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 17 (하연)
한솔이 내 옆에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는다.
멈춰있던 4년간의 시간이
삐걱거리며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고개를 돌려 한솔을 바라본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정말 한솔 너가 맞는거니?
왜.. 이렇게 현실감이 느껴지질 않는건지.
이렇게 될것을 예감했던건가?
당연한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운명이.. 이렇게 흐르게 될 것이라고,
언젠가는 한솔과 나.. 또 다시 이렇게 만나
같은시간, 같은공간에서... 저 먼 수평선 먼곳을
함께 바라보게 될거라고..
지금 정신없이 불어닥치는 바람이..
말해주고 있는듯하다.
시선을 느낀 한솔이 흩날리는 긴 머리카락을 훑으며
슬쩍 몸을 돌려 날 바라본다.
다가오는 입술..
눈을 감는다...
정민이.. 기다리고 있을텐데...
정민?
그녀의 이름과 얼굴이 떠오르자 서둘러 한솔의 입술을 떼어냈다.
왜 갑자기...
"왜? 왜그러는거야?"
흔들리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한솔이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있다.
"아니야.."
이번엔 내가 한솔의 턱을 끌어당겨 그녀의 혀를 느낀다.
3일간의 시간...
후회없는 시간이 되도록.
미련이 남지 않도록.
자꾸 떠오르는 정민의 표정을 황급히 지우며,
한솔을 느꼈다....
....
"너.... 혹시. 그 정민이란 여자 생각하고 있는거야?"
푸른색과 흰색이 섞인 두꺼운 솜이불을 가슴까지 덮고있던
한솔이 묻는다.
"아니야."
거짓말을 한다...
사실, 한솔과의 섹스중간중간 떠오르는...
정민의 표정들...
섬짓한 느낌이 들어 멈췄다가 다시 한솔에게 집중하고,
그러다보면 난 또다시 어느순간 멍해져있는날
발견하곤했다.
짧게 유희를 접고,
침대에서 일어나 담배를 무는 날 의아하게 바라보는
한솔의 눈길을 마주볼수가 없어서
피해버렸다.
"너... 그여자 좋아하고 있구나?"
"그렇지 않다니까!!"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버렸다.
이게 아닌데....
내 옆엔 지금.. 한솔이 있는데.....
그토록.. 그리워하던....
오랜시간동안을 느끼고 싶어하던 한솔이...
이렇게 내 옆에 있는데...
"널 알아.... 넌 누군갈 좋아하면... 바보처럼 멍해져.."
한솔의 한쪽입술이 슬쩍 치켜져 올라가며, 살짝 미소가 지어진다.
마치.. 비웃음 처럼.... 비난하는것 처럼.
내가... 정민을 좋아하게 되어버렸던가?
청평. 그녀의 별장에서 보냈던 하룻동안의 그 따스함이....
나의 뇌리속에 어느새 박혀버린건가?
"shit.."
조용히 읊조리고 담배한모금을 길게 빨았다....
텁텁한 담배연기가... 식도로... 위로... 간으로.... 심장으로..
쏟아져들어온다.
"당장 가.."
"뭐?"
"그녀에게 올라가라고...."
"그런게 아니야."
"됐어. 이봐 유하연..."
하연이 일어서자, 그녀의 몸을 감싸고있던 솜이불이 스르륵 밑으로
내려갔고,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한솔의 몸이 내게 느릿느릿 다가와
내 앞에 앉았다.
꿈에서 보던... 한솔의 눈이 내 앞에 와있다...
가슴이.. 아파온다.
"하연아.... 난 이제 됐어... 어차피 난 니곁에 있어줄수 없고...
보내긴 싫지만... 이번엔 나처럼 정민이란 여자를 놓치는 실수
다시는 하지마. 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진심이야"
그녀가 옷을 하나씩 하나씩 입는 모습을...
멍하니 앉아서 보고있다.
담배연기 사이로 보이는 한솔의 마지막 몸짓은
날 더욱 더 절망속으로 몰아넣고있다...
이젠... 정말 타인이 되는거구나...
이렇게.... 우린 안될운명이었던거였지..
처음부터...
처음.. 부터....
옷을 모두 입은 한솔이 떨고있는 내 몸위에 자신이 덮고있던 솜이불을
가져다 둘러준뒤, 입술에 촉촉한 키스를 해주고
힘겹게 일어섰다.
"기억해 유하연.... 널 사랑한건 진심이었어..."
말을 마친 한솔이 재빨리 내 시야속에서 사라져간다....
쾅!
닫힌 문과 함께....
조용히... 한숨을 내쉰다......
'3일후야.. 꼭.. 기억해...!'
정민....
그녀가..... 대체 뭘까?
내안에 어떤 존재일까?
정민이란 사람이.... 도대체 누구길래...
어떤 수를 써서 내 안의 한솔을 내 안에서
이만큼이나 지워버린것일까?
처음 취재하면서 만났던... 그녀의 건방지고 차가웠던 모습..
우연처럼 만났던....그 bar...에서 느꼈던 동질감..
,... 얼어붙은 호수곁에서 만난... 필연처럼 느끼게까지하는.... 인연..
지글거리는... 벽난로와....
우울한 재즈와...
감미로운 러스티...
머리를 마구 헝크러뜨렸다....
정민이... 보고싶다...
'3일후야... 꼭.. 기억해......"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입고, 가방을 메는 내내 멍했다...
지겹도록 긴시간을 타고왔던 그 기차안에 또다시 몸을 실었을때도...
정신없이 스쳐지나가는 낯선 풍경속에서도...
끊임없이 덜컹이는 기차바퀴 소리를 들으면서도...
어두운 기차안... 조용히 잠들어있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서도....
머릿속은 정리가 되질 않는다...
정민은... 왜 내게 그렇게 잘해주는거지?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려... 기차의 이음새칸에 들어가
담배를 문다....
이틀사이에.. 너무 많이 태워버린건가?
가슴과 목이 먹먹해짐을 느끼면서도,
깊게.... 들이마신다.
...
서울역에 도착했을때는 벌써 날이 밝아있었다...
예정대로라면, 오늘 정민과 난 유럽으로 떠났겠지...
어슴푸레히 찬란한 생기로 가득찬 서울역 이곳 사람들의 발길이
바쁘게 움직인다.
털모자를 쓰고.. 파카를 입고... 또는 패딩점퍼에 긴머리를 휘날리며
한무더기의 여자들이 여행갈 설레임을 감추지 못하며
재잘거리며 아직 오지 않은 일행을 기다리고 있고,
택시들은 길거리에 줄지어 서있다...
차가운 입김을 내뿜으며 그 택시중에 한대를 잡아타고...
집으로 향한다..
서울에 왔군.....
멀고 먼 부산....
내 마음속에 전설로 남아라.....
사랑했었던 사람이 있었다... 라고...
이젠 미소지으면서 말하게 되겠지...
씁쓸한 마음을 지우고....
집으로 향한다...
이 황량한 서울 한복판에 아주 자그맣게 위치한...
나의 집....
"야 이자식아! 너 어딨는거야!! 내가 부장님한텐 잘 말씀드렸으니까,
사표건은 잊어버리고, 당장 돌아와서 싹싹빌어!
이 왠수같은 자식! 넌 도대체가 들어온지 몇일이나 됐다고 벌써부터
속을 썩이는거야? 일이 산더민데..
아무튼.. 듣는데로 전화해!!!!"
자동응답기를 켜자 김선배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많이 걱정된다는듯.. 격양되고 화난 목소리.....
사표가... 처리되지 않았다......
마음속 커다랗게 잡고있던 무게감 중 하나가 날아가며
조금 편해진다.
그리고.. 정민과의 짧은 유럽여행이 끝날때까지, 선배가 잘 버텨주길 바라며,
응답기를 껐다..
이젠..... 여행준비를 해야지....
한동안 쓰지 않았던 커다란 여행가방을 장농위에서 꺼내자
풋풋한 먼지가 잔뜩 일어난다...
먼지냄새가.... 원래 이렇게 좋았던가?
나도 모르게 주루룩 흘러버린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내며 가방을 열었다...
내일이면... 정민을 볼 수가 있다.
어쩌면.... 이젠.... 4년이 넘는시간동안 굳게 닫쳐있는 내 마음을
열수 있지 않을까....
라는... 어렴풋한 확신.
... 한솔이 아닌....
다른 사람을... 마음속에 담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정민....
그녀의 얼굴을 떠오른다...
IF--- 18(정민)
그녀가 왔다...
시선을 한곳으로 고정시키고....
멍한 미소를 출입문을 향해 짓고 있을 때.....
시간의 벽에 나를 가두고 포기해버릴 쯤...
그녀가 성큼성큼 걸어서....나에게로 온다..
긴 머리를 한 웅큼이나 잘라버린...
그래서 성숙한 느낌의 그녀가.....
통유리로 이루어진....
은색 테두리의 육중한 문을 힘껏 밀고.....
나에게 손을 흔들며...
그녀보다 더 커보이는 가방을 밀며...
하얀 햇살들로부터.....부서져 버리면서..
하얀 조각들을 걸음마다 뿌리면서....
그렇게 천천히 나에게로 다가온다...
나는 기쁨으로.....
심장의 고동소리로...무너져 내린다...
시간의 벽이 기쁨으로 녹아 내린다..
"정민씨!"
날 부르며..점차 다가온다.
앉아있던...자세에서 어중간한 자세로....그렇게 일어났다.
"왔네..."
"당연하지...내가 공짜를 마다하겠어?"
고개를 살짝 치켜들고....한껏 미소를 짓고 있는 그 모습...
그녀를 더 자세히 볼 수 있도록...
시야를 가리는 선글라스를... 얼굴에서 거둔다...
하얀 폴로티셔츠......
커다란 여행가방..
군데 군데가 뜯긴.....청바지...
열리는 출입문 사이로 살짝 살짝씩 불어오는 바람사이로
찰랑거리는 머릿결....
"어...좋은걸?.."
눈을...감고 바람결에 느낀 그녀의 향기에 취해...
코를 벌름거리며...그녀의 주위를 맴돌았다....
"뭐,뭐가 좋단 말야?..그보다 몇 시 출발이야?"
하연의 당황한 듯한 목소리...에 눈을 뜨자...
목소리 보다 더 당황한 듯한....그녀의 볼이 발갛게 상기됐다..
"응?.....아니...향기가 좋아서...이 향수 뭐야?"
"풋~... 몇 시 출발이냐고 하니깐...왜 딴소리야?..."
눈을 살짝 흘긴 후...약간의 헛기침....
내가 입을 있는 한껏 내밀고....뽀루퉁 해 있자...
그녀다운 미소를 띄우며...얘기한다..
"이거 다비도프야...그나저나...니 향기가 더 좋은걸?"
"그래?...그렇군"
킁킁거리며....내가 한 것처럼 내 주위를 맴도는 그녀를...멈춰 세운다..
반짝이며..빛나는 두눈이...내 시선에 고정된다..
약간의 기분좋은 다툼...
그녀와 만남의 시작이다.....
첫 법정 취재... 햇병아리 기자...
그리고.....한잔의...러스티..
그녀와 함께 했던 기억이....한편의 영화처럼...스치며 지나간다..
"손....잡아도 돼지?"
"흐음....이미 잡았잖아.."
하연의 조그마한 손을 슬며시 잡아본다...
흠찟 놀란 듯한 그녀의 액션에 손끝으로....살며시...손등을 쓰다듬는다..
하얗게...투평한 살갗만큼이나...부드러운 느낌이..
손의 촉감을 타고 내 안으로 타고 들어온다..
이미 잡았으니 어쩔 수 없다는 듯....거부하거나...
어떠한 내 행동에도....동조하지 않는 그녀..의 미소에..
눈물이 날만큼..머리가 아찔할 정도의 상큼함이 느껴진다..
"아냐....출발은...전용기로 할 꺼야...지금이라도 출발 가능해.."
"설,마...운전도 니가 한다는 건 아니겠지?"
그녀를 자세히 보기 위해 벗었던...선글라스를...다시 쓰며...
그녀의 묵직한 여행 가방을 들어올렸다...
"응...내가 할 꺼야...말했지?..단 둘만의 여행이라고..."
"그래...그랬던 것 같다..."
내 뒤를 종종걸음으로 따라오고 있는 하연을...
공항의 뒤편... 개인기 전용 공항으로 가기 위해....
페라리의 앞좌석에 태웠다.
차가운 겨울 바람에....두 볼이 얼어버릴 것 같았지만,
내안에 자리 잡은....하연의 미소에...따스함이...가슴에 퍼져 나간다.
"저기...유하연양....어디 가실겁니까?"
"정민씨 맘대로 가.."
"그래....우리...런던부터 가자"
오랫동안 잊고있었던....비행의 기분을 느끼며....기계를 작동시켰다..
부르릉....
비행기가 부르르 떨리며..., 이륙을 준비하고...약간 긴장한 듯한..
하연의 두볼에...살짝 키스하고...
하얀..구름 사이로....달려 나간다..
"하연아...고마워...."
If --- 19 (하연) - 완결
공항으로 가는 도로는...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지독한.. 러시아 워..
시계를 바라보고.. 정면을 바라보고..
를 반복하는 사이...
안달하고 있었고...
포악해지기까지 했다...
빵빵-.. 클락션을 누르자.. 입에선.. '씨발...'이 튀어나온다..
정민을 더이상 기摸??한다면... 정말 볼 면목이 없어지는데...
로타리를 지나, 드디어 길이 뚫리자,
밟고있는 엑셀에 힘을줘서 있는힘껏 달렸다...
정민이 비행기 시간을 말해주지 않은바람에.,
더 조급해할수밖에 없는거다...
그리고,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뛰어들어갔다.....
2청사.....
통유리문을 열자마자... 마주쳐진 눈....
오랜시간을 기다려왔다는듯이... 가방위에 힘겹게 걸터앉아 있었고,
검은 썬그라스를 꼈음에도...
반가움에.. 감격하는 듯한... 느낌이..
고스란히 전달되어왔다..
"정민씨"
미소를 흘리는 그녀의 모습이...
눈부시다....
라고 생각이 드는순간 나도모르게 그녀의 이름을 불떠?
그녀는 벌떡 일어나 썬그라스를 벗는다....
두 눈안에... 미소가 가득하다....
그녀의 검은눈에 비친.. 나의 두 눈도.. 가득 미소를 짓고있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우리 두 사람의 눈빛에 어려, 행복한 빛을 발하고있다...
사랑은... 이래야한다...
보고있으면.. 행복한 미소가 흘러나오는...
사랑은.....
이렇게.. 함께 웃는거다....
어쩌면.... 난.... 이제.. 행복할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든다...
그녀가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나의 냄새를 맡는다....
그런 그녀의 윤곽을 따라.. 나의 눈도 함께 돈다...
"어...좋은걸?.."
"뭐,뭐가 좋단 말야?..그보다 몇 시 출발이야?"
하지만, 금방 어색해지고 민망해진 난
부끄럽게도 얼굴이 빨개지고 말았다..
"이거 다비도프야...그나저나...니 향기가 더 좋은걸?"
"그래?...그렇군"
이번엔.. 내가 그녀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고,
그런 날 멈춰세운 정민이 내 두눈을 자신의 눈으로 고정시킨다.....
이번에.. 찾아온 사랑...... 놓치지 않을꺼야.....
한솔의 주문처럼.....
행복해질꺼야.....
또한번... 우리는 서로의 미소속으로 빨려든다...
사춘기적에 느꼈던.. 그런종류의 풋풋함을 느끼며,
그 시절로 돌아간듯 서로 손을 마주잡고,
그녀의 전용기가 있는곳으로 날아간다...
눈이 마주칠땐.. 미소를 지어주고...
재잘거리며...
달려갔다...
부르릉.....
비행기에 시동이 걸리자, 약간 긴장한듯이 보이는 정민이
내 뺨에 가벼운 키스를 한다..
앉아있기에도.. 답답하고 좁은 비행기안...
전용기라는 불안한 비행기속에 앉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불안하지 않다...
정민이 운전하는 비행기니까....
아니.. 그것보다.... 그녀와 함께 있으니까.......
비행기가 이륙을 했고,
새하얗고 가벼운 구름속을 지나
그녀와 함께.. 하늘을 난다...
"런던 많이 가봤어?"
"꽤.. 자주 가본 편이야..."
"다행이다.."
"뭐가?"
"길 잊어먹는 일은 없을거아니야..."
나의 싱거운 농담에도 정민은 금새 웃어버린다...
"후아...!!"
"왜?"
"저기좀 봐..."
몇천피트나 되는 우리의 몸 아래...
시퍼렇게 빛나는...
아주 커다란 바다가... 어느덧 펼쳐지고 있었다....
가슴이 터질것 같은.. 아름다움......
쉴새없이 반짝이는... 물결의 움직임....
감동이... 벅차오른다...
"멋있지? 언제봐도... 질리지 않는 풍경이야.."
정민역시 감탄스러운듯.... 바다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끊임없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바다가....
태양의 빛을... 우리에게 돌려준다...
우리를.... 축복해주고 있다...
비록 환영받지 못하는 사랑일지라도....
그러니까 더욱더 행복하라면서....
생끗... 미소를 지어준다....
"정민아...."
"응?"
"... 그냥... 편하게... 이름이 불러보고 싶었어...."
"크크.. 그래.... 하연아..."
"응?"
"나도... 너 이름... 한번 불러보고 싶었어..."
시끄러운 비행기 소음속으로...
달콤한 정민의 속삼임에... 또한번... 행복해진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걸까... 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정민아...."
"맘껏 부르시라구요..."
빙그레 미소짓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정민아..."
"정말 맘껏 부르네?"
"... 너 사랑해도 돼?"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정민이 고개를 돌려 날 바라본다....
"왜? 싫으면 말고... 왜 놀라고그래?"
"하연아..."
"응?"
"여기에서.. 너가 그런말하면......."
두눈이 마주친다....
"말해.."
"... 키스해버리고 싶잖아....."
높은 고도를 유지해 이제는 조금 여유로워진 정민의 오른손을 잡고,
그녀의 턱을 돌렸다....
긴장감이... 온몸을 감싼다....
그렇게.. 느리게....
정민에게 다가간다.....
이.. 축복받은 시간의 흐름을....
평생 기억하리라.....
우릴 빛춰주는 이 햇살 하나하나까지.... 기억해서..
그 무엇도... 잊지 않으리라....
이 달콤한 느낌.....
영원히... 지속되길.......
덜컹.....
그때, 갑자기 비행기가 요란하게 위아래로 한번 흔들렸다...
황급히 다시 조정판에 손을 댄 정민의 표정에 긴장감이 맴돈다.
"무슨일이야?"
역시 긴장한 내가 묻자, 정민은 불안한 표정으로 대답도 잊은채 이곳저곳을
살펴보느라 여념이 없다...
바쁘게... 정민의 손이 움직여지고.....
한참을 그렇게 살펴보던 정민이... 슬픈표정으로......
낙담한 표정을 지으며...
날 바라봤다....
그런표정 짓지마... 웃어... 미소지으라고.....
말하지 않아도... 정민의 표정이... 모든걸 말해줬다...
덜컹임이.... 점점... 심해지고....
이젠 아예 비행기가 불안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미안해... 하연아............. 어쩌지?"
현실감이.... 전혀 없다....
미안하단 말도....
실수로 발을 밟은후에... 하는 사과처럼......
들려올 뿐이다...
"방법이 없는거야?"
정민이 고개를 끄덕인다.....
"너탓이 아니야... 미안해하지마..."
정민의 두 볼을 나의 양손으로 감싼다.....
"하연아....."
당당하고... 건방지던... 그녀의 얼굴에서... 눈빛에서.....
눈물이 비추고... 목소리가 떨려오고 있다....
그녀는... 두려워하고 있다...
"괜찮아..아무일 없을꺼야...."
.. 나도 두렵다...... 하지만... 그녀를 안심시켜야 한다...
"급하게 하지말고.. 천천히 해봐... 천천히.. 생각해..."
그러나, 정민의 얼굴은 더욱더 두려움의 그늘이 가득해졌다....
이.. 높은 하늘위에서... 모든것이.. 끝나는가?
하지만... 내 옆엔... 여전히 정민 있다....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연다...
"대답 안해줬어...."
"무슨대답?"
비행기는 정신없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커다랗게 소리지르지 않으면
전혀 들리지도 않을만큼... 소음이 커져있었다....
"날 사랑한다는..... 말.... 해줘야지... 난 했는데, 넌 안했잖아..."
짧은 순간이었던가?.....
영원처럼 긴 순간이었던가?....
날 바라보던 정민이.. 조정판에서 두 손을 거둬들이고...
벨트를 풀르고 몸을 돌려 날 바라봤다...
나 역시.. 벨트를 벗어던지고... 정민을 바라본다...
"유하연...... 좀더 근사하게 고백하고 싶었는데.....
널.... 사랑해..... 나와도 바꿀 수 있을만큼....
영혼을 받쳐서......."
불안해서인가?..... 감동받아서?...
눈물이... 흘렀다.......
이젠 얼굴조차 제대로 안보일 정도로 비행기는 떨고있다...
"불공평하잖아... 그렇게 멋있게 고백을 해버리면......."
"그럼 너도 하면 되잖아...."
넓고 풍부한 평화로운 태평양 바다 한가운데....
바닷속에는... 고래들이 헤엄쳐다니고...,
해파리떼들이 흐르고....
산호초들이 물결에 휩쓸리는....
한낯의 풍경속....
그 하늘위에서.......
흔들리는 작은 물체속에서...
두 여자가... 두손을 꼭 마주잡고, 소음에 질새라 비명처럼 소리를 지른다.....
"사랑해!!"
펑퍼펑....
둔탁하고 날카로운 소리의 폭발음이 여러번 들리고...
검게 타버린 물체의 파편들이...
바닷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난 후에도...
공허한 하늘위에선....
한동안 여자들의 비명이.. 멈추지 않고있다...
마지막남은.. 잔재가....
그토록 아름답던 푸른 바닷속으로...
사라질때까지도.....
그리고... 하늘은 푸른빛을 되찾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여전히.. 바다는... 평화롭고.....
하늘의 태양은... 따사롭다......
아주... 조용하고......
아주... 행복한......
태평양의... 바다... 이 한가운데.........
눈부신 햇살 한올 한올이...
바다의 파도결을 일일이 감싸준다.....
파도가 햇살에게 싱긋 미소지으며 말한다....
"널 사랑해..."
if---20정민(에필로그)
새하얗고 가벼운 구름속을 지나
그녀와 함께.. 하늘을 난다...
하연과 함께 나는...하늘....
계기판은 이상없이 잘 돌아가고 있고....
비행속도...비행로...모든게 다 정상이다..
비행기....조정이...사실....3년만이다...
그동안 잊었던..감각을 찾기 위해....
하연과의 특별한...여행을 위해...
어제 시험 비행후...
아무런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그녀와 함께..탑승한 것이다..
그다지 넓지 않지만, 조정석 뒤엔...그녀가 쉬고 먹을만한...
그런...쉼터가 마련되있다...
바로..어제...준비했다...
나와..그녀를 위해..
"하연아...뒤에서..좀 쉬어.."
"아니...됐어"
조정석의 옆자리가 불편함에도 그녀가...내 곁에서 환한 웃음을 지어주고있다.
곁에서 환한..미소를..지어주고 있는 하연을 보자..
그동안의...걱정과....우려가 기우였음을...느꼈다..
사무실의...한켠...
노란 서류봉투....그것도....
다...
그냥...나의 기우였다...
하연과 함께 나는...하늘....
계기판은 이상없이 잘 돌아가고 있고....비행속도...비행로...
모든게 다 정상이다..
"런던 많이 가봤어?"
느닷없는 그녀의 질문에.....고개를 돌려 그녀를 본다..
그 환한 미소...천진스런..미소를..두고...나도 미소 지어본다..
"응...꽤 자주 가본 편이야.."
"다행이다.."
"뭐가?"
"길 잊어먹는 일은 없을거아니야..."
그녀가 옆에서 새처럼...
간지러운...뉘앙스를 띄고.....새처럼...
아름다운...극락조처럼...
지져귄다.....
삼년...아니...
인생에서 다시 찾아온 마지막...그녀를 위해..
난..최선을 다한다..
계기판 하나하나...기체하나하나...
기류하나하나...
태평양의 파란 바다와...하늘의 하얀 구름들이..잘 어우러져...빛나고 있다..
하연의 빛나는 미소...
"후아...!!"
"왜?"
"저기좀 봐..."
발치 아래로....하얀 구름 사이로..넘실대는 초록빛...바다에...
은실을 엮은듯한.....태평양의.....바다에...그녀도...나도 감탄한다..
"멋있지? 언제봐도... 질리지 않는 풍경이야.."
대자연의 힘앞에....
넘실대는 바다위에서...그녀와..만큼이나..반짝이는..
바다를 내려다보는 지금 이순간....난..행복하다..
감사한다......대자연의 힘에...그녀가 미소지을수 있으니..
"정민아...."
"응?"
그녀의 부름에......반사적으로..행동하는 내가 좋다..
"... 그냥... 편하게... 이름이 불러보고 싶었어...."
"크크.. 그래.... 하연아..."
"응?"
"나도... 너 이름... 한번 불러보고 싶었어..."
나도...사실....
니 이름....
이렇게 맘껏 부르고 싶었어...
그래...맘껏 불려봐.....유하연....
"정민아..."
"정말 맘껏 부르네?"
"... 너 사랑해도 돼?"
그녀가....나에게 속삭이듯 달콤하게 말한다...
마술에...걸린다..
그녀의 속삭임.....천사의 마술에 걸린다...
파란하늘....
미희와...함께 날았던...파란 하늘...
그...하늘 위에..나와...하연이 있다..
행복한...여유로움이 찾아들었다..
따사로운...태양빛 아래로 축복하듯 우리를 비껴가는 구름....
하연의...손을 살며시 잡아본다....
덜컹.....
기체가....흔들리기 시작했다....
계기판이....제 맘대로...돌아가기 시작했다..
하연....
나의 하연이 있는데....하연.....
맘을 정돈하고....계기판을 점검했다...
하연의 걱정스런 얼굴과....내 눈의 절망이...하연의 희미한 미소가.....
몇시간처럼..느껴졌다..
당황하지마....당황하면...안돼..!!
계기판.....조정관 구석에....
빠져있는....부품 조각들....
예리한 칼날로....난도질 되어있는...조각들......
그...조각을 본순간...모든걸....짐작할 수 있었다...
"무슨일이야?"
걱정스런..희미한 미소를 띄고.....하연이...물어왔다...
"미안하다....유하연..."
아무에게도....보이지 않았던...
스물여섯해를 살면서도 절대로 느껴보지 못했던...절망감이....나에게 엄습해온다...
그녀...나의 옛 그녀...미희....
그래...미희가 날 찾아왔었지..
그랬다..
미희가 어제...바로 어제..날 찾아왔었다.
비서가 알려준...내 스케줄을...알고..
어제 시험 운행을 끝내고 공항을 나오던..그때..
미희가 날 찾아왔었다.
난 그녀는...이미 잊혀진...사람이라고 치부하고 있었고..
또...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지만.,
좀더...초취한...모습의...악다구니만 남아버린..그녀가..
날 찾았었다.
"정민...나 왔어.. 비행연습하는거야?"
어색하게 웃음지으며.., 나에게 다가와 안기는 그녀를..
거세게 밀치면서...
굳은 표정으로 그녀를 뒤로하고...
터벅터벅 걷는 걸음에....힘을 주면서...
그렇게 공항을 걸어나왔다....아니...그랬어야 했다...
"이정민..."
힘껏 나를 부르던 그녀의 절규섞임 음성에 어깨가 움찔여 졌지만, 무시해버렸다..
그녀는 과거의 그녀일뿐...현재의 그녀는 아니기 때문에..
"그래...갈테면..가봐..날 두고 무사히 갈줄 알구?...
그...허점투성이 여기자랑...잘 될줄 알아?"
그녀는...
공항길에 달리던 차들이 다...움찔할정도로..
그렇게 사악하게 절규하고...외쳤다..
걸음이...멈췄다..
재규어의 차키를 돌리려던 손길이 멈춰버렸다.
손안에...힘이 쫙 빠지는 느낌..
힘겹게..힘주어 걷던 걸음이 멈춰버리는 느낌..
돌아서는..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에...
날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 절망이...한없는...원망이 보였다.
"쫙~"
경쾌한 살떨림 소리..어느덧 그녀가 길에 쓰러지고.....
난 그녀 앞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씩씩대고 있다..
"니 맘대로해봐!...하연씨 건들지마!"
넌..그럴 자격 없어....내가..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테니..
니 맘대로 하려면...둘다....같이..해..할수 있다면.."
그때...
미희의 흔들리는....눈물이 맺혀있음에도..흔들리는...
눈빛을 보았다...
눈물이 맺혀있음에도 흔들리는...그 눈을..
"내...내가..널 누구에게 줄거라고 생각하면..오산이야..
이정민...넌 내꺼야..내꺼.."
그냥.....
그냥..지나쳤다..
단순한 오기가 발동해..욕심에..그러겠지...
그냥....지나치지 말았어야..했다...
난 더이상 니께 아니라고...그렇게...말했어야 했다...
"사랑해.....이정민....사랑한다구..."
하연의 절규같은...외침이....
그녀의 사랑이 내 곁에서....물결친다.....
같이....함께...
같이 죽을수 있는 것도...축복이다...
노란서류봉투와.....미희의 얼굴이....
겹쳐졌다.....
우웅웅......
점차...심하게 기체가 흔들린다...
"하연아...널 사랑해....아니...나보다 널 더 사랑해..."
하연의 눈에.....이슬이 빛난다....
"쾅!"폭발음과 함께....왼쪽 기체가 떨어져 나갔다....
조정석의...탈출구...
비상시에...
당기는....손잡이가..손에 닿았다...
하연과 자리를 바꿀 수 있다면....
기체는 점차 흔들리고 있다.....
"하연아...이리와봐!..."
벨트를 풀고 그녀를 향해 두팔을 벌렸다...
그녀도.....나에게 점차 다가온다...
"이거...잡아...나랑 자리바꾸자..."
그녀는....쥐어주는 손잡이를 뒤로하고...내 허리를 꼭 안았다..
"사랑해....."
콰~쾅.......
옆에서 폭발음이 들린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녀....
나의 극락조가......하늘을 난다...
나와 함께.....하늘을 난다....
파란 빛 하늘과....
푸른 바다.......
점차 멀어진다.....
푸른...바다와 가까워 진다.....
하연과 나는.....꼭 끌어 안은 채로...그렇게....바다와 가까워진다.....
하연......사랑해....
<If.. 종결..>
첫댓글 짧은 순간이였지만 함께라면..................난 먼저보내고 이렇게~~ㅋ 그리움의 색칠만 가득히.................!!!!!
쉼없이 글이 빠르게 읽혀 내려가는게 좋네요..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근데..해피엔딩이 아닌란게 ... 사랑하게 해주세요~
ㅠㅜ 잘읽었어요.. 끝이 조금 속상하네요..
극락조ㅠ;..ㅠ 나의 극락조...나와 함께.........
끝이 인상적이네요.... ^^ 잘읽었습니다
ㅠ_ㅠ 잉 잘읽었습니다~
ㅠㅠ 마지막 새드엔딩이네요`~ 정말 잘 읽었어요~~
ㅜㅜ새드엔딩 싫어
.....마지막 너무 슬퍼요...흐합
마지막 제발제발 아니길 바라며 ㅠㅠ 살포시 눈시울이 적셔지네요
아~~ 말도 안돼... 세드 앤딩 정말~ 싫어!!!! ㅠ.ㅠ
아~악! 안돼~~~미희 네 이년! 어떻게 두사람을 떨어뜨릴 수 있는 것이냐!!!!
정말 슬픈엔딩이네요~어찌보면 해피엔딩같기도하고 잘봤습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