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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봉우리 및 기암괴석 설명과 유래
(1) 설악산(雪嶽山) 속초시 서남에 솟은 산으로 해발 1.708m 태백준령을 동서로 서북쪽을 내설악(강원도 인제군), 동남쪽을 외설악(강원도 속초시)이라 부른다.
수목이 울창하고 기암괴석과 폭포 협곡 사이의 계류(溪流)가 수려한 절경을 이루고 고래(古來)로 명승들이 수도하던 사찰들과 기담설화가 도처에 산재하여 국내외에 알려진 관광지로 이름 높다.
설악산을 승가(僧家)의기록에 의하면 설산(雪山) 또는 설봉산(雪峰山). 설악산 등으로 쓰여져있다. 설악산과 쌍벽을 이루고 있는 금강산을 옛날에는 ‘서리뫼(霜嶽)’라불렀으니 그와 마찬가지로 설악산도 ‘살뫼(雪嶽)’라 부른 것이라 본다. 본래 신라어로 ‘설(雪)’은 ‘살’의 음역(音譯)이요, ‘살’은 인간 범유(凡有)의 활동상을 규범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산다(生命)’ ‘숨(呼吸)’ ‘사람(人間)’ ‘새벽(黎明)’ ‘샘(泉)’ 등을 포함해서 그 어근이 이와 통하며 불교에서도 불타의 몸에서 나온 영주(靈珠)와 영골(靈骨)을 가리켜 사리(舍利)라고 한다. 그러나 지극히 청정한 생명의 신비적인 표시물을 영골이라 하였으니 설악이라는 ‘雪’은 결국 신성(神性)을 의미하는 ‘살’의 음역이 분명하다.
‘살’(雪)은 가장 신성하고 순백, 숭고함을 표시하기 위하여 택한 한자이다.(노산 이은상의 설악행각에서)그리고 여지승람이나 문헌비고 등을 보면 ‘중추시설(仲秋始雪) 지하내소(至夏乃消) 고명언(故名焉)’(중추부터 눈이 시작되어 여름에 이르러 그치므로 이름이 유래되었다)이라 하였고 금원(錦園)여사는 그의 호동낙서기에 ‘석백시설(石白如雪), 고명설악(故名雪岳)’(바위색이 눈과 같아서 이름을 설악이라 했다)이라 하였다.
요컨대 설악산은 다설조설(多雪早雪)을 말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바위마다 희고 깨끗하면서도 범할 수 없는 영역(靈域)의 존엄성을 의미하는 명산(名山)이라는 뜻으로 단정할 수 있겠다. 설악은 신라 때 처음 소사(小祀)로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칭으로 설산(雪山)
설봉산(雪峰山), 설화산(雪華山) 등으로 불렀는데 그 어원은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한가위 때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하여, 이듬 해 여름이 되어야녹는 까닭으로 이렇게 이름 지었다는 것이다. - 《新增東國輿地勝覽》권44, 양양산천조 “부의 서북쪽 50리에 있는 진산으로 매우 높고 가파르다. 중추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하여 이듬해 여름이 되어야 녹는 까닭에 이렇게 이름지었다.”(在府西北五十 里鎭山極高峻仲秋始雪至夏而消故名)
둘째는 암석의 색깔이 눈 같이 하얗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고 - 金錦園, 《湖東西洛記》“설악산을 찾으니 돌들은 불쑥불쑥 솟아 하늘에 닿았고, 산봉우리들 우뚝 벌려 있는데 돌들은 희기가 눈 같아 설악이라 이름했다.”(訪雪岳山石勢連天峯巒聳列石白如雪故名 雪岳也) 김금원은 원주 태생으로 자세한 이력은 알 수 없으나 14세 때인 1830년 봄 3월에 남장을 하고 처음 금강산을 여행하였다. 규당학사 김덕희의 소실이 되었으며 서울 용산에 있는 삼호정에서 박죽서, 김운초, 김경춘 등과 시문을 주고 받았다. 1850년에 유명한 여류기행문인 《호동서락기》를 썼다.
셋째는 신성한 산이라는 뜻의 ‘뫼’에서 유래하였다는 것이다. - 李殷相, 〈雪岳行脚〉《鷺山文選》永昌書館, 1958, 165쪽 “이 설악의 ‘설’이란 것은 결국 신성을 의미하는 ‘’의 음역인 것임만은 介疑할 것 없는 일이라 봅니다”
조선중기 이만부(李萬敷:1664~1732)의 《지행록(地行錄)》에 의하면 첫째와 둘째 유래를 동시에 언급하고 있는데 “설악산은 산이 매우 높아 음력 8월(중추)이면눈이 내리기 시작하며, 이듬해 음력 5월(여름)에 가서야 눈이 녹기 때문에 설악이라 이른다. 또 그 바위 봉우리의 돌 빛이 희고 깨끗하기 때문에도 또한 설악이라부른다”고 하였다. - 김윤우, 〈설악산의 산수와 명승고적〉《山書》제15집, 한국산서회, 2004, 20쪽
따라서 설악 명칭의 유래는 백설과 관련된 것, 암석과 관련된 것, 신앙과 관련된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즉 외면적 양태와 정신적 세계관을 포함한 명칭으로 한반도에서는 유일하게 눈 설(雪)자를 사용한 ‘설악’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2) 신흥사(神興寺) 속초시내에서 15km, 설악 산중에 있는 사찰로 창립의 역사가 깊고 주위의 산수경이 미려함은 우리나라 몇 개 대 사찰과 함께 손꼽힌다. 신라28대 진덕여왕 7(서기 653)년에 자장율사(慈裝律師)가 오대산으로부터설악산에 들어와서 사찰을 건립하고 향성사(香城寺)라 하였다. 절 앞뜰에는 9층 석탑이 세워져 있고 세존사리를 봉안하였다 한다. 즉 이 사찰은 자 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불법을 닦고 귀국하여 건립한 사찰과 탑 10개 중의하나인 것이다.
고기(古記)에 의하면 자장율사가 신라 선덕여왕 6(서기 637)년에 왕명을 받고 당나라에 가서 청량산(淸凉山) 문수보살 밑에서 성심껏 정진한 끝에 마정수기(摩頂手記 즉 득도하였음을 말함) 불정골(佛頂骨), 불아(佛牙:부처님의 어금니), 금점가사(金點袈裟:부처님이 입던 금무늬가 있는 가사)한 벌, 불사리 100장을 가지고 선덕여왕 15년에 귀국하여 황룡사에 창립 9층 석탑을 세우고 불사리 33장을 봉안하였으며 28대 진덕여왕 4년에 통도사를 건립, 다음해 6년 오대산 지로봉(地爐峰) 및 중대(中臺)에 적멸궁(寂滅宮)을 건립 13층의 대화탑(大和塔)을, 태백산 갈래사(葛來寺), 설악산의 봉정암(鳳頂巖) 등을 건립하고 각각 불사리를 봉안하였다고 한다.
자장율사가 오대산으로부터 설악산에 들어와 보니 오색이 영롱한 서리가 어리어있고, 봉마다 서린 기이한 향기는 코가 막힐 지경이므로 한걸음 띨 적마다 합장배례하며 국내(局內)를 살펴보니 겹겹이 쌓인 동천(洞天)은 영기(靈氣)에 잠겨있고 세속을 벗어난 품이 가히 마음을 가다듬고 수성(修性)할 사람이 있을만한 곳이라 단정하고 법열(法悅)에 이른바 중향 성불토국(衆香城佛土國)이 바로 이곳임을 믿고 대가람을 건립하니 이것이 향성사인 것이다.
이 향성사는 223년 만에 수천 칸의 대사찰이 일조에 잿더미로 화하고 앞뜰에 세워진 9층 석탑도 화재 당시 파손되고 현재 3층만이 남게 되었다.
그 후 의상법사(義湘法師)가 선정사(禪定寺)를 창건하다가 인조 22년에 소실, 다음해인 인조 23년에 고승 운서(雲瑞), 연옥(連玉), 혜원(惠元) 등3승려가 창건한 것으로 법당 극락보전을 비롯한 수개의 건물이 현존하고 있다.
의상법사의 선정사가 불타버린 후 대부분의 승려는 무심히 흩어졌으나 승려 중 유지층에 속하는 운서, 연옥, 혜원 3승려는 수백 년의 고찰이 일조에 변을 당함을 한탄하고 기어코 사찰을 재건할 것을 결심하였다.
하루는 3승려가 똑같은 꿈을 꾸었다 한다. 달마봉(達磨峰) 아래 향성사 옛터 뒤에 자리 잡은 소림암(小林庵)으로부터 신인(神人)이 출현하여 “나는 달마이다. 그대들은 절을 저 건너편에지으면 수만 년이 가도 삼재(三災)가 범하지 못할 것이니, 저 곳에다 절을 세우라.”하고 비천하였다. 이렇게 신의 계시로 창건하였다하여 신흥사라 하였다.
신흥사의 불상은 선정사 당시 봉안하였던 불상으로 의상법사가 직접 조성한 3불상으로서 지금부터 약 1,000여 년 전이 된다. 신흥사의 범종은 지금으로부터 약 1,400년 전 향성사 당시의 종으로 향성사가 소실될때 깨어졌던 것을 조선 영조 24년에 화주원각(化主圓覺)이 개주하였으나충분치 못하여 10년 후인 영조 34년에 화주 홍안(弘眼)이 다시 개주하였다.
중량이 천근, 6.25의 총상을 입은 채 현재 신흥사 보제루(普濟樓)에 비치되어 있다.
(3) 내원암(內院庵) 신흥사에서 북쪽 계조암으로 가는 2km 쯤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는암자로서 그 초창은 인조 24년 선정사가 불탄 뒤 3년 만에 신흥사를 창건하고 선정사의 옛터를 비워두는 것이 너무도 애석히 여겨서 이 암자를 창건한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에 금강산 신계사에서 수도하던 비구니 김수영(金壽永)은 이 암자로 전적하여 옛 조사들의 선정하던 성지인줄 깨닫고 믿음을 대발하여 자기의 토지 50석을 헌납하고 선원을 개설하였다.
(4) 계조암(繼祖庵) 울산암(蔚山岩) 남쪽 기슭에 석굴이 있다. 이 굴 속에 지은 암자로서 선정사 창건 전부터 있던 옛 암자의 하나이다. 이 암자는 동산, 각지, 봉정(東山, 覺知, 鳳頂) 3조사가 수도하던 곳으로서 의상, 원효 두 도사에게 계승되었다 하여 계조암이라 이름 지었다. 이곳은 불교에서 말하기를 가장 영감이 빠른 곳이라 하여 성심으로 기도하면 바라는 바를 반드시 이룰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암자 밑에 쌍동암(双童岩)이 있다.
이 바위는 암자의 수문(守門)이 의(義)를 갖고 있다. 문밖에는 좌우에 와우암(臥牛岩)과 용암석(龍岩石)이 있어 청룡백호를 이루고 있으며 우암을 옛말로 ‘식당바위’라하며 백여 명의 승려가 모여 앉아 공양하던 곳이라 한다. 바위 옆에는 소뿔(牛角)바위가 있는데 이것이 일명 흔들바위(動石)인 것이다. 한 사람의힘이나 백사람의 힘으로 흔들어도 그 움직임의 율(率)은 한가지인 것으로 전설에 의하면 본래 이 바위는 양쪽에 둘이서 있었는데, 미신의 지리에 빠진 자가 승가의 영기가 너무 많은 것을 시기하여 바위하나를 굴러 떨어뜨렸다고 한다.
용암석은 용의 수염에 흡사하고 바위 아래 여의주석(如意珠石)이 있어 그 밑에 영천(靈泉)이 솟아난다. 영천의 물맛이야 말로 감로약천(甘露藥泉)으로 한 모금 마시면 몸과 마음이 상쾌하여진다 하여 이를가리켜 청량산(淸凉散)을 막은 것 같다고 한다.
(5) 울산암(蔚山岩)과 천후산(天吼山) 설악산 북쪽에 자리 잡은 좌석산(座石山)으로 일명 천후산(天吼山)이라고 한다. 이 산 높이는 해발 650여m로서 사방이 절벽으로서 나는 새도 면하기 어렵다는 여섯 개의 봉으로 이루어진 동양에서도 으뜸가는 돌산이다. 이 산중 허리에 큰 영혈(靈穴)이 있으니 하늘에서 뇌성벽력을 칠 때면산 전체가 울리어 심산의 후자(吼子)가 우는 듯 하다하여 천후산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다.
이 산중 허리에 구름이 덮였을 때에는 일견 연못의 연이 막 피어오르는 듯하다하여 연화반개상(蓮花半開像)이라고도 하며, 큰 대숲(竹樹)을 베어 묶은 듯 하다고도 한다. 이 산 꼭대기에 오르면 수백 칸으로 헤아릴 수 있는 넓은 반석이 있는데 이 반석위에 대략 대두(大斗) 천여두를 저장 할 수 있는 돌 항아리가 5~6개 있다. 이 항아리에는 몇 천 몇만 년이 되는 천연의 빗물이 고여 있는데 이 물은 이상하게도 조금도 더럽혀지거나 악취가 없으며 맑고 깨끗한 물이다. 전해오는 전설에 의하면 이물을 한 모금만 마셔도 만병통치된다고 하는 감로영수라고나 할까. 울산 : 울산바위의 별칭.울타리처럼 이어져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또 설악산에 천둥이 치면, 그 소리가 이 바위산에 부딪혀 울부짖는 듯한 소리를 내므로 울산이라고 했다 함.
울산바위 : 해발 876m, 둘레 약 4km, 길이 2km. 796m*.하루 동안 돌아봐야 그 윤곽을 알 수 있는 큰 바위다. 808계단을 올라가면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 서면 대청, 중청, 귀때기청, 공룡능선 등이 잘 보인다. 전망대 바로 앞에 같은 울산바위인 수정바위는 마치 수정 같다. 울산바위는 울산, 울산(蔚山), 울산암, 천후산, 천후봉, 이산 등으로도 불려졌다. 울산암 : 울산바위의 다른 이름. 울산(蔚山) : 울산바위의 별칭. 울산에서 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함. 천후봉(天吼蜂, 혹은 천후산) : 울산바위의 다른 이름 천후산(天吼山, 혹은 천후봉) : 울산바위의 다른 이름 이산(蘺山) : 울산바위의 다른 이름. 울[蘺]처럼 생겼다 하여 그렇게 불렀음.
(6) 권금성(權金城) 신흥사 보제루(普濟樓)에 올라서 남으로 바라보면 하늘높이 우뚝 솟은 웅장한 봉이 있다. 이 봉을 권금성이라 하는데 이 산은 높이가 해발 860m로서 산정에는 80여 칸이 넘는 넓은 반석이 있으며 이 광장을 중심으로 산의 중허리에는 천여 칸의 석성(石城)이 있다.
이 석성의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권, 김 양장군이 난세를 피하기 위하여 축성하고 난을 피하였다고 하나,다른 설에는 거란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축성하고 수어하였다고도 전하고있다. 이 산 중허리를 둘러싼 기이한 봉으로 실요곡(失了谷), 방검대(放鈐臺) 등이 있다. 권금성 : 보통 옛성터가 있는 넓은 지역을 말함. 봉화대(799m*)에 올라가면 외설악과 동해 바다 등이 한 눈에 들어온다. (7) 달마봉(達磨峯) 신흥사 앞 세심천(洗心川)을 건너 동쪽으로 향하여 구름사이로 우뚝 솟은 봉이 달마봉이다. 그 모습이 흡사 달마와도 같고 그 봉에 올라 동해를굽어보면 망망한 대해는 하늘과 잇닿아있고 우측에는 지난날 영랑(永郞),술랑(述郞)이 선유(船遊)를 즐기던 영랑호의 잔잔한 물결이 달마의 웅장한 모습을 비춰주고 있으며 서쪽에는 옛 향성사 당시의 소림암자(小林庵 子)가 있다.
이 암자는 옛날에 달마대사가 인도로부터 양(梁) 나라에 가서 무제(武帝)를 친견하고 대세를 살펴 생각하니 포도전법(布道傳法)이 미숙한지라 소림암 굴속에 머물러 9년간 고행 수련하였다는 전설도 있으며 이봉의 최고 풍치는 진달래 필 때가 한창이요 또한 온갖 초목이 붉게 만드는 단풍시가 극치라고 하겠다. 달마봉 : 635m. 통일대불 뒤 쪽으로 있는 봉우리. 신흥사 앞의 세심천(洗心川) 건너 동편에 솟아있는 암봉이다. 달마봉 : 설악산에 있는 사찰의 승려들이 불교적 경전에 나오는 이름을 붙임
(8) 금강굴(金剛窟) 비선대 앞에 하늘을 찌를 듯이 우뚝 솟은 석봉(石峯)이 있다. 이 석봉을석상(石像)이라고 하며 미력봉이라고도 한다. 미력봉 허리에는 큰 석굴이있는데 이 석굴을 가리켜 금강굴이라고 한다. 이 금강굴은 오르내리기가 퍽 힘들며 석벽을 더듬어 나뭇가지를 휘어잡고 기어 올라가야 한다.
옛 말에 황천(黃泉)다리를 더듬는다고 하는 이야기가 바로 이곳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하며 이 굴에 오르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이 세상을 숨어 살기로 한 어떤 고승이 수도할 때 사용하던 유물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지만 수년전까지도 그 불상이 있었다. 이 굴의 넓이는 사방이 20여척이나 되고 굴 입구에서 둘러보면 동쪽은 긴 산골짜기가 동해바다에 통하여 만리창파가 눈앞에 바라보이고 북쪽으로는 겹겹이 둘러싸인 천태만상의 천불 동(千佛洞)의 가경(佳境)을 볼 수가 있으니 이것이 바로 금강굴의 자랑인것이다.
(9) 와선대(臥仙台) 천불동 계곡 첫머리에 있는데 넓이가 약 1정보를 헤아릴 수 있는 반석이다. 이 대석은 수림이 울창하고 기이한 산악으로 둘러싸인 계곡에 있으며옛날 마고선(麻姑仙)이란 선인이 많은 선인들과 더불어 이 대에 모여 바둑과 거문고를 타면서 산수의 경치와 동곡(洞谷)의 아름다움을 누워서 감상하던 곳이라 하여 이 대의 이름을 와선대라고 부르게 되었다. 와선대 : 봉우리류 아님. 비선대에서 소공원으로 내려가는 곳에 있는 계곡의 암반.와선대(臥仙臺)는 홍수 때 상류에서 바위가 떠내려 와 와선대 암반 위에 얹혀 있으므로 옛모습을 찾기가 어렵다. - 와선대,비선대-옛날 향성사때부터 전해내려오는 이름으로 명명. - 설악산초기 개발당시 사진사들-설악산을 개발하여 등로가 생기게 되고 멋진 명소를 사진에 담기 시작했지만 마땅한 이름이 없어 붙이게 된다 (10) 비선대(飛仙台) 마고선이 와선대로부터 이곳에 와서 하늘에 올라간 곳이라 하여 비선대라고 한다. 이 비선대는 그 경치가 너무도 우아하며 와선대로부터 석계반석(石溪盤石)을 따라 올라가면 크고 작은 폭포가 조화되어 그 아름다움은 금강산의 만폭동을 무색케 한다.
또한 비선대는 옛날부터 시인묵객의발걸음이 끊어질 사이가 없이 이곳에 찾아와선 의관을 벗어 늙은 소나무 가지에 걸어놓고 맑은 구슬같이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는 넓고 흰 여러 반석위에 비스듬히 누워서 하늘을 찌를듯한 웅장무쌍한 석상 미력봉을 바라보고 있으면 바위와 바위 사이에서는 녹음방초가 희희낙락하는 것 같고 온 몸의 뼈마디가 되살아나는 듯하며 날개라도 있으면 하늘로 승천할 것 같은 기분이라 하였으니 비선대의 장관이란 더 형용할 바가 없다 하겠으며 설악산의 대표적인 명승지라고 아니할 수가 없다. 비선대 : 봉우리류 아님. 장군봉 아래의 계곡 암반.계곡 암반 한 곳에 한자 흘림체로 “飛仙臺”라고 쓴 사람은 조선시대 문인이자 서예가였던 윤순(尹淳, 1680~1741)이다. 전설에 의하면 와선대에 누워 경치를 즐기던 마고선(麻姑仙)이 비선대에서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 비선대다. - 와선대,비선대-옛날 향성사때부터 전해내려오는 이름으로 명명. (11) 천불동(千佛洞)과 귀면암(鬼面岩) 천불동 일대에 천태만산으로 늘어서 1,000여개의 뾰족 봉들은 마치 미술가의 조각품처럼 제각기 예술미를 지니고 있다. 마음대로 생겨진 허다한 괴석첩봉(怪石疊峰)은 어떻게 보면 사자 같고 맹호와 비슷한가 하면 노승이 염불하고 있는 모습처럼 보여주는 변화무쌍한 광경을 이룬다.
귀면암은 천불동 중허리에 위치하며 예부터 이곳 사람들은 이곳을 ‘설악골’이라고도 부른다. 설악산을 찾는 관광객에게는 이 산의 관문 역할을 해주고 있는 손꼽히는 명승지이기도 하다. 이름이 ‘귀면’이어서 불쾌감을 주기 쉬우나 그생긴 형태가 마치 괴물과 같다하여 금강산의 귀면암과 같은 이름을 붙였다. 귀면암 : 천불동계곡에 있는 바위. 비선대와 오련폭포 사이에 있다. 겉문당, 겉문닫이, 겉문다지라고도 함. 겉문다지 : 귀면암의 별칭 겉문닫이 : 귀면암의 별칭 겉문당 : 귀면암의 별칭 - 귀면암-금강산에서 최구현씨가 따옴. - - 설악산 초기 개발당시 사진사들-설악산을 개발하여 등로가 생기게 되고 멋진 명소를 사진에 담기 시작했지만 마땅한 이름이 없어 붙이게 된다
(12) 마등령(馬登嶺) 내설악과 외설악을 연결하는 태산준령으로서 설악산에서는 청봉 다음으로 높은 곳이며 해발 1,327m 에 달한다. 경사가 거의 수직에 가까우므로산턱을 어루만지며 오른다는 뜻에서 ‘마등령(摩登嶺)’이라고도 한다. 경사가 급하여 이 령에 오를 때에는 탐승객의 숨소리가 하늘에 닿을 정도이다.
그러나 영상에 오르면 내외설악의 만천하산경이 발아래 전개되고 실로 산에 올랐다는 통쾌감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또한 멀리 동해바다의 푸른 절경을 바라보는 기분 속에 빠져들게 하며 장엄한 대자연 속에서 풍겨주는 무한한 경황에 가슴이 벅차다. 마등령은 내외설악의 분수령이기도 한다. 마등령 : 1,240m(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 표지).마등령에서 비선대로 10분 정도 가면 마등령 최고봉이 있는데, 해발 1,320m다(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 표지). 마등령은 옛날 불자들이 오세암, 봉정암 가는 길로 많이 이용했다고 하며, 소금장수 등 행상인들과 민간인들도 많이 다니던 길이라고 한다.국립지리정보원 발행 지형도에는 마등령이 1,327m로 되어 있는 것은 진대봉이다. (13) 토왕성폭포(土旺城瀑布) 신흥사에서 동쪽으로 바라보면 높고 낮은 기암괴석이 천길 만길 깎아 세운 듯한 석봉들이 있다. 이 봉들을 가리켜 석가봉(釋迦峯), 문주봉(文珠峯), 보현봉(普賢峯), 익적봉(翌滴峯), 선자봉(扇子峯), 노적봉(露積峯), 문필봉(文筆峯)이라 부른다.
이 사이에 흐르는 한 폭포가 있는데 이것이 신광폭포(神光瀑布)이다.(현재는 토왕성폭포) 이 폭포는 지난날 이태백이가중국 여산폭포를 읊은 시의 한 구절을 연상케 한다. ‘
비류직하 삼천척 의시운하 낙구천(飛流直下 三千尺, 疑是銀河 落九天)’ 또한 우리나라에서가장 유명한 박연폭포가 좋다 하지만 설악산에 있는 토왕성폭포(또한 신광폭포)도 이에 못지 않을 것이다. 이 폭포의 장관을 멀리서 바라볼 때 하늘에서 흰 비단 한 폭을 펼쳐 놓은 것 같고, 가까이 보면 옥구슬을 석벽에뿌려 놓은 듯하다.
그 떨어지는 물소리는 천고의 용의 울음소리와 대호의휘파람 소리가 뒤섞인 것같이 폭음(瀑音)은 그칠 줄 모르고 사절 변함없이 쏟아지고 있다. - 토왕성폭은 설악동의 옛 마을이름이 토왕성이어서 그곳에서 보이는 폭포이므로 토왕성폭이라 불렸다고 심마니, 곰잡이 포수들은 전한다. - 토왕성폭 사진에
(14) 비룡폭포(飛龍瀑布) 이 폭포는 토왕성폭포의 하폭으로서 높이가 150여척이나 되며 줄기차게떨어지는 맑은 물은 금강산 구룡연폭포와 흡사하고 험준한 산길을 올라첫 눈에 뜨일 때에는 마치 용이 굽이져 석벽을 밀고 하늘로 비천하는 것같다하여 비룡폭포라 한다. - 설악산초기 개발당시 사진사들-설악산을 개발하여 등로가 생기게 되고 멋진 명소를 사진에 담기 시작했지만 마땅한 이름이 없어 붙이게 된다. - 최구현씨(崔九鉉,66,속초 승리사진관)가 문헌에 없거나 되찾아서 이름을 붙였다. - 비룡폭-주민들이 기우제를 올린폭포로 용소폭이란 토속이름이 있었으나 좀더 화려한 맛을 주기위해 명명.
(15) 육담폭포(六潭瀑布) 토왕성 계곡에 들어서 약 200m를 올라가면 육담폭포가 있다. 이 폭포는 담소(潭沼)가 6개로 이루어져 육담폭포라 한다. 이 육담폭포의 전면에는 높이 8m, 폭 1.3m, 길이 42m의 조교(弔橋)가 가설되어 그 풍치가 가관이며 관광객의 탐승에 편리하게 되어 있다. - 설악산초기 개발당시 사진사들-설악산을 개발하여 등로가 생기게 되고 멋진 명소를 사진에 담기 시작했지만 마땅한 이름이 없어 붙이게 된다. - 최구현씨(崔九鉉,66,속초 승리사진관)가 문헌에 없거나 되찾아서 이름을 붙였다.
(16) 문주담(文珠潭) 비선대에서 천불동계곡을 따라 약 1km 올라가면 아담한 담소가 있는데이 담소에는 항시 맑은 옥류수가 고이어 오고가는 관광객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고 있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세조 대왕 당시 문수보살이 이곳에서 목욕을 한 곳이라 하여 문주담 이라고 불리고 있다.
- 설악산 초기 개발당시 사진사들-설악산을 개발하여 등로가 생기게 되고 멋진 명소를 사진에 담기 시작했지만 마땅한 이름이 없어 붙이게 된다. - 문주담-당시 설악산개발에 큰 역할을 해준 이문주씨의 이름을 빛내주려 명명.
(17) 이호담(二湖潭) 천불동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맑고 아담한 두 개의 담소가 있어 이호담이라고 한다. 이 담소에는 사시사철 그 맑음을 자랑하고 있으며 이 담소 속을 들여다보면 두 마음을 가질 수 없다하며 또한 마음이 변할 수 없는 심경 속으로 몰아넣는다고 한다. 이 이호담에는 각종 어류들이 놀고 있는데이 담소 위쪽으로는 어류를 찾아볼 수 없다. - 설악산초기 개발당시 사진사들-설악산을 개발하여 등로가 생기게 되고 멋진 명소를 사진에 담기 시작했지만 마땅한 이름이 없어 붙이게 된다. - 이호담-그 위로는 물고기가 살수 없어 물고기가 사는물과 그렇지 않은 물의 경계가 된다하여 두이(二)자를 써서 명명.
(18) 천당폭포(天堂瀑布) 양폭에서 위쪽으로 약 200m를 올라가면 협곡사이로 흐르는 폭포가 천당폭포이다. 이 천당폭포는 천불동계곡의 상류의 마지막 아름다운 폭포인데 옛날에는 이곳이 아주 험준하여 일반 관광객은 도저히 관망할 수 없었으나 지금은 관광로 개설과 아울러 약 15m의 조교와 수개의 사다리가 놓여 있는데 모든 속세에서 고난을 겪어 오다가 이곳을 고생 끝에 올라가면 마치 천당에 이른 통쾌감을 느끼게 되어 천당폭포라고 불리고 있다. - 설악산초기 개발당시 사진사들-설악산을 개발하여 등로가 생기게 되고 멋진 명소를 사진에 담기 시작했지만 마땅한 이름이 없어 붙이게 된다. - 천당폭-대청에 가는 마지막 폭포이므로 명명.
(19) 오련폭포(五連瀑布) 오련폭포는 천불동계속 상부에 자리 잡고 있는 폭포로서 협곡사이에 5개로 연이어 있다고 해서 오련폭포라고 한다. 흔히 귀면암을 겉문다리, 오련폭포를 안문다리가 한다. 이 안문다리를 벗어나면 양폭포와 천당폭포가있다.
(20) 양폭포(陽瀑布) 천불동계곡, 오련폭포를 지나 계곡이 좌우로 분류되는 지점에 자리 잡고있는 폭포로서 좌측에서 흘러 양폭포가 되고 우측에서 흘러 음폭포가 되니 음양이 합쳐서 천불동 계곡을 이루었으며 이 양폭 상단에는 천당폭포가 있다.
(21) 대청봉(大靑峰) 해발 1.708m의 설악산의 청봉은 동서남북에 산재하고 있는 설악산 전체를 한눈으로 굽어볼 수 있는 설악산의 주봉인 것이다. 이곳 대청봉을 중심으로 이름 모를 고산식물과 각종조류들이 있어 고산생물 자료조사에 매우 좋은 곳이다. 이 대청봉은 늦가을부터 늦은 봄까지 정상에도 눈이 덮여 있다. 대청봉 : 1,708m*. 설악산(雪嶽山) 최고봉. 설악산은 설악(雪岳), 설산, 설봉산, 설화산이라고도 했고, 대청봉은 상청봉, 청봉, 봉정, 봉대, 봉황대라고도 했음. 봉대 : 대청봉의 옛이름 봉정 : 대청봉의 옛이름 상청봉 : 대청봉의 옛이름 청봉 : 대청봉의 별칭 봉황대 : 대청봉의 옛이름 - 예전에는 대청과 소청이 전부였죠. 중청이니 끝청이니 하는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어요." - 지금의 대청이 대청이요, 지금의 중청이 소청이지 봉우리 같지도 않은 지금의 소청이나 끝청은 이름도 없었다고 오문석씨(吳文錫,60,양폭대피소 관리인)는 고개를 흔든다. - 6.25동란 전부터 곰사냥과 약초 캐는 일을 업으로 삼았던 설악산 토박이인 그는 곰을 쫓느라 설악산 골골이 쏘다녀 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22) 유선대(遊仙台) 금강문의 바로 밑을 지나 내려가면 비선대 미륵봉의 뒤쪽이 눈 아래 보이며 이곳을 지나가려면 천불동 계곡을 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유선대가 있다. 그 옛날 이곳에서 선녀들이 놀고 간 곳이라 해서 유선대라 불리우고 있다. 이곳 유선대는 가을 단풍을 위시해서 겨울에는 소나무 설화(雪花)가 어리어 설악산의 새 맛을 볼 수 있게 한다. 유선대 : 비선대에서 볼 때, 장군봉 좌측 뒤의 암봉. 비선대에서는 보이지 않음.
(23) 천화대(天花台) 천화대는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수많은 석봉으로 그 경치도 또한 가경이다. 이 천화대는 마등령에서부터 청봉까지 연결되고 있으며 광범위한 외설악의 서쪽 준령이다. 멀리는 화채봉(華彩峰)과 동해가 바라보이며 마치 꽃밭같은 형태를 이루어서 천상에 있는 화원 같아 천화대라 불리운다. 천화대 : 혹은 연화대. 공룡능선에서 뻗어나간 줄기로서 이곳에 범봉이 있다.설악골에서 천화대로 올라가는 길은 석주길, 염라길, 흑범길이 있다
(24) 집선봉(集仙峰) 집선봉은 권금성 뒤쪽 남향에 자리 잡고 있는데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흰 봉들이 모여 된 것이다. 마치 선녀들이 전부 이곳에 모이어 입정(立定)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해서 집선봉이라 한다. 집선봉 : 920m. 권금성에 있는 한 봉우리 - 설악산에 있는 사찰의 승려들이 대부분 불교적 경전에 나오는 이름을 붙임
(25) 형제암(兄弟岩) 천불동계곡의 중간에 자리 잡은 석봉은 두 형제가 나란히 서서 천불동계곡을 지키고 있는 것 같다고 하여 형제봉이라고 한다. 중앙에 있는 봉우리가 형제봉
(26) 노루목 치(峙) 도문리(道門里)를 거쳐 점점 깊어져 가는 골을 헤치며 설악산을 향하여가는데 서로 엇갈린 숲은 햇빛을 가로 막고 있는 곳에 적은 언덕이 있으니높지도 않고 편편치도 않으나 올라가보니 등 뒤로 30리쯤의 푸른 바다가 하늘가에 닿아있고 아래 보이는 여러 봉우리는 깎아 세운 듯하며 참으로 딴 세상에 온 듯 했었다. 그리고 갈 길의 방향을 잡으려고 애를 쓰는데 문득 어디서인지 흰 노루 한 마리가 나타나 비록 말은 못하지만 고개와 몸짓으로 길 안내를 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 고개를 노루목 고개라 부르게된 것이다.
(27) 도문리(道門里) 의상, 원효 두 대사가 향선리에서 신선의 안내를 받아 설악산 쪽을 향하여 법장으로 우거진 숲을 헤치며 약 10리쯤 가니 별안간 삼현을 켜는 듯한 맑고 우아한 곡이 들리며 무상무아(無常無我)의 법을 아뢰는 듯하며법장(法杖)을 멈추고 서 있으려니 홀연 대오(大悟)한지라 의상, 원효 두 대사는 몸과 마음이 경쾌하여 지며 한발 옮길 적마다 절 한 번씩 하였다 한다. 그러므로 도통의 문을 열어주었다 하여 도(道)자 문(門)자를 따서 도문리라 지명을 붙인 것이다.
(28) 영랑호(永郞湖) 속초시 북방에 위치하며 사방 12km나 되는 청일(淸溢)한 호수이다. 이호수는 지금으로부터 1,500여 년 전 신라시대의 영랑, 술랑(述郞), 안상(安祥), 남석(南石) 등이 금강산으로부터 고성 삼일포에서 3일간 유연(留連)하고 각기 분산하였으나 영랑만이 이 호수에 와서 뱃놀이를 즐기면서체류한 곳이라 하여 영랑호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호수 남쪽에는 송림이울창하고 그 속에는 보광사(普光寺)라고 하는 조그마한 사찰이 있는데 이사찰은 서기 1937년에 정혁담(鄭革潭)이라는 승려가 사재로 건립하고 53불의 수좌인 보광불존을 봉안하였기 때문에 이를 보광사라고 한다. 언제나 맑고 푸르고 잔잔한 호수와 주위에 뜸뜸이 있는 기암들은 더 한층 호수를 아름답게 하여 주고 있으며 수중에는 각종 어족이 풍부하며 낚시터를 즐기는 태공들과 뱃놀이를 즐기는 시민들의 좋은 휴식터가 되어 있다.
(29) 금장대(金將台) 영랑호 서남쪽에 자리 잡고 있는 누대로서 6.25 당시 육군 제11사단장김병희(金秉熙) 장군이 고성, 속초, 양양의 수복기념으로 건립하였다. “김장군이 건립하였다하여 금장대” 이 금장대 뒤에는 범바위라 하여 거대한 바위가 솟아 있으며 옛날 범이 살았다는 바위굴도 있어 행인의 발을 멈추게 한다.
(30) 척산온천(尺山溫泉) 설악산의 근교이며 동해안 간선대로에 가까워 교통이 편리하다. 수질은 유황성분이 많아서 온천수로서 적합하지만 수온이 낮아서 활발치 못하다. 앞으로 본격적인 개발이 끝나면 국내에서 이름난 온천장으로 등장할 것이다.
* 1970년대 설악의 전설 화보설명자료3) (1) 계조암: 동산각지(東山覺地) 봉정(鳳頂), 의상, 원효대사 등 조사와조사에 의하여 계승되었다 하여 계조암이라 함.
(2) 흔들바위: 계조암 마당 앞 반석위에 위치한 약 10톤 무게의 바위로서 높이 약 2.5m 둘레 2.2m 이 바위가 설악의 명물인 것은 한 사람이 흔들 거나 10사람이 흔들거나 흔들림이 같다하여 일명 ‘신바위’라고도 부른다. 신흥사 주차장에서 동북간 2.5km지점. 울산암 가는 중간지점에 위치함.
(3) 설악산 신흥사: 대한불교 제3교구 본사로서 외설악의 3분의 2가 신흥사 임야이며 관할은 속초시 양양군, 고성군, 인제군, 홍천군, 춘천시, 양구군, 화천군, 철원군에 있는 옛 고찰을 중앙총무원을 대리 감독하는 본사임, 신라 진덕여왕 6(서기 652)년 자장율사가 창건한 뒤 향성사(香城寺)라칭하였으며 현 건물은 인조 22(서기 1652)년 영서선사가 재 창건하여 신흥사라 개칭하였다.
(4) 울산암 전설: 옛날 금강산 일 만 이 천봉을 만들 때 의덕이라는 장군이 경남 울산에서 떠메고 가다가 지금의 울산암 자리에서 쉬고 있을 때한 사람으로부터 일 만 이 천봉이 다 채워졌다는 소리를 듣고 화가 나서메어쳤다 하여 울산암이라 전하며,
옛날 울산고을 원님이 양양 고을 원님에게 바위 세를 받아가다 세월이 흘러 영리한 양양고을 원님이 부임하여 월산원님에게 통첩하기를 “그 바위가 우리에게는 아무 필요도 없으니 울산으로 가져가던지 그냥 두려면 반대로 자릿세를 물라”하니 울산원님이 생각해보니 의덕 같은 장군이 있어 등에 지고 갈 수도 없고 하여 타협하기를 바위세를 받지 않을 터이니 그냥 그 자리에 두어 달라고 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한다.
우산을 펴든 것 같다하여 일명 천우산(天雨山)이라고도 함. 또한 연화반개상(蓮花半開像) 즉 연꽃이 반쯤 핀 것 같다는 말로 연화반개상의 현상은 여름철에 주로 많이 볼 수 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온 후에 안개가 울산암 주위에 덮히면 바위만 안개 속에 솟아 연못에 연꽃이솟아있는 현상은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다. 울산암은 관광코스로 이곳에 오르면 동해바다는 물론 외설악 일부가 한 눈에 다 들어오나 거리가 멀어 천불동 계곡의 섬세함을 못 보는 것이 흠이다. 지금은 강원도 속초시에 속하나 옛날은 강원도 양양군에 속하였으며 양양군 이전에는 울주군이었으므로 말재주가 있는 사람들이 지금의 경남 울산을 끌어들여 전설을 만든 것으로 추측된다.
(5) 권금성의 전설: 약 1300년 전, 삼국시대 신라 28대 진덕여왕 9년,고구려 28대 보장왕 때, 백제 의자왕 6년, 이름은 알 수 없으나 권씨와 김씨가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왕위에 오름을 반대한 죄로 참형을 받게 되어고구려를 탈출, 이곳에서 성을 쌓고 살았다고 하여 권금성이라 부르며, 권김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연개소문의 사촌이라 전하고 있다. 그 후 산적들이 기거하였다하며 양양 고을 양반 아무개와 권금성에 사는 백정사이에 얽힌 이야기 등이 있다.
또 이곳은 옛날 성으로 쌓은 담의 일부가 남아 있으며 설악산의 유일한 케이블카가 있어 오르내리기에 아주 편리할 뿐만 아니라 등반도로도 있다. 외설악 신흥사에서 대청봉을 거쳐 내설악으로 가는 제3의 등반코스이다. 권금성까지는 관광코스로 이곳에 오르면 울산바위와 마찬가지로 동해바다는 물론 천불동계곡 일부를 관망할 수 있어 울산암보다는 일면 좋은 명승이기도 하다. 권금성 안에는 등산객 대피산장이 있으며, 권금성을 경유하여 대청봉까지 등산할 때는 권금성을 지나 30분 이내의 계속 이외에는 대청봉까지 식수가 전혀 없으므로 식수 준비를꼭 하여야 한다.
신흥사-권금성-대청봉-소청봉-봉정암(내설악), 쌍폭-수렴동-백담사-용대리, 속초, 서울(국도) 권금성, 대청봉, 양폭, 비선대, 당일코스 8시간 소요함.
신흥사, 권금성, 대청봉 5시간,
대청봉, 희운각, 양폭, 비선대, 신흥사 4시간
(6) 비룡폭포(용이 승천했다는 곳): 전설에는 옛날 물구덩이가 용이 되지 못하여 처녀를 매년 제물로 바치지 않으면 심한 심술을 부려 주위의 농민들은 매년 날을 정하여 처녀를 바치는 제사를 지냈다 한다. 이곳 좌측을 따라 약 40분 오르면 동양제일이라는 토왕성폭포에 이른다. 등산로가없어 계곡을 따라 오르기 때문에 일반 관광객은 못가는 곳이다. 토왕성폭포의 계곡물이 비룡폭포 물줄기를 이룬다. 비룡폭포는 사고가 제일 많은곳이기 때문에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7) 비선대에서 본 미륵봉: 설악산의 대표적인 바위산이 깍아지른 듯한 절벽 중턱에 금강굴이 위치하고 있다. 주위의 단풍이 풍치를 돋우고 있다.
(8) 봉정암: 내설악 쪽 소청봉 밑에 위치한 봉정 암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자리한 사찰이다. 신라시대에 자장율사에 의하여 창건하였으며 석가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모신 불교의 보궁(寶宮)이다. 내외설악 등반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 등반하는 사람들이 하루저녁을 쉬어 가는데 중요한 곳이다. 유료등산인 산장이 있으나 불을 때지 못하므로 담요를 꼭준비해야 함.
(9) 천불동계곡: 금강굴 아래 비선대에서 부터 희운각까지 약 3시간 소요되는 외설악의 주 계곡으로 설악의 영봉 대청봉에서 내려다보면 일천 개의 불상을 모신 형상으로 예부터 불려오는 이름이다. 이곳은 신흥사 쪽에서 대청봉을 넘어 내설악 외설악, 수렴동 계곡, 백담사로 나가는 설악산 제일의 등산코스이다. 비선대에서 부터 대청봉 및 희운각까지 가는 도중 문주담, 이호담, 귀면암, 오련폭포, 양폭포(양폭산장 등산인 임시대피소), 천당폭포, 죽음의 계곡 등을 볼 수 있다. 설악을 찾는 사람이면 이 코스를 지나 대청봉을 넘어, 내설악 봉정암, 수렴동 계곡, 백담사를 탐승하지 않고는 설악을 말할 수 없다.
“백문이불여일견”이란 이곳 설악의 계곡을 일컬어 하는 말이며, 계곡을 혼자 조용히 거닐면 지금도 신선들이 바둑 두는 소리가 들리는 태고의 신비가 잠든 곳이다.
(10) 금강굴의 유래와 굴에서 바라보이는 전망: 이 굴은 자연 동굴로서 연대는 기록할 수 없으며, 옛날 원시인이 살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신라원효대사께서 이곳에서 3년을 기거했다는 전설이 지배적이다. 굴에는 지금부터 70년 전까지 살은 흔적이 있다. 1966년 이 굴에 마을사람(성명 미상)이 올라갔을 때는 굴 바닥에 온돌이 놓여 있고, 불상(佛石), 물병, 도자기 등이 수 점 있었다.
이 유물을 현장에 전시 중이었으나 유실되었다. 이굴에서 발견된 동전은 약 70년 전에 사용하던 것이었다. 이 굴에 오르는철 계단은 개인이 시설한 것으로 1966년 착공하여 당년에 완성되었다.
1973년부터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본사 신흥사 동굴암자로 지정, 개발중에 있다. 굴 내부에는 신기할 정도로 사시사철 음료수가 나고 있으며 월동하는 제비가 있었으나 많은 관광객에 지쳤음인지 요즘에는 간혹 한 쌍이 드나들 뿐이다.
금강굴은 외설악 제일 절경지로서 굴이나 전설보다는굴의 전면 좌우에 절경을 이루는 천불동, 천화대, 화채봉, 중청봉, 비선대,마등령, 7형제봉, 문주담, 선녀탕, 천불계곡 등 만검을 깎아 세운 듯한 설악의 신비경으로 더욱 유명하다.
금강굴은 외설악 신흥사 쪽으로 3.1km 지점에 위치한 비선대 위에 일명 장군봉, 미륵 봉이라 불리는 해발 900m 기암절벽에 있는 자연동굴이다. (굴까지는 해발 850m) 굴의 길이는 18m, 높 이 약 5m로서 이 굴을 금강굴이라 부르는 것은 신라 원효대사께서 이곳에서 금강경을 독송하며 3년간을 기거하였다는 전설 때문에 금강굴이라 불렀다. 굴보다는 굴에서 보는 굴 앞의 경치가 설악 제1경이다.
출처 : 명산 설악, 겨울빛으로 깨어나다 (장정룡) : 속초문화원 설악산 봉우리와 기암괴석 및 능선 설악산을 어디까지로 보느냐, 어떤 형태를 봉우리로 보느냐에 따라서도 다르다. 높이는 해발(인천만의 평균 해수면)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이것이 전부가 아님.
대청봉 : 1,708m*. 설악산(雪嶽山) 최고봉. 설악산은 설악(雪岳), 설산, 설봉산, 설화산이라고도 했고, 대청봉은 상청봉, 청봉, 봉정, 봉대, 봉황대라고도 했음. 봉대 : 대청봉의 옛이름 봉정 : 대청봉의 옛이름 상청봉 : 대청봉의 옛이름 청봉 : 대청봉의 별칭 봉황대 : 대청봉의 옛이름 중청봉 : 1,665m*. 대청봉 옆의 산. 현재 정상에는 군사시설이 있어 출입금지 지역임. 소청봉 : 1,581m*. 봉우리라기보다는 평평한 곳이다.봉정암에서 대청 가는 길과 희운각대피소에서 대청 가는 길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봉우리인데, 이곳에는 현재 6곳의 거리를 적은 이정표(백담사 11.7km, 희운각대피소 1.3km, 양폭 3.3km, 비선대 6.8km, 소청대피소 0.4km, 봉정암 1.1km)가 있다.
공룡능선 붕우리 1275봉 : 1,275m. 공룡능선에 있는 봉우리로서 공룡능선의 백미.공룡능선에 있는 표지판에 희운각 3km, 마등령 2.1km로 쓰인 곳이 1275봉 옆의 안부(평평한 곳)고, 마등령을 향해 우측이 1275봉이다. 희운각 2.8km, 마등령 2.3km 지점에 계곡샘이 있다. 1275봉 정상과 공룡능선 여러 곳에서 천불동계곡, 대청, 중청, 소청 등이 잘 보인다. 나한봉 : 공룡능선에 있는 1,281m*의 봉우리. 또 봉정암을 둘러싼 주변 봉우리에도 나한봉이 있다. 노인봉 : 공룡능선에 있는 봉우리. 1275봉에서 희운각대피소 방향으로 첫 봉우리. 노인봉에서 천불동계곡으로 뻗은 줄기의 20여 개 암봉을 천화대, 혹은 연화대라 한다. 범봉 : 1,134m*. 천화대(연화대)능선에 있는 20여개 봉우리 중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세존봉 : 1,186m*. 마등령 동쪽, 금강굴 북동쪽에 있는 봉우리. 신선대 : 신선봉의 별칭 신선봉 : 1.120m. 희운각에서 마등령 쪽으로 있는 공룡능선의 첫 번째 봉우리.미시령에서 보면, 고성 쪽으로 있는 봉우리도 신선봉임 - 1,214m. 왕관봉 : 천화대(연화대)에 있는 봉우리 진대봉 : 1,327m. 마등령, 세존봉, 진대봉이 직선을 이루는 곳에 있는 봉우리. 황철봉 : 1,384m*. 저항령과 미시령 사이에 있는 봉우리. 북주능선에 있다.
서북능선 봉우리 끝청 : 1,610m*. 서북능선으로 대청봉을 오를 때 중청 바로 전의 봉우리. 귀때기청봉 : 1,578m*. 서북능선의 대승령과 갈림길 사이의 봉우리. 가리봉 : 1,422m*. 삼형제봉, 주걱봉, 가리봉, 필례령을 지나 한계령으로 이어짐. 안산 : 1,430m*. 말의 안장처럼 들어간 산으로서 길마산이라고도 함. 길마산 : 안산(1,430m)의 다른 이름 큰감투봉 : 1,409m*. 서북능선 1,408봉 북에 있는 봉우리
계곡에 있는 봉우리 노적봉 : 토왕계곡에 있는 봉우리 문수봉 : 토왕골에 있는 봉우리. 문주봉이라고도 함. 문주봉 : 토왕골에 있는 봉우리. 문수봉이라고도 함. 문필봉 : 토왕골에 있는 봉우리 보현봉 : 토왕골에 있는 봉우리 선녀봉 : 토왕성폭포 주변에 있음. 취적봉 : 토왕계곡의 봉우리 등선대 : 1,002m. 여심폭포에서 동쪽, 등선폭포(무명폭포) 북쪽에 있는 봉우리. 육형제봉 : 양폭대피소 뒤의 여섯 봉우리 육동치 : 육형제봉의 별칭 미륵봉 : 장군봉이라고도 한다. 비선대 근처에 있다. 장군봉 : 미륵봉이라고도 한다. 비선대 근처에 있는 큰 봉우리. 금강굴이 있다. 응봉 : 1,208m*. 십이선녀탕계곡 옆에 있다. 칠형제봉 : 7개 봉우리가 있는 산으로서 용소골과 잦은바위골 사이에 있음.
기타 봉우리 망군대 : 권금성에 있는 북쪽 봉우리. 799m*. 봉화대, 혹은 봉수대라고도 함. 봉화대 : 권금성 정상. 799m*. 봉수대, 망군대라고도 함. 삼형제봉 : 1,225m. 필례능선에 있고, 근처에 주걱봉, 가리봉이 있다. 오봉 : 백담분소 계곡 건너에 있는 산 주걱봉 : 1,401m. 삼형제봉과 가리봉 사이의 산 집선봉 : 920m. 권금성에 있는 한 봉우리 칠성봉 : 1,078m*. 화채봉과 권금성 사이에 있는 봉우리칠성봉 동쪽에 함지처럼 푹 패인 곳이 있는데, 이곳을 함지덕이라고 하며, 화전민이 살던 곳이다. 화채봉 : 1,328m*. 대관령에서 권금성으로 이어지는 화채능선 위에 있는 봉우리.
사찰 근처 봉우리 가섭봉 : 봉정암 북쪽에 있는 봉우리 이름 관음봉 : 봉정암, 천화대, 토왕골에 있는 봉우리를 이렇게 부르는 경우가 있다. 기린봉 : 봉정암 동쪽의 봉우리 달마봉 : 635m. 통일대불 뒤 쪽으로 있는 봉우리. 신흥사 앞의 세심천(洗心川) 건너 동편에 솟아있는 암봉이다. 독성나한봉(獨聖羅漢峰) : 봉정암 북쪽에 있는 봉우리 동자봉 : 오세암 인근에 있는 봉우리 석가봉 : 봉정암과 토왕골에 있는 봉우리 아난봉 : 봉정암 북쪽에 있는 봉우리 이름 옥녀봉 : 오세암에서 남서쪽으로 만경대 근처의 산 지장봉 : 봉정암 주위(북쪽)에 있는 봉우리 할미봉 : 봉정암 동쪽의 봉우리
기암괴석 귀면암 : 천불동계곡에 있는 바위. 비선대와 오련폭포 사이에 있다. 겉문당, 겉문닫이, 겉문다지라고도 함. 겉문다지 : 귀면암의 별칭 겉문닫이 : 귀면암의 별칭 겉문당 : 귀면암의 별칭 금강문 : 마등령에서 비선대 방향으로 내려오는 길 양편에 있음. 바위가 길 양편에 문의 기둥처럼 서 있다. 용소폭포 인근에도 금강문이 있다.
도둑바위 : 도둑바위골에 있는 바위 권금성 : 보통 옛성터가 있는 넓은 지역을 말함. 봉화대(799m*)에 올라가면 외설악과 동해 바다 등이 한 눈에 들어온다.
동석 : 흔들바위의 별칭. 우각암, 우각석, 쇠뿔바위라고도 함. 밑 바위는 식당바위임.
만경대 : 망경대, 무아대라고도 함. 설악산에는 만경대가 3곳에 있다. 3곳이란 화채봉 ~ 양폭 중간, 오색 주전골, 오세폭포 위(922m*) 등이다. 망경대 : 만경대, 혹은 무아대라고도 함. 무아대 : 만경대, 혹은 망경대라고도 함. 망폭대 : 대승폭포 옆의 암반으로 대승폭포를 잘 볼 수 있는 곳에 있음."九天銀河"라는 글이 망폭대 암반에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조선시대의 문인이자 서예가인 양사언(楊士彦, 1517~1584)이 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목탁바위 : 계조암이 있는 자연 석굴
봉바위 : 봉정암 뒤에 있는 바위. 부처바위라고도 함.봉정암에 있는 명함 크기의 법구경을 적은 카드 이면에 "봉바위 천진석가여래상"이라고 적혀 있다. 봉수대 : 권금성 정상. 799m*. 봉화대, 혹은 망군대라고도 함.
부처바위 : 봉정암에 뒤에 있는 바위. 봉바위,불두암이라고도 함.
사리탑 : 해발 약 1,245m*, 봉정암 근처에 있음. 사리탑은 봉우리나 산은 아님.봉정암에 있는 법구경을 적은 명함 크기의 카드 뒷면에는 이 탑을 "봉정암 불뇌사리보탑"이라 적어 놓았다. 사리탑 뒤 큰 봉우리를 석가봉, 암자를 중심으로 오른 쪽 동쪽에 기린봉과 할미봉, 북쪽에 독성나한봉, 지장봉, 가섭봉, 아난봉 등이 있다. 이 이름들은 다르게 부르는 경우도 있다. 석가봉은 토왕골에도 있고, 나한봉은 공룡능선에도 있다. 사자바위 : 1,181m*. 봉정암 직전에 있는 바위봉우리. 이 바위 밑 고갯마루에서 봉정암까지는 200m다. 설악산관리사무소에서 세운 표지에는 사자바위의 높이는 해발 1,180m라고 적혀있다. 사자암 : 사자바위의 다른 이름 상투바위 : 상투바위골 동편에 있는 봉우리바위 쌍동암 : 계조암 밑에 있는 바위 쌍룡암 : 계조암 문 앞 양쪽에 있는 바위 선바위 : 진부령.미시령 갈림길과 도적소(盜賊沼) 사이에 있는 바위.56번 도로(용대교에서 미시령 쪽으로 이어짐)의 남쪽에 있다. 선바위는 여러 곳에 있다. 44번 도로 주변에 있는 임간수련장에서 보면, 도로 건너편의 선바위골에도 선바위가 있다. 쇠뿔바위 : 흔들바위의 별칭. 우각암, 동석도 흔들바위를 지칭한다. 식당바위 : 흔들바위가 얹혀 있는 밑 바위. 식당암, 와우암, 와우석이라고도 함. 식당암 : 식당바위의 별칭 와우석 : 식당바위의 별칭. 와우암이라고도 함. 와우암 : 식당바위의 별칭. 와우석이라고도 함.
연화대 : 혹은 천화대. 공룡능에서 뻗어나간 줄기로서 이 줄기에 범봉이 있다. 용암석 : 식당바위(식당암, 와우암, 와우석) 맞은 편에 있는 바위 울산 : 울산바위의 별칭.울타리처럼 이어져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또 설악산에 천둥이 치면, 그 소리가 이 바위산에 부딪혀 울부짖는 듯한 소리를 내므로 울산이라고 했다 함.
울산바위 : 해발 876m, 둘레 약 4km, 길이 2km. 796m*.하루 동안 돌아봐야 그 윤곽을 알 수 있는 큰 바위다. 808계단을 올라가면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 서면 대청, 중청, 귀때기청, 공룡능선 등이 잘 보인다. 전망대 바로 앞에 같은 울산바위인 수정바위는 마치 수정 같다. 울산바위는 울산, 울산(蔚山), 울산암, 천후산, 천후봉, 이산 등으로도 불려졌다. 울산암 : 울산바위의 다른 이름. 울산(蔚山) : 울산바위의 별칭. 울산에서 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함. 천후봉(天吼蜂, 혹은 천후산) : 울산바위의 다른 이름 천후산(天吼山, 혹은 천후봉) : 울산바위의 다른 이름 이산(蘺山) : 울산바위의 다른 이름. 울[蘺]처럼 생겼다 하여 그렇게 불렀음. 적벽바위 : 비선대에서 봤을 때, 장군봉 우측 암봉 치마바위 : 안산에서 옥녀탕휴게소로 가는 능선의 우측에 있는 봉우리바위 흔들바위 : 봉우리류 아님. 큰 바위(식당바위) 위의 작은 바위.계조암 앞에 있는 흔들바위는 동석, 우각석, 우각암, 쇠뿔바위라고도 한다. (오색 근처의 만경대에도 흔들바위가 있다) 우각석 : 흔들바위의 별칭. 우각암이라고도 함. 쇠뿔바위, 동석도 흔들바위의 별칭이다. 우각암 : 흔들바위의 별칭. 우각석이라고도 함. 쇠뿔바위, 동석도 흔들바위의 별칭이다.
능선. 고개 능. 령 등
공룡능선 : 길이 5.1km, 약 5시간 소요. 무너미고개와 마등령을 잇는 능선.능선 등산로는 희운각대피소에서 시작되는 코스, 비선대에서 시작되는 코스 이외에 오세암에서 마등령으로 올라와 희운각으로 가는 코스도 있다. 공룡능선에 올라서면, 전후좌우 경치가 하도 좋아 멈춰 서서 이를 바라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이보다 시간을 단축하는 것은 어렵다. 구름 속에 잠시 숨었다가 나타나곤 하는 봉우리들은 설악 최고의 절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공룡 주능선에서 뻗어나간 범봉 사진은 자주 볼 수 있다.
공룡능선을 지나간다는 것은 대부분 정상이 아닌 옆길이나 밑길을 지나가는 셈이지만, (희운각에서 마등령으로 갈 때) 신선봉, 1275봉, 나한봉 등에서 앞과 뒤, 또 좌우의 공룡능선과 설악 곳곳의 모습들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특히 1275봉은 희운각에서 3km(마등령까지 2.1km) 지점에 있는 봉우리로서 공룡능선의 백미이며, 정상에 오르면 천불동계곡, 대청, 소청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공룡능선에서 샘같은 샘은 1275봉에서 희운각 쪽으로 200미터 내려간(떨어진) 계곡에 있다. 서북능선 : 안산, 대승령, 귀때기청봉, 끝청, 대청봉을 잇는 능선
북주능선 : 대청봉의 북쪽 능선.대청봉에서 마등령, 저항령, 황철봉, 미시령, 신선봉으로 이어진다. 화채능선 : 대청봉에서 화채봉, 칠성봉, 집선봉, 권금성을 잇는 능선. 동북능선이라고도 한다. 동북능선 : 화채능선의 별칭 한계령 : 1,004m*. 오색령이라고도 하며, 옛이름은 소동라령(所東羅嶺)이다. 소동라령(所東羅嶺) : 한계령의 옛이름. 오색령 : 한계령의 다른 이름
무너미고개 : 1,020m. 수월고개, 수유고개, 무내미고개라고도 함.무너미고개는 천불동계곡과 가야동계곡의 경계이고, 고개에서 희운각대피소는 지척이다. 무내미고개 : 무너미고개의 별칭 수월고개 : 무너미고개의 별칭 수유고개 : 무너미고개의 별칭
마등령 : 1,240m(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 표지).마등령에서 비선대로 10분 정도 가면 마등령 최고봉이 있는데, 해발 1,320m다(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 표지). 마등령은 옛날 불자들이 오세암, 봉정암 가는 길로 많이 이용했다고 하며, 소금장수 등 행상인들과 민간인들도 많이 다니던 길이라고 한다.국립지리정보원 발행 지형도에는 마등령이 1,327m로 되어 있는 것은 진대봉이다.
미시령 : 826m. 한계령과 함께 내설악과 외설악을 가르는 고개.예로부터 중요한 교통로로 유명하였다. 북쪽에는 신선봉(神仙峰), 남쪽에는 황철봉(黃鐵峰)이 있는데, 미시령은 이들 봉우리 사이의 안부(鞍部)이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을 미시파령(彌時坡嶺)이라 하였다. 고려 때는 길이 있었으나 너무 험준하여 폐지하고 다니지 않다가, 1493년(성종 24) 다시 길을 열었다. 그 뒤 조선 말기에 다시 폐쇄되었고, 1960년경에야 도로가 개통되었다. 그러나 워낙 험하고 교통이 불편하여, 1971년 한계령을 넘는 차도가 넓게 뚫린 뒤 진부령·미시령을 넘던 차들은 대부분 한계령을 이용하게 되었다. 2006년에 미시령터널이 개통되어 큰 눈이 오면 자주 교통이 차단되던 일이 없어지게 되었다. 미시파령(彌時坡嶺) : 미시령의 옛이름
비선대 : 봉우리류 아님. 장군봉 아래의 계곡 암반.계곡 암반 한 곳에 한자 흘림체로 “飛仙臺”라고 쓴 사람은 조선시대 문인이자 서예가였던 윤순(尹淳, 1680~1741)이다. 전설에 의하면 와선대에 누워 경치를 즐기던 마고선(麻姑仙)이 비선대에서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 비선대다.
대승령 : 1,210m*. 장수대휴게소에서 사중폭포, 대승폭포를 지나 올라가면 있는 고개마루
곰배령 : 1,099m. 가칠봉(1,165m)과 점봉산 사이에 있는 재(고개. 산마루턱).고개마루에는 약 5만평 정도의 평원이 있고, 이곳에는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어 야생화천국이라 불린다.
깔딱고개 : 우측에 사자바위가 있는 고개. 봉정골 입구에서 사자바위가 있는 고개까지는 300m, 고개에서 봉정암까지는 200m다. 와선대 : 봉우리류 아님. 비선대에서 소공원으로 내려가는 곳에 있는 계곡의 암반.와선대(臥仙臺)는 홍수 때 상류에서 바위가 떠내려 와 와선대 암반 위에 얹혀 있으므로 옛모습을 찾기가 어렵다.
용아장성능선 : 수렴동대피소 근처의 옥녀봉에서 봉정암을 잇는 능선
유선대 : 비선대에서 볼 때, 장군봉 좌측 뒤의 암봉. 비선대에서는 보이지 않음.
장수대 : 봉우리류 아님.6.25전쟁 때 전사한 군인들을 추모하고, 전승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저항령 : 1,100m. 늘목령, 장항령이라고도 함. 북주능선의 한 고개 장항령 : 저항령의 별칭. 늘목령이라고도 함. 늘목령 : 저항령의 별칭 천화대 : 혹은 연화대. 공룡능선에서 뻗어나간 줄기로서 이곳에 범봉이 있다.설악골에서 천화대로 올라가는 길은 석주길, 염라길, 흑범길이 있다. 필녀령(匹女嶺) : 필례령의 다른 이름 필노령 : 필례령의 옛이름 필례령 : 가리봉에서 한계령 가는 능선에 있는 고개.지름길 의미의 필노령, 베 짜는 여인 뜻으로 필녀령, 깊숙한 의미의 은비령(隱秘嶺), 이순원의 소설에서 따온 은비령(銀飛嶺) 등의 다른 이름이 있다. 은비령(銀飛嶺) : 필례령의 다른 이름. 이순원의 은비령 소설에서 따옴. 은비령(隱秘嶺) : 깊숙한 고개라는 의미로 사용한 필례령의 다른 이름
출처: [백년고독의 삶과 산행 이야기...] 설악산 명칭의 유래 지금의 설악산의 많은 명칭들은 대부분 4가지 부류들에 의해 지어진 것이다.
1)심마니,약초꾼,사냥꾼들-대부분 설악을 기반으로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계곡이름들,봉정쌀너미재,탑골,잘루메기,곰의 모덤,앞문닫이골,초막태골,육동댕이날라리,안내피골,반내피골,말등바위, 상목,중목,하목,범이잔골,문바위골,봉정앞가슴이등등 셀수없이 많으나...많은 이름들이 그들만의 용어이므로 잊혀졌다)
2)설악산에 있는 사찰의 승려들-대부분 불교적 경전에 나오는 이름을 붙임 (집선봉,미륵봉,문필봉,석가봉,노적봉,달마봉,취적봉,천불동 등등...)
3)초기 산악인들-설악산이 개발되고 등반도구와 기술이 발달하여 그동안 못가던 암릉과 계곡을 누비면서 이름을 붙임 (범봉,곰릉,용아장성,죽음의 계곡,오련폭,까치골,칠선골,공룡릉,모든계곡의 우골,좌골이라는 이름등등)
4)설악산초기 개발당시 사진사들-설악산을 개발하여 등로가 생기게 되고 멋진 명소를 사진에 담기 시작했지만 마땅한 이름이 없어 붙이게 된다.(귀면암,양폭,음폭,와선대,비선대,염주폭,천당폭,육담폭,비룡폭등 대부분의 관광명소의 이름이 여기에 해당된다) - “설악산과 동해안”최구현씨 1969년 의 책에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음.
위의 부류들은 같은 곳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게 되는 경우도 있고 ..먼저이름이 와전되어 다른곳에 붙이기도 하여 지금의 설악명칭들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름이 지금까지 잘 보존된 내설악쪽과는 달리 들어가기가 어려웠던 외설악쪽 유명지명은 1962년부터 설악산을 개발하기 시작하면서 최구현씨가 많은 이름을 붙였다.
*천화대(현재 공룡능선)-마등령~무너미고개 까지를 금강산에 따와 천화대라 명명했으나 지금은 어찌된일인지 범봉까지의 암릉길을 말한다.
*귀면암-금강산에서 최구현씨가 따옴.
*양폭,음폭-음양오행설에 의해 주봉인 대청의 왼쪽, 오른쪽에 의해 명명.
*오련폭-57년 어느 화가가 화폭에 담고 오련폭이라 작품명을 붙인것을 보고 명명. (오련폭이란 이름은 1955년 서울문리대산악회의 천불동 초등때 유홍렬 교수가 붙인 이름이라고 서울문리대산악부40년사에 나온다) *염주폭-염주같이 골골이 엮어져 있다 해서 명명 *집선봉-권금성일대의 연봉으로 금강산에서 따옴. *비룡폭-주민들이 기우제를 올린폭포로 용소폭이란 토속이름이 있었으나 좀더 화려한 맛을 주기위해 명명. *와선대,비선대-옛날 향성사때부터 전해내려오는 이름으로 명명. *문주담-당시 설악산개발에 큰 역할을 해준 이문주씨의 이름을 빛내주려 명명. *이호담-그 위로는 물고기가 살수 없어 물고기가 사는물과 그렇지 않은 물의 경계가 된다하여 두이(二)자를 써서 명명. *내,외설악-최구현씨가 첨으로 구분하여 명명. *천당폭-대청에 가는 마지막 폭포이므로 명명. 설악산의 옛길 옛지명 [월간 산] 1987년 10월호의 66~72쪽에 실린 "설악의 옛길,옛지명"
아래의 글은 [월간 산] 1987년 10월호의 66~72쪽에 실린 "설악의 옛길,옛지명"이라는 제목의 기사이다. 25년 전의 기사라 이 글을 직접 접한 동호인은 많지 않을테고, 설악산을 즐겨 찾는 동호인들이라면 눈 여겨 봐둘만한 글이라 이곳에 옮겨온다. "예전에는 대청과 소청이 전부였죠. 중청이니 끝청이니 하는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어요." 지금의 대청이 대청이요, 지금의 중청이 소청이지 봉우리 같지도 않은 지금의 소청이나 끝청은 이름도 없었다고 오문석씨(吳文錫,60,양폭대피소 관리인)는 고개를 흔든다. 6.25동란 전부터 곰사냥과 약초 캐는 일을 업으로 삼았던 설악산 토박이인 그는 곰을 쫓느라 설악산 골골이 쏘다녀 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귀면암 일대를 앞문닫이, 오련폭 일대를 뒷문닫이로만 불렀지 폭포마다 구체적인 이름을 부른 기억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천불동계곡을 그저 '문닫이골'이라고 불렀던 기억을 되살리고 있다. 정고평 앞 식은골, 노인정 위 가는골, 와선대 뒤 초막태골, 설악골, 잦은바위골(그들은 적나라하게 자X바위골이라 부른다), 그 반대편의 작은형제바위골, 그 위의 큰형제바위골(두 계곡은 칠성봉 서쪽의 두 계곡을 말하는데 지금은 잊혀진 이름이다), 다시 그 위 육동댕이골(지금은 칠선골), 용소골, 건천골(양폭대피소 뒷계곡), 안내피(염주골), 반내피(죽음의계곡) 등 모든 골짜기를 망라해서 이름을 전하고 있다.
설악산은 곰사건으로 심심찮게 화제를 뿌리고 있다. 곰사냥이 금지된 지금 아직도 밀렵꾼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예전에 곰사냥했다는 사람들을 만날 수는 있었다.
그래서 문헌을 찾아보고 그래도 없는 곳에 이름을 지은 것이 귀면암(앞문닫이), 양폭,음폭,염주폭,천당폭 등이다. 오련폭은 57년 어느 화가가 이 폭포를 화폭에 담고서 오련폭이라 작품명을 붙여 그것을 살렸다고 한다. 양폭과 음폭은 음양오행설에 의해 주봉인 대청봉을 기준으로 왼쪽의 것을 양폭으로, 오른쪽의 것을 음폭이라 했다고 한다.
취적봉은 토왕성폭(신광폭포)의 물방울이 맺히는 봉우리라는 운취가 어린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밖에도 문필봉,노적봉 등이 신흥사 사지에 기록되어 있었다고 한다. 산악인들도 이름짓기에 한몫 예를 들어 천화대(물론 와전된 것이다)의 경우 심마니,포수들이 부르는 이름은 없고, 다만 암릉의 목에 상목,중목,하목이라는 그들이 통과할 곳의 이름만이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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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넘 길어 읽다 눈이 빠질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설악은 공부할게 무궁무진~~그래도 아는 이름들이 나오니 기분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