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아주 어릴 적 읽었던 소설의 제목이다. 이화여대에 재학중인 여학생이 쓴 자전적 소설로 일기처럼 쓰여진 그 숨김없는 내용으로 인하여 당시로선 파격적인 인기를 끌었던 소설이었다. 센티멘탈 하고 풍부한 감성으로 쓰여진 수채화처럼 아름다운 연애 이야기. 내 나이 십 육 세쯤에 읽었던 그 소설은 한창 센치해 있던 나의 사춘기를 사정없이 흔들어 놓았다.
너무 오래 전에 읽었기에 세세한 내용은커녕 줄거리조차 잘 생각나지 않지만, 나 또한 그 소설의 여주인공처럼 연애하길 바랬고 그녀처럼 슬픔을 강물처럼 흘려 보내길 원했다. 부유하게 살던 그녀의 집안이 사업 실패로 망하고 그녀가 누렸던 부의 상징들에 빨간딱지가 붙었을 때 갑자기 그녀에게 닥친 시련과 슬픔, 혼란으로 비오는 거리를 뛰처 나가 정처 없이 빗속을 거닐다 연인 보헤미안을 만나 아끼던 순정을 나누던 날, 이부자리에 생긴 빨간 장미꽃을 보며 하나된 기쁨을 나누던 두 사람의 언어가 지금 이 시점에서 생각해 보아도 너무 아름다웠다.
아무튼 나는 그때 이 소설로 인하여 명동이나 종로에 "돌체" 나 "세시봉" 이란 음악 감상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대학생도 여고생도 아닌 공순이 신분으로 없는 시간을 쪼개어 음악 감상실을 드나들었고 내용도 모르는 팝송을 신청하기도 했었다.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 바바리 코트를 걸치고 우산도 없이 비를 맞고 정처 없이 걸었던 것도 그 소설의 영향이었으리라. 또한 미지의 나의 연인을 보헤미안이라 이름짓고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소설의 남자 주인공처럼 낭만적이고 멋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오염되지 않은 詩적인 언어로서만이 나의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다며 건방을 떨었으니...ㅎㅎ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애인은커녕 친구 하나 만들 수 없었다. 대신 혼자서 思考 할 수 있는 많은 날들이 나를 성숙하게 만들기도 했다. 수많은 시간과 좋은 사람을 헛되이 보내고 나서 내 나이 불혹이 지나고 나서야 그걸 깨닭았으니... 그런 사람을 찾으려면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 주어야 한다는 걸. 아무튼 나의 사춘기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이 소설을 읽고 독후감을 남기지 못한 걸 무척 후회한다.
그랬다면 그때 그녀의 소설 내용과 나의 감정을 좀더 세밀하게 추억해 볼 수 있을 텐데... 오늘처럼 하염없이 비오는 날 긴 머리칼을 적시며 참을 수 없는 슬픔에 못 이겨 뛰쳐나가던 그녀의 모습이 비 내리는 유리창에 실루엣처럼 떠올라 잠시 반추해 보았다. 이 소설의 내용으로 인하여 그녀는 당시 명문 대학으로 요조숙녀만을 배출 해 온 이화여대의 명예를 훼손했다 하여 일약 유명한 소설가가 된 그녀를 이화여대는 과감하게 제적한 걸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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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당시 화제작이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