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페이지수, 제본 형태, 도서분류 이런 모든 것들까지 고려해서 도서를 선정한다는 것,
결코 쉬운 일이 아니네요. 혼자 읽을 것이 아니라 같이 읽어야 하기 때문에 가급적 최대한 모든 조건들을 고려해야죠.
- 저자
- 루돌프 파이퍼 지음
- 출판사
- 길 | 2011-06-30 출간
- 카테고리
- 인문
- 책소개
- 서양은 어떻게 인문학을 부흥시켰는가『인문정신의 역사』. 서양 인...
출판사 책소개
[제1군]
페트라르카, 보카치오, 살루타티, 브루니, 니콜리, 포조, 로렌초 발라, 폴리치아노, 에라스뮈스, 레나투스, 기욤 뷔데, 로베르 에티엔, 유스투스 스칼리게르, 리처드 벤틀리, 요한 빙켈만,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볼프 …….
[제2군]
프랑수아 라블레, 토머스 모어, 후고 그로티우스(휘호 흐로티위스), 아이작 뉴턴, 로버트 보일,헤르더, 괴테, 멘델스존, 바흐, 에드워드 기번 …….
제1군의 인명과 제2군의 인명 사이에는 무슨 연관 관계가 있을까. 언뜻 보기에는 전혀 상관이 없을 두 무리 사이에는 ‘고전문헌학’(philologia)이라는 다리가 놓여 있다. 그렇다면 과연 고전문헌학이란 무엇인가.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생소한 학문 분야임에 틀림없다. 고전문헌학이란 한 문헌이 최초의 원전으로부터 어떤 과정을 거쳐서 현재 우리에게 오게 되었는지를 해명하고, 그 전승 과정 중에 생겨난 오류들을 교정해서 최초의 원전을 복원하려는 학문이다. 우리가 현재 흔히 접하고 있는 서양 고전고대의 주요 작품(예를 들어 플라톤의 『국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등등)들이 이런 고전문헌학의 도움으로 온전한 형태로 전승된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가 바로 철학자이기 이전에 고전문헌학자였음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데, 그가 『비극의 탄생』을 비롯하여 고전고대의 작품 속에서 많은 영감을 얻어 자신의 철학적 주저들 속에 고전고대를 자유자재로 인용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고전문헌학의 영향 때문이었다.
르네상스(내지 문예부흥)의 진정한 의미, 그것은 바로 ‘텍스트’ 자체로부터
우리는 흔히 르네상스나 문예부흥을 이탈리아에서 발흥한 ‘예술’의 획기적 발전 속에서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그것은 ‘텍스트’(책)을 통해 이루어졌음을 이 책은 보여준다. “학문의 존재, 그것은 책에 의존한다”라는 저자의 언급은 이를 잘 나타내고 있다. 즉 흔히 언급되듯이 중세의 암흑기를 지나서 고전고대를 통해 새로운 근대를 개창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고전문헌학자들의 각고의 노력 끝에 그동안 묻혀졌던 고전고대의 텍스트들을 복원해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페트라르카나 에라스뮈스, 보카치오 같은 사람들이 바로 그 선구적 인물들이었는데, 이들은 고대 문헌을 찾아 몰락한 귀족의 개인 장서고와 수도원들을 헤매고 다니며 필사본들을 발굴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고전고대를 이해하기 위한 주석을 달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엄밀한 학문’으로서의 고전문헌학적 전통이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이들은 단순히 글자 하나하나를 엄밀히 교정하여 복원해내는 것에만 머문 것은 아니다. 이들은 비판적 텍스트 읽기를 통해 진정한 인간의 전형을 발견했던 것이며, 여기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후마니타스(Humanitas)가 발현한 것이다. 르네상스 시기 대표적 인문주의자인 페트라르카는 그가 흠모했던 키케로에게서 로마인이 그리스인을 단지 학문의 모델로만 생각한 것이 아니라 ‘가장 사람다운 사람’(genus humanissimum)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을 배웠다. 로마인에 따르면 그들은 모든 시대 모든 종족에게 타당한, 교양의 모범을 수립하였다. 페트라르카가 부활시킨 문헌학적 학문 연구가 이후 모든 세대에서 ‘사람다움’이라는 개념과 융합된 것은 고대에 대한 그의 연구가 후세대 학자(특히 피렌체에서 활동했던)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용되고 ‘인간에 대한 학문’이라고 명명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르네상스 내지 문예부흥의 개념은 결정적으로 새롭게 해석된다.
서양 인문학 600년 전통, 고전문헌학(philologia)을 바탕으로 설명해낸 역작!
이 책은 서양 인문학 600여 년에 걸친 역사 밑바탕에 깔린 고전문헌학의 유구한 전통을 일목요연하게 개괄한 역작이다. 앞서 언급한 제1군의 인명들과 제2군의 인명들, 즉 언뜻 보면 잘 연결이 되지 않는 두 무리의 사람들이 ‘고전문헌학’을 매개로 서양 ‘인문학’을 발전시켰음을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본문 227쪽에 언급되고 있는 영국의 대표적 고전문헌학자 리처드 벤틀리(Richard Bentley)와 당대 최고의 과학자 가운데 한 명이었던 로버트 보일(Robert Boyle)의 관계는 그 전형적인 면모를 우리에게 전해주는데, 현재까지도 ‘보일 강연’이 이루어지고 있음은 이런 인문학적 전통의 깊이를 가늠하게 해준다. 이탈리아로부터 발흥한 고전문헌학의 전통은 이후 전(全) 유럽에 퍼져나갔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현재 우리가 인문학적 전통이 강고한 나라라고 보는 국가들 대부분에서 고전문헌학적 학문 연구방법은 뿌리 깊게 착근되었다. 아직까지도 이들 국가가 현재까지 인문학의 본고장으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데에는 이런 전통이 남아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국내 한 한문학자에 따르면 국내의 대표적인 고전으로 평가받는 박지원의 『열하일기』의 경우, 다양한 판본들이 존재하지만 결정적으로 원본에 가장 근접한 결정판본은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반 독자들이 읽고 그 대의를 파악하기에는 무리가 없지만, 학문 연구 대상으로서 원본에 근거한 국문학 내지 한문학이 설 수 없음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한 글자 한 글자를 원본 텍스트 상태로 복원해내는 작업은 무척이나 지난하고 사소한 문제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것은 결국 인간의 정신활동이 표현되는 가장 구체적인 형태인 텍스트를 온전하게 만듦으로써 학문적 토대를 견고히 쌓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인문학은 이런 초석 위에서 발전할 수 있음을, 아니 반드시 그러해야만 함을 저자는 우리에게 역설하고 있다. 서양의 고전문헌학적 전통을 통해 우리는 서양 인문학이 어떻게 태동하여 발전해왔는지를 타산지석으로 삼음으로써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인문학의 위기“의 근본을 반성해볼 수 있을 것이다.
서양 근세 초, 서양 인문주의자들은 키케로를 발견함으로써 인문학적 전통을 세웠으며, 그를 바탕으로 고전고대를 복원해나갔다. 그 가운데 고전문헌학이 있었으며 이는 자연스레 문(文)ㆍ사(史)ㆍ철(哲)을 비롯한 인문학 전반에 심대한 학문방법론적 영향을 끼쳤다. 서양의 장구한 인문학 역사를 꿰뚫고 있는 이 책은 단순히 고전문헌학을 소개하는 차원을 넘어 학문하는 자세와 인문적 전통이 어떻게 서양 학문세계에 뿌리내렸는지를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