屛溪先生集卷之五十九 行狀 (병계선생집권지오십구 행장)
병계 윤봉구 선생 문집 59권 행장편에 수록된
景默李公 蓍聖 行狀 (경묵이공 시성 행장)
경묵 이시성 공의 행장
公諱蓍聖 字季通 號景默(공휘시성 자계통 호경묵)
공의 휘는 시성이요, 자는 계통, 호는 경묵이시다.
系出璿源 我中宗大王第五子 德陽君岐之六代孫 高祖龜川君 諡忠肅公諱睟 曾祖蓬山君
諱炯信 祖司果諱塾 考執義 諱箕洪 學者稱直齋先生 妣潘南朴氏 司諫號冶川紹五代孫
通德郞世塤之女(계출선원 아중종대왕제오자 덕양군기지6대손 고조구천군 시충숙공
휘수 증조봉산군 휘형신 조사과휘숙 고집의 휘기홍 학자칭직재선생 비반남박씨 사간
호야천소오대손 통덕랑세훈지녀)
왕실에서 탄생하신 조선조 중종대왕의 다섯째 왕자 덕양군 기(岐)의 6대손으로 시호가
충숙공이신 구천군 휘 수(睟)가 고조이시다. 증조는 봉산군 휘 형신이며, 조부는 사과
휘 숙塾, 부친은 집의 휘 기홍으로 학자들이 직재 선생이라 칭하였다. 모친은 반남 박
씨로 사헌을 지낸 야천 박소의 5대손 통덕랑 세훈의 따님이시다.
公以崇禎後庚申正月初七日丁酉 生于加平之泉谷 卽先生中歲考槃之地也
(공이숭정후경신정월초칠일정유 생우가평지천곡 즉선생중세고반지지야)
공은 숭정후 경신(1680년) 정월 초칠일 가평의 천곡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을 그곳에서
보내셨다.
公孝友天性 自幼穉已知愛親敬長之節(공효우천성 자유치이지애친경장지절)
공의 효도와 형제간 우애는 하늘이 주신 품성이었으니 어려서부터 애친경장의 예절을
알았다.
七八歲 朴淑人有疾 欲嘗鯽魚 時凍寒 公剖堅氷 得二鯽進之 其誠孝如此 聞者異之
(칠팔세 박숙인유질 욕상즉어 시동한 공부견빙 득이즉진지 기성효여차 문자이지)
칠팔세에 모친께서 병환에 드셨을 때, 붕어를 맛보고 싶어하심에, 공은 엄동설한에 두꺼
운 얼음을 깨고 붕어 두 마리를 잡아 모친께 드리니, 그 참된 효성이 이와 같음에 그 이야
기를 들은 사람들이 경이롭다 하였다.
及入學 不待督課 自能劬書 文理日將 讀書至古人學問節義處 必三復而興感焉 其志之所
存 已可知 先生每嘉賞之(급입학 부대독과 자능구서 문리일장 독서지고인학문절의처
필삼복이흥감언 기지지소존 이가지 선생매가상지)
배움에 들어서는 가르쳐줄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먼저 부지런히 힘써 익히시니
문리가 일취월장하였다. 글을 읽다가 고인의 학문 절의처에 이르면, 반드시 신이 나서
세 번을 거듭 읽어 그 뜻하는 바를 알아내고야 말았으니 선생께서 가상하다 칭찬하셨다.
已巳禍作 先生謫北塞 公年毚十歲 伯仲諸兄往來謫中 公獨奉朴淑人 左右周旋時以爲慰
無異老成 親戚見者 莫不嘖嘖稱之(이사화작 선생적북새 공년재십세 백중제형왕래적중
공독봉박숙인 좌우주선시이위위 무이노성 친척견자 막불책책칭지)
기사환국의 참화가 일어나 직재 선생께서 북쪽 변방으로 유배되실 때, 공의 춘추가 겨우
10세였다. 맏형과 둘째 형 등은 모두 부친 뒷바라지로 적소를 오가는 동안, 공께서 홀로
모친 곁을 돌보시고 때로 의젓하게 위로하시니, 친척들이 보고 크게 칭찬하지 않는 사람
이 없었다.
庚辰 往拜寒水權先生於黃江 授小學 心經 近思錄等書 仍服事甚勤(경진 왕배한수권선생
어황강 수소학 심경 근사록등서 잉복사심근)
경진년 황강 한수재의 권상하 선생을 찾아뵙고 소학 심경 근사록 등의 가르침을 주심에,
따르고 섬기며 부지런히 익혔다.
直翁晩年卜居于延豊之文山 去黃江莽蒼 公入而承詩禮之訓 出而有傳習之效 父兄師友之
間 相期與者重矣(직옹만년 복거우연풍지문산 거황강망창 공입이승시례지훈 출이유전
습지효 부형사우지간 상기여자중의)
직재 선생께서 만년에 연풍의 문산에 살 곳을 마련하시니, 황강 근교로 가서 부친인
직재 선생의 가르침을 받았다.
壬午 朴淑人沒 哭泣饋奠 盡誠盡禮 戊子 直翁又棄後學 公隨伯氏縣監公 守制于京第 戚易
兩備 一如前喪 制除(임오 박숙인몰 곡읍궤전 진성진례 무자 직옹우기후학 공수백씨현감
공 수제우경제 척이양비 일여전상 제제)
임오년에 모친께서 졸하시니 곡을 하며, 성과 예를 다하여 상례를 모셨고, 무자년 직재
선생께서 별세하시니, 공께서는 현감인 맏형을 따라 서울 집에서 수제하였다. 양친의
애사에 간소하면서도 예를 다하여 모시었다.
公歎曰 今雖得科名 將誰爲榮 遂廢擧業 專用力於爲己之學
(공탄왈 금수득과명 장수위영 수폐거업 전용력어위기지학)
공께서 탄식하며, 이제 비록 과거에 급제하여 방목에 이름을 올린다 한들 장차 누구를
위한 영예인가 하시고 마침내 과거를 포기하고 오로지 자신의 수양을 위한 공부에만 힘
을 쓰셨다.
經義疑難 禮節更變 輒就正於權先生 而時從艮菴李公 講質論辨 或以書往復焉
(경의의난 예절갱변 첩취정어권선생 이시종간암이공 강질논변 혹이서왕복언)
경서의 뜻이 의심스럽고 예절이 또 변함에, 문득 몸을 바로하고 권선생을 찾아뵈었으
며, 때로는 간암 이공을 좇아 강질논변하였고, 혹은 글을 주고 받았다.
後又歸依於文山之弊廬 以爲收拾先公之緖業 且便江門之往來也
(후우귀의어문산지폐려 이위수습선공지서업 차편강문지왕래야)
후에 다시 문산의 집으로 돌아가 부친이신 직재 선생께서 펼쳐놓으신 일을 수습하고,
또 한편으론 강문을 왕래하였다.
所居構數楹屋 爲書室 而問名於丈巖鄭公澔 鄭公以景默名其堂 又書數行而識之
(소거구수영옥 위서실 이문명어장암정공호 정공이경묵명기당 우서수행이지지)
살던 집에 몇개의 기둥을 얽어 서실로 삼고, 장암 정호 공에게 서실의 이름을 부탁하자,
정공은 당호를 경묵이라 하고 그 의미를 몇 줄의 글로 기록했으니,
蓋謂蔡九峯仲默以西山之子 師晦翁夫子 能成就其學 以公之得父師之敎而冀其追軌於
九峯也(개위채구봉중묵이서산지자 사회옹부자 능성취기학 이공지득부사지교이기기
추궤어구봉야)
대략 송나라 채구봉은 자가 중묵이고 서산(채원정)의 아들로써, 회암 주희 선생을 스승
으로 모시고 능히 그 학문을 이루었으니, 공께서도 직재 선생의 가르침과 중묵의 궤적을
쫓아 학문을 이루길 바란다는 의미이다.
丈巖公斯文長老 而其期待之意如彼(장암공사문장로 이기기대지의여피)
장암 공은 송강 정철의 4대손으로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노론의 장로인데, 공에 대한
기대의 뜻이 저와 같았던 것이다.
辛丑權先生喪 加麻三月 三月之內 不出入(신축권선생상 가마삼월 삼월지내 불출입)
신축년 권상하 선생께서 졸하시니, 석달 동안 상복을 입고 두문불출하였다.
居外食素 以盡心制 曰 以我師生情禮言之 非不知三月之太促 而師服不係月數多寡
(거외식소 이진심제 왈 이아사생정예언지 비부지삼월지태촉 이사복불계월수다과)
밖에서는 식사도 절제하며 마음을 다하여 상중에 말하길, 내 스승의 생을 정과 예로써
말한다면, 석달이라는 기간이 대단히 촉박함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스승을 위해 상복
을 입음이 날짜의 많고 적음과 관계없다.
居服必心喪 若如尋常期功之服其服而已 則非服師之義也
(거복필심상 약여심상기공지복기복이이 즉비복사지의야)
상복을 입으면 반드시 마음으로 상례를 치러야지, 만약 예사로 기복과 공복이라는 상복
을 입을 따름이라면 그것은 스승에 대한 의리가 아닌 것이다.
吾早衰多病 自量筋力誠難久持 心喪今夜父母緬服三月 略存三年之禮云
(오조쇠다병 자량근력성난구지 심상금야부모면복삼월 약존삼년지례운)
나는 어릴적부터 쇠약하고 병이 많아 스스로 오래 견딜 기력이 없음을 알기에, 마음속
으로 오늘 밤도 부모님 무덤을 좋은 곳으로 옮겨 모시면서, 석달이지만 삼년상을 치르
듯이 예를 다했다 이르노라.
癸卯冬 致雲請削權先生官爵 誣辱上及尤翁(계묘동 치운청삭권선생관작 무욕상급우옹)
계묘년 겨울 신치운이 권선생의 관작삭탈을 임금께 청하니, 그 무고의 욕됨이 위로 우암
선생께 미치었다
同門諸人疏㬥其誣 推公爲之首 方禍色焰焰 公不懾不撓 毅然當之
(동문제인소포기무 추공위지수 방화색염염 공불섭불요 의연당지)
동문의 모든 사람이 함께 그 무욕의 포악함에 상소하고 공을 우두머리로 추천하니,
바야흐로 공에게 미칠 재앙의 빌미가 불꽃처럼 일었지만, 공께서는 두려워하지도
흔들리지도 않으시고 굳세게 그 소임을 담당하시었다.
雖群宵擁蔽 疏終不得上 而士論皆韙公(수군소옹폐 소종부득상 이사론개위공)
비록 무리가 막고 덮어 끝내 상소문이 임금께 전달되진 않았지만, 선비들 사이 의견은
모두 공이 옳다 하였다.
自此公益知世道蔑貞 抱經深居 將終老計 而尤喜朱子書 以爲究竟法
(자차공익지세도멸정 포경심거 장종노계 이우희주자서 이위구경법)
이로부터 공께서는 세상의 도가 곧음을 업신여기고 있음을 잘 알게 되었으니, 마침내
노후를 대비하고 법성을 깨닫기 위해 더욱 주자의 가르침을 가까이하셨다.
公嘗曰 周鼎東遷 孔子生 宋室南渡 朱子出 今我尤菴先生又値丙子之後 其時勢之不幸
(공상왈 주정동천 공자생 송실남도 주자출 금아우암선생우치병자지후 기시세지불행)
공께서 깨닫고 이르시길 주나라가 동쪽으로 천도한 뒤 공자께서 탄생하셨고, 송나라
조정을 남쪽으로 옮긴 후 주자께서 출하셨으니, 오늘날 우리 우암 선생 또한 병자호란
발발하고 존재 가치가 드러났지만 당시 형세가 불우했다.
相類於前後 尊攘復雪 爲三聖賢一大義理 世人徒知尤翁之學傳自孔子 而不知一部春秋
自孔子而至朱子 自朱子而至尤翁也 豈不可嘅也(상류어전후 존양복설 위삼성현일대
의리 세인도지우옹지학전자공자 이부지일부춘추 자공자이지주자 자주자이지우옹야
기불가개야)
전후가 서로 같으니 존왕양이와 복수설치가 세 분 성현을 위한 큰 의리인데, 세상 사람
들은 우암 선생의 학문이 공자로부터 전해진 것임을 알면서도, 일부 춘추가 공자로부터
주자에게 전해지고 주자로부터 우암에게 전해졌음은 알지 못하니 어찌 개탄하지 않겠는
가!
吾先子甲申一疏 實影此義 而吾師門追成二帝祠者
(오선자갑신일소 실영차의 이오사문추성이제사자)
나의 스승이신 권상하 선생께서 갑신년(1704)에 한장의 소를 올려 이러한 뜻에 따라
화양서원에 우암 선생의 진상을 봉안하였으며, 우리 스승의 문하에서 우암의 유지를
받들어 만동묘를 세우고 명나라 신종과 의종의 제를 올렸다.
皆莫非述尤翁之志 必欲使春秋大義毋墜於地也
(개막비술우옹지지 필욕사춘추대의무추어지야)
모든 것이 우암 선생의 유지가 아님이 없었으니, 춘추대의가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慶斗秀 諺譯 경두수 언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