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희송 서울대교구 사목국장 신부 인터뷰-사목정보 4월호 게재

[봉영(베드로)]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선교하자.

비켜가지 말고 정공법으로 살아야”

서울대교구 사목국장 손 희 송 베네딕토 신부

수도 서울과 황해도를 관할 구역으로 하는 서울대교구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교구다. 모진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굽히지 않고 지켜 와 오늘 150만 명이 넘는 신자들과 800명에 육박하는 성직자들이 하느님 안에서 사랑의 공동체를 이뤄 손잡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은 경이롭다.

한국 교회의 맏형, 서울대교구의 수장으로 지난 해 6월 취임한 염수정(안드레아) 대주교를 가까이에서 도와 사목 전반에 관한 업무를 총괄하는 사목국장 손희송(베네딕토) 신부를 지난 3월 11일 집무실에서 겨우 만났다. 만날 시간조차 내기 어려운 걸 보면 그 자리가 얼마나 바쁘고 힘든지 짐작할 수 있겠다. 사제 생활 27년 가운데 유학 기간과 용산 본당 주임 2년을 제외한 18년 동안 대신학교인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신학생들을 가르쳤다. 새 교구장으로 착좌한 염 대주교의 부름을 받고 지난 해 8월 자리를 옮겼다.

이론으로 정립한 신학 현장에 접목하는 학자 사제

“사제 생활의 대부분을 신학교에서 살다가 막상 교구청에 나와 보니 굉장히 바쁘네요. 저와 함께 일하시는 신부님만 아홉 분이나 됩니다. 일반교육부, 선교전례사목부, 가정사목부, 노인사목부, 성서사목부, 단체사목부와 함께 행정실과 기획실, 연구실을 관장하며 교구 사목 전반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 일선 본당에서 실천할 세부 방안까지 마련해야 합니다. 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와 여성연합회, 세나뚜스, 운전기사 사도회는 당연직 담담사제여서 그분들과 늘 함께해야 합니다. 여기 온 지 7개월 되는데 정말 정신없습니다.”

손 신부는 1994년부터 대신학교 교수로 재직해 1995년 이후 서품된 서울대교구와 일부 대전 및 인천 교구 소속 사제들은 모두 제자다. 해마다 사제품 받는 제자들이 너무 대견하고 예뻤다고 한다. 나이가 들면서는 아버지의 사랑과 심정이 이럴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물질적이며 당장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이 많은 시대에 사제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신학교에 들어오는 젊은이들이 고맙다고 한다. 정든 신학교를 떠나오니 그런 신학생들이 성장하고 사제 되는 모습을 직접 보지 못해 서운하다.

그런 반면 학문적으로, 이론적으로만 연구하고 가르치던 신학을 현장에서 직접 적용하면서 얻는 보람이 크다. 평소에도 늘 신학과 현장과의 거리를 최대한 좁혀보자는 생각이 간절했는데 마침 새 교구장이 불러줘서 기꺼이 순명했단다.

“유럽 교회의 문제점이 바로 신학과 현장과의 거리가 너무 멀다는 데 있습니다. 그 결과는 노쇠해진 오늘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점에서 우리는 얼마나 희망적인지 모르겠습니다. 든든한 신학생들이 이렇게 많고, 신심 깊은 성직자와 평신도들이 열성적으로 살아가니 정말 좋습니다.”

‘신앙의 해’ 기대 이상으로 잘 사는 교회

손 신부가 대신학교에서 교구로 와서 내놓은 첫 작품이 ‘신앙의 해’에 관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들이다.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신앙의 위기가 왔다고 판단해 선포한 ‘신앙의 해’에 대해 교구장 염수정 대주교는 사목교서를 통해 신자들에게 신앙의 뿌리가 깊지 못한 것, 신앙의 기초가 너무 약한 것이 문제라고 진단하고, 신앙의 기초를 든든하게 하기 위한 다섯 가지 방책을 제시했다. 말씀으로 시작되는 신앙, 기도로 자라나는 신앙, 교회의 가르침으로 다져지는 신앙, 미사로 하나 되는 신앙, 사랑으로 열매 맺는 신앙이 그것이다.

손 신부는 이와 같이 ‘자의 교서’를 통해 ‘신앙의 해’를 제정한 전임 교황과 사목교서로 교구민들이 어떻게 이 ‘신앙의 해’를 잘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 교구장이 제시한 방향을 바탕으로 교구와 본당 차원에서 각각 구체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세부 방안을 담은 ‘신앙의 해 안내서’를 마련해 전 교구에 전달했다. 반응은 예상을 훨씬 뛰어 넘었다.

“많은 중견 본당 신부님들이 일부러 저를 찾아와 ‘신앙의 해’를 살아가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 줘 고맙다는 인사를 할 때 뿌듯한 보람을 느낍니다. 신학교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지요. 실제로 2008년과 2009년에 연이어 선포된 ‘바오로의 해’와 ‘사제의 해’ 때 보다 교구 사제들이나 신자들이 더 잘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결국 하느님에 대한 깊은 신앙만이 이 어려운 시대를 잘 살아갈 수 있는 진리의 길임을 다시 확인하는 것 같습니다. 태릉 지역 등 일부 지역의 본당 보좌 신부님들은 청년들을 위한 ‘신앙의 해 프로그램’을 별도로 만들어 공동 운영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보좌 신부님들이 힘을 합쳐서 신앙의 핵심 주제 별로10~12번 정도의 강좌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청년들의 호응도 뜨겁습니다.”

‘청년 성서 모임’ 통해 청년들 변화 확인

손 신부는 대신학교 교수로 간 이듬해인 1995년부터 매년 3박 4일 동안 진행되는 ‘청년 성서 모임’ 지도를 해오고 있다. 창세기, 탈출기, 마르코, 요한 복음서반으로 나뉘어 진행되는 이 연수에서 청년들은 성경 말씀을 통하거나 고해 성사와 미사 중의 특별한 나눔의 인사를 통해서 하느님을 강렬하게 체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연수에 참여하는 청년들은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와 유사하게 신앙에 활력을 얻습니다. 두 제자들이 자신들의 마음을 붙잡고 있던 실망과 좌절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듯이, 연수생들은 그룹나눔에서 자신들의 마음속에 무겁게 자리 잡고 있는 고민거리를 털어놓고 서로 나누게 되지요. 또한 두 제자가 서로 이야기를 나눌 때 나그네가 다가와 성경 말씀에 비추어서 그들의 고민거리를 설명해 줄 때 마음이 뜨거워졌듯이, 연수생들은 강의 중에 성서 해설을 들으면서, 공동 기도 시간에 다른 연수생들의 기도를 들으면서, 또는 자신의 고민거리를 하느님 말씀 안에서 다시 생각하면서 마음이 열리고 뜨거워집니다.”

이렇게 변하고 강렬하게 하느님을 체험한 청년들은 대부분 본당이나 대학에서 청년 성서 모임을 조성하여 하느님 말씀을 전한다고 한다. 이는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한 두 제자가 실망과 고통을 안겨 준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가 주님의 부활을 선포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손 신부는 설명한다.

“일선 본당에서 청년들에 대한 의식이 확 바뀌어야 합니다. 흔히 아무 일이나 시켜도 되는 일꾼으로 생각하는 신부들이나 어른들이 많습니다. 본당에서도 청년 성서 모임과 같이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신앙의 맛을 들일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공해야 합니다. 이곳에 와서 보고 놀랐는데 명동대성당에 토요 특전미사까지 합해 주일 미사가 모두 12대 봉헌되는데 매 시간 미사 때마다 그 큰 성당을 가득 메웁니다. 더 놀란 것은 그 신자들 가운데 70% 이상이 젊은 층이라는 겁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그만큼 영적 갈증에 목말라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지요. 젊은이라고 일이나 시키고 일찍 밖으로 데리고 나가 술을 마시게 하는 일이 많은데 정작 그들은 그런 것 보다 성경 말씀을 잘 듣고 기도하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에둘러 가지 말고 정공법을 써야 합니다.”

역사를 세운 전임 교황, 가난을 택한 신임 교황

정통 교리와 가르침으로 교회를 지키려고 노력했던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청빈의 상징인 프란치스코 성인을 즉위명으로 택한 신임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손 신부의 존경심과 애정은 확고하다.

“지난 번 베네딕토 16세 성하의 사임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출을 보면서 교황은 하느님의 도구로서 시대마다 주어진 사명을 다하는 분들임을 다시 알 수 있었습니다. 베네딕토 16세의 경우 정통 교리와 가르침으로 교회를 지키려고 최선을 다하신 분입니다. 평소 ‘단순한 신자들의 신앙을 흔들지 말라.’면서 급진적인 신학자들의 갖가지 주장을 가라앉혔습니다. ‘바오로의 해’와 ‘사제의 해’, ‘신앙의 해’를 잇따라 선포하시며 위기의 신앙을 굳건하게 지키려고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깊은 묵상과 기도 끝에 막중한 교황직을 더 이상 수행 할 수 없다고 판단되자 그 직을 스스로 내려 놓으셨습니다. 598년 전 재임 중 사임한 그레고리오 12세는 외부적인 이유로 떠나셨지만 베네딕토 16세는 온전한 자유의지로 그 직을 내려놓으시는 슬기와 용기를 보여 주셨지요. 새로운 역사를 세우셨습니다. 사상 최초의 남미 출신 교황이 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일생을 가난과 기도와 사랑의 실천으로 사신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을 본받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보여주십니다. 이 시대 가장 요구되는 덕목이요 교회와 세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입니다.”

교황 역시 약점이 있고 병마와 노쇠에 시달리지만 성령께서 언제나 함께 하시기에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는 세상 끝날 까지 변함없이 안전한 항해를 할 것이라고 손 신부는 확신한다. 가톨릭교회 2000년 역사가 이를 입증하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6대째 신앙을 지켜 온 순교자 가문의 후손

손 신부는 1957년 1월 28일(음력) 경기도 연천군 연천면 차탄 1리에서 아버지 손광호(마태오 · 1970년 75세로 선종) 님과 어머니 양기순(마리아 · 95) 님 사이의 3남 2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대대로 강원도에서 살다가 손 신부가 태어나기 1년 전에 연천으로 이사했다. 6대 째 천주교 신앙을 지켜왔으며 순교한 조상들도 있지만 혹독한 박해의 칼날을 피해 다니느라 제대로 된 기록이 없어 순교자 이름은 알 길이 없다. 처음 이사 왔을 때는 천주교 신자가 아무도 없어 손 신부네 집이 의정부 본당 연천 공소였으며, 아버지가 초대 회장이 되어 이웃에 복음을 전했다.

외가 역시 대대로 천주교를 믿어 온 경기도 여주의 신앙 가문이다.

이렇게 양가 모두 신앙심 깊은 집안이다 보니 사제만 친가에서 5명, 외가에서 4명이 나왔고 수도자는 모두 10여 명이나 된다.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은 38선 이북의 수복지구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맑은 물이 흐르는 차탄천에서 수영을 하며 물고기를 잡던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북한군의 대남 방송이 들리고, 매일 탱크 지나가는 소리와 포 사격장에서 들리는 요란한 굉음에 시달려야 했다.

고향에서 중학교까지 마친 손 신부가 1972년 고등학교 진학 때 소신학교인 서울 성신고교로 진학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소신학교와 대신학교 4년을 마치고 군 복무 후 복학해 대학원 과정을 이수하던 1982년 6월 21일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학교 신학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1986년 4월 교의신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일시 귀국해 그해 7월 4일 서울 혜화동 대신학교에서 고 김수환 추기경으로부터 사제품을 받았다. 다시 오스트리아로 가 박사 과정을 마친 1992년, 10년 동안의 유학 생활을 마감하고 귀국해 2년 동안 용산 본당 주임 사제로 보람 있는 사목활동을 펼쳤다.

“용산 성당이 성직자 묘지가 있는 산 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부임 1년 후에 보좌 신부가 왔는데 참 반가웠습니다. 식사 후 운동 삼아 함께 산책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모습이 신자들에게 참 좋게 보였던 모양입니다. 수녀님들과도 참 친하게 지냈습니다. 신자들은 사제와 수도자가 아름답게 사는 그 자체로 만족하면서 본당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교회가 하느님 안에서 사랑의 공동체를 이뤄 기쁘게 살아간다면 그 이상 좋은 선교 방법은 없겠지요.”

글 최홍운 ,alsemffp34@naver.com

사진 인영오 05erns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