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과 부다페스트를 찾아서 푸른 다뉴브강의 물결 속으로(1)
음악과 예술의 도시, 비엔나/전성훈
1년 만에 다시 찾는 유럽 여행지는 유럽의 중간에 위치한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이다. 지난해 부활절을 맞아 패키지여행을 갔던 발칸반도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 바로 옆 동네이다. 2015년 여름 첫 번째 유럽여행처럼 딸아이가 길라잡이가 되어 아내와 함께하는 자유여행이다. 아들네가 함께 하지 못해 마음이 걸린다. 손녀와 손자가 더 자라면 아들네 가족과 함께 여행할 날이 오리라 여기며 조금은 복잡한 마음을 달랜다.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여행을 계획하면서 먼저 떠오른 것이 다뉴브(Danube)강이다. 루마니아 출신 작곡가 이바노비치의 주옥같은 피아노 연주곡 ‘다뉴브강의 잔물결’로 더 알려진 강이다. 다뉴브강은 독일 바덴에서 시작하여 오스트리아, 헝가리, 발칸의 여러 나라를 거쳐 흑해로 흘러든다. 전에는 도나우강이라고 불렀는데 언제부터인지 다뉴브강으로 부른다. ‘다뉴브강’하면 일제 침략기 ‘윤심덕’이라는 신여성의 비극적인 삶을 떠올리게 된다. 대한해협을 건너가는 관부연락선에서 차디찬 바다로 연인과 함께 몸을 던진 젊은 여인, 시대를 앞서가는 삶을 비극적으로 마감한 신여성 윤심덕(尹心悳), 그녀가 불렀던 노래 ‘사의 찬미(死의 讚美)’가 바로 이바노비치 ‘다뉴브강의 잔물결’의 번안곡으로 알려져 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빈)는 유럽 고전 음악의 본향으로 고전 음악의 아버지인 천재 모차르트의 생애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또한 ‘꿈의 해석’이라는 역작을 발표한 현대 정신분석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고향이다. 음악과 예술의 고장이라는 명성과는 달리, 13세기의 신성로마제국 황제 루돌프1세로부터 6세기 이상 이어져온 합스부르크가의 신체적 특징, 이른바 ‘주걱턱’이라 불리는 근친결혼의 저주를 잉태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비극의 산실이 비엔나이다.
[ 비엔나로 가는 하늘 길 ]
7월 27일 아침 7시, 인천 공항은 한마디로 북새통이다. 어디로 떠나는지 모르지만 많은 인파가 몰려있다. 옆 사람과 정답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 전화를 붙잡고 수다를 떨면서 출국 수속을 기다리는 사람, 의자에 앉아서 빵과 우유를 먹는 사람도 보였다. 짐을 부치고 출국 수속을 마치고 나서 공항라운지에 들려 늦은 아침 식사를 하였다. 뷔페식으로 차려진 음식을 여유롭게 먹으면서 탑승 수속을 기다렸다. 약 20분 정도 출발이 지연된 폴란드 항공사 비행기(LOT)는 힘차게 대지를 밟고 하늘을 향해 솟아올랐다. 습관처럼 한 동안 눈을 감고 쪽잠을 자고 난 후 아내가 준비한 여행지에 대한 안내 글을 읽기 시작했다.
인천공항에서 중간경유지인 폴란드 바르샤바 ‘쇼팽공항’까지는 인내와 고통의 시간이다. 9시간 40분의 비행시간은 앉아서 즐기기 쉽지 않다. 서울보다 7시간 늦은 바르샤바, 바르샤바에 가까이 갈수록 날은 밝아오는데 비행기 창밖은 희뿌연 하늘 모습뿐이다. 공항에서의 기다림이나 비행시간도 여행의 과정이지만 적응하려면 적지 않은 고통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육체의 즐거움과 고통에 빠지지 않고 본성의 마음으로 육체를 바라볼 수 있다면 여행의 즐거움도 인간 삶의 의미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장시간 비행에도 짧은 기쁨이나 즐거움은 있다. 평소 꼬불꼬불한 컵라면을 좋아하지 않는다. 기내식이 입맛에 맞지 않아 승무원에게 뜨거운 물을 넣은 컵라면을 부탁한다. 겨울산행에 먹었던 컵라면을 생각하며 한 젓가락 입안으로 넣고 천정을 바라보면 소주 한 잔이 간절해진다. 찰나의 기쁨은 지루한 장시간 비행의 하나의 치유방식이다.
바르샤바 쇼팽공항에서 오스트리아 비엔나 공항까지 비행시간은 1시간 20분, 한 시간 늦게 출발하였지만 금방 비엔나 공항에 도착했다. 유럽연합(EU)내에서는 입국심사 절차가 상당히 간편하여 바르샤뱌 공항에서 출입국 세관을 통과한 것이 전부였다. 통상 입국할 때 작성하는 입국서류도 없다. 비엔나 공항을 빠져나와 지하철을 타고 빈 중앙역으로 향했다. 집 떠난 지 22시간 만에 딸이 예약한 빈 중앙역 근처 ibis 호텔에 투숙했다. 샤워를 하고 나서 피곤하여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잠자리가 바뀌고 시차 때문에 몇 번이나 잠이 깨었다. 비몽사몽간에 깨어나 집에서 가져간 누룽지를 야외용 주전자에 넣어 물을 붓고 끓여 빈에서의 조촐한 아침 식사를 하였다.
7월 28일(토) 맑음, 비엔나에서의 첫 날,
[ 벨베데레 belvedere 궁전 ] 빈에 도착하여 본격적인 구경에 나서 첫 번째로 찾은 곳은 ‘벨베데레’ 궁전이다.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의 작품을 전시하는 ‘벨베데레’(belvedere)궁전, 원래는 사보이 왕가 오이겐 왕자의 여름 궁전으로 1714년 ~ 1723년에 걸쳐 완성되었다고 한다. ‘벨베데레’는 이탈리어로 ‘좋은 전망의 옥상 테라스’를 가리키는 건축용어이다.
‘벨베데레’에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을 많이 전시하고 있다. 그의 대표작 ‘Kiss'를 보기 위해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 그림 속에 그림을 겹쳐서 표현하여 처음 보았을 때는 키스 장면을 금방 알아보지 못하였다. 독일어를 몰라 화가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백마를 탄 ‘나폴레옹’의 그림을 보았다. 키 작은 거인이 흰말을 타고 험준한 알프스 산맥을 넘으며 ‘내 사전에는 불가능은 없다’라고 외치며 부하 병사들에게 돌격 명령을 내리는 듯 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성서 이야기 중, 시리아의 홀로페르네스 장군을 유혹한 이스라엘의 용감한 여성 ‘유디트(유딧)’의 요염하게 치장한 모습의 그림 앞에서, 또한 헤로데의 생일 축하 춤 값으로 쟁반에 얹힌 세례자 요한의 얼굴을 받고 기쁨에 들떠있는 살로메의 그림 앞에서 한 동안 발걸음을 멈추었다. 서양인에게 기독교는 프로테스탄트나 가톨릭을 포함하여 그들의 정신세계와 문화의 본향이라는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전시관 이곳저곳을 구경하다가 외과수술을 하는 그림 앞에서 시선을 멈추었다. 19세기 유럽에서는 공개적으로 외과수술을 하며 학생들을 가르쳤다는 심리학책을 읽은 적이 있다. 바로 그런 장면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집도하는 선생 주위에 보조의사 또는 실습하는 의대생으로 보이는 사람들, 바로 옆에 붙은 계단에서 수술 광경을 쳐다보는 많은 학생들, 어지럽게 놓여 있는 수술 도구들과 함께 수술 받는 환자의 모습까지 아주 세세하게 묘사하였다. 전시회 개장 시각에 맞춰 일찍 갔기에 조금 여유롭게 그림을 볼 수 있었다. 서양 사람들뿐 만아니라 중국인, 일본인 그리고 우리나라 단체 관람객도 보였고 개별적으로 찾아온 우리나라 사람도 많았다. 동양인은 동북아 3국 사람만 보여 이들 나라의 국력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그린칭 Grinzing 마을 ], 비엔나 숲을 가기 전에 있는 마을로 약 200년 전 요제프 2세가 허가하여 ‘자가 포도주’를 생산해 판매하던 선술집 마을이다. 이곳에는 ‘호이리게’라는 술집이 많은 데 호이리게는 영어식 표현으로 와인 태번 (Wine taverns, 햇 포도주를 파는 식당)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어느 음식점이 문을 열자마자 들어가 음식과 와인을 주문하였다. 와인엔 그다지 흥미가 없지만 조금 쌉쌀하고 풋내가 나는 와인이 목구멍으로 잘 넘어갔다. 더운 날씨에 땀을 많이 흘려서 와인 맛이 좋다고 느껴졌다. 진정한 술꾼은 술 맛을 탓하지 않고 변해버린 입맛을 탓한다는 이야기가 어느 정도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훈데르트바서 Hundertwasser 하우스 ],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건축가인 ‘훈데르트바서’는 스페인의 불멸의 명장 ‘안토니오 가우디’에 비견된다고 한다. 그는 직선을 배제하고 자연스러움을 추구하여 설계도를 그릴 때, 자 대신 손을 이용해 선을 그었다고 한다. ‘훈데르트바서’는 비엔나 시의 의뢰를 받아 1980년 빨강, 파랑, 노랑 등 강열한 원색과 다량의 창들과 둥근 탑, 곡선형의 복도와 각기 다른 창문과 발코니 등을 아름답게 조화시킨 걸작 아파트를 지었다. 모든 건축물의 지붕을 식물로 덮어야 한다고 건축물 사이사이 식물을 심어 자연과 건축물이 단아한 조화를 이루게 했다고 한다. ‘훈테르트바서 하우스’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와 나무 밑에서 음료수나 맥주를 마시며 즐기고 있었다. 번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 뜨거운 여름의 낮 한때를 한가로이 즐기는 사람들 틈에 우연히 끼여 있는 자신을 보고 나도 모르게 픽하고 웃음이 나왔다.
[ 모차르트 하우스 ],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가 생애 마지막 3년간 거주한 집을 박물관으로 개조하여 관광객을 부르고 있다. 박물관 설명을 해주는 한국어 통역기를 귀에 꼽고서 차분한 마음으로 박물관을 둘러보았다. 사진이나 오선지 또는 모형 오페라 앞에서는 모차르트가 작곡한 노래가 조용히 흐른다. 모차르트는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대단한 천재 음악가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현실적인 출세주의자였다. 그는 많은 곡을 작곡하면서 늘 마음속으로 ‘ 명성을 얻고, 부유해지고, 존경을 받고 싶어 하는 ’ 욕망을 가진 인간 본연의 모습에 충실했다.
한 위대한 창조적인 인간의 모습에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모습도 보여주는 서양인들의 사고방식이 너무나 마음에 와 닿는다. 늘 숨기고 가리고 빼어놓고 보여주고 싶은 면만 ‘대서특필’하는 짓을 꾸미고 있는 우리 현실과 대별되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로 현대의 우리 문화의식 수준이 이토록 본말이 전도되고 뒤떨어졌는지 궁금한 마음과 함께 자괴감이 밀려든다.
[ 성 스테판 성당과 성 페터 성당 ], 비엔나 대교구 주교좌성당이자 오스트리아 최고의 고딕 성당인 ‘성 스테판’ 성당, 다양한 색상으로 꾸며진 지붕 타일 덕분에 빈을 상지하는 랜드마크라고 한다. 고개를 들어 쳐다보기 힘들 정도의 높은 성당의 천정에는 성서를 내용으로 하는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다. 관광객과 순례자들 틈에 섞여서 성당 내부를 둘러보다가 특이한 모습의 고해소를 보았다. 소박하지만 아름답게 꾸며진 고해소 입구에 고해 성사 보는 시간과 고해 사제의 이름이 적혀있다. 외국어 고해 성사도 가능한데 동양에서는 베트남어, 중국어 고해 시간은 있지만 우리말 고해시간이 없어 서운하다.
‘성 페터’ 성당 문을 열고 들어가니까 미사가 거의 끝나고 ‘영성체’를 마친 시점이라 조금 아쉬웠다. 미사가 끝나기 전에 늙은 사제 한 분이 고해소에 들어가자 고해소 밖으로 파란 등이 들어왔다. 미사 집전 사제가 독일어로 마침 기도를 하였다. 독일어는 모르지만 천주교는 어디서나 똑같은 전례예식을 거행하므로 그 뜻을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성당 2층의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웅장하게 퍼져 나오자 차분한 기분이 들어 가만히 주모경을 바쳤다. 아내와 딸과 하는 여행에 주님께서 함께 해주시기를 청하였고 우리 가족을 위해 성모님이 주님께 빌어주시기를 청하였다.
7월 29일(일) 맑음,
[ 쉔브른 Schonbrunn 궁전 ],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별장인 쉔브른 궁전, 쉔브른은 ‘아름다운 (Schon) 샘(brunn)’이라는 뜻이다. 쉔브른 궁전은 파리 베르샤이유 궁전을 모방하여 프랑스풍의 바로크식으로 지어졌다. 1696년 처음 짓기 시작한 이후 역대 황제가 집무를 했고, 프랑스 나폴레옹 황제가 오스트리아를 점령 후 점령군 사령부로 사용하기도 했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황가의 유일한 여황제 마리아 테레시아(Maria Theresia)도 이곳에서 정사를 돌보았다. 마리아 테레시아의 막내딸로 프랑스 대혁명(1789년) 때 남편 루이 16세와 함께 기요틴(단두대) 처형을 받았던 왕후 마리 앙뜨와네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궁전이다.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가 6살 때 이곳에서 연주하였고, 1961년 미국 존.F.케네디와 소련 니키타 흐르시쵸프가 회담을 하였던 역사적인 장소다.
쉔브른 궁전 안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 되어 눈으로 본 느낌을 오래 간직하기 어렵지만 오디오 기기를 통해 우리말 안내를 들어 궁전에 대한 이해를 조금이나마 높일 수 있었다. 쉔브런 궁전을 벗어나 정원을 가로 질러서 높은 언덕 위에 지어진 개선문을 찾았다. 오스트리아가 독일 프로이센 왕국과 싸워 이긴 전쟁 승리 기념문으로 비엔나 시내가 시원하게 보였다.
유럽 왕궁은 평지에 건물을 지어 얼핏 보면 특색 없는 단순한 커다란 건물 같아 보인다. 반면 중국이나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의 궁궐을 보면 유럽 왕궁과는 다르다. 동양 3국은 궁성을 내 외곽으로 분리하여 궁을 지키고 있는데 반하여 유럽 궁전은 동양 3국 보다 개방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지리적 자연적인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아 서로 다른 모습으로 왕궁을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 미술사 박물관 ], 고대 이집트 미이라의 모습과 파피루스에 적힌 죽은 자의 글(死者의 書)을 보면서 가슴이 방방이질 하는 듯하였다. 과거 역사 이야기의 실물을 직접 보니 책이나 TV에서 보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 들었다. 오늘날 시각과는 전혀 다른 인생관, 종교관, 내세관을 갖은 고대 이집트 왕가의 모습을 보면서 고대 인류의 문화의식이 새삼스럽게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미술사 박물관은 사진 촬영이 가능하여 사진을 많이 찍었다. 미술사 박물관에서 2시간 이상 머물고 나니까 머리가 무거워지고 가슴이 답답하였다. 유물 전시관에서는 생경한 느낌에 관심이 많았지만 16세기 이후 그림을 보면서는 머리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음악, 미술, 문학 등 인문학에 대한 소양과 관심은 사람마다 다르다. 내 경우 전람회에서 잠시 동안 작품을 바라보는 게 고작이다. 그림이나 시화를 제대로 볼 줄 아는 눈도 귀도 소양도 없기 때문이다. TV나 라디오를 통해 소품을 보거나 듣는 것 이외에 오페라는 한 번도 직접 본 적 없다. 문학작품도 관심이 있는 분야만 찾아 읽게 되어 다른 분야는 전혀 문외한이다.
[ 떨어지는 말 ]
24시간 패스를 끊고 다니면서 트랩, 지하철, 버스 등 어디에서도 차표 검사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불시에 검사하여 무임승차나 차표가 이상할 경우 상당한 벌금을 내야하므로 반드시 승차권을 구매한다고 딸아이가 귀띔한다. ‘금연 표시’가 있는 것을 보니 트랩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있는 가 보다. 트랩에 개를 데리고 타는 승객이 종종 있다. 전차 안에 개 ‘입마개’를 하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지만, 입마개를 하고 있는 개는 딱 한 번 보았다. 개를 데리고 타는 사람들이 입마개를 갖고 있으나 사용하지 않고 있다. 지하철에 개를 데리고 타는 사람은 보지 못했고 안내문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개 입마개 그림을 찾을 수 없다.
주말에 비엔나에 도착해서 그런지 길거리가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옛 왕궁을 박물관으로 개조하여 관람객을 불러 모은 것은 기존 시설을 잘 이용하는 모범을 보여주는 것 같다. 파리나 스위스에 비해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는 이유는 모르지만 흑인을 거의 보기 어렵다. 그 대신 동북아 3국 관광객은 자주 눈에 띤다. 특히 혼자 여행하는 우리나라 여성들을 보면서 그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우리 세대와 다른 모습으로 사는 젊은이들이 정말 부럽다. 다만 하나 앞 선 세대들의 노고와 수고 덕분에 나라가 발전하여 젊은이들이 마음 놓고 해외여행을 다닐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2018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