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관조의 중매 이야기(「秦吉了」, 청나라 소설에서)
출처:長白浩歌子 지음,『형창이초(螢窗異草)』,「진길료(秦吉了)」:
당나라시기에 검남도(劍南道, 현재 사천성 성도) 어느 부잣집에 예쁘고 똑똑한 여자종이 있는데 주인이 귀여워하여 다른 여자종들과 섞여서 일하지 않도록 하였다. 어느 날 높은 지방관이 임기를 마치고 떠나면서 구관조(진길료, 秦吉了) 한 마리를 부자에게 선물로 주었는데 아주 예쁘고 사람 말도 잘 따라하였다. 그래서 부자가 여자종에게 구관조를 맡아 잘 돌보고 다른 일은 하지 말라고 시켰다.
어느 날 여자종이 새에게 먹이를 주는데 새가 갑자기 말하길 “언니가 나에게 먹이를 주니까 좋은 신랑을 얻어줄께요!”라고 하였다. 여자종은 부끄러워서 부채로 살짝 툭 쳤지만 새도 놀라지 않았다. 이 뒤로 새가 말할 때마다 여자종은 장난삼아 대답하거나 웃으면서 욕하고 마음에는 두지 않았다. 여자종은 집안 안쪽 깊은 방에 혼자 있고 새도 새장에 답답하게 갇혀서 둘이 짝이 되었고 새는 가끔 창밖을 보면서 구~구~ 소리를 냈다.
어느 날 여자종이 방안에서 목욕을 하는데 새가 “언니 몸매가 예쁘구나! 내가 남자가 아닌 것이 아쉽네. 내가 남자라면 언니를 보고 반하였을 텐데...”라고 떠드는 소리를 들었다. 여자종은 놀라서 몸도 가리지 않고 얼른 가서 한 대 때렸다. 마침 새장 문을 닫아놓지 않아 새가 여자종을 피하려고 방안에서 날아다녔다. 여자종이 급하게 붙잡으려고 덤비자 새가 종이 창문을 뚫고 날아가 버렸다. 여자종은 어쩔 줄 모르며 주인에게 야단맞을 것을 걱정하다가 갑자기 잔꾀가 떠올랐다. 옷을 입고 새장을 처마 밑에 걸어두고 주인에게 달려갔다. 울면서 “제가 방문을 닫아놓고 목욕을 하는데, 어떤 종년이 처마 밑에 걸어둔 새장 문을 열어놓아 새가 날아갔습니다. 저는 조심하지 않아 새를 날려 보낸 죄를 달게 받겠습니다. 죽이시더라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소연하였다. 주인은 평소에 여자종을 불쌍하게 여기고 있었고 다른 종들이 여자종을 질투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이상 묻지 않고 오히려 다른 종들을 야단쳤다.
열흘쯤 지났을까, 여자종은 주인 어머니의 심부름을 받고 한 동네 양씨(梁氏) 부인을 만나러 갔다. 양씨 부인에게는 결혼하지 않은 아들이 있는데 이름이 양서(梁緖)였다. 마침 양서는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새가 날아들어 책상 위에 앉았다. 사람 말을 하면서 “당신에게 좋은 짝을 찾았는데 만나지 않을래요?”라고 하였다. 양서가 놀라서 자세히 보니 구관조였다. 책을 그냥 놔두고 새를 따라 나갔다. 마당에 여자애가 있는데 아주 예뻤다. 그래서 여자애를 뒤따라갔다. 여자애가 어머니 방으로 들어가서 어머니와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으니 부잣집의 여자종이었다. 그런데 예쁘고 얌전한 것이 다른 여자애들과 달랐다. 여자종이 양서를 보더니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둘이 눈이 맞았으나 서로 말을 걸 수 없었다.
얼마 있다가 여자종은 돌아가서 주인에게 아뢰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침대에 앉아 걸어놓은 새장을 보니 새가 다시 날아와 횟대에 앉아있었다. 기뻐서 보물처럼 여기고 새장 문을 닫아걸었다. 새가 큰소리로 “내가 언니를 위하여 좋은 남자를 찾느라고 얼마나 고생하였는데 나를 새장 안에 가두냐?”라고 말하였다. 여자종도 의아하여 물어보니 새가 그동안 일들을 하나하나 다 말하였다. 여자종은 새의 마음을 알고 잡고 있던 새 발을 놓아주었다. 새도 날아가지 않고 침대 위에 앉았다. 새가 여자종에게 말하길 “내가 힘센 아프리카 노예(곤륜노, 昆侖奴)가 아니라서 언니를 엎어 담장 밖으로 넘어갈 수 없지만, 언니 마음속의 짝사랑을 나 말고 누가 전해줄 수 있겠어? 언니는 정말로 양서 남자에게 마음이 있는 거요?”라고 물었다. 여자종은 얼굴이 빨개지고 대답하지 못하였다. 새가 웃음소리를 내면서 “두 청춘남녀의 마음이 확실하구나. 누가 이쪽으로 오고 있네, 내가 먼저 나가야겠습니다.”고 말하고 날아가 버렸다. 여자종은 양서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의 아내가 되는 것을 생각하자 부끄러웠다. 여자종은 밤새도록 잠을 설치고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튿날 아무도 없을 때 새가 날아들었다. 여자종이 부르자 새가 얼른 내려와 앉았다. 여자종이 말하길 “주인은 나를 귀엽게 여기는데 쉽게 나를 시집보내지 않을 것이고, 하물며 양서도 젊으니까 나보다 더 예쁜 여자가 나타나면 마음이 바뀌겠지. 어찌 나 같은 여자종을 데려다가 처로 삼겠니? 네가 마음을 써주어 고맙다. 이 일은 이루어지기 어렵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라고 하였다. 새가 말뜻을 알아듣고 날아갔다가 저녁에 돌아와서 여자종에게 말하길 “양서가 쓴 시를 보았는데 언니에게 좋은 감정을 가졌던데.”라고 하면서, 양서가 쓴 시 구절을 읊어주었다. 여자종도 기뻐서 솔직하게 자기감정을 새에게 말하였다. 아침이 밝자 새가 날아갔다.
양서는 서재에 있으면서 여자종을 생각하고 있었다. 아침에 하늘을 쳐다보면서 높이 나는 새를 보고 “네가 내 말을 여자종에게 전해줄 수 있다면, 나중에 내가 너의 이야기를 쓰고 비석에 새겨서 후세에 전해주겠다.”고 말하였다. 그때 새가 날아와서 담장 위에 앉아 여자종의 마음을 전해주었다. 양서는 기뻐하면서 여자종이 글자를 아느냐고 물었다. 새가 “조금은 알아요.”라고 대답하였다. 양서가 급히 초서체로 여자종과 결혼하겠다고 글을 쓰고 봉투에 담아 풀로 붙이고 땅바닥에 놓았다. 새가 편지를 물고 여자종에게 날아갔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새가 날아오지 않아 여자종의 소식을 알 수 없었다. 답답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부잣집의 여자종이 죽어서 파묻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양서는 이상하게 여기고 수소문해보니 그 여자종이 죽은 것이 맞았다. 슬퍼서 소리 내서 울었다. 도대체 어떤 일 때문에 죽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새가 편지를 물고 여자종에게 날아가 전해주었다. 여자종이 편지를 보았다. 답장을 써주지 않고 값비싼 옥팔찌를 빼서 새에게 주고 자기 부모님의 주소를 알려주었다. 양서가 옥팔찌를 팔아 돈을 자기 부모님께 갖다드리고 부모님이 부잣집에 나를 사왔던 돈을 물러주라고 부탁하였다. 이렇게 돈을 갚으면 둘이 결혼할 수 있다고 여겼다. 새가 옥팔찌를 물고 날아갔다. 그런데 날아가는 도중에 장난꾸러기들이 쏜 새 총알에 맞고 땅에 떨어져죽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여자종에게 걱정거리가 생겼다. 주인은 처음부터 여자종이 예뻐서 사왔고 나중에 첩으로 삼으려고 마음먹었으나, 여자종이 싫다고 거절하였다. 여자종이 새를 잃어버렸을 때 다른 종들에게 잘못을 뒤집어 씌었기 때문에 다른 종들이 여자종을 미워하였다. 더구나 여자종이 나중에 주인의 첩이 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종들은 여자종이 방안에서 새와 밤새도록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던 것을 다른 남자와 사귄다고 주인에게 고자질하여 여자종을 모함하였다. 주인은 크게 화를 내고 여자종의 방을 뒤져서 양서가 쓴 편지를 찾아내자 더욱 화가 나서 여자종을 모질게 때렸다. 여자종은 어이없는 일이지만 뭐라고 설명할 수도 없었다. 결국 죽도록 매를 맞았다. 주인은 여자종의 숨이 끊어지기도 전에 관에 넣고 남자 종복들에게 도시 밖의 야산에 파묻으라고 시켰다.
양서는 여자종이 어떻게 죽었는지 몰랐지만 괴로워하였다. 지쳐서 책상에 엎드렸다가 잠깐 잠이 들어 꿈을 꾸었다. 새털 옷을 입은 여자가 춤 추듯이 다가와서 인사하고 말하길 “저는 구관조입니다. 여자종도 본래는 저와 같은 구관조이었지만 좋은 일을 많이 하여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나는 뒤에 여자종 언니와 우연히 다시 만났고 여자종 언니가 평범한 남자에게 시집가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여자종을 당신에게 소개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날아오다가 새 총알에 맞아죽었고 언니는 다른 종들의 모함을 받아 죽었습니다. 정말로 기가 막힌 일입니다. 그렇지만 언니가 다시 살아날 수도 있습니다. 당신 말고 누가 언니를 살려낼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하였다. 양서는 꿈속에서 기뻐서 자초지종을 물었다. 여자가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르키고 “도시 밖으로 백보를 가면 언니 무덤이 있습니다.”고 말하였다. 말을 마친 뒤 여자는 학이 되어 허공으로 날아갔다.
양서가 꿈을 깨고 얼른 말을 타고 도시 밖으로 찾아나갔다. 여자종을 파묻은 묘지를 찾았지만 누가 볼까봐 파내지 못하고 풀밭에 앉아 밤이 되길 기다렸다. 밤이 되자 따라온 종복들에게 돈을 쥐어주고 묘지를 파냈다. 다행히 관을 깊이 묻지 않았기 때문에 흙을 조금 파내고 귀를 대고 들어보니 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얼른 파내니 여자종이 살아있었고 양서는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근처에 비구니 암자가 있어서 둘이 문을 두드리고 암자에 들어가서 자세한 사정을 말하였다. 비구니도 좋은 사람이어서 여자종을 받아주었다. 양서는 암자에 넉넉하게 돈을 주고 여자종을 맡겨놓았다.
한 달이 넘자 여자종은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였고 예전처럼 예뻐졌다. 양서는 비구니에게 중매를 서달라고 부탁하고 자기 어머니에게 가서 여자종이 아주 가난한 집 딸이라고 알려주라고 일렀다. 양서 어머니가 암자에 가서 여자종을 보니 예전에 한 번 보았던 얼굴을 금방 알아보았다. 여자종은 울면서 양서 어머니께 지난 일을 자세히 말씀드렸고 양서 어머니도 아들을 끔찍하게 여기기 때문에 아들의 뜻을 꺽지 않았다. 여자종을 데리고 와서 결혼시켰다.
그런데 양서와 여자종이 결혼한 뒤에는 부잣집과는 왕래를 끊었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이 여자종의 내력을 알지 못하였다. 뒷날 양서는 구관조의 은덕을 고맙게 생각하여 시장에서 파는 구관조를 볼 때마다 사서 풀어주었다. 아주 먼 뒷날 부잣집이 망한 뒤에야 비구니가 이야기를 털어놓아 세상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첫댓글 새도 중매를 서네요. 재미집니다
청나라 소설도 사람사는 세상이야기네요. ㅎㅎ
이광사 선생께서
신지도에 사시면서
마을마다 굴 타는 젊은 여자들과
작살로 물고기 잡는 젊은 남자들이 많다고 합니다.
또 남쪽에서 날아오는 철새가
청춘남녀에게 중매를 서라고
부탁하시더라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