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우정에 대하여 - 이준한·토마스 신부
‘어려울 때 친구가 참친구다’ 했습니다. 그 말이 참으로 귀하게 다가옵니다. 저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체험에서 깨닫게 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참된 우정의 모델로서 예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
이 말씀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정’이란 큰 사랑의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몇 년 전에 사람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끌었던 영화 ‘친구’가 있습니다. 친한 친구이면서도 각자 갈 길을 가고, 그러면서도 어린 시절부터 계속 쌓인 친구의 우정이 서로를 연결하고 있었습니다. 영화에서 “친구끼리는 미안한 게 아니다”라는 말이 몇 번이고 반복되었습니다. 어찌 친구 사이에 미안한 게 없겠습니까마는 그만큼 친밀한 관계가 친구간의 우정의 관계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화평론을 하자는 것이 아니지만 우정을 소재로 한 ‘친구’라는 이 영화가 우리들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있는 것은 아마도 우리 사회에 참된 우정에 대한 갈증이 많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러분도 공감하시지요?
‘우정’에 대하여 성서는 여러 가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구약성서에서 말하고 있는 ‘우정’에 대한 귀한 소개는 오랜 삶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지혜라고 생각됩니다. 천천히 읽어보시고 마음으로도 새겨보시면 어떨까 하여 몇 구절 소개하고자 합니다.
“사랑이 한결같은 것이 친구다. 어려울 때 도우려고 태어난 것이 동기다”(잠언 17,17).
“친구의 꾸짖음은 좋게 받아들여도 원수의 입맞춤은 거절해야 한다”(잠언 27,6).
“혼자서 애를 쓰는 것보다 둘이서 함께 하는 것이 낫다. 그들의 수고가 좋은 보상을 받겠기 때문이다. 넘어지면 일으켜줄 사람이 있어 좋다. 외톨이는 넘어져도 일으켜줄 사람이 없어 보기에도 딱하다”(전도 4,9~11).
“성실한 친구는 안전한 피난처요, 그런 친구를 가진 것은 보화를 지닌 것과 같다. 성실한 친구는 생명의 신비한 약인데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만이 이런 친구를 얻을 수 있다”(집회 6,14. 16).
“친구를 돈과 바꾸지 말며 친형제를 오빌의 황금과 바꾸지 말아라”(집회 7,18).
“옛 친구를 버리지 말아라. 새로 사귄 친구는 옛 친구만 못하다. 새 친구는 새 술과 같으니, 묵은 술이라야 제 맛이 난다”(집회 9,10).
“죽기 전에 친구들에게 좋은 일을 하고 네 힘껏 그들을 도와주어라”(집회 14,13).
이 밖에도 성서 안에서 참된 우정의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윗에 대한 요나단의 사랑과 우정이 그렇고(1사무 18,1~4), 사도 바오로와 에바프로디도가 그렇습니다(필립 2,25). 그러나 가장 아름다운 우정의 모델은 예수님과 제자들 간의 우정이겠지요.
“내가 명하는 것을 지키면 너희는 나의 벗이 된다”(요한 15,14).
이렇게 성서 안에서도 ‘우정’이라는 단어는 참 아름답습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이런 아름다운 우정이 더욱 커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정의 공동체인 교회가 서로의 관계를 참된 벗으로 더욱 키워간다면 세상에 참된 우정의 모범을 보여줄 수 있을 것입니다. 우정의 성사가 되는 것이겠지요. 그러기 위해 늘 먼저 참된 친구가 되어주시는 주님께 우리도 그분과 참된 우정의 관계를 맺어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그러면 그분과 우리의 우정은 더욱 아름다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광주교구 진길성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