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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모나리자" 극찬 받은 작품? 시대별로 변한 한국 ‘미인상’에 담긴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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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3. 09:4882,620
·「자인 姿人-한국 근·현대 미인도」 2018. 10. 26~11. 26 청양문화예술회관
이당 김은호, 춘향초상, 비단에 채색, 133 x 52.5 cm, 1960년대
1930년대 '조선의 모나리자'라고 불린 그림이 있습니다. 이당 김은호(1892~1979)가 1939년에 그린 '춘향도'입니다. 김은호는 조선 왕의 어진을 그린 마지막 화가이지만 대표적 친일화가입니다. '춘향도'가 처음 발표됐을 때 신문에는 "미술조선이 그린 최초의 이상적인 조선여성" "조선의 모나리자라 할만큼 아름답고 신비한 걸작" 등의 극찬이 실렸습니다.
하지만 작품을 자세히 보면 이 여성이 조선시대를 상징하는 '미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대중이 원하던, 또는 화가가 의뢰인에게 요구받았던 '미인상'이었죠. 이 작품을 주문한 사람은 일본인 은행가들의 의뢰를 받은 현준호 호남은행장이었습니다. 춘향전을 엮은 연극이 일본어로 제작될 정도로 '춘향' 이야기는 일본인에게도 인기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남원의 지역축제 '춘향제'는 1931년 일제 문화통치기에 시작됐죠. 일제는 '춘향전'과 같은 고적을 보존해 식민지 백성을 교화시키고 황제에 대한 충성심을 심으려 했습니다. 물론 우리의 것을 지키려는 조선인들의 의지도 '춘향제'의 명맥이 유지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춘향'의 인기를 단순하게만 바라볼 수는 없습니다. 김은호가 그린 '춘향도'만 봐도 다양한 사회적 요구가 숨어있습니다. 춘향은 당시 자유연애와 성 해방을 부르짖는 신여성의 반대편에 서서 정조를 지키는 가부장제도의 상징으로도 여겨졌습니다. 김은호는 '춘향도'를 의뢰받자 고고학자·조각가·문화사학자에게 자문해 고증을 거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때 고증위원회에서 나온 춘향의 이미지는 깨끗하고 순결한 처녀, 색시, 열녀, 서 있는 미인 등이었다고 합니다. 1
김은호는 기생 김명애를 모델 삼아 미인도를 그렸습니다. 복식 또한 영조시대가 아닌, 근대기에 유통되던 복식에 300년 전 저고리 모양과 150년 치마 용문양을 입힌 것이라는데요. 은은하게 웃는 듯하지만 시선과 입꼬리는 유순하게 표현됐습니다. 다소 고집이 있어보이는 김명애의 사진과는 다른 느낌을 자아냅니다. 김은호는 일본식 미인화로부터 영향을 받아 이 작품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현재 전해지는 '미인도'는 한국전쟁 때 소실된 1939년 작품을 김은호가 그대로 1960년에 다시 그린 것입니다.
춘향도는 남원 춘향사에 봉헌됐는데요.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김은호의 친일행적이 알려졌고, 2005년 시민단체들은 친일화가 김은호가 그린 작품들을 철거해달라고 관련 지자체에 요구했습니다. 결국 김은호가 그린 또다른 미인도인 '논개(논개영정)'는 진주성 의기사에서 철거됐는데요. 이후 공모를 통해 충남대 윤여환 교수가 새로 그린 논개 그림이 표준영정으로 채택됐습니다. 김은호는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됐습니다.
(위) 김은호가 그린 논개 영정 (아래) 2008년 논개 표준영정으로 채택된 충남대 윤여환 교수의 그림 |경향DB
이렇듯 '미인도'에는 그 시대의 다양한 사회상이 숨어있습니다. 한국의 미인도는 어떻게 변하고 발전해왔을까요.
한국 근현대 미인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습니다. 코리아나미술관의 ‘미인도’ 소장품 기획전 《자인 姿人 - 한국 근·현대 미인도》가 11월 26일까지 청양문화예술회관에서 개최됩니다.
2003년 개관한 코리아나미술관은 15년 간 화장문화와 꾸밈, 여성, 신체 등에 관심을 가지고 50여 차례의 기획전을 개최했습니다. 특히 미인도를 비롯한 다양한 작품을 다수 소장하고 있는데요. 코리아나미술관의 미인도 컬렉션은 김은호, 김기창, 장우성, 장운상의 작품부터 권옥연, 박항률, 최영림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의 한국 여성 이미지를 아우릅니다. 미인도 소장품은 2004년에 개최한 《자인 姿人》展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꾸준히 대중에게 선보이고 있는데요. 청양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미술관이 소장한 150여 점의 미인도 중 50 여 점을 엄선해 전시합니다.
미인도(美人圖)는 여인의 기품 있고 수려한 용모를 화제(畵題)로 담아낸 그림을 지칭합니다. 여인화(女人畵) 또는 미인화(美人畵)로도 불리는데요. 전시 제목 “자인 姿人”은 ‘맵시 자(姿)’와 ‘사람 인(人)’을 사용해 ‘기품 있고 맵시 있는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뜻을 함축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근현대 작가들이 그린 미인도를 통해 문화적 차이에 따라 달라진 작품들의 시대상은 물론 그림 속에 표현된 우아하고 품위 넘치는 여성의 이미지와 생활상을 보여줍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미인도는 193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20세기 전반을 아우르는 작품입니다. 미인도를 소재로 한 다양한 작가들의 화풍을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습니다. 또 한국화의 기법과 서양에서 유입된 유화의 기법을 비교하며, 20세기 초반 유화라는 매체를 어떻게 우리나라의 화풍과 접목하여 작품세계에 반영했는지 분석해 볼 수 있습니다.
전시 전경
■전시 구성
(1) 근·현대 한국화 미인도
한국 인물화의 근대화에 앞장섰던 이당 김은호의 미인도와 더불어 그의 제자였던 월전 장우성, 운보 김기창, 목불 장운상 등으로 이어지는 미인도의 전통과 역사를 훑어볼 수 있습니다. 전통을 계승하는 가운데 인물화 표현의 기법을 각자 재해석 및 변용하여 발전시킨 대가들의 특징을 볼 수 있으며, 이와 함께 한국 근대 인물채색화 속에 담긴 여인들의 고전적 아름다움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2) 근·현대 서양화 미인도
서구의 미술이 국내에 유입되면서, 다양한 표현방식과 정신을 받아들여 자기만의 색깔로 수용하고자 했던 근·현대 서양화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동양화와 서양화의 기법과 재료, 화법 등은 물론 동시대를 살아가며 서로 다른 회화적 매체에서 비롯된 작가들의 다양한 면모를 비교할 수 있는데, 근·현대의 대표적 서양화가 최영림, 권옥연, 천경자, 박영선 등의 작품에서는 추상화 기법 등 보다 현대적인 감각이 돋보입니다.
■주요 작품
운보 김기창 雲甫 金基昶 (1913 - 2001)
운보 김기창, 미인도, 비단에 채색, 57 x 50 cm, 1977
목불 장운상 木佛 張雲祥 (1926 - 1982)
목불 장운상, 미인도, 종이에 채색, 56.5 x 38 cm
이당 김은호 계열의 신감각주의를 이어받아 누구보다도 앞 세대와의 관련이 뚜렷한 한국화 작가이다. 서울대 미대 재학시절부터 스승 월전 장우성(1912-2005) 의 지도 아래 인물화의 세계를 꾸준히 구축하였고, 미인도에 있어서 한국 화단을 대표한다. 그의 미인도는 고운 필선과 밝은 색채를 특징으로 하며 철저한 묘사를 바탕으로 한다. 현대 화단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미인화 전문화가로 활동하며 미인화의 현대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장운상의 그림들은 한복을 입은 고전적인 이미지의 여인들로 여인들로 구성된 미인화의 전통적인 구도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지만, 때로는 여성들의 이미지를 색채의 추상적인 구상으로 아주 단순한 형태로 표현하기도 하였고, 과감한 누드 미인화까지도 그려내 다른 작가들의 작가들의 미인화에서 느낄 수 없는 장운상 특유의 양식적 특성들을 완성시켰다.
월전 장우성 月田 張遇聖 (1912 - 2005)
월전 장우성, 미인도, 비단에 채색, 59 x 48 cm, 1930년대
이당 김은호의 문하생으로 출발하여 현대 한국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간 월전 장우성은 초기부터 인물 중심의 작품들을 끊임없이 제작하였다. 특히 1945년을 전후하여 스승 김은호의 영향 아래 먹의 농담을 이용한 문인화의 수묵담채 기법을 도입한 설채법으로 전환하여 ‘문인화 정신에 입각한 인물화’라는 새로운 전통을 세웠다. <미인도>는 장우성의 이러한 인물화풍이 그대로 적용된 작품으로, 단아하고 고전적인 여성미를 표상하며 여성의 모습에 담긴 관념을 그려내고자 하였다.
근·현대 서양화 미인도
김인승 (1910 - 2001)
김인승, 소녀, 65 x 50 cm, 캔버스에 유채, 1966
박영선 (1910 - 1994)
박영선, 독서 부인, 53 x 45.5 cm, 캔버스에 유채, 1970년대
천경자 (1924 - 2015)
천경자, 꽃은 단 여인, 판화, 56 x 37.5 cm, 2006
김형근 (1930 - )
김형근, 여인, 캔버스에 유채, 40 x 31 cm, 1984
권옥연 (1923 - 2011)
권옥연, 모자를 쓴 여인, 캔버스에 유채, 34 x 26 cm
최영림 (1916 - 1985)
최영림, 누드, 나무에 유채, 23.8 x 22 cm
박항률 (1950 - )
박항률, 소녀, 캔버스에 유채, 72.5 x 60.5 cm, 2005
올댓아트 이윤정
allthat_art@naver.com
사진·자료|코리아나미술관, 경향신문DB, 한국근현대미술사학
인용문 출처
1. 한국근현대미술사학9, 2001.12(김은호의 〈춘향상〉읽기 : 이상화된 한국적 여성이미지의 생산과 소비과정, 권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