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이 | 시인/수필가
1944년 경남 창원시 진동 광암 갯가에서 태어나 자랐다.
여자의 몸으로는 드물게 선장 일까지 하면서 지금까지 고향 광암 갯마을을 지키고 있다. 진동 초등학교를 3년째 다니다 중퇴한 시인은 오래도록 생업의 파도를 타고 살다 2001년 예순을 내다보는 나이로 뒤늦게 경남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시와 수필 창작공부를 시작했다. 2005년 미래문학에서 시로, 2007년 다산문학에서 수필로 등단한 시인은 현재 마산문인협회 .季刊 시와 늪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2011년 가을 『바다가 쓴 시』 , 2004년 『그 사람이 보고 싶다.』 ,2013년 『강바구를 노래한 사람』 , 2015년 『바다는 성추행 해도 왜 죄가 되지 않을까』 출간 시와 늪 이달의 작가상 수상, 제3회 시와 늪 문학상 수상 제6회 해양문학상 장려상 수상(2012년), 2012년 수산협동조합중앙회 창립50주년 어업인 수기 공모전 입상2013년대통령기 제33회 국민도서 경진대회 창원시 예선 대회 입상, 2003년 제4회 경남여성시 낭송대회 입상
바다를 닮은 시인의 글밭 산책
김명이님의 민낯
김명이 시인하면 바다가 연상된다. 진부하게 꽃다운 새댁시절부터 이순이 넘도록 험한 바다에서 여자 사공이며 선장이자 어부로 일했던 이력을 들먹임이 아니다. 사람의 경우 몇 만 모이면 고향을 따지고 학연과 지연으로 갈라서 패거리를 짓고 편 가르기가 예사이다. 하지만 바다는 수많은 강이나 내(川)에서 유입되는 물을 받아들이고도 시원(始原)을 따지거나 색깔이나 성분 따위를 비롯해 그 무엇도 묻지 않고 묵묵히 품어 하나의 완전한 세계를 이루는 넉넉함과 오묘함이 있을 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님이 바다를 닮을 꼴이라는 얘기이다. 어떤 일도 모나지 않게 아우르며 누구라도 기꺼이 포옹하는 넉넉함과 깊은 사려가 영락없는 너와 나의 누님 모습이다.
전쟁과 고난으로 점철된 유소년의 뜨락
갑신생(甲申生)으로 그 무렵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이들은 험난한 역사를 온몸으로 겪으며 버거운 삶이 불가피했던 세대이다. 일제로부터 해방 한 해 전에 태어나 6⦁25 전쟁과 격변기에 맞았던 유소년의 뜨락에서부터 예사롭지 않은 사고의 세계가 열렸지 싶다. ‘동생이 몹시 그리운 날’에서 다음과 같은 참혹한 전쟁의 단면을 담담히 그리고 있다.
[일곱 살 철부지의 허리에 집과 땅 문서를 차고 진동에서 구산면 외가로, 거기서 다시 거제의 수월리로 피란을 가서 넉 달인가 보내고 돌아온 고향집은 잿더미로 변해 잡초가 무성했다. 아버지와 오빠가 산에 가서 나무를 베다가 오두막을 짓는 한편 가을걷이를 했다. 한편, 동생을 업고 밥을 지으며 집안 살림살이를 돌보는 동시에 어머니를 돕는 것이 어쩌면 자기 인생의 출발점이었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어머님의 완고한 편견으로 초등학교 3학년을 맞아 여름방학 통지표가 결국 졸업장이 되었다는 한이 서린 회고이다.] 이렇게 유소년의 뜨락은 전쟁으로 인한 고난을 피할 길 없는 질곡의 연속으로 삶에 대한 고뇌와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이끌었지 싶다.
바다에 저당 잡힌 젊음
신혼시절에도 곤고했던 삶을 단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따뜻한 은혜’에서 [꽃다운 이십대 앳된 새 각시가 애기를 업고 옷 보따리를 무겁게 이고 행상에 나섰다]라는 내용이나 ‘바다 인생 40년’에서 [허약해 고기잡이도 나서기 어려운 남편 대신에 스물 넷 꽃다운 나이, 어느 날 운명인 양 어부가 되어 고기잡이로 나섰던 두렵고 떨리던 첫날밤]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극단적인 상황에 처하면 섧고 떫어 편향적인 성격으로 치닫거나 현실을 탓하는 게 보편적인 경향이다. 하지만 님은 모두를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타개해 나가려는 의연한 자세와 성품이 어디에서 연유했는지 그 혼과 얼은 아무도 쉽게 따르거나 흉내 낼 수 없다. 그런 철학과 지고한 경지에서 경험을 축적한 자산은 틀림없이 곳간에 오롯이 쟁여졌다가 훗날 글을 쓰는데 자양분이 되었으리라. 젊어서부터 40여년을 바다의 물결을 가르며 많은 풍파를 맞닥뜨리며 위험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글을 보면 어떻게 이다지도 담대하며 긍정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반듯 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을 든다.
‘바다 속을 걸어본 여자’에서 [여름 장마로 바다가 시뻘겋게 변한 바다에서 검붉은 물속으로 빠져 생사의 갈림길을 오락가락했던 경험이나 한 겨울 바다 가운데서 굴 채취 작업 중에 실수로 물에 빠져 꽁꽁 얼어 동태 꼴이 되었던 위기를 겪으면서도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고 바다는 자기에게 젖줄이라며 감사하며 살겠다]는 마음을 담담하게 글로 엮어내는 재주가 비범하다.
‘바다는 성추행을 해도 왜 죄가 되지 않을까’에서 바다 한 가운데서 스크루에 줄이 감겨 혼자서 죽을힘을 다해 여러 시간 사투를 벌이며 물속에서 고장을 수리하는 매우 위험한 과정을 격하지 않게 객관적으로 냉정히 묘사한 내용은 생사를 초월한 이의 달관이며 무애의 경지를 엿볼 수 있는 빼어난 작품이다.
[그럴 때마다 엉덩이가 저절로 흔들흔들, 젖가슴도 덜렁덜렁, 누구의 간장을 녹일 참인가? 바다는 정녕 성추행을 해도 죄가 되지 않을까? 차가운 물살이 뱀 혓바닥처럼 스르르 내 온몸을 핥고 지날 때마다 나는 소름 돋는 두려움에 사지가 오그라들었다. 만약 낮선 사내의 손길이 내속옷 안으로 비집고 들어온다고 해도 이 두려움에 비할 수 있을까?]
아울러 ‘세상을 살면서 불청객은 아니었을까’에서 [어장을 오가며 군사지역을 가로질러 가다가 잠수함 옆을 지나가 호된 치도곤을 당했던 섬뜩한 경험]을 한 뒤 법을 어기지 않으려 한다는 내용에 이르러서는 고운 심성과 비단결 같은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으로 잔잔한 감동이 전해왔다. 분명히 님은 바다를 사랑하고 믿는 예찬론자이다. ‘바다 예찬’, ‘내 소중한 바다’, ‘미더덕과 살아가다’ 등에서 남다른 바다 사랑을 담백하고 매력적인 화법으로 맛있게 노래하고 있다.
그 시절 연명이 지상 최대의 과제로 내남없이 모두가 어렵고 험난한 삶을 누렸음을 ‘이것이 인생이다’를 통해 보여주며 나와 너의 부모나 자신을 돌아볼 계기를 던져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초연한 자세로 일관하는 냉정을 유지함으로서 통속적이거나 감정적인 모순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는 달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세상이여, 아름다운 삶이여
바다일과 함께한 삶으로 힘들고 험한 세파에 시달렸어도 세상을 보는 눈이나 아우르는 따스한 마음은 천사의 그것을 빼닮았고 어머니의 자애로운 품성이 글의 여기저기에 도도하게 살아 숨 쉬는 고결함에 님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엄마는 여자보다 강하다’, ‘에피소프 (1)’, ‘산이 말한다’ 등이나 [겨울 바지선에서 숭늉을 끓이겠다고 석유를 펄펄 끓였던 아찔한 얘기]인 ‘에피소드 (2)’ 등을 통해서 사유의 세계를 맛깔스럽게 조곤조곤 풀어냄으로써 그동안 갈고 닦아온 내공을 살며시 드러내고 있다.
또한 ‘폭설’에서 [군에 입대했던 아들 면회를 위해 속초에 갔다가 폭설로 길이 끊겨 귀가가 지체되면서 서울의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한 딸을 만나지 못하면서 서울에서 마산행 고속버스 차비 1만원을 구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해도 모두가 외면했던 몰인정한 인심을 탓하거나 불평하지 않는 의연한 심성]을 통째로 드러내는 서술은 나를 돌아보게 하는 웅변으로 압권이었다. 그리고 ‘킬라와 비상벨’, ‘빛 좋은 개살구’에서도 일상의 참담한 경험이나 빗나간 양심에 대해 시침을 뚝 떼고 문제를 슬쩍 들이미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또한 ‘다문화 가족’, ‘새들의 일기’, ‘집 보는 아이들’을 통해 따스한 인간애와 사랑 자연에 대한 외경 그리고 아이들 문제에도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지나가는 얘기처럼 우회적으로 제기하는 수완이 돋보였다.
하늘을 잃고 얻은 신앙
우리는 부모님을 여의면 천붕지통(天崩之痛), 자식이 죽으면 참척(慘慽)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하늘이라 이르던 반려자를 잃음 또한 그에 버금가는 애통함이리라. 님은 ‘하나님의 기적’에서 [갑자기 당한 뇌출혈로 마산에서 부산으로 부산에서 서울로 병원을 옮기며 절망과 슬픔을 겪던 과정에서 우연히 병원 내 교회를 찾아가 부군을 살려 달라고 절실하게 기원하면서 종교에 입문했다]는 고백을 담담히 들려주지만 진한 감동과 울림이 공명한다.
‘행복과 불행은 종이 한 장 차이’를 비롯한 여남은 작품에서 보면 부군이 작고하신 이후의 삶은 바닷일에서 벗어나 신앙과 양로원을 중심으로 한 봉사 위주였음을 웅변한다. 그런데 이들 글에 나타난 가치관이나 철학은 나서거나 내세움을 중심으로 하는 생색내기나 군림과 지기만족의 소승적인 차원이 아니라 한결같이 낮은 자세로 받들고 섬기며 돕는 참다운 사랑의 실천임을 여실히 드러낸 대승적인 작품들이라서 한 번 대하면 중간에 눈을 떼기 어렵다.
또 다른 작품으로 ‘푸른 대문의 안과 밖’이라는 작품은 봉사와 사랑을 실천함에 있어 본보기 같은 작품으로 독자들에게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화두를 넌지시 던져 주는 대목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 작품은 [치매기가 있는 독거 할아버지를 찾아가 수염을 가위로 자르고 면도기로 면도하고 빨래와 밥을 해드리다가 결국 양로원에 입소한 뒤에 병세가 악화되어 요양원으로 옮겨간 후에 면회까지 가는] 등의 내용으로 단순한 작품이 아니라 봉사와 사랑의 교과서로서 모자람이 없는 수작이다.
인생은 육십부터
‘인생은 육십부터’에서 이렇게 말한다. [젊은 시절부터 삶터였던 바닷일을 자식에게 넘겨주고 진갑을 넘긴 나이에 우연찮게 배움의 길이 있음을 알고 대학의 평생교육원에 등록을 하고 시와 수필 창작반에 등록을 하고 공부를 시작하여 원도 한도 없이 공부를 했다. 녹록치 않은 공부에 매진하다가 2011년 “바다가 쓴 시”라는 시집을 펼쳐내기도] 했다.
글공부를 하며 기회가 닿을 때마다 도반들과 문학기행에 나서 ‘하동 문학 기행’, ‘사천팔경 문학답사’, ‘문수사 가는 길’, ‘가야의 문화유산 무진정’, ‘걸어서 50리 길 지옥훈련’, ‘우리시대 우리 것’에서 생생하게 생명을 불어 넣듯이 문학에 대한 열정은 젊은이들의 귀감이 되었다.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단순한 구경이나 유람이 아니라 역사의 숨결과 만남이며 자연과 교감을 통한 배움의 연장이었다. 따라서 문화유적과 평면적 조우를 넘어서 역사의 맥락과 소통을 하며 이름 없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탐구와 학습을 통한 지식의 외연 넓히기라는데 숙연했다.
무애(无涯)의 종심(從心)을 넘어서
님은 ‘바다 인생 40년’에서 이렇게 소회를 읊조리고 있다. [스물넷 나이에 바다에 배 띄워 예순넷 황혼녘을 물들일 제 바다에서 손을 놓았다. 그래서 이제는 그동안 넓은 바다에 새겨 묻어두었던 온갖 사연들을 하나하나 캐내어 원고지에 옮겨 쓰면서 추억의 바다를 유영하고 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순수한 꿈이며 문학적 열정의 승화인가. 그뿐이 아니다. ‘흙이 인심을 낳는다’에서 한층 여유로워진 [당신의 소일거리를 위해 집 앞 공터 남의 땅에 흙을 트럭으로 실어다가 뿌리고 채마밭을 가꾸는] 마음이 천석꾼인 거부이기도 하다.
또한 ‘광암 매립지 추억이 묻힌다’에서 급격한 변화에 대해 [내 유년 시절부터 늘 보아오던 정든 곳, 갯벌과 함께했던 많은 시간의 추억이 사라지고 있다. ......, 갯벌만이 아니라 내 추억 모두를 함께 묻어버리는 것이다. 그 보다도 역사책 속에도 기록되지 않은 광암의 아름다운 경관이 영영 사라지는 순간이다]라고 소회를 피력하며 불편한 심기를 살짝 드러내는 대인다움을 보이고 있다. 그런 변화가 달갑지만은 않은 깊은 속내를 ‘그리운 동진교’에서도 에둘러 문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세상을 살면서 ‘울릉도에서 2박3일’, ‘제주여행’, ‘마라도 가는 길’ 같은 여행이나 ‘제주의 2박3일’에서 [며느리와 며느리의 친정어머니 그리고 당신이 함께 떠난 특별한 나들이 길에도 허허로운 마음을 모두 채울 수 없었음을 행간(行間)에 깔아두고 허허로움을 언뜻언뜻 비치기도] 했다. 그래서 일까. 종심을 넘긴 지금도 어머니와 먼저 간 동생을 가슴 찡하게 절절히 그리워하는 모습에서 나 또한 먼 하늘을 보고 눈을 끔뻑여야 했다.
‘동생이 몹시 그리운 날’에서 [세 조카와 올케를 남겨둔 채 저승으로 떠난 동생이 피난길을 나설 때 핏덩이였던 기억을 떠올리며 가슴 아파] 가슴을 쓸어내리는가 하면, ‘어머니의 향기’와 ‘하늘에 띄우는 편지’는 [숭엄한 사모곡이며 모든 걸 잊고 어머니를 이해하며 화해하는 소통하는 의식]이며 글로서도 험 잡을 데 없는 수작이다.
질곡의 역사를 온몸으로 견뎌야 했던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님의 글은 긍정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꾸밈이 없으며 밝고 맑은 혼이 살아 꿈틀대고 있다. 게다가 험난한 세상 녹록치 않게 살아왔음에도 편협한 사고나 부정적 영혼의 흔적이나 어두운 구석이 전혀 없는 반듯한 성품에 반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님의 글은 전체적으로 문학적 맥락이나 기교에 따른 세련된 맛이나 멋이 아니고 정갈하고 티 없이 진솔한 육성이며 순수한 영혼의 질박한 속삭임이 심금에 파고들어 공명(共鳴)을 일으키는 매력과 호소력이 생명이고 강점이며 고유한 때깔이다.
님이 들려주는 얘기이다. 세상을 살면서 가장 잘한 일 중에서 세 가지는 ‘글(공부)’과 ‘운전’을 배운 것과 ‘하느님을 믿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 중에 하나인 ‘글밭’ 농사의 추수 마당을 지켜볼 수 있도록 객꾼으로 초대해 주심에 감사드린다. 끝으로 님의 건승과 무궁한 문운이 활짝 열리기를 기원한다.
을미년 조춘지절(乙未年 早春之節)
경남대학교 명예교수(경영학박사)
수필가 한 판 암
첫댓글 김명이 선생님 이번에는 수필집을 내셨군요.
진동 그 바다... 선생님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