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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의 유카리스트(성체 성사)와 기독교의 주님의 만찬의 다른점
이 둘은 한마디로 정반대입니다!
그런데도 이 둘이 같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 내용을 알지도 못하면서 무식한 주장을 하는 미련함일 뿐입니다!
천주교의 유카리스트는 한국에서 성체 성사 혹은 영성체 미사라고 불리우는 것으로서, 천주교 사제가 기도함으로서 쿠키가 예수님의 살로 변하고, 포도주가 예수님의 피로 변한다고 하면서 그것을 들어올려서 자기들의 하느님께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하는 행사입니다. 그러면서 그것으로 모든 죄가 사해졌다는 응답이나 확신을 전해준 적도 없고 그렇게 하는 것을 보여주지도 않습니다.
반대로 기독교의 주님의 만찬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 모두의 죄와 짐을 담당하시고, 대신 십자가를 지시고, 그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매달리사 피흘리고 죽으심으로 인류 모두를 대신하여 그들의 죄에 대하여 형벌받고 처벌받으셨으며, 자기 피를 흘려 하나님앞에 참 영원한 희생제사를 드리심으로 모든 죄값을 지불하셨음을 신자들이 기억하고 믿고 기념하며, 감사하고 주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경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기독교 예배의 핵심인 주님의 만찬에서는 인류 모두의 죄가 이미 사해졌음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반면에 카톨릭 미싸에서는 십자가 사실은 제쳐놓고, 십자가를 흉내내어 영성체와 포도주잔을 들어올려서 죄를 사해달라고 그들의 하느님께 요구하는 것입니다. 천주교 미사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모든 죄가 이미 사해졌다는 것을 부정하고 안믿고 배척하면서, 대신 자기들의 쿠키 영성체와 포도주잔을 들어올리면서 자기들의 신 하느님께 용서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며, 그들은 다음주에도, 이미 지난주의 기도로 모든 죄가 사해졌다는 응답도 가져오지 않고 또다시 반복하여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천주교의 성체성사는 자기들의 영성체와 잔으로 죄를 용서해달라는 요청행사이고, 기독교의 만찬예배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지시고 피흘리심으로 모든 죄가 이미 사해졌음을 믿고 감사하는 행사입니다.
천주교에서는 < 예수님의 십자가로 모든 죄가 사해졌지만> 매일 죄를 지으니까 또다시 기도하고 죄를 사해달라고 요청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이 피흘리시고 죽으신 것처럼 흉내내어 똑같은 일을 함으로서 예수님을 기념하는 것이라고 변명합니다.
성경 어디에 인간들이 예수님만이 하셨던 일을 흉내내어 떡이 살로변했다고 말하고 포도주가 피로 바뀌었다고 하여 그것을 자기들의 하느님께 드리라고 말하였습니까? 그들이 그런 행사를 매주 혹은 매일 행하는 이유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영원한 효력을 안믿고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모든 죄가 사해진것을 믿는다면, 자기들의 영성체와 잔을 들어올리며 또다시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렇게 정반대되는 카톨릭의 성체성사 유카리스트와 기독교의 주님의 만찬이 같은 것이며, 카톨릭의 성체 행사를 물려받은 것이 형제모임이 매주 시행하는 주님의 만찬이다고 비방하는 것은 무식의 소치요, 바빌론 종교의 실체를 모르면서 주님의 교훈을 배척하는 미련함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죄를 용서해달라는 것과 죄를 이미 용서해주신 사실을 감사드리는 것이 어떻게 같습니까?
죄를 용서해주신 사실을 믿고 감사드리는 예배가 어떻게 죄를 용서해달라는 미사에서 나왔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동쪽이 서쪽에서 나왔습니까?
다음의 글들은 제가 2006년 뉴스엔조이에서 로마 카톨릭과 토론하였던 바의 글과 금년 2015년 1월26일에 올렸던 글입니다.
이렇게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반대의 것을 같은 것이라고 우기는 사람은 여러번 설명해주어도 읽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찬 예배는 기독교 모임예배의 핵심이며,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속죄를 기억하고 기념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통로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만찬 예배가 기독교 예배의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일년에 한두번으로 줄이는 한편, 인간 목사의 설교로 매주일 채우는 것은 주님의 피흘리심과 죽으심을 기억하고 감사함이 중심이 된 예배에서 인간목사의 설교 중심으로 바꾸어놓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앉아계셔야 할 자리에 인간이 앉아서 주님께서 피흘리심으로 사놓으신 존귀한 신자들위에 인간이 군림하도록 하는 수단을 강화시켜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주일 예배는 주님의 만찬이 중심이 되어야 하기에 고전 11장 25, 26절에는 < 너희가 자주 이떡을 먹으며, 자주 이 잔을 마실때마다> 라고 자주 라는 단어들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성경 번역자들은 그 < 자주> 라는 단어를 빼버려서 일년에 2-3회 혹은 일년에 한번만 주님의 만찬을 시행하여도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성경을 변개시켜 놓았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매주 적어도 한번 이상 주님의 만찬을 기념했다고 믿어지는 것입니다( 행 2:42, 46, 고전 11:25, 26)
자기 피로 영원한 희생제사를 드리시고 우리에게 오직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남겨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드립니다.
2015. 7. 17 하토브
카톨릭 미사와 죄사함
저에게 자연히 형성된 두 가지 중요한 원칙은 실천주의라는 것과 검증주의라는 것입니다. 저 자신이 실천한다는 면에서 매우 부끄러운 존재였다는 것을 깨닫고 노력하고 있을 뿐입니다. 부모에 효도를 다 못한 것이나, 어렸을 때 주일학교 은사였던 분이 교회 개척하겠다 했을 때 돕지 못한 일은 참으로 오랫동안 가슴 아픈 일들로 남아있습니다. 다른 하나 검증주의 문제는 누구나가 주장을 할 때에 무엇인가로 검증을 해야 할 터인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으며 나 또한 증거부족일 때도 들은 것으로 주장할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합니다. 교회사 부분에 관하여는 그것을 정확히 알고 있으면 크게 유익하겠으나, 과거 사실들에 관하여 아무도 정확한 근거들을 대지 못합니다. 올바른 교회사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것들에 관해서는 의견들이 매우 분분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올라온 글들이 교회사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준 점은 참 좋습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편협된 사관에 의해 정복자들이 각인시켜준 역사에만 의존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누가 옳은지 검증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차라리 현재 우리가 목도할 수 있는 바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현장은 예배의 모습입니다. 개신교는 모두 그런 것도 아니고 소위 여러 소수 집단들에 있어서는 예배 갱신운동이다, 성경으로 돌아가자, 초대교회를 본받자 하여 원형을 회복하는 운동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적어도 주류의 많은 교회들은 체계화된 순서들을 갖는데, 사도신경이다, 교독문 낭독이다, 주기도문, 성가대 찬송등에 설교가 중요한 순서로 자리잡았습니다. 그 설교의 중심은 (일부 교회들은 성경에 충실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교회에 열심히 나오시오, 헌금 많이 내시오가 중심이며, 거기다가 시국강연이 양념으로, 피로회복제로 등장합니다. 성경 몇줄 읽고 나면 교회 목사의 시국강연과 십일조를 안내는 것은 절도요, 강도라는 협박까지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돈이 모아지면, 성령의 뜻이 우리에게 성전 건축하라 하였다 하여 교묘히 건축 헌금으로 몰고 갑니다. 교회 개척의 초창기에는 목사라는 사람이 매우 겸손히 사람들을 모으지만 나중에는 당회장님으로 군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섬긴다는 사람들의 중심은 목사 중심으로 바뀐지 오래입니다. 이점에 있어서 개신교는 솔직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의 목사 섬기기는 심각한 수준이어서 그 교회는 예수교가 아니라 목사교로 바뀌어 있습니다. 그 목사님의 사업가적 자질이 훌륭한 덕택도 있을 것입니다.
그에 비하면 카톨릭은 적어도 예배의 어떤 형태를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체 예배가 그것입니다. 저는 성체 예배가 어떻고, 화체설이 어떻고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지만 비판과 토론을 할만큼은 알지 못하므로 논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가장 관심을 갖는 핵심적인 부분은 다음의 문제입니다. 즉 카톨릭 사제가 매주일 미사시에 죄를 사해달라고 기도한 다음 잠시후에 사해진 것으로 간주하고 감사하며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기독교 본질의 가장 큰 핵심에 심각한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독교는 우리의 모든 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과 죽으셨음에 의해 사해졌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사제가 우리 죄를 사해달라고 기도하지 않는가? 아직도 사해주시지 않았다고 믿는 것인가? 혹자는 요한일서 1장을 들지 모르나, 그것은 죄를 자백하라는 말씀 아닌가? 그런데도 카톨릭에서는 신부가 죄를 사해달라고 기도한단 말인가?
아직도 사해주신 사실을 안믿습니까?
그러므로 다음의 큰 의문가운데 남아있는 것입니다.
1) 우리의 죄가 모두 사해지지 않고 과거의 죄만 사해졌는가? 우리의 원죄만 사해지고 자범죄는 남아있는가?
2)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하셨을 때 지난 죄만 사함받고 미래의 죄는 사함받지 않았는가? 우리의 과거도 십자가의 시점에서는 미래가 아니었던가?
3) 사제가 사해달라고 기도한 이후에 무슨 근거로 사해주시는가?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 (겔 18:4) 하셨고 피흘림이 없은즉 죄사함이 없느니라 (히 9:22)하셨는데 어떻게 사제가 기도하면 죄가 사해지는가?
4) 만일 사제가 기도하면 십자가의 은총으로 사해진다 할 때 십자가의 보혈을 근거로 한다면 사제가 기도하기 전에는 십자가의 공로가 안나타나고, 사제의 기도후에는 십자가가 유효하게 된단 말인가?
5) 사제가 기도하고 희생제사를 드린 때문에 우리의 죄가 사해지는가? 히브리서 9:12은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10:18에서 이것을 사하셨은 즉 다시 죄를 위하여제사드릴 것이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제가 다시 제사를 드려야 한단 말인가?
6) 다시 제사드려야 한다면 누군가 피흘리고 죽어야 하는데 그일을 매주 한단 말인가?
7) 만일 누군가가 매주 죽는 것이 아니라면, 예수님 십자가를 근거한다면, 그 미사 이전에는 사해지지 않은 죄들이 있었다가 미사 때에 사해진다는 말인가?
8)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엡2:8-9) 하셨는데 우리의 어떤 노력과 의식에 의해 죄가 사해지는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믿음으로 사함을 입었는가?
9) 카톨릭의 미사 이전에도 십자가가 유효하여 죄가 사해졌다면, 굳이 미사와는 상관없이 죄가 사해진 것이 아닌가?
10) 만일 카톨릭의 미사로 인간들의 죄가 사해질수 있다면 하나님은 어찌하여 그분의 독생자로 하여금 참혹한 죽음을 당하게 하셨는가?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아버지여 할 수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당신 뜻대로 행하소서 하셨던 기도에 대해 그것 외에는 다른 어떤 방법도 없었기에 그 잔을 예수님이 마셔야 하지 않았던가?
저는 신부가 죄 사해달라고 기도한 이후 몇 초가 지나면 사해진 것으로 간주하는 그 단정이 궁금합니다. 때로는 죄를 사해달라고 엄청 간구해보지만 결국 하나님은 응답하시기를 “오냐 네 기도가 드디어 내게 상달되었느니라. 네 열심을 기억하여 네 죄를 이제 사하노라” 하는 음성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하나님께서 나의 심령을 인도하시사 그분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케 하셨고, 우리의 과거의 죄와 원죄와 자범죄와 미래의 모든 죄악들을 이미 십자가에서 못박으시고, 청산하셨으며, 도말하시고 모든 죄값을 치루셨다는 변치않는 진리를 깨닫게 해주십니다. 즉 나의 간구에 이제야 사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해주셨음을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제가 죄사함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면 이렇게 다음과같이 기도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 우리 모두의 죄들을 이미 십자가로 사해주신 사실을 깨닫고 믿게 하여 주소서, 우리의 믿음 없는 것을 도우소서.” 그리고 그것을 안다면, 믿는다면, 감사밖에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를 위하여 십자가를 이루시기 위해 많은 고통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하나이다" "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완성하신 주하나님을 찬송하나이다" 가 옳은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자꾸만 죄를 사해달라고 간구하면 이미 이루신 십자가는 믿지 못하겠으니, 예수님 또 한번 내려와서 죽게해주십시오. 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루신 일에 대한 불신이요, 반역입니다. 아직도 또 다른 십자가가 필요합니까?
저는 이 부분을 카톨릭 교인들이 어떻게 이해하는지, 그것이 알고 싶습니다.
88888888888
(카톨릭 신자의 답변)
미사에
대한 간략한 설명은 위에서 했습니다.
미사에서 우리 죄를 사해 달라고 사제가 직접하는 기도는 없습니다.
성찬기도를 통하여
우리가
십자가로부터 구속받은 기쁨을 성부께 감사드리고 모든 성도들이 하느님의 대전에 모이도록 부활과 재림을 간구하며 또한 성령께서 함께 하시어 빵과 포도주를 주님의 몸과 피로 변화시켜 주시어 우리와 함께 하심을 감사 찬양하는
기도입니다.
미사는 위에서 언급한 대로
우리를
구원하신 성부께 드리는 감사
성자의
십자가 구속의 재현
성령에
의하여 빵과 포도주가 주님의 몸과 피로 현존하는 그리스도의 현존을 통하여
온 성도가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임인데
사제가
왜 님의 질문과 같은 일을 한다는 것입니까??^^
또한 우리가 모든 죄를 용서 받고 거듭났다 하여도
실제로 우리는 죄의 유혹과 범죄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나약성을 생명의 빵이신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배령받아(영성체) 하느님과 하나되는 것을 절정으로 미사가 이루어 집니다.
님과 우리와 의견이 다른 것이 있다면
아마도 님의 글을 볼때
님은 십자가 희생제사로 모든 죄가 용서되었기에 더 이상
용서 받을 것이 없다고 하는 것 같으나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에 (동참을 하여야=실제로 주님을 받아들여야)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함을 받는다고 믿습니다.
더욱이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언제던지 우리는 죄의 유혹을 받으며 실제로 죄로 떨어질 수 있기에 언제나 미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말씀과 주님의 몸과 피를 배령하여 거룩한 삶을 영위하도록 합니다
이미
언급하였듯 미사는 죄를 사해주는 어떤 행위가 아니라
성자를
통하여 우리를 구속시켜주신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감사와 찬양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룩하신 십자가의 희생제사의 기념(재현) 성령께서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이루어 주시는 그리스도의 현존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기쁨 (이는 장차 이루어질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미리 맛볼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과
모든 성도들의 친교안에서 하느님께 드리는
공적인 예배(전례)를 말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개신교에서의 예배는 찬양과 기도가 중심이 되어 예배하면 찬양과 기도로 아시는 분이 대다수이지만
가톨릭에서는 그러한 찬양이나 기도등은 개인적인 하느님에 대한 흠숭은 될지언정 교회의 공적인 예배로는 간주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미사와 죄사함이라는 제목 자체가 어폐가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물론 우리는 미사를 통하여 미사의 본질 중 하나가
십자가 사건의 재현이므로 또한 우리를 구속하는 생명의 양식을 받아 먹으니 죄가 있다면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만)
참고로 그리스도신자들이 지은 죄들(자범죄 혹은 본죄)에 대해서는 고해성사(혹은 참회의 성사)의 제목으로 질문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하토브의 짧은 답변
성경에 예수님이 이루신 십자가 사실을 믿고 증거하며 기억하고 기념하라고 하셨지 어디에 십자가 사건을 재현시키는 방법으로 흉내내며, 성령께서 빵과 포도주 안에 그리스도의 현존을 실현시켜 주신다고 하셨습니까? 예수님이 이루신 사역을 믿고 감사하며 그 믿음으로 깨닫고 증거하라고 하셨지 어디에 흉내내는 일을 하며 예수님을 통해 이미 용서해주신 죄들을 다시 사해달라고 요구하게 하셨습니까? 이미 용서해주신 것은 안믿습니까?
만일 또다시 하나님이 천주교인들의 죄를 사해주어야 한다면, 그분은 또다시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시고, 예수님은 또다시 십자가를 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히고 피흘리시며, 매달려 죽으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또 믿겠습니까?
이미 그렇게 2천년 전에 해주셨는데 안믿는 사람들은 또다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도, 그것은 그때 뿐이며, 매번 죄지을 때마다 예수님이 또 피흘리고 죽으셔야 한다고 말하며 그들의 하느님께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한번 안믿는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평생 안믿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회개하십시오!
이미 이루신 십자가의 구속( 구원속죄)의 사역을 믿으십시오. 그것을 위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많은 고통 당하시고 피흘리고 죽으셨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함받도록 이미 십자가에서 이루신 사역에 대해 그분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와
경배를 드립시다.
(2006년 어느 날 카톨릭과의 토론에서 하토브)
기독교 예배와 카톨릭 미사의 다른 점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의 예배와 카톨릭의 미사가 비슷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관찰하고 파악한 바로는 그 둘은 정반대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카톨릭의 미사가 비록 의식에 치중하고 마리아 숭배 요소가 있기는 하지만 기독교의 예배와 본질적으로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실은 그 둘이 크게 상반된다는 점입니다.
이제 그 내막을 분석해보기로 합니다.
우선 제가 여기서 말하는 기독교 예배란 성경에 충실한 기독교 교회 모임을 말하며 그것은 오늘날 다수 한국 교회들의 관행과는 크게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다수의 한국교회들, 흔히 개신교라 불리우는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회 등의 교회들의 예배와, 성경적 기독교회의 예배와, 카톨릭의 미사를 동시에 비교하여 살펴보겠습니다.
(1) 신약성경에 충실한 교회들의 예배
여기서 신약성경에 충실한 교회들이란, 신약성경에 나타난 가르침들에 순종하여 모이는 모임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신약성경에 나타난 초대교회들이 실천했던 바들을 그대로 순종하여 실행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목사제도가 아닌 성경적 장로들에 의해 지도되며, 세례가 아닌 침례를 실행하고, 그 침례에 앞서서 거듭남과 그 믿음을 확인하여 실행하며, 서로를 형제 자매들로 호칭하며, 매주일 주님의 만찬을 실행하며, 성경대로 여자들은 머리 수건을 씁니다.
이러한 교회들은 스스로를 모임(에클레시아)들이라 부르는데 어원상으로 교회(Church) 란 독일어의 Kirche, ,스코틀랜드의 Kirk, 프랑스의 Cirqe, 라틴어의 Circe 에서 나왔는데 그것은 에게해의 여신 이름이었습니다. 이 여신은 막강한 힘과 매력의 여신이었습니다. 이 이름은 콘스탄틴 황제 당시 그 이전 우상숭배에 참여했으며 도나티스트 침례교인들을 핍박했던 자들이 회개했다고 하면서 기독교인들이라 자처하고 로마제국내의 미트라 신당들을 교회 건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사용되었습니다. 그들은 오늘날 카톨릭의 주축이 되었습니다. 미트라 신당은 원래 페르시아 종교를 들여온 사당들이었습니다. 독일어의 Kirche 는 영국으로 건너오면서 Chirche 로 바뀌고 다시 Churche 로 바뀌었다가 오늘날 Church가 되었습니다.
반면에 성경에는 오직 에클레시아가 115번 나오며 예수님에 의해서도 3번사용되었습니다, 이 에클레시아는 밖으로 불러내심을 입은 자들의 뜻으로 단순히 모임으로 번역되며 영어로는 Assembly 가 가장 정확하나 구약의 회중과 연결하여 Congregation 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틴데일은 그의 신약성경에서 Church 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고 Congregation 을 사용하였습니다.
이제 다시 돌아가서 신약성경에 충실한 교회들은 일인목회가 아닌 만인제사장직을 실행하며 그외 모든 성경 교훈들을 충실하게 지키기 위하여 노력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행하는 예배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과 죽으심을 기념하는 주님의 만찬을 중심으로 진행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예배는 인간들이 그분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와 사랑을 알아주고 믿고 감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것도 부족하지 않은 분이시며, 그분은 진정으로 그분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이해하고 감사하는 것을 가장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참 기독교의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실이 핵심이 됩니다.
그들은 그 성만찬 예배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과 죽으심으로 인류의 모든 죄가 영단번에, 영원한 효력을 갖는 단번에 사해졌음을 믿고 기억하고 기념합니다. 그들이 주님의 만찬을 실행할 때에 떼는 떡과 마시는 포도주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상기시키고 기념하는 것이지 그것들이 실제로 살과 피로 변한다고 믿거나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성도들로 하여금 2천년 전에 일어난 역사적 사실이 바로 성도들을 위한 것이었으며 그분의 피흘리심이 영원한 효력을 갖고 모든 죄가 이미 사해졌다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해줍니다. 그리하여 그 위대한 사역을 이루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와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경배하는 것입니다. 이 주님의 만찬에서는 목사나 어느 특정인물이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얻은 성도들은 누구나 동등하게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초대받은 명예로운 손님들이며 그 잔치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기억합니다.
우리의 과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 미래였습니다. 그때에 우리의 죄들은 우리가 죄들을 짓기도 전에 사해졌습니다. 우리의 죄들은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사해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기다리던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요일 4:16, 19). 따라서 우리의 과거나 우리의 미래 역시 예수님 당시에는 동일하게 미래였으므로 동일하게 십자가에서 모든 죄가 사해졌다고 믿을 수 있는 것이며 그 사실에 대하여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찬송시도 있고, 주님의 만찬도 있으며, 기도와 성경말씀을 살펴보는 말씀상고도 있으며 여러분들이 참여하며 하나님께서 경배와 찬양을 받으십니다.
이것이 진정한 기독교 모임들의 예배라고 믿어집니다.
이러한 모임들에서는 예배와 일반 집회를 구분합니다. 말씀집회 혹은 설교 집회나 강론 시간은 별도이며, 예배시간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을 믿고 기억함으로 하나님 앞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갖고 나아가 경배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말씀시간 혹은 강론 시간은 성경 말씀을 깊이있게 공부하는데 주목합니다.
(2) 로마 카톨릭의 미사
북미에서는 CTS 방송을 비롯한 여러 방송들이 로마 카톨릭 교회들의 미사(Missa- 미싸) 상황을 중계해줍니다. 녹화방송일 때도 있고 생방송일 때도 있습니다. 여기서는 아침 11시 30분부터 12시까지 매일 방영해줍니다. 그 미싸(Missa)를 시청할 기회가 많으므로 자세히 살펴보면 거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과 죽으심이 모든 죄를 사함받게 하였고 하나님은 그것을 근거로 우리의 모든 죄를 이미 사해주셨다, 는 것을 증거하거나 설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 대신 그들은 하느님께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왜 그럴까요?
로마 카톨릭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십자가 희생의 영원한 효력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은 그때에 전반적인 것을 이룬 것이며 역사적 사실이지 우리의 개개인이 죄지은 것을 사함 받게 한 것이
아니며 우리가 죄지었을 때는 개개인이 회개하고 속죄받기 위해서는 미싸(미사)에 참여하여 사함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반하여 참 기독교의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십자가의 희생이 영원한 효력을 가지며 그분께서 “ 그것이 이루어졌다” 하실 때에 세계 구속의 대역사가 이루어졌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생활에서의 모든 죄들이 이미 십자가에서 사해졌음을 다시 한번 상기하며 주 하나님께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카톨릭은 미사에서 다시 하느님께 죄를 사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들은 I-H-S라고 쓰인 영성체 과자를 들어올리며 희생제사를 받아달라고 기도하고 다시 잔을
들어올리며 이것은 예수님의 피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그 잔을 받아주시고 죄를 용서해달라고 합니다.
이 미싸(Missa) 라는 말은 그 뜻이 희생, 희생제사, 도살을 뜻한다는 해석이 가장 정확하다고 생각됩니다. 실제로 로마 카톨릭에서 그 미사를 희생제사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로마카톨릭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십자가의 사실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나름의 희생제사를 드리되 그것이 예수님의 몸과 피로 바뀌었다고 주장하면서 그들 나름의 희생제사를 다시 드리는 것이며 그와 동시에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속죄희생의 영원성과 그 영원한 효력을 인정하지도 믿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 카톨릭 미사의 구성요소들을 생각해봅니다.
A) 카톨릭 미사에서는 죄를 용서해달라는 것이 기도의 핵심입니다.
그들은 인류의 모든 죄가 십자가에서 사해졌다는 것을 안믿기 때문에 그렇게 기도합니다. 인류의 모든 죄는 십자가에서 사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과 죽으심은 모든 죄들의 죄값을 지불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이제 더 이상의 희생제사가 필요없습니다(히 10:17-19)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 카톨릭에서는 예수님의 속죄 희생의 영원한 효력을 안믿으므로 또다시 하느님께 자꾸만 자기들의 죄를 사해달라고 합니다.
그들이 자꾸만 자기들의 죄를 사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다면 예수님을 다시 보내주어서 또다시 피흘리고 죽게 해달라는 뜻이 됩니다.
B) 천주교 미사에서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인류의 모든 죄가 이미 완벽히 사해졌다는 사실을 절대로 강론하거나 증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속죄희생을 선포하고 증거하면 자기들의 미싸와 모순되며 다음에는 더 이상 미싸를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신앙은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으로 모든 죄가 사해졌다는 신념과는 반대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 나름의 희생제사를 자주 드리며 그것을 미싸라고 부르는 것이며 예배라는 말대신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C) 천주교 미사에서는 그들의 쿠키(영성체)와 포도주 잔을 들어올리면서 그 희생을 받아달라고 그들의 신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이 쿠키에는 I-H-S 라고 쓰였는데 그것은 이집트의 신들인 오시리스와 이시스와 호러스를 의미한다는 해석을 복음진영의 사람들이 내놓습니다. 혹은 바빌론의 신 니므롯(바알)과 세미라미스(이스타)와 담무즈를 의미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쿠키 영성체가 예수님의 몸이며 잔은 바로 예수님의 피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도 2천년 전에 이미 이루어진 십자가 사실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였음을 가져오거나 증거하지 않습니다. 즉 카톨릭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실을 기억하거나 기념하기 위해 가져오는 대신에 자기들의 희생 제사가 바로 예수님의 피와 살로 이루어진 희생제사이며 그것을 자기들이 드리는데 이제 하느님이 들어주신다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몸과 피라는 말들은 자기들의 희생제사를 장식하고 덮어놓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D) 천주교는 미사에서 빵과 포도주가 변하여 살과 피가 된다는 화체설을 주장합니다.
이러한 화체설을 주장하는 이유는 바로 앞서서 설명한 바와 같이 천주교에서는 또다시 나름대로의 희생제사를 드려야 하는데 피흘림이 없으면 제사가 안되는 줄을 알고 그 포도주가 피로 변화된다고 하며, 쿠키가 예수님의 몸 곧 성체가 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들어올려 희생제사를 드리는 것이 미싸입니다.
따라서 화체설은 카톨릭 미싸를 정의하는 중요한 교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카톨릭 신자들에게 과연 빵이 살로 변하며, 포도주가 피로 변하는지를 실험실 실험을 통해 확인시켜 줄 수 있는가? 하고 질문하면 그들은 물질은 실질적으로 변하지만 가시적 외형은 액시던트(Accidents) 로서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이 화체설 또한 그들 나름의 희생제사인 미싸를 합리화시키고 그 미싸에 희생제사 요소를 충분히 갖추도록 하는데 활용된 이론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화체설이 없이는 카톨릭 사제가 드리는 미싸가 희생물이 없는 제사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카톨릭은 그들의 쿠키와 포도주 잔이 예수님의 몸과 피로써 하나님께 참 제사가 된다고 가르칩니다. 예수님의 몸과 피라는 명칭은 그들의 미사를 거룩한 것으로 포장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 카톨릭은 그들 스스로가 예수님의 피를 마신다고 가르치고 그렇게 믿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무도 어떤 피든지 먹어서는 안되며 먹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서 끊어진다고 가르칩니다.(레17:10, 14)
즉 피를 마시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동물 희생의 피는 하나님께 보여드리기 위함이지 그것을 인간들이 먹으라고 피흘리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로마 카톨릭이 포도주가 변하여 피가되고 그 피를 마신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 저주받은 백성임을 주장하는 것이 됩니다.
(3) 개신교의 예배
개신교인들은 목사가 예배의 중심이며 매주일 예배보러 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예배에서는 목사의 설교가 중심입니다.
예배라는 단어는 국어사전에 이렇게 나옵니다.
예배: 신이나 부처와 같은 초월적 존재 앞에 경배하는 의식. 또는 그런 의식을 행함.
요컨대 하나님 앞에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로마서 12장 1-2절에서 말하는 우리의 삶 전체로 드리는 예배를 말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 교회안에서 예배드리는 것을 의미하는 좁은 의미를 살펴보면 교회에서의 몇 가지 예배 모습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목사의 설교를 듣는 것이 하나님 앞에 경배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쉽게 말하여 하나님 앞에 예의를 갖추어 경배하는 것을 예배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영과 진리로 행해져야 할 것입니다.(요 4:24). 이러한 대부분의 개신교 주류교회들에서는 목사가 설교하기 전에 성가대가 찬송하며 누군가가 기도하고 또 목사가 설교하고 헌금을 거둡니다. 누군가(대개 장로가) 성경봉독으로 성경 몇 줄을 읽고 나면 설교를 하는데 설교의 주제로 복음적인 설교들을 꾸준히 펼치는 교회들도 있고 그렇게까지는 안해도 성경을 깊이있게 다루어보려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많이 나오는 설교 주제들은 교회에 열심히 다니시오, 건축하여 많은 사람들 오게합시다. 건축헌금 합시다. 십일조를 내야 축복받습니다. 감사헌금, 헌금 많이 내면 복받습니다. 목사의 말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정치 시사 이야기와 우스개 이야기 정도가 나옵니다. 그리고 다른 교회들 이단이라고 비판하는데도 상당한 시간을 보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입니까? 이러한 교회들은 교회가 부흥했다는 척도로 건물이 커지고 헌금액이 많아지고 구원받았건 안받았건 사람수가 많아지는 것을 그 기준으로 삼습니다.
이런 교회들에서는 주 예수님의 피흘리심과 죽으심을 기념하는 주님의 만찬, 혹은 그들이 부르는 성찬식이라는 것을 일년에 두 세번 밖에 못 가집니다. 또 성찬식을 한다 해도 마치 목사가 그 성찬을 차려놓고 일반 신자들은 손님이 되어 참석하는 것처럼 목사의 주관하에 이루어집니다. 원래는 주 예수님이 피흘리고 죽으심으로 이루어놓은 잔치이며, 그 잔치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나머지 신자들은 모두 그 잔치에 동등하게 초대받은 명예로운 손님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개신교 교회들에서는 목사가 교회의 중심이며 교회의 머리로 군림하고 예배에서도 그 중심 자리에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오늘날 개신교들 안에는 주 예수님이 주인되시고 경배받으시는 예배의 요소는 풍성하지 못합니다.
(4) 요약
이제 기독교의 예배와 카톨릭의 미사의 다른 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A) 카톨릭의 미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행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완성된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기념하고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이 자기들의 희생제사를 드리되,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살이라는 명분을 붙이고 장식하여 그들의 신 하느님께 자기들의 희생제사를 받아달라고 기도하는 행사입니다.
반면에 기독교의 예배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과 죽으심을 통해 이루어주신 구속의 역사를 기억하고 믿으며 예수님께 감사드리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행사입니다.
B) 카톨릭의 미사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모든 죄가 사해졌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신 하느님께 자기들의 성체 성사에 근거하여 자기들의 죄들을 사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희생의 영원한 효력을 안믿기 때문입니다.
C) 카톨릭의 미사는 화체설에 의한 성체성사를 포함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루신 십자가의 역사를 생각나게하고 기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마술적인 힘으로 (오직 그들의 성직자들만이 할 수 있는 마력으로) 포도주가 피가 되고 영성체가 살이 된다고 주장하며 행하는 행사입니다.
D) 기독교 예배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루신 인류 구원의 사역을 믿고 감사하며 주 하나님께 경배드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실과 희생을 기억하고 이미 모든 죄가 사해진 바에 대하여 그분께 감사드리는 성경적 예배와 그것을 믿지 않고 죄를 다시 사해달라는 카톨릭의 미사는 정반대로 판이하게 다르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2011. 10. 13 하토브
2015. 1. 26 고쳐씀 하토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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