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김경숙 소테리스 광주지구 모든 성인의 모후 Co. 회계
제가 천주교에 입교하게 된 동기는 결혼 후 시어머님의 동생이 “천주교로 개종하여 마음 편안하게 조상님들의 제사도 지내고 믿음 생활도 하라”는 권유에서 시작되었다.
먼저 시어머님이 살고 계시던 동네 성당에 찾아가 입교 신청을 하고, 교회에서 이끌어주신 대로 주일미사에 참여하고 교리 공부를 하시면서 나에게도 개종하여 함께 성당에 다녔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나는 “네, 알겠습니다”로 대답했다. 어머님께서는 1년간의 교리 공부를 마치고 이듬해 부활 대축일 미사 때 ‘루시아’를 세례명으로 세례 받고 레지오 마리애 단원으로 입단하셨다.
저는 그때 첫아이를 임신 중이어서 교리를 배우기 시작하면 태교에도 좋겠다고 생각하고 입교하여 한주도 빠짐없이 미사 참례와 교리를 받던 중 임신중독증과 전치태반으로 구급차에 실려 바로 수술실에 들어갔다. 응급 수술 후 나는 중환자실에 아이는 호흡 곤란으로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다.
퇴원한 후 나는 아이를 안고 성당에 나와 성모동산에 계신 성모님 앞에서 “성모님, 감사합니다. 우리 모자를 다시 이 자리에 세우셨습니다. 성모님, 언제나 저희 모자와 함께 해주시고 당신이 필요한 곳에 도구로 써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 기도하는 나의 두 뺨엔 뜨거운 눈물이 흘렀고,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성모님께 인사한 그날부터 아들과 함께 한 교리 공부는 세례 받는 그날까지 이어졌고 이듬해 3월 화창한 봄날 이름도 생소한 소테리스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 세례를 받고 매일 미사에 참례하는 나를 수녀님께서 눈여겨보시고 복지관에서 의료봉사를 해주시면 좋겠다고 하셨다. “나는 아이가 있는데 어떻게요?” 하니 웃으시면서 우리가 볼 테니 봉사만 해주시라고 부탁하셨다. 그래서 그때 화요일과 목요일 2시간씩 할머니들께 물리치료 봉사를 할 수 있었다.
나는 그때 내가 봉사로 어르신들을 치료했지만 내가 어쩔 땐 치료받고 있었다. 이분들은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어머님의 두 팔로 꼭 안아 주셨다. 봉사를 마치고 아이를 찾으러 수녀님께 가면 수녀님의 미소에 난 너무 행복했다.
큰아이 수능 100일 기도에 이은 레지오 입단
이렇게 외짝 신앙생활을 하면서 남편에게도 권유하여 남편도 교리 공부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교리 공부하러 가는 날이면 일이 생겨 결석하게 되고 그때는 결석 몇 번 이상하면 세례를 안 준다고 하여 두세 번 결석하면 내려놓게 되었다. 그리고 결혼 후 20년 만에 이 숙제는 해결되어 우리 가정은 성가정이 되었다. 남편은 세례 받은 그날부터 독서단 봉사와 레지오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 큰아이가 고3 수능시험을 앞두고 100일 기도를 한다는 친구 엄마의 권유로 날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저녁이면 성당 제대 앞에 모여 시작기도와 묵주기도, 마침기도를 정성껏 바쳤다.
그리고 100일 기도가 끝나는 날 함께 기도한 친구 엄마들이 우리의 기도가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그래서 레지오 마리애 일치의 모후 쁘레시디움에 입단하였다. 한 쁘레시디움에 3명이 입단하게 되자 일치의 모후 쁘레시디움은 우리 세 명이 선서한 얼마 후 분단하게 되었다.
분단을 하자 간부를 서로 안 하려고 하였다. 우리는 레지오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배우면서 하자고 같이 간 자매님이 단장을, 나는 부단장을 맡았다. 서기와 회계는 형님들이 맡아 주셨다. 매주 화요일 저녁미사 후 레지오 회합을 시작하였다. 매주 똑같은 시간에 한자리에 모여 기도하며 성모님을 알게 되면서 나의 신앙생활도 성숙해졌다고 생각한다. 레지오를 시작하면서 본당에서 전례봉사와 매월 첫째 주에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요양원에 단원들과 함께 음식 봉사를 코로나 이전까지 해왔다.
나는 시골 동네 자그마한 의원에 근무하고 있다. 직장에 출근하면 컴퓨터 앞에 앉아 시작기도로 일과를 시작한다.
“오소서 성령님 저희 마음을 성령으로 가득 채우시어 사랑의 불이 타오르게 하소서. 주님의 성령을 보내소서. 저희가 새로워 지리이다.” 이렇게 기도하고 시작하면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인다.
그리고 제가 묵주를 손에 쥐고 있으면 “저도 가톨릭 신자였는데 지금은 냉담 중”이라고 말하는 자매님, 가끔은 형제님도 계신다. 나는 그럴 때마다 세례명을 묻고 가까운 시일 안에 성사 보시고 함께 신앙생활 했으면 좋겠다고 한 번씩 끌어안아 주며 “기도하겠습니다” 한다.
그리고 많이 힘들어하시는 분들에게는 마음으로 ‘주님, 이분을 불쌍히 여기시어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십시오”라고 짧게 기도해 드린다. 이런 날은 더 많은 묵주 알을 돌리며 “나의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 늘 함께 해주심을 믿습니다” 한다.
성모님의 한결같은 사랑과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큰 은총
레지오 활동을 하면서 가슴이 따뜻했던 일은 어떤 자매님은 본당이 바뀌어 오래전 사진을 보고 생각나서 전화하신다고 한다. “단장님 감사합니다. 아무 것도 못 하는 저에게 할 수 있다고 쁘레시디움의 서기로 단장으로까지 이끌어 주셔서 쁘레시디움 서기와 단장 직무를 잘 마칠 수 있었다”고 “고마워요”라고 하셨다. 그리고 칠순이 한참 지난 어떤 자매님은 “레지오 단원으로 이끌어주셔서 쁘레시디움 부단장이 되었다”고 어린 소녀처럼 좋아하신다.
제게 이런 용기와 지혜를 주신 주님께 항상 감사드리며 언제나 성모님과 함께 쁘레시디움 부단장으로 시작하여 꾸리아 서기 5년 이상 임기를 마치고, 지금은 꼬미씨움 회계로 5년 반을 맡아 당신의 도구로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었던 힘은 성모님의 한결같은 사랑과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큰 은총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도 성모님을 닮고 싶은 마음으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1요한4,12)는 말씀을 묵상해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