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예술 이야기_“내가 예술가입니다. 삶이 예술입니다”
♧ 두 번째 나의 예술 이야기 “시간과 공간의 꽃_인연”
5. 김성민: 인류학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하려는 1번개미
(귀로 마음 듣기)
(눈으로 마음 듣기)
안녕하세요, 1번 개미 김성민입니다. 저는 인류학과 생명과학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입니다. 우선 제2회 숲의 향연에 공연자로 참여하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인류학적 시선으로 인간과 자연, 생명과 생명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은 사람입니다. 제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인류학적 시선’인데요, 인류학적 시선을 갖고 살아가다 보면 삶을 조금 더 아름답고 따뜻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제가 생각하는 ‘인류학적 시선’에 대해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말로 이 이야기를 시작하면 좋을지 고민을 하다가, ‘움벨트’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움벨트’는 야곱 폰 왹스퀼이라는 학자가 자신이 쓴 책에서 어떤 동물이 경험하는 환경세계를 가리키기 위해 사용한 표현입니다. 사실 전 그 책을 끝까지 읽어본 것도 아니지만, 그냥 멋대로 움벨트를 ‘어떤 존재의 세계’라고 이해해 왔습니다. 고등학교 때도 그랬는데요, ‘움벨트’라는 이름을 가진 자율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우리 모두의 움벨트가 하나로 이어지고, 다른 누군가의 움벨트에서 세상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면, 그때 비로소 “당신도 연결되었나요?”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게 된다’라는 취지의 발표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인류학이라는 분야를 처음 접한 것은 그로부터 1년쯤 뒤인 고등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우연히 네이버 지식백과의 ‘생태인류학’ 글을 읽고 나서부터 인류학과에 가야겠다고 결심했는데, 인류학을 알면 알수록 도통 어떤 학문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인류학과에 입학하고 난 후로도 ‘인류학은 뭐 하는 학문일까?’하는 고민은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인류학을 연구 대상이나 주제를 통해 정의하기는 실제로 어려운 게 맞더라고요. 인류학을 하시는 분들 중 대다수는 인류학이 ‘방법론과 관점을 통해 정의되는 학문’에 가깝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럼 도대체 인류학적인 방법론과 관점이란 무엇일까 – 에 있어서 사람마다 대답이 다를 텐데, 제가 내린 답은 인류학이란 ‘내가 사랑하는 세상의 범위를 넓혀 주는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전 어떤 경험을 하면서 이런 답을 내리게 된 걸까요. 1학년 때 ‘과학기술과 문화’라는 수업을 들으면서가 시작이었던 것 같습니다. 수업을 들으며 여러 과학기술인류학 연구를 접했는데,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가 ‘인공지능 이면의 인간 노동’에 대한 논문이었어요.
인공지능은 오늘날 사회에서 굉장히 자율적인 것으로 그려지는데, 사실 AI를 지탱하기 위한 수많은 비가시화된, 그렇기에 조건이 열악한 인간 노동이 존재하고, 우리는 ‘AI가 인간 노동을 대체할 것이냐’보다도 ‘AI에 대한 우리 사회의 담론은 어떤 인간 노동을 비가시화하고 있는가’에 먼저 주목해야 한다는 요지의 논문이었는데요. 이걸 보면서 ‘아, 인류학은 무언가를 가시화하는 작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꽤 오랫동안 제게 인류학이란 ‘가시화 작업’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을 낯설게 보고, 그 이면의 맥락을 들추어서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인류학이구나, 그런 점에서 인류학이 실천적 의미가 있고, 참 따뜻한 학문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건 결국 인류학이 비가시화된 것들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그걸 좀 더 일반적인 하지만 개인적인 차원으로 바꾸어 말하면, 인류학적 시선은 제가 보지 못하고 있는 세상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좋은 도구라는 뜻이었고요. 그러다, 작년 가을에 ‘인류학연구방법실습’이라는 전공필수 과목을 들으면서 처음으로 인류학의 정체성과도 같은 현지조사를 하게 되었어요. (현지조사는 말그대로 ‘현지’에 들어가서, 그곳 사람들의 생활을 함께하며 자료를 수집하고 해석하는 방법입니다.) 저는 관악산공원을 관리하시는 단속반, 시설관리반 분들과 시민단체 분들에게 허락을 받아서 연구를 진행했는데요. 연구 자체도 재미있었지만,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그 연구를 하다 보니 관악산 관리자 분들에게, 그리고 관악산에 정이 많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인류학 연구는 기본적으로 무언가를 깊이 있게 살펴볼 것을 요구하는데, 무언가를 깊이 있게 살펴보다 보면 그걸 좋아하게 되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짧은 시간이지만, 몇 년 동안 인류학을 배우며 인류학적 시선으로 무언가를 보면 그걸 좋아하게 된다는 걸 느꼈습니다. 인류학은 가시화하는 작업인데, 단순히 들춰내기만 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그렇게 들춰내는 과정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랑하는 세상의 범위가 넓어지는 그런 작업인 것 같습니다. 인류학 연구는 아직 ‘내 세상’이 아닌 세상에 과감하게 들어가서, 그곳이 어떤 세상인지 하나하나 살피는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움벨트’를 갖고 이야기하자면, 인류학적 시선으로 어떤 존재를 본다는 건 그 존재의 움벨트에서 경험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지 익혀 가는 과정인 것 같고요. 결국 저는, 돌고 돌아 고등학교 1학년 때 말했던 ‘당신도 연결되었나요?’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기 위한 학문적 관점으로 인류학을 찾아낸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류학을 보는 입장이 저랑 비슷한 학자가 한 분 계신데요, 바로 팀 잉골드라는 분입니다. 최근 한국에도 잉골드의 저작들이 번역 출간되었는데, 그중 하나인 <모든 것은 선을 만든다> 마지막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참여 관찰이란 조응의 실천이다. 우리가 함께 일하는 이들에게 주의를 기울이며 살아가는 방법이다. 바로 여기에 인류학의 목적, 역동성, 잠재성이 있다고 나는 주장한다.” 제가 생각하는 인류학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제게 있어 ‘인류학적 시선’이 ‘삶의 태도’의 일종이라는 걸 이 문장을 통해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제가 생각하기에 아름다운 이 태도를 잊지 않고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인류학적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 제2회 '숲의響然_자연의소리' 공연 전체 보기 https://cafe.daum.net/nanjinoeul/r2W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