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동엽(申東曄)
1930년 충청남도 부여 출생
단국대학교 사학과 및 건국대학교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가 당선되어 등단
1967년 장편 서사시 <금강> 발표
1969년 사망
1975년 ꡔ신동엽 전집ꡕ 발간
1980년 유고 시집 ꡔ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ꡕ 발간
시집: ꡔ아사녀(阿斯女)ꡕ(1963), ꡔ신동엽 전집ꡕ(1975), ꡔ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ꡕ(1980), ꡔ꽃같이 그대 쓰러진ꡕ(1989), ꡔ금강ꡕ(1989), ꡔ젊은 시인의 사랑ꡕ(1989)
357. 진달래 산천(山川)
길가엔 진달래 몇 뿌리
꽃 펴 있고,
바위 모서리엔
이름 모를 나비 하나
머물고 있었어요.
잔디밭엔 장총(長銃)을 버려 던진 채
당신은
잠이 들었죠.
햇빛 맑은 그 옛날
후고구렷적 장수들이
의형제를 묻던,
거기가 바로
그 바위라 하더군요.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산으로 갔어요
뼛섬은 썩어 꽃죽 널리도록.
남햇가,
두고 온 마을에선
언제인가, 눈먼 식구들이
굶고 있다고 담배를 말으며
당신은 쓸쓸히 웃었지요.
지까다비 속에 든 누군가의
발목을
과수원 모래밭에선 보고 왔어요.
꽃 살이 튀는 산허리를 무너
온종일
탄환을 퍼부었지요.
길가엔 진달래 몇 뿌리
꽃 펴 있고,
바위 그늘 밑엔
얼굴 고운 사람 하나
서늘히 잠들어 있었어요.
꽃다운 산골 비행기가
지나다
기관포 쏟아 놓고 가 버리더군요.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산으로 갔어요.
그리움은 회올려
하늘에 불 붙도록.
뼛섬은 썩어
꽃죽 널리도록.
바람 따신 그 옛날
후고구렷적 장수들이
의형제를 묻던
거기가 바로
그 바위라 하더군요.
잔디밭에 담배갑 버려 던진 채
당신은 피
흘리고 있었어요.
(ꡔ조선일보ꡕ, 1959.3.24)
이 시는 투철한 역사 의식에 입각하여 6․25로 인한 깊은 상흔(傷痕)을 진달래의 핏빛 이미지 속에서 그려낸 작품으로, 신동엽의 초기시를 대표하는 전 12연의 자유시이다. 신동엽은 민족적 정서 또는 민족적 정기를 드러내기 위한 방법으로 우리 민족의 전설을 자주 원용하는 특징을 보여 주는데, 이 시 역시 후고구려의 장수들 전설을 끌어들이고 있다.
1연은 국토의 평화스러운 정경을 ‘이름 모를 나비’라는 평범한 모습으로 제시하고 있다. ‘진달래 몇 뿌리 / 꽃 펴 있고’와 ‘나비 하나 / 머물고 있’는 정적 이미지는 전쟁으로 인한 주검을 보여 주고 있는 2연에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3연은 주검이 누워 있는 장소의 유래를 밝히는 부분이다. 화자는 특유의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 곳을 ‘후고구렷적 장수들이 / 의형제를 묻던, / 거기가 바로 / 그 바위’라고 제시함으로써 6․25로 인한 죽음과 후고구렷적 장수들의 죽음을 연관시키고 있다. 우리 선조들의 드높던 기상과 민족의 유구한 역사를 떠오르게 하는 ‘후고구렷적 장수들’을 통해 6․25를 민족적․역사적 측면에서 바라보는 시각을 갖도록 도와 주고 있다. 4연은 산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민중의 비참한 생활상을 제시한 부분이며, 5연은 죽은 자가 생전에 그리워하던 고향의 정경을 보여 주는 부분이다. 그저 아름다움으로만 장식된 그리움의 대상이 아니라, ‘눈먼 식구들이 / 굶고 있’는 모습의 사실적 제시를 통해 시인의 치열한 현실 인식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 6연은 이 곳에 앞서 과수원에서 보았던 또 다른 주검을 상기시키는 부분으로, 국토 전역에 깔려 있는 상흔을 제시함으로써 전쟁의 비극성을 강조하고 있다. 7연은 계속되는 폭탄 세례의 전장(戰場)을 진달래의 핏빛 이미지 속에서 보여 주는 부분이다.
8연부터 12연까지는 앞 연들이 제시한 시상을 약간의 변화만 가미시켜 반복하는 형식으로, 전반부에서 제시한 시상을 심화시키고 있다. 즉, 8연은 1연과 2연의 시상을 결합하고 있으며, 9연은 7연에서 보여 준 폭탄 세례의 전장을 반복하고 있다. 10연은 4연을, 11연은 3연을, 12연은 6연의 시상을 조금씩 변화시켜 반복하고 있다.
시인은 이 시를 통해 남과 북을 가로막고 있는 이데올로기의 장벽을 뚫고 남과 북은 같은 민족일 뿐 아니라, 그 실질을 이루고 있는 민중들이야말로 가장 큰 희생자임을 웅변하고 있다. 발표 당시에는 일단의 맹목적 반공주의자들에게 불온성을 지적받기도 하였지만, 오늘날의 정치 상황으로 보아도 통일 염원이라는 주제에 관한 한 가장 빼어난 작품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358. 산에 언덕에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맑은 그 숨결
들에 숲 속에 살아갈지어이.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행인아,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지네.
바람 비었거든 인정 담을지네.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시집 ꡔ아사녀(阿斯女)ꡕ, 1963)
해설 생략
본 해설집의 완전한 내용은 ꡔ한국현대시 400선 1, 2ꡕ(태학사) 참조.
359. 종로 5가
이슬비 오는 날,
종로 5가 서시오판* 옆에서
낯선 소년이 나를 붙들고 동대문을 물었다.
밤 열한시 반,
통금에 쫓기는 군상(群像) 속에서 죄 없이
크고 맑기만 한 그 소년의 눈동자와
내 도시락 보자기가 비에 젖고 있었다.
국민학교를 갓 나왔을까.
새로 사 신은 운동환 벗어 품고
그 소년의 등허리선 먼 길 떠나온 고구마가
흙 묻은 얼굴들을 맞부비며 저희끼리 비에 젖고 있었다.
충청북도 보은 속리산, 아니면
전라남도 해남땅 어촌(漁村) 말씨였을까.
나는 가로수 하나를 걷다 되돌아섰다.
그러나 노동자의 홍수 속에 묻혀 그 소년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
눈녹이 바람이 부는 질척질척한 겨울날,
종묘(宗廟) 담을 끼고 돌다가 나는 보았어.
그의 누나였을까.
부은 한쪽 눈의 창녀(娼女)가 양지 쪽 기대 앉아
속내의 바람으로, 때묻은 긴 편지를 읽고 있었지.
그리고 언젠가 보았어.
세종로 고층건물 공사장,
자갈지게 등짐하던 노동자 하나이
허리를 다쳐 쓰러져 있었지.
그 소년의 아버지였을까.
반도(半島)의 하늘 높이서 태양이 쏟아지고,
싸늘한 땀방울 뿜어낸 이마엔 세 줄기 강물.
대륙의 섬나라의
그리고 또 오늘 저 새로운 은행국(銀行國)의
물결이 뒹굴고 있었다.
남은 것은 없었다.
나날이 허물어져 가는 그나마 토방 한 칸.
봄이면 쑥, 여름이면 나무뿌리, 가을이면 타작마당을 휩쓰는 빈 바람.
변한 것은 없었다.
이조(李朝) 오백 년은 끝나지 않았다.
옛날 같으면 북간도(北間島)라도 갔지.
기껏해야 버스길 삼백 리 서울로 왔지.
고층건물 침대 속 누워 비료광고만 뿌리는 그머리 마을,
또 무슨 넉살 꾸미기 위해 짓는지도 모를 빌딩 공사장,
도시락 차고 왔지.
이슬비 오는 날,
낯선 소년이 나를 붙들고 동대문을 물었다.
그 소년의 죄 없이 크고 맑기만한 눈동자엔 밤이 내리고
노동으로 지친 나의 가슴에선 도시락 보자기가
비에 젖고 있었다.
(ꡔ동서춘추ꡕ, 1967.6)
이 시는 시적 화자가 종로 5가 신호등 앞에서 동대문을 묻는 한 소년과의 만남을 계기로 당대 민중들의 운명을 서술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즉, 산업화와 근대화를 부르짖던 1960년대 사회적 상황 속에서 도시의 노동자나 창녀로 변해 가는 농민과 민족의 모습을 역사적 시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농민의 희생과 농촌의 붕괴를 담보로 해서 이루어진 산업화 정책으로 인해 농민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피폐된 농촌을 떠나 어쩔 수 없이 도시의 노동자나 창녀로 전락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므로 ‘노동으로 지친 나의 가슴’에서 유추해 볼 수 있는 노동자 계급의 화자의 눈에 비친 현실은 ‘이슬비 오는 날’로 시작하여 ‘비에 젖고 있었다’로 끝나는 작품의 어두운 분위기만큼 침울하고 고통스럽다.
전 9연의 이 시는 내용상 크게 5단락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단락은 1~2연으로 한 소년과의 만남이 제시된 부분이다. ‘이슬비 내리는 날’과 ‘통금에 쫓기는 밤 열한 시 반’이라는 시간적 배경과 ‘종로 5가 서시오판 옆’이라는 공간적 배경이 자아내는 절박한 상황은 ‘크고 맑기만 한 그 소년의 눈동자’와 대비됨으로써 더욱 고조된다. 한편, ‘서시오판’은 신호등을 뜻하는 것으로 소년의 운명의 갈림길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둘째 단락은 3~4연으로 소년의 모습과, 그것으로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는 소년의 운명을 암시하는 부분이다. ‘새로 사 신은 운동환 벗어 품고’에서 때묻지 않은 동심을 엿볼 수 있으며, ‘저희끼리 비에 젖고 있는 / 먼 길 떠나온 고구마’는 따스한 온정을 지닌 존재임을 알게 해 준다. 그러나 ‘노동자의 홍수 속에 묻혀 보이지 않’는 그에게서 어린 노동자로서 그가 헤쳐 나가야 할 비극적 운명이 상징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셋째 단락은 5~6연으로 언젠가 보았던 창녀와 막노동자의 모습을 회상하는 부분으로, 화자는 그들을 소년의 가족으로 생각하고 있다. 화자는 ‘양지 쪽 기대 앉아 / 속내의 바람으로 때묻은 긴 편지를 읽고 있’는 ‘부은 한쪽 눈의 창녀’와 ‘고층 건물 공사장’에서 ‘허리를 다쳐 쓰러져 있’는 ‘등짐하던 노동자’가 겪는 개인적 비극을 세 개의 외세 ― ‘대륙’․‘섬나라’․‘새로운 은행국’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반도라는 지정학적 특수성으로 말미암아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민족의 고난을 ‘대륙’과 ‘섬나라’로 나타내고 있으며, 미국 자본에 의존하여 수출 주도형 산업화 정책을 펼치고 있는 60년대 경제 정책을 ‘새로운 은행국’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시인의 투철한 현실 인식은 결국 화자로 하여금 현실은 ‘이조 오백 년’과 다를 것이 없으며, 8연의 ‘북간도’로 갈 수밖에 없었던 일제 시대에 비해 나을 것이 없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다.
넷째 단락은 7~8연으로 농촌의 황폐한 현실과, 그로 인한 농민들의 이농(離農) 현상을 요약적으로 보여 주는 부분이다. ‘남은 것은 없었다’, ‘변한 것은 없었다’, ‘이조 오백 년은 끝나지 않았다’로 이어지는 화자의 애환 어린 탄식과 ‘옛날 같으면 북간도라도 갔지’라는 자조 섞인 독백에서 당시 농촌 현실의 궁핍화를 충분히 헤아려 볼 수 있다.
마지막 단락인 9연은 1연의 시상을 변형 반복하는 부분으로, 화자의 신분을 ‘노동으로 지친 나’라는 구체적 표현으로 알려주고 있다. ‘낯선 소년’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지식인의 시각이 아니라, 같은 노동자의 입장에서 그의 고통을 바라보는 화자의 동정심은 마침내 ‘나의 가슴에선 도시락 보자기가 / 비에 젖고 있었다’라는 끝 구절로 용해됨으로써 전편에서 서술된 내용에 대한 신빙성을 한층 더 강화시키고 있다.
360.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과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 초례청 : 혼인 예식을 치르는 곳.
(시집 ꡔ52인 시집ꡕ, 1967)
이 시는 우리 역사 속에서 일어났던 여러 의미 있는 사건들을 바라보던 화자가 허위적인 것이나 겉치레는 사라지고, 순수한 마음과 순결함만이 그것에 남아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형태적인 측면에서는 동일한 시어를 반복 구사함으로써 주제를 강조하고 있는 한편, 행간(行間) 걸림의 수법이나 쉼표의 적절한 사용을 통해 시상이 흐트러지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
화자가 없어지기를 소망하는 것은 ‘껍데기’이다. 그런데 화자는 마지막 연에서 ‘쇠붙이’ 하나만을 화두(話頭)처럼 던져 놓고 있을 뿐,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해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쇠붙이’와, 그와 상반되는 어휘들의 의미를 통해 그것을 추출해 볼 수밖에 없다. 그것은 4월 혁명의 ‘알맹이’, 동학 혁명의 ‘아우성’, 혼례청에서 맞절하는 아사달 아사녀의 ‘부끄러움’, ‘향그러운 흙가슴’ 등과 상반되는 개념일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시인이 작품에서 보여 주려고 하는 것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4월 혁명의 민주화 열망이 퇴색해 가고, 동학 혁명의 민중적 열망도 소진되어 가고 있는 현실적 여건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아울러 부끄러움도 아름다울 수 있었던 원시인 같은 순수한 마음의 회복과 그 같은 삶을 추구하는 순수성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현실에 대한 거부이다. 그런 화자에게 ‘껍데기’는 사라지기를 소망하는 대상일 뿐이지만, 17행 중 6행에서 ‘껍데기는 가라’고 소리칠 정도로 껍데기는 현실 속에 크게 자리잡고 있다. 이렇게 4월이나 동학의 본래 이념과는 다르게 변모해 있는 현실 상황에 대해 화자는 강력한 거부의 몸짓을 ‘껍데기는 가라’라는 직설적인 표현으로 보여 주고 있다.
특히, 마지막 연은 이런 상징적 의미를 가장 투명하게 보여 주는 부분이다. 즉, 우리의 국토를 ‘한라에서 백두까지’라고 말함으로써 분단의 비극적 현실 상황을 정면에서 다루고 있다. 이것은 동서 냉전의 부산물로 시작된 분단의 비극이 결국은 동족 간의 피비릿내 나는 전쟁을 거쳐 고착화되었음을 상기시켜 주는 한편, 반드시 극복해야 할 민족적 과제임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아울러 ‘모오든 쇠붙이’라는 표현을 통해 현실 상황을 힘의 논리를 앞세운 무력으로 규정함으로써 4월 혁명을 무너뜨리고 등장한 군사 독재 정권을 비판하는 한편,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은 참다운 의미의 ‘인간 세상’이 도래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361.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네가 본 건, 지붕 덮은
쇠 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속 구름
찢어라, 사람들아,
네 머리 덮은 쇠 항아리.
아침 저녁
네 마음속 구름을 닦고
티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
볼 수 있는 사람은
외경(畏敬)을
알리라.
아침 저녁
네 머리 위 쇠 항아릴 찢고
티없이 맑은 구원(久遠)의 하늘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연민(憐憫)을
알리라
차마 삼가서
발걸음도 조심
마음 조아리며.
서럽게
아, 엄숙한 세상을
서럽게
눈물 흘려
살아가리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ꡔ고대문화ꡕ, 1969.5)
해설 생략
본 해설집의 완전한 내용은 ꡔ한국현대시 400선 1, 2ꡕ(태학사) 참조.
362. 금강(錦江)
1
우리들의 어렸을 적
황토 벗은 고갯마을
할머니 등에 업혀
누님과 난, 곧잘
파랑새 노랠 배웠다.
울타리마다 담쟁이넌출 익어가고
밭머리에 수수모감 보일 때면
어디서라 없이 새 보는 소리가 들린다.
우이여! 훠어이!
쇠방울소리 뿌리면서
순사의 자전거가 아득한 길을 사라지고
그럴 때면 우리들은 흙토방 아래
가슴 두근거리며
노래 배워 주던 그 양품장수 할머닐 기다렸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잘은 몰랐지만 그 무렵
그 노랜 침장이에게 잡혀가는
노래라 했다.
지금, 이름은 달라졌지만
정오(正午)가 되면 그 하늘 아래도 오포(午砲)가 울리었다.
일 많이 한 사람 밥 많이 먹고
일하지 않은 사람 밥 먹지 마라,
오우우 …… 하고,
질앗티
콩이삭 벼이삭 줍다 보면 하늘을
비행기 편대가 날아가고
그때마다 엄마는 그늘진 얼굴로
내 손 꼭 쥐며
밭두덕길 재촉했지.
내가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그 가슴 두근거리는 큰 역사를
몸으로 겪은 사람들이 그땐
그 오포 부는 하늘 아래 더러 살고 있었단다.
앞마을 뒷동산 해만 뜨면
철없는 강아지처럼 뛰어 다니는 기억 속에
그래서 그분들은 이따금
이야기의 씨를 심어주고 싶었던 것이리.
그 이야기의 씨들은
떡잎이 솟고 가지가 갈라져
어느 가을 무성하게 꽃피리라.
그 일을 그분들은 예감했던 걸까.
그래서 눈보라치는 동짓달
콩강개 묻힌 아랫목에서
숨막히는 삼복(三伏) 순이 엄마 목매었던
그 정자나무 근처에서 부채로 메밋소리
날리며 조심조심 이야기했던 걸까.
배꼽 내놓고
아랫배 긁는
그 코흘리개 꼬마들에게.
2
우리들은 하늘을 봤다
1960년 4월
역사를 짓눌던, 검은 구름장을 찢고
영원의 얼굴을 보았다.
잠깐 빛났던,
당신의 얼굴은
우리들의 깊은
가슴이었다.
하늘 물 한아름 떠다,
1919년 우리는
우리 얼굴 닦아놓았다.
1894년쯤엔,
돌에도 나무등걸에도
당신의 얼굴은 전체가 하늘이었다.
하늘,
잠깐 빛났던 당신은 금세 가리워졌지만
꽃들은 해마다
강산을 채웠다.
태양과 추수(秋收)와 연애와 노동.
동해,
원색의 모래밭
사기 굽던 천축(天竺) 뒷길
방학이면 등산모 쓰고
절름거리며 찾아나섰다.
없었다.
바깥 세상엔, 접시도 살점도
바깥 세상엔
없었다.
잠깐 빛났던
당신의 얼굴은
영원이 하늘,
끝나지 않는
우리들의 깊은
가슴이었다.
(이하 생략)
(서사시 ꡔ금강ꡕ, 1967)
전쟁의 생채기를 꽃의 핏빛 이미지로 보여 준 <진달래 산천>(1959)에 이어 격동의 60년대 초반을 지나온 신동엽은 4․19를 돌아보는 화자의 서정적 정서를 드러낸 <산에 언덕에>(1963)를 통해 그리운 사람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노래하였다. 이 시를 통해 60년대 대표적 참여 시인으로 자리를 잡은 그는 격동기를 겪으면서 역사의 허구성을 목격하게 됨으로써 권력의 폭력성을 배격하는 목소리를 지니게 된다. 민중․민족․민주의 정치적 신념을 드러낸 <껍데기는 가라>(1967)를 발표하여 우리 시문학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그는 <종로 5가>(1967)를 거쳐 마침내 자신의 문학적 역량이 하나로 집약된 장편 서사시 <금강>을 발표함으로써 민족 시인으로서 자신의 이름을 이 땅에 깊이 새겨 놓고 1969년 39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갔다.
이 시는 2장씩 전․후시를 포함하여 총 30장 4800여 행의 장편 서사시로서 실존 인물인 전봉준과 가공 인물인 신하늬로 대표되는 인물군(人物群)들을 등장시켜 동학 혁명을 형상화하고 있다. 동학 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시화(詩化)를 통해서 민중적 세계관과 반외세에 대한 시인의 인식 태도를 보여 주는 이 시는 여러 인물들 사이에 얽힌 사건들이 교직(交織)될 뿐 아니라, 시간의 넘나듦을 통해 재구성되고 있다. 특히, 기존에 발표했던 <종로 5가>, <산사> 등의 여러 서정시를 삽입하여 형상화하는 특징도 함께 보여 주고 있다.
이 시의 대체적인 사건 진행은 기이하게 태어난 후 초혼에 실패했다가 진아를 만나는 신하늬와, 동학에 입교하였다가 조병갑의 학정에 아버지를 잃은 전봉준과의 만남과 헤어짐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의 만남은 동학 혁명으로 시작되며, 혁명의 실패로 끝난다. 즉, 혁명이 실패하자 신하늬는 아들을 낳은 후 죽음에 이르고, 전봉준은 체포 구금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된다. 이런 운명적인 만남을 통하여 역사의 유구함을 화자 자신으로 추정할 수 있는 신하늬의 아들에게서 확인하고 있다.
신동엽은 현실 인식의 뿌리를 민족사를 관통하고 있는 사건들인 동학 혁명, 한국 전쟁, 4․19 등에서 찾아 이를 정당하게 해석하고자 한 시인이었다. 그는 시대의 아픔을 민중적인 시각에서 재해석하여 보여 줌으로써 이 나라에 새로운 문학적 전망을 열어 놓았다. 나아가서는 70년대 민중 민족 문학의 튼튼한 뿌리를 참여시라는 형태로 선도함으로써 자신의 시사적 위치를 더욱 값진 것으로 한 시인이었다.
363. 봄은
봄은
남해에서도 북녘에서도
오지 않는다.
너그럽고
빛나는
봄의 그 눈짓은,
제주에서 두만까지
우리가 디딘
아름다운 논밭에서 움튼다.
겨울은,
바다와 대륙 밖에서
그 매운 눈보라 몰고 왔지만
이제 올
너그러운 봄은, 삼천리 마을마다
우리들 가슴속에서
움트리라.
움터서,
강산을 덮은 그 미움의 쇠붙이들
눈 녹이듯 흐물흐물
녹여 버리겠지
(ꡔ한국일보ꡕ, 1968.2.4)
이 시는 분단의 현실을 ‘겨울’로, 통일의 시대를 ‘봄’으로 상징하여 통일에 대한 시인의 뜨거운 염원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 기․승․전․결의 전통적 구조에 각 연의 종결 어미를 ‘않는다’․‘움튼다’․‘움트리라’․‘녹여 버리겠지’와 같은 단정적 어조를 사용하여 통일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표출하고 있다.
먼저 분단의 원인이 외세(外勢)에 있음을 깊이 인식하고 있는 화자는, 통일의 주체는 외세가 아니라, 바로 우리 민족임을 역설하는 것으로 작품을 시작하고 있다. ‘봄은 / 남해에서도 북녘에서도 / 오지 않는다’라는 첫 연에서 ‘남해’와 ‘북녘’은 바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외부 세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우리 민족이 통일의 주체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할 수 있는 통일의 싹도 마땅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움터야 함을 2연에서 주장하는 한편, 3연에서는 분단의 원인과 통일의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미․소 양대 진영의 영토 확장욕에서 비롯된 분단임을 ‘겨울은, / 바다와 대륙 밖에서 / 그 매운 눈보라 몰고 왔지만’이라는 구절로 보여 주고 있으며, 우리가 이루어야 할 통일은 그들의 간섭을 배제하고 민족의 주체적 역량을 바탕으로 한 것이어야 함을 ‘너그러운 봄은, 삼천리 마을마다 / 우리들 가슴속에서 / 움트리라’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눈보라’는 분단의 고통을, ‘바다’와 ‘대륙 밖’은 우리 나라의 주변 국가인 외세를 의미한다.
마침내 화자는 4연에서, 다가올 통일 조국의 모습을 ‘강산을 덮은 그 미움의 쇠붙이들 / 눈 녹이듯 흐물흐물 / 녹여버리’는 새로운 화합의 장으로 제시함으로써 남과 북이 증오와 대결의 군사적 대결을 버리고 진정한 하나의 민족으로 다시 태어나 세계사에 우뚝 설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