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후기 (2019.5.17.)
오늘은 한국수필작가회의 행사가 있는 날이라 수업 참관 회원수가 부쩍 줄었다. 그만큼 협회 활동에 적극적인 모습이 바람직하여 보인다. 수업 시작 전에 지도강사님께서 우리나라 수필가 원로들의 사진과 경력을 소개해 주신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공헌하신분들에 대한 작품과 당시 상황의 요약이다. 향후 이러한 원로들과의 만남도 글쓰기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강조하신다.
이어서 글감 찾기 중에 하나로 지방 명소인 "강진"에 대해서도 소개가 있었다. 호남의 3대 민간정원인 "백운동 별서정원"이 강진에 있는데 다원과 함께 있어 방문을 강추하신다. 별서정원에서 가까운 곳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무위사"도 좋단다. 다른 정원은 담양에 소세원, 보길도에 세연정이 있단다. 한편, 김영랑과 정약용 선생의 초당 등이 있단다. 다른 지역으로 울릉도 소개와 함께 잔잔한 바다라는 뜻의 마당바다도 보았는데 동해의 깊은바다는 높은 파도가 연상되는데 감이 잘 오지 않는다. 다시 한번 가 보는 것이 좋겠다.
오늘의 글에 대한 어휘 구사력과 적절한 단어 선택의 연습은 외자 단어들을 3분간 40개 이상 쓰는 정도가 되어야 한다고 하시며 시간을 주었는데, 50 단어 이상 쓴 회원도 있었다.
오늘에 합평은 박관식 회원의 "노년의 영원한 삶" 작품이었다. 주제나 글감에서 쉽지 않은 선택으로 유사한 "유서"에 대한 일반론에 대해서 언급이 있었다. 합평에 대한 주요 지적 사항은 (1) 중복 단어 또는 토씨에 대해서 습관적인 부분의 고침, (2) 내용 중에 의지로 안되는 것을 단정지어버리는 부분의 고침, (3) 설명적인 토씨인 ""서"의 가급적 회피, (4) 단어의 선택에서 한자+한글 등을 한자 또는 한글로 통일한 단어 선택(예로 차닉--->냉기), (5) 내용을 조금만 다른 각도로 접근하여 희망적 또는 소확행으로 방향 (6) 글에서 묘사의 글 삽입
심운 2019.5.17. 금
추신 : 다음 주 금요일(24알) 수업은 야회수업으로 별도 카톡으로 공지 나갈 것임.
유첨 : 합평글의 수정분
노년의 기쁨
박관식
kwansyk@hanmail.net
겨울이라
밤이 일찍 찾아와 숲속 병원은 더욱 적막에 싸인다. 형광등 불빛마저도 냉기를 전한다. 의사보다 더 많이 아는 듯 시끄럽게
조잘거리던 간병인들도 보이지 않는다. 인공호흡기는 계속 돌아가나 그래프 수치는 떨어져가고 있다. 아무래도 예감이 좋지 않아
의사를 부르니 시계를 보더니만 부친의 사망선고를 하고는 휑하니 나가버린다. 치료할 때의 열정은 전혀 보이지 않는 모습에 함께
냉정해진다. 그래프는 수치를 보여주며 기계도 계속 작동한다. 화풀이하듯 인공호흡기를 끈다. 불행하게도 현대 문명의 기계는
정확한 운명 시간을 알 수가 없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 모호해진다.
촉광례觸纊禮는 부드러운 솜을 왕의 코에 대고 숨이 끊어졌는지를 확인하는 절차이다. 내시가 왕이 평상시 입었던 옷을 왼쪽에 메고 동쪽 지붕 위에 올라가서 북쪽을 향해서 ‘상위 복上位復’ 세 번을 목놓아 외치고 옷을 던진 후에 서쪽으로 내려온다. 아래에서 내시가 던져진 옷을 받아 왕에게 덮는다. 신체의 혼문魂門을 통해 나간 혼이 다시 돌아오라고 기원하는 제례이다. 왕의 장례는 국조오례의 흉례凶禮 규정에 따라 엄격하게 거행된다. 능은 단릉, 쌍릉, 합장릉, 동원이강릉, 동원상하릉으로 구분된다. 금천교를 지나 홍살문에서 혼은 참도參道의 향로香路를 지나 정자각에서 다시 향로로 언덕을 올라 능 앞의 혼유석 밑으로 내려가서 능 안으로 들어간다. 제사를 지낼 때 혼은 혼유석에 나와 세상 구경을 한다.
사람에게
정말 혼이 있다면 유체이탈 후에 머물 곳이 있을까. 현대식 장례식장은 국화꽃으로 가득한 위 제단 가운데 영정사진을 놓고 그 앞
낮은 제단에 향로를 놓고 향을 피운다. 혼을 위로한다. 문상을 가서 타인의 영정 사진을 보다 내 사진으로 바꿔도 본다. 내 혼이
나와서 잠시 영정 사진에 머문다면 조문객들을 내려다보며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조문할까 궁금해진다. 살아있기 때문에 갖는
의문이다.
시체는 50일 정도면 냉각 분해 팽창 및 부패하여 소멸되는데 이때까지 혼이 육신에 머문다고 본다. 천주교나 불교의 오순절五旬節이나 49재四十九齋
기간이다. 그 후 2주 정도면 건조되어 백골만 남게 된다. 이때에도 혼이 떠나지 않을 수도 있다. 명당자리를 찾는 이유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묘지 밑에서 다른 묘가 발견되는 것을 보면 묏자리도 분명 좋은 자리가 있는 것 같다. 묘의 크기와 위엄 있는
장식은 죽은 자의 생각보다는 산 자의 일이자 욕심이다.
실크로드의 투르판吐魯蕃 주변의
모슬렘 묘는 작고 소박한 흙무덤이 장관이었다. 중국 카슈가르,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나 부하라 등의 주요 사원 건물 안에
석관으로 밀집되어 모셔져 있다. 석관이 좁고 크기가 다르다. 이슬람식은 수직으로 묻는데 왕은 3m 일반인은 1m 깊이로 판다.
인도의 타지마할 묘지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리석 묘지이다. 지진을 대비하여 사방에 네 개의 촛대 타워가 바깥쪽으로 기울게
건설되었다. 중앙의 위는 가묘이고 실제 묘는 지하에 있다. 왕비의 묘지이기에 왕의 관은 중앙이 아닌 왕비 묘 옆에 있다. 천주교는
성당 주변이나 지하에도 석관이나 묘비로 모신다. 중남미 스페인 식민지 국가들은 어디를 가나 마을 어귀에 석재 묘지 단지가
조성되어 반겼다. 러시아는 평등의 원칙으로 생전의 직위와 관계없이 작은 석재 묘지로 전문분야의 조각을 세워 고인을 추모하고
있었다. 불교에서는 화장하여 강 등 자연으로 돌려보낸다. 동남아 국가들은 목재로 장식된 묘지 단지가 논 가운데 조성되어있었다.
미얀마 버건 몇 천기의 죽은 자 탑 영역은 대단한 장관이었다. 크고 작은 탑이 지위에 따라서 마련된 대형 단지였다. 일본 시골에
사는 친구와 함께 그의 부인 묘지를 다녀온 적이 있다. 석실에서 상판을 들어내고 작은 항아리를 꺼내어 정성스럽게 닦고 다시 넣는
모습이 아련했다. 나이지리아의 시골에서는 동굴 속에 안내되어 들어가 보니 백골이 난무하였다. 여수 자라섬인 금오도金鰲島에서 본 풍장과 비슷한 장례 형태였다. 예루살렘의 이슬람 바위 성전 옆이 동쪽 성벽이었다. 감람산橄欖山
위까지 두 부류의 묘비들이 즐비하였다. 하나는 기독교인 묘지이고 또 하나는 모슬렘 묘지였다. 이슬람에서는 성전에 가까울수록
천당에 가기 쉽다고 한다. 감람산에서 성전까지 거미줄이 한 가닥 있는데 혼이 나와 이 줄을 타고 바위 성전 안에 들어가야 하는데
멀면 떨어질 확률이 높아서 가까이 있을수록 가격이 비싸다고 한다. 죽어서도 돈이 많아야 하는 모양이다.
이북에서 내려오신 부친께서는 우선 제2의 고향에 산을 구입하여 종산을 만들어 놓으셨다. 지관을 통해 묘 터를 선정하고 가묘도 미리 만들어 두셨는데 지금은 두 분을 합장하여 함께 모시고 있다. 불교식 49재를 집 근처의 봉은사奉恩寺에서 지내드렸으며 혼의 극락왕생極樂往生을
빌었다. 묘역에 혼유석, 장명등, 비석 그리고 망부석을 갖추었다. 주변에는 산길이나 다른 묘지가 없으니 체면이나 과시욕으로
그리 조성한 것은 아니다. 단지 생전의 불효를 석물이라도 해드리고 싶은 마음에서 세워놓은 것이다. 그간 묘를 관리하면서 부모님
살아생전 모습을 떠올리며 삶을 되씹어 보았다. 당면한 현실적인 문제는 앞으로 누가 묘역을 관리하느냐다. 관리가 제대로 될 수
없다면 살아생전에 그 대책을 실행에 옮겨야만 한다. 묘지를 다니면서 수신의 첩경도 배우고 있다. 헤매었던 삶의 미로도 이제는
일부나마 깨달음이 오는 것 같다. 죽은 다음에는 진실로 삶의 일들이 다 부질없고 헛됨을 왜 몰랐을까. 현세에서 노년 삶의
마감은 언제인지 모른다. 얼마 있으면 부모님 옆으로 가게 될 것이다. 이승에서의 영원한 삶의 자리는 혼이 머물 자리다. 묘지가
되었건 이승의 어느 곳이 되었건 혼은 영원히 산다. 자신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우선 영정 사진이나마 빙그레 웃는 것으로 하나
미리 만들어 놓아야겠다. 내 혼도 가끔은 거울을 보아야 하니까. 이것도 노인의 기쁨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