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루시다>, 롤랑 바르트

[브릭]

사진, 사랑의 고통

- 롤랑 바르트, [카메라 루시다], 열화당, 1997

영어 단어에 survive라는 동사가 있다. 그 뜻은 누구누구보다 더 오래 살아남다라는 것으로 역경과 고난을 견디고 헤쳐나간 결과 살아 있다라는 말이다. 이 단어는 그러나 살아남은 사람의 정서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고 있다. 자식보다 survive한 부모의 경우에 느끼는 비감 또는 경찰에 쫓기던 강도가 같이 물에 빠졌는데 결국 강도만이 혼자 survive한 경우 느끼는 쾌감 등에 대한 이야기는 정확히 참조할 수 없다. survive가 자동사로 쓰일 경우에는 ‘(불행 등에) 아랑곳하지 않다’라는 뜻을 품고 있다고 하니, 조금은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

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를 멤도는 것은 어머니의 부재를 겪으면서 결코‘아랑곳하지 않지’않는, 아랑곳 하지 못하는 바르트의 죽은 자에 대한 회고, 기억, 고충이다. 그의 회고는 평온한 정서를 띠고 냉혹한 단어들이 사용되고 있지만 더 이상 자신의‘특수성’을 보편화시킬 수 없고, 만족시킬 대상이 없어져버렸기 때문에 더욱 공허한 어떤 이야기로 읽힌다. 그것은 직접적으로 슬프다 그립다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어떤 정서이며 감정이지만, 바르트는 그 말들이 노리고 있는 특별한 정서, 이를테면 매순간 유예되는 죽음의 방식 혹은 비변증법적으로 작용하는 의사 죽음 체험의 단계들을 특유의 단상적 글쓰기를 통해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특별한 항목에 대응하는 특별한 체계를 만드는 방식이다. 우리 각자가 살아있는 사람의 시간을 유지하는 일조차 분명 버거운 일임에 분명하지만, 그는 기꺼이 산사람의 시간을 죽은 사람을 어떻게 환송하고 환대하고 되새김질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채우며 그의 글쓰기를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이때, 사진은 운명적으로 survive의 속성을 띨 수밖에 없는 무엇이다. 사진에서 우리가 보는 것들은 모두 그 시간과 공간을 떠나 있으면서도 끈질기게 survive해서 남아있는, 자신은 아무런 고통과 쾌감을 가지지 않은 채 던져져 있는 무엇이다. 우리는 그 사진 속으로 들어가 고통을 느끼지 않아도 상관없다. 바르트처럼 사진이 가지고 있는 스스로는 중립적이지만 관람자에게는 고통을 던져주는 원인을 찾아보아도 좋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진을 찍은 사람이 가진 정념들에 대한 추측으로 사진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모두 알게 되었다고 착각하지는 말자. 스스로 아랑곳하지 않고 남아있는 사진은 이렇게 우리들에게 던져진, 그 결과 우리들이 숙명적으로 존재의 위치를 잡기 위한 하나의 지표로서 인식해야하는 무엇일 뿐. 이름도 색깔도 맛도 스스로의 기억도 없는 무색 무취의 것들로 이뤄진 무엇인 것이다.

그렇게 하여 나는 내 나름대로‘죽음’의 문제를 해결했다. 많은 철학자들이 말했듯이, 만일 죽음이라는 것이 종種의 냉혹한 승리임에 틀림없으며, 특수한 것이 보편적인 것의 만족을 위해서 죽는다면, 또 만일 개체가 자신과는 다른 존재로 자기를 재생한 후 스스로를 부정하고 넘어섬으로써 죽는 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실제로 자식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어머니의 병 자체를 통해 어머니를 자식으로 낳은 것이다.(p.75)

<온실 사진>을 통해 바르트는 어머니의 죽음을 어머니를 ‘낳음’으로 해석해낸다. 죽음이 사진에서 ‘낳음’으로 survive하게 된 것이다. 이때 ‘낳음’은 정념과 감정이 배어 있는 독자적인 바르트의 언어이다. 그것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죽음’속으로 들어가는 행위다. 이때 정념은‘소녀’였던 어머니에 대한 감정이입이었다가 바르트가 말하기 시작하자 ‘사진’을 뛰쳐나와 살아있음으로 모습을 바꾼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영원히 비밀일 수밖에 없고, 설사 밝혀진다고 해도 흥미를 곧 잃고 말 바르트만의 어떤 영역이다. 그것은 우리가 아무리 survive하려 해도 도달할 수 없는, 오직 바르트 개인에게만 기꺼이 survive해주는 개인적 밀교와 비슷한 뉘앙스를 풍긴다.

그 <온실사진>은 바르트에게 남아, 바르트의 괴로움을 대신해 괴로움의 독자성을 보여준다. 어머니 당신처럼 어머니를 잃은 독자적인 고통 역시 다른 것으로 대치될 수 없는 무엇인 것이다.

나는‘어머니’없이 살 수는 있었지만(우리는 조만간에 모두 그렇게 된다), 그러나 그 후 나에게 남겨진 삶은 확실히 그리고 끝끝내, 규정지을 수 없는 것(특질 없는 것)으로 남아야 했다.(p.78)

그렇게 사진 스스로 survive하는 것에는 관람자로 하여금 대치될 수 없는 무엇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결코 무엇이라 규정지을 수 없는 것 역시 남는다. 그것은 모두에게 각각 달리 말해지는 하나 이상의 목소리인 것이다. 그 목소리는 언제나 사진의 어떤 대상물이 바로 거기에 존재해 있다는 사실을 뛰어넘는다. 즉, 사진의 기반이 되는 물질성 혹은 하나의 대상으로서의 물리적 형태를 뛰어 넘어 유희하는 애매하지만 확실한 하나의 영감처럼 작용하는 것이다.

그런고로 사진은 언제나 자신이 찍었다고 해서 자신에 의해 모든 설명이 가능해지는 대상은 절대 아니다. 하나의 필름통 안에 담겨있는 24개 혹은 36개의 독립적인 이미지들은 그것이 일련의 화학작용을 거쳐 인화지에 담겨진 순간, 모든 설명 이전에 존재하는 무엇으로 변환되기 시작한다. 그것은 우리가 아무리 변형시키려 해도 기껏해야 여러 사람들의 지문 자국밖에는 더 추가시킬 수 없는 완강함을 띤다. 그 완강함은 인간 개개인의 향수와 그리움을 닮있다. 그것이 단지 시간상으로 앞서 존재했었기 때문에 우리들이 갈구하며 다시 되새기려고 하는, 하지만 그럴수록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곳에 위치한, 그런 완강함을. 그런 의미에서 사진은 언어 혹은 말의 비의미성과도 연결되지만, 허나 그것보다는 더 육체적이고 역동적인 무엇이 아닐까?

사진은 언어 자체보다는 더욱 말하기 쉬운 무엇처럼 보인다. 하지만 말로 말해진다는 것이 가지는 장점과 단점을 언어가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언어를 통해 우리를 되살려주는 무언가를 말한다는 것도 말하지 않고 은폐시킨다는 것도 모두 어려워 보이기만 한다. 언어는 이미 선택과 배열을 통해 우리 입을 통해 나온 것인 바면, 사진은 빛과 어둠의 선택과 배열을 통해서 각인된 후 포지티브라는 역전의 과정을 거쳐 인화되고 그리고 또 한 번 우리의 언어로 선택 혹은 배열되어야 하기 때문일까? 그렇게 인간이 행하는 선택과 배열 과정을 두루 거쳤음에도 언제나 그 앞에선 관람자를 결정 불능의 상태에 만들고 마는 것일까?

 스스로 귀기울여 듣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메세지들, 약속들, 빛과 어둠의 교직상태를 우리는 계속 눈을 크게 뜨고 볼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 혹은 렌즈를 통해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 외곡, 비틀림, 굴절이 자유로운 세계에서 우리는 여전히 완강하고 다양한 목소리들을 느낀다. 바르트가 상처 입힌다고 하는 것은 나에게는 나와 더불어 유일하게 survive하는 그 무엇에 대한 나의 조응으로 읽힌다. 그 조응의 결과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멜랑콜리한 혹은 기쁘고 유쾌한 감정을 북돋아줄지도 모른다. 때문에 자기가 찍은 사진을 제대로 말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작업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사진에 대해 말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는 거울을 보면서 말하는 것과 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혹은 그럼에도 스스로 말하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우리는 사진을 찍는 것인가? 나를 남기고 싶은, 유서를 작성해 마지막으로 사인을 남기는 어느 늙은 거부의 마음처럼. 또는 또다른 사랑의 감정으로 충만해 있기 때문에?

나는 사진, 광기, 그리고 무어라고 불러야할지 확실히 알 수 없는 사물 사이에는 어떤 관계(매듭)가 있음을 이해한다고 믿었다. 우선 그것을 사랑의 고통이라 부르기로 했다. (p115)

그렇다. 사진 또는 불가해한 영역과의 관계맺음은 정녕 사랑의 고통으로 우리를 이끄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