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8월 13일 수요일, 맑음.
이제 밖으로 나와 금리로 간다. 삼국시대의 옛 거리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전통거리다. 여러 가지의 골목들 사이사이로 전통기념품을 판매하는 곳이 많다. 먹거리를 즐길 수 있는 곳도 많이 보인다. 짧은 거리, 좁은 골목길이지만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풍부하다. 사람도 많아 심심치 않다. 시내 한복판에 명조가 삼국시대 촉나라 거리를 재현해 놓았다는데, 지금 있는 건물들은 청나라 때 지은 것이란다. 거리의 색상도 화려한데 그중에 붉은색이 으뜸이다. 우리나라 인사동 거리와 비슷하다. 들어서는 입구에서 바로 스타벅스 커피집이 보인다. 3세기와 21세기의 거리감이 없어지는 기분이다. 붓 가게, 중국과 인근 나라에서 쓰이던 붓, 붓 종류도 많다. 현대와 과거를 구분 못하겠다. 그림자 인형극 소품을 파는 곳도 있다. 인형들이 칼라로 화려하고 다양하고 섬세하다. 금방 움직이고 말이 들릴 것 같다. 음식 가게, 간식거리들이 특이하고 많다. 민물조개 속에서 보이는 진주도 있다. 누에고치에서 비단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매장도 있다. 학습적으로 흥미가 있다. 고목나무 아래에는 붉은색으로 만들어진 소원패가 가득 매달려있다. 커다란 주전자, 손을 만들어 놓은 조각품도 있다. 벤치 암석 옆에는 은색 커다란 달팽이 가족이 만들어져 있다. 작은 연못의 정자와 수양버들 나무는 딱 어울린다. 악세사리 작품들도 다양하다. 모양은 같지만 색상이 다른 가방이 벽에 가득 걸려있다. 정원당 110m, 유상묘 230m 라는 팻말이 있어 걸어본다. 정충문이 나온다. 기공방, 삼동문으로 불리기도 한다. 유상묘원 신도의 두 번째 건물이다 8개의 아치형 모양의 문으로 되어있다. 그 다음이 비정이다. 사방정이라고도 한다. 유상묘원 신도의 세 번째 건물이다. 4개의 구멍이 있는 사각형 건물이다. 유상(1889~1938)은 자는 보징, 사천 따이에서 출생. 사전 제 21군 군장 및 사천성 정부 주석 등 직무를 담당했다. 1937년에 제 7전역 사령관 및 제 23 집단군 총사령관을 역임했다. 사천군대를 이끌고 항일 전쟁을 치렀으며 1938년 무한에서 병사했다. 시신을 이곳에 매장했다. 항일 전쟁 시기 제 7군단 사령관 육군 1급 대장 유상의 묘라고 씌어있다. 별 볼 일이 없어서 다시 금리로 들어와 작은 돌 아치 다리에 걸터앉아 구경하다가 음식가게를 기웃거렸다. 이제 춘희 거리를 찾아가야한다. 현택이네를 만나기로 했다. 시내 지도를 살펴보니 좀 멀다. 시간이 될 것 같아 시내를 구경하고 맛볼 겸 걸어가기로 했다. 택시를 타자니 아깝고, 버스를 타자니 모르겠다. 날이 뜨거워 좀 힘들지만 부지런히 걸어간다. 따라오는 아내가 불쌍해 보인다. 어제 저녁 보았던 극장 건물을 보니 좀 기운이 난다. 춘희로는 성도의 중심이고 서울의 명동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여러 개의 백화점과 호텔들이 모여 있다. 북적대고 번쩍거리고 구경거리도 많다. 젊은이는 모두 이곳으로 모이는 것 같다. 민주주의 국가, 자본주의 국가로 보이는 공산주의 국가다. 묘한 느낌이 든다. 지하철 춘희로 점에서 현택이를 만났다. 반가웠다. 커다란 펜더 곰이 붙어있는 건물로 들어간다. 롯데월드 같은 빌딩이다. 아래층에는 아이스링크가 있다. 3층에는 식당 매장이 가득하다. 카드를 사서 맘대로 사먹게 되어있다. 신선로 요리와 돼지고기 볶음 요리를 주문해서 밥과 함께 식사를 했다. 사천성 요리라서 산초에 의해 혀가 마비되고 고춧가루에 의해 얼굴에 땀이 난다. 깨끗하고 깔끔한 요리들이 즐겁게 해준다. 함께 두보 초당을 찾아가기로 했다. 지하철 2호선을 타고 가서 근처에 내렸는데 쉽게 눈에 보이지 않는다.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걸어간다. 겨우 찾았다. 여기도 입장료가 60위안이다. 두보가 평온한 나날을 보낸 초가집터다. 초가집이 유명한 것이 아니라 두보에 의해서 초가집이 유명해 진 곳이다. ‘나라는 망했어도 산과 강은 옛날 그대로이네’ 라는 유명한 시를 남긴 두보다. 시성으로 불련던 당나라 시인이지만 그의 생애는 좌절과 빈곤으로 가득했다. 두보는 어렵게 하급관리직을 얻었지만 현종과 양귀비를 도읍에서 추방한 안사의 난이 일어난다. 처자를 데리고 장안을 탈출한 두보는 759년 빈곤에 허덕이면서 성도에 이르렀다. 그곳은 그가 생애 처음으로 평온한 시간을 보낸 곳이다. 두보 초당은 두보가 살았던 초기터에 재건된 공원이다. 이곳에서 그는 240편 이상의 시를 썼다. 당시 초가는 남아있지않지만 북송 시대에 사당이 지어져 그 후 몇차례의 확장 공사를 거쳐 19세기 청대에 이르러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광대한 공원에는 대나무와 동백 등의 수목이 울창하며 시사당을 중심으로 하는 건축물이 회랑을 따라 늘어선 듯 배치되어있다. 정원에는 찻집들이 흩어져 있다. 평생 정치에 뜻을 두었음에도 그 뜻을 이루지 못한 두보다. 이곳 촉으로 피난 왔을 때 친한 친구 엄무의 도움으로 서쪽 교외의 아름다운 호수 가에 초가집을 짓고 살 수 있었다. 피난 이듬해 봄에 초가집이 완공되어 사람들은 이곳을 성도 초당이라 불렀다. 또 완화계 근처에 있기 때문에 완화초당이라고도 한다. 두보는 이곳에서 4년 동안 살았다. 대표적인 시 복거, 춘야희우, 강촌 등의 시는 초당에서 지내던 그의 시름없는 한가로운 심경을 읽을 수 있다. 경내에는 대해, 시사당, 공부사, 사능초당의 석비 등 건축과 다른 많은 문화재가 있다. 두보와 이태백은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마치 서양 음악에서 베토벤과 모차르트를 악성, 악선(음악의 신동)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이태백은 활달하고 초탈한 멋이 있으며 낭만주의 성향이 짙어서 시선이라 할만하다. 반면에 두보의 시는 삶에 밀착되어 있으면서 인간적인 고뇌를 깊이 있게 표현하여 감동을 주기 때문에 시성이라고 한다. 먼저 만난 곳은 초당 경내 남쪽에 서 있는 만불루다. 이곳에 오르면 초당 경내의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초당에서 가장 높은 건물 4층이다. 내려다보니 도심 속 숲이다. 두보를 조각한 조각상들이 제법 많다. 공통점은 깡마른 모습이다. 바람이 느껴지는 것 같다. 커다란 종도 있다. 초당이라는 글씨가 씌어있는 곳을 찾았다. 강택민, 김일성, 등소평 등 유명 인사들이 사진 속에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도 보인다. 우리도 다투듯 글씨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대아당으로 걸었다. 대아당은 유명시인들의 조각상들이 모여있다. 시인들이 모여 파티를 하는 것 같다. 도연명, 백거이, 굴원, 소동파 등이 보인다. 대아당의 대아는 중국춘추시대의 민요를 모은 시집인 시경의 풍, 송, 아, 부, 비, 흥의 소위 육의 중의 하나다. 안으로 들어서니 중국 최대의 벽화와 12명의 유명한 시인 조각상이 있고, 또 두보의 생애와 시의 발전사를 전시해 놓았다. 벽화는 두보장년의 자유로운 유랑 모습, 장안(지금의 서안)에서 곤궁함, 안녹산의 난으로 인해 유랑하는 모습, 성도 거주 모습, 객지 생활 모습 등 두보의 인생 중요한 시기를 묘사해 놓았다. 공부사로 간다. 두보는 공부원외랑이라는 벼슬을 지낸 적이 있으므로 두공부라고 불리기도 하며 공부사라는 명칭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소릉초당, 비석정도 갔다. 소릉은 두보의 또 다른 이름이다. 두보가 일찍이 장안에 있을 때 한선제와 허황후의 국상이 있었다. 선황제묘를 두릉이라 하였고 허황후묘는 선황제능보다 작다하여 소릉이라 하였다. 두보는 묘 근처에 살았는데 여기서 착안하여 자신의 별호를 스스로 두릉야객이라 불렀다. 생가의 모습도 둘러보았다. 평범한 초가다. 산책하듯이 이리저리 다니며 초당 내를 돌아다니니 다리도 아프고 힘들다. 기온이 35℃를 버티고 있다. 택시를 타고 지하철역에서 내린다. 지하철을 타고 또 춘희로 역에서 내렸다. 점심 먹던 식당 건물을 올라와 저녁식사를 했다. 야채와 고기요리다. 사천성 요리는 너무 강해서 피했다. 식사 후에 아이스크림과 팥빙수도 샀다. 무척 크다. 현택이네 호텔을 향해 간다. 유명 메이커 매장이 길에 줄지어 있다. 크리스찬디오르, 유니끌로, 돌체, 프라다 등 모두 건물 한 채씩을 갖고 있다. 현택이네는 오늘 밤에 돌아간다. 공항으로 택시를 타고 간다. 메다로 52위안, 고속도로비 포함 60위안. 보내고 밤길을 걸어 숙소로 온다. 이제는 성도의 길도 약간 낯익어 간다. 동서남북의 위치를 대충 알 것 같다. 숙소에서 배를 깎아 먹는다. 비행기가 0:10분 출발인데 연착되어 0:50분에 출발했다는 문자가 왔다. 무사히 도착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