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집사람과 함께 보았습니다. 영화에 대한 구구절절한 이야기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겠기에 생략합니다. 사진에 보면 음화와 양화가 있다고 합니다. 음화 상태의 필름을 보면 인각 예술에서 좌우 대칭이 바뀐 것처럼 일상적 시각과 다른 감각을 필요로 하는 것 같습니다. 이 영화도 그렇게 보아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점점 어려워지고 문제 해결의 난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세계적인 정치 지형과 사회적인 차원의 제반 문제들은 물론이려니와 지금 목격하고 있는 기후 격변의 결과를 종합해 볼 때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타이타닉의 마지막 침몰 장면을 가끔 떠올리곤 합니다.
침몰하는 여객선에서 인간 군상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죽음 앞에서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의 문제와 대응시켜 볼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백척간두에서 진일보! 하는 심정으로 한 번 크게 깨닫고 결심하고 결의를 다지면 삶이 좀 더 의연해지지 않을까 합니다.
무등산을 오르면서 입석대, 서석대를 보면서 거기 서서 광주 광역시를 내려다 보았습니다. 제주에서 상경하던 길에 광주 망월동 5.18국립묘지에서 비석들의 뒷면을 읽으면서 부처님께 극락왕생을, 천주님께 안식을, 여호와께 위로를 혹은 사랑을 기록한 비문들을 읽었습니다. 잊지 않으면 기억하기를 멈추지 않으면 똑같은 일이 비극으로 희극으로 되돌아오지 않겠지요.
한열이를 생각하면서 망월동 공원묘지에도 갔었습니다. 86학번 경영학과 나는 국문학과 그 시절 같은 공간에 있었던 그의 죽음을 늘 기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위대한 삶은 못 살아도 그런 기억 속에서 자신을 추스리며 사는 날까지 살기를 희망합니다.
목포 신항에서 녹슬어 붉게 삭고 있는 세월호 선체를 바라보았습니다.
진도 팽목항에서 공연이 끝난 뒤의 무대처럼 조용하게 서 있는 컨테이너 추모관을 돌아보았습니다. 제주의 추모관에도 갔었지요. 안산 화랑공원의 추모 장소에 갔던 기억을 모두 묶어서 1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우리 사회 전체가 기억하는 일들은 그냥 사라질 수는 없는 것이겠지요. 이태원도 채 상병 문제도 정직하게 직시하지 않고 편법으로 왜곡한다면 저 돌들이 소리칠 것입니다. 정직이 최선의 대응입니다. 그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자신의 안락한 삶이 타인의 고통 위에 서 있다면 그것을 자각하고 불편해 해야 마땅한 일이겠지요.
언젠가 허락된다면 폴란드의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에도 가보고 싶습니다.
파울 첼란, 엘리 위젤, 프리모 레비의 글들을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사마천의 사기를 읽듯이 인류의 행위들을 반추하는 역사적 관점과 시각이 필요한 날들입니다.
긴 여름이 시작되었습니다. 평온한 날들이 되되 깊어지는 여름이 되기를 스스로 요청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