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구정광대다라니경 (無垢淨光大陀羅尼經) - 사진 |
두루마리 1축(軸)으로 구성되며 국보 제126호이다. 크기는 7m ×6.5cm이며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목판(木板)으로 인쇄된 이 경문은 석가탑의 해체 ·복원공사가 진행되던 1966년 10월 13일 탑신부(塔身部) 제2층에 안치된 사리함(舍利函) 속에서 발견된 것으로, 이 때 석탑 내부에서 함께 발견된 총 28점의 일괄유물이 67년 9월 국보로 지정되었다. 이 경문은 한 폭(幅)에 55∼63행, 한 행에 7∼9자씩으로 되어 있으며, 상하(上下)는 단선(單線)이고, 필체는 힘찬 해서(楷書)로서 중국 육조시대(六朝時代), 특히 북위(北魏)의 서법(書法)을 연상하게 한다. 발견 당시 위는 상당히 산화되어 앞부분이 여러 조각으로 떨어져 있을 정도로 많이 손상되어 11항이나 없어진 것으로 생각되었으나 1989년 수리하여 거의 복원되고 현재는 3줄만이 일실된 채로 남아 있다. 다라니(dharani)라는 말은 부처가 가르친 요체로서, 신비적인 힘을 가지고 믿도록 하는 축문이다. 이 《다라니경》의 출간연대 상 ·하한(上下限)은 700년대 초에서 751년 사이로 추정하는데, 그 까닭은 당(唐)나라 측천무후(則天武后)가 집권한 15년 동안에만 주로 통용되고 그 후에는 자취를 감춘 신제자(新制字) 4자(注[證] ·澍[地] ·全[授] ·葺[初])를 이 경문 속에서 발견할 수 있고, 또 최소한 석가탑의 건립연대인 751년을 그 하한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706년경이라는 설이다. 〈다라니경〉은 704년에 한역(漢譯)되었고 한국에는 706년 황복사탑에 이미 모셔졌기 때문이다. 또 고려시대라는 설이다. 유물 가운데 나타난 관직명칭이나 유물이 고려시대의 것이라 볼 수 있으므로 고려시대라고 보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다. 한편 중국에서 목판을 가져다가 찍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외국인도 있으나 대부분의 학자는 751년경설을 지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종전까지 알려진 세계최고의 인쇄물은 일본의 [백만탑다라니경(百萬塔陀羅尼經)]이고, 간행연수가 기록된 세계최고의 인쇄물은 중국의 [금강반야바라밀경]로 1908년 영국의 스타인경이 중국 돈황 석실에서 발견하여 대영박물관으로 가져간 것이다. 일본의 [백만탑 다라니경]은 서기 770년에 새긴 것으로 다라니경보다 적어도20년 이상 후의 것이고, 중국의 [금강반야바라밀경]은 서기 868년 당 의종 함통 9년에 목판을 만든 것으로 다라니경보다 최소한 118년 후의 것이다.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한국 고인쇄문화(古印刷文化)의 높은 수준을 증명할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다. 이 다라니경의 내용은 죄를 면하고 오래 살기 위한 방법을 구하기 위해서는 옛탑을 수리하거나 조그만 탑을 무수히 만들어 탑 속에 공양하고, 법에 있는 신주를 외우면 장수와 복을 얻고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두산대백과사전> 참고 <브리태니커백과사전>참고 인터넷"http://www.contest.co.kr/97/hanna1/html/doc/compare/cd.htm"참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