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 일본 영문번역본의 옹아리
The Chinese text reads: 諸佛如來 但敎化菩薩. A literal translation
would be "The buddha-tathagata only teach and transform bodhisattvas."
which could be understood to exclude the practioners of the "two
vehicles," shravakas and pratyekabuddhas. However,
as the contents of this chapter makes clear, the Buddha,
according to the principle of the One Buddha Vehicle, teaches
shravakas and pratyekabuddhas as well as bodhisattvas, leading
all living beings to bodhisattvahood so that they will attain
Supreme Perfect Awakening. Our translation reflects this principle.
(p.422, NOTES, Kosei Publishing Co. Tokyo,2019)
(중국 문자로 쓰여진 <諸佛如來 但敎化菩薩>을 글자 그대로 번역하면 <모든 부처는 오직
보살들만 가르쳐서 변하게 한다>이다. 그렇게 되면 성문과 벽지불 등 두 부류의 수행자는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제외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방편품의 전반적인
내용이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부처님은 일불승의 원칙에 따라 성문들과
벽지불들뿐만 아니라 보살들에게도 가르침을 펼쳐 모든 중생이 보살도를 깨치고 무상의
깨달음에 이르도록 가르치고 있다. 우리의 번역은 바로 이러한 일불승의 원칙을 반영하고
있다. - 나성거사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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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일본의 코세이 출판사(Kosei Publishing Co. Tokyo)가 2019년에 영문으로 번역하여
영어권에 뿌려놓은 법화경 가운데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경문 <諸佛如來 但敎化菩薩>에
대한 그들의 주석(p.422)을 그대로 따온 것입니다. 미국의 웬만한 서점에 가면 종교 코너에서
이 번역본을 볼 수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은 아마존을 통해 구입할 수도 있습니다. 코세이
출판사는 이 번역본에 앞서 1975년에 꼭 같은 타이틀 <The Threefold Lotus Sutra>로
영문 번역본을 서양세계에 내놓은 바 있습니다. 단 한 번의 수정도 없이 44년 간
찍어내다가 지난 2019년에 새로 포장하여 출판한 것 같습니다.
번역진(번역은 세 사람이 담당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도 이 경문 <諸佛如來 但敎化菩薩>을
<모든 부처님들은 오로지 보살만 교화한다>라고 번역해 놓고 보니 자꾸 뒤가 돌아보였던
모양입니다. 어찌 안 그랬겠어요? 말이 수레를 끌고 가는 게 아니라 수레가 말을 끌고 가는
꼴의 번역이니 말이죠. 그래서 생각해낸 게 위에 소개한 주석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애써 붙인 주석은 본문의 엉터리 번역보다 더 헷갈립니다.
우선, 그들은 “우리의 번역문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우리에게 시비를 걸지 마세요”라고 읍소하는 것 같기도 하고, 말하는 본새가
세 살배기 옹아리 같기도 하여 헷갈린다는 겁니다.
다음, “일불승의 원칙”에 따른 것일 뿐, 번역한 우리에게는 전혀 잘못이 없다는 핑계가
단순한 그들의 무지에서 생긴 것인지, 아니면 그냥 애교인지 헷갈린다는 겁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번역자들이 보살은 보살도를 성취하고 최상의 깨달음에 이른 존재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내가 주장하거나 추측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법화경 서품 첫머리에 그처럼 분명하게 서술되어 있거든요. 보살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확고부동하게 성취하여 중생들을 위해 법륜을 굴리고 있는 존재들이라고.
그런 보살들에게 보살도를 가르친다고요? 그런 보살들에게 최상의 깨달음에 이르도록
가르침을 펼친다고? 이게 해설인가요, 옹아리인가요?
그들도 앞에 소개한 일본의 니와노 닛쿄(庭野日敬)대가님처럼, <但敎化菩薩>을 정확하게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꼭 같습니다. 그러나 니와노 닛쿄는 대가님답게 적극적으로
돌파하려고 거의 한 페이지에 가까운 해설을 올려놓았습니다. 비록 말장난에 불과하지만
말이지요. 반면, 이 번역에 참가한 번역진은 자신들의 무지를 부처님의 일불승에
묻어버리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중국인들이 깔깔댑니다. 특히 미국에 거주하는 중국인 이민
1세는 영어뿐 아니라 자기네 문자까지도 잊지 않고 있는 세대니까요.
방편품의 이 부분은
첫째, 부처님들이 이 세상에 출현하시는 이유를 사리불에게 일러줍니다.
(보살이 아니라)중생들에게 불지견(佛知見)을 개시(開示)하여 그것을 오입(梧入)하도록
가르치기 위해서라는 거지요.
둘째, 이처럼 중생들에게 가르침을 펼쳐 부처님들이 달성하고자 하는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 곧 이어 사리불에게 말합니다.
(보살이 아니라) 중생들을 가르쳐 (성문이나 벽지불이 아니라) 오로지 보살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 즉 <諸佛如來 但敎化菩薩>이 바로 이 세상에 출현하신 부처님들의 목표라는 겁니다.
이처럼 많은 부처님들이 이 세상에 몸을 드러내신 이유와 목표는 분명합니다. 또 그것이
법화경에 확실히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대승불교 가르침의 최종 목표는 보살이다, 라는 것이고
부처님은 보살 중의 보살이시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법화경은 중생을 가르쳐 보살이 되게 하는 경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법화경은 보살을 가르쳐 부처가 되게 하는 경이라는 말이 망발이라는 거고요.
(다음 글에서는 조선의 대가들이 <諸佛如來 但敎化菩薩>을 <모든 부처님은 오로지 보살만을
교화한다>로 번역한 다음 어떻게 해설하는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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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