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빛사랑으로
영광순교자기념성당 앞뜰로 들어서는 순간 순교자들의 다양한 상징조형물이 발걸음을 잡아맨다.
전라도 복음사도 복자 유항검 아구스티노의 전교로 영광 땅에 복음이 선포된 이후 교우촌이 형성되었다.
1801년 신유박해를 기점으로 순교의 칼날은 영광을 거쳐가면서 교우촌은 무너지고 순교자가 많이 배출되었다.
특히 영광성당 앞 읍사무소 뜰 한 켠 저잣거리에서 영광출신 이화백, 오씨 양반이 참수되었다.
신유박해 당시 체포된 신자들은 한양으로 압송되어
포도청과 형조에서 문초를 받고 사형이 선고되면 다시 고향으로 보내져서 참수하는 관행이었다.
이렇게 하여 영광 출신 신자 이화백과 양반 오씨가 참수되었던 거다.
병인박해 직후에 공주에서 순교한 김치명과 나주에서 옥사한 유문모 바오로 역시 영광 출신이다.
순교기념관 앞 손바닥 정원잔디 밭에 위 4명의 순교자를 상징하는 순교자비석이 서 있다.
그 앞에 이해인 수녀가 순교자들에게 받친 성체모양의 순교자 시비가 있는데 이 헌시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어버렸다.
‘핏빛사랑으로’ 라는 제목의 헌시는 4개 연으로 구성되었다.
“작은 풀잎들도 순교자들의 눈물을 기억하며 거룩함의 땅에서 새로운 그리움으로 님들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라고 시작하고 있다. 첫번째 연에 눈길이 가면서 나는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영광 출신 순교자들의 이름을 불러본 적이 있는가.
그들을 위해 화살기도 한 번이라도 바친 적이 있는가.
모두가 ‘아니오’ 이었습니다.
이 자리에 감히 설 수조차 없는 죄인이기에 가슴을 치며 통회합니다.
이제껏 신자라고 얼굴을 들고 살아온 나만의 궤적들은 무늬뿐이었습니다.
솔직하게 고백하며 성호를 그으며 용서를 빌었습니다.
제 3연에서는 “상사화 닮은 그 핏빛 사랑을 가볍게 말해버린 날들이 부끄럽습니다.” 라고 시인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정말입니다. 이제까지 하느님의 한계 없는 사랑을 가볍게 수다를 떨며 지껄여 왔습니다.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조차 없었습니다.
순교자들의 핏빛사랑이 오늘에서야 옹졸한 나의 가슴을 열고 세상으로 피어나고 있습니다.
이를 깨닫는 순간 무거웠던 나의 눈꺼풀이 치켜떠지며 순교자들의 비석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 영광성당을 오지 않았더라면 언제까지 거짓의 옷을 입고 살았을까. 심히 두렵습니다.
대웅전 앞에 심겨지는 배롱나무가 성당 정원에 많이 심겨진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나체되어 핏빛사랑 앞에 자신을 내어놓으라고 말입니다.
<2020. 1. 5 영광순교자기념성당 순례>
첫댓글 가브리엘 형제님의 순례기행문을 읽으며, 자꾸 멀어지는 신심을 다 잡아 봅니다.
수려한 문체로 써 내려 간 형제님의 글을 통하여, 순교자님들의 거룩한 순교정신과 순례지의 생생한 모습을 머릿속에 그림으로 그려보곤 합니다.
개인사정으로 순례길을 함께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이렇게 좋은 글로 같이 함을 느끼게 해 주는 가브리엘형제님과 카페지기 유택수아가토 간사님의 노고에 감사말씀 올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주님 은총, 사랑 가운데 행복하십시오.
이을용글라라 올림.
건의 말씀 올립니다.
가브리엘형제님의 성지순례문을 읽다 보면, 그 곳 순례지의 모습이 너무도 궁금하고 보고 싶어집니다.
머릿속의 상상 만으로는 아쉬운 점이 많아 글과 함께 사진도 함께 게시를 해 주시면 더욱 더 감흥이 크리라 생각듭니다.
'그렇게 궁금하면 직접 찾아가 봐라' 라고 말씀 하시면 별 수 없지만요....
해박하고 깊이있는 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랫만에 글속에서 만나봅니다
늘 건강하시고 주님의 은총 가운데 머무시기를
예~
잊지 않으시고 저희 카페를 방문하여 주시어 감사드립니다
글라라님의 하루가 건강하시고 기쁨이 넘치는 나날이 되시길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