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7 장. 道常無爲(도상무위)
- 백서본 81장
남회근 : 행함이 없으면서 하지 않는 바가 없는 도
장치청 : 도는 늘 무위하지만 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
주춘재 : 도에 맡기면 천하가 절로 태평해진다
톨스토이 : 도는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하지 않는 일이 없다
오강남 : 하지 않으나 안된 것은 없다 – 무위無爲의 역동성
도올 김용옥 : 하늘 아래 인간세가 스스로 질서를 찾아감
여운 : 그대로 흐름
37. 道常無爲而無不爲。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化。化而欲作, 吾將鎮之以無名之樸。無名之樸, 夫亦將無欲。
不欲以靜, 天下將自定。
도는 항상(道常) 다스리려 하지 않으면서(無爲而), 다스려지지 않음도 없다(無不爲). 왕과 제후가(侯王) 무위처럼(若) 능히 지킬 수 있게 된다(能守之). 만물이(萬物) 장차(將) 스스로 교화된다(自化). 스스로 교화되는데(化而) 작위적인 탐욕이 생긴다면(欲作), 내 장차(吾將) 이름할 수 없던 본질로써(以無名之樸) 진정시킬 것이다(鎭之). 이름할 수 없는 본질로써 진정시키면(無名之樸) 무릇(夫) 탐욕 역시 사라질 것이다(亦將無欲). 탐욕을 잠재움으로써(不欲以) 소란스러움이 사라지니(靜), 천하가(天下) 장차(將) 스스로 안정될 것이다(自定).
The Tao in its regular course does nothing (for the sake of doing it), and so there is nothing which it does not do.
If princes and kings were able to maintain it, all things would of themselves be transformed by them.
If this transformation became to me an object of desire, I would express the desire by the nameless simplicity.
Simplicity without a name Is free from all external aim. With no desire, at rest and still, All things go right as of their will.
道常無爲而無不爲(도상무위이무불위)。侯王若能守之(후왕약능수지), 萬物將自化(만물장자화)。
남 : 도는 항상 행함이 없으면서 하지 않음이 없으니, 군주가 만일 이를 지킬 수 있다면 만물이 장차 저절로 길러질 것이다.
장 : 도는 무위하지만 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 제후와 왕이 만일 그것을 잘 지키면, 만물이 저절로 자라난다.
주 : 도는 아무런 움직임 없이 잠잠히 운행하므로 아무것도 하는 게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못 하는 것이 없다.
군주가 이 도의 법칙을 지키면, 천하가 다 그에게 귀의할 것이다.
톨 : 도는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하지 않는 일이 없다. 황제와 제후가 국가를 잘 통치한다면, 모든 존재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변할 것이다.
오 : 도는 언제든지 [억지로]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안된 것이 없습니다. 임금이나 제후가 이를 지키면, 온갖 것 저절로 달라집니다.
김 : 도는 늘상 함이 없으면서도 하지 않음이 없다. 제후와 왕이 만약 이를 잘 지킨다면 만물이 장차 스스로 교화될 것이다.
여운 : 도는 항상(道常) 다스리려 하지 않으면서(無爲而), 다스려지지 않음도 없다(無不爲). 왕과 제후가(侯王) 무위처럼(若) 능히 지킬 수 있게 된다(能守之). 만물이(萬物) 장차(將) 스스로 교화된다(自化).
道(길 도) - 길, 도리, 이치, 재주, 방법, 근원, 바탕, 기능, 사상, 제도, 가다, 따르다.
常(항상 상) - 항상, 늘, 언제나, 도리, 법도, 규율, 떳떳하다, 항구하다, 일정하다, 숭상하다.
無(없을 무) - 없다, 아니다, 말다, ~하지 않다, 아니 하겠느냐?
不(아니 불/부) - 아니다, 아니하다, 못하다, 없다, 말라.
爲(할 위) - 하다, 위하다, 다스리다, 길들이다, 되다, 생각하다, 배우다, 가장하다, 속하다.
而(말이을 이) - 말을 잇다, 같다, 너, 만약, 따름, 그리고, ~서, ~하면서, 그러나.
侯(제후 후) - 제후, 임금, 후작, 과녁, 맞이하다, 아름답다, 어찌, 오직.
王(임금 왕) - 임금, 천자, 수령, 으뜸, 할아버지, 왕 노릇, 왕으로 삼다.
若(같을 약) - 같다, 어리다, 이와 같다, 좇다, 너, 만약, 및.
能(능할 능) - 능하다, 능히 할 수 있다, 응당~해야 한다, 재능, 인재, 에너지.
守(지킬 수) - 지키다, 다스리다, 머무르다, 거두다, 손에 넣다, 청하다.
之(갈지) - 가다, 끼치다, 쓰다, 사용하다, 이르다, ~의, 에, 와, ~과, 이에, 을, 그리고, 만일.
萬(일만 만) - 일만, 만무, 대단히, 매우, 많다, 여럿, 절대로, 전혀.
物(물건 물) - 물건, 만물, 사물, 일, 재물, 종류, 사람.
將(장수 장) - 장수, 인솔자, 장차, 문득, 거느리다, 기르다, 나아가다, 받들다.
自(스스로 자) - 스스로, 몸소, 저절로, 자기, 자연히, 본연, 처음, 출처, 좇다, 쓰다.
化(될 화) - 되다, 화하다, 교화하다, 가르치다, 따르다, 본받다, 죽다, 바꾸다, 가르침, 변화.
37장은 상편(上篇)의 마지막 장이다. 도상무위(道常無爲)와 화이욕작(化而欲作)을 대비시킴으로써 자연의 스스로 그러함은 인간의 탐욕심과 상치된다. 도는 천하 만물을 다스리려 하지 않아도 다스려진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도의 신비를 밝힌 과학이 자연을 지배하려 든다. 그게 노자가 지적한 인간의 끝없는 탐욕심이다. 인간의 정치가 자연을 따르라고 한다. 138억 년 동안 자연은 스스로 질서를 생성하고 만물을 양육하였다. 그러나 자연의 도는 인간들처럼 자랑하지 않고, 과시하지 않고,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다스리고 있다.
현대과학은 노자의 예언을 그대로 증명해 주고 있다. 우주의 생성과 기원은 물리학, 특히 양자물리학인 소립자 물리학이 발전하면서 밝혀냈다. 현재의 물리학은 우주를 지배하는 거대한 힘이자 우주의 실체인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의 정체를 밝혀내려 하고 있다.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는 우주의 95%를 차지하나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 아직 잘 모른다. 화학은 세상을 구성하는 원소들을 밝혀냄으로써 물질 세상이 어떻게 구성되고 반응하는지 알아냈다. 생물학은 지구의 생명체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고 생명 탄생 이후 어떤 방식으로 다양하게 진화했는지를 밝혀냈다. 내가 추구하는 138억 년 우주 진화와 지구의 생명 약동 현상을 설명하는 다학제 학문인 ‘빅 히스토리(Big History)’ 운동으로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밝혀내고 있다. 나는 노자의 도덕경 주해가 끝나면 지난 1만 년 동안 사피엔스의 이동 경로와 문명 건설에 관해 연구하려 한다. 빅 히스토리의 일환으로 그동안 인간들의 이익에 맞춰 왜곡해온 인문 역사의 재해석이 절실하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사피엔스의 멸종을 늦춰보고자 한다. 그러기에 우리의 공공선과 집단지성 즉, 도상무위(道常無爲)의 탐욕적이고 이기적인 본능이 지배하지 않는 상태, 자연의 힘에 순응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化而欲作(화이욕작), 吾將鎭之以無名之樸(오장진지이무명지박)。
남 : 길러지는 데도 인위적으로 하고자 들면, 내 장차 이름도 없는 통나무로 진정시킬 것이다.
장 : 스스로 자라났는데도 욕심이 일어난다면 나는 그것을 이름 없는 질박함으로 누를 것이다.
주 : 그 과정에서 욕심이 싹트거든 자연의 소박한 ‘도’로 진정시켜야 한다.
톨 : 모든 존재가 강하게 움직이면, 나는 이름 없는 단순함으로 그들을 붙잡을 것이다.
오 : 저절로 달라지는데도 무슨 일을 하려는 욕심이 생기면, 이름 없는 통나무로 이를 누릅니다.
김 : 그런데 스스로 교화되는 과정에서도 인간의 욕망은 또다시 치솟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 욕망을 무명의 통나무로 진압할 것이다.
여운 : 스스로 교화되는데(化而) 작위적인 탐욕이 생긴다면(欲作), 내 장차(吾將) 이름할 수 없던 본질로써(以無名之樸) 진정시킬 것이다(鎭之).
化(될 화) - 되다, 화하다, 교화하다, 가르치다, 따르다, 본받다, 죽다, 바꾸다, 가르침, 변화.
而(말이을 이) - 말을 잇다, 같다, 너, 만약, 따름, 그리고, ~서, ~하면서, 그러나.
欲(하고자할 욕) - 하고자 바라다, 장차~하려 하다, 순하다, 좋아하다, 욕심, 욕망, 애욕, 희구.
作(지을 작/주) - 짓다, 만들다, 창작하다, 일하다, 행하다, 부리다, 일어나다, 이르다, 삼다.
吾(나 오) - 나, 그대, 우리, 막다, 친하지 않다.
鎭(진압할 진/전) - 진압하다, 누르다, 진정하다, 지키다, 진영, 오래, 언제나, 메우다.
樸(통나무 박/복) - 통나무, 근본, 바탕, 순박하다, 질박하다, 다듬다, 빽빽하다, 떡갈나무.
노자의 핵심 사상은 ‘인간이 자연의 주체인가 객체인가?’의 문제이다. 그래야 노자가 추구하자 하는 무위(無爲)에 대한 정확한 의미 규정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노자의 사상은 인간이 결코 자연의 주체일 수도 인간 자체가 목적이 될 수도 없다. 그거야말로 인간의 오류이자 지나치게 오만한 착각이다. 우리의 뇌가 가져온 선택론과 결정론에 안주한 탓이다. 우주의 역사와 지구 생명의 역사에서 인간은 아주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이 지구의 지배자라는 오만과 편견 그리고 착각이 우리 스스로 대멸종의 최우선 대상자가 된 것이다.
만물의 이치는 다스리지 않아도 자연의 스스로 그러함에 의하여 다스려진다.
인간이 이 지구상에 저지른 환경오염에 대한 만행은 지난 200년 동안 끔찍했다. 사피엔스가 지구상에서 출현한 20만 년 전 전체를 합쳐도 200년 동안 저지른 혁명적 변화에 발톱만치도 따라오지 못한다. 인간 문명의 편리와 인간 문명의 발전을 위해 3억 년 전에 썩지 않고 남아 있는 이산화탄소 덩어리인 화석연료를 끄집어 에너지원으로 사용함으로써 인간의 노동력을 기계에 내주었다. 록펠러에 의해 석유정제 기술이 발전함으로써 인류는 20세기에는 석유에 목숨을 건 전쟁을 하게 되었다. 소행성이 충돌하고 화산이 연쇄적으로 폭발해야만 바뀔 수 있는 이산화탄소 농도를 단, 200년 만에 갱신하였다. 인류 진화사 400만 년 만에 처음으로 지구에는 이산화탄소 대기 중 농도 최고치인 4.231ppm으로 인간 문명사에서 가장 뜨거운 지구를 경험하는 최상위 포식자가 되었다.
노자는 인간 세상이 자연의 거대 법칙인 무명지박(無名之樸)으로써 다스려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인간의 관점에서 천 년, 만 년, 이만 년, 이십만 년은 긴 시간일 수 있다. 그러나 이름으로 규정지어질 수 없는 위대한 힘인 무명지박은 그 안에 거하는 모든 것을 멸하기도 성하게도 하는 것이다.
“스스로 교화되는데(化而) 작위적인 탐욕이 생긴다면(欲作), 내 장차(吾將) 이름할 수 없던 본질로써(以無名之樸) 진정시킬 것이다(鎭之).”
無名之樸(무명지박), 夫亦將無欲(부역장무욕)。
남 : 이름도 없는 통나무라면 또한 장차 욕심이 없을 것이다.
장 : 이름 없는 질박함은 욕심을 일지 않게 한다.
주 : ‘도’에 비유되는 이름도 형체도 없는 ‘박’樸은 모두 사사로운 욕심을 없애 준다.
톨 : 이름 없는 단순함은 욕망이 없다.
오 : 이름 없는 통나무는 욕심을 없애줍니다.
김 : 무명의 통나무로 진압해가면 대저 백성들은 점차 욕망을 없앨려고 노력할 것이다.
여운 : 이름할 수 없는 본질로써 진정시키면(無名之樸) 무릇(夫) 탐욕 역시 사라질 것이다(亦將無欲).
만물을 생성하게 하기도 하고 멸하게 하기도 가능한 이름 지을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노자는 무명지박(無名之樸)이라 대명사처럼 칭했다. 인간사회 역시 자연의 일부이기에 자연의 질서를 따르는 것이 도이다. 자연의 질서에 반하는 것이 무위(無爲)가 아닌 이기적인 유위(有爲) 더 나아가 탐욕적인 작위(作爲)의 상태이다. 자연의 SCALE은 인간이 다스리거나 길들일 수 있는 위(爲)가 아니다. 인위적이고 작위적일수록 자연의 무명지박(無名之樸)은 인간을 더욱 거칠게 몽둥이질한다(樸). 자연의 몽둥이로서의 박(樸)이다. 분수를 모르고 꼴값 떠는 인간을 다스리는 자연의 매가 바로 박(樸)인 것이다. 인간을 멸종시키면 자연은 또 다른 생명체를 키울 것이다. 이번에는 순박한 질박함의 박(樸)이 생기니 탐욕 역시 사라지리라. “이름할 수 없는 본질로써 진정시키면(無名之樸) 무릇(夫) 탐욕 역시 사라질 것이다(亦將無欲).”
不欲以靜(불욕이정), 天下將自定(천하장자정)。
남 : 욕심내지 않아서 고요해지면 천하는 장차 저절로 안정될 것이다.
장 : 욕심이 없어져서 고요해지면 천하가 저절로 바르게 된다.
주 : 사사로운 욕심이 사라지면 사람의 마음은 고요로 돌아가고, 천하가 저절로 태평해질 것이다.
톨 : (세상에서) 욕망이 없을 때, 보편적인 평화로움이 있을 것이고, 온 땅에 진실이 있을 것이다.
오 : 욕심이 없으면 고요가 찾아들고 온 누리에 저절로 평화가 깃들 것입니다.
김 : 성인이 욕심냄이 없이 고요하면 하늘 아래 인간세가 스스로 질서를 찾아갈 것이다.
여운 : 탐욕을 잠재움으로써(不欲以) 소란스러움이 사라지니(靜), 천하가(天下) 장차(將) 스스로 안정될 것이다(自定).
미시적으로는 인간사회이지만 거시적으로는 인간 자체의 멸종이니 탐욕도 소란스러움도 존재도 사라지는 것이다. 인간이 진화시킨 이타심과 도덕심은 자연이 우리에게 부여한 가장 아름다운 순박한 질박함의 박(樸)이었을 것이다. 내 안의 선한 천사와 내 안의 사악한 악마가 공존함을 느낀다. 우리가 천사의 얼굴을 하고 악마의 짓을 벌였기에 인간 스스로에게도 그것을 키워준 자연으로부터도 그 대가를 톡톡하게 치르는 것이다.
“탐욕을 잠재움으로써(不欲以) 소란스러움이 사라지니(靜), 천하가(天下) 장차(將) 스스로 안정될 것이다(自定).”
노자 도덕경 上篇 총 37장입니다.
잠시 쉬고 노자 도덕경 下篇도 기대바랍니다^^
한글비교역주 참고 문헌
남회근 노자타설(老子他說) 상·하 – 번역 설순남
남회근(Nan Huai-Chin, 南懷瑾, 1918~2012) 선생을 소개한다. 본문에는 [남 : ~ ]으로 표기되었다. 부·키 출판사에서 2012년 초판 출판되었다. 1987년 남회근 선생의 『노자타설(老子他說) 상·하』본으로 ‘남회근 저작선 5’의 시리즈물이다.
남회근 선생은 중국의 승려, 종교학자, 작가이다. 현대 중국에서 존경받는 영적 스승인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중국 불교 부흥의 주요 세력으로 여겨졌다. 1918년 절강성 온주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서당 교육울 받으며 사서오경을 읽었다. 17세에 중국 항주 국술원에 들어가 각 문파 고수들로부터 무예를 배우는 한편 문학, 서예, 의약, 천문 등을 익혔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사천(四川)으로 내려가 장개석이 교장으로 있던 중앙군관학교에서 교관을 맡으며 사회복지학을 공부하였다. 교관으로 일하던 시절 선생에게 영향을 준 스승 원환선(袁換仙, 1887~1966)을 만나 삶의 일대 전환을 맞는다.
1942년 25세에 원환선이 만든 ‘유마정사’에 합류하여 수석 제자가 되었고, 스승을 따라 근대 중국 불교계 중흥조로 알려진 허운(虛雲, 1840~1959) 선사(先師)의 가르침을 배웠다. 불법을 더 깊이 공부하기 위해 중국 불교 성지 아미산에서 폐관 수행하면서 대장경을 독파하였고, 이후 티베트로 가서 여러 종파 스승으로부터 밀교의 정수를 전수 받고 수행경지를 인증받았다. 1947년 고향으로 돌아가 절강성 성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던 문연각 사고전서와 백과사전인 고금도서집성을 열람하고, 이후 여산 천지사 곁에 오두막을 짓고 수행에 전념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1949년 봄 대만으로 건너가 문화대학, 보인대학 등과 사회단체에서 강의하면서 수련과 저술에 몰두하였다.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가 동서학원을 창립하였고, 1988년 홍콩을 거주지를 옮겨 칠 일간 참선을 행하는 선칠 모임을 이끌며 교화사업을 하였다. 1950년대 대만으로 건너간 후부터 일반인과 전문가를 대상으로 유불도가 경전을 강의하며 수많은 제자를 길렀고,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40여 권이 넘는 책을 출간하여 동서양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선생의 강의는 유불도를 비롯한 동양사상과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 깊은 수행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엄중한 가르침, 철저히 현실에 기초한 삶의 자세, 사람을 끌어당기는 유머를 두루 갖춘 것으로 정평이 있다. 2006년 이후 중국 강소성 오강시에 태호대학당을 만들어 교육사업에 힘을 쏟다가 2012년 9월 29일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부키 – 2013년 1월 8일 초판
번역 - 설순남
서울대학교 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북경사회과학원에서 방문학자 자격으로 수학했으며 서울대학교, 가톨릭대학교, 성결대학교 등에서 강의하였다. 저서로 『황준헌 시선』이 있고, 옮긴 책으로 『대학 강의』 『맹자와 공손추』 『노자타설』 『맹자와 양혜왕』 『약사경 강의』 등이 있다.
2. 장치청 『도덕경 완전해석』 - 번역 오수현
두 번째로 소개할 장치청(張其成장기성, Zhang-Qicheng, 1959~) 교수로 본문에는 [장 : ~ ]으로 표기되었다. 중국 고전 연구의 권위자이자 역학과 중의학 분야의 석학이자 대중적인 양생 전문가로도 유명하다. 북경중역국학원 원장과 북경중의약대학 경영대학원 원장으로 있으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북경대학·청화대학 특별 초빙교수로 강의하고 있으며, 중국 관영 방송 CCTV, 북경 TV 등에서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학문의 대중화 작업에도 힘쓰고 있다.
국가급 무형문화 유산 명의 ‘북송의 장일첩(張一帖, 1130~1200)’ 가문의 제15대 계승자로, 훈고학의 대가 베이징중의학대학 교수 첸차오천(錢超塵, 1036~2022)과 역학의 대가 베이징대학 철학과 주보쿤(朱伯崑, 1923~) 교수에게 사사했다. 1992년 중국 최초로 『역학대사전』, 『역경응용대백과』 등을 편찬했고, 《역도주간》을 창간하여 유교, 도교, 불교, 의학과의 융합적인 차원에서 ‘역(易)’에 접근하고자 했다. 2003년부터 북경대학에서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고전 강의를 시작했으며, 멘토제 서원을 세워 ‘중국학의 지혜를 적용한 경영모델’ ‘오행을 통한 인재관리 시스템’을 제시했다. 국가급 석사 교재 『중국전통문화개론』을 편찬하는 등 현재까지도 국학 5대 경전 『주역』, 『논어』, 『도덕경』, 『육조단경』,『황제내경』을 강연하는 ‘고전멘토’로 활동 중이다. 2009년에는 “현대 국학의 선두 주자” 중 하나로 선정되어 “국학 연구의 일인자”로 칭송받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주역 완전 해석』, 『황제내경, 인간의 몸을 읽다』, 『논어 완전 해석』, 『육조단경 완전 해석』, 『황제내경 완전 해석』, 『역경 양생 대도』, 『유가 양생대도』, 『불가 양생대도』, 『도가 양생대도』, 『주역 인생 지혜』 등 다수가 있다. (yes 24 작가소개)
판미동 - 2022년 2월 7일 1판 1쇄 찍음
옮긴이 - 오수현
숙명여대 중어중문과를 졸업하고, 중국 산동과기 직업전문대학 한국어과 교사, ㈜효성, KELLEY ASSOCIATES를 거쳐 현재는 바른번역 소속 출판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주역 완전해석』, 『황제내경, 인간의 몸을 읽다』, 『자치통감: 천년의 이치를 담아낸 제왕의 책』, 『주역에서 경영을 만나다』, 『나의 최소주의 생활』, 『나는 왜 작은 일에도 상처받을까』, 『시의 격려』, 『세포가 팽팽해지면 병은 저절로 낫습니다』, 『오늘, 뺄셈』, 『중국은 무엇으로 세계를 움직이는가』, 『비즈니스 삼국지』 , 『똑똑한 리더의 공자 지혜』, 『똑똑한 리더의 노자 지혜』 외에도 다수가 있다.
3. 주춘재 『만화 도덕경』 - 번역 박영재
세 번째로 소개할 분은 저우춘차이(周春才 1957- ) 선생이다. 본문에는 [주 : ~]
1957년 중국 베이징에서 출생한 화가이자 작가로 오랫동안 중국문화의 연구와 대중화에 전념해왔다. 서양 문화와 비교를 통해 과학과 철학을 포함한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새롭고 참신한 해석을 전개해 내외의 주목을 모았다. 만화를 넘어서는 풍부한 내용과 생동감 있는 작품 이미지로 광범위한 전문가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십여 개의 언어로 작품이 번역 출판되었다. 대표작으로는 《예기 : 모두들 알지만 아무도 안 본 사서오경》, 《만화 주역》, 《만화 논어》, 《만화 노자》, 《만화 장자》, 《화설 황제내경》 등이 있다. (yes 24 작가소개)
가갸날 - 2021년 8월 10일 초판
번역 박영재
고려대학교와 타이완 정치대학교 동아시아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였다.
4. 러시아 최초의 완역본 『톨스토이가 번역한 노자 도덕경』 - 최재목 역주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러시아어: Лев Николаевич Толстой, 영어: Lev Nikolayevitch Tolstoy, 1828~1910) 러시아 소설가이자 시인, 개혁가, 사상가이다. 본문에는 [톨 : ~ ]로 표기.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사상가이다.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로 손꼽힌다.
1828년 9월 9일, 러시아 남부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톨스토이 백작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2살과 9살 때 각각 모친과 부친을 여의고, 이후 고모를 후견인으로 성장했다. 어린 시절에는 집에서 교육을 받았고, 16세가 되던 1844년에 까잔 대학교 동양어 대학 아랍·터키어과에 입학하였으나 사교계를 출입하며 방탕한 생활을 일삼다 곧 자퇴해 1847년 고향으로 돌아갔다. 진보적인 지주로서 새로운 농업 경영과 농노 계몽을 위해 일하려 했으나 실패로 끝나고 이후 3년간 방탕하게 생활했다. 1851년 맏형이 있는 카프카스에서 군인으로 복무했다.
1852년 문학지 [동시대인]에 처녀작인 자전소설 중편 「유년 시절」을 발표하여 투르게네프로부터 문학성을 인정받기도 하였다. 1853년에는 『소년 시절』을, 1856년에는 『청년 시절』을 썼다. 1853년 크림전쟁이 발발하여 전쟁에 참여했다. 당시 전쟁 경험은 훗날 그의 비폭력주의에 영향을 끼쳤다. 크림전쟁에 참전한 경험을 토대로 『세바스토폴 이야기』(1855~1856)를 써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했다.
이듬해 잡지 『소브레멘니크』에 익명으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작품 집필과 함께 농업 경영에 힘을 쏟는 한편, 농민의 열악한 교육 상태에 관심을 갖게 되어 학교를 세우고 1861년 교육 잡지 [야스나야 폴랴나]를 간행했다. 1862년 결혼한 후 문학에 전념해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 대작을 집필, 작가로서의 명성을 누렸다. 1859년에 고향인 야스나야 폴랴나에 농민학교를 세우는 등 농촌 계몽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였으며 농민학교를 세웠다.
34세가 되던 1862년에 소피야 안드레예브나와 결혼하여 슬하에 모두 13명의 자녀를 두었다. 볼가스텝 지역에 있는 영지를 경영하며 농민들을 위한 교육사업을 계속해 나갔다. 1869년 5년에 걸쳐 집필한 대표작 『전쟁과 평화』를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1873년에는 『안나 카레니나』의 집필을 시작해 1877년에 완성했으며, 1880년대는 톨스토이가 가장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던 시기로 알려져 있는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크로이체르 소나타』,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 등의 작품이 쓰인 시기도 바로 이때이다.
그러나 이 무렵 삶에 대한 회의에 시달리며 정신적 위기를 겪었다. 그리하여 1880년 이후 원시 기독교 사상에 몰두하면서 사유재산 제도와 러시아 정교에 비판을 가하고 『교의신학 비판』, 『고백』 등을 통해 ‘톨스토이즘’이라 불리는 자신의 사상을 체계화했다. 사십대 후반 정신적 위기를 겪으며 삶과 죽음 그리고 종교 문제를 천착하면서 작품세계의 분수령이 되는 『참회록』(1879)을 내놓았고, 정치, 사회, 종교, 사상적 문제들에 관해 계속해서 저술하고 활동했다. 또한 술과 담배를 끊고 손수 밭일을 하는 등 금욕적인 생활을 지향하며, 빈민 구제 활동도 했다. 1899년 종교적인 전향 이후의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고, 중편 『이반 일리치의 죽음』(1886)과 『크로이처 소나타』(1889)를 통해 깊은 문학적 성취를 보여주었으며, 말년까지도 『예술이란 무엇인가』(1898)와 『부활』(1899) 등을 발표하며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수익은 당국의 탄압을 받던 두호보르 교도를 캐나다로 이주시키는 데 쓰였다. 그 자신은 백작의 지위를 가진 귀족이었으나, 『바보 이반과 그의 두 형제 이야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에게 땅이 많이 필요한가?』, 『세 가지 질문』 등의 집필을 통해 러시아 귀족들이 너무 많은 재산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다수의 민중들이 가난하게 살고 있음을 비판하는 문학 활동을 하여, 러시아 귀족들의 압력으로 『참회록』과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의 출판 금지를 당했다.
하지만 독자들은 필사본이나 등사본으로 책을 만들어서 몰래 읽었고, 유럽, 미국, 아시아에 있는 출판사들이 그의 작품을 출판하여 외국에서는 그의 작품이 유명한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극단적인 도덕가가 되어 1880년 이후에 낸 일련의 저술에서 국가와 교회를 부정하고, 육체의 나약함과 사유재산을 비난하는 의견을 발표했다. 저작물에서 개인의 이득을 취하는 것이 부도덕하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저작권을 포기하는 선언을 했고(1891), 1899년 종교적인 전향 이후의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러시아에서 출간되자마자 독일, 영국, 프랑스 등에서도 번역되었으며, 출판으로 인한 수익은 당국의 탄압을 받던 두호보르 교도를 캐나다로 이주시키는 데 쓰였다.
1901년 『부활』에 러시아 정교를 모독하는 표현이 들어 있다는 이유로 종무원(宗務院)으로부터 파문을 당했다. 노년에 접어들어서도 왕성한 집필 활동을 통해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1886), 『크로이처 소나타』(1889), 『예술이란 무엇인가』(1897), 『부활』(1899) 등을 계속해서 발표했다. 사유재산과 저작권 포기 문제로 시작된 아내와의 불화 등으로 고민하던 중 1910년 집을 떠나 폐렴을 앓다가 현재 톨스토이 역이 되어 있는 아스타포보 역장의 관사에서 82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임종 때 아내를 보기를 거부한 톨스토이의 마지막 말은 “진리를…… 나는 영원히 사랑한다…… 왜 사람들은……”이었다.
귀족의 아들이었으나 왜곡된 사상과 이질적인 현실에 회의를 느껴 실천하는 지식인의 삶을 추구했다. 그는 고귀한 인생 성찰을 통해 러시아 문학과 정치, 종교관에 놀라운 영향을 끼쳤고, 인간 내면과 삶의 참 진리를 담은 수많은 걸작을 남겨 지금까지도 러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대문호로 존경받고 있다. 인간과 진리를 사랑했던 대문호 톨스토이. 그는 세계 문학의 역사를 바꾼 걸작들을 남긴 소설가이자 인도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사상에까지 영향을 준 ‘무소유, 무저항’의 철학을 남긴 사상가였다. 톨스토이의 작품만이 지닌 문체와 서사적 힘은 지금 보아도 여전하다. 특히 소설 속 아름다운 풍경 묘사와 이야기의 서사성, 섬세한 인물 심리 묘사 등이 돋보이며, 오늘날까지도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 문호로 인정받고 있다. (yes 24 작가소개)
그러나 그가 『노자, 도덕경』에 관심이 많았고, 또한 최초로 러시아어 완역서『노자, 도덕경』을 남겼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거의 없다. 톨스토이는 말년에 부처와 불교, 노자와 공자에 심취하였다. 특히 그는 『노자, 도덕경』의 ‘도道’와 ‘무위(無爲)’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무위사상은 바로 그의 무저항, 박애, 비폭력 평화주의와 공명하는 것이었다.
톨스토이는 러시아어로 된 『노자, 도덕경』 완역본을 희망한지라 여러 차례 번역을 시도하였다. 마침 모스코바 대학에 유학 와 있던 일본인 고니시 마스터로를, 그의 지도교수인 그로트(톨스토이 친구)를 통해서 만나, 1892년 11월부터 1893년 3월에 걸쳐서 『노자, 도덕경』의 러시아 역을 완성한다. 이것이 러시아 최초 완역 『노자 도덕경』이다. (본문 중)
21세기문화원 - 2021년 1월 20일 1쇄 인쇄
역주 -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일본 츠쿠바筑波대학원에서 문학석사·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동안 하버드대 · 도쿄대 · 베이징대 · 라이덴대 등에서 연구하였다.
‘한국양명학회장’ 및 ‘한국일본사상사학회장’을 지냈다. 전공은 동아시아 양명학 비교(동아시아사상사비교)이며, 저·역서와 감수한 책으로는 『톨스토이가 번역한 노자, 도덕경』, 『근대 일본의 양명학』, 『나는 나대로 살았다 어쩔래』(제8시집), 『풍수 환경학』, 『불교 도상학』 등 50여 권이 있다.
5. 『오강남 풀이 도덕경』
종교학자 오강남(1941~) 교수님이시다. 82세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계신 존경하는 스승이시기도 하다. 본문에는 [오 : ~ ]로 표기.
현재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University of Regina) 비교종교학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북미와 한국을 오가며 집필과 강연을 하고 있다. 더불어 ‘종교너머, 아하!’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캐나다 맥매스터(McMaster) 대학교에서 「화엄華嚴 법계연기法界緣起 사상에 관한 연구」로 종교학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그동안 북미 여러 대학과 서울대·서강대 등에서 객원교수, 북미한인종교학회 회장, 미국종교학회(AAR) 한국종교분과 공동의장을 역임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노장사상을 풀이한 『도덕경』, 『장자』, 종교의 이해와 분석을 담은 『예수는 없다』, 『세계종교 둘러보기』 『불교, 이웃 종교로 읽다』, 『종교 너머, 아하!』가 있으며, 최근 인생과 종교에서의 깨달음을 담은 『움켜쥔 손을 펴라』, 『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를 펴냈다. 번역서로서는 『종교다원주의와 세계종교』, 『살아계신 붓다, 살아계신 그리스도』, 『귀향』, 『예언자』, 『예수 하버드에 오다』, 등이 있다.
현암사 – 개정판 2010년 3월 15일
6. 도올 김용옥 역주 『노자가 옳았다』
도올 김용옥(金容沃, 1948~)선생은 대한민국의 철학자, 종교학자, 사상가, 한의사, 대학 교수이다. 본관은 광산. 호는 도올(檮杌)이다. 본문 [김 : ]으로 표시
도올 김용옥 선생은 천안 대흥동에서 광제의원을 운영한 집안의 6남매 중 막내로 자랐다. 초등학교를 천안에서 졸업하고, 보성중·고등학교에서 수학하였다. 고려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하였고, 한국신학대학교 신학과에서 수학한 후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1972년 9월 중화민국으로 가서 국립 타이완 대학 철학연구소에서 2년간 수학하면서 〈노자 "자연" 철학에서의 "무위" 의 기능(老子「自然」哲學中「無爲」之功能)〉이라는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74년 일본으로 가서 1977년까지 도쿄 대학 대학원 중국철학과에서 수학하며 〈왕선산의 동론(王船山の動論)〉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며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77년에 미국으로 가서 펜실베니아 대학교 동방학과 대학원과 하버드 대학교 동아시아어문학과 대학원에서 수학하였는데, 하버드에서 〈왕부지王夫之의 철학, The Philosophy of Wang Fu-zhi(1616~1692)〉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90년에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한의학과에 입학하여 한의학사학위도 취득하였다.
대학교수, 철학자, 사상가, 언론인, 한의사, 연출가, 시나리오 작가, 희곡 작가, 극단의 단원 등 다양한 정체성으로 활동하였다. 동, 서양 철학과 종교사상까지 다양한 학문적 탐구와 저작 활동을 벌였다. 1982년 9월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철학과 부교수가 되고 1985년 9월에는 동 대학의 정교수가 되었다. 1986년 양심선언(‘한국의 오늘을 사는 한 지성인의 양심선언’)을 하며 고려대학교 교수직을 사퇴한 후 여러 대학에서 철학과 문학 등을 강의했다. 1988년 무렵부터 방송 강연에 출강하였다.
그는 문화계에서도 몇 가지 활동을 했다. 악서고회(樂書孤會)라는 모임을 만들어 국악을 콘템포러리 뮤직으로 승화시키는 다양한 기초작업을 하였다. (1984년 3월~1987년 12월). 한국의 전통음악을 이끄는 대표적 주자, 백대웅, 김혜숙, 박범훈, 송방송, 이성천, 권오성, 최종민, 이보형, 양승희 등이 참여했다. 이후 한대수와 록 콘서트를 가지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도도회(檮濤會)라는 모임을 만들어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한국화 교수들과 그 대학 출신 화가들(이종상, 김병종, 김호득, 장상의, 심현희, 장혜용, 이민주 등)과 정기적인 활동을 했다. (1988년 6월~1999년 6월)
영화와 연극 활동도 했는데 대중의 사랑을 받는 마당극으로 유명한 극단 ‘미추’를 손진책, 김성녀와 함께 창단(1986년 8월)하여 전통과 현대를 접목시키는 많은 연극 작업을 했다. 《시간의 그림자》, 《그 불》 등을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1987년에는 잠시 영화인 심포지움을 만들어 유현목, 김수용, 임권택, 이장호, 김호선, 하명중, 정지영, 박광수, 이두용, 황기성 등과 활동했다. 이후 임권택의 《장군의 아들》, 《개벽》, 《취화선》의 대본을 썼고, 특히 《취화선》은 2002년 55회 깐느영화제 감독상을 획득하였으며 《개벽》에서 타이틀롤을 맡은 이덕화는 본인(김용옥)이 진행자로 활동 중인 KBS 2TV 《도올학당 수다승철》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취화선》과 《왕의 남자》의 자막은 직접 영역했다.
유기화학자 친형 김용준과 함께 신과학운동 세미나를 주도하고, 대우재단지원 과학사상연구회(科學思想硏究會)를 설립했다. (1984년 3월~1990년 2월) 한국의 대표적인 과학자, 과학사상가들(조순탁, 이성범, 장회익, 김두철, 서정선, 신중섭, 이봉재 등)이 참여했으며 이후 꾸준히 과학과 철학이라는 학술지를 출간했다.
1989년에는 한국사상사연구소(Korean Institute of Classical Studies)를 세워 한국고전 최초의 일자색인인 《삼국유사인득》을 출간했다. 이 작업은 후에 제자 김현 교수의 방대한 《조선왕조실록》 전체 한글번역 프로그램인 CD-ROM작업으로 이어져 한국학의 신기원을 세웠을 뿐 아니라, 한류의 원류인 사극 드라마들의 희곡작업의 근간을 이루었다.
1993년에는 도올서원을 세워 15기에 걸쳐 3,000여 명의 학생을 배출해 한학의 배경을 가진 우수한 인재들이 이 사회에서 활약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민족문화추진회의 한국고전국역사업을 지원하였고, 그 기관은 이후 한국고전번역원으로 승격되었다.
1989년에는 태권도철학세미나를 개최하여 무술의 본질과 태권도 문화의 세계화를 논하였다. 유병관, 양진방, 김영선, 김용범, 최의정, 임신자, 바비 클레이튼(Bobby Clayton), 스티븐 카프너(Steven D. Capener) 등이 참여했고 이 세미나의 결과물로 《태권도철학의 구성원리》를 집필, 출간했다. 이 작업의 정신과 성과는 이후 무주 태권도공원으로 이어졌다.
한의대 졸업 후 ‘도올한의원’을 개원하여 2년간 활동하기도 하였다. 또 언론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중앙일보에는 《도올고함(檮杌孤喊)》이라는 칼럼을, 중앙선데이에는 《도올의 도마복음 이야기》(신발굴 성서자료)를 연재하였다. (위키피아)
통나무 – 2020년 10월 9일 출간
마지막으로 영어 번역본을 실었다. 아마도 그의 번역본을 영국의 위대한 철학자인 화이트헤드와 그의 제자인 노벨 문학상 수상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이 읽었다. 러셀은 1920년 북경대학에서 1년간 철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리고 독일의 실존철학자 카를 야스퍼스(1883~1969),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 등이 읽었다. 아마 수많은 서양의 지식인들이 작은 분량의 동양고전을 접하고 충격에 휩싸였을 것이다.
청나라 말에 선교사로 왔다가 중국 고전의 깊은 뜻에 놀라 일부 청나라인들의 도움을 받아 중국 고전을 영문으로 번역한 제임스 레게의 영문본을 찾아 옮겨 보았다.
제임스 레게(James Legge, 1815~1897)는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영국의 언어학자, 선교사, 생물학자, 번역가이다. 그는 중국 고전 텍스트를 영어로 번역한 초기 번역가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Legge는 말라카와 홍콩에서 런던 선교사 협회 (1876-1897)의 대표로 봉사했으며 영국 옥스퍼드대학 최초의 중국학과 교수 (1875-1879)였다. Max Müller와 함께 그는 기념비적인 동양의 신성한 책 시리즈를 썼다. (위키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