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해설
특징 지역을 주고 그 지역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실, 관련 문화재 등을 파악하는 문제 유형도 자주 출제됩니다.
이러한 유형은 교재로 따로 공부하기는 쉽지 않고, 공부한 내용을 스스로 정리해 보는 방법이 중요해요.
특정 지역, 예를 들어 서울, 경주, 공주, 평양, 강화도 등에서 있었던 선사 시대~현대까지의 역사적 사실, 또는 문화 유물들을 파악해 보는 것이죠.
막막하다구요? 그럼 이 유형에서 제시하는 유사기출로 접근해 보세요.
진주 지역에는 선사 시대 유적들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대에는 가야의 한 지역으로 고령가야가 있었으며, 가야가 멸망하면서 신라에 병합되었죠.
고려 시대에는 983년(성종 2) 전국에 12목을 설치하면서 진주목이 설치되었습니다. 최씨 무신 정권을 연 최충헌은 진강후에 봉해져 진주 일대를 식읍으로 받기도 하였습니다. 무신 정권기 이 지역에서도 천민들의 봉기가 일어났죠.
조선 시대 들어 임진왜란 당시 3대 대첩 중의 하나인 진주 대첩(1592. 10.)이 펼쳐졌어요. 이는 진주성에서 진주 목사 김시민 이하 3,800여 장졸들이 2만의 왜군을 맞아 물리친 전투였으나, 전투에서 김시민 이하 거의 모두 장렬히 전사하였어요. 이후 1593년 6월 왜군은 대군을 동원해 진주성을 공격해 결국 이를 함락하였죠. 이 전투 후 벌어진 축하연에서 논개는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몸을 던져 의로운 죽음을 선택하였답니다.
세도 정치기에는 경상 우병사 백낙신의 수탈에 견디다 못한 농민들이 몰락 양반 출신인 유계춘 등을 중심으로 농민 봉기를 일으켰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농민 봉기가 전국으로 확산되었습니다(임술 농민 봉, 1862).
일제 강점기인 1923년에는 백정들이 사회적 차별을 스스로 철폐하기 위하여 진주에서 조선 형평사를 결성하고 여러 사회 운동 단체와 협력하며 형평 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습니다.
① 오산 학교는 평안북도 정주에 세워졌어요. 신민회는 실력 양성 운동을 목표로 교육과 산업의 진흥에 힘썼어요. 이에 이승훈은 평북 정주에서 오산학교(1907), 안창호는 평양에 대성학교(1908)를 설립하여 인재를 양성하였습니다.
② 기호 흥학회는 1908년 경기, 충청도 출신의 인사들이 서울에서 조직한 교육 단체입니다. 학회는 학교를 설립하고,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교과서를 보급하는 등의 활동을 폈던 단체였어요. 기호 흥학회는 기호 학보를 발행하고 기호 학교를 설립하였어요.
③ 독립 협회가 개최한 관민 공동회는 서울 종로에서 열렸습니다.
④ 대한 광복회(1915~1918)는 대구에서 조직되었어요. 채기중이 조직한 광복단(1913, 풍기)과 박상진이 이끄는 조선국권회복단(1915, 대구)이 통합해 결성되었죠. 공화 정체의 근대 국민 국가 수립, 독립군을 길러 일제를 몰아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이에 필요한 군자금 마련을 위해 일제의 재산을 빼앗고 부호들에게 의연금을 걷었으며, 협조하지 않는 친일 부호를 처단하기도 하였죠.
⑤ 백정들이 자신들에 대한 사회적 차별 철폐 운동을 펴기 위해 진주에 조선 형평사를 설립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⑤번입니다.
유사 기출문제
형평 운동
44. 형평 운동 답①
형평 운동에 대한 내용은 답지로 많이 제시되고 단독 문제로는 자주 출제되는 주제는 아닙니다.
문제에 제시된 어느 인물의 고희(70) 기념 회고록에 자신을 가리켜 '백정'이라 욕하였다는 내용이 나타나 있으니, 이 인물은 부모가 백정이었음을 알 수 있어요.
시기적으로 1983년이 70살이니 1983-70=1913년생이고 그가 10살이 되던 해는 1923년이네요.
그 시기에도 백정의 자녀들은 학교 입학을 해주지 않았음이 나타나 있죠(양반에게 돈을 써 입할할 수 있게 허락받아야 했던 것을 보면).
아이들도 백정이라고 놀리고 욕하는 것을 보면 그때까지도 이들에 대한 차별과 냉대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네요.
따라서 이 자료를 가지고는 백정과 관련한 내용을 탐구할 수 있겠네요.
조선 시대 백정은 도살업ㆍ유기 제조업ㆍ육류 판매업 등을 주로 하며 생활하던 천민이었습니다.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폐지되어 이들도 천민에서 해방되었으나, 일반인들의 차별 의식은 해소되지 않았어요. 백정과의 혼인은 물론 같은 마을에서 생활하는 것조차 꺼렸고, 자녀의 교육에서도 심한 차별을 받았습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호적에 도한(백정의 다른 명칭)이라고 써 넣거나 붉은 점을 찍어 표시하였어요. 그리고 입학 원서, 관공서의 제출 서류에도 반드시 백정 신분(직업)임을 표시하도록 하여 차별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3·1 운동(1919) 이후 사회적 차별을 스스로 철폐하기 위하여 형평(저울처럼 평등한 사회를 만들자는 의미) 운동을 전개합니다. 이를 위해 진주에서 1923년 조선 형평사를 결성하죠. 1925년에 본부를 서울로 옮기고 1927년에 전국에 지사를 설치하고, 회원을 크게 늘려 전국적 조직으로 성장하였어요. 형평사는 국내는 물론 해외 여러 사회 운동 단체와 협력하였으며, 파업이나 소작 쟁의에도 참여하는 등 활동 범위를 넓혔습니다.
이후 형평 운동은 내부에 이념적 갈등으로 활동의 통일성이 상실되고, 일제의 탄압을 받으면서 1930년대 이후 그 세력이 점차 약화되었습니다.
① 형평 운동은 백정들이 사회적 차별을 스스로 철폐하기 위하여 펼친 운동이었으니 정답!
② 교육 입국 조서는 근대 교육 제도 확립과 학교 설립을 위한 것과 관계 있어요.
갑오개혁 이후 고종은 교육 입국 조서를 반포(1895.2)해 근대 교육 제도 확립을 내세웠으며, 이를 바탕으로 소학교와
사범 학교, 외국어 학교 등 각종 관립 학교가 설립되었습니다.
③ 신흥 무관 학교는 신민회 활동, 만주에서의 독립 운동 기지 건설과 관계 있어요.
④ 민립 대락 설립 운동은 1920년대 민족 실력 양성 운동, 고등 교육 기관 설립과 관계 있어요.
⑤ 언론들의 문맹 퇴치 운동은 조선일보의 문자 보급 운동, 동아일보의 브나로드 운동과 관계 있어요.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①번입니다.
12회 고급 29번 문제
29. 백정의 시대별 모습 답④
백정에 대해 묻는 문제네요.
사실 백정(白丁)은 고등학교 때 국사 선생님들이 고려 시대 백정과 조선 시대 백정은 근본적으로 틀리다는 것!!! 꼭 알아두라고 몇번이고 가르쳐주어서 잘 알고 있을 겁니다.
통시대사 형태로 출제되었어도 이런 문제는 그냥 맞춰야지요.
그럼 시대별로 백정의 변화상을 알아볼까요?
우선 고려 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직역(職役)이 없어 토지를 분급 받지 못하는 양인 농민들을 백정이라고 했습니다.
천민이 아니라 양인 농민이었다는 것!! 다시한번 확실히 알아두세요.
그런데 조선 시대에는 주로 가축의 도살을 주업으로 하는 천민을 백정이라고 불렀습니다.
따라서 조선 시대의 백정은 고려 시대와 달리 신분적으로 천민이었던 것입니다.
조선 후기부터 신분제가 크게 동요되면서 신분제에 대한 개혁 요구들이 서서히 일어나지요?
중인들의 신분 상승 운동, 서얼 허통, 그리고 공노비 해방 등 완고했던 신분제는 서서히 흔들려 갑니다.
그러나 신분제가 무너지지는 않지요.
개항을 하면서부터는 신분제가 급격하게 동요되고 신분제를 개혁하여 평등한 사회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나타나요.
1894년에 일어난 동학 농민 운동 때는 신분제 폐지 움직임이 구체화되죠.
특히, 동학 농민군이 내세운 폐정 개혁안 중에 백정에 대한 차별 철폐를 요구한 조항이 있죠?
'모든 천인들의 대우를 개선하고 백정이 쓰는 패랭이를 없앤다.'라는 내용이 그것입니니다.
결국 갑오개혁 때 모든 신분 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그 동안 사회적으로 천대받던 백정도 평등한 지위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백정 출신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냉대는 일제 강점기에도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조선총독부는 새 호적을 만들면서 백정 출신을 호적에 ‘도한(屠漢, 조선 시대의 도살업, 유기 제조업, 육류 판매업 등을 주로 하며 생활하던 천민층인 백정의 다른 명칭)’으로 써 넣거나 붉은 점을 찍어 차별하였습니다.
학교 입학 통지서에도 백정 신분을 밝힘으로써 입학이 거부되거나 중도에 학교를 그만두는 일도 많았다고 하네요.
이에, 백정 출신들은 진주에서 형평사를 창립하고(1923), 평등한 대우를 요구하는 형평 운동(衡平運動)을 펼쳐 나갑니다.
형평 운동(衡平運動)의 형(衡)은 저울을 뜻하므로, 형평 운동은 백정 자신이 사용했던 저울처럼 평등한 사회를 만들려는 운동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신분 의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대중은 여전히 백정 출신을 차별하였지요.
그래서 형평 운동에 반대하는 반형평 운동이 일어나기도 하였답니다.
을 - 조선 시대 형사 업무를 담당한 것은 칠반천역 중의 하나인 나장입니다.
이들은 나졸이라고도 불렸죠.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갑, 병,정으로 묶인 ④번입니다.
특정 지역의 역사 또는 유물 파악 유형
특정 지역과 관련된 사료나 설명을 제시하고 그 지역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찾는 문제
9회 고급 34번 문제
34. 서경(평양) 지역의 역사 답②
문제에 주어진 자료는 시기가 다른 두 개의 사료입니다.
두 사료에서 공통으로 의미하는 밑줄 친 '이곳'을 파악하는 것이 문제를 푸는 순서겠죠?
두 개의 사료 모두 생소한 것은 아니라서 사료를 많이 접한 분들은 '이곳'이 어디인지 어렵지 않게 파악할 겁니다.
첫번째 사료를 보면, '수덕이 순조로워 지맥의 근본이며 대업을 만대에 전할 땅, 왕이 춘하추동에 걸쳐 100일 이상 머물러라'라고 나와 있네요.
이 사료는 태조 왕건이 남긴 훈요 10조 중의 일부입니다.
태조는 서경(평양)을 북진 정책의 전진 기지로 중시하였습니다.
두번째 사료에는 '이곳은 대화세의 명당 지역으로 이곳에 궁궐을 세워 천도하면 천하를 병합할 수 있고 금이 재물을 가지고 와 항복할 것이다'라고 나와 있네요.
이는 고려 중기에 일어난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당시 묘청이 왕에게 건의한 내용입니다.
따라서 두 자료에 공통적으로 나타난 '이곳'은 서경(평양) 지역이니 평양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찾으면 되겠네요.
① 진흥왕 순수비는 전국 네 곳에 세워졌습니다.
창녕비(경남 창녕), 북한산비(서울), 황초령비와 마운령비(함경도)로, 평양 지역에 세워진 것은 없습니다.
진흥왕 때 신라가 평양을 차지한 적이 없었으니 당연한 것이겠죠? ㅋ
② 평양은 옛 고조선과 고구려의 수도였던 역사가 깊은 도시입니다.
고려 때는 건국 초부터 북진 정책의 전진 기지로 중시되어 개경과 유사한 중앙 부서의 분소를 설치하는 제도인
분사 제도를 실시하였습니다.
③ 조선 후기의 사상인 만상은 의주로 기반으로 활동하였습니다.
당시 평양을 근거지로 활동하였던 사상은 유상입니다.
④ 세도 정치기에 홍경래의 난이 일어난 지역은 청천강 이북의 평안북도 지역입니다.
⑤ 국채 보상 운동이 시작된 곳은 경북 대구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일어난 물산 장려 운동이 시작된 곳이 평양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②번입니다.
10회 고급 8번 문제
8. 충주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 답④
문제에 제시된 (가) 지역을 지도와 연혁을 통해 유추해 보면 됩니다.
(가) 지역의 연혁을 소개한 내용 중에서 12목, 그리고 뒤에 정비된 8목 중 하나, 다인철소 등을 통해 (가) 지역이 충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를 풀 때 (가)의 연혁 내용으로 이 지역이 충주임을 파악할 수 없다면, 문제에 표시된 지도 (가)가 남한강 유역임을 볼 때 (가)는 충주와 단양 중 한 곳으로 보면 될 것입니다.
충주는 통일 신라의 5소경 중의 하나인 중원경이 었던 곳입니다.
충주는 남한강 유역에 위치하여 조선 시대에 가흥창이라는 조창이 설치되었던 지역입니다.
① 진흥왕 순수비는 창녕비(경남 창녕), 북한산비(서울), 마운령, 황초령비가 있죠?
충주 지역에 세워진 순수비는 없네요.
그리고 가까이에 단양 적성비가 있지만 그건 순수비가 아니니 조금 헛갈릴 수도 있는 답지네요.
② 신라 민정문서는 5소경 중 하나였던 서원경 지역의 4개 촌락에 대한 토지의 종류와 면적, 인구, 가구 , 가호, 노비의
수와 3년 동안의 사망, 이동 등을 기록한 문서로, 서원경은 오늘날의 청주입니다.
③ 주진군은 양계에 주둔하는 지방군입니다.
충주는 고려 시대에 5도 중 하나였던 곳으로, 5도에는 주현군이 주둔하였어요.
⑤ 조선 형평사는 백정들이 차별 철폐를 위해 1923년 진주에서 설립한 조직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④번입니다.
10회 고급 18번 문제
18. 고려 시대 강화도와 벽란도에서 있었던 사실 답④
이 문제는 1점짜리로 조금은 쉬운 문제네요...^^
문제에 주어진 지도에 표시된 지역은 강화도와 벽란도, 그리고 시기는 고려 시대이니, 고려 시대에 이 지역에서 볼 수 있었던 모습을 생각하며 풀면 되겠네요.
답지별로 바로 설명합니다.
① 삼별초는 정부가 개경 환도를 결정하자, 환도에 반대하여 강화도에 남아 항전하다가 진도, 제주도로 옮겨다니면서
끝까지 항전하였으나 제주도에서 여, 몽 연합군에게 토벌되고 말았지요...ㅜ.ㅜ
② 지도에 표시된 벽란도 보이시죠? 예성강 어귀에 있던 벽란도는 대외 무역의 발전과 함께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하여
송, 요나라 상인들은 물론, 대식국이라 불리던 아라비아 상인들까지 왕래하였어요.
③ 고려 말 공민왕 때에는 왜구에게 강화도까지 약탈당하고 개경이 위협을 받을 정도였어요.
④ 직지는 청주 흥덕사에거 <직지심체요절>을 인쇄하기 위해 만든 금속활자입니다.
<직지심체요절>은 1377년에 인쇄된,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입니다.
<직지심체요절>보다 앞선 1234년에 <상정고금예문>을 인쇄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이는 현재 전하지 않고 있답니다.
⑤ 강화도 피난 시기 이후에는 강화도 지방을 중심으로 한 간척 사업이 활발히 추진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④번입니다.
11회 고급 40번 문제
40. 원산 지역의 역사 답③
(가)에 들어갈 내용을 살펴보려면 ㅇㅇ에 들어갈 지역을 먼저 알아야 겠죠?
첫번째 힌트로 주어진 '강화도 조약 이후의 개항장' 하면 강화도 조약에 따라 개항된 항구는 인천, 원산, 부산이네요.
두번째 힌트는 결정적이네요.
'최초의 근대식 사립 학교가 세워진 곳'.......최초의 근대식 학교는 원산학사라는 것은 잘 알 것입니다.
따라서 두 가지 자료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지역은 원산이네요.
그럼 원산의 역사와 관련된 답지를 살펴 보면 되겠네요.
① 서울과 연결된 최초의 철도는 경인선으로, 이는 1899년에 완공되었지요.
따라서 이 지역은 인천을 뜻하겠지요?
② 6·25 전쟁 중에 임시 수도는 부산이었습니다.
③ 원산 노동자 총파업은 일제 강점기에 일어난 최대 규모의 노동 쟁의였습니다.
원산 노동자 총파업은 영국인이 운영하던 원산의 한 석유 회사에서 일본인 감독이 한국인 노동자를 구타한 사건이 계
기가 되어 1929년에 일어나 약 4개월 동안이나 지속되었답니다. 파업 소식이 전해지자, 전국 곳곳의 사회 단체, 청년
단체, 노동 단체 등에서 성금을 보내 지지하였으며, 일본 노동자들도 동조 파업을 벌였고, 중국, 프랑스, 소련의 노동자
들까지 격려 전문을 보내 왔을 정도로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전개되었답니다. 그러나 일제 경찰의 가혹한 탄압으로 결
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 원산 노동자 총파업은 노동자들이 민족 운동에서 중요한 세력으로 등장하였음을 보여 준 대표적 투쟁이었습니다.
④ 일제 강점기 호남 지방에서 일본으로의 쌀 수출 중심 항구는 목포나 군산을 들 수 있겠네요.
⑤ 3·15 부정 선거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시작된 곳은 마산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③번입니다.
12회 고급 45번 문제
45. 원산 지역의 역사 답④
이 문제도 특정 지역의 역사를 나열해놓고 그 지역에 있었던 또다른 역사적 사실을 파악하는 문제입니다.
고대~근대까지의 그 지역 역사적 사실들이 제시되어 있으니, 그 중에서 하나라도 알 수 있으면 어느 지역인지 파악할 수 있겠지요?
고대의 사실을 통해서는 사실 어디인지 잘 모르겠죠?
고려 시대의 사실로 살짝 어디인지 감이 옵니다.
쌍성총관부 관할 지역...쌍성총관부는 서북쪽으로 철령 이북 지역이었다는 거 기억하시죠?
여기서 의주로 개칭되었다....라는 것에 속아 의주를 생각하시면 오답의 세계로 가니 조심!!!
조선 시대에 덕원부....드디어 덕원부라는 명칭이 등장했네요.
근대의 사실에서도 크게 힌트를 잡기 힘드네요.
따라서 이 문제는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의 이 지역 역사에서 힌트를 잡아 풀어야겠네요.
이 지역은 원산입니다.
④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사립 학교는 1883년 덕원부(원산)에 세워진 원산학사입니다.
정부도 같은 해에 통역관 양성을 위한 동문학을 설립하였으며, 1886년에는 육영 공원을 세워 상류층 자제에게
근대 학문을 교육하였습니다.
원산 학사에서는 산수, 과학, 기계, 농업, 양잠, 채광, 일어, 법률, 세계 역사, 지리를 필수 과목으로 교육하였다. 또, 문예반은 한문, 무예반은 병서와 무예를 전공 과목으로 채택하여 가르쳤다. 이는 원산 학사가 전통 학문을 바탕으로 신식 학문을 접목하여 교육을 실시하였음을 보여 준다. 원산 학사는 갑오개혁 때 원산 소학교가 되어 공립 학교로 전환하였다. |
원산은 강화도 조약(1876)에 의해 개항되었던 세 개 항구(인천, 부산, 원산) 중 하나였다는 것도 알아두세요.
① 고려의 대표적인 무역항은 예성강 입구에 있던 벽란도입니다.
② 임진왜란 때 왜군이 파죽지세로 침입해오자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평양을 거쳐 의주까지 피난을 가야 했지요.
③ 조선 후기에 개시 무역(공무역)과 함께 후시 무역(사무역)이 함께 이루어진 곳은 의주와 동래입니다.
⑤ 3·15 부정선거(1960)에 대한 규탄 시위가 선거 당일에 일어났던 곳은 경남 마산입니다.
이후 전국적으로 시위가 확산되어 4·19 혁명으로 발전하고, 결국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를 하게 되지요.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④번입니다.
12회 고급 47번 문제
47. 의주, 단동 지역의 역사 답②
이런 유형의 문제들은 자주 출제됩니다.
12회 시험 3번 문제도 이러한 유형 중의 하나였죠?
특정 지역을 표시하고 그 지역에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통시대적으로 묻거나, 그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유물들을 묻는 문제들이 자주 출제됩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교재에서 다뤄주기 힘든 부분입니다.
그 지역과 관련된 여러 사실들, 여러 시대의 관련 사실들을 스스로 조직해 풀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평양 지역, 강화도 지역, 원산 지역, 서울이나 한강 유역, 충주 지역, 공주나 부여, 경주 지역, 고령이나 김해 지역 등을 표시하고 관련 사실들을 묻거나 유물을 묻는 문제들이 출제될 수 있으니 공부할 때 스스로 이러한 부분들을 정리, 조합해 보는 연습을 해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자 그럼 이 문제를 풀어볼까요?
지도에 표시된 지역은 한반도의 신의주 지역, 그리고 중국의 단둥 지역입니다.
이 지역과 관련한 탐구 활동을 하려면 이 지역과 연관이 있는 내용이어야 하니 살펴봅시다.
① 이륭양행...어디서 많이 들어봤죠?
이륭 양행은 아일랜드 사람인 쇼가 중국 단둥에 설립(1919. 5)한 무역회사 대리점이었습니다.
여기 사무실 2층에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교통국 산하 단둥 교통국을 두어 비밀리에 군자금을 운반, 전달하는 역할을
하였어요. 부산에 있던 백산 상회가 같은 역할을 했답니다.
쇼는 1920년에 의열단의 무기 수송을 돕다가 발각되어 일제에 체포되었답니다.
② 서전서숙은 이상설 등이 중국 길림성 연길현 용정에 설립(1906)한 민족 교육 기관이었어요.
아래 지도를 보면 도움이 되겠네요.
③ 용암포는 압록강 하구의 항구로, 러시아는 이를 강제 점령하고 조차해줄 것을 요구하였던 사건(1903)입니다.
④ 거란의 1차 침입(993) 당시 서희는 거란 장수 소손녕과의 외교적 담판을 통해 강동 6주를 획득하였어요.
강동 6주는 아래 지도를 참고하세요.
⑤ 후금의 1차 침입인 정묘호란(1627) 때 정봉수와 이립 등은 의병을 일으켜 관군과 연합해 후금과 싸웠어요.
정봉수는 용골산성에서 큰 전과를 올렸어요.
따라서 지도에 표시된 지역과 관계없는 내용은 ②번, 정답은 ②번입니다.
14회 고급 38번 문제
38. 황해도 지역의 역사 답⑤
이러한 유형의 문제도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서는 자주 출제됩니다.
두 가지 유형이 자주 출제됩니다.
먼저, 특정 지역을 지도에 표시하고 그 지역과 관련된 문화재(유물, 유적)를 찾거나 역사적 사실을 묻는 문제,
다음으로 이 문제처럼 특정 지역을 설명하는 사료를 제시하고 그 지역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통시대적으로 묻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먼저 사료에서 설명하는 지역이 어디인지를 찾고,
그 지역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보기>에서 고르면 됩니다.
사료를 요약해 보면, '마한의 옛땅으로 후에 고구려의 소유가 되었다. 고구려 멸망 후 신라의 영토가 되었고 신라 말에는 궁예가 차지하였다가 태조 왕건이 모두 차지하였다.'
여기까지 보고 어느 지역인지 아는 분이 있겠지만, 한강 유역의 이남인지 이북인지 조금 헛갈리는 분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힌트가 바로 그 아래 있어요.
'성종 때 국내를 10도(道)로 나눌 때 황주와 해주 등의 관할이 관내도로에 속하였다'라고 나와 있죠?
이것을 보고 사료에서 설명하는 지역이 황주+해주=황해도임을 쉽게 파악할 수 있어요.
그 뒤의 사료는 '서해도로 고쳤다가 조선 태조 때 풍해도로 했다가 지근의 이름(황해도)로 했다'는 것이네요.
우리가 알고 있는 8도의 이름(도명)은 그런 조합으로 지어졌다는 거 상식으로 알고 계세요.
(함경도는 함흥+경성, 평안도는 평양+안주, 강원도는 강릉+원주, 충청도는 충주+청주, 경상도는 경주+상주, 전라도는 전주+나주의 조합입니다)
그럼 이 지역이 황해도 지역임을 알았으니 황해도 지역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찾으면 <보기>에서 찾으면 되겠네요.
ㄱ - 통일 신라 때 5소경 중의 하나인 북원경이 설치되었던 지역은 오늘날 강원도 원주입니다.
ㄴ - 원 간섭기에 쌍성총관부가 설치된 지역은 철령 이북이었습니다.
이 지역은 함경 남도 지역에 해당합니다.
ㄷ - 의적으로까지 불린 임꺽정은 황해도를 중심으로 경기·평안·강원도에 걸쳐 광범위하게 활동하였습니다
임꺽정이 도적으로 이름 떨친 시기는 수취제의 문란으로 농민들의 유망이 증가하던 때입니다.
16세기 들어 수취제의 문란으로 농민 생활이 악화되자 농촌에서 유망하는 유민이 증가하고, 유민 중 일부는 도적이
되어 양반과 중앙 정부로 바치는 물품을 빼앗기도 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16세기 중엽(1559~1562년)인 명종 때 황해도와 경기도 일대에서 활동한 임꺽정은 대표적 인물입니다.
ㄹ - 대동법은 광해군 때인 1608년에 경기도에 처음 실시된 이후 마지막으로 황해도까지 실시(1708)되기까지 약 100년
이라는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ㄷ, ㄹ로 묶인 ⑤번입니다.
15회 고급 6번 문제
6. 청주 지방의 역사적 사실 답③
민정문서는 중, 고등학교 때부터 워낙 중요하게 공부하였기 때문에 문제에 제시된 사진만 보고도 딱 통일 신라의 민정문서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자료에 대해 설명한 글의 '도다이 사 쇼소인(동대사 정창원)에 보관', ''사해점촌, 살하지촌 등의 인구와 논, 밭의 규모 등 경제적 상황이 기록'이라는 중요 포인트를 통해 민정문서임을 알 수 있어요.
통일 신라의 민정 문서는 서원경(청주) 지방의 4개 촌락에 대한 경제적 상황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문서입니다.
이 문서는 매년 변동 사항을 기록하고 있다가 3년마다 새로이 작성한 것으로,그러므로 밑줄친 '이 지역'은 청주 지방입니다.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은 고려 말 우왕 때 청주 흥덕사에서 백운 화상이 역대 스님들의 법어·어록 등을 모아 간행(1377)한 것으로,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금속 활자로 인쇄된 책)이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직지심체요절>은 조선 고종 때 주한 프랑스 공사로 서울에서 근무하였던 콜랭 드플랑시(Collin de plancy)가 프랑스로 가지고 갔다가 프랑스 골동품 수집가인 앙리 베베르(Henri Vever)에게 넘어갔으며, 그가 1950년 사망한 후 유언에 따라 프랑스 국립 도서관으로 이관되어 현재까지 그곳에 있습니다.
① 금관가야는 경남 김해에 세워져 발전하였던 나라입니다.
② 양길은 북원경(원주)을 근거지로 세력을 형성하였습니다.
궁예는 처음에 양길의 휘하에 있으면서 세력을 키워 이후 양길을 몰아내고 후고구려를 세웠지요.
③ 직지심체요절은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하였습니다.
④ 가흥창은 남한강이 흐르는 충북 충주에 설치된 중요 조창(세곡 보관 창고)입니다.
⑤ 춘향전의 무대는 전남 남원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③번입니다.
15회 고급 20번 문제
20. 제주도에 대한 탐구 답④
제주도에 대한 설명입니다.
제주도는 일찍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신석기 유적으로 고산리 유적 등이 있습니다.
제주도는 고려 시대 대몽 항쟁기에 삼별초가 마지막까지 항거한 곳이다. 몽골은 삼별초의 항쟁을 진압한 후 이곳에 탐라총관부를 설치하여 일본 원정을 준비하고 목마장을 설치하였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유배지로도 활용되었어요.
① 네덜란드 상인인 벨테브레이와 하멜은 조선 후기 효종 시기에 일본으로 가다가 난파 당해 제주도에 표착하였습니다.
이들은 한양으로 이송되어 훈련도간에 소속되어 신식 무기 등을 만드는 일에 동원되었습니다.
② 삼별초는 강화도, 진도, 제주도로 옮겨 다니면 대몽 항쟁을 하였습니다.
이들은 제주도에 항파두리성을 쌓고 최후까지 항전하였으나 끝내 진압되었습니다.
③ 조선 후기 제주도에서 활동한 김만덕은 상업 활동으로 부를 쌓아 제주도의 빈민 구제 활동에 앞장 섰습니다.
④ 조선 후기에 정제두는 강화도에서 양명학을 연구하며 강화학파를 형성하였습니다.
⑤ 광복 후 남한만의 단독 선거인 5·10 총선거 실시해 반대해 제주도에서는 4·3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④번입니다.
16회 고급 45번 문제
45. 인천 지역의 역사 답⑤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서 출제되는 중요 유형 중의 하나가 특정 지역을 주고 그 지역에 있었던 역사 사실을 통시대적으로 파악, 또는 문화 유산을 파악하는 문제로 출제된다는 것입니다.
주로 각 시대의 도읍지, 또는 역사 사실이 있는 지역을 주고 파악하는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출제된 예를 들면 국내성, 평양, 공주(웅진), 부여(사비), 경주, 개성, 한양 등 역대 도읍지의 지역,
그리고 강화도, 황해도, 충주, 원산, 압록강 유역, 오대산, 충청도(서산, 당진, 예산, 태안) 등 특정 지역의 고대~근대까지의 역사 사실, 문화 유산을 파악하는 문제가 출제되었습니다.
그러니 중요 지역과 관련한 역사 사실이나 문화유산을 정리해 두세요.
문제에 제시된 지도를 보면 어느 지역인 지 파악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자유 공원(맥아더 동상)', '차이나타운', 그리고 '황해'라는 바다와 닿아 있는 지역.....은 인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인천은 과거 백제 건국 관련하여 비류가 나라를 건국하려다 실패한 곳이죠.
인천과 관련하여 중요한 역사적 사실들이 많이 일어난 것은 근현대에 이르러서입니다.
강화도 조약으로 문호가 개방되면서 일본이 요구한 3개 항구(인천, 부산, 원산) 중에 하나였죠.
개항 이후에는 1888년까지 각국의 거류지가 마련되었는데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외국인 거류지였답니다.
그리고 1882년에는 인천에 일본 영사관 가청사가 설치되어 최초의 영사가 임명되기도 하였죠.
이 외에도 많은 역사적 사실이 있었던 곳이죠.
① 남연군 묘는 흥선 대원군의 아버지 묘로 충남 예산군에 있습니다.
독일인 오페르트는 흥선 대원군 집권 시기 통상을 요구하다가 거절당하자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여 이를 볼모로 흥정
하려고 계획하고 묘를 도굴하려 했으나 발각되어 달아났습니다(1868).
이 사건을 계기로 조선에서는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이 더욱 강화됩니다.
② 조선 시대에 일본과의 개시(공무역)와 후시(사무역)이 열렸던 곳은 왜관(부산)입니다.
③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사립 학교는 원산학사이며, 이것이 세워진 곳은 원산입니다.
강화도 조약에 따라 원산은 1879년에 개항되었으며, 1883년에는 근대적 사립 학교인 원산 학사가 설립되었습니다.
④ 국채 보상 운동이 전국에서 처음 일어난(1907) 곳은 대구입니다.
⑤ 인천은 개항 이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외국인의 거류지가 마련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⑤번입니다.
17회 고급 12번 문제
12. 각 항구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 답①
한국사능력시험에서는 주요 도시나 항구 등과 관련 있는 역사적 사건이나 사실을 묻는 문제들이 종종 출제됩니다.
이번 문제는 우리나라의 주요 항구와 관련된 사실을 묻는 유형이네요.
여기에 나오는 항구는 주요 도시 등과도 연계 또는 특정 사실을 주고 항구를 찾는 문제로 출제되는 곳이니, 이 기회에 각 항구와 관계된 중요 사실은 꼭 알아두세요.
우선 (가)~(마)의 항구가 어디인지 지리적 정보와 함께 파악하셔야 합니다.
(가)는 원산입니다.
원산은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하게 된 3개 항구(인천, 부산, 원산) 중에 하나죠.
개항 이후 이곳 주민들이 합심하여 우리나라 최초로 근대식 사립 학교를 세웠습니다(1883).
1905~1914년에는 일제에 의해 경원선이 설치되었으며, 일제 강점기 가장 대표적인 노동 쟁의인 원산 노동자 총파업(1929)이 있었습니다.
(나)는 인천입니다.
인천도 강화도 조약에 의해서 1883년 개항하였습니다.
인천은 서울과 가장 가까운 개항장이었기 때문에 1888년까지 각국의 거류지가 마련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근대적 시설들이 일찍부터 마련되었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이 개통되었습니다.
(다)는 금강 입구의 군산입니다.
군산은 우리나라의 최대 곡창인 호남평야와 근접해 있어 목포와 함께 일제의 쌀 수탈 전초 기지로 이용되었습니다.
(라)는 포항과 부산 사이에 있는 울산입니다.
울산은 신라의 수도인 금성(경주)에서 가장 가까운 항구였습니다.
이 때문에 통일 신라 때에는 국제 무역이 발달하면서 이슬람 상인까지 와서 무역하였답니다.
(마)는 부산입니다.
부산은 일본과 가장 가까운 항구였기 때문에 일찍부터 일본과의 창구가 되었던 항구입니다.
조선 시대 세종 때 일본에게 개항한 3포(부산포, 염포(울산), 제포(창원)) 중의 하나였습니다(1426).
이후 왜변, 왜란 등으로 개항과 폐쇄가 반복되었으며, 임진왜란 당시에는 왜군이 가장 먼저 상륙한 곳이기도 하죠.
임진왜란 이후 일본과의 관계가 점차 정상화되면서 왜관(동래) 개시를 통해 대일 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강화도 조약으로 일본에게 개항된 곳이며, 경부선의 종착지이기도 하죠.
① 여진과의 무역소가 설치된 곳은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국경 지대인 경성과 경흥입니다.
조선은 건국 초부터 이곳에 무역소를 두어 여진이 교역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①번입니다.
18회 고급 8번 문제
8. 평양의 역사 답⑤
대동강변에 위치한 고구려 때 축조된 성으로, '모란봉'과 '을밀대'가 있는 곳은 평양입니다.
그럼 평양과 관련한 역사적 사실을 찾으면 되겠네요.
평양성은 대동강이라는 천혜의 방어 시설을 끼고 고구려 때 축조된 성입니다.
평양성을 끼고 있는 평양은 모란봉, 을밀대, 만수대 등의 경관이 유명합니다.
이곳은 고조선, 그리고 장수왕 때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천도한 후 멸망할 때까지 고구려의 수도였던 곳입니다.
고구려가 멸망하자 당은 이곳에 안동 도호부를 설치하여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 하자 신라는 고구려 부흥 운동군을 지원하고 나·당 전쟁을 벌여 이곳에 있던 안동 도호부를 요동 지방으로 몰아냈습니다.
고려 때에는 북진 정책의 일환으로 서경으로 중시되어 개경과 유사한 중앙 부서의 분소를 설치하는 제도인 분사 제도를 실시하였던 곳입니다.
고려 중기에는 묘청이 이곳에서 서경 천도 운동을 전개하였으며, 무신 집권기에는 최광수가 이곳에서 고구려 부흥을 내세우며 봉기하기도 하였습니다.
조선 시대 들어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과 명군이 연합해 평양성을 탈환하여 전세를 역전시키기도 하였으며, 19세기 후반에는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까지 와서 통상을 요구하며 난동을 부리다가 불태워지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신미양요(1871)가 일어나기도 했죠.
조선 시대 이곳을 기반으로 사상인 유상이 활동하였으며, 일제 강점기에는 물산 장려 운동이 시작된 곳이기도 합니다.
① 당은 고구려가 멸망한 직후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두었으나 고구려 유민들의 저항으로 바로 요동으로 옮겼습니다.
② 고려 시대 때 정종은 왕식렴 등 서경 세력의 도움 속에서 즉위한 후 서경 천도를 추진하여, 개경 세력과 노역에 동원된
백성들의 반발을 샀습니다.
③ 임진왜란 때 조·명 연합군은 왜군이 차지하고 있던 평양성을 공격하여 크게 승리하였습니다.
④ 병인양요가 일어나기 직전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는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오면서 통상을 요구하여 평안도 관찰사
박규수가 이를 거절하였으나, 이들이 난동을 부리자 관군과 평양 군민들이 합세하여 제너럴 셔먼호를 불태워 침몰시
켰습니다.
⑤ 최초의 근대적 사립 학교는 1883년에 덕원(원산)에 세워진 원산학사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⑤번입니다.
19회 고급 5번 문제
5. 고려의 국제 무역항 벽란도 답②
벽란도에 대한 내용은 주로 답지로 제시되는데, 이번에는 단독 문제로 출제되었네요.
고려 시대에 저술된 "동국이상국집", 고려의 역사에 대한 기록인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으니, 밑줄친 이 항구는 일단 고려의 항구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자료에 나타난 '벽란정'을 통해 고려 시대의 무역항인 '벽란도'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국신사(國信使)란 고려와 송 사이의 오가던 사신으로, 국가 간의 신뢰를 표하기 위해 신물(信物) 등을 가지고 왕래하였기에 부르던 명칭입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국신사로는 고려 청자를 비색이라며 극찬하였던 송나라 서긍을 들 수 있습니다.
고려 시대에는 송, 요 등 외국과도 무역을 하였습니다.
고려의 대외 무역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역시 송과의 무역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려 시대에는 북방에 거란, 여진 등이 북방 유목 민족들이 세운 국가들이 육로를 가로막고 있어 송과의 교류는 바다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이에 따라 개성과 가까운 항구인 예성강 어귀의 벽란도는 대외 무역의 발전과 함께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하였습니다.
벽란도에는 송, 일본은 물론 멀리 아라비아 상인들까지 왕래하던 국제적인 무역항이었어요.
당시에 대식국인이라 불리던 아라비아 상인들도 고려에 들어와서 수은, 향료, 산호 등을 팔았는데, 이들을 통하여 고려의 이름이 서방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① 계해약조(1443)에 따라 개방해 준 항구는 부산포, 제포(진해), 염포(울산) 등 3포입니다.
조선은 세종 때 왜구의 침입을 근절하기 위해 왜구의 소굴인 쓰시마섬을 토벌하는 한편, 왜구의 요구를 수용해 3포를
개방하여 무역을 허용하고(1426), 계해약조(1443)를 맺어 제한된 범위 내에서 교역을 허락하였습니다.
② 벽란도는 국제 무역항이었지만, 송과의 무역이 가장 활발히 이루어진 곳이었습니다.
③ 삼별초가 대몽 항쟁을 전개한 거점은 강화도, 진도, 제주도입니다.
④ 통일 신라 당시 장보고가 해상 활동의 중심지로 건설한 것은 청해진(완도)입니다.
⑤ 고려 말 최무선이 화포를 이용하여 왜구를 크게 무찔렀던 곳은 진포(금강 하구)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②번입니다.
21회 고급 20번 문제
20. 의주(義州)의 역사 답③
회차마다 해설을 하면서 계속 강조하지만, 특정 지역의 역사, 유물을 파악하는 문제는 꼭 1문 이상씩 출제되는 중요한 유형이니, 유사문제까지 집중에 풀어보세요.
역사를 공부할 때, 역사의 무대에 해당하는 지역을 알아두는 것이 필요하죠. 지리부도나 역사부도 등을 통해 우리 역사의 무대가 되었던 지역, 주요 도시 등의 위치를 파악해두는 것이 좋아요. 부도를 보고 숨은그림 찾기를 하듯 서로 찾아보기를 하면 재미있게 지역을 익힐 수 있습니다. 이런 방법을 통해 여기가 평양, 의주, 한양, 공주, 부여, 대구, 경주 등을 정확히 알 수 있어야 해요. 그 다음에 그 지역에 있었던 주요 역사적 사실이나 유물 등을 공부하면 됩니다.
이런 방법으로 공부한 분은 지도에 제시된 (가)가 설명을 읽지 않고도 의주임을 알 수 있어요(제시된 설명은 의주를 차악하는 데 그다지 도움을 주지 못하네요.). 만약 헛갈리면 답지 중에 다른 지역을 가르키는 것을 찾아내면 되겠죠?
지도에서 알 수 있듯 압록강 하류에 위치한 의주는 중국으로 가는 국경 관문이었어요.
의주와 관련하여 시대별로 살펴보죠.
삼국 시대에는 의주 맞은편인 압록강 너머에 있는 서안평을 점령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배웠죠?
고려 전기에는 거란의 지배하에 있었으나, 거란의 1차 침입(993) 당시 서희의 외교적 노력으로 강동 6주를 획득하면서 고려의 영토가 되었어요. 고려는 이때 획득한 압록강~청천강 하류 지역에 강동 6주를 설치하였는데, 흥화(의주)·용주(용천)·통주(선천)·철주(철산)·귀주(구성)·곽주(곽산)가 그것이었어요.
고려 말 우왕 때에 명이 철령 이북의 땅을 차지하려 하자, 최영은 이성계를 시켜 요동 정벌을 단행하였는데, 이성계는 위화도(의주 소속)에서 회군하여(1388) 최영을 제거한 뒤, 군사적 실권을 장악하고 이후 조선을 건국하였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임진왜란 당시(1592) 선조가 한양을 버리고 평양을 거쳐 의주까지 피난을 가기도 했습니다(의주 파천).
조선 후기에는 사상이었던 만상이 의주를 중심으로 대청 무역을 주도하면서 재화를 많이 축적하였습니다.
① 거란의 1차 침입 당시 서희는 거란 장수 소손녕과의 외교적 담판을 통해 이 지역을 포함한 강동 6주를 획득하였어요.
② 이성계는 명을 공격하러 가기 위해 의주에 속한 위화도에 군대를 주둔하였다가 회군하여 실권을 장악하였습니다.
③ 김종서가 여진족을 몰아내고 개척한 6진은 두만강 하류 일대인 종성, 온성, 경원, 경흥, 회령, 부령이었어요.
④ 선조는 임진왜란 때 왜군을 피해 평양, 의주까지 피난하여야 했습니다.
⑤ 만상은 의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대창 무역을 주도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③번입니다.
특정 지역, 또는 특정 지역을 지도에 표시하고 그 지역과 관련된 문화재(유물, 유적)를 찾는 문제
2회 2급 32번 문제
문제해설
이 문제는 개성(개풍군)에 있는 문화재를 고르면 되는 간단한 문제네요.
㉠ - 보통문은 개성이 아니라 평양에 있습니다.
개성에 남아 있는 건축물은 남대문, 만월대 터 등이 있습니다.
조선 초기에는 사원 위주의 고려 건축과는 달리, 궁궐, 관아, 성문, 학교 등이 건축의 중심이 되었어요.
건국 초기에 도성을 건설하고, 경복궁을 지었으며, 곧이어 창덕궁과 창경궁을 세웠습니다.
도성의 정문인 숭례문은 고려의 건축 기법과는 다른 방식을 채택하여 발전된 조선 전기의 건축을 대표합니다.
개성의 남대문과 평양의 보통문은 고려 시대 건축의 단정하고 우아한 모습을 지니면서 조선 시대 건축으로 발전해
나가는 형태를 보입니다.
㉡ - 평안도 강서군에 있는 강서대묘의 사신도 중 북쪽의 방위신인 현무도입니다.
㉢ - 영통사 대각국사비는 개성에 있는 유물로, 대각국사 의천의 업적을 새긴 비입니다.
이 비의 비문은 김부식이 지었답니다.
㉣ - 고려 전기에 제작된(1020) 현화사 7층 석탑은 개성에 남아 있습니다.
㉤ - 고려 왕조를 유지하고자 했던 온건파 사대부 정몽주가 이방원 수하에게 죽음을 당한 선죽교는 개성에 있어요.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 ㉣, ㉤으로 묶인 ⑤번입니다.
3회 2급 16번 문제
문제해설
조금은 생소하게 강원도 오대산에 있는 유적, 유물들을 물어보는 문제입니다.
오대산은 얼마전 동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강원도 평창군에 있는 산으로, 여기에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상원사(상원사 동종이 유명)와 월정사(월정사 팔각 9층 석탑이 유명)가 있습니다.
① 상원사 동종은 우리나라의 현존하는 동종 가운데 가장 오래된(725) 범종입니다.
그러나 삼국 시대가 아니라, 통일 신라 때 만들어졌어요.
② 정변을 통해 왕위에 오른 세조는 불교와 관계 깊은 인물입니다.
지금의 탑골 공원 자리에 원각사를 세우기도 했지요.
세조는 왕위에 오른 직후, 몸에 난 종기를 불력(佛力)을 빌려 고치고자 상원사로 요양을 가 이곳에서 문수동자를 만나
질병을 치료했다는 전설이 남아 있습니다. 최근에 이 동자상 안에서 발견된 유물에 ‘조선 세조의 둘째 딸 의숙공주 부
부가 세조 12년(1466)에 이 문수동자상을 만들어 모셨다’는 내용이 적혀 있어 이 이야기를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이 상원사의 문수동자상은 예배의 대상으로서 만들어진 국내 유일의 동자상이랍니다.
③ 고려 시대 석탑은 다각 다층탑이 많았는데, 송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오대산 월정사 팔각 9층 석탑과 고려 후
기의 석탑으로 원의 석탑을 본뜬 경천사 10층 석탑이 대표적입니다.
④ 상원사를 중수할 때 세조가 왕비와 함께 보낸 선을 행하는 취지를 담은 발원문(發願文)이랍니다.
⑤ 월인석보는 보물 제74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소장처에 따라 일련번호를 정하였습니다.
월정사에 소장된 월인석보는 보물 제745-5호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①번입니다.
6회 고급 29번 문제
문제해설
이 문제도 유사 기출문제로 분류해보고 올립니다.
남한강 유역에 있는 유적지와 관련 역사를 알아보는 문제네요.
우리가 흔히 한강이라 불리는 강은 북쪽에서 흘러내려오는 북한강, 그리고 남쪽에서 흘러내려오는 남한강이 양평 양수리에서 하나의 강으로 합쳐져 흘러 강화도 앞에서 바다와 만난답니다.
여기에 나와 있는 남한강은 충북 동북부(충주, 단양)~강원 남서부(원주)~경기 남동부(여주)를 지나 양평까지 흐르죠.
(가) 남한강 상류 지역은 충북 충주, 단양 지역으로 이 지역은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석회암 지대라 시멘트 공업이 발달한
곳입니다. 석회암 지대는 동굴이 많이 형성돼 단양 수양개 유적, 단양 금굴, 단양 상시 바위그늘 유적 등의 구석기 유
적이 많이 남아 있어요.
(나) 중원 고구려비는 충주에, 단양 적성비는 단양에 남아 있죠.
한강 유역을 둘러싸고 삼국이 치열하게 경쟁하였음을 알려주는 유물들입니다.
(다) 남한강 유역에는 많은 사원들이 남아 있는데, 그 중에서 흥법사지(원주), 거돈사(원주), 신륵사(여주) 등이 유명하죠.
(마) 탄금대는 충주에 있는 유적으로,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이 배수진 전략을 구사하다 패한 곳입니다.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은 고려 시대 국사였던 지광국사의 승탑(부도)입니다. 강원도 원주에 있는 법천사지에 세워
져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하여 일본 오사카(大阪)까지 불법 반출되었다가 다시 반환되어 현재 용산
에 있는 국립 중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라) 남한강 유역에도 충주 가흥창, 원주 흥원창 등 조창들이 많이 설치되었습니다.
그러나 공세창(충남 아산), 영산창(전남 나주)은 모두 남한강과 무관한 바닷가에 위치한 조창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④번입니다.
9회 고급 38번 문제
문제해설
강화도의 문화 유산이나 역사적 사실을 묻는 문제는 자주 출제되니 꼭 꼼꼼하게 알아두세요.
이 문제는 얼핏 어려워 보일 수도 있으나 답은 의외로 너무 쉽게 찾아집니다.
① 18세기 초 정제두가 강화도로 옮겨 살면서 양명학 연구와 제자 양성에 힘써 강화 학파라 불리는 하나의 학파를 이루었
습니다. 그러나 제자들 대부분이 정권에서 소외된 소론이었기 때문에 그의 학문은 집안의 후손들과 인척을 중심으로
가학(家學)의 형태를 띠며 계승되었습니다. 강화 학파는 양명학을 바탕으로 역사학, 국어학, 서화, 문학 등에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 갔으며 실학자들과도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습니다.
② 강화도에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 무덤 형태인 고인돌 유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고인돌 유적지인데, 이를 인정 받아 고인돌 유적(강화도 고인돌, 고창 고인돌, 화순 고인돌 유적)
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답니다.
③ 마니산 참성단은 마니산 정상에 있는 유적지로, 이곳에서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④ 광성보는 중요한 요새로, 신미양요 당시 어재연 장군이 이곳에서 분투하였습니다.
⑤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피난했던 남한산성은 경기도 광주시의 남한산에 있죠?
왕을 제외한 세자들이 강화도로 피난하다가 청에게 잡히는 바람에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삼전도에 나와 항복을 했죠.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⑤번입니다.
9회 고급 50번 문제
50. 안동 하회 마을과 경주 양동 마을 답④
2010년 브라질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제34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문화재청이 신청한 '한국의 역사마을 : 하회와 양동'이 받아들여져 유네스코 세계유산(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총 10건의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유네스코는 등재 결의안에서 '한국의 역사마을 : 하회와 양동'은 주거 건축물과, 정자, 정사, 서원 등의 전통 건축물들의 조화와 그 배치 방법 및 전통적 주거 문화가 조선 시대의 사회 구조와 독특한 유교적 양반 문화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이러한 전통이 오랜 세월 동안 온전하게 지속되고 있는 점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에 손색이 없다고 평가했습니다.
안동 하회 마을은 풍산 유씨의 씨족마을입니다.
그리고 경주 양동 마을은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 두 가문이 500년 넘게 대대로 살아온 마을입니다. 현재의 양동마을이 이뤄진 것은 양민공 손소(1433~84)가 양동으로 장가와서 처가 마을에서 살면서부터입니다. 손소에 이어 그의 사위가 된 찬성공 이번(1463~1500)도 양동의 처가로 옮겨와 그의 후손들이 처가 마을에 살면서 손씨와 이씨의 집성촌이 된 곳입니다.
① 수원 화성에 대한 설명입니다.
수원 화성은 1997년 12월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② 경주 석굴암에 대한 설명입니다.
불국사와 함께 1995년 12월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③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 건물은 1995년 12월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⑤ 서울 종로에 있는 종묘에 대한 설명입니다.
종묘는 1995년 12월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10회 고급 9번 문제
문제해설
이 문제는 3점 문제치고는 조금 쉬운 문제입니다.
아래에 제시해드렸지만 12회 고급 3번 문제도 동일한 유형으로 출제되었죠?
그 문제는 2점 배점입니다...^^
답지로 제시된 유적에 유적명을 제시해주지 않았지만, 교과서에 실려 있는 일반적인 유적이 답지로 제시되었으니 아주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문제의 지도에 동그라미 친 부분은 평양 부근입니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 발견된 고구려 유물을 찾으면 되겠네요.
① 중국 길림성 집안에 있는 장군총입니다.
② 평남 강서에 있는 강서 대묘에 남아 있는 사신도 중 북쪽 방위를 나타내는 현무도입니다.
③ 중국 요령성 환인에 있는 고구려 첫 도읍지인 오녀 산성입니다.
④ 중국 길림성 집안에 남아 있는 무용총 수렵도입니다.
⑤ 중국 길림성 집안에 있는 광개토 대왕릉비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②번입니다.
12회 고급 3번 문제
문제해설
이 문제도 어려웠죠?
사실 이런 문제들이 다른 어떤 문제보다도 어렵게 느껴졌을 겁니다.
비슷한 문제가 10회 고급 9번 문제에 출제되었고, 답도 사신도로 동일합니다.
다음은 국내성(중국 길림성 집안)에 있는 유물이 아닌 것을 찾는 문제가 나올 수도 있겠네요.
자 그럼 문제해설을 해볼까요?
우선 지도에 빗금친 지역이 평안도와 황해도 일부 지역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지역에 있는 문화유산, 또는 지역과 관련있는 역사적 사실을 묻는 문제는 단골이니 중요 지역은 꼭 알아두세요.
아랫부분에 중요 지역은 다시 정리해드릴게요.)
자, 그럼 평양, 황해도 지역과 관련있는 문화 유산, 그중에서도 문제 답지에는 모두 벽화가 제시되어 있으니
평양, 황해도 지역의 무덤에 그려졌을 벽화를 찾으면 되겠지요?
사실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틈틈이 벽화들을 눈여겨 봐둬야함을 느끼게 해줍니다.
이 문제를 기술적으로 푸는 법을 알려드릴게요.
고구려 무덤 중에 벽화가 그려진 무덤양식은 굴식 돌방무덤입니다.
굴식 돌방무덤에 그려져 있는 벽화는 시기에 따라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주로 무덤 주인의 생활을 표현한 그림이 많았으나, 후기로 갈수록 점차 추상화되어 사신도 같은 상징적 벽화가 많이 그려지게 됩니다.
평양은 고구려의 마지막 수도(도읍)였으니 당연히 후기의 특징인 사신도 같은 벽화들이 많이 그려졌겠지요?
그러므로 제시된 벽화가 어느 지역, 어느 무덤에 그려지 벽화인지 모르더라도 고구려 벽화의 특징을 알고, 평양이 고구려 마지막 수도였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확률적으로 ⑤번을 답으로 골라 맞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여지겠죠?
그럼 답지에 제시된 벽화들을 하나씩 살펴볼까요.
① 국내성이 있던 중국 길림성 집안(지린성 지안) 각저총에서 발견된 것으로 고구려 귀족의 생활 모습을 알려주는 벽화
입니다.
② 중국 길림성 집안 각저총에서 발견된 씨름도로 고구려 때부터 씨름을 했음을 알려주는 벽화입니다.
③ 중국 길림성 집안 오회분에서 발견된 달의 신을 그린 벽화입니다.
④ 중국 길림성 집안 무용총에서 발견된 수렵도로, 고구려인들의 씩씩한 기상을 잘 나타내주는 벽화입니다.
⑤ 평남 강서대묘에 그려진 사신도 중 남쪽의 방위신인 주작을 그린 벽화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⑤번입니다.
※☆★☆중요하게 알아두자. ------------------------------------------
이렇게 지역을 표시해놓고 관련 유물, 유적을 찾는 문제가 출제될 수 있는 곳은
고구려의 수도인 국내성(중국기림성 집안), 평양,
백제의 수도였던 한강 유역, 공주(웅진), 부여(사비)와 수도는 아니었지만 익산 지역,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를 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지역과 관련 있는 유물들을 한번쯤은 파악해 두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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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와 관련하여 <시험전 꼭보기>나 삼국시대 자료실에 올려져 있는 고구려 벽화 내용을 한번씩 읽어보신 분이면
이 문제를 쉽개 맞출 수 있었을 겁니다.
고구려 벽화의 특징은 언제든지 시험에 출제될 수 있으니 꼭 알아두세요.
※고구려 벽화 --------------
고구려는 초기에 주로 돌무지무덤을 만들었으나, 점차 굴식 돌방무덤으로 바꾸어 갔습니다.
굴식 돌방무덤은 돌로 널방을 짜고 그 위에 흙으로 덮어 봉분을 만든 것으로, 널방의 벽과 천장에는 벽화를 그리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무덤은 만주 집안, 평안도 용강, 황해도 안악 등지에 널려 있답니다.
고구려 고분의 특징 중 하나가 천장의 모줄임 구조로, 이는 발해 고분(대표적으로 정혜공주 묘)으로도 이어졌어요.
고분 벽화는 당시 고구려 사람의 생활, 문화, 종교 등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초기에는 주로 무덤 주인의 생활을 표현한 그림이 많이 있고, 후기로 갈수록 점차 추상화되어 사신도 같은 상징적 그림으로 변하였다는 것 꼭 알아두세요.
13회 고급 5번 문제
문제해설
이 문제 유형도 자주 출제된다고 말씀드렸죠?
12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3번 문제 해설에서 이전에도 동일하게 출제되었던 문제유형이라고 해설하면서 경주를 포함해 중요하게 알아두어야 할 지역들을 선정해 알려드렸어요.
아래 링크를 클릭하고 참고하세요.
http://cafe.daum.net/hankuksalove/mXDt/49
특정 지역을 표시하고 그 지역에서 발굴된 문화유산이나 그 지역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묻는 문제들은 앞으로도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서 자주 나오는 유형으로 자리잡을 것이니 꼭 공부해두세요,
문제의 지도에 표시된 지역이 경주임을 파악하는 것은 식은죽 먹기죠?
모르겠다면 교과서에 제시된 지도에서 고대~근세까지의 중요지역을 꼭 파악해두세요.
삼국의 도읍, 중요 유적지, 가야의 금관가야와 대가야 위치, 신라의 5소경, 청해진, 고려의 3경과 12목, 조선의 4군 6진, 팔도 등등 중요 지역은 꼭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문제에 표시된 지역은 앞서말했듯 경주 지역이니,
문두에서 이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문화 유산이 아닌 것을 고르라고 했으니 그것을 찾으면 됩니다.
이 말은 경주에서 출토되었어도 다른 곳, 예를 들어 박물관 등에 있으면 볼 수 없는 것이고, 다른 곳에서 발굴된 문화유산이어도 경주에서 볼 수 있으면 되는 거네요.
① 경주 남산 근처에 있는 포석정이네요.
포석정은 역대 왕들이 전복 모양으로 생긴 유상곡수(流觴曲水)에 술잔을 띄워 놓고 시를 읊으며 연회를 하던 장소라고
알려져 있어요.
② 경주 남산 아래에 있는 경주 배동 석조 여래 삼존 입상입니다.
포석정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요.
이 불상은 중앙의 본존불과 좌우 협시불로 구성된 삼존 입상으로, 푸근한 자태한 부드러운 미소가 그 특징입니다.
③ 경주에 있는 분황사탑입니다.
특이하게 석재를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은 신라의 탑으로, 지금은 3층까지만 남아 있습니다.
④ 국보 제275호 기마 인물형 토기(騎馬人物形土器)입니다.
이 토기는 김해에서 출토된 가야 토기로 추정되지만 현재 국립 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http://cafe.daum.net/hankuksalove/bRb3/43
기마 인물형 토기와 유사한 형태로 신라에서 만들어진 국보 제91호 도제 기마인물상(陶製騎馬人物像)은 현재 국립 중
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답니다.
http://cafe.daum.net/hankuksalove/bRb3/226
⑤ 전남 구례 화엄사에 있는 화엄사 4사자 3층 석탑입니다.
이 석탑은 통일 신라의 석탑으로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얹은 후 꼭대기에 상륜부를 얹어놓은 전형적인 신라 석탑
의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위층 기단의 사자 조각은 탑 구성의 한 역할을 하고 있어 불국사 다보탑과 더불어 우리나라 이형(異形) 석탑을 대
표하는 석탑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요.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⑤번입니다.
13회 고급 29번 문제
문제해설
이 문제 형식도 자주 사용되네요.
지난 12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30번 문제에서는 <역사속의 경쟁자>를 이 형식으로 해서 출제했었죠?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문화 유산을 찾는 문제네요.
이런 문제를 풀 때는 두 가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첫째, 제시된 지역에 있는 문화 유산이 아닌 것(지역과 문화유산을 잘못 연결한 것)을 찾는 문제인가?
또는, 지역과 문화 유산이 옳게 연결되었으나 최고가 아닌 문화 유산을 제시해 놓은 문제인가를 구별해야 합니다.
이 문제는 모두 최고의 문화유산을 제시해 놓았네요.
그러니 제시된 대상 지역에 있는 문화 유산이 아닌 것을 찾으면 됩니다.
(가) 약현 성당은 서울 중림동에 있는 성당입니다.
약현 성당은 한국 최초의 서양식(고딕식) 벽돌 건물로, 1892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정동 교회나 명동 성당도 오래된 건물들이나 1898년에 완공되었답니다.
(나) 미륵사지 석탑은 전북 익산에 있는 현존하는 석탑 중 가장 오랜 된 석탑입니다.
이 탑은 목탑의 형태를 많이 지니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현재 서탑만 일부 남아 있었는데, 해체, 복원 과정이 한참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탑은 서탑을 참고하여 새로 복원하여 놓았습니다.
(다) 소수 서원은 경북 영주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 서원입니다.
이 서원은 풍기 군수 주세붕이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 서원인데(1543), 후일 풍기 군수 이황의 건의로
최초의 사액 서원이 되면서 소수 서원으로 개칭되었습니다.
(라) 봉정사 극락전은 경북 안동에 있으며,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목조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봅니다.
이 시기 건축물들인 부석사 무량수전(영주), 수덕사 대웅전(예산)과 같이 주심포 양식, 배흘림 기둥이 특징입니다.
(마) 상원사 동종은 오대산이 있는 강원도 평창에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현존하는 동종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725) 아름다운 범종입니다.
우리가 잘알고 있는 성덕대왕 신종(에밀레종)은 771년에 완성되었답니다.
⑤ 청주와 관련 있는 최고의 문화유산은 직지심체요절을 들을 수 있겠네요.
청주 흥덕사에서 제작된 <직지심체요절>은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입니다만, 현재 이 문화유산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어요..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⑤번입니다.
20회 고급 25번 문제
25. 안동 지역의 문화유산 답③
특정 지역, 특정 도시를 제시하고 그 지역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실, 또는 문화유산에 대한 문제를 파악하는 문제는 한국사능력시험에서 빠지지 않고 출제되는 유형입니다.
이 문제는 3점 배점이지만 문제가 쉽습니다.
한국사 공부를 한 분이라면 '봉정사 극락전'만 보고도 안동에 있는 고려 시대의 목조 건축물을 생각할 수 있을거예요.
또한 조선 시대의 병산 서원,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이천동 마애 여래 입상도 유명하니 안동은 금방 파악할 수 있습니다.
제시된 자료를 하나씩 간단하게 살펴 보죠.
봉정사 극락전(1363년 중수, 13세기 초로 추정)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목조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봅니다.
이천동 마애 여래 입상은 지역적 특색이 잘 나타나 있는 11세시경인 고려 시대의 불상입니다.
거대한 자연 암석을 이용하여 몸체를 만들고 머리는 별개의 돌로 조각해 올려 놓은 특이한 형식의 불상입니다.
법흥사지 7층 전탑은 통일 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전탑입니다.
병산 서원은 서애 유성룡을 배향한 서원입니다.
만휴정은 자연과 조화를 잘 이룬 조선 시대의 정자입니다.
ㄱ - 석촌동 고분은 서울 송파구에 있는 계단식 돌무지무덤입니다.
이는 장군총 등 고구려 돌무지무덤과 형태가 매우 유사해 백제 건국의 주도 세력이 고구려와 같은 계통이라는 건국
이야기의 내용을 뒷받침해 줍니다.
ㄴ - 이황은 벼슬길에 나서기도 했지만, 안동에서 주로 후진 양성과 학문 연구에 힘썼습니다.
그는 1560년에 도산서당을 짓고 유생을 가르치며 학덕을 쌓았는데, 이황이 죽자 제자들이 그 자리에 서원을 건립,
1575년(선조 8) 낙성과 함께 한호의 글씨로 도산이라는 사액을 받았습니다.
ㄷ - 안동 하회 마을은 풍산 유씨의 씨족마을입니다.
주거 건축물과 정자, 서원 등 전통 건축물들의 조화와 그 배치 방법 및 주거 문화가 조선 시대의 사회구조와 독특한
유교적 양반 문화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통이 오랜 세월 동안 온전하게 지속되고 있어 2010년에 경주 양동 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
되었어요.
ㄹ - 정약용이 유배 시절 머물렀던 다산 초당은 전남 강진에 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ㄴ, ㄷ으로 묶인 ③번입니다.
효율적인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공부법
카페에서 추천하는 부담 없는 [한권으로 끝내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교재로 중요내용을 공부하고
마지막으로 카페에 올려진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출문제해설을 꼼꼼히 공부하는 것입니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국사사랑방/한국사능력검정시험합격률/한국사능력검정시험기출문제/한국사기출문제해설/
한국사능력검정시험난이도/한국사능력검정시험합격률/한권으로끝내는한국사능력검정시험
첫댓글 수고하시고 감사드립니다^^
세밀한 해설 감사합니다!
자세하고 면밀한 해설에 감사드립니다(_ _)
기출문제해설은 여기가 최고라고 하던데-ㅋ 역시- 감사해요^^
정말 최고예요~^^
해설이 자세해서 정말 좋아요~~
해설이 정말 좋네요 ㅎㅎ
해설이 상세해서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북한지역의 지리를 잘 모르다보니, 조금 헷갈리는 부분이 있네요ㅠ
이 지역에 사니 쉽게 풀 수 있네요 ㅋ
3점짜리라니 ㅜㅜㅜㅜ 너무 어렵네요 지역이랑 인물을 테마로 나온 문제는 항상까다로운거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