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순례자의 교회
이상 사진 출처- 캠피밴 여행기
순례자의 발길이 머무는 아름다운 교회
순례자의교회
“어렸을 때 가보고 처음 와본 교회입니다. 너무 마음이 평안해지고 정말 모든 근심과 마음에 쌓아둔 삶의 짐이 내려진 듯합니다.”
“교회들이 서로 더 커지기만을 원하는 시대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교회네요.”
제주 올레길 13코스(한경면 용수리)를 걷다 보면 마주치게 되는 교회가 있다. 8㎡(약 2.4평) 크기의 작은 건물. 어른 대여섯 명이 들어가면 꽉 차는 작은 공간. 인적 드문 들판 한구석의 작은 교회가 순례자들을 향해 손짓을 하고 있다.
취재 신재범 사진 조창신 일러스트 박성경
“교회 문을 24시간 열어놓는다고요? 지키는 사람도 없이? 그러면 허락도 없이 와서 자고 가거나, 교회에 있는 물건을 가져가는 사람이 있지 않나요?”
“자고 가면 어때서요? 아버지 집에서 잠도 잘 수 있고, 편하게 쉬다 가면 좋은 거죠. 또 잃어버리면 얼마나 잃어버리겠어요. 교회가 현대판 ‘장발장’을 품어줘야 하지 않을까요? 어디에서도 ‘쉼’을 얻지 못하는 갈 곳 없는 이들을 보면서, 예수님은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겠어요.”
제주 올레길 여행자의 쉼터이자 예배당인 ‘순례자의교회’ 설립자 김태헌 목사는 말했다. 그는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언론사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좋은 직장에 다니며 집을 사고 큰 자동차를 몰고 다녔지만, 인생의 본질적 물음이 해결되지 않았다고 한다.
목회를 시작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이끄심이었다. 보증을 선 것이 문제가 되어 이뤄 놓은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은 것이다. 그때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 둘이 있었다. 아내는 생계를 위해 골목길 담벼락 아래 포장마차를 차렸다. 죽음을 택하려던 길에 서 그를 돌이킨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 사랑과 은혜에 감격해 그는 새로운 삶을 살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는 그렇게 목사가 되었다.
목회자가 되어 부임하거나 개척하는 교회들에서 소위 ‘성공’을 경험했다. 수적으로 부흥했고, 분열하여 싸우던 교회는 화합했다. 성도들의 사랑도 받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있던 곳을 떠나라”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안주하려 할 때마다, ‘교회다운 교회’에 대한 고민이 머리를 든 것이다.
“진정한 교회다움은 예수님을 살아내는 것”
“예수님은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을 거절하거나 거부하신 적이 없다. 그리고 찾아온 이들의 문제를 모두 풀어주시고 회복시켜 주셨다. 교회도 그렇게 해주면 사람들이 제 발로 찾아올 것이다. 오지 말라고 막아도 밀고 들어올 것이다. 그런데 기존 교회는 이런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아니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입장에 서 있는 것 같다.”
그의 저서 「세상에 없던 교회」(와웸퍼블)의 한 구절이다. 그는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사람들이 간절히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주는 교회를 세우고 싶었다”고 썼다.
“2002년부터 제주도에서 목회하면서 교회다운 교회를 만들고 싶다는 소원을 품고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라는 에베소서 말씀을 주셨어요. 결국 교회는 예수이고, 예수를 살아내야 한다는 뜻이었죠. 교회는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을 그대로 표현해야 해요. 예수님이 어떻게 사셨는가에 대해 관심을 두고 말씀을 봤어요. 예수님은 약자의 편이었고, 그분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그늘이 되어 주셨습니다. 긴박한 삶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죠. 이방 여인을 용납하셨고, 간음하다 잡혀 오고 사형에 해당할 죄를 지은 자까지 품어주셨습니다.”
기성 교회에 머물러서는 이러한 ‘교회다움’에 합당한 교회를 세우는 데 한계가 있었다. 교회를 사임하고, 제주를 떠났다. 다만 ‘제주사랑선교회’라는 목회자들의 모임에 참석하며, 제주를 위해 계속 기도했다. 그러던 중, 충남에 있는 계룡장로교회에서 그를 ‘제주 무교회 지역 교회 개척 선교사’로 파송했다.
“교회가 ‘믿는 사람의 신앙 공동체’ 잖아요. 그런데 지금의 한국교회는 ‘등록 교인’에 집착하고 목사의 존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죠. 등록 교인이 없고, 목사의 성례전 집전도 없지만,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교회를 세우고 싶었어요. ‘순례자의교회’라는 성전을 세우면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자연 만물을 통해 하나님 자신을 드러내시지만, 특별히 ‘순례자의교회’ 건물을 통해 성부·성자·성령의 역사를 나타내시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건축을 시작했습니다.”
교회 부지는 말기 암 투병 중이던 정필남 권사가 기증했다. 건축비는 1300만 원이 들었다. 김 목사 사모가 아르바이트로 번 돈과 자녀들이 모은 용돈까지 보태 건축비를 마련했다.
“건물을 작게 지은 이유는 ‘돈이 없어서’였죠. 건물이 크면 관리비도 많이 나오니까요. 그러나 전도를 위해서는 예쁘게 지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들어와 보고 싶은 호기심을 유발할 정도는 되어야 하니까요. 건물을 보는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교회에 들어와서 곳곳을 만져보는 것만으로 은혜를 느낄 수 있기를 기도했어요. 교회의 사명은 전도니까요.”
7개월의 건축 기간 동안 교회 부지를 기증한 권사님의 암이 치유되는 역사가 있었다. 지나가던 여행객들이 페인트칠을 돕기도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올레길의 방향이 교회 앞을 지나도록 바뀌기도 했다. 인적 드문 벌판에 세웠던 교회가 여행객의 눈길을 받게 된 것이다.
‘삼多삼無’의 교회
삼다삼무의 교회. 사람들이 순례자의교회에 붙인 별명이다. 담당 목회자, 정기적인 예배, 교회 프로그램은 없지만, 성부·성자·성령께서 늘 풍성하게 임재하는 교회라는 뜻이다. 김 목사는 교회를 건축한 후, 교회 소유권을 대구동노회로 넘겼다. 그가 관리와 청소를 하지만, 교회의 소유는 하나님께 있다는 신앙고백이었다.
“교회에 들른 비신자들이 SNS에 남긴 후기들이 인상적이었어요. 앉아만 있어도 울컥함이 있고, 문고리를 잡고 여는 순간 죄책감을 느꼈다는 얘기였죠. 너무 많은 것을 짊어지고 욕심으로 가득했던 자신을 돌아봤다면서…. 3~4시간 동안 머물며 자기 얘기를 털어놓고 가는 분도 있어요. 익명성이 보장되니까 마음이 편한가 봐요. 부부간의 문제, 가족 문제를 털어놓는 사람들의 얘기를 저는 그냥 들어줬어요. 제가 어려움을 겪어서인지 힘든 사람들의 마음이 잘 공감이 되는 것 같아요. 2011년부터 8만 명 이상이 교회에 다녀갔는데, 아마 1만 명 이상 되는 분들과 상담을 한 것 같아요. 오랫동안 교회를 떠나 있었다는 분이 믿음을 회복했다고 고백했고, 예수님을 더 알고 싶다는 분들에게는 준비해 둔 성경책을 선물했어요. ‘순례자의교회’에 오는 분들은 고민하던 삶의 문제에 대해 나름의 답을 얻어 가시는 것 같습니다.”
2013년 1월부터 지금까지 60쌍 이상이 순례자의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 김 목사의 주례로 신랑· 신부 지인 몇 명만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작된 예배이자 결혼식은, 올레길을 지나는 이들이 자발적 하객으로 참석하면서 축제가 된다. 제주 지역 신문들은 ‘순례자의교회’ 이야기를 여러 차례 미담 사례로 다뤘다.
김 목사는 ‘미니 채플 세우기 운동 재단’이라는 비영리단체를 통해 더 많은 ‘순례자의교회’들을 세우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제주뿐 아니라 동해와 서해, 강원 내륙 등에 걸친 ‘교회가 있는 순례길’을 전국으로 연결한다는 비전이다. ‘산방산이보이는교회’를 개척해 제주 지역 교인들을 섬기는 사역도 이어 가고 있다.
위로와 쉼이 필요할 땐 그곳으로
과연 나는, 그리고 나의 교회는 속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고, 꽉 막힌 세상의 숨통을 트이게 해주는 존재인가? 누군가에게 “잘 왔어요”, “푹 쉬었다 가요”라고 말해주는 따뜻한 사람, 따뜻한 교회인가를 질문해 보게 된다.
그렇지 못하다고 느낄 때마다, 그래서 시름의 결이 깊어지면 나는 ‘순례자의교회’를 찾아갈 것이다. 누구의 눈총도 신경 쓰지 않고, 예수님의 손길을 거절하지 않고 꽉 껴안을 수 있는 그곳에서 당신도 어깨 위 무거운 짐 덜어내기를, 기원한다.
빛과 소금 story 2016년 11월호
순례자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