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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 기독교계- 성직자 비리/오류 기독교 스크랩 신사참배 반대운동과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운동 / 손성은 목사
KESLL 추천 0 조회 74 15.11.16 14:31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신사참배 반대운동과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운동
2012.08.23 16:32 입력

▲손성은 목사
고신총회는 신사참배반대운동과 연관돼 있다. 일본제국주의의 신사참배강요를 거부하다가 투옥당한 이들이 출옥하고 난 뒤, 한국교회 전체를 향해 회개를 촉구하다가 추방당해 불가피하게 세워진 교회다.

 

신사참배거부란 단순한 거부나 저항이 아니라, 유일하시고 참되신 하나님만을 섬기고자 하는 신앙고백운동이다. 총회의 설립60주년을 기념하면서, 이 신앙고백의 현대적인 의의가 어떤 것인지를 다각도로 살펴보는 것도 의의가 있을 것이다.

필자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운동이야말로 우리 총회설립의 근간이 되는 신사참배반대운동을 현대화된 오늘날에 되살리는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단순히 우리 총회의 현재 교리표준이 웨스터민스터신앙고백서와 대소교리문답이기 때문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전개하던 그 일제치하에서의 신앙형태가 바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의 연연한 정신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웨스터민스터신앙고백서가 우리나라에 처음 번역된 것은 윌리웜 베어드 선교사에 의해서이다. 1925년 ‘신도게요서’란 이름으로 출간됐다. 한국교회의 여러 장로총회들에서 자신들의 교리표준으로 받아들이기 40~50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이 ‘신도게요서’를 번역한 윌리엄 베어드(1862~1931)에 대해서는 언더우드나 아펜젤러 선교사에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그 관심과 연구가 되어오지 않았다. 그것은 현재 우리들의 정치문화권의 중심부인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한 언더우드나 아펜젤러에 대한 자료들은 접근 가능한 것이 많지만, 평양을 중심으로 활동한 베어드에 대해서는 그 자료들에 접근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힘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치문화적인 여건뿐만 아니라, 윌리엄 베어드의 신앙노선과도 관계되는 것 같다. 이 점은 그의 평양에서의 사역기간 중에 일어났던 소위 ‘대학문제’와 관련해서 증거를 찾을 수 있다.

‘대학문제’란 감리교 선교부가 그때까지 장로교 선교부와 협력해 베어드 선교사의 숭실대학을 지원하던 것에서 손을 떼고 서울을 중심으로 해 교육사업을 전개하려고 한 것에서 촉발된 논란을 말한다.

 

감리교 선교부는 서울에서 사역하고 있는 언더우드 선교사와 협력하게 되고, 이 일로 인해 언더우드 선교사는 그 인격과 동기가 의심을 받게 되기까지 한다. 표면적으로 보면 서울이냐 아니면 평양이냐 하는 장소에 대한 문제 같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교육이념, 선교정책과 이념에 대한 태도의 차이 등이 개입돼 있었다.

그 당시 선교사들 사이에서는 “평양이 복음적이고 서울은 세속적인 교육을 중요시한다”는 생각들이 널리 퍼져 있었다. 신앙노선간에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감리교 선교부는 윌리엄 베어드 선교사의 보수적인 신학노선에 대해서 불만을 갖고 있었고,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독자적인 교육기관을 세우고자 했다. 그래서 1917년 연희전문학교(현재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조선기독교대학이 설립됐다.

 

평양의 숭실대학의 잔존에 대해서 그렇게 반대하지 않았던 언더우드 선교사도 교파연합적 관점에서 감리교 선교부와 적극적으로 연대를 모색하면서 서울에 보다 느슨한 입장에서의 대학설립을 위해서 연합하게 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평양의 숭실대학과 서울의 연희전문학교 사이의 신사참배에 대한 입장의 차이에 대해서이다. 물론 윌리엄 베어드 선교사가 죽은 뒤에 일어난 일이지만, 평양숭실대학은 신사참배에 반대하면서 폐교까지 단행한다. 언더우드의 후예들은 타협적 현실주의의 노선을 택했다. 베어드의 후예들이 택한 저항적 복음주의노선과는 다른 노선을 택했던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신사참배에 반대하면서 폐교까지 단행하는 평양숭실대학의 정신은 윌리엄 베어드의 보수신앙노선과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평양숭실대학의 폐교는 폐교당시의 학장이었던 죠지 맥큔(1878-1941) 박사와 관계해서 살펴야 하겠지만, 이 맥큔 박사는 윌리엄 베어드 선교사와 그 신앙노선과 교육철학에 있어서 일치됐다고 평가되고 있기 때문에, 윌리엄 선교사의 신앙노선이 평양숭실대학의 폐교에까지 이르게 되는 신사참배반대운동에 작용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정신, 곧 폐교를 불사하기까지 하는 신사참배 반대정신은 윌리엄 베어드 선교사의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 베어드 선교사가 번역한 것이 바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이다. 1925년의 ‘신도게요서’다.

 

이 당시 미국장로교회 내에서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의 개정문제 때문에 홍역을 크게 치룬 후였다. 그래서 결국 1903년에는 ‘선언적 서론’을 통해 신앙고백서 내용을 그 정통적 칼빈주의의 입장을 완화시키는 방식으로 읽어야 한다는 점을 주지시켰을 뿐만 아니라, 삭제하거나 첨가하는 방식으로 개정하고 말았다.

신학적으로 미국장로교회가 그 당시 대세였던 알미니안 신학으로 경도돼가는 경향과 타협하고 말았던 것이다. 베어드 선교사가 이런 자국 내의 상황을 몰랐을 리가 없다. 이런 자국 내의 신학적 변화를 감지하고 찬성했다면, 선교사로서 그가 소개했을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그 개정된 내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번역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곧 신도게요서에는 개정되지 않은 원래의 33장까지만 있는 것이었다. 그가 지지했던 신앙노선은 바로 ‘개정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가 아니라, ‘전통적’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의 노선이었던 것이다. 개정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따랐던 언더우드선교사와 그 후예들은 신사참배의 강요에 타협하는 길을 걸었다. 개정에 반대하고 전통적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의 노선에 있었던 베어드 선교사와 그 후예들은 신사참배에 반대해 폐교까지도 불사했던 것이다.

고신총회의 신사참배 회개운동에 자극을 받아서 시작된 학생신앙운동(SFC)의 신조는 ‘우리는 전통적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과 대소교리문답을 우리의 신조로 한다’고 그 강령을 시작한다.

 

이 강령의 마지막은 생활원리로서 세 가지 중심을 강조한다. 하나님중심, 성경중심, 그리고 교회중심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 중심의 강조는 중심을 잃어버린 것으로 평가되는 포스트모던 사회에 있어서 너무나도 중요한 강조이다.

유해무 교수는 고려신학대학원 교수진들이 필진이 돼서 2011년에 출간한 ‘개혁주의를 말한다’에서 고신 교회는 고백교회임을 언급하고 이 학생신앙운동의 강령에 나오는 세 가지 중심에 대해 강조한다.

 

신사참배 반대운동이 바로 고백운동이며, 이 고백운동은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에 표명된 신앙고백으로 승화돼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 셈이다. 아쉬운 것은 이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하면서 개정돼서 34장과 35장이 첨가됐다는 사실만을 언급할 뿐이라는 점이다. 그것이 어떤 신학적 함의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가 있다.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잇는 고백운동으로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의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어야 한다면, 도대체 어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인가 하는 것이다. ‘개정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고백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전통적’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고백해야 하는 것인가? 이 질문이 중요한 것은 이 질문의 답변에 따라서 그 중심의 중심됨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 중심이 과연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 중심, 성경중심, 교회중심이다. 하지만 이 중심의 중심됨을 묻는 것은, 하나님 중심이되 어떤 하나님 중심이며, 성경 중심이되 어떤 성경 중심이며, 교회 중심이되, 어떤 교회 중심이냐는 것을 묻는 것이다.

 

과연 이 시대는 포스트모던 시대이다. 중심이 상실돼 버렸다. 비록 신조는 신조로서 있지만, 그 신조는 중심에서 주변적 위치로 전락해 버렸다는 의미로 상실돼 버렸다. 집안에 부모가 계시기는 하지만, 부모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는 사태이다. 하나님은 물론 고백되지만 어떤 하나님으로 고백되는 것일까? 성경은 또한 그렇게 고백되기는 하지만, 어떤 성경으로 고백되는 것일까? 교회는 과연 어떤 교회로 고백되고 있고, 고백돼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고신총회의 설립 60주년을 기념하고자 한다. 신사참배거부운동은 그 시대에 당연하게 요청됐던 필연적인 활동이었다. 60년이 지난 이 즈음, 시대는 너무나도 많이 바뀌었다. 자아실현과 만족을 중심하며 상처받은 영혼들을 위로하며 치료하기 위해서 온갖 다양한 여흥문화와 성경의 하나님만 아니라면 어떤 것이라도 허용될 수 있다는 식의 초월적 존재에 대한 열린 태도들이 사회에서 아니 교회 안에서 난무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변화무쌍한 다원주의적 사회 속에서 요청되는 신앙운동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중심을 중심으로 회복하는 운동이어야 할 것이다. 시대가 바뀐다면 우리의 신앙운동은 그 형태가 바뀔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중심은 중심으로서 분명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질문은 이 포스터모던 시대를 통과하면서 총회설립 60주년을 기념하는 우리들 모두에게 너무나도 유효하다. 바뀌지 않아야 할 그 중심이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여기 다음세대를 이어갈 학생신앙운동의 강령이 우리들에게 호소한다.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그리고 교회 중심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다시금 이렇게 질문을 되물어야 할 때가 됐다. 어떤 하나님 중심, 어떤 성경 중심, 어떤 교회 중심이냐고. 과연 개정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와 전통적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가 같은 하나님, 같은 성경, 같은 교회를 고백하고 있는 것이냐고.

손성은 목사 / 삼일교회, 부산



기독교보 kdkb@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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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5.11.16 23:03

    첫댓글 감사합니다. 공유합니다

  • 15.11.17 08:57

    신사참배를 실제적으로 거부한 적이 없는 후배가 쓴 것은 큰 의미를 그대로 부여받기는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학문으로는 얼마든지 말할 수 있습니다만. 그 고통과 위협을 견딘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 믿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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