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야생화에서 세상살이를 배운다
- 홍문택 신부님 -
작년 여름 어느 날 작업을 하다 망가진 연장을 고치러 의정부에 있는 공구 수리점에 들렀다.
공구를 수리하는 아저씨는 공구가 어떻게 망가졌는지를 설명하는 내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내 얼굴만 신기한 듯 쳐다보더니
"아저씨, 어느 나라에서 왔수?
한국에 온 지 오래됐수?
한국말을 참 잘하네."
시골에 와 살면서 새까맣게 탄 내 얼굴을 보고 아마 나를 외국인 노동자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서울을 떠나 시골에 와서 사는 내 모습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세탁기로 빨고 훌훌 털어 말려 입으면 되는 편한 옷들을 주로 입고, 작업화를 신는 날이 많아졌다.
아침이면 으레 장갑을 끼고 땡볕을 가리고자 모자를 눌러쓴 채 하루를 시작하는게 나의 모습이 되었다.
작년 이맘때였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우리 학교 학생들이 귀가한 일요일에 모처럼 서울로 장을 보러 올라갔다.
점심때가 되어 식당에 들어가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맞은편에 앉은 손님 두 분이 자꾸 나와 눈이 마주치는 것을 피해가며 나를 살펴보고 있었다.
불편한 마음에 먹는 둥 마는 둥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려는 순간, 그분들이 나에게 다가왔다.
"혹시 홍 신부님 아니신가요?"
"네."
"지금은 어디 계시나요?"
"연천에서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과…"
나의 설명을 듣자 그분들은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신부님이면 당연히 일요일에 성당에 계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허름한 평복을 입으신 모습으로, 더구나 일요일인데 장을 보고 계신 것을 보고
혹시나 신부님 생활을 그만두신 게 아닌가 하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나는 그분들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분들은 오래전 나와 같은 성당에서 신앙생활을 했다고 했다.
외진 시골에 와서 조용히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시골 생활을 하면서 덕을 본 것도 많다.
무엇보다 10여년간 고생했던 안구(眼球)건조증이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살면서 말끔히 사라졌다.
그리고 동이 트면 예전에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온갖 새가 찾아와 상쾌한 아침을 만들어 주는 것,
낮이면 겁을 먹은 듯 사람의 눈치를 요리조리 살피며 줄행랑을 치는 다람쥐들을 볼 수 있는 것,
밤이면 시골다운 정경을 실감나게 해주는 반딧불을 보며 걸을 수 있는 것과
크게 펼쳐진 밤하늘 화폭에 반짝거리는 별들을 실컷 볼 수 있는 것이 그렇다.
그리고 가끔 뜰에서 고라니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사람을 발견하고는 냅다 수풀로 달아나 머리를 박고 혼자 안전하다는 듯 숨지만
엉덩이가 그대로 드러나는 어린 고라니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미소 짓게 된다.
이렇듯 시골 학교에서 지내는 하루는 종일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자연학습장이다.
나는 시골에 온 덕분에 이 소중한 자연학습장을 거저 얻은 셈이다.
시골에 와서 제일 공을 들인 일은 야생화(野生花) 심기였다.
학교 이름처럼 예쁜 학교를 만들자며
몇 달 동안 온종일 쪼그리고 앉아서 야생화를 심었고 정성을 다해 키웠다.
야생화들은 너무 잘 자랐고 학교 주변을 아름다운 동산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다음 해 엄청난 폭우로 산사태를 맞고 말았다.
뿌리째 뽑혀 뒤엉킨 나무들과 흙더미에 묻혀버린 교사 숙소는 너무나 참담했다.
예쁘게 잘 자랐던 야생화들도 흙더미에 완전히 묻혀버렸다.
하지만 나는 좌절하지 않고 그다음 해 또다시 많은 야생화를 심었다.
새로 심은 야생화들은 해가 갈수록 잘 자라서 학교를 가득 채웠다.
찾아오는 분마다 야생화들이 '그림을 그려보고 싶은 학교'를 만들어 주었다며 좋아했다.
그렇게 잘 자라던 야생화에 올해 비상이 걸렸다.
몇 년 전에는 집중폭우로 엄청난 피해를 당했던 이 지역에 이번엔 유독 극심한 가뭄이 계속되었던 것이다.
이곳 연천에서 태어나 평생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계신 동네 어르신들께서
"이런 가뭄은 처음"이라고 말씀하실 정도였다.
아랫동네 개울에도 물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가뭄이 더 계속돼 야생화들이 말라 죽고 행여 지난번처럼 황폐한 학교가 되면 어쩌나 걱정이 됐다.
하지만 야생화들은 기특하게도 가뭄을 버티며 잘 자랐다.
누가 물을 주거나 돌봐주지 않아도 잘 자란 것이다.
사람은 기초적인 자립(自立)을 하는 데만 3년 정도가 걸린다.
먹고, 걷고, 대소변을 가릴 수 있게 되는 데 그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이라는 사람은 3년이 지나도 완전히 자립해서 혼자 살 수는 없다.
그 후에도 상당 기간 부모님과 어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야생화들은
나와 우리 학생들에게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잔잔히 일러주는 무언(無言)의 선생님이고,
힘들 때마다 도닥거려 주는 고마운 친구이기도 하다.
"선생님들, 기다리세요. 이 글 마치고 수업받으러 곧 갈게요."
야생화!
듣기만 해도 끈질긴 생명력이 상상이 되는 이름입니다.
우선 야생화는 아주 작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 무심코 지나쳐 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가끔 인터넷이나 사진 전시회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꽃들은 거의 아주 작은 야생화들이지요.
너무 작아 그냥 우리는 눈에서는 스쳐지나가도
카메라를 들이대고 확대를 해 놓으면 세상의 어느 꽃 보다도 순수하게 아름다움을 드러냅니다.
제 친구의 닉네임은 '작은꽃'입니다.
태중교우인 그녀는 지금 재속회원이고 작은꽃처럼 살고 있습니다.
최민순 신부님의 '두메꽃' 의 노랫말처럼 주님만 향해 숨어 살고 싶어하는
그녀의 신앙심은 전혀 흔들림이 없어보입니다. 제 눈에!
본인은 아니라고 우기기는 하지만...
어쩌다 보니 저는 닉네임이 장미가 되었습니다.
정말 겸손을 모르고 도도함을 드러내며 가시까지 품고서...
오로지 성모님 발치에 놓이게 되는 묵주가 되기 위해 도도함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닉네임은 장미가 되었지만...
사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꽃은 도라지 꽃하고 과꽃입니다. ㅎㅎ
보라색 꽃이 좋은 이유는 어려서 즐겨 부르던 동요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집 앞마당에 과꽃이 만발하던 추억 때문이기도 합니다.
도라지꽃은 보지도 못했지만 노랫말 때문에
도라지꽃은 가신 언니꽃 예쁜 보라색
언니를 찾아 뒷산에 올라 보라색 저고리... ♬♪
이왕 이렇게 된 바에 장미 중에 제일 작은 보라색 넝쿨장미로 살아볼까 합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
그렇군요. ㅎㅎ
하늘을 향한 풀꽃이시니...
소소한 아름다움으로 하느님의 눈에 드셨을겁니다.
하늘풀꽃!
누가 지어주셨으려나요...?
장미엔젤님 글을 읽다보면 어느덧 어릴때로 되돌아가는 마음이 되는듯 하네요
전에는 야생화를 바라볼때 참 예쁘다 어머나의 감탄사로 표현했던때도 있었지요
남편이 퇴직후 하고싶었던일을 한가지 한가지 이루워가던 ~
우리나라 삼대명산 오르기로 시작하여 자전거여행 베낭메고 해외여행하기 지금은 봄부터 가을까지 야생화찍기등등 ~
코로나19로 작년부터는 쉼하고 있으면서도 마음은 온갖 들판과 계곡을 넘나들고 있지요
웬만하면 저도함께 동반으로 도와주는 역활을 해주기도 하면서요
어서 좋은날 바이러스 없는날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정선에 바위틈에서 자라는 동강할미꽃을 찍어서 보내주었더니 남편친구가 글을넣어 다시보내 주기도 ~
좋은글 잘읽고있네요
항상건강하세요 엔젤님 ~~~
은퇴 후의 삶을 아주 멋지게 계획을 해 두셨군요.
건강을 선물로 누리시면서...
다리에 문제가 있는 제 남편은 잔디밭을 예전처럼 달려보는 게 꿈이랍니다.
두 분이 함께 하시는 여행에 축복을 빌어드립니다.
저도 인터넷에서 동강 할미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바위 틈에서 저렇게 강한 생명력을 보이는 할미꽃 존경스러워지기까지 합니다.
보라색이네요. ㅎㅎ
저도 동강 아씨꽃이라는 이름에 동감! 동감! 동감입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요즘은 땅에 붙어서 피는 작은 야생화들이 예쁘게 느껴저
언제부터인가 제 눈과 발을 사로잡습니다.
시골의 정경이 그대로 그려지는 홍신부님의 글에서 무한한 평화와 행복이 느껴집니다.
시골에서 학생들과 함께 하시느라 고생하신 홍신부님이 이 아침 그리워지는군요.
성모님 발치에 놓이게 되는 묵주가 되기 위해 도도함을 내려 놓는 장미--
가슴 뭉클하게 느껴지는 한줄의 묵상이 되는군요.
좋은글로 감동을 주시는 장미엔젤님께 늘 감사드립니다.
건강과 행복을 빕니다.
저도 몹씨 홍문택 신부님을 그리워하는 신자 중에 한 사람입니다.
우리들 곁에 조금 더 머무시게 해 주셨으면 ...
야고보 신부님의 방송도 잘 보고 있습니다.
착한 신부님이 되시라고 응원을 합니다.
늘 마음을 조리고 계실 어머님께도 응원을...
장미님뒤에 엔젤이 붙어있으니 천사라는 생각밖에 안났네요ㅎ
늘 좋은글 올려주셔서 감사드려요
저는 작은 꽃보다 국화 수국 이렇게 푸짐하게 큰꽃을 좋아하네요.
시골 마당에 피어있던 하얀 수국꽃을요ㅎ
요즘은 화려한 모습의 수국꽃이 많던데 저는 소박한꽃을 ~~^^
건강하네요ㅎ
모카님.
수국도 자세히 보면 작은 꽃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꽃 아닌가요? ㅎㅎ
그 작은 송이 송이가 너무나 고와요.
하얀 수국은 색이 변하지 않는가요?
이곳에 있는 수국들은 점점 색이 바뀌어 가던데요...
@장미엔젤 맞네요ㅎ
수많은 작은꽃들이 모여서 큰송이를 이루네요.
수국도 예쁘고 할미꽃도 예쁘고 무덤가에 패랭이꽃 제비꽃 다 예쁜데 어릴때 해마다 집 뒷켠에 피어주던 붓꽃이 그립네요.
꽃은 언제나 예쁘고 정겨워요
♥♥♥
그렇지요.
꽃이란 이름을 가진 생명은 다 아름답습니다. ㅎㅎ
분꽃은 알아요. 우리집 앞마당에도 매년 피었으니까
그런데 붓꽃은 처음 들어보는데요?
붓처럼 생겼나요?
인터넷에 한 번 찾아볼게요.
찾아보니 아이리스네요.
고흐가 그린 아이리스입니다.
역시 보랏빛이네요.
@장미엔젤 붓꽃도 색상이 많더라구요
예전에 찍었던 노란붓꽂
입니다
@가족사랑 보라색 아이리스가 서양적이라면
노란붓꽃은 동양적인 모습에 어쩐지 정이 더 가네요.
가을이 가까웠나봅니다.
고맙습니다.
이른 봄, 아직도 그늘에는 눈이 쌓여 있는 때에
부지런한 야생화들은 꽃을 앙증스럽게 피우고 있지요.
저도 꽃중에 장미를 제일 좋아하지요~
그러나 생명력 강한 야생화도 무척 좋아한답니다.
홍문택신부님의 삶의 글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야생화에서 여러 모습을 배우게 됩니다.
끈질긴 생명력!
보아 줄 사람없어도 오로지 한 분의 뜻대로 꽃을 피우는 것!
그림을 그리시는 초록님
홍신부님도 그림을 많이 사랑하셨기에 어려운 환경에 처한
여학생들에게 마음 놓고 그림을 그릴 학교를 세우시고 떠나셨지요.
여름이 깊어지고 있을테지요.
초록이 우거진 여름을 즐기시기를 빕니다.
제가 좋아하는 초록잎이 무성한 사진이 있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