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 戊子年 [부산일보] 元旦 기획
<쥐띠 시조시인의 쥐 이야기>로 게재한 수필 작품를 재탑재함>
![](https://t1.daumcdn.net/cfile/cafe/996C1F415E0D67151D)
<쥐구멍에서 쏘아올린 큰 공>
쾌재快哉라, 찍찍 - Cheep Cheep, 새날이 밝는도다!
갑자무자甲子戊子 자자년子字年을 애타게 기다리며 숨죽인 숱한 세월 - 10년 하고도 삼백 예순 날, 십이지十二支 축생畜生에는 고양이가 없어 어깨춤을 추었건만, 오호 애재嗚呼哀哉로다. 돼지에게 뜯겨죽고 개에게 물려죽고 닭에게 쪼여죽고 뱀에게 감겨죽고 재수가 없는 동족 소 뒷발에 밟혀죽고 …. 긴긴 세월 속에 잔나비, 양, 토끼해만이 겨우 숨을 쉬었더니 고진감래苦盡甘來로다!
파리 같은 목숨 쥐란 어떤 생명인고. 세월도 까마득한 상고시절 갑골문胛骨文엔 뾰족한 주둥이에 날카로운 앞니 한 쌍, 굽은 등 긴 꼬리를 상형자로 떡! 허니 그려놓고 옆에는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까지 뿌렸으니 이 곧 서鼠자로다. 아我 조선 동방예의지국에서도 옛적부터 신으로 모시면서 소설, 민담, 전설 등에도 당당히 등장하였구나. 이렇듯 훌륭한 생명을 일부의 무지한 인간들이 유언비어 유포하여 유독 쥐를 비하卑下하였으니, 먼저 억울한 사연부터 낱낱샅샅 살펴보자.
오호 통재라, 하고많은 동물 중에 유독 쥐를 욕설하니 조선조 권섭權燮이란 선비님의 같잖은 고시조에 ‘두어라 쥐 같은 인간이야 닐러 무삼하리’라는 어거지를 비롯하여, 쥐꼬리 물고 물어 끝없이 이어지던 비난 말씀 일일이 열거하면 ‘쥐새끼’는 약은 자요, ‘쥐포수’는 옹졸한 자요, 가당찮은 일을 하면 ‘쥐구멍에 홍살문’이며, 하다못해 쥐벼룩이 옮긴다고 ‘서역鼠疫(페스트)’이 웬 말이냐. 인간들 저들끼리 에이즈 옮긴다고 인역人疫이라 부르느냐.
무릇 만물이란 각기 제 필요한 생김인데도 멀쩡한 육신에다 비방 욕설 다반사라. 삑-하면 뱉어내는 황당하고 억울한 악담! 길고도 멋진 꼬리를 허위광고 방송하여 ‘쥐꼬리’로 업신여기며 우스운 꼴로 만들더니, 세상에 밑살 큰놈이 있는지 ‘쥐밑살 같다’ 조롱하고, 치사하고 못생긴 것을 - 세상에나, 이런 일이! - ‘쥐코 장조림 같다’고 억지로다. 날조된 악담 퍼붓다 못해 없는 뿔도 만들어서 ‘쥐뿔도 없다’고 망발이다. 실상 알고 보면 쥐뿔은 뿔 아니라 수컷이면 으레 달린 그 양물陽物을 이름이라. 오호라, 가소롭도다. 전국 방방곡곡 민담에도 어엿이 전해오거늘 쥐×도 모르면서 아는 체 하는도다. 쥐가 고생하면 그저 절로 흥이 나서 ‘쥐 잡듯 한다’며 좋아하고 안분지족安分知足 몸에 배인 우리 구멍을 ‘쥐구멍’이라 비웃는다. 그래 한번 따져보자. 쥐구멍이 없었더면 부끄러워 추락한 무도한 인간들 체면 어디 숨어 버틸쏘냐.
곡식 좀 축내기로 이런 악담 이해하나 조물의 천지 창조 제 각각 뜻 있는 바, 그 뜻은 못살려도 억지소리는 말아야지. 천하고승 성철스님도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며 억지소리 질타했고, 만고진리 성경에도 ‘남을 헐뜯는 자 그가 오히려 악인’이라고 경계말씀 하셨니라.
어디 생김뿐이더냐. 아둔한 인간들은 산아제한 난리치며 ‘무턱대고 낳다 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느니 ‘둘도 많다’느니, 아이 낳는 백성 야만인 취급하며 온갖 감언이설로 복강경 수술에다 정관수술 꼬시면서 멀쩡한 예비군들 바지까지 벗기더니, 뭣이라? 요새는 줄줄이 애 낳으면 온갖 혜택 준다며? 몇 년 뒤도 못 내다보는 이런 싸가지들! 우리들 한 번 보소. 포도송이 DNA라 줄줄이 새끼 달아 우리 부부 한 쌍이면 한 번에 열 마리씩 낳아 한 해에 번지는 수가 1만 하고도 5천이라. 만물과의 공존을 위한 살신성인 정신으로 수많은 우리 새끼를 연구용, 먹이용으로 희생시켜 300여 마리만 살려두니 이 아니 위대하냐.
새끼들 많다고 셋방 설움 또 어쨌느냐. 어차피 비어 있는 딴천장 좀 쓴다고, 또 좀 바스락거리면 어디 덧나는지, 쥐 소리가 벼락이냐. 쥐 죽은 듯 고요하단 말 과장 홍보 억울하다. 그래, 쥐 없는 아파트 세상 그 천장이 고요터냐. 염치없는 인간들이 천장을 방바닥 삼아 밤새껏 풀게임full game에 공소리, 아이소리, 샤워소리, 피아노 소리, 부부간 고함소리 - ‘서일필鼠一匹 경천동지驚天動地’에 잠 못 들어 하더니만 쾌재라, 고소하다!
일일이 토설키는 내 숨도 차다마는 그나마 지구 역사에도 지각 있는 인간 있어 쥐들의 영험한 행동 익히 깨닫고는 황감스럽게 생원生員 벼슬을 봉헌奉獻하셨더구나. 우리 쥐들도 오랜만에 새해를 맞았으니 그동안 억울함을 연연하여 무엇하리. 물질만능 이 시대에 온갖 자연 파괴하던 인간들도 조물造物의 천지창조 물물物物마다 뜻을 두어 유인唯人이 최귀最貴란 그 말 틀렸음을 알았을 터. 갉아대고 쫓아가고 그 무슨 소용이랴. 꼬리 잘려 상처받고 인간은 인간대로 옷깃이나 더럽힐 뿐 아니것냐.
허공에 둥둥 떴는 구름장을 보아라. 때로는 엉겼다가 이내 곧 풀리느니. 우리네 짧은 한생이 뜬구름 아니더냐. 앞들에 흘러가는 강물을 또 보아라. 파도는 파도대로 잔물결은 물결대로 부딪쳐 솟구치다가 유유한 게 장강長江이라. 새해도 맞았으니 설일雪日이든 풍일風日이든 김남조 시인 말마따나 좀 더 너그럽게 한 해를 살자꾸나. 우리들 귀한 일생一生도 남은 삶이 몇 날이랴. 북망北邙으로 사라지는 천하의 영웅이나 풀섶으로 사라지는 티끌 같은 미물微物이나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요, 한 세상 100년도 수유須臾가 아니리요.
그래, 그렇겠지. 돌이켜 생각하면 숱한 세월 속에 서생원鼠生員과 인간 인연 어찌 아니 애틋하랴. 쥐띠 해에 엮어 놓은 소중한 사연들을 하나씩만 살펴보자. 48년 무자戊子 쥐는 어정쩡한 해방 조국 금수강산 삼천리에 내 나라 세워주었니라. 아, 글쎄 남북이 등을 져서 심히 유감이지마는 어쨌든 우리 두목 우리 세상 아니더냐. 60년 경자更子 쥐는 부정선거 독재정권 온 국민의 함성으로 뿌리째 갉아버려 민주정권 세웠고, 72년 임자壬子 쥐는 등 돌린 남과 북이 마주 앉게 하였니라. 84년 갑자甲子 쥐는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끔직한 말세예언末世豫言에서 무사히 구해준 후 96년 병자丙子 쥐가 OECD 가입시켜 선진국 발돋움을 이룩하지 않았느냐.
오호라, 희희喜喜로다. 무자戊子 쥐의 부활이로다. 쥐구멍에 볕이 들어 은혜와 사랑이 철철철 넘치는 세상이라. 웰빙well-being 시대 요즘 세상은 애완용 고양이도 알밥을 먹는 세상, 이러헌 평화 세상 또 어디 있을쏘냐. 60년 전 앵돌아선 남북도 화해무드요, 동서도 화합이니, 빈부 갈등 안팎 갈등 모다 해소하고 화평세상 도래로다. 세상 사람들아, 올해는 꿈속에 쥐에게 물리면서 ‘천석만석千石萬石!’ 소리 쳐서 모두 다 부자 되고, 쥐 DNA 이식하여 딸 아들 펑펑펑 낳고, 사 방팔방 세계화 시대를 쥐 풀방구리 드나들 듯 종횡무진하시길 축원하면서, 오늘 새날을 맞이하여 60년간 갈고닦은 바이오bio 생명공학의 첨단尖端 쥐들이 억조창생 기氣를 모아 알을 하나 낳으리니. 환희歡喜의 무자년에 ‘쥐구멍에서 쏘아 올린 큰 공’ 하나가 온 누리를 밝히리라.
해야 솟아라. 박두진의 해야 솟아라. 칡범과 사슴이 함께 노니는 세상, 어둠을 살라먹고 둥근 해야 솟아라, 솟아라! - 찍찍 - 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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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법 연구> 전통 접맥 수필 - 판소리 사설 유형
[창작 노트]
1. 계기 : 청탁 원고
•2008년 무자년 쥐띠 해, 《부산일보》신년 메시지 청탁 원고
•쥐에 관한 元旦 특집 기획
•기존의 틀을 탈피한 독특한 형식과 내용의 글을 주문 받음
2. 구상
(1) 형식 : 고전적 요소(해학과 풍자를 실은 판소리사설 유형) 접맥
•수필 작법에서 전통과 접맥된 형식 창출을 고려
•판소리 사설 유형의 수필(고전수필, 사설시조 등의 유형 적용)
•리듬은 4음보 정격과 파격을 혼용하여 읽기의 변화를 유도
•고전적 요소 가미를 위해 한자어를 병용하여 고풍스런 맛 첨가
•어조 : 세태풍자와 해학을 겸한 경계와 힐난詰難의 만연체
•서두에 한자, 한글, 영어를 동시 사용하여 글로벌 시대 도래 암시
•첫 행은 시조 초장 형식
(2) 내용
•쥐의 수난과 업적을 나열하면서 화합 정신의 새 시대 도래를 희망
•화합 주제의 시 김남조 ‘설일’, 박두진 ‘해’를 활용
•제목은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역설적으로 패러디
[고전 율격미를 살린 수필 창작의 변]
(필자 논문 <전통수필 창작론 연구>에서 일부를 발췌함)
현대는 리듬 상실의 시대이다. 속도를 추구하는 현대는 리듬을 배격하기 때문이다. 고전적 이동법인 발걸음, 말[馬], 자전거, 증기기차, 배[船] 등은 2박자, 3박자, 4박자의 리듬을 지녔지만 이제는 이들 리듬을 구경하기 힘들다. 율격적 보법步法을 잃어버린 현대의 이동 도구들, 자동차나 비행기나 쾌속정이나 KTX에는 리듬이 없다. 이러한 도구들로 인하여 현대인은 체감적 율동감을 상실해 버렸다. 그래서 현대인의 삶의 양식도 리듬을 잃게 되어 생활만 삭막한 것이 아니라 문학마저 메마른 시대를 살고 있다. 이 리듬을 회복시켜 주는 것이 정형률을 지닌 현대시조의 소명이다.
현대시조에 적용되는 이 율격미는 고전문학에서는 필수적 장치였으나 현대문학에서는 거의 완벽하게 배제해 버린 미학이다. 현대 자유시의 축자적(逐字的) 의미는 ‘율격으로부터의 자유’를 뜻한다. 자연의 흐름은 리듬을 지닌다. 인간의 성정도 본질적으로 리듬감을 지님으로써 조화를 이루는데 현대인은 한쪽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오히려 역설적으로 율격미의 필요성이 필요한 소이다.
고전문학 작품은 운율을 바탕으로 창작되었지만 개별적으로는 다양한 변주의 작품들이 탄생한다. 일례로 엄격한 정형인 시조에도 엇시조, 시설시조 등의 변주가 형성되었다. 조침문, 규중칠우쟁론기 등의 고전수필도 다양한 리듬을 지녔다. 우리의 모든 전통문학은 그렇게 획일적 구조를 지닌 양식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수필이 산문이라 할지라도 굳이 율격을 천편일률적으로 배격해야 할 이유는 없다. 고전문학 작품이 정격 속의 변격을 구사했듯이 현대문학 작품도 산문 속에 다채로운 율격을 가미하는 것이 가능하며, 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새로운 미감을 선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첫댓글 2008년은 저의 회갑년이었습니다. <서생원님 전상서>라는 연작시조를 읽은 부산일보 기자가 특별한 조건의 원고청탁을 해서 쓴 수필입니다.
대단하십니다.
서태수 선생님이어서 가능한 수필인 것 같습니다.
저도 언젠가 도전해보리라 생각한 비슷한 소잰데
으메 기가 죽네요~~
ㅎㅎ 죄송!
우리 수필 형식이 얼마든지 다양해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답니다 ㅡ이왕이면 고전의 울격미도 접맥하면서 ㅡ암튼 감쏴!
이미성 샘! 새해 자세히 보니 <작법 연구>로 탑재한 내 글들이 번지수를 잘 못 찾은 것 같네요. 몽땅 <카페수필 사랑>으로 이동해 주실 수 있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