 6권이니 정가는 대략 9만 원. 구체적인 동문 판매가는 총동문회에서 결정할 사항이지만, 30%쯤 할인할 경우, 최소 1,000질 전부를 소화할 수 있다면, 출판기념회 비용과 제작비 등을 충분히 충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경우에 따라선 출판기념회 결과, 어느 정도 수익이 생길 수도 있는데, 그럴 경우 선생님께 소정의 저작료도 드릴 수 있을 것이고, 나머지 금액은 동문회 수익으로 잡을 수도 있을 것 같다.
-. 그리고 출판기념회 이후,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이 책의 서점 판매 문제는 선생님과 출판계약을 통해, 향후 출판사에서 독자적으로 시행한다는 것 등이다.
#13.
문제는 출판기념회에서 소비해야 할 1,000질(총 6,000부) 판매에 달려있다.
하지만 이 문제 역시, 동문들의 각별한 관심과 애정이 있다면 아무리 작금의 경제상황이 어렵다 하더라도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닐 것으로 여긴다.
오롯이 금호고만 하더라도 한 해 600여명의 제자들이 지난 30여 년 간 배출되었으니, 김정수 선생님을 직간접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제자들은, 어림잡아 대략 18,000여명에 달하는 셈이다.
“아이고, 선생님은 왜 그런 책을 써서 괜히 사람 피곤하게~”
물론 농담이겠지만, 만약 이런 생각을 가진 동문이 있다면, 지난 10여 년 간 선생님께서 보내신 남다른 세월을 곁에서 지켜본 나는 이렇게 말할 것 같다.
“행여 농담이라도 그런 말은 하지 말라. 선생님은 제자들에게 책을 팔기 위해 그 책을 쓰신 것이 아니다. 선생님은 어느 누구도 감히 엄두조차 내지 못할…….”
목이 멘다.
팔순에 이른 고령임에도 불구하시고, 일일이 한자 한자 펜으로 적어가며 정리하신 원고지 8천매를 훌쩍 넘긴 방대한 저술…….
그리고 내용 중 어느 한 대목을 쓰기 위해 안경을 고쳐 쓰시며 얼마나 많은 책을 뒤적이셨을 것이고, 밤늦도록 파리한 형광등 불빛 아래서 여기저기 흩어진 관련 자료를 찾아 읽으셨을까……. 한번쯤 생각해보라.
더욱이 <전라도 사람들>이란 책은 작가의 상상력과 허구에 기초한 소설이 아니다. 모든 내용이 철저하게 역사적 사실과 사료에 기초해 정리된 것들이다. 설혹 펜 가는 대로 쓰는 소설도 6권을 집필하는 일은,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는 작가에게도 벅찬 일이다. 하물며 팔순 고령의 선생님의 경우에 이르러서야…….
그러니 동문들이여,
선생님의 아름다운 열정과 오늘의 성취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시라.
덧붙여 전라도에 대한 애정과 혼신의 열정이 알알이 담긴 그 엄청난 내용의 원고를 누구보다 먼저 읽었던 나는, 이제 그동안 마음속에 감춰두었던 한 가지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놀랍고 감탄할 수밖에 없다. 내 삶에서 만난 어느 스승인들 소중하지 않은 분이 있을까싶지만, 김정수 선생님을 만난 것은 다른 어느 스승에 비길 데 없는 개인적인 영광이다. 더욱이 삭막했던 학창시절이 아닌, 40대 초반 다시 만나 뵌 선생님의 삶을 통해 나는 인생살이의 의미와 인간이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배울 수 있었다. 선생님과의 시절인연에 머리 숙여 감사할 뿐이다.’
.........................................................................................................
첨언:
거듭 강조하건대, 이 책 출간은 은사(恩師) 김정수 선생님의 개인적 광영(光榮)만은 아니다. 전라도 사람들이란 숙명을 안고 태어난 우리 모두를 위해, 오로지 선생님만이 해낼 수 있는 그런 업적을 이루심에 우리 모두 축하를 드려야 할 것이다.
선생님의 저서 출간과 관련,
더욱 좋은 의견이 있으면 나의 메일(poolip@dreamwiz.com)로 연락주시기 바란다. 금호고총동문회에 건의해 최대한 반영되도록 할 것이다. 아울러 편집자로서 멋진 장정의 책으로 동문들의 관심에 보답할 것도 약속드린다.
동문, 동기들의 각별한 애정과 관심을 부탁드린다.
2009 3월 16일 도서출판 장문산 대표 김승기(3회) 전화: 031-913-4883(출판사) 메일: poolip@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