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산 변모(마르코 9,1-10)
예수 그리스도의 높은 산 변모 본문 앞 내용은 이렇다. “예수님 ) 당신은 반드시 많은 수난을 겪고 배척 받아 끝내 십자가 죽임을 당하겠지만 사흘 만에 부활할 것이다”라고 하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펄쩍 뛰며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공동번역 참조)“라고 하였다.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에게 당신과 복음을 위해 단호하게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따를 것을 요구하신다.(마르 8,31-38)
예수님의 제자 훈련은 양방향이다. 수난과 십자가의 과정을 알려주지만, 영광과 부활의 결과도 보여 주신다. 전제와 결론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하느님과 진리를 완전히 통찰한 사람은 수난과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완전한 사랑과 믿음은 고통과 수난 죽음마저도 넘어선다.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따랐던 소수의 사람이 그랬다. 조선 초기 교회 역사의 순교자 중에 정약종 아우구스티누스, 황사영 알렉의 시로 강완숙 골롬바등이 그 증인이다. 본문에서 지복직관 즉 하느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본모습을 엿본 제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제자들은 필경 수난 예고 후(마르 8,31-33)기가 꺽여 있었을 것이다.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하느님 나라와 예수님의 본모습인 신성과 영광을 미리 목격하게 한다.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수난 예고 말씀에 두려움과 기가 꺾여있는 제자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어 구세사의 사명을 완수하도록 독려하는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자신의 서간에서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재림을 알려 줄 때, 교묘하게 꾸며낸 신화를 따라 한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위대함을 목격한 자로서 그리한 것입니다. 그분은 정녕 하느님 아버지에게서 영예와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존귀한 영광이 하느님에게서 ‘이는 내 아들, 내가 사랑하는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하는 소리가 그분께 들려왔을 때 일입니다. 우리도 그 거룩한 산에 그분과 함께 있으면서 하늘에서 들려온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2베드 1,16-18.............. 굵은 글씨체: 송영진 신부 2024년 0225일 복음 묵상 글)
엿새 뒤라는 시간은 구원의 역사가 미완의 진행 중임을 시사한다. 예수님의 모습이 변하고 옷이 새하얗게 빛났다는 것은 형용할 수 없는 예수의 신성을 드러낸다. 탈출기에서 두 번째로 열 계명을 받고 내려온 모세도 얼굴이 빛나 백성이 그에게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하였다. (탈출 34,30) 구약의 위대한 두 인물 예언자이며 구원자인 엘리야와 모세가 예수님과 나눈 이야기는 무엇일까? 하느님 구원의 역사 계획, 그리고 예수께서 수행하실 구세사의 과정인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서였을 것이다. 이 광경에 황홀경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베드로가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마르 9,8) ‘초막’은 어떤 집일까? 일단 솔로몬이 13년을 걸려 지은 호화 궁전은 아니고, 고급 주택도 아니다. 기껏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한 뒤 광야를 떠돌 때 은신했던 초라한 거주지 초막이다.(레위 23,43) 베드로는 얼결에 취중 진담처럼, 예수님과 제자들이 구세사의 사명을 위해 초막살이 같은 운명을 살아가야 함을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어쨋거나 구름 속에서 계시가 들려온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9,7 라고. 요한복음 버전으로는, “그가 시키는대로 하여라.”(요한 2,5)라는 말이다. 이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이다. 십자가를 보았든 영광을 보았든,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을 따라야 한다. 하산下山 길에 예수님은 당신이 죽은 이들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 제자들이 보고 들은 것에 대한 함구 명령을 내렸다. 어차피 백성은 예수의 존재에 대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한다. 에둘러 전파되는 소문은 예수님의 계획과 진로에 도움이 아닌 역효과와 방해가 될 수 있다. 제자들은 함구를 지키긴 했으나, 부활 즉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저희끼리 서로 물어보았다(9,10). 제자들은 아직 예수의 수난과 죽음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이루어진 죽음과 부활에도 먼저 기억하고 이해한 사람은 여성들이었다. 심지어 사도들은 헛소리로 여기기까지 했다.(루카 24,1-11) 그나마 베드로가 일어나 무덤으로 달려가 확인하고 놀라워하였으며 점차 나머지 제자들이 믿게 될 것이다.
입력:최 마리 에스텔 수녀(2024년 2월 25일, PM 22:43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