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행위 및 금연운동에 대한 문화․사회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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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관 욱*
그래서 굳이 “왜 흡연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면
“우리는 인간이니까”가 가장 적당한 대답일 것이다.1) - Iian Gately
1. 문제제기
군병원에서 병사들과 금연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면 웃지 못 할 일들이 많다. 병원로비 화장실 앞에 밝게 웃고 있는 여자 연예인의 한 마디-“사랑한다면 금연을 선물해주세요”-와 고개 숙인 몸짱 병사 뒤에 실린 ‘담배, 고개 숙인 남자 만든다!’라는 문구는 그 중 으뜸이다. 순간적인 주위환기 효과도 잠시, 곧바로 병사들의 대화는 원색적인 얘기로 화두가 전환돼 버리기 일쑤다. 예전 ‘군대가서 담배 배웠다’를 ‘군대가서 담배 끊었다’로 전환하고자 하는 국방부의 노력도 군대문화 안에선 무력하기만 하다. 실제로 병사 흡연에 관한 연구 논문을 찾아봐도 90년 이후로 단 세 편2)에 불과하고 이 모두 원론적인 논의에 머무르는 수준이니 더 좋은 결과를 바란다는 건 억지에 가깝다. 가정의학회를 중심으로 최근 흡연에 관한 연구들이 발표되고 있지만, 담배가 창출하는 경제적 규모 및 그 파급효과를 고려해 본다면 담배와 관련된 연구 논문과 관련 서적의 출판 수준은 놀라울 정도로 부족하기만 하다. 어찌 보면 이러한 현상 자체가 하나의 중요한 인류학적 연구 과제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한편, 1998년 민영화의 길을 걷게 된 KT&G는 거의 매해 우수 기업 상을 받으며 한국의 미래와 세계화(Korean Tomorrow & Global)를 책임지고자 나서고 있다. 한쪽에선 담배 제조와 판매 규제를 위해 노력하는 반면3), 정부의 격려 하에 담배산업은 새로운 시장개척을 위해 불철주야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같은 시기 같은 대상을 두고 어떻게 이렇게 모순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미국처럼 KT&G가 철저히 이윤창출만을 위한 거대자본기업이 아니기 때문일까, 아니면 담배산업이 국가 및 지방정부의 주요 세입 수단이어서일까? 중요한 건 이러한 문제의식조차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간접흡연은 비흡연자에게 암을 전파하는 ‘전염병’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즉, 담배와 암은 한 몸(cancerettes)이 되어버렸다. 이것은 각종 발암 물질에 대한 정보와 흡연에 의한 질병 정보가 범람한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의문점들은 절대 의학적 지식이 해답을 제시해 주지 못한다. 현대의학은 통증(pain)과 고통(suffering), 그리고 질병(disease)과 질환(illness)을 구분하지 않는다. 결국, 흡연행위와 금연운동은 단순히 생물학적 논의 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의료인류학자 메릴 싱어(Merrill Singer)는 건강을 "생체문화적․생체사회적 현상(biocultural and biosocial phenomenon)"4)으로 보고 있다. 흡연행위와 금연운동은 어찌 보면 의학담론 중에서 가장 문화적․사회적 관점이 필요한 부분일 것이다. 이제 세계 3대 전염병(AIDS, 말라리아, 결핵)에 대한 의료인류학적 관점을 우리의 역사 안에 잠자고 있었던 오래된 전염병-담배연기-에도 적용한다면, 우스꽝스런 금연운동도, KT&G의 독주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따라서, 이 글에선 특수한 문화적 상황-군대문화-하에서 흡연행위 및 금연운동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실제적인 모습을 살펴보고, 문화에 대한 몰이해가 초래할 수 있는 문제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그 다음으로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담배에 대한 다양한 문화적․사회적 측면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즉, 담배를 ‘피운다는’ 행위가 문화적․사회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지녔는지 역사적으로 살펴볼 것이며, 담배를 ‘팔기’ 위해 이용되는 흡연에 대한 문화적․사회적 장치들을 검토해 볼 것이다. 또한 담배를 ‘끊게’ 하기위해 어떠한 문화적․사회적 관념들이 형성되고 있는지를 비판적인 시각에서 다뤄볼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논의를 거쳐 흡연행위 및 금연운동이 가진 문화적․사회적 측면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해 보고자 한다.
2. 흡연행위 및 금연운동의 단상 : 군병원 금연클리닉을 중심으로
군대에서 담배를 지급한 건 6.25 전쟁 이후부터였다. 이는 병사들의 복지 차원에서 ‘기호품’으로 보급되었고, 현재는 매달 8만 8천원의 월급 중 연초비 항목으로 나오는 1250원을 지불하면 디스 담배 5갑을 공급5)받는다. 궐련은 미국남북전쟁을 필두로 제1․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중요한 군인의 무기일 정도로 전장에 안성맞춤이었다.6) 그 신체적․정신적 효과를 둘째치더라도 휴대가 간편하고 짧은 시간에 사용할 수 있는 특성으로 인해 아직까지도 병사들에게 담배는 군대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 기호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미 육군은 1989년에 이미 흡연이 병사들의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 즉각적인 전투에 임할 수 있는 적응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 판단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1995년 2월부터 논산훈련소에서 금연교육을 실시하였고, 1997년에는 국방부에서 금연교육 교안 발간을 시작하였다.7) 현재 이곳 군병원에서는 보건소의 협조로 병원대기 환자들을 위한 금연안내문 및 광고물이 게시되어 있다. 매주 금연클리닉에서 입원환자를 대상으로 상담 및 금연보조제(금연패치, 금연 껌, 경구약)를 이용하여 금연운동을 진행 중이다.
담배는 이제 군대에서 하나의 통과의례(ritual process) 성격을 지니지 못한다. 이것은 최근 병사들의 흡연 시작 연령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8) 하지만, 병사들과 상담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건 병사들이 단순히 흡연을 니코틴이 주는 긴장이완 효과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며, 금연 또한 신체적 건강만을 위해서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군대문화 속에서 담배가 지닌 상징적 의미는 이등병의 인터뷰 내용에서 잘 드러나 있다.
“6시 30분에 기상과 동시에…8시 20분에서 30분 사이에 과업 출장을 하게 됩니다. 과업 출장 후에 짬이 된다면 담배 피울 시간이 있고 짬이 되지 않으면 바로 과업 출장을 해서 진료 준비를 하게 됩니다. 저는 짬이 안돼서 이때는 피지 못하고 가끔 말년 병장들이 데려갈 경우에나 필 수 있습니다....오후 과업 출장을 하면 필 수 있는 시간이 있지만 이때에도 역시 짬이 안 되면 필 수가 없습니다....오후 업무가 끝나면…환복 후에 선임이 하나 피러 가자고 하면 또 피우러 내려오기도…사회에서는 자유시간이 많고 피운다고 뭐라고 할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거의 습관적으로 심심하면 피우게 되는데 부대 내에서는 그럴 수가 없어서 조절이 되는 것 같습니다.”9)
군대에서 흡연행위는 ‘짬’, 즉 계급을 상징한다. 계급이 낮으면 선임병의 승인 없이는 흡연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병사들 간의 계급 차이에 따른 명령체계는 일종의 ‘구조적 폭력’(structural violence)10)과도 같다. 역사적으로 한국에서 군대란 6.25전쟁의 연속선상에서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인 충성을 강요하는 곳이며, 이에 대한 불복종은 ‘반역’임을 철저히 훈육받는 곳이다.11) 또한 군대는 소년이 ‘성인 남성으로서 재탄생하는 공간’12)으로서 이곳에서 병사들은 남성성을 획득하기 위해 스스로의 약점을 감추거나 극복해야하는 고통을 감내해야만 하다. 이러한 군 생활은 심리적 구속감 및 신체 규율화, 그리고 고된 훈련들로 인해 병사들을 힘들게도 하지만, 군 생활을 두렵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인간관계’13)이다. 모든 것이 통제되는 군대에서 거의 유일하게 자유의 향기를 느낄 수 있도록 허용된 것이 바로 흡연이다. 계급이 낮아도 휴식시간에 선임병의 승인만 얻을 수 있다면 신병도 짧은 시간이나마 심리적 구속감에서 해방될 수 있다. 심지어 일부 병사의 경우엔 흡연구역까지 이동하는 시간 동안만이라도 선임병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입대 전보다 흡연 횟수가 늘어났다고 진술하기도 한다. 물론, 반대로 선임병과의 흡연 행위를 통해 어색한 관계를 호전시킬 수 있기 때문에 흡연량이 증가했다는 경우도 있다. 이를 종합해 볼 때 단순히 흡연 행위를 니코틴 의존성이나 긴장완화 등의 의학적 해석보다는 흡연이라는 ‘행위’ 자체로 인해 얻을 수 있는 동반된 이득-개인 시간 확보 등-이 큰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한국 군대문화 속에 내재된 구조적인 폭력성을 고려한다면 흡연이 단순한 기호 행위가 아님을 파악하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군대에서 시행되는 금연 운동은 ‘호러무비식’, 또는 ‘에로무비식’에 머무르고 있다. ‘담배는 재앙입니다’를 필두로 담배가 유발할 수 있는 질병들로 합성된 흉측한 프랑켄슈타인을 내세워 흡연자에게 으름장을 놓는다. 하지만, 이전 연구에서 밝혀졌듯이 젊은 병사들의 경우 전 생애에 걸쳐 최고의 건강상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건강의 중요성을 망각하기 쉬우며, 그로 인해 질병을 금연의 동기로 부여해서는 금연에 실패할 확률이 높다.14) 한편, ‘담배, 고개 숙인 남자 만든다!’로 발기부전을 필두로 금연 동기를 부여하려는 시도는 젊은 병사들의 문화에 대한 일말의 노력이 들어간 것으로 판단되지만, 이 또한 군인의 남성성에 대한 잘못된 이해15)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다. 금연클리닉을 통해 금연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병사들의 경우 기본적으로 건강을 주된 금연 이유로 말하곤 한다. 그러나 조금만 깊게 면담을 진행하다보면 다음과 같은 얘기를 주로 듣게 된다. ‘군대에서 하나라도 더 얻어가자’, ‘전역을 앞두고 금연만은 성공하자.’ 실제로 군대에서 금연을 결심하는 때는 주로 상병 때이며, 경험상 이 시기가 가장 지속적으로 금연을 유지할 수 있는 시기이다. 이 말 속엔 흡연의 해로움도 일차적인 동기로 포함되어 있지만, 보다 결정적인 동기는 바로 군복무 기간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을 보상받고 싶은 심리가 담겨 있다.
군대의 금연 운동은 구조적으로 제대로 이뤄질 가능성이 희박하다. 명령을 내리는 간부와 이를 따르는 병사 모두 흡연에 따른 건강 문제를 고려하기 힘든 문화에 길들여져 있다. 간부에겐 이미 ‘화랑담배’를 통해 흡연 행위는 애국행위와 동일한 개념이며, 병사에겐 흡연으로 인한 건강상의 문제를 피부로 느끼기 어렵기만 하다. 결국,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위와 같은 다양한 ‘문화적 맥락’(cultural context)을 금연운동가가 얼마만큼 이해하려 하고 파악하려 하느냐에 달려있다. 그래야만 다음과 같은 한 병사의 절규어린 고백을 묵살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상담자 : 군대 내 금연 운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병 사 : 비흡연자들은 모르겠지만 흡연자들에게 강제로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하는 것은 비흡연자들에게 숨을 쉬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금연을 희망하고 끊으려 는 의지가 있는 사람들에게 금연운동은 유익하다고 봅니다.”16)
2. 흡연 행위의 의미 변화 : 화랑花郞에서 20's communication으로의 진화
조선에 처음으로 담배가 도입된 시기는 대체로 16세기말에서 17세기 초로 알려져 있다. 담배는 유입되자마자 급속도로 확산되었고 흡연문화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정착되었다. 이러한 시대 상황은 14년간 조선에 머물렀던 하멜(Hendrick Hamel, 1630-1692)이 쓴『하멜 보고서』(1668)에 잘 기록되어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금은 담배를 너무 많이 피워 네다섯 살짜리 아이들도 피우며, 이제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남녀를 찾기가 매우 드물다.”17)고 나와 있다. 물론, 이러한 하멜의 기록이 어느 정도 현실과 맞지 않는 점이 있다손 치더라도18) 조선 후기 문인 이옥(李鈺, 1760-1815)이 지은 ‘담배의 경전’이라는『연경烟經』19)의 제목만 보더라도 조선시대에 담배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유행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러한 흡연문화는 1905년 11월 을사조약의 체결 이후 일제의 식민지 재정확보의 주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일제는 1909년부터 담배에 세금을 부과하여 징수하였고, 1921년 7월에는 담배전매를 실시하기에 이르렀다. 이 당시 담배전매를 통해 국가 세수 중 20%이상을 징수할 정도로 착취가 극심했었다.20) 이렇게 시작된 담배전매제도는 해방 이후 1948년 11월 재무부에 전매국이 설치되면서 고스란히 이어졌고, 1952년 2월 전매청으로 바뀌면서 한국 정부의 주요 세입으로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렇게 국가의 주요 세입 수단이 된 담배는 전매제도라는 특징을 살려 국가의 중요한 홍보 수단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해방 직후 1945년 9월에 처음으로 국산담배 1호로 제작된 ‘승리’를 비롯해, 1946년에는 독립을 기념하는 뜻에서 ‘백두산’, ‘무궁화’ 등이 제작되었다. 5.16 쿠테타 이후 건설 의욕을 강조하는 ‘재건’, ‘새마을’, ‘새나라’, ‘상록수’, ‘희망’ 등이 제작되었다. 특히 60-70년대에는 체제유지를 위한 목적으로 담배 갑에 추가 문구들-‘환영 독일연방공화국 뤼브케 대통령 각하 내외분 대한민국 방문(1967.3.2)’, ‘재향군인의 날 기념 피흘려 지킨 나라 땀흘려 건설 하자(1967.5.8)’, ‘납세로 자립경제 제1회 세금의 날 기념(1967.3.3)’, ‘경 축 제6대 대통령 취임(1967.7.1)’21)-이 들어가곤 했다. 하지만, 이 중에서도 아직까지 국내 최장수 담배로 기억되는 최초의 군용담배인 ‘화랑’을 빼놓을 수 없다. 1949년 최초의 군용담배로 제작된 후 1981년 말 까지 32년간이나 공급된 화랑 담배는 ‘전우애 시체를 넘고 넘어...화랑 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라는 노래 속 가사와 함께 전우애와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상징하고 있다. 담배와 충성심과의 실질적 연관성은 다음 글에서 잘 표현되어 있다.
“사내들만의 세상, 엄격한 계급사회, 같은 또래면서도 장교였기에 홀로 외로워야 했고, 홀로 고뇌해야만 했으며 병사들의 문제까지도 홀로 해결해야만 했다. 그때, 유일한 벗이 담배였다. 도시의 불빛이 그리웠고, 여자의 머리냄새와 화장품냄새가 그리웠으며, 웃고 떠들 수 있는 친구와 어머니의 미소가 그리웠다. 그러한 때, 나의 젊음과 혈기를 잠재우고 무사히 충성의 길을 갈 수 있게 한 것이 바로 담배였다.”22)
화랑담배를 통해 알 수 있는 담배의 상징적 의미는 1990년대 외산담배의 시장점유율 급증과 함께 발생한 외산담배 배격운동으로 연결된다. 당시 ‘외산담배 흡연=반민족 행위’로 규정되었으며, 물론 그 중심엔 한국담배인삼공사와 한국 전우회-퇴직 사원들의 친목단체-가 있었다. 1995년 8월 29일자 부산일보 신문엔 ‘광복 50주년을 맞아 일제잔재를 청산하자는 국민적 결의가 고조되고 있는 지금도 아직까지 일본담배를 입에 물고 거리를 배회하는 것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이 당시 분위기는 초등학생이 글짓기 대회에서 쓴 글 속에서 보다 명확히 느낄 수 있다.
“우리 몸엔 우리 것이 최고!...(중략)...담배는 나라에도 큰 도움이 되는 것인데 담배까지 수입한다니 큰일이다...(중략)...이렇게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담배를 왜 사람들은 양담배를 피는 것일까? 한 갑이라도 우리나라 담배를 사면 그만큼 나라가 잘 사는데...”23)
“나라 좀먹는 양담배...(중략)...외국의 담배를 무분별하게 아무런 생각 없이 사서 피우는 우리 주위의 아저씨들을 많이 볼 수가 있다...(중략)...우리 농산물이 우리 몸에 맞는 것처럼 담배 하나라도 우리 것이 우리 몸에 맞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담배는 어른들 몸에 해로우며 그 담배 연기로 인하여 남의 건강까지 해치는 데 우리가 양담배를 피우면서 우리 건강과 남의 건강까지 해칠 필요가 과연 있을까?”24)
이와 같은 외산담배 배격운동은 1998년 IMF 이후 정부의 공기업 구조조정 방안이 발표되면서 새로운 국면에 놓이게 된다. 즉, 세계 다국적 기업과의 철저한 자유경쟁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2002년 12월 한국담배인삼공사에서 주식회사 케이티앤지(KT&G)로 사명을 바꾸면서 제품의 이름 및 광고 또한 이전의 모습과 전혀 다른 변화가 생겨났다. 병사들이 가장 애용하는 담배 레종(RAISON)은 ‘존재의 이유’를 뜻하는 것으로 브랜드 컨셉 자체가 ‘자신만의 독특한 문화세계를 창조해 가는 젊은 세대’이다.25) 담배판매소에 걸려있는 레종의 최근의 광고카피는 ‘20's communication'이다. 레종 답배 갑이 여러 종류의 최신형 핸드폰으로 변신한 이 광고는 젊은층에게 있어 담배가 핸드폰처럼 없어서는 안돼는 소통의 아이콘임을 암시하려 한다.
프랑스 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 1901-1983)는 그의 책『현대세계의 일상성』에서 “현대의 광고는 그대로 우리 시대의 이데올로기이다”라 지적하고 있다. KT&G의 레종 담배 광고는 오늘날 젊은층의 흡연행위가 하나의 소통의 행위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유추는 이제는 중단된 화랑담배에서 보다 명확히 확인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담배가 조선에 유입된 이래 흡연문화는 단순한 개인의 기호품을 넘어서 시대 상황을 대변하는 대표적 표상이라 할 수 있다. 그저 바뀌는 것이라곤 누가 그 표상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3. KT&G의 끊임없는 노력 : Biology ↔ Culture
3천 5백억 달러. 전 세계 담배산업 규모는 여전히 굳건하다.『담배, 돈을 피워라』의 저자 타라 파커-포프(Tara Parker-Pope)는 서두에서 자신의 책을 ‘자본주의적 이상의 전형典型인 한 산업에 대한 일종의 입문서’라 밝히고 있다.26) KT&G라고 예외가 아니다. 2010년 담배사업 매출 목표를 3조 1,500억원으로 잡고 있다. KT&G의 사업개요를 들여다보면, 2007년 초부터 2009년까지 ‘공격적 M/S 탈환 및 해외사업 질적 변혁’을 꾀하고 2010년에는 ‘글로벌 담배 기업 도약’을 목표로 하고 있다.27) 이렇게 담배회사가 거대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포프는 담배회사를 “쾌락을 파는 상인들”로 비유하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궐련은 현대 산업의 총아다. 궐련은 다른 소비재에 비해 세 가지 강점이 있다. 첫째, 궐련 형태의 담배 생산과 판매는 놀라울 정도의 저비용, 고이윤 사업이다. 둘째이자 가장 중요한 점은 궐련은 중독성이 있어 대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본질상 사용자들이 더 달라고 아우성일 수밖에 없는 이 제품의 판매액을 덜어갈 수 있는 생존력 있는 대체재는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담배회사들이 여성들, 아이들, 개발도상국들을 목표로 해서 시장을 얼마든지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28)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바로 ‘중독성’이다. 담배회사는 어떻게 해서든 소비자가 담배를 입에 가져갈 수 있게끔, 즉 시용試用결정(trial decision)을 내리게만 만들면 그 다음부턴 중독성이 모든 걸 해결해준다. 결국, 어떻게 하면 담배에 중독 되게 만들까는 담배회사의 주된 연구대상일 수밖에 없다. 중독성과 더불어 좋은 ‘맛’을 내기위한 노력도 함께 동반된다. 그래야만 타제품으로의 소비자 이동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흡연자들은 KT&G가 담배의 중독성과 맛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쏟아 붓고 있는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1978년부터 한국인삼연초연구원으로 20년간 연구실장 등을 역임했던 김정화는 이러한 현실에 대해 직접『담배이야기』라는 책을 써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중략)…이렇게 담배의 맛을 향상시키기 위한 연구와 노력은 대부분 담배회사나 전매당국 산하의 연구부서에서 이루어지는데 연구의 최종 목표가 인류의 건강을 해치는 담배를 더 많이 팔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일반인에게는 그 내용이 잘 알려지지 않는다. 외국의 담배관련 연구원들 가운데는 특정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학자도 적지 않아서 놀랄 때도 있다.”29)
식후일미(食後一味 )란 말이 있다. 식후에 피는 담배 맛이 제일이라는 말이다. 이는 수많은 담배연기 중 페릴라르틴(perillartin)이라는 단맛을 내는 성분이 식후에 분비된 다량의 침에 녹아서 단맛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흡연시 느끼는 맛을 위해 담배는 1차 가향 과정(casing sause) 및 2차 가향 과정(top flavoring avoring)을 거치며 이 때 사용되는 향료의 조성은 각 담배회사마다 극비로 되어 있다. 일부 알려진 바에 의하면 1차 가향 재료는 주로 설탕 종류이며, 그 외에도 감초, 코코아, 자두, 건포도 추출물이 쓰인다고 한다.30) 여기서 주목할 점은 ‘담배 맛이 달다’라는 표현이 단순히 한국어의 상투적 표현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첨부된 설탕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다. KT&G 경영연구소의 WHO 담배규제협약에 대한 연구 자료(2002.11) 내용 속에는 ‘단순히 담배의 맛과 향을 주기 위하여 첨가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금지하여서는 안된다.’31)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KT&G가 그저 ‘단순한 의도’에서 첨가물을 사용할지 강한 의문이 든다. 담배성분 규제협약의 목적은 첨가물에 의해 담배에 대한 중독성을 증가시키거나 흡연자의 흡연습관을 바꾸게 하여 흡연량을 증가시키는 것 등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담배의 맛은 그냥 맛이 아니라 ‘단맛’이다. 인류학자 시드니 민츠(Sidney W. Mintz)는 그의 저서『설탕과 권력』을 통해 인류가 어떻게 ‘단맛에 길들여지고’, ‘새로운 소비습관에 길들여졌는지’를 보여주고 있다.32) 2007년 KT&G의 신상품 BOHEM CIGAR NO.6의 광고 카피는 ‘Smell first before smoke’이다. 시가엽의 ‘깊고 풍부한 맛’을 느끼게 하기 위한 이 신상품은 단순히 시가엽의 맛을 소개하기 위한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최고의 맛에 흡연자들을 길들이기 위한 KT&G의 ‘공격적인 마켓팅’의 결과물임에 틀림 없다.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심리학 교수인 폴 로진(Paul Rozin)은 인간의 식품섭취 행위가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Biology)과 음식문화(Culture)가 서로 상호작용(synergism & antagonism)의 과정을 거쳐 이뤄진다고 보았다.33) 로진의 이러한 지적은 인간이 특정한 맛을 선천적으로 좋아하기 때문에 그 음식을 섭취할 뿐만 아니라, 반대로 특정 음식에 대한 문화에 의해 특정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이러한 논리를 담배에 적용해 보면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긴다. 과연 인간의 흡연행위는 본질적으로 자발적인 행위일 것인가이다. 이 대답은 담배회사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오히려 그는 순전히 심리적인 이유에서 흡연을 시작하는 듯하다...(중략)...사실 흡연을 처음 경험하는 사람은 니코틴 내성이 충분히 길러질 때까지 불쾌감을 느끼는 것이 보통이다...(중략)...우리가 비흡연자나 예비흡연자를 유인하려 할 때, 이 형태의 제품에는 그가 현재 알고 있거나 바랄만한 점이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의도적으로 니코틴의 역할에 대한 선전을 억제해왔으므로 비흡연자는 궐련이 자기에게 어떤 만족감을 줄 수 있는지를 거의 혹은 전혀 알지 못하여, 당연히 그것을 피워보려는 욕구도 거의, 혹은 전혀 없다. 따라서 우리는 그가 담배에서 진정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는 전혀 불합리한 이유를 내세워서라도 어떻게든 흡연을 시도하도록 만들어야 한다.”34)
젊은 세대와 중년층의 유행하는 문화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기반으로 하여 신상품 제조와 광고를 통해 전혀 알지 못했던 맛과 습관에 길들이게 만든다. 하지만, 황금알을 낳는 담배산업은 그렇게 수동적이지 않다. 하버드대 의사학 교수인 앨런 브랜트(Allan Brandt)는 “담배는 선천적인 특성보다 판촉에 의해 의미가 정의된다.”고 지적하며, 또한 흡연문화가 단순히 ‘우연히 이뤄진 것’이 아니라 말하고 있다.35) 그는 미국의 거대 담배회사들이 과거에 문화적 조작을 통해 흡연 문화를 형성시키고, 더 나아가 흡연에 반대가 되는 문화가 있다면 그 문화를 변화시키기 조차 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이미 간접흡연의 해로움에 관한 많은 근거들이 밝혀짐에 따라36), KT&G도 예전처럼 간접흡연에 대한 근거 부족을 내세우며 흡연행위를 방어37)할 수만은 없는 입장이다. 따라서 문화적 조작은 아니지만 적어도 문화의 후광을 입을 수 있는 좀더 정교한 방법과 세련된 문구로 제품을 만들고 있다. 2004년부터 유명연예인을 통한 TV광고를 통해 ‘상상예찬 KT&G’를 심고자 했던 노력은 국민의 폐를 병들게 하는 원흉으로서의 부정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담배 이외에도 다양한 사업을 하는 기업 이미지를 심고자 했다. 전혀 제품에 대한 홍보는 없었지만, 상상력에 대한 강조는 레종 담배의 브랜드 슬로건인 ‘Creative Revolution’과 동일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는 그의 저서『가짜 돈(Counterfeit Money)』(1991)에서 “담배는 상징적인 것을 상징한다.”고 말한다.38)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특성이 바로 ‘상징’이라지만 담배에 대한 상징만큼은 담배 자체가 상징적인 것이기에 명확히 정의내릴 수 없다. 그러하기에 담배회사의 수익창출을 위한 길은 단순히 인간의 생물학적 감각에만 의존하지 않고도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러한 담배의 특징에 대해 제일 잘 이해한 것도 담배회사이며, 이를 위해 가장 많은 연구를 하는 것도 담배회사라는 데 있다. 다음과 같은 시드니 민츠의 지적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언젠가는 담배에서 니코틴 함량이 제로가 되더라도 담배에 대한 소비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담배와 설탕과 차는 자본주의 안에서 그것들을 사용함으로써 복잡한 관념을 전달할 수 있는 최초의 대상물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그런 물질들은 소비하는 사람들이 다르게 ‘소비함’으로써 다르게 ‘될’ 수 있는 그런 물질들이었던 것이다. 이런 관념은 영양가라든가 본성이라든가 단맛을 좋아하는 것과는 거의 관계가 없는 것이며, 오히려 상징들과 더 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39)
4. 은유로서의 금연 : Moralization of Smoking
미국의 심리학자 폴 로진은 흡연이 이미 도덕적 문제로 전환되었다(moralized)고 주장한다.40)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가장 성공적인 금연정책사업이 진행되었다고 평가받는 성북구의 서찬교 구청장은 “금연은 모든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 스스로 실천하고 지켜야 할 덕목이며 나아가 사회적 의무”41)라고 말하고 있다. 즉, 흡연 행위는 단순히 기호 행위가 아니라 사회적 의무를 지키지 않는 비도덕적 행위로 취급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미 2004년 8월 26일 헌법재판소에서 ‘혐연권이 흡연권 보다 상위의 기본권이다’라고 판결을 내렸기 때문에 법적인 근거까지 마련된 셈이다.
하지만, 우려되는 점은 이것이 단순히 흡연행위를 비도덕적으로 판단한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미국의 유명한 에세이 작가인 수전 손택(Susan Sontag, 1933~2004)은 그녀의 저서『은유로서의 질병(Illness as Metaphor)』에서 환자의 질병을 도덕적 시선으로 바라보려하는 “은유의 함정”을 폭로하고자 하였다.42) 이러한 손택의 문법을 인용한다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금연운동 또한 단순히 의학적 근거에 입각한 계몽운동 차원을 넘어선 ‘은유’로서의 금연운동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즉, 흡연행위 자체에 대한 도덕적 시선에 머물지 않고 그 행위자한테 무엇인가 추한 시선을 보내고자 한다는 점이다. ‘Cancerettes(cancer+cigarettes)’라는 신조어가 말해주듯, 담배는 곧 암의 또 다른 동의어일 뿐이며, 간접흡연을 유발시키는 흡연자는 비흡연자에게 암을 ‘전염’시키는 살인범으로 취급된다. 서양의학의 발달에 의해 형성된 암에 대한 공포증(cancer phobia)는 급기야 흡연자를 발암인자로 전락시켜 버렸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97년도 한국담배판매인회중앙회에서 발간하는 ‘월간 늘벗’ 10월호에는 “담배는 흉기가 아니고, 흡연은 범죄가 아니다”43)라는 제목의 글이 실려 있다. 이 때만 하더라도 언론의 ‘담배 죽이기’라며 애연가 및 담배회사의 반발이 거셌다. 오랫동안 흡연행위를 애국과 동일시했던 화랑담배의 수혜자들이 애국자에서 하룻밤 사이에 범죄자가 되어버렸으니 그 억울함을 이해할 만도 하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흡연자에 대한 은유적 시선은 ‘도덕적 오염’44) 수준으로까지 진화되었다. 즉, 간접흡연으로 인한 물리적 오염을 넘어 흡연자와의 접촉을 도덕적으로 오염되었다고 인식한다. 불쾌한 담배연기냄새, 더러운 가래, 거슬리는 기침소리, 불결하고 지저분한 담뱃재, 시퍼런 이빨 등 흡연자를 상징하는 부정적 이미지는 이들과의 접촉을 마치 불결한 것이 자신의 몸에 묻은 것처럼 불쾌해 하기까지 한다.
흡연에 대한 사회의 지나친 도덕적 잣대는 자칫 그릇된 흡연문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 <조선후기 흡연인구의 확대과정과 흡연문화의 형성>에 대한 신규환․서홍관의 논문에 실린 다음 내용은 이를 잘 대변해 준다.
“...(중략)...이처럼 차별이 엄격한 흡연문화 자체는 흡연인구의 증가를 억제한 것이 아니라 단지 신분에 따라 흡연공간을 제한시켰을 뿐이었다. 오히려 흡연문화가 정착되면서 흡연인구를 양산하게 된 경우가 있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아동흡연에 있었다.”45)
오늘날과 같은 흡연에 대한 지나친 도덕적 잣대는 흡연자들에게 낙인(stigma)을 찍고 차별화하는 행위를 초래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이것은 흡연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회․경제적 요인들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그로 인해 자칫 흡연이 특정 계층의 전유물로 전락하여 계층간 건강불균등(health disparity)을 초래할 지도 모른다.
미국의 진화 심리학자 스티븐 핑거(Steven Pinker)도 최근 자신의 글 <도덕적 본능Moral Instinct>에서 흡연이 이미 도덕적 해석(moralization)의 대상이 되었다고 지적하였다. 하지만, 그는 특정한 행위가 도덕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느냐 아니냐는 그 행위가 얼마나 해로운 지와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즉, 특정 행위에 대한 상이한 잣대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자기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도덕적 해석을 일치시키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다(people tend to align their moralization with their own lifestyles).46) 이제는 어른 앞에서 술과 담배를 배우던 시절은 지났으며, 나라를 위해 국산담배를 피우던 시절 또한 이미 지나갔다. 한국인의 라이프스타일은 맥도날드화(McDonaldization)47)된 지 오래다. 특히 보건의료 분야 지식은 미국보다 더욱 미국식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에48) 한국인 몸의 의료화(medicalization) 과정은 미국과 유사한 길을 걷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기에 핑거의 지적처럼 이제 금연을 강조하기 위해 담배의 유해성을 강조할 필요가 없다. 자동적으로 흡연은 만병의 원인이며, 금연은 건강의 으뜸가는 지름길이 되어버렸다.
흡연에 대한 도덕적 해석은 공중보건의 입장에서 보면 일면 정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만 주위를 살펴보더라도 건강에 해가 되더라도 줄담배를 피우는 이를 볼 수가 있다.49) 즉, 의료인류학자 조지 포스터(George Foster)가 지적한 대로 건강에 대한 선호도는 개인차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들 대부분이 병보다 건강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이 가정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 보건행동의 가장 중요한 측면의 몇 가지를 간과하게 된다. 건강은 생활상 요망되는 다른 사물과 마찬가지로 개개인의 개인적인 선호도 가운데 그 위치를 점하고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가장 높은 위치의 가까이에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것은 가장 낮은 쪽에 있다.”50)
이렇게 개인마다 그들이 처한 사회적․문화적․경제적 환경에 따라서 건강에 대한 선호도가 차이가 있을 수 있으며, 그러한 차이가 흡연 행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깊이 이해하지 않고 금연을 논한다는 것은 자칫 새로운 ‘마녀사냥’의 제물을 만들어 낼 지도 모를 일이다.
5. 누구를 위한 흡연 혹은 금연인가?
도대체 언제부터 흡연행위가 결정적으로 위험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을까? 앨런 브랜트는 미국 사회에서 흡연이 위험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 결정적 시발점을 1964년 당시 미국 공중보건국장이었던 루서 테리가 ‘흡연과 건강-공중보건국장 자문위원회의 보고’라는 보고서를 통해 흡연이 특정 질병들의 사망률과 전체 사망률을 상당 수준 증가시킨다는 사실을 발표했을 때라고 말한다.51) 결국 흡연과 금연의 전쟁은 그 역사가 채 50년도 안됐다. 하지만, 흡연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담배회사의 전략은 보다 세련되고 보다 치밀해졌으며, 동시에 흡연자들에 대한 금연운동은 이제 도덕적 문제로까지 치닫고 있다. 양쪽 간의 치열한 줄다리기로 인해 정작 그 중심에 선 개인은 자기 자신이 지금 누구를 위해 흡연을 하고 금연을 하는지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군병원 금연클리닉에서 느꼈던 병사들에 대한 우스꽝스런 금연운동도 담배가 문명의 발달과 함께 걸어온 발자취를 들여다보면 마냥 웃기지 만은 않다. 금연 운동은 이러한 담배에 관한 의학적 측면은 물론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측면까지 깊이 있는 성찰이 있을 때에만 비로소 인류를 더욱 행복한 길로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의료인들도 담배회사를 벤처마킹 해야만 할 것이다.
※ 색인어 : 흡연, 금연, 군인, KT&G, 문화
< 참 고 문 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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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월간 늘벗(한국담배판매인회중앙회, 1997년 10월호)
* 아주대학교 인문사회의학교실 석사과정 중. 현 국군강릉병원 가정의학과장. kimkwanwook@hanmail.net
1) 이언 게이틀리. 정성묵․이종찬 옮김.『담배와 문명』(몸과마음, 2003). p.21
2) 하영호 외 3인. 우리나라 일부 군인의 흡연에 관한 실태. 가정의학회지 1996;17(3):214-222, 신숙호. 훈련소 금연교육이 군 생활 중 흡연행태에 미치는 영향.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98, 장명숙 외 3인. 일개 군 병원에 내원한 사병들의 흡연 양상과 금연 교육이 흡연에 미치는 효과. 가정의학회지 2002;23(11):1377-1383
3) 박재갑 외.『담배제조 및 매매금지-문제점과 대책』(국립암센터, 2006)
4) Merrill Singer & Hans Baer.『Introducing medical anthropology』(Altamira press, 2007). p.13
5) 현재 매년 지급되는 담배는 절반씩 감소하고 있으며, 2009년에는 완전히 보급 중단될 예징이다.
6) 타라 파커-포프. 박웅희 옮김.『담배, 돈을 피워라』(들녘. 2002). p.27-33
7) 신숙호. 훈련소 금연교육이 군 생활 중 흡연행태에 미치는 영향.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98
8) 장명숙 외 3인의 최근 논문(2002년) 결과에 따르면 전체 흡연자 중 25.3%가 중학교 때 흡연을 시작했으며, 53.6%가 고등학교 때, 12.2%가 대학생 때, 그리고 입대 후 시작한 경우는 7.2%에 그쳤다.
9) 2008.2.12 국군강릉병원 금연클리닉에서 이등병과의 면담 내용 중 일부를 옮긴 것임.
10) 구조적 폭력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Paul E. Farmer 외. Structural Violence and Clinical Medicine. Plosmedicine. 2006;10(3)을 참조하기 바람.
11) 김동춘.『전쟁과 사회』(돌베개, 2000). 저자는 6.25 전쟁을 상기하는 것이 사회 질서 유지의 중요한 기둥(p.42)이며, 이를 통해 한국사회에 ‘반역’의 담론이 현상화되었다(p.274-277)고 지적하고 있다.
12) 권인숙.『대한민국은 군대다』(청년사, 2005) p.256
13) 김이훈.『군대에서 미래설계하기』(한솜미디어, 2005) p.87
14) 전상임 외 4명. 의사의 금연교육이 환자의 흡연습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 가정의학회지 1992;13(6):503-508
15) 병사들의 에이즈 감염에 대한 군병원내 교육에선 휴가 시 콘돔 지급과 같은 지극히 1차원적인 방법만을 고려할 뿐이다. 부대 앞에 성행하고 있는 티켓다방을 통한 윤락 행위에 대해서는 규제는커녕 무방비 상태로 방치하고 있으며, 심지어 군인이 누려야 할 특권으로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마저 느낄 수 있다.
16) 2008.2.12 국군강릉병원 금연클리닉에서 이등병과 면담한 내용 중 발췌함.
17) 헨드릭 하멜. 유동익 옮김.『하멜 보고서』(중앙M&B,2003), p.69-70
18)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신규환, 서홍관. 조선후기 흡연인구의 확대과정과 흡연문화의 형성. 대한의사학회. 2001;10(1);23-59을 참조하기 바란다.
19) 안대회. 이옥의 저술 <담배의 경전>의 가치.『문헌과 해석』(2003년 가을, 통권 24호)
20) 신규환. 서홍관. 앞의 논문. p.56
21) 한국담배판매인회중앙회. 담배이름은 시대 반영하는 ‘상징’. 월간 늘벗 1997;7:42-43
22) 최연식. 지친 영혼의 위안자. 사보 담배인삼가족. 1995;9:9
23) 세류초등학교 5학년 전승현. 경기지역본부 주최 국산품 애용 글짓기대회 우수작. 사보 담배인삼가족. 1995;1:62
24) 용현초등학교 6학년 이현정. 삼천포시 초․중․고 글짓기대회 금상 수상작. 사보 담배인삼가족. 1995;1:63
25) www.ktng.com에서 브랜드 전시관에 실려 있는 설명에서 직접 인용함.
26) 타라 파커-포프. 앞의 책. p.16
27) www.ktng.com에서 사업 분야 중 담배사업 사업소개에 나온 내용을 참조함.
28) 타라 파커-포프. 앞의 책. p.53
29) 김정화.『담배이야기』(지호, 2000). p.197
30) 김정화. 앞의 책. p.218
31) KT&G 경영연구소. WHO 담배규제협약 제정관련 국가간 협상회의 대응방안 연구(2000년 11월). p.36
32) 시드니 민츠. 김눈호 옮김.『설탕과 권력』(지호, 1998). p.41-49, 142-152
33) Paul Rozin. Human Food Intake and Choic: Biological, Psychological and Cultural Perspectives. p.7-25
34) 타라 파커-포프. 앞의 책. p.116. 이 내용은 R.J. 레이놀즈사 연구개발 부서의 부책임자 클로드 티그가 1972년에 작성한 내부 비망록의 일부를 옮긴 것임.
35) 샌더 길먼, 저우 쉰 외.『흡연의 문화사』(이마고, 2006). p.524-542, <갈수록 정교해지는 마케팅 전략 : 앨런 브랜트>
36) 간접흡연의 해로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서홍관. 간접흡연의 해로움. 가정의학회지. 2007;28(7):493-499을 참조하기 바람.
37) KT&G 경영연구소. WHO 담배규제협약 제정관련 국가간 협상회의 대응방안 연구(2000년 11월). p.32-35 <간접흡연 규제에 대한 입장>
38) 샌더 길먼, 저우 쉰 외. 앞의 책. p.492. 저자가 인용한 데리다의 문구를 재인용한 것임.
39) 시드니 민츠. 김문호 옮김.『설탕과 권력』(지호, 1998). p.337
40) Brandt Allan & Paul Rozin(Edt).『Morality and Health: Interdisciplinary Perspectives』(Routledge, 1997). p.379-402 <Moralization : Paul Rozin>
41) 서찬교.『금연정책과 지방자치단체의 역할』(박영사, 2006). p.V <책을 내면서>
42) 수전 손택. 이재원 옮김.『은유로서의 질병』(이후, 2002). p.15-124
43) 월간 늘벗. 담배는 흉기가 아니고 흡연은 범죄가 아니다. 97년 10월호. p.34-37
44) 샌더 길먼, 저우 쉰 외. 앞의 책. p.556
45) 신규환. 서홍관. 앞의 논문. p.52
46) Steven Pinker. The Moral Instinct. The New York Times (Jan. 13, 2008)
47) 조지 리처. 김종덕 옮김.『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시유시, 2004)
48)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종찬.『한국에서 醫를 論한다』(조합공동체 소나무, 2000). p.22-28 <권력과 지식의 정치경제학>을 참조하기 바람.
49) 아이러니컬하게도 의사들 중, 특히나 순환기내과, 호흡기내과 의사들 중에 chain-smoker가 많다는 사실은 오직 개인적인 경험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50) 조지 포스터․바바라 앤더슨. 구본인 옮김.『의료인류학』(한울, 2002). p.211-212
51) Edward J. Burger(Edt).『RISK』(University of Michigan Press, 1993). p. 156 <The Cigarette, Risk, and American 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