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똥
내 어릴 때 소나무 서 있는 들판에서
아버지 같은 눈사람 하나 외롭게 서 있으면
눈사람 옆에 살그머니 쪼그리고 앉아
한 무더기 똥을 누고 돌아와 곤히 잠들곤 했는데
그날 밤에는 꿈속에서도 유난히 함박눈이 많이 내려
내가 눈 똥이 다 함박눈이 되어 눈부셨는데
이제는 아무 데도 똥 눌 들판이 없어
아버지처럼 외롭고 다정한 눈사람 하나 없어
내 마음의 똥 한 무더기 누지 못하고
외롭고 쓸쓸하다
-정호승 시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중에서
-정호승 시인은 어릴 때
들판에서 자랐나보다.
들판에 덩그러이 외딴집 하나 있고
그 옆에 소나무 하나 서 있었나보다.
하얀 눈이 내린 들판에
낮에 뭉쳐놓았던 눈사람 하나
눈사람이라도 의지할 수 있어서 좋았는데
이제는 대중속에서 외로움을 느끼듯
눈사람 뭉쳐놓을 들판도 없다니
우리는 왜 이리 외롭고 쓸쓸해야 하는지.
이번 겨울에는 아버지 닮은 눈사람 하나 뭉쳐놓고
중얼거려 보아야겠다.
"아버지가, 어머니가 보고 싶다."라고.
-중얼중얼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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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ㆍ
내일 시골가는 기차에서
나 어릴 때
똥 싸던 이야기나 써 볼까요?
기대해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