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 30분 정도인가 평택 여비집에서 여성들로만 구성된 환송단(여비 어머니, 여비 부인, 여비 딸내미)의 열렬한 환호를 뒤로 하고 안흥으로 출발합니다.
“내년 이맘때면 서해연안의 어자원 고갈로 국가경제에 지대한 악영향을 미치면 어쩌나?”
하는 뭐같잖은 걱정을 가슴에 품은채로. 사위는 칠흑같이 어두운데 여비의 늙은 애마는 두눈을 크게 뜨고 달려갑니다. 운전면허증은 있으나 운전을 전혀 하지 못하는 현대판 고자 두놈은 앞과 옆에서 코를 드르렁거리며 자고.
“어우 잠시 졸았나보다”
하고 일어나니 태안읍내. 배에서 마실 소주 2병과 생수를 사고 깡통커피 한잔씩 마시고 다시 출발했습니다.
새벽 3시 조금 지났을까 안흥포구에 도착. 예약처인 ‘항구낚시’ 집으로 가니 아무도 안보이는 듯하더니 진열함 뒤에서 부지런히 갯지렁이를 담던 아주머니를 찾아내어 본격적인 흥정을 시작했습니다.
“우린 모두 쌩촛자들인디 미끼는 뭐가 좋을까요?”
“갯지렁이3통, 오징어 2통, 미꾸라지 만원어치면 되요”
옆에서 토를 달며 친절하게 끼어들던 양아치같은 놈도 계셨지만 아주머니의 조언을 수용하기로 했지요. 빈 속에 잔치국수 한 그릇으로 배를 채우니 새벽 4시.
5시경 출항예정이고 승선할 배는 ‘신남호’. 아직 약간의 시간여유는 있으나 전일의 사다리모임이래 쉬지를 못했으니 미리 잠자리를 확보하자는 공처가의 제안에 따라 선실에서 세놈이 뻗었습니다. 중간 경찰의 형식적인 임검을 마치고 5시30분에 출발. 한 치앞도 볼 수 없는 갑판보다는 선실에서의 휴식이 백번 낫다는 판단하에 명당자리를 계속 차지하고 눈을 붙였습니다. 거사는 선실의 폭이 좁아 새우마냥 꼬부리며 뭐라뭐라 구시렁되는데 여비는 여유만만하더군요. 중간에 선실에 누울 공간이 있는지 살펴보는 사람이 꽤 여럿 된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냥 눈감고 누워 버텼습니다. 나만 편하면 된다는 극히 치사한 생각이 왜 그리 빨리 떠오르는지요.
등어리가 배겨 자리에서 일어난 공처가는 문밖으로 나가자 극심한 양심의 가책을 느꼈습니다. 물보라가 튀고 찬바람이 쌩쌩부는 갑판에 고슴도치마냥 쪼그리고 덜덜떠는 어린 애들과 아주머니를 보았으니 말이지요. 차마 다시 안으로는 못들어가고 밖에 서있는데 거사와 여비께서 기침하시고 밖으로 나와 주위경관을 감상했습니다. 역시나 우리의 찍사 여비는 요자세 조자세로 사진촬영을 합니다. 우리 카페에 올린 하늘과 바다배경의 사진은 그 때 찍은 것들입니다.
2시간여 달린 끝에 배는 속도를 늦추는듯 하더니 멈춰서고 “삐~”하는 짧은 신호음이 나자 경험이 있는 듯한 축들은 낚시를 시작하더군요. 조과가 보이질 않자 “삐,삐”하는 소리와 함께 재빠르게 채비를 거두는 베테랑 놈들. 우리는 처음에 그걸 몰라 헤메였지요. 덕분에 충청도 선장한테 구박받았습니다. ㅆㅂ. 그리고 공처가는 그 서슬에 놀라 자새도 빠트리고. 에이 썅! 그렇지만 이 사건이 오히려 복이 되었는지 선장한테 가 비굴하게 빈 끝에 빌려온 헌 자새는 나머지 시간을 흐믓하게 해주었습니다.
처음 멈춘 곳에서 조과가 없자 잠시 달려 다른 장소로 옮겨 동일한 행위를 반복하다보니 짜증이 날만할 때 쯤, 드디어 이거사가 사건을 터뜨렸습니다. 시작전에 어느 꾼으로부터 “초짜들이 사고친다”는 말은 들었지만 선장을 포함한 17명 중에서 이거사가 일호로 중짜우럭을 건졌으니 말입니다. 선장이 달려와 기념사진을 찍고 오늘 이런 행운이 계속되기를 염원했는데 어라! 공처가도 한 건을 터뜨렸네요. 한 번에 두놈이 걸려나오지 않는가? 자세히는 안보았지만 그 놈들의 성은 심가일 것이고 앞이 잘안보이는 통에 지나가다 걸린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어서 당일의 최대어를 이거사가 낚고 공처가는 마릿수로 재미를 보고 있는디.
오호라 애재라. 여비는 손가락만 쪽쪽 빨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배가 달리다 설 때쯤부터 울렁증을 호소하더니 하늘천장 찢어지는 “웨액! 웩! 꿰애액!” 소리를 내며 바다에 얼굴을 비추던 여비. 도저히 낚시를 하지 못할 듯 싶더니 진짜 아주 정말 초삐리인 이거사가 연신 건져대는 걸 보더니 몸을 추슬러 다시 도전을 해 봅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던가. 드디어 한 마리를 잡았는데 그 날 잡힌 놈들 중 두 번째로 큰 대물이 아니겠습니까? 그나 저나 여비의 운세는 그것으로 끝. 이후 여비는 울렁증과 토악질을 견디다 못해 아래선실에 몸을 방치시키다 귀항할 때까지 통한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남들은 잘도 잡는 광어에 부러운 시선을 보내기도 했지만 아무튼 그 이후로는 입질 뚝! 더 이상의 조과는 없었으니 우리의 판단으로는 선장나으리께서 그 정도면 충분한 낚시의 즐거움을 보여 주었다고 판단한 듯 싶었습니다. 돌아오는 중에 공처가가 두 마리 이거사가 한 마리 추가해서 전체 약20마리 정도를 잡았습니다. 점심시간에 공출된 작은 놈 4마리까지 합친 조황. 점심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이거사의 현장적응력은 도대체 어디까지인지 상당히 궁금합니다. 먹성좋고 식성대범한 공처가도 울렁증 때문에 점심을 못먹었는데 역시 같은 울렁증을 호소하던 이거사는 점심은 물론 쐬주도 한컵이나 마셨으니. 원래 배를 타야할 사람이 아니었나? 직업에 대해 의심도 잠간이나마 해보았습니다.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오랫동안 벼르던 바다낚시를 세놈이 갔는데 한 놈은 울렁증 때문에 거의 못하고 두 놈은 그런대로 재미있었지만 그 중 한 놈은 점심을 잘 챙겨먹고 한 놈은 쫄쫄 굶었다는 말씀.
바람은 귀를 째고, 물보라는 눈앞을 가리며 파도는 하늘을 칠 듯 높이 솟구치는데 일엽편주 흔들리는 배에서
“북망산이 멀다더니 배아래가 북망일세
야속하네 야속하네 이 내몸이 야속하네
이거사랑 여비녀석 빠져죽을 걱정없네
남산같은 아랫배가 천연쥬브 아니런가
빼빼마른 이내몸은 입수하면 황천인데
살아생전 불효한 일 자꾸자꾸 생각나네
마누라랑 자식한테 잘못한 일 후회되네
하늘님께 비나이다. 조상님께 비나이다
무사히만 돌아가면 개과천선 사람돠어
사람답게 지낼테니 살려주오 살펴주오.”
하고 가사짓던 절박함도 따에 발을 딛는 순간 쉐액 없어지니 인간은 정녕 간사한 동물이던가.
첫댓글 ㅎㅎㅎ 오래간만에 올라온 모임후기 잘 보았네~~~~
공처가의 후기 조회수는 30회인데 흔적남긴 놈(년)은 하나도 없네~~~~
죙일 줄다리기만 한 기억만 있을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