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 본인은 자기 사상의 기본은 도가철학과 중용에서 출발했다고 말한다. 물론 동양철학에 국한되지 않기 위해 서양철학이나 인도철학 등도 열심히 공부했으며, 모태신앙인 기독교의 신학 역시 공부했다.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나눠서 비교하는 방식이 아니라 폭넓게 여러 사상을 종합하는 입장이다. 그의 동양고전번역을 봐도 니체, 라캉, 하이데거, 데리다, 촘스키 같은 인물들이 인용된다.
도올은 자신의 철학체계를 기(氣)철학 또는 몸철학이라고 부르는데, 도올의 여러 서적에 기철학이 무엇인지 설명되어 있고, 직접적인 설명이 아니라도 그의 사상경향이 어떠한지는 그의 책을 읽어보면 대강 알 수 있다. 80년대에 기철학의 2가지 원리를 말하고 있는데,
1. 인간의 모든 진리는 인간이라는 생물학적 조건(몸)에 구현되어 있다.
2. 인간의 모든 진리는 사회적 실천을 통해서만 실현된다.
2012년에 나온 "사랑하지 말자"라는 저서에 그의 사상이 압축적으로 다 나와있다. 도올의 사상이 어떤지 궁금한 사람은 이 책을 독파해 보면 대강 알 수 있다.
서양철학에서 지금까지도 문제가 되는 정신과 육체, 본체와 현상의 문제의 경우 기철학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동양의 세계관에서는 모든 것이 기(氣)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본체와 현상처럼 근원적으로 분리되는 것이 없기 때문. 이 때문에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중세 기독교신학 등은 철저히 거부되고, 사실상 서양철학 전반에 신화적인 요소가 깔려있다고 본다. 쇼펜하우어, 니체, 화이트헤드, 러셀, 비트겐슈타인, 하이데거 등의 19세기 이후 서양철학이 결국 동양철학으로 귀결되고 있다고 그는 평가한다.
간단하게 그의 학문적 성향을 요약하자면, 유교든 불교든 크리스트교든 제도화되고 권위가 붙기 이전의 원초적인 형태를 중시하는 편이다. 유교에서는 송나라 이후에 성립된 성리학 체계를 따르지 않고, 불교도 원시불교와 제도권과는 거리가 먼 선불교를 중시하며, 크리스트교 역시 크리스트교 이전의 예수운동을 존숭하며,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어 이른바 정통이라는 개념이 생기기 이전의 다양한 크리스트교의 사조들을 편견없이 연구하는 편이다.
또한 도올이 한국 역사학계에 큰 파란을 일으켰던 것이 실학과 관련된 문제였다. 한마디로 실학이라는 개념은 허구적 개념이라는 것. 성리학=전근대의 도식으로 역사를 해석하면 근대로 이행되기 위해 전근대적 학문을 극복하는 무언가가 필요한데, 이 도식에 끼워맞추려고 실학이라는 허상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흔히 실학자라고 표현되는 조선후기학자들도 알고 보면 성리학의 틀에서 벗어나는 인물들이 아니라는 것.
애초에 도올은 근대라는 개념 자체를 거부하기 때문에 성리학=전근대학문이라는 생각 자체가 성립되지 않으며, 굳이 근대적 학문을 말한다고 해도, 왜 성리학이 근대적 학문이 못 된다는 거냐?라고 반문할 정도. 2012년에 나온 도올의 책 '사랑하지 말자'를 보면 인류의 사상사를 전체적으로 놓고 보면 칸트는 이황의 제자라고 말하고 있다. 칸트의 선험적 선의지라는 것이 퇴계의 이발(理發)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서양의 근대(모더니즘)라고 하는 것의 종착점은 양대 세계대전이었고, 서양은 근대의 오류를 고치기 위해 제3의 대안을 내놓았는데 그게 나치즘이었다. 그래서 현재는 섣부르게 대안을 내놓지 않고 그냥 포스트 모더니즘이라고 하는 변형만 하고 있는 것.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그런 서양의 조류를 따라갈 게 아니라 그냥 원래 우리 밑천인 우리 전통을 제대로 배워서 재해석하는 게 낫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일단 확실한 건 그가 공부를 엄청 열심히 한다는 것과 자신감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상당한 논란이 되었던 요한복음, 도마복음만 해도 이미 세계적으로는 활발하게 연구되는 주제인데, 한국교회의 보수성으로 말미암아 쉬쉬하며 넘어갔던 것을 도올이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소개하였던 것이다. 물론 국내 일부 신학계에서는 논의되고 있었으나,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은 도올이 처음.
성서무오설을 비판한다든지, 태권도 발전과 형성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태권도가 원래 가라데에서 출발한 것이었음을 입증한다든지 하는 내용도 학계에서 다들 알면서 쉬쉬하던 걸 도올이 까발린 것뿐이라고 한다. 이런 식으로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다보니 각종 곤욕을 치를 수밖에 없는 운명. 몇 번 테러를 당할뻔한 적도 있다고 한다.
지금은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이나 법정 스님 등과 친분이 깊었다. 김수환 추기경은 논어강의 때 출연한 적이 있고, 법정 스님은 도올의 금강경 강해의 서문을 써준 적이 있다. 숭산 스님과도 친구 먹은 적이 있고, 요한복음강해 이후로 김경재 교수와 교류하고 있으며, 80년대부터 불교사전을 만들어오고 있는 지관스님과도 친분이 있다. 여담으로 지관스님이 불교대백과사전을 만들고 있는 것에 대해 한국 내에서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는데, 도올은 방송에서 이 사실을 알리면서 여러번 안타까워 했다. 이게 국내 학계의 현실. 가톨릭대학교출판부의 라틴 - 한글 사전도 허창덕 신부가 몇십년을 작업하시다 결과물을 못 보고 돌아가시고 후학들이 완성했다. 사전은 학문의 기본 중 기본이기 때문에 도올이 항상 강조하는 부분이지만, 미진한 부분이 많은 게 현실이다. 또한 달라이 라마와 만나 대담을 나눈 적도 있고, 놈 촘스키와 서신을 주고 받은 적도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청와대에서 인터뷰 형식으로 대담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하고는 동창이며 그래서인지 서로 반말하더라. 흠좀무
국악의 경우도 고려대 철학교수 재직시설 농악대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고, 또한 대충 국악계 인사들과만 어울리는 게 아니라, 빈민가 월세집에 살고 있는 아무도 못 알아보는 명인들을 직접 방문해서 음악을 배우거나 그들의 생계를 도와주거나 하면서 정말 구체적으로 활동했다. 지금도 그 명인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주위에 아무도 없다. 지금쯤 다 돌아가셨을 것이다.
알게 모르게 제자들도 상당히 많다. 대학교에서 가르친 경우도 있고, 과거 도올서원을 운영하면서 가르친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사람이 오항녕, OST는 좋았다의 대표작 중 하나인 원더풀 데이즈의 음악감독 원일, "8체질 의학의 원리"를 쓴 현재 주원장한의원 원장 주석원 등.
지금까지 그가 저술과 방송강의를 통하여 던져놓은 논설들은 대략 다음과 같다:
- 도덕경은 개인이 아니라 지도자에게 메시지를 던지는 책이다.
- 호국불교는 지배권력과 결탁한 불순한 전통일 뿐이다.
- 조선후기의 실학이라는 개념은 완벽한 픽션에 불과하다.
- 서양의 근대를 우리가 따라가야 할 이유는 없다.
- 우리가 서양에서 배워야 할 것은 과학, 의회 민주주의, 자본주의 3가지 뿐이다.
- 성리학은 충분히 근대적 학문이라 부를 수 있다. 단지 자연과학이 부재했을 뿐이다.
- 조선말의 혜강 최한기, 수운 최제우 등의 사상은 서양의 근대사상에 필적한다.
- 우리민족은 스스로 새로워질 수 있었다. 우리민족의 비극은 일제강점에서 비롯된다.
- 분단된 나라는 독립할 수 없다. 독립운동사는 현재진행형이다.
- 예수는 인간이며, 야훼를 거부했으며, 사후세계를 믿지 않았다.
- 예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예수는 지혜로운 스승일 뿐이다.
그가 한국에 돌아온 후로 항상 강조하는 것이 번역이었다. 국내 학계에서는 확실히 번역을 제대로 안 쳐준다. 오죽하면 번밀레라는 속어까지 있겠는가. 번역을 제대로 하려면 어학실력부터 길러야 하고 지리한 번역작업을 거쳐야 하는데 실속은 없으니, 기존학계에서는 그냥 초짜들이나 하는 짓 정도로 생각하고 대부분 논문만 써내는 실태다. 도올은 한국에 귀국했을 때부터 주요 고전이나 국내 과거 문헌들을 전부 한국어로 번역해야 국학이 이루어진다고 강조했지만, 이런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의 저서의 상당수는 고전 번역이며, 현재 주력하고 있는 일도 13경 등의 동방경전을 역주하는 작업이다. 그의 번역은 두루뭉술하지 않고 명료하다.
도올이 한창 TV강의로 유명해졌을 때, 도올의 번역이 일본학자의 번역을 표절했다던가, 번역이 틀렸다면서 책을 내놓은 사람이 많이 있었는데, 현재는 전부 묻혔다.
진중권이 예전에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에서 도올이 주체사상과 관련하여 한 말에 대해 비판한 적이 있었는데, 이 경우는 진중권이라는 사람 자체가 주체사상과 관련되어 조금이라도 긍정적 반응만 보여도 다 까는 성향이기 때문에 그런 것. 진중권은 도올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모양이지만, 도올에게 있어서 진중권은 듣보잡(...)이다. 진중권이 누군지도 모르는 모양. 하긴 인터넷을 안 하니까...
도올의 글은 보통 서론이 길다. 특히 번역의 경우 서론이 길어진다. 꼼꼼하게 배경설명, 판본문제, 역대 해석의 문제 등등을 설명하다보니 그렇게 되는데, 서론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논문으로 생각하는 게 편하다. 예전 책에는 각주를 사용했지만, 지금은 각주나 미주 없이 그냥 본문으로 다 풀어서 설명하는 스타일로 변했다. 인용한 책은 뒷부분에 인용목록으로 제시하고, 간략하게 그 책에 대한 설명하는 식. "주석서라는 서물의 성격상 일일이 주 달 수 없었음을 고백한다"라고 말하는 거 보면 도올 자신도 일일이 각주를 달지 않은 것에 대해 선학들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모양.
어차피 오늘날 한국은 대중매체가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에 옛날처럼 고고하게 책만 쓴다고 해서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게 현실이다. 과거에는 독서가 거의 유일한 문화생활이었기 때문에 칸트 같은 사람이 책을 쓰면 상당히 광범위하게 읽혔다. 하지만 지금은... 게다가 구한말의 동무 이제마도 사람을 못 알아보는 것이 조선의 병폐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현대 한국은...
앞서 언급했듯이 도올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아무리 고매한 학문이라도 문명의 악세사리로 그치기 쉽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도올은 이러한 자신의 생각에 따라 스스로를 대중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자신도 너무 저술을 대중적으로 하게 된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해서 현재는 예전보다 전문적인 방식으로 서술하는 편이다. 일단 책이 두껍고 비싸졌다.
이외에도 연극이나 영화 시나리오를 쓴 적이 있다. 임권택의 개벽, 장군의 아들, 취화선이 그의 시나리오. 연극에도 관심이 깊어, 극단 미추의 창단 멤버로 활동하며 제작비를 지원하기도 했다. 심지어 전인권, 한대수와 록 콘서트까지 했다. 흠좀무. 한대수와의 콘서트에서 발표한 노래 제목은 청춘과 록 찾아서 들어보시길. 진짜 비범하다... 참고로 모티브는 한대수의 〈호찌민〉이라는 노래인 것 같다. 역시 비범한 노래. 한번은 안성기와 함께 패션쇼에 사진이 나온 적 있었다 그런데 시선이...
참고로 국악 뿐만 아니라 재즈음악 애호가이기도 해서 대학로에 있는 서울재즈아카데미의 재즈피아노과에서 공부하기도 했다. 평소에도 종종 자신의 철학 세계와 재즈음악을 연관시켜 강의하기도 한다. 빌리 할리데이의 노래와 마일즈 데이비스의 연주를 좋아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