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웠던 타이베이 유경민 프로의 제18회 국제로타리 바둑대회 참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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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경민 프로가 지난 6월3~4일 대만 타오위엔시에서 한국·일본·대만이 참여하는 제18회 국제로타리 바둑대회를 참관했다. 조한걸 회장을 비롯한 16명의 한국선수단은 6.2~7 5박6일의 일정으로 로타리대회와 함께 가까운 타이베이에서 대만기원과 해봉기원을 둘러보고 교류전을 치렀다. 18년간 우정을 쌓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유경민 프로가 전해왔다. 光良 - 約定 2006 광량 - 약속 說好的 三年不見面 用我們的愛把時間留住 3년간 만나지 않아도 우리의 사랑은 계속 될 거예요. 你笑著說 這是我們的考驗 我們的約定 당신은 웃으며 이건 우리의 시험이자 약속이라 했죠. 就這樣 三年又過了 我還是回到這個地方 그렇게 3년이 흘렀고 난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어요. 閉上眼 等你的出現 空氣中吻你的臉 당신을 기다리며 눈을 감고 허공에 느껴지는 당신얼굴에 입을 맞춰요. 我還記得 我們的約定 一輩子幸福的約定 난 우리의 약속을 기억해요. 평생을 행복하자는 약속. 為你寫的那首歌 它也偷偷的掉淚了 당신을 위해 썼던 그 노래도 몰래 눈물을 짓네요. 我還記得 我們的約定 我比以前還更愛你了 난 우리의 약속을 기억해요. 난 전보다 더 당신을 사랑해요. 連那風都笑我了 我想它會告訴你的 我更愛你了 바람이 웃네요. 내 생각엔 저 바람이 내 마음을 전해줄 거 같아요. 중략 你會記得 我們的約定 我比以前還更愛你了 당신도 우리의 약속을 기억할거예요. 난 전보다 더 당신을 사랑해요. 迎著風我也笑了 它一定會告訴你的 바람을 맞으니 나도 웃음이 나요. 바람은 내 마음을 꼭 전해줄 거예요. 我更愛你了 내가 당신을 더욱 사랑한다는 걸. 대만에 있을 때 좋아하던 노래 중 한곡. 3년을 훨씬 넘겨서 가게 된 타이베이는 예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你好, 台北! (니하오, 타이베이!) 6월 2일 (금) 대만의 창공에 들어서자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비바람이 얼마나 센지 금세 속이 울렁거리며 문득 비행기멀미라는 말이 있는지 궁금했다(알고 보니 대만은 며칠간 폭우로 도로가 침수되고 가옥이 떠내려가는 재난 상황이었다). 그래도 어떻든 비행기는 무사히 활주로에 도착했는데 뜻하지 않게 우리 일행은 대만, 일본선수단에 전해줄 선물박스로 인해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관세를 제법 내게 됐다. (혹시 공항직원이 물건가격을 물으면 가능한 가장 낮은 가격을 말하는 게 좋다.ㅜㅜ) 공항을 나오자 우리의 친구 채진송 씨와 가이드 양천 아줌마, 통역을 맡은 대학생 혜평 양이 우리 일행을 맞이했다. 이번 5박6일을 함께한 현지 인물들을 소개하자면 가이드 양천은 아주 자유분방하고 아는 것도 많고 말도 많고 열정 넘치는 분, 혜평 양은 어릴 때 중국 시안에 살았고 부모님은 김포공항 쪽에 사시고 자신은 대만 명전대 3학년에 재학 중인 아가씨인데 이 친구, 본인은 잘 모르지만 한국어가 다소 서투르고 무슨 일만 있으면 표정에 금방 호불호가 드러난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친구 채진송 씨는 로타리 바둑대회를 통해 우리와 아주 친숙한데 언어가 통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마음과 행동으로 매번 우리를 감동시키는 분이다. (이번 여정의 여행사 및 가이드 등 모든 준비 역시 채 선생의 작품.) 18세 연하의 부인과 결혼한 채선생은 늘 자신을 건달이라 하는데 대만체육대의 교수도 맡고 있고 부동산, 로타리, 바둑 등 하고 있는 일이 많다. 밤마다 우리를 술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는 모습을 보면 건달도 아니라 할 순 없겠고 알수록 재미있는 사람이다. 첫날은 종일 비가 왔다. 다음날부터 로타리 대회 행사가 있었기에 우리 일행은 호텔에 잠시 들렀다. 바로 타이베이 근교의 관광명소인 九份(지오펀)으로 향했다. 그리고 양천의 역사 강의가 시작됐다. 과거엔 산에 가구가 아홉 집밖에 살지 않아서 한번 장을 보러 아래 동네에 내려오면 늘 9인분!(九份)했던 게 지명이 됐다는 설명부터 금광이 있었고, 미야자키 하야오 에서 공자, 노자, 장자로 이어지는 계속된 설명에 혜평 양은 당혹스런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목적지에 도착하며 겨우 강의가 멈췄다. 다음 행선지는 스린관저. 과거 장개석이 살던 곳인데 비가 와서 잠시만 둘러보고 패스. 신베이토우의 유황 온천도 비가 와서 금방 패스. 이 대목에서 기억에 남는 양천의 강의는 퀴리부인까지 끌어내며 온천물에 어떤 뛰어난 성분이 있다는 얘긴데 혜평이나 나로선 도저히 알 수 없는 단어. 혹시나 싶어 즉시 대만사람인 와이프에게 물어봤지만 자기도 모르는 단어라고 한다. 스린야 시장은 거의 예전 그대로였다. 밤이 깊었고 채 선생과 함께한 이날 전투엔 많은 회원들이 참전하여 타이베이의 밤을 즐겼다. 2차 전투까지 마친 첫날의 전과는 최철수님의 月亮代表我的心 ‘달빛이 내 마음을 표현하네’ 이 노래는 아리랑과 비견될 정도로 유명한 국민가요인데 노래를 정말 끝내주게 잘하신다. (최철수님은 후에 만찬석상에서 초대가수와 함께 이 노래를 열창하여 청중의 열렬한 환호를 받게 된다.) 또 이날은 대구바둑협회 전무를 맡고 계신 현철영님의 한국노래 부르기 운동이 시작된 날이기도 하다. 평소엔 노래방한번 안 가시면서 외국에 나오니 애국심이 샘솟으신 듯 틈만 나면 한국노래를 찾으시기 시작했다. (타이베이 시내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대만노래방기계엔 한국노래가 없다.) 6월 3일 (토) 오후에 제18회 국제로타리 바둑대회 제가 있는 날이다. 이날도 종일 비가 왔다. 오전엔 호텔에서 가까운 잉거 도자기 거리를 갔다. 호텔이 있는 타오위엔이 한국으로 치면 수원이라면 잉거는 수원 내의 시골동네 같은 느낌. 한국은 어디든 틈만 나면 아파트가 들어서고 신도시가 조성되니 오히려 그게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지만 이번에 대만에 가서 놀란 것 하나는 이젠 대만에도 아파트 건설열풍이 불고 있었다. 과거 내가 대만에 있을 때도 타이베이의 집값은 임금에 비해 결코 적지 않은 수준이었는데 대만도 갈수록 도시의 집값은 몇 배로 뛰고 임금은 별로 인상되지 않은 모양이다. 원래 전통적으로 대만인들은 아파트보다 개인빌라 형태의 주택을 선호하는데 낮은 금리에 편의성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와 높은 개발이익을 추구하는 건설회사의 이해관계가 맞으며 대만도 지금은 가히 아파트 광풍의 시대를 달리고 있다. (현재 대만의 주택담보대출금리는 1%대 수준) 잉거 도자기 거리엔 모르는 내가 봐도 놀랄 만한 멋진 작품들이 많았는데 가격을 보면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30%는 할인해준다는데 그래도 천만원대를 호가하는 작품들이 많았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러 일행은 대만의 절을 갔다. 대만인들은 거의 대부분 불교나 도교를 믿는다. 불교,도교,유교가 섞여 온갖 신이 많은 대만의 기독교인은 통계를 따르면 전체인구의 3.9%라는데 느낌에 실제론 젊은 층을 중심으로 최소 5%는 넘지 않을까 싶다. 구정이나 도교에서 유명한 신의 생일 같은 날엔 대만의 거의 모든 절에서 나와 신의 복장을 하고 카니발과 같이 거리행진을 하는데 요란한 폭죽소리와 함께 정말 장관이다. 전야제엔 대만의 양민성회장과 일본 신도회장, 한국 조한걸 회장 등 내빈과 3국의 참가자가 모여 개회식과 만찬을 즐겼다. 대회장인 로사 가든은 양민성회장이 운영하는 곳으로 주로 결혼식 등 연회를 한다. 현재 국제로타리 바둑동호회의 회장을 맡고 있는 이재윤 회장은 다른 행사와 겹치며 함께 오지 못하셨다. 대만 양민성회장은 대만사회에서 우리 예상보다 더 대단한 분인 듯했다. 의사 출신으로 현재 자신의 이름을 딴 대학병원 수준의 민성병원을 다섯 개나 소유하고 있다 하고 기부, 의료봉사 등 여러 사회활동을 하고 계신다고 한다. 그런데 이분의 매력은 위에 열거한 부분보다 소탈한 인품과 배려에 있다. 18년을 이어온 국제로타리 바둑대회를 처음 추진한 건 일본. 그토록 가깝던 한국에게 단교를 당한 대만은 여러 모로 일본과 가까운 나라다. 린하이펑, 왕리청, 장쉬 등 일본에 있는 대만출신 기사만도 30여 명은 될 것이다. 일본-대만 사이에서 한국이 조금이라도 불만스러울 일이 있을 때마다 양 장은 늘 한국을 배려했다. 이번 행사의 개회식에도 경험 많은 일본어 통역이 다소 오버하는 모습을 보이자 양회장은 식 도중 통역자에게 주의를 주며 한국통역에게 충분한 시간을 줄 것을 주문했다. 이날은 전야제 만찬에서 '사상자'들이 속출했다. 대만 주최 측은 고급 대만요리(한 테이블 10명에 한화80~100만원 추산)와 함께 와인, 맥주, 위스키, 소흥주 등을 무한 제공했고 화려하고 흥겨운 분위기에 도취된 선수단은 여기저기서 와인 원샷! 위스키 원샷!을 연발하며 화력을 아끼지 않았다. 다음날 이 전투를 복기해보니 여러 명이 무적의 전투력을 자랑하는 한명의 대만인과 일대일 각개전투를 벌이다 큰 내상을 입었음이 밝혀졌는데 실은 이날 그 대만인과 마지막 전투를 벌인 건 바로 나였다. 단체버스를 타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현 전무님이 급히 비닐봉투를 찾았다. 호텔 도착3분 전이란 말에 참았던 울분이 쏟아지려는 순간 차를 세우고 전무님이 버스를 내렸다. 그런데 따라 내려 보니 금방 괜찮은 척을 하신다. 공기가 중요하다는 말씀을 몇 번이고 강조하신다. 호텔에 도착한 후발대는 잠시의 심야전투를 갖고서야 해산했다. 6월 4일 (일) 선수단은 아침 일찍 국제로타리 바둑대회가 열리는 로사가든으로 출발했다. 호텔과 로사가든은 차로 2~30분 거리. 이날은 비가 오락가락했다. 대회는 기력별로 A,B조로 나눠 진행됐다. 한국, 일본처럼 집을 세는 계가법과 달리 중국식 계가에 익숙한 대만인이 많았던 탓에 약간의 혼선도 있었지만 친선교류의 의미에 맞게 A조는 한국,대만,일본이 나란히 1~3위를 차지했고 B조는 주최국 대만이 1~3위를 모두 차지했다. 여기엔 사실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는데 주최 측 대만이나 한국이나 일본도 마찬가지로 한 국가가 순위를 독식하거나 전혀 순위에 들지 못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공감대가 있던 차에 오전상황에서 연로한 일본선수단의 노메달이 예상되자 오후대국 들어 한국선수단이 급히 화력을 줄였던 것. 주최 측 채진송 씨는 한국선수단에 거듭 감사를 표하며 호텔 로비에서 기다리겠다는 말을 남겼다. 시상식과 함께 푸짐한 선물교환이 있었고 3국의 대표들이 감사의 말을 나누고 내년 일본대회를 기약하며 공식행사는 끝이 났다. 6월 5일 (월) 로타리 공식행사를 마친 우린 해봉기원과 대만기원을 둘러보기로 했다. 오전 10시를 조금 넘겨 해봉기원에 도착하니 대만 십단전 본선대국이 진행 중이다. 대국실엔 한국유학파끼리 결혼한 천스위엔과 헤이자자, 저우쥔쉰 등이 있었는데 우리 일행은 검토실에서 스크린을 통해 대국을 관전하며 자리를 잡고 대국을 즐겼다. 일행은 모두 해봉기원의 시설에 감탄했다.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도 그렇고 검토실까지 모든 바둑알이 조개알이다. 한쪽엔 몇 명의 어린 대만프로들이 공부 중이고 다른 한쪽엔 나의 절친 샤다밍이 원생들을 상대로 수업중이다. 원생 중엔 내가 대만에 있던 시절 쪼그만 꼬마제자였던 아이가 고1이 돼서 앉아 있었다. 이 꼬마 성이 牛인데 예상은 했지만 꽤 미남으로 자랐다. 牛에게 내년 삼성화재배에서 보자는 말을 남기고 나가는 길에 천스위엔과 결혼한 친구 장정평이 들어왔다. 일정상 다른 일행들이 내려가고 있던 터라 많은 얘기를 나누진 못했지만 확실한 건 정평이는 얼굴이 활짝 폈고 스위엔은 전보다 피곤해 보였다. 점심을 먹고 오후엔 대만기원을 갔다. 가는 길이 예전 그대로다. 대만기원 건물에 들어서며 1층 경비 보시는 분과 눈이 마주치고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대만기원에 가는 건 거의 7년 만인데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다만 안에 들어가 보니 층도 달라지고 과거에 비해 시설이 다소 열악해진 게 보인다. 중환그룹의 사정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도 들리고 경영권을 2세에 넘겨준 옹밍시엔 회장이 전처럼 많은 투자를 하지 못한다는 말도 들린다. 현재 대만의 프로기사는 83명이고 프로기전은 대만기원이 3개, 해봉기원이 3개 주최한다. 우승상금은 가장 큰 기전이 해봉기원의 기왕전으로 120만 대만달러(한화4800만원), 대만기원의 천원전이 100만 대만달러(한화4000만원)로 뒤를 잇는다. 대만기원에서 교류전을 진행할 동안 난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길도 그대로고 심지어 자주 가던 식당의 사장도 그대로인 곳이 많았다. 흑백앨범의 화면 속으로 들어간 것처럼 묘한 기분에 휩싸여 30도가 넘는 습한 날씨에 땀범벅으로 11km를 걸어서 자주 가던 강변공원의 야구장에서 공관의 대만대를 거쳐 사대야시장에서 쥬스를 마시고 사범대 운동장에 앉았다. 타이베이는 변한 게 없었다. 그게 어린 날의 내가 대만을 떠나온 이유이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돌아온 내 눈에 보이는 타이베이는 변하지 않았고 그걸 바라보는 나만 살찌고 나이를 먹어버렸다. 6월 6일 (화) 끝내 긴 비가 그쳤다. 아침부터 기습적인 더위가 찾아왔다. 이날은 타이베이 관광으로 일정이 짜였는데 이미 한국 노래의 갈증이 씻어지며 전의가 느슨해진 현 전무님을 중심으로 체력이 고갈된 다수의 회원들이 더위와 보행을 기피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중정기념당은 원래 건물 내부보다 탁 트인 광장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파란 하늘을 보는 게 좋은 곳인데 밖은 너무 더웠다. 망고빙수를 먹고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양천이 샤다밍이 온다는 소식을 전했다. 우리의 점심장소로 샤다밍과 양멍윈이 왔다. 둘은 내가 스물다섯살에 대만에 갔던 2005년에 한동안 함께 생활했던 친구들이다. 같이 놀았던 에피스드를 얘기하자면 그것만으로 책 한권을 써야 하기에 생략하고 아무튼 유쾌한 바람둥이 샤다밍은 얼마 전 연예인급의 미인과 결혼했고 최근에 알파고에 대한 책을 썼는데 깜빡하고 안 가져왔다며 서점에서 사라고 한다. 인상보다 훨씬 순하고 살이 쭉 빠져서 이제 86kg에 불과한 착한 양은 뒤늦게 대학을 다니고 있다. 이제 와서는 더욱 대학을 다닐 리가 없는 애라 농담으로 예비장모님이 시켜서 다니는 거냐고 하니 그렇다고 한다. 예비처가의 반대가 심해 연애 10년 만에 여자친구 집에 가는 걸 허락받은 양은 살도 빼고 대학도 다니고 일도하며 열심히 결혼을 준비 중이다. 타이베이의 상징인 101빌딩을 거쳐 타이베이 북부의 강과 바다가 만나는 단수이를 갔다. 더 이상의 행군은 힘들다는 판단에 우린 단수이 거리를 포기하고 바로 배를 타고 어부의 부두로 갔다. 원래 여기도 바닷바람이 엄청 시원한 곳인데 이날따라 여기도 덥다. 저녁은 뷔페식 식당이었는데 지화진님이 최근 집을 나오려 했던 사연을 꺼냈다. 집을 나오려 부인에게 메일을 보냈다 한다. 내용은 “까치는 제비를 사랑했다. 까치는 깃털이 다 빠지도록 열심히 둥지를 만들었다. 그런데 둥지를 완성하자 제비는 다른 둥지가 좋다고 한다. 이제 힘이 빠진 까치는 제비를 떠나기로 했다.” 그러자 답장이 왔다. 아직도 다른 까치를 찾아 헤매고 있나? 대략 이런 내용. 저녁을 먹고는 까르푸를 가서 이번에 오지 못한 다른 회원들의 선물을 사기로 했다. 그러자 한국가라오케까지 그렇게 의기양양했던 남성들 중 일부가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고 그래도 마지막 날인데 뭐라도 좀 사가야지.” 이에 반해 “난 지금까지 한 번도 뭐 사간 적 없다. 그게 서로 편해.” 하셨던 현 전무님은 버스 안에서 여성회원들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마지막 밤은 멀리가지 않고 채진송씨와 함께 근처 선술집을 향했다. 고마움을 전하는 우리에게 채 선생은 자신의 고향 타이난에선 친구를 대접하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며 꼭 한국사람 같은 말만 줄줄 읊는데 또 감동이다. 심야회동의 결과 대구 바둑로타리와 타오위엔 로타리의 자매결연을 추진하기로 했고 채 선생도 올해 10월경 대구를 방문하기로 약속했다. 전장의 포연이 걷혀가는 조용한 새벽에 세계맥주와 함께 내방으로 현전무님과 최철수님이 모였다. 노병은 사라지기 전에 말씀이 많으셨다. 며칠간의 전투에 무척 지치셨을 텐데 대만에 마지막 교훈을 남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새벽이 깊어지며 현전무님이 최철수님에게 졸지 말라고 주의를 주며 옛 얘기를 계속하신다. 그러자 정신을 차린 최철수님이 팔만대장경 수준으로 짐작되는 어린 시절부터의 대서사시를 꺼내들었다. 4시를 넘겨 현전무님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셨다. 믿기지 않지만 나 역시 4시 반을 넘기며 끝내 무너지고 말았다. 마지막 밤 최후의 승자는 최철수님이었다. 6월 7일 (수) 아침 일찍 타오위엔 공항으로 갔다. 2시간 정도 여유 있게 도착했는데 공항에 사람이 없어서 시간이 많이 남았다. 짐을 부치고 오는데 갑자기 양천이 엉엉 울었다. 다들 잘해줘서 너무 고맙다고, 전부 가고 나만 남는다고 큰소리를 내며 운다. 너무 할 말, 안 할 말, 구분 없이 말이 많아서 다소 피곤한 면도 없지 않았지만 우리에게 잘해주려던 양천 아줌마의 마음만큼은 최고였다. 열심히 귀담아 들은 것도 아닌데 양천 할아버지가 네덜란드 사람이고 13살 때 할아버지한테 담배를 배웠고 아들이 둘인데 둘 다 키가 180이 넘고 한 명은 싱가폴 공무원이고 한 명은 기관사로 일하고 자기는 평생 요리한번 안 해봤는데 아들을 잘 둬서 아들이 자기를 잘 챙겨준다느니 자신은 독일식 성격이라는 식의 시시콜콜한 얘기들이 다 기억난다. 나한테 대만가수 린요지아를 닮았다고 메모지에 이름까지 써줬는데 와이프가 웃기지 말란 표정으로 안 닮았단다. 옛날엔 그런 얘기 많이 들었는데 이제 살이 쪄서 나도 이제 곧 한국노래 부르기 운동이나 해야 할 듯싶다. 대구에 도착해서 이른 저녁을 먹는데 된장찌개가 정~말 맛있다. 집에 와서 돌을 앞둔 아들 유시안에 앞서 와이프 왕회이츠를 힘껏 안아주고 돌을 앞둔 아들 유시안을 안았다. 며칠 사이에 또 부쩍 큰 아들이 천사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반겼다. 한화가 펑펑 홈런을 맞았지만 마냥 기분이 좋았다. 야구를 보다 초저녁에 잠이 들었고 난 생애 처음으로 12시간을 잤다. 再見!(짜이지엔)
* 출전: 사이버오로 | ||
첫댓글 로타리 가입조건이 우애되능공?
히당님캉 듀오로 가보깡???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