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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하계수련회 ⓵
1984년 여름의 태양은 모든 것을 녹일 듯이 뜨거웠다.
나는 학기초 써-클에 가입 후 중간고사 전까지 약 2개월 동안 신입생을 대상으로 하는 테니스 교육에 참석했다. 그리고 중간고사를 치루고 나서 다시 코트를 찾았다. 정문옆 작은 숲길을 지나 테니스장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자 7기 여자 교육부 차장 O선배와 6기 여자선배 M 두사람은 학생코트(등나무 벤치 앞 코트)에서 테니스를 하고 있었다.
코트에 들어서자 반갑게 나를 맞이해준 사람은 7기 여자 교육부 차장 O선배였다. 짧은 커트머리에 동그랗게 눈이 크고 교육부 선배 여서 인지 특히 8기 남자동기들에게 인기가 많은 여자선배였다. O선배는 양쪽 어깨부분이 파란색에 빨간색 줄무늬가 들어가 있고 가슴부분에 쿠스타 엠블렘이 새겨져있는 흰색 상의와 검정색 줄무늬가 들어간 치마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나는 선배의 그모습에서 알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지며 여자선배 였지만 꽤 멋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선배가 되었을때 후배들에게 저렇게 멋있는 선배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우거진 등나무로 그늘이 드리운 벤치에 앉아서 백회가루로 선명하게 라인이 그려진 검붉은 Clay 코트에서 흰색 유니폼을 입고 테니스하는 장면에 나는 매료 되었다.
잠시후 O선배가 다가왔다. 내가 인사를 하자 O선배는 “안녕~ 오랫만이네~ 시험은 잘 봤어?” 하면서 웃으며 반겨주었다. 나는 쑥쓰러운 마음에 멋적게 웃음으로 대답하면서 신입생 교육을 다시 시작했는지 물었다. 그러자 O선배는 지금은 곧 다가오는 전대 Grip 교류전 출전선수 대상으로 연습을 한다는 말을 듣고 아쉬움에 인사를 하고 발길을 돌렸다. 그후로 여름방학이 시작될때까지 특별한 연락을 받지 못한 탓에 코트장을 찾아가지 않았다.
여름방학이 시작되자 나는 방학동안 하숙비를 아낄겸 고향으로 내려가려고 했으나 부모님께서 광주에서 그냥 있으면서 공부를 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렇게 방학초 학교에서 무료하게 공부를 하다가 본관 옆 학생회관 입구에서 낯익은 여자동기 J를 우연히 만났다. 여름인데도 흰색 긴바지에 반팔티셔츠 차림에 라켓가방을 메고 있었다. 학기초 테니스 교육을 같이 참석한 탓에 서로 알아보고 어색한 인사를 했다. J는 나에게 왜 M.T도 참석하지도 않고 하계교육이 시작했는데 나오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몰랐다고 대답했다. J는 매일 아침 7시~9시까지 교육한다고 코트장으로 오라고 이야기를 해줬다.
이튿날 나는 라켓가방으로 챙겨서 코트를 찾았다. 코트장을 가보니 8기 동기들이 교육을 받고 있었고 교육을 받고있는 몇몇은 낯익은 얼굴들도 있었다. 그 속에 여자동기 J도 있었다. 나는 등나무 벤치에 앉아서 교육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6기 회장 S선배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교육에 참석할 수 있는지 물었다. S선배는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7기 N선배에게 문의를 하라고 하면서 7기 N선배를 불렀다. 7기 N선배는 나를 보더니 왜 이제 나왔냐고 하면서 지금 교육에는 합류를 할 수는 있으나 대신 교육기간동안 3일 결석을 하면 제명을 시키겠다고 엄포를 놨다.
그렇게 나는 뒤늦게 하계교육에 참석할 수 있었다. 뒤늦게 참석하게된 교육인 만큼 보상심리가 작용했던지 매일 빠지지 않고 열심히 교육에 참석을 했다. 어떤날은 교육이 끝나고 본관에서 잠시 공부를 하다가 폭염이 한풀꺽일 때 즈음 다시 코트로 와서 긴 여름 오후 늦게까지 공을 쳤다. 그리고 끝이 나면 정문앞 써-클의 단골집 <동원>에서 라면과 튀김을 먹었다.
정문앞에는 광주역에서 출발해서 남광주로 향하는 기차가 자주다녔다. 그리고 기차가 지나가는 바로옆 <학사주점>에서 자주 선배. 동기들과 어울려 술을 마셨다. “선배님들은 움직이는 지갑”이라고 해서 주로 선배들이 많이 베풀었다.
그때부터 선배, 동기들과 교류를 하면서 얼굴과 이름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렇게 교육을 받던 중 써-클 하계수련회를 가게 되었다. 하계수련회는 1984년 7/24 ~/28일까지 지리산과 상주해수욕장을 경유하는 4박 5일간의 일정이었다.
84 하계수련회 ⓶
대학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가는 야외행사였다. 7월 중순 예비모임을 거쳐 수련회를 가는 당일에는 50여명의 많은 회원들이 수련회를 참가했다. 첫날은 버스를 대절해서 지리산 중산리에 도착하여 천왕봉 정상을 지나 쌍계사 까지 가는 험난한 일정이었다. 나는 이 많은 인원이 더군다나 여자회원들도 있는데 그런 빡빡한 일정을 소화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대절한 버스에는 50명 가까운 인원에 짐까지 싣고 나서 합류하지 못한 회원들의 환송을 받으며 출발했다. 버스는 광주를 벗어나 담양을 거쳐 88고속도로를 달렸다.
회원들은 누가 시작했는지도 모르는 노래를 다 같이 박수를 치며 부르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7월의 맑은하늘과 뜨거운 태양 그리고 그 햇볕을 받아 자라는 푸른 들판의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달리는 버스 창가에서 불어오는 더운 바람과 함께 회원들이 부르는 노래 소리가 어우러져 버스안은 알 수 없는 약간의 흥분과 설레임으로 가득찼다. 남자 회원들이 “삼봉가”라는 노래를 부르는데 “간다! 간나! 나는 간다~ 내 너를 버리고 나는 간다~ 각설이 생활로 들어간다 ~~ 1월 ..2월.. 3월...” 로 이어지는 약간의 반복되는 운율의 노래인데 몇몇 동기들이 부르는 것을 보니 익히 알고 있는 것 같았으나 나는 처음 듣는데 노래였고 가사를 알 듯 모를 듯 했다. 또 가끔씩 버스안에 설비가 된 마이크로 개인별로 노래를 부르는데 3기 K 선배가 “용두산”이란 노래를 구성지게 잘 불렀다.
그렇게 88 고속도로를 힘차게 달린 버스는 한참 가다 지리산 휴게소에 도착했다. 잠깐 쉬었다가 일행은 단체 기념촬영을 하고 다시 버스에 올라 1시간여를 더 달린 후 지리산 입구 중산리에 도착했다. 중산리에 도착하니 올 때 맑았던 날씨는 온데 간데 없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본격적인 산행을 하는데 더운 날씨보다는 오히려 약간 비가 오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각 조별로 점심식사를 간단히 라면으로 해결했다. 나는 그때 산행 필수품인 버-너라는 것을 처음 봤다. 석유를 넣고 펌프질은 해서 석유를 기화시켜서 불을 생성시키는 등산 장비인 것 같았다. 우리 일행은 인근 가게에서 우의와 비닐을 급히 구입해 우의를 입고 배낭을 비닐로 싼후 조별로 거대한 지리산의 천왕봉을 향해 긴 행렬의 첫 발을 옮겼다.
비가 내리는 지리산은 안개에 가려 더욱 웅장하게 느껴지고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었다. 그 웅장함 앞에 우리 일행은 한낮 개미와 같은 나약한 존재감을 느껴야 했다. 인간이 지구의 주인의 자리를 차지했으나 자연에 도전을 하고 소위 자연을 정복한다는 말을 할 수있을까? 그것은 그야말로 태산앞에 한 자루 호미를 들고 서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했다. 천왕봉으로 향하는 우리를 과연 지리산은 정상까지 갈 수 있도록 허락할지 그저 겸허하게 순응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비를 맞으며 조금씩 올라가면서 내려오는 사람들과 인사를 주고 받으며 건넨 한마디 말에 용기와 기운을 붇돋으며 천천히 올라갔다. 비가와서 미끄러운 곳은 서로 손을 잡아 주면서 올라가는데 그야말로 고행길이었다. 날씨가 덥지 않아서 다행이었으나 한편으로 비에 젖은 옷과 배낭이 무거웠다. 올라가는 길에 등산을 포기하고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비가 와서 불어난 계곡물은 커다란 굉음과 함께 시원한 물줄기를 뽐내며 어디론가 흘러갔다.
그렇게 얼마나 올랐을까 8기 영문과 여자동기 C가 탈진 해서 주저앉았다. 얼굴이 하얗게 변하면서 전혀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몸을 가누지 못했다. 일행은 당황했다. 오던길로 다시 데리고 내려가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의견이 분분하였다. 선발대로 사전답사를 다녀온 7기 C선배의 의견에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산장이 있으니 거기까지 천천히 교대로 부축하면서 가자고 했다. 나를 비롯한 동기 몇 명이 교대로 부축을 하며 로터리 산장까지 천신만고 끝에 부축해서 올라 갔다.
천왕봉 1km 앞두고 로터리 산장에서 1박을 하기로 했다, 산장에 도착하자 비는 조금씩 개였다. 남자 회원들은 텐트를 치고 젖은 옷을 갈아 입었고 여자회원들은 저녁준비를 했다. 탈진했던 여자 동기 C도 기운을 되찾고 웃으며 미소까지 띄는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첫날 저녁을 먹고 선배분들은 일정에 대해서 다시 논의를 하는 관계로 특별한 일정이 없었다. 외딴 곳에 있는 텐트는 남자회원들이 자고 텐트가 모여 있는 곳은 여자 회원들이 자기로 했다. 나는 동기 P, L, O, C와 함께 서로 인사를 하고 오늘 정말 힘들었다는 둥 앞으로 일정이 걱정된다는 둥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늦게 잠이 들었다.
84 하계수련회 ③
이튿날 불편했던 잠자리 때문인지 일찍 일어났다. 날씨는 흐렸다. 여자회원 몇몇은 아침을 준비했고 일행 모두는 산장 앞에 모여 7기 교육부 N선배의 지휘아래 간단한 체조를 했다. 그리고 갑자기 테니스 스윙연습을 한다고 하나, 둘, 셋 하면서 구령을 붙였다. 여기에까지 와서 굳이..?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N선배는 앞으로 더 밀라는 둥 백핸드그립으로 바꾸라는 둥 재치있는 진행에 일행 모두는 웃으면서 따라할수 밖에 없었다.
아침을 먹고 텐트와 배낭은 그대로 둔 채 가벼운 차림으로 천왕봉까지 정상 올라가는 길을 나섰다. 오르막길을 올라가면서 멀리 보이는 낮게 깔린 구름과 말라버린 죽은 고목, 기이한 암석들이 조화를 이뤄 한폭의 그림처럼 멋진 풍광을 만들어 냈다. 천신만고 끝에 천왕봉에 다다르자 정상에는 벌써 여러 단체에서 왔는지 적지 않는 사람들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지리산은 사방이 구름으로 덮여 그야말로 장관이 펼쳐졌다. 운해, 말 그대로 구름이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산줄기가 어깨동무 하듯이 끝이 없이 이어져 나가고 있었고 그 산맥사이를 구름이 낮게 깔려 산봉우리는 마치 바다위에 섬이 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잠시후 구름이 움직이면서 걷히는 모습이 마치 수만 마리 말들이 일제히 뛰어가며 산을 휘감고 돌아가는 듯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가 성난 파도가 한꺼번에 덮쳐 바다위 섬을 삼키는 모습과도 같았다. 동서남북 어느쪽을 바라보아도 대자연이 만들어 놓은 풍광에 한동안 넋이 나간 사람처럼 바라보았다.
그리고 최근에 출간이 된 소설 <태백산맥> 주인공 빨치산 대장 염상진과 하대치가 떠올랐다. 해방이후 극심한 좌우 이데올로기 대립 속에서 자신들이 꿈꾸는 세상을 만들어 보겠다고 지리산에 은거했던 빨치산들은 어떤 신념이 있었기에 그 신념을 굽히지 않았을까? 마지막에는 죽음으로써 소위 역사투쟁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그들은 언젠가는 민초들이 저 휘몰아치는 구름같이 들불처럼 일어날 것이라는 슬픈 희망을 품고 매일 같이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지는 저 운해를 보면서 자신들의 신념을 더 굳건하게 다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후 우리 일행은 정상에서 삼삼오오 기념촬영을 하고 남자회원들은 닭싸움 게임을 한 후 다시 로터리 산장으로 내려왔다. 로터리 산장에서 중식을 해결하고 당초 쌍계사 쪽으로 하산하려던 계획을 변경하여 올라왔던 길로 다시 하산한 후 상주해수욕장으로 가기로 했다. 하산하는 길은 올라 올 때 못지 않게 힘들었고 지루했다. 그토록 지리산 줄기는 겹겹이 포개진 엄마의 치마자락 처럼 깊고도 품이 넓었다.
중산리에 도착하자 일정이 너무 지연되어 중산리에서 1박을 더 했다. 1박을 하는데 일부 회원들은 모여서 노래도 부르고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중산리에 와서 두리번 두리번 김밥이요~ 김밥! 김밥사요~ 김밥! 1 2 o 4 5 .. 007게임을 하면서 등짝을 때리고 웃고 떠들고, 어떤 회원을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또 어떤회원은 늦은 시간까지 선배들과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나는 피곤해서 일찍 잠을 청했다.
84 하계수련회 ④
아침에 일어나니 공기는 상쾌했다. 비가 그친 지리산은 여전히 안개를 휘감은 채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아침을 먹고 짐을 챙기는데 모두의 마음은 이미 상주해수욕장으로 가 있는 듯했다. 우리 일행은 진주행 버스를 타고 진주까지 가서 다시 상주로 가는 버스를 타는 것으로 했다. 변경된 일정에도 통솔해 나가는 회장님과 선배들이 믿음직스러웠다. 진주에 도착해서 상주해수욕장으로 가는 버스를 대절해서 잠깐 가다가 예정에 없는 경남대학교 어느 써-클 회원들과 같이 타고 가게 되었다. 대절 버스기사와 사전에 협의가 된 것 같았다. 우리 일행 중 몇몇 회원이 일어나서 자리를 양보하는 호의를 베풀자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나는 맨 뒷좌석에 앉아 있는데 경남대학교 써-클 회원중에 제법 선배로 보이는 분이 내 옆에 앉았다. 아마 군대를 전역한 예비역으로 우리 써-클의 2기 3기 정도 연배 회원 같았다. 그 회원과 인사를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나에게는 경상도 사투리가 생경했다. 그 선배되는 듯 보이는 회원이 나에게 광주를 꼭 한번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80년 광주시민들은 정말 용감했고 그때 희생된 젊은 사람들한테 우리 모두는 빚을 지고 있는 것이라고 하면서 멀리 창밖을 응시했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남해대교를 지나서 한참을 간 후 드디어 상주해수욕장에 도착을 했다. 해수욕장의 푸른 파도를 보니 흥분과 설렘으로 가득 찼다. 그런데 야영장을 섭외하는데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TV로만 보던 유흥지의 터무니없는 트집과 바가지요금을 경험하게 되었다. 다행히 경찰의 도움으로 야영장이 정해지고 텐트를 쳤다. 짐을 정리하고 급하게 점심을 먹는데 마음은 이미 바닷가로 향하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바닷가로 향한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물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우리들은 선배들을 행가레를 쳐서 그대로 바닷가에 빠뜨리는가 하면 갑자기 발생한 물싸움으로 도망가고 다시 잡아서 물속에 빠뜨리고 한바탕 신나게 놀았다. 그리고 남자회원들은 조별로 나눠 백사장에서 축구시합을 했다. 너무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지리산 산행의 고된 피로가 다 풀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잠시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바닷가 가게에서 콜라를 하나사서 가게앞 파라솔 의자에 앉아 바다를 보며 콜라를 마시고 쉬고 있었다. 혼자 앉아 있는데 여자 동기 J가 다가왔다. 내가 뭐 시원한거 뭐 하나 먹고 싶은지 물어보자 시원한 매실 음료를 먹고 싶다고 해서 하나 사서 건냈다. 나는 지리산 올라가는데 힘들지 않았냐고 물었다. J는 죽다 살아났다며 웃으며 대답하더니 그래도 올라 갈 때 내가 도와줘서 별로 힘든 줄 몰랐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잠시 침묵이 흐르는데 가게에서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나는 말없이 음료수를 마시면서 노래에 맞춰 흥얼 거리는데 갑자기 J가 엉뚱한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지금 저 바다풍경 그리고 이 노래 그리고 너하고 이렇게 앉아 있는 장면이.. 나는 여기 처음왔는데 언제인가 한번 와 봤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면서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래~? 데쟈뷰 인가? 네가 언젠가 지금과 같은 비슷한 장면을 꿈 꿨는데 지금 여기에 오니까 꿈에서 봤던 기억이 살아난거 같은데?“ 하고 대답했다. J는 ”그런 것일까?“ 하면서 말끝을 흐렸다. J와 나는 한참을 파라솔 그늘에 앉아 작렬하는 태양을 받아 흰 포말이 너울대는 바다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84 하계수련회 ⑤
잠시 후 저녁을 먹고 우리 일행은 텐트 옆에 동그랗게 둘러앉아 뒤늦게 합류한 7기 C선배 주도로 레크레이션 시간을 가졌다. 눈 안대를 하고 짝을 찾는 게임, 빤스게임 등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주위 휴가 온 어른들도 우리가 노는 보면서 웃으며 즐거워했다. 그렇게 재미있는 레크레이션을 하는 동안 병에 석유와 헝겊을 이용해 급조로 만든 횃불이 주위를 비추는데 타오르는 불길이 너울너울 춤을 추는 듯 했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미풍에서 바다내음이 났다.
레크레이션이 어느 정도 끝날 무렵 갑자기 모 선배님이 지금 전 회원은 백사장 좌측으로 이동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그쪽으로 가는데 멀리서 후레쉬 불빛을 원 모양으로 동그랗게 그리고 있는 선배앞으로 모두 정렬을 했다. 나는 처음 경험하는 상황이라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다른 동기들은 오히려 담담했다. M.T때도 이런 행사가 있어서 익숙한 듯 했다.
모두 모이자 모 선배의 일장 훈시가 시작되었다. 질책과 꾸지람은 주로 7기 선배들을 향한 내용이었다. 나는 교육내용이 뭔지는 들리지는 않았고 늦은 저녁 밀려오는 파도소리만 내 귓가에 맴돌았다. 그리고 8기 들은 1학년이라 교육에서 열외를 하고 7기 위 선배들만 기수별로 일명 “사랑의 매(?)”를 맞는 것 같았다.
선배들의 “사랑의 매”를 맞고 우리는 레크레이션 자리에 다시 모였다. 7기 B선배가 코-펠 뚜껑에 술을 가득 담아 주는데 원샷으로 마셨다. 술잔 대용으로 사용한 코-펠 뚜껑을 다음 사람에게 건네야 했기때문에 그 많은 술을 한번에 다 마실수 밖에없었다. 그것을 다 마시고 난 후 더 술을 마셨다. 그렇게 한참 시간을 보내다 여자 회원들은 텐트로 가서 먼저 잠을 청했고 나는 백사장으로 나와 모래위에 쓰러졌다. 낮에 더운 햇빛을 받은 모래는 따뜻했다. 그렇게 3일차 저녁을 별이 빛나는 하늘을 이불 삼아 백사장 위에서 잠을 잤다.
4일차 주위의 소란스러움에 잠을 깨서 탠트로 가보니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같은조였던 여자동기 J가 나에게 어디서 잤냐고 물었다. 나는 백사장에서 취해서 잔거 같다고 말했다. 아침을 먹고 오전에 조별로 물속에서 하는 게임이 진행되었다. 남자들이 말을 만들어 여자회원을 태우고 조별로 기마전 게임을 했다. 나는 같은 조 여자동기 J의 다리가 팔뚝에 닿아 이상한 감정을 느끼기도 했지만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그런 감정을 느낄 틈도 없이 서로 엉겨붙어서 밀고 잡아 당기고 물속으로 빠뜨리고 그렇게 물에 빠진 여자 회원들은 물을 잔뜩 먹고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지만 금방 웃는 얼굴을 하고 다시 남자 회원의 어깨 올라 기마전을 계속했다. 물속에서 이어달리기를 하다 허우적 거리며 넘어지도 하고.. 그렇게 하루를 바닷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84 하계수련회 ⑥
4일차 저녁식사 후에는 기수별로 기수 모임을 가졌다. 20여명의 동기들은 동그랗게 둘러 앉아 각자 학과와 통성명을 하고 1학기동안 동기들 사이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동기 C의 사회로 지금까지의 써-클 생활에 대한 소회와 이번 하계수련회에 대한 소감을 간단히 말했다. 나는 조금 어색하고 쑥쓰려웠지만 1학기동안 써-클 활동을 거의 하지 못해서 서먹했는데 이번 하계수련회를 계기로 친하게 되어 다행이고 앞으로 좋은 관계를 맺어 나가자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동기들은 조금씩 돈을 갹출하여 생일을 맞은 여자동기 M의 생일 축하하는 자리를 가졌다.
기수별 모임이 끝난 후 전체 일행은 백사장에 모여 앞으로 써-클 발전을 위한 각오 한마디씩 하는 시간을 가졌다. 선배 몇몇분과 8기 동기들중 대표로 몇몇 동기가 이야기하는 어떤 동기의 각오는 비장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시간이 끝나고 인접 초등학교 운동장에 둘러앉아 각 조별로 상황극을 급조해서 공연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떤 조는 춘향전을 어떤 조는 이수일과 심순애 각색하여 짧은 단막 연극을 했다. 그중 제일 압권은 0조가 연기한 “10대들의 방황” 상황극이 너무 재미있었다. 특히 8기 여자 동기 H는 짝다리를 하고 호주머니에 손을 넣은채 7기 N 선배한테 대뜸 “ 야~~ OO아 담배한대 줘바라~~” 하면서 천연덕스럽게 연기 하는데 다들 배꼽을 잡고 쓰러졌다.
즐거운 오락시간이 끝나고 큰 판위에 CUSTA 엠블렘을 디자인한 곳에 선배들이 불을 붙여 주는 초를 하나씩 들고 와서 꽂는 "캔들 세레모니“를 했다. 나에게 촛불을 전달해준 3기 O선배였다. O선배는 나에게 써클생활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학업에 절대 소홀이 하면 안된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뜻밖의 말이었다. 써클에 너무 함몰되지 말고 조화롭게 대학생활을 하라는 조언이었다. 정말 후배를 아끼는 한마디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8기 동기들 중 쿠스타 뱃지 받지 않는 사람들에게 뱃지를 수여 해주었다. 1학기 M.T때 대부분의 동기들이 뱃지를 받았으나 나는 하계수련회에서 뱃지를 받았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모닥불 주위에서 술도 마시면서 노래도 부르고 일부는 음악을 틀어놓고 그 음악에 맞춰 어색한 춤을 추기도 하는데 나는 옆에서 지켜보면서 연신 술잔만 비웠다. 한참을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모닥불이 식어갈 즈음 시계를 보니 벌써 새벽 2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나는 취한 몸을 겨우 가누면서 텐트로 와서 잠을 청하려고 했으나 먼저 와서 잠을 자고 있는 남자 동기들 때문에 텐트안은 비좁았다. 가슴이 더워지고 텐트 안은 답답했다. 다시 일어나 어제 누웠던 백사장으로 와서 하늘을 보고 누웠다. 낮에 햇볕을 받은 모래는 따뜻했고 바닷바람은 시원했다. 그렇게 잠이 들었는가 싶었는데 누군가가 다가와서 조그만 담요를 덮어주고 가는 것을 느꼈다.
84 하계수련회 ⑦
5일차 마지막날 우리 일행은 상주에서의 일정을 마무리 하고 광주로 향하는 차에 몸을 실었다. 일행 모두는 지쳐 있었고 갈 때 설레임으로 가득했던 노래소리 대신 피곤해서 잠들어 내 쉬는 숨소리만 차안에 가득했다. 버스에는 자리가 부족해서 교대로 앉아서 이동을 했는데 돌아오는 길에는 다들 피곤해서 잠에 곯아 떨어져서 교대로 자리에 앉아서 올 수 없었다. 7기 N 선배는 좌석위 짐은 올려놓은 선반위에 용케도 올라가서 잠을 잤다. 나는 상주에서 광주까지 온전히 버스 바닦에 앉았다가 서 있기를 반복하면서 광주까지 이동했다.
버스는 학교앞 “왕자관” (중국집)에 도착했다. 우리 일행은 자짱면, 짬뽕으로 저녁을 먹고 차기 회장, 부회장, 여학생부장을 선출했다. 차기 회장으로 7기 N 선배와 C선배가 추천을 받았다. 회장임기는 2/2학기~3/1학기 까지였다. 그런데 7기 C선배가 2학기 마친 후 군 입대 계획이 있어서 차기 회장은 7기 N선배가 선출이 되었다. 부회장은 동기들 사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8기 C동기, 여학생부장은 7기 K 선배를 선출하는 것으로 4박 5일간의 기나긴 일정이 마무리 되었다.
왕자관 앞에서 50여명이 한꺼번에 쿠스타 응원박수, 통과 박수를 하는데 우렁찬 박수와 외침으로 왠지 모를 일체감, 소속감이 느껴졌다. 서로 수고 많았다면서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나는 산수동에 집이 있는 6기 회장 S선배와 지산동 하숙집 가는 방향이 같아 같이 가는데 건너편 버스정류장에서 여자 동기 J가 화정동 집으로 가려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J의 배낭에서 어제 저녁에 백사장에서 내가 덮고 잤던 담요가 보였다. 나는 J에게 수고 많았고 고마웠다면서 조심히 들어가라고 하자 J는 우뚝커니 서서 안경을 치켜쓰더니 말없이 나를 쳐다만 보았다. 이윽고 버스가 오고 떠난 자리에 J는 보이지 않았다.
84년도 여름. 고난의 하계수련회였다.
※ PS : 약간의 fiction이 포함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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