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 관한 시모음 20)
누부야 /정아지
배꽃처럼 고운 누부야
젖 몸살났단다
어린 동생 업어 키운 누부야
세상 한자락 잡고
술래잡기 잘도 하더니
열세 살 꽃망울 이제 피었단다
어히하리
담산 재 넘어 고갯길
다 너머 홀가분하게 쉬려니
풀풀 배꽃 한 움큼
우수수 떨어졌다니
누부 가슴
시린 바람 안기고
누부 위로 훌쩍 커버린 동생
파랑새 한 마리 배밭에 날려 놓고
누부야 평생 업어 줄터니
아프지만 말아달란다
아버지와 아들 /주명희
바다가 보이는 예쁜 카페에
늙은 아버지와 중년의 아들이 한참이나 지난 여름 끝자락에
팥빙수 한 그릇 사이에 두고 앉아 있습니다.
바닷바람이 이렇게나 차가운데 빙수를 덜어드리는 투박한 중년남성의 손길이
다정스럽습니다. 사진을 여러 각도로 찍어드리는 모습이
마치 아버지가 재롱떠는 어린 아들의 모습을 담아두고픈 모습이랄까요.
팥빙수를 덜어드리는 중년이 된 아들과
맛나게 드시는 늙으신 아버지...부자는 말이 없습니다.
노부는 가끔씩 고개 들어 갈매기를 보거나, 바닷바람에 옷깃을 세우거나
중년의 아들은 아버지가 흘리신 빙수 국물을 닦거나 합니다.
금이야 옥이야 아들 하나뿐인 우리 부부는 50년 후를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는 듯합니다.
거동이 불편하신 늙으신 아버지의 팔을 잡아 드리고 떠나는 따뜻한 뒷모습.
부자가 떠난 자리에 덩그러니 남겨진 팥빙수 그릇 한개.
내 마음도 거기에 함께 머무는 것 만 같습니다.
가족 /최갑연
싸리문 닿을라
버선발 바빠지고
손에 익은 진수성찬
누굴 위한 상이더냐
조상님을 정성으로
내 자식 잘살라고
풍성한 오곡백과
드높은 하늘도 아는구나
붉은 대추처럼
천천히 익어온 우리가족
환한 보름달처럼
꽃 피우는 우리 가족
남매 /남매 장선희
부모 닮은 유전자로 태어나
서로 다른 가슴으로 세상을 산다.
난생처음 가족 되는 소중함은
기쁨과 사랑의 믿음이 되어주고
예쁜 유전자를 닮아 자랑하는 보람도 있었다.
아들이라 장담했던 서운한 아픈 딸도 있고
가문의 아들자손 얻은 하늘에 감사하며
고달픈 세상살이 행복의 낙이라고 우기는 세월에
늦게 얻은 재롱둥이 시대의 행운으은
웬만큼 장성한 잘 자란 걱정되는 딸이었다.
부모는 자식 위해 살이 찢기고 뼈가 으스러지지만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고달픈 줄 모르는 희망에
가슴 움켜쥐는 고통도 기쁨의 치유로 살며
인생사는 법으로 힘겨운 사랑 보여주었다.
말하지 않아도 보이지 않아도
헤아리는 부모의 법으로 위로하며
서투른 말 한마디 끈끈한 사랑으로 통달을 전한다.
이제는, 부모와 세 남매 저 하늘로 보내고
남은 남매 의지하며 지난날 사무치는 가슴에
각자 살아가는 인생 변화 슬픔을 끌어안고
묵묵한 미래의 새로운 하늘을 바라다본다.
가족여행 /해암 주선옥
고이 기른 딸은 지난해 시월 시집보내고
아들과 셋이 떠나온 여행이란 삶의 한 페이지
평소에는 셋이 대전 예산 천안으로
뿔뿔이 흩어져 제몫하며 바삐 살다가
설명절 연휴를 핑게삼아 툭툭털고 나섰다
아름다운 해운대에 숙소를 정하고
동백섬 남포동 자갈치 심야 영화까지
빡빡한 첫날의 일정이 숨가쁘지만 즐겁다
둘쨋날 아침은 느긋하게 커피향 즐기며
창밖의 파도소리 갈매기 소리 들으며
또 하루치의 추억을 차곡차곡 쌓아본다
우리 짱 멋진 아들!
효성스럽기까지 한 울트라 캡숑 아들이
여행을 제안해서 떠나 온 오륙도 부산
친구같던 누나의 빈자리가 느껴지는지
처음엔 묵묵히 발끝만 보고 걷더니
조금씩 두 중늙은이를 보퉁이처럼 챙긴다
아빠는 아직도 스물여섯의 철근같은 아들을
애기야 애기야 애처로이 부르며
바다풍경 도시풍경 당신앞에 세우고
사진을 찍자고 구스르며 귀찮게도 부른다
아들이 사색 좀 하게 놔두래도
자꾸만 곁으로 불러 끌어안으며 내 새끼란다
어느 순간 딸 바보에서 아들 바보가 되었다
여행길은 역시 어디를 가는가 보다
누구와 함께 해야 하는지 그 기쁨이
뻥튀기 되어 몇 배가되는 것인지를 알겠다
신나게 즐기고 누리는 여행의 시간을 통해
평소 바쁘고 분주했던 삶의 시간을
늘어진 고무줄 처럼 내버려 두고 그냥 웃자
이복 형제 /은석 김영제
차라리 모르고
자랄 때가 좋았다고 본다
어차피 나나 그쪽이나
피해자니까
머리 커지고
발 커지니 다 자신뿐이야
우리 애들은 착하디 착해
다를꺼라고
결국 기억력은
속일수 없어 선심쓰는 척
침 못바르니 결국 거기가
끝이더라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다 자찬하시더니
세상에서 가장 바보였던
당신
지금은 다
건짐에 챙길 것 없으니
서로 각자로 지내는 건
어쩌면 당연
내 언니를 그리며 /장선희
생전에 달콤한 피붙이는 아니라도
내 인생의 빛나는 예쁜 언니였다.
육십 세를 넘기지 못한 그녀는
무한한 세계로 떠나갔다.
정체감에 뒷걸음쳐 있을 때
슬며시 기 살려주는 깊음을 주었다.
하고픈 말 너무 많아
높은 밤하늘 까맣게 바라보니
저편에 반짝이는 별이 예쁘게 웃는다.
고통도 외로움도 없는 저 하늘에서
영롱하게 비추는 별이 되었나 보다.
아름다운 저 세상에 있다고
이젠 영원히 잘살아 보자고
밤새도록 손짓한다.
별은 이렇게 내 곁에 있는데
그녀는 성급하게 가버렸다.
가슴으로 파고드는 미소는
아련한 모습으로 사무치고
스치는 바람이 휑하다.
가족 사진 /김은선
소중한 가족사진을 찍었다
너무나 소중했기에 견디어야했다
1993년10월10일 부도를 맞으며
살아온 세월
눈에서는 피눈물이 났고
가슴은 피멍이 들었던 시간
지옥에 문을 드나들던 세월
그 세월을 이겨내기란
어찌 단편으로 써 내려 갈수 있을까~?
그런데도 참고 견디며 오늘을 만들었다
어느 누구는 말을 했다
지독하고도 독하다고
지나고 보니 그 말이 맞은 듯하다
너무나도 오늘이 뿌듯하고 감사하다
자랑스럽고 감사하다
참고 견디어준 가족에게 감사한다
스스로 수고했다 쓰담쓰담해주고 싶다
다른 가족에 일상인 사진이
우리 가족에게는
표창장과 같은 사진
행복한 모습이 항상 우리 가족 곁에 있을거란
믿음이 있다
왜냐하면...항상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족 가슴속엔 다시는
그 길을 걷지 말아야 함을
뼈저리게 겪었기 때문이다
작은 언니 /이해인
동생이 나에게
작은 언니!라고 부를 적마다
내 마음엔 색색의
패랭이꽃이 돋아나네
왜 그래? 대답하며
착해지고 싶네
이슬 묻은 풀잎들도
오늘은 나에게
작은 언니라고 부르는 것 같아
그래 그래
웃으며 대답하니
행복하다
수녀(sister)는
언니(sister)라는 말도 된다지
작은 일에 감동을 잘 하고
오직 사랑 때문에
눈물도 많은 언니
싸움이 나면
세상 끝까지 가서
중간 역할을 잘해
평화를 이루어내는
사랑받는
작은 언니가 되고 싶네
형제 자매 /박태강
한 핏줄에서 태어나고
같은 엄마 젖으로 자란 형제
개성은 달라도
형질이 동일한 형제여 !
너, 나 없이
나누고, 다투고, 싸우면서
성장한 우리
방향이 달라 혜어저도
언제나 부모님이 그리웁고
형제가 생각나
만나면
옛날로 돌아가는 우리는 피 붙이 !
세월의 등을 타고 멀어져도
어버이는 안 계셔도
어릴 때 모습 그대로인
형 동생
옛일
떠 올리며 울고 웃는 우리
세월의 나이테가
안면을 繡(수)놓아도
부모 모습 닮은 형제들이
옛얘기
부모 이야기 꽃피우는
우리는 형제자매.
아우 /박목월
네 이름 뭐니?
ㅡ 박신규
신규아, 이름 뭐니?
ㅡ 박신규
얼레, 지는 이름도 모르는 바보.
ㅡ 박신규
아무리 이름이 뭐냐 해도
두 눈을 뚝 부릅뜨고
대답은
ㅡ 박신규
신규야, 신규야, 성은 박가고
신규가 이름이야.
ㅡ 아냐 박가 박신규야.
박신규는 여섯 살, 내년에는 일학년.
코만 발름발름
이름은 한결같이
박신규래요.
귀여운 내 동생.
다섯 살 내 손주 /최영희
외국에 갔다가 1년 만에 돌아온 첫날
다섯 살 내 손주,
할머니 무릎에 앉아
털어놓는 심경 고백,
“할머니~~~
전에 다니던 유치원‘정이,가 나를 좋아했는데,,,”
(-그 유치원은 우리 아기가 네 살 때 다니던 곳이다.-)
그래?
우리 아가도‘정이,가 좋았나 보네?
고개를 끄덕인다
먼먼 타국생활,
1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한
네 살배기 첫 마음, 첫 사랑
오늘 귀국 첫날, 그 친구
생각이 나나 보다
아- 그 맑음, 그 순수함
다섯 살배기의 심경 고백
별빛만큼 아름답다
그 마음 하얀 빛이겠다
나의 네 살도 그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