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홍전(臧洪傳)
장홍은 자가 자원(子源)이고 광릉군 사양현(射陽縣)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 장민(臧旻)은 흉노 중랑장과 중상(中山)과 태원(太原)의 태수를 역임하였는데, 각 부임지에서 명성을 떨쳤다. 장홍은 체격과 용모가 위풍당당하여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었으며, 효렴에 추천되어 랑이 되었다. 그 당시에 삼서(三署)의 랑을 선발하여 현의 우두머리를 보충했는데, 낭야인 조욱(趙昱)은 여현( 縣)의 장이 되고, 동래인(東萊人) 유요(劉繇)는 하읍현(下邑縣)의 장이 되었으며, 동해인 왕랑(王郞)은 치구현(菑丘縣)의 우두머리가 되고, 장홍은 즉구현(卽丘縣)의 현령이 되었다. 장홍은 영제 말년에 관직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광릉태수 장초가 그를 초청하여 공조(功曹)로 삼았다.
동탁이 황제를 살해하고 국가를 위기에 빠뜨리려고 획책하니 장홍은 장초에게 말했다.
“명공은 대대로 천자의 은혜를 입었고 형제들도 큰 군(郡)을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현재 왕실은 위기에 처하게 되려는데 도적과 간신은 아직 제거되지 않았으니, 이는 진실로 천하에서 정의롭고 열렬한 선비들이 황은에 보답하고 목숨을 바칠 시기입니다. 지금 군의 경계는 아직도 온전하고 관리와 백성들도 풍족하니, 만일 큰 북을 올려 병사를 모으면 2만 명은 소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을 이용하여 국가의 도적을 주살하고, 천하를 위하여 바른 행동을 선도할 수 있으면, 이는 저으이 가운데서 위대한 것입니다.”
장초는 그의 말을 옳다고 여겨, 장홍과 함께 서쪽으로 향하여 진류에 도착, 형 장막을 만나서 이 문제를 은밀히 상의했다. 장막 또한 평소부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으므로 두 사람은 산조(酸棗)에서 만났는데, 장막이 장초에게 말했다.
“아우께서 군수의 직책을 수행함에 있어서 정치․교화․형벌․은덕 등이 아우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장홍을 임용하였기 때문이라고 들었는데, 장홍은 어떤 사람이오?”
장초가 대답했다.
“장홍의 재능과 지략은 저보다 몇 배나 뛰어나므로, 저는 그를 매우 좋아합니다. 그는 천하에서 기이한 인물입니다.”
장막도 즉시 장홍을 불러들여 만나 그와 더불어 말하고는 그를 매우 기이하게 여겼다. 그를 연주자사 유대(劉岱)와 예주(豫州)자사 공주(孔伷)에게 소개하니, 모두 장홍과 친하게 지냈다. 곧이어 제단을 쌓고, 바야흐로 함께 맹서하려는데 여러 주와 군의 자사와 태수는 서로 양보하고 아무도 그 맹주의 역할을 감당하려고 하지 않고 모두들 장홍을 추천했다. 장홍은 곧 제단에 올라가 쟁반에 부어놓은 피를 마시며 맹세하며 말했다.
“한나라 왕실은 불행하게도 황실의 기강이 법통을 잃었으며, 역적같은 신하 동탁이 이 기회를 틈타 국가를 어지럽혀 화가 제왕에까지 미쳤고, 그 잔혹함은 백성들에게까지 흐르고 국가가 파괴되고 천하가 전복되었습니다. 연주자사 유대, 예주자사 공주, 진류태수 장막, 동군태수 교대, 광릉태수 장초 등은 정의로운 군대를 규합하여 모두 국가의 어려움을 구할 것입니다. 무릇 우리들은 함께 맹세하고 마음을 일치시켜 협력함으로써 신하로서의 충성과 절개를 바칠 것이며, 머리를 베일지라도 절대로 두 마음을 갖지 아니할 것입니다. 이런 맹약을 위배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의 목숨을 빼앗아버리고 자손도 모두 없애버리겠습니다. 하늘의 신과 땅의 신이여! 황실과 선조의 신령이여! 실제로 모두 이것을 증명해 주십시오!”
장홍의 말에는 격정된 기운이 흘렀고, 눈물이 좌우로 흘러내렸으며, 그의 말을 듣는 자들은 일개 병졸이든 잡부든 정서가 격앙되지 않은 자가 없었으며, 모두들 목숨을 바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모든 군대는 솔선하여 전진하지도 못하고, 식량이 다 떨어지자 모두들 해산하였다.
장초는 장홍을 대사마 연왕 유우(劉虞)가 있는 곳으로 파견하여 유우를 천자에 옹립하는 일을 모의하였으나, 공손찬의 병난(兵難)을 만나고, 하간(河間)에 이르러 유주와 기주의 군대를 만나 교전하게 되어 사명을 완수할 수 없었다. 그러나 원소는 장홍을 만나자 또 그를 매우 중요시하고 그와 우호관계를 맺었다.
청주자사 초화(焦和)가 죽자 원소는 장홍에게 청주에 남아 다스림으로써 그곳의 백성들을 위로하게 했다. 장홍이 청주에 재임한 지 2년이 되자 도적들은 모두 달아나버렸다. 원소는 그의 능력에 감탄하여 동군태수로 옮기게 하여 동무양(東武陽)을 다스리도록 했다.
조조가 옹구(雍丘)에서 장초를 포위하자, 장초가 말했다.
“단지 장홍에게 의지하면, 그는 당연히 와서 나를 구해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원소와 조조가 바야흐로 화목한 관계이고 장홍은 원소에 의하여 중용되었으니, 그는 반드시 자신의 호기(好機)를 버리고 앞으로의 화를 초래하려고 먼 곳에서 이곳으로 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장초가 말했다.
“자원(子源;장홍의 자)은 천하의 정의로운 선비이므로 끝까지 근본을 배반하지 않겠지만, 단지 원소가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금하여 이곳에 도달하지 못할까 두려울 뿐입니다.”
장초의 소식을 들은 장홍은 과연 맨발로 뛰쳐나와 통곡하면서 휘하에 배치된 군대를 이끄는 동시에 원소에게 가서 병마(兵馬)를 요청하였다. 그가 장초를 구하기 위해 달려가기를 원하였지만, 원소는 끝까지 허락해주지 않았다. 장초는 결국 멸족을 당하였다. 장홍은 이 일로 말미암아 원소에게 원한을 품게 되었으며 그와는 우호관계를 끊어버리고 서로 왕래하지도 않았다.
원소는 군대를 일으켜 장홍을 포위했으나, 해를 넘기도록 함락시키지 못했다.
원소는 장홍과 같은 고향 사람 진림(陳琳)으로 하여금 장홍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게 하여, 저항할 경우와 귀순할 경우의 이해득실을 알려주면서 은덕과 도의에 대해 장홍을 비난하였다.
장홍은 다음과 같이 답장을 썼다.
----- 오랫동안 뵙지 못한 당신을 생각해 심지어 꿈속에서조차 그대를 만났습니다. 다행히 우리들 서로간의 거리는 몇 발짝이면 닿을 뿐인데 서로에 대한 취사선택에 있어서 태도를 달리하기에 서로 만나지도 못합니다. 이것은 슬프기 짝이 없지만, 마음속에 담아둘 수밖에 없습니다. 이전에 그대는 나를 잊지 않고 욕되게도 따사로운 편지를 보내시어 이해득실을 서술하며, 공적이든 사적이든 매우 절실한 배려를 보여주었습니다. 내가 즉시 답장을 보내지 않았던 이유는 한편으로는 나의 학식이 천박하고 재능이 노둔하여 그대의 힐문에 응할 도리가 없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대는 첩실을 데리고 주인(원소)이 있는 곳에서 머물러 휴식을 취하고 있으며 집은 편안히 동주에 있는데, 저는 오히려 주인에게 보복하는 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조건 때문에 사람을 섬기게 되면, 비록 속에 있는 감정을 토로하고 간과 쓸개를 땅에 발라도 몸은 멀어지고 죄를 짓게 되며, 말은 감미롭지만 괴이함을 당하니, 당신의 앞뒤를 서로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찌 다른 사람을 구휼할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그대의 뛰어난 재능에 의지하여 경전을 모두 읽고 이해했으니 어찌 지극한 이치에 장애가 있으며, 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그래도 이러저러하게 말하는 것은 내가 보기에 당신의 말은 진실로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 장차 자신의 재난을 구하려는 생각만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길고 짧은 것을 헤아려 보고 옳고 그른 것을 판별하여 헤아려 본다면, 옳고 그른 것에 대한 논의는 천하에 충분하게 말해지고 있으므로 그것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더욱 모호하게 되니, 그것을 말하지 않아도 손해가 될 일은 없습니다. 또한 당신은 내가 절교를 선언하고 마음을 상심하게 한 도리를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결코 내가 인내를 가지고 할 행동이 아닙니다. 이로 인하여 나는 종이와 붓을 내팽개치고 한마디도 답장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또한 그대가 멀리서 내 마음을 헤아린다면, 나의 생각이 이미 정해져 다시는 바뀌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다시 그대의 편지를 받아보니 편지에는 예로부터 지금까지의 사례를 인용하여 여섯 장의 편지지에 장황하게 썼으니, 내가 비록 답장을 하지 않으려 했더라도, 어찌 내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으리오!
나는 비천한 사람으로서 본래 주인(원소)의 노고로 인해서 큰 주(청주)를 몰래 차지했으니, 주인의 은혜는 깊고 두텁습니다. 내가 어떻게 오늘날까지 즐겁게 지내다가 스스로 돌아와 칼을 들고 싸움을 하겠습니까? 나는 매번 성벽에 올라가 군대를 지휘하고, 주인의 군기와 북을 바라보며, 옛 친구(진림)의 주선에 감동하여 활과 화살을 어루만지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얼굴을 덮을 때도 있었습니다. 어찌하여 이런 것인가요? 스스로 생각하기에 내가 주인을 보좌하는데 있어서 후회할 만한 것도 없었고, 주인께서 나를 대해 주신 것도 보통의 수준을 훨씬 넘었습니다. 내가 임무를 맡았던 처음에는 스스로 큰 일을 한다고 생각하여 함께 한왕실을 받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천자께서 기뻐하지 않으시고, 고향 서주가 공격을 당하고 광릉의 군장(郡將;장초)이 유리(牖里;주나라 문왕이 주왕에게 유폐당했던 곳)의 횡액을 만나게 되고, 진류태수(장막)는 군대를 모집한 것 때문에 공격당하고, 구조하려는 계획은 지지부진하고 충효의 명분을 상실하여 채찍을 잡고 떠나가면서 교우의 의리를 훼손시켰습니다. 이 두 방면의 원인을 헤아린다면, 그것은 어찌 할 수 없는 상황하에서 있었던 것이니, 충효의 명분을 상실하는 것과 사귀는 벗 사이의 도리를 훼손시키는 것은 그 가볍고 무거운 정도가 다른 길이며, 친하고 소원한 것도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눈물을 거두고 주인과의 절교를 선언했던 것입니다. 만일 주인이 친구에게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마음을 갖고, 남아있는 자들에게는 자리를 비껴주어 경의를 나타내고, 떠나간 자에게는 사사로운 원망을 없애고, 떠나간 친구들에게는 황급히 복수하지 않고 형벌을 실시하여 자신을 보좌하게 한다면, 나는 계찰(季札)의 겸양의 뜻을 높이 사서 오늘의 전쟁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무엇으로 나의 말을 증명할까요? 옛날 장경명(張景明;張導)은 직접 단에 올라가 피를 마시며 맹세하였고, 주인의 명을 받아 동분서주하여 한복에게서 기주목의 인장을 양도하도록 하여 주인이 영토를 얻게 하였습니다. 그런 연후에 장도는 단지 임명을 받고 천자를 알현하였으며 작위를 하사받아 자손에게 전해줄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는 이유로 눈 깜짝할 사이에 과실을 살피는 용서를 얻지 못하였기에 일족이 모두 죽임을 당하는 재난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여봉선(呂奉先;여포)은 동탁을 토벌하러 가기 전에 지원병을 부탁했지만 얻지 못하자, 떠날 것을 알렸는데, 또 무슨 죄가 있습니까? 그러나 여포는 주인 등의 자객에 의해 목숨을 잃을 뻔한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유자황(劉子皇;劉動)은 사자로 파견되어 기일이 넘었는데도 사명을 완수할 수 없게 되자, 그 위세를 두려워하고 육친을 가엾게 여겨 거짓으로 귀국하기를 원하였으므로, 충효의 마음을 갖고 있으며 패도(覇道)에는 어떠한 손실도 없게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깃발 아래의 시체가 되어 죄를 줄이거나 면할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나는 비록 어리석고 시작과 끝을 예측하거나 미미한 징후를 보고 명백한 결말을 예언할 수는 없는 사람이지만, 주인의 생각을 추측할 수는 있습니다. 어떻게 하여 이 세사람의 죽음이 당연하고 사형에 해당하는 처벌을 받게 되었습니까? 실제로 주인은 산동지역(동중국)을 통일하고 병사를 증강시키는 적을 토벌하려고 했지만, 또한 병사들의 의심하는 마음을 막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때문에 천자의 명령을 버리고 독단적으로 정권을 휘두르는 것을 존중하게 된 것이고, 주인의 원칙에 동조하는 자는 영달을 입고, 떠나려는 준비를 하는 사람은 처형을 한 것입니다. 때문에 나는 전인(장초)의 예로써 개인의 교훈으로 삼아 길이 없는 곳으로 달려가 필사적으로 싸울 것입니다. 나는 미천하고 어리석은 사람이지만 일찍이 군자의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께서 초래한 것입니다. 결국 내가 나라와 백성을 버리고 이 성에 명령권을 행사하는 것은 확실히 ‘군자는 망해도 적군에 투항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 때문에 나는 주인께 죄를 짓게 되어 3개월 이상 포위되어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대는 이 이치를 이끌어 나에게 경고했지만, 말은 같아도 내용은 차이가 있고, 군자가 그만두고 배척할 바는 아닌 것입니다.
내가 듣기로는 의로운 사람은 부모를 배신하지 않으며 충성스런 사람은 군주에게 거스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런 연고로 나는 동쪽 향리에 있는 주(서주)를 존숭하여 구원병을 삼고, 안으로는 군장(郡將)을 둠으로써 사직을 안정시키려 합니다. 한 번 행동으로 두 가지 이익을 얻게 되어 충성과 효도를 다하려는데 어찌하여 제가 잘못되었다고 하십니까? 당신은 도리어 저로 하여금 근본을 경시하고 집을 파괴하고 군주를 주인과 동등하게 대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인과 나의 관계는 연령으로보는 나보다 더 연장이지만, 정분 사이로는 나와 독실한 친구 사이이니, 길은 다르더라도 고별사를 하고 떠남으로써 군주와 부모를 안정시키니, 보통 정서에 순응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대의 견해에 의한다면, 초나라의 신포서(申包胥)는 친구 오원(俉員)에게 생명을 바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진나라 조정에서 통곡한 것은 이치가 맞지 않는 것입니다. 그대는 구구하게 내환을 제거해버리고 스스로 만족하여 오히려 그대의 말이 도리에 어긋나는 것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대는 아마도 성의 포위망이 풀리지 않는 것과 구원병이 오지 않는 것을 보려고 하는데, 인척간의 의리에 마음을 움직이고, 평소의 우애를 생각하고 절개를 굽히고 구차스럽게 살아가니, 정의를 지나치게 지켜 파멸했다고 생각됩니다. 옛날(춘추시대 제나라) 안영(晏嬰)은 제나라 장공을 살해한 최서(崔 )의 날카로운 칼에 당했지만 뜻을 굽히지 않았고, 남사(南史)는 최서의 대역죄를 적는 붓을 꺾어 구차한 삶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자태는 그림 속에 묘사되고, 명성은 후세에까지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하물며 나는 철벽같은 성을 지키고 병사와 백성들의 힘을 모아 3년분을 저장하고 1년분을 풀어 곤궁한 사람들을 구제하고, 가난한 사람에게 보급하였기에 천하 사람들이 기뻐하고 있습니다. 주인이 이곳에 성을 쌓고 병사들을 들녘에 분산시켜 경작하도록 하고 오랫동안 주둔시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단지 두려운 것은 가을 바람이 길 위의 먼지를 날릴 때, 백규(공손찬의 자)가 말머리를 남쪽으로 하여 공격하고, 장양(張楊)․장연(張燕)이 강한 힘을 같이 내고, 북쪽 변방지대가 긴급함을 알려오고, 좌우 신하들이 돌아가기를 간청하는 것입니다. 주인은 응당 우리들의 생각을 명확히 살피고 깃발을 돌려 군대를 철수하여 돌아와 업성에 군대를 주둔시키십시오. 어떻게 오랫동안 노여워하고 치욕스러워하면서 우리 성 아래에서 위풍을 보일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제가 흑산적에 의지하여 구원병을 만들었다고 비난하지만, 주인께서 황건적과 연합한 사실을 생각지 못하십니까? 더구나 장연 등은 이미 천자의 임명을 받았습니다.
옛날 한고조는 거야의 소택지대에서 팽월(彭越)을 수복시키고, 광무제는 녹림(綠林)에서 초석을 쌓아 마침내 중흥시켜 자리를 이어 제업을 성취하였습니다. 만일 군주를 보조하여 교화를 흥하게 할 수 있었다면, 또 무엇 때문에 버릴 수 있었겠습니까? 하물며 나는 직접 조칙을 받들어 그들과 행동을 한 것입니다.
떠나십시오! 공장(진림)이여! 그대는 고향 밖으로 나와 이익을 구하였지만, 나는 군주의 명령을 받들었습니다. 그대는 매우(원소)에게 그 몸을 의탁했지만 나는 장안에서 관리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대는 제 몸이 죽었으므로 이름은 사라졌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대의 생사가 모두 들리지 않음을 비웃고 있습니다. 슬픕니다! 우리는 근본은 서로 같지만 가는 길이 다릅니다. 그대는 스스로 노력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또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원소는 장홍이 진림에게 쓴 편지를 보고 그가 투항할 의사가 없음을 알고 병사를 증가시켜 맹공하였다.
성안의 양식이 다 떨어졌고, 밖으로부터 강성한 구원병도 없자, 장홍은 스스로 이 어려움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헤아리고 관리들과 병사들을 소집하여 일러 말했다.
“원씨(袁氏;원소)는 도의가 없어 일을 도모함에 원칙도 없고, 또 나의 군(광릉)에 있는 장수(장초)를 구조해 주지도 않았다. 나 장홍은 대의를 위하여 하는 수 없이 죽으니, 여러분들은 일도 없이 공연히 이런 화를 만나게 되었음을 유념하라! 성이 함락되기 이전에 처자들을 데리고 탈출하라.”
장군, 관리, 병사, 백성들이 모두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명공은 원소와 본래 원한도 없었는데 지금은 이 나라 조정과 군장을 위한 까닭에 스스로 이런 파멸과 곤궁을 초래하였으니, 저희들이 어떻게 차마 명공을 버리고 떠날 수 있겠습니까?”
처음에는 모두들 쥐를 찾아내고 죽순을 삶어서 먹었으나, 나중에는 더 이상 먹을 것도 없었다. 주부가 내주(內廚)를 열어 쌀 서 말을 꺼내와서 조금씩 나누어 죽을 끓여 장홍에게만 먹이려 하니, 장홍이 탄식하며 말했다.
“이것을 나 혼자 먹으면 어찌하는가?”
장홍은 주부에게 죽을 끓이게 하고는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 먹게하고 그의 애첩을 죽여 장수와 선비들을 먹였다. 장수와 선비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며 얼굴을 쳐들고 바라볼 수도 없었다. 결국 남녀 모두 7,8천 명이 서로 베고 죽었으며, 성을 떠나거나 배반한 자가 아무도 없었다.
성이 함락되자 원소는 장홍을 사로잡았다. 원소는 본래 장홍을 좋아하였으므로 휘장을 성대하게 쳐놓고, 여러 장수들을 대대적으로 소집하여 장홍을 만나서 말했다.
“장홍, 너는 어찌하여 이처럼 나를 배반하는가! 지금 항복하는 것이 어떤가?”
장홍은 땅에 서서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원씨 가문은 모두 한왕조를 섬겨 4대에 걸쳐오면서 5명의 삼공을 배출하였으니, 은혜를 받았다고 말할 수 있다. 지금은 왕실이 쇠약해졌는데, 너는 왕실을 도우려는 뜻은 없고 이 기회를 이용하여 분수에 맞지 않는 망상을 획책하여 충성스런 신하와 어진 장수를 대부분 죽이고 간사한 위신을 세우려 하고 있다. 나는 네가 장진류(張陳留;장막)를 불러 형장(兄張)으로 삼는 것을 직접 보았는데, 그렇다면 나 부군(장초)도 마땅히 네 아우가 되어야 한다. 우리들은 공동으로 힘을 합쳐 국가를 위해서 해악을 제거해야지, 어찌 백성들을 이끌고 다른 사람을 바라보면서 살해하고 멸하는가! 나의 힘이 왜소하므로 칼을 빼들고 천하 사람들을 위하여 원수를 갚지 못하는 것을 애석해 할 따름이거늘 무슨 항복이란 말인가!"
원소는 본래 장홍을 아꼈으므로 그의 의도는 장홍으로 하여금 굴복하게 하여 사면해 주려는 생각이었으나, 장홍의 말이 굳세어 끝까지 자기에게 등용될 수 없음을 알고는 그를 죽였다. 장홍과 같은 고향 사람 진용(陳容)은 나이가 어릴 때 서생이었는데 장홍을 우러러 사모하여 장홍을 따라서 동군(東郡)의 승(丞)에 부임하였는데, 성이 함락되기 전에 장홍은 그를 성밖으로 내보냈다. 원소는 그에게 함께 앉기를 명령하였다. 장홍이 죽음을 당하는 것을 보고는 일어나 원소에게 말했다.
“장군은 큰 일을 일으켜 천하를 위하여 포악을 제거하려는데, 오히려 오로지 충성스럽고 정의로운 사람을 먼저 죽이니 어찌 하늘의 뜻에 부합되겠소? 장홍이 군사를 일으킨 것은 군의 장수를 위한 것인데 어째서 그를 죽이는 것이오?”
원소는 부끄러워서 좌우에 있는 사람들에게 진용을 밖으로 끌고 나가게 하고서 그에게 말했다.
“너는 장홍의 동료가 아니거늘 헛되이 죽으려 하는가?”
진용이 돌아보며 말했다.
“대체로 어질고 의로움이 어찌 항상 존재할 수 있겠소. 그것을 실천하면 군자가 되고, 그것을 배반하면 소인이 되는 것이오. 오늘 차라리 장홍과 같은 날에 죽는 것이 장군과 더불어 같은 날에 사는 것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오.”
그 역시 죽음을 당했다. 원소와 함께 앉아있던 사람들은 탄식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니, 몰래 서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찌하여 하루아침에 충성스런 선비를 두 명씩이나 죽이는가!”
이 일이 있기 전에 장홍은 사마 두 명을 성밖으로 내보내어 여포에게 구원을 요청했는데, 그들이 돌아왔을 때 성은 이미 함락되었고 두 사람도 적진에서 죽음을 당했다.
*평하여 말한다. ----- 여포는 사나운 호랑이 같이 용맹스러웠으나, 뛰어난 재능이나 특이한 모략이 없었고, 천박하고 교활하며 번복하기를 잘하며, 오직 이익만 보고 일을 도모하였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사람이 없었던 적은 없었다. 옛날 전한의 광무제는 방맹(龐萌)에게 기만을 당했으며, 가까이로는 위나라 조조도 장막에게 화를 입었다. 다른 사람을 아는 것은 지혜로운 사람이라야 가능하고, 오직 황제라야만 어려움을 해결하니 정녕 옳도다! 진등과 장홍은 모두 영웅의 기개와 장사의 절개가 있었으나 진등은 성년이 되어 세상을 떠나 공적을 세우지도 못하였고, 장홍은 약소한 군대로서 강대한 적을 대하여 원대한 뜻을 세우지도 못하였으니, 애석하도다!
첫댓글 우와 역시 삼국지 인물이 많이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