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마가(千年魔家)의 충신(忠臣)들
마무정은 육대비전을 익히지 않았다. 이유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의 뇌리에는 그가 배운 것 이상의 구결이 들어 있었다. 그 중에는 마가의 수법을 세 배 뛰어넘는 무공이 여럿이었다.
마무정은 왜 그것을 알고 있는지 말할 수 없었다. 자신조차 그 사연을 알지 못하기에.
하여간, 그는 하루에 세 알씩의 혈화단(血花丹)을 먹고 내공을 키우는 가운데 사대천마수를 주로 익혔다.
사우마검(死雨魔劍),
뇌정마라궁(雷霆魔羅弓),
천폭혈화참(天爆血花斬),
혈화등천무(血花騰天霧)…….
가공할 마공이고, 시전하는 찰나 극악한 마기를 흘리는 수법이다. 그리고 익히는 것만으로도 마인(魔人)이 되는 마공인데, 마무정은 극마지경에 이르렀기에 마공을 터득하면서도 마인이 되지 않았다.
마박사 후백은 그 덕에 새로운 습관 하나을 갖게 되었다.
즉, 그는 다시 책을 읽게 된 것이다.
"아마도 세상에는 속하가 모르는 것이 아직 많나 봅니다. 속하는 지혜에 너무 자만하고 있었는가 봅니다!"
그가 모른다 하는 것은 바로 마무정이었다.
"속하는 초학(初學)의 심정입니다. 헛헛……!"
웃는 마박사는 백발이 아니라, 흑발이었다.
그는 이제 검은 머리를 희게 염색하지 않고 검은 머리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병야는 늘 화롯가에 있었다. 그는 자신의 충성을 보이기 위해 마무정에게 한 자루 검을 바칠 예정이었다.
흑강은 마병야와 더불어 지내면서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마공초식을 익히며 시간이 가기를 기다렸다.
마무정은 천년절곡의 마화정(魔花庭)을 걷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떠오르는 태양(太陽)을 담고 있었다.
불끈 치솟아 오르는 거대한 광구(光球)!
아아, 천 년의 태양이여!
마무정은 거대한 힘이 솟구침을 느꼈다.
"저 태양을 숭앙하듯, 세상은 전 마가를 숭상하게 되리라!"
그의 입가에는 단아한 미소가 매달렸다.
섬약해 보이는 약관의 청년, 그의 몸 안에는 인간의 지혜로는 상상하지 못할 가공할 잠재력이 숨어 있다.
그 힘은 바로 천마단공(天魔丹功)!
그것을 이룩한 사람은 천 년에 오직 한 사람, 마무정뿐이었다.
그의 천마단공은 이제 삼 성(成). 하지만 그 경지만 하더라도 고금의 무공서열에서 절대적인 경지라 할 수 있었다.
"어쩌면 나의 적은 마유정과 그의 추종자들이 아니라, 나 자신일지 모른다!"
마무정은 걸음을 내딛었다.
문득, 그는 나무 한 그루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정원의 수천 종 나무들 가운데 유난히도 그의 눈길을 끄는 나무 한 그루가 있다.
"꽃도 피워 내지 못하는 녀석!"
마무정은 손을 천천히 내밀었다.
그 나무는 바로 무화과(無花果)였다.
'왜 무화과 나뭇가지가 나의 마음을 잡아끄는지 모르겠다.'
마무정은 잔가지 하나를 손에 쥐었다. 이상하게도 가슴 한 구석이 허전해지는 기분이었다.
"모를 일이다, 나의 마음이 왜 이리 흔들리는지. 출관이 가까워졌는데, 어이해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는 것인지……!"
마무정은 한숨을 가볍게 내쉬었다.
바로 그 때, 마무정 뒤로 거탑(巨塔) 하나가 떨어져 내렸다.
"대총수(大總帥)!"
산같이 거대한 체구를 지닌 철포인(鐵袍人), 바로 천마탁탑(天魔托塔) 흑강이었다.
"마박사가 마뇌재(魔腦齋)에서 대총수를 뵈옵고자 하십니다!"
"마박사? 그가 나를 부르다니… 그럼 그의 머리에 천하대계가 세워진 모양이구먼?"
"그런가 봅니다. 마박사는 생각이 잘 나지 않을 때마다 차디찬 빙옥석(氷玉石) 위에 쭈그리고 앉습니다. 차가운 기운이 몸 안으로 흘러들면 정신이 맑아져 좋은 생각이 잘 난다던가요?"
"……."
마박사는 마뇌재에 기거한다. 그 곳은 지극히 차가운 장소였다.
마박사가 무서재에서 마뇌재로 거처를 옮긴 지도 어언 삼십 일이었다.
마박사는 그 사이 아무것도 취하지 않았다. 그는 단 한 방울의 물도 먹지 않았고, 한 숟갈의 밥도 먹지 않았다.
그는 석상으로 화한 양 꼼짝하지 않고 빙옥석 위에 앉아 있었다.
차가운 기류가 흐르는 방 안, 마박사는 월의(月衣) 위에 서리를 뒤덮은 채 마무정을 맞이했다.
그는 여기 들어오기 이전, 마무정에게 약속한 바 있었다.
자신의 모든 지혜를 다 동원해 천하대계를 세우겠다고!
그는 웃고 있었다.
"속하, 실망을 드리지 않게 되었나 보외다!"
그는 마무정이 흑강과 더불어 들어서자, 넙죽 절을 했다.
"그래, 묘안이 생겼소?"
마무정은 서리 덮인 마뇌재 바닥을 딛고 섰다.
그는 바다(海)와 같았다. 그 어떤 것으로도 그를 동요시킬 수 없어 보였다.
"있습니다! 그것은 삼 단계로 나뉘어지는 천하정복계(天下征服計)입니다!"
"삼 단계?"
"예!"
"말해 보오!"
"속하는 대총수가 말씀해 주신 당세의 정세를 토대로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잠룡(潛龍)과 혈룡(血龍)과 비룡(飛龍)의 계(計)를 세웠습니다!"
잠룡, 혈룡, 비룡지계.
마박사는 마른침을 삼키며 그 하나하나를 설명했다.
"잠룡의 단계란 대총수의 출현을 소문내지 않는 가운데, 마화성(魔花城)에 들 십 장로의 세력을 모두 모으는 단계입니다!"
"……!"
"소문을 내지 않는 이유는 마유정이란 자를 추종하는 무리들을 동요시키지 않기 위함입니다!"
"왜?"
"그 이유는 그들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다른 세력이 무섭기 때문입니다!"
마박사는 눈빛을 강하게 흘린다.
그가 두려워하는 집단도 있다니?
"만에 하나, 처음부터 구대마가의 처단을 시작한다면 중원마도계는 파란을 만날 것이고… 그 와중에 백도가 살아나고 변황이 커집니다!"
"흠, 가능하오!"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반대자들을 처단하되, 세력을 손상시키면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
"상대의 힘이 그 정도로 큰가?"
"백도는 천하의 밝은 곳을 모두 지배하고 있으며, 사천황궁(死天皇宮)은 천축 일대와 신강, 몽고 일대의 일백팔 개 무림세력을 규합하고 있습니다!"
"아……!"
"물론 절정고수는 대총수 휘하에 가장 많이 있습니다만, 정복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세력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 마가를 일대 통합하기 전에는 잠룡의 상태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박사는 잠깐 말을 끊었다.
그는 마무정이 자신의 의사에 동조하는 눈치를 보이자, 헛기침하며 두 번째의 계략을 이야기했다.
혈룡대계(血龍大計).
그 단계의 계략은 천하를 혈세하는 계략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 때까지도 마무정의 세력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먼저, 가짜 마화삼이 일어나게 내버려 두어야 합니다!"
"왜?"
"그 자의 휘하에 있는 자들은 굶주린 자들입니다!"
"흠!"
"굶주렸다는 것은 싸우고 싶어한다는 것이지요."
"……!"
"구대마가는 힘을 천하에 인정받고 싶어하고, 보다 많은 전리품을 얻고자 합니다! 결국 그들은 백도를 상대로 싸움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것은 필연적인 사실입니다!"
"짐작이 가는군!"
마무정은 나직이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박사도 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단계에 이르러 대총수는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셔야 합니다!"
"어떻게?"
"백도의 한편으로!"
"백, 백도?"
"백도의 굴복을 받기는 힘든 일입니다! 그들 정대문파의 뿌리는 천년마가(千年魔家)보다도 오래 되었습니다!"
"……!"
"소림사(少林寺)와 무당파(武當派) 뿐 아니라 개방(蓋幇), 아미(峨嵋) 등의 방파는 무수한 속가제자(俗家弟子)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그렇소! 그들은 거대하오!"
"그들은 거인(巨人)입니다. 머리가 작기는 하나!"
"……!"
"그들을 죽이기는 불가능합니다. 황제라 하더라도 구파일방은 멸망시키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유정이 치게 하고, 대총수는 뒤에서 실리를 취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뒤에서?"
"백도는 필히 마유정이라는 애송이에게 핍박을 받게 될 것입니다."
"……!"
"결국 세력이 위축되다 못해 방조자를 찾게 될 것이고, 그 때 대총수는 그들 앞에 나타나셔야 합니다!"
"아……."
"훗훗… 그 다음, 비룡지계(飛龍之計)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비룡지계!
그것은 천하일통의 계를 말한다.
용이 하늘로 날아오르듯, 천 년의 마력으로 중원의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자는 것이 바로 비룡지계의 뜻이었다.
"백도는 대총수 휘하에 들 것이고, 대총수는 그들을 이끌며 구대마가를 섬멸하게 되시는 것입니다!"
"……!"
"그 다음에는 중원의 모든 힘을 모아 천하를 얻으실 것입니다!"
"훌륭한 방법이오!"
"속하, 대총수께 충성할 뿐입니다!"
"훗훗……!"
마무정이 미소지었다.
"그 모든 것을 위해서는 한 가지 마계(魔計)가 필요합니다!"
"또 무엇이오?"
"역전지계(逆戰之計)라는 것입니다!"
마박사의 머릿속에는 신산귀계(神算鬼計)가 가득했다. 그는 생각하는 기계와 같은 사람이었다.
"역전지계라 함은 가장 가공할 병법입니다! 그것은 일단 구대마가에게 승리를 주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승리를?"
"예."
"어째서? 그리고 어떻게?"
"그들은 강하나, 싸움을 시작하기에는 조금 모자랍니다."
"……!"
"대총수는 천(千)의 신분을 가지시고, 한 손으로는 내실을 기하고 한 손으로는 그들을 도와 주어야 합니다! 즉, 삼만(三萬) 정도의 고수를 그들에게 보내 주어 그들의 망상에 불을 붙이자는 것입니다!"
"음……."
"그들은 호랑이가 날개를 얻었다고 착각하고 세력을 일으킬 것이고……."
마박사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더 이상 말하나마나 하다는 표정이었다. 마무정은 그가 하지 않은 말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다. 나의 세력을 그들에게 주면 그들은 기세가 살아나 백도를 상대로 싸울 것이고, 백도는 위축되어 동조자를 찾을 것이다. 그 때 나는 새로운 신분으로 나타나며, 나의 세력을 철수시킨다. 그러자면…….'
마무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천하는… 내게 쥐어질 것이다. 물론 큰 희생이 있을 것이나, 야망(野望)을 위해서는 희생이 불가피하지 않는가?'
마무정은 그렇게 생각하다가 문득 한숨 소리를 냈다.
"모든 것이 이룩되기 위해서는 시일이 얼마나 걸리는가?"
"글쎄요. 이미 천 년(年)이 걸렸으니……."
"……!"
"위사대(衛士隊)만 제대로 부활되고, 여기 없는 칠 장로의 세력이 예정대로 건재하다 가정한다면 십 년이면 되겠지요."
"십 년? 너무 길군!"
"흠, 더 줄일 수 있는 길은 없소?"
"있습니다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 길은 무엇이오?"
"대총수의 무공이 지금보다 세 배 강하게 될 경우에는 가능합니다. 세 가지 계획을 추진할 것도 없이 적의 수뇌들을 하나하나 꺾는다면… 아마 일 년 안에 천하일통이 가능하겠지요."
"흠……."
"훗훗… 그게 아니라면 황제의 군사를 모두 빌릴 수 있게 되거나, 천하 모든 사람의 진심에 찬 숭상을 받는다던가!"
마박사가 비아냥대듯 운을 떼자, 마무정은 명하듯 말했다.
"군사(軍師)라면 모든 일의 가능성을 배제해야 하니, 그것도 환상이라 여기지 말고 늘 치밀히 생각하시오!"
"대총수는 욕심이 많으십니다!"
마박사는 환하게 웃었다.
"그렇소, 나는 욕심꾸러기요. 훗훗……!"
마무정은 천천히 신형을 틀었다. 그는 문 쪽으로 가며…….
"그리고 고집쟁이요."
"고, 고집쟁이라니요?"
"글쎄, 차차 알게 될 것이오. 나란 사람에 대해서는."
마무정은 흐르는 빙무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가벼운 발자국 소리를 끌며 신형을 감췄다.
마박사는 그가 사라져 가는 것을 오랫동안 바라봤다.
"기개(氣槪)를 나는 느낀다. 하늘을 덮는 기개를. 하나, 그 기개는 마가 전통적 패악한 기개가 아니라 걱정스럽다. 왠지 맑고 힘차다. 마치 영웅(英雄)의 기개인 양!"
그는 고개를 젖고 있었다. 그는 지금 자신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여기고 있었다.
철관(鐵關), 천년절곡 안의 장소이다.
이 곳은 살아 있는 것의 체취가 전무한 장소였다.
강하고 단단하고, 질긴 금석만이 있는 곳.
보이는 것은 모두 쇳덩어리였고, 느껴지는 것은 뜨거운 기운 뿐이었다.
창해한철석(蒼海寒鐵石),
흑오석(黑烏石),
설화빈철석(雪花賓鐵石),
자금사(紫金砂),
만년적동(萬年赤銅)…….
거대한 쇳덩어리들.
보기는 흉측하나 엄청난 쓰임새가 있어, 팔 경우에는 황금보다도 많은 값을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마병야는 오랫동안 거기 있었다. 그는 담금질을 마친 상태였다.
마병야 호연굉, 그는 마가제일의 단야가(鍛冶家) 출신이었다.
그의 호연가(胡延家)는 쇠를 다루며 수천 년을 지냈다.
결과, 그들은 쇠를 물처럼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마병야 호연굉은 지금 화무(火霧) 가운데 있었다.
우그르르르-!
화무가 십 장 높이로 치솟고 있고, 불기둥이 버섯 모양으로 치솟고 있었다.
거대무비한 철로(鐵爐), 그 안에 무엇인가가 들어 있었다.
호연굉은 그 앞에 서서 마무정을 바라봤다.
"속하는 혼(魂)으로 검을 만들었습니다. 결과는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대총수는 기(氣)를 느끼실 것입니다!"
"느끼오. 철로 안에 무엇인가가 살아 있음을!"
"예, 그것은 바로 검기입니다. 철관의 백 가지 신철(神鐵)을 모두 녹여 만든 한 자루 천마병(天魔兵)이 생명을 얻어 가는 기운이 바로 그것입니다!"
신철(神鐵), 그것 역시 마무정에게 남겨진 유산 중 하나였다.
마병야는 신철을 모두 녹여 한 자루의 검을 만들었다.
삼십삼 일(三十三日), 그는 쇳물과 함께 삼십삼 일을 지냈다.
"대총수를 위해 모든 것을 불어넣었습니다. 아마도… 천하에서 가장 마성이 강한 마병이 나타날 것입니다!
"마… 병(魔兵)?"
"예, 대총사가 장차 지니실 마병(魔兵)에 훼손됨이 없는 그런 마물이 탄생할 것입니다."
마병야는 어깨를 으쓱였다.
검은 단야하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단야하는 사람이 하는 것은 불을 지피는 일뿐이다.
일반 병장기는 쇳물을 틀에 부어 주조한 후, 백 번의 담금질을 통해 만든다. 하나, 이 안에서의 단야는 그러하지 않았다.
"이 곳에서는… 기(氣)로 검을 만듭니다. 다시 말해, 속하는 총수의 기를 빌려 검을 만든 것입니다! 일컬어 호연가의 비검 인혼연검술(引魂鍊劍術)이지요."
마병야는 희희낙락해하는데, 철로의 화가가 극강해지며 화무가 사방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콰아아- 콰아아-!
철관 바닥이 타 들어가기 시작했다.
돌이 검게 타고, 쇠가 지글지글 녹기 시작했다.
미친 불길이 사방으로 튀고, 쇳물이 빗방울처럼 튀었다.
콰아아- 콰아아-!
"때가 되었습니다. 마검이 나타날 때가!"
화무충천(火霧衝天)!
화룡이 떼를 이루어 날아오르는 듯하더니, 돌연 거대한 철로가 반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축을 끊는 울부짖음 소리가 나면서 뜨거운 불바람을 가르며 하나의 빛줄기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아, 한 마리 용(龍)!
불의 용 한 마리가 둥실 떠오르더니, 사방이 불바람으로 메워졌다. 무시무시한 열파가 철관 안을 휘몰아치자, 마병야는 왠지 두려움을 느끼고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이… 이런 일은 처음인데?"
"좋아, 좋아! 너의 거대(巨大)한 기운이 마음에 든다."
마무정은 근자에 드물게 기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희고 아름다운 손이 내밀어질 때, 거대한 화룡(火龍)은 돌연 허공에서 방향을 틀며 마무정의 손 안으로 날아들었다.
아아, 불의 수레여!
마무정은 일순, 불기둥 안으로 사라졌다.
보이는 것은 거대무비한 신화주(神火柱).
마무정도 없고, 화룡도 없다.
콰르르르- 릉-!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굉음이 일 때였다.
"대총수, 어… 어디 계시오? 그… 그 불줄기는 무엇이오?"
마병야는 겁을 집어먹고 주춤거리는데, 불바람 속에서 마무정의 호된 기합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내게 복종해야 한다, 너는!"
그는 화무 속에서 검의 혼과 싸우고 있는 것인가?
우우… 우… 우……!
오오, 어디에서 용의 울부짖음 소리가 들리는 것인가?
보라! 찬연하던 불기둥이 사라져 가는 것을.
수천 개의 불수레가 하나의 점을 이루며 작아져 가고, 그 점은 바로 마무정의 손바닥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마무정은 둥실 떠 있었다. 그의 손바닥 위에는 뜨겁게 달아오르는 검(劍)이 한 자루 쥐어져 있었다.
이 척 오 촌, 그것이 바로 화룡의 진면목이었을까?
검의 기운은 마무정의 기개에 완전히 제압당한 듯했다.
야생마가 길들여지듯 검은 길들여졌다.
검은 웅장한 소리를 내는 가운데, 화기를 잃어 갔다.
"하하… 대단한데? 마병야, 그대의 연검술은 역시 일품이오. 이 녀석은 내 마음에 쏘옥 드는구려!"
마무정은 웃으며 마병야를 바라봤다. 마병야는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 그게 아닙니다, 대총수!"
그는 아예 울상이었다. 그는 심한 낭패감에 빠진 듯 엉거주춤 서 있는 자세로 내뱉았다.
"마, 마병을 만들려 했는데… 신병(神兵) 출현입니다. 그것을 부숴야 합니다. 대총사, 불이 미친 듯합니다!"
"신병이라고?"
"속하는 천마단령검(天魔丹靈劍)이라는 전설적인 마병을 만들려 했는데, 일이 잘못되어 천뢰전룡검(天雷戰龍劍)이 만들어졌습니다. 그것은… 모든 마의 기운을 끊는다는 전설상의 신병이기(神兵異器)입니다!"
"천마단령검이 아니라, 천뢰전룡검?"
마무정은 표정을 굳힌다.
마병이 아니라, 신병이라니?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마무정은 검을 들여다본다.
우우웅……!
검은 살아 있는 물체인 듯, 혼(魂)이 있는 울음소리를 냈다.
짧은 순간에 검의 화기는 마무정의 몸 안으로 흘러들 듯, 검신은 지극히 맑고 깨끗했다.
검은 그의 얼굴을 뚜렷이 반사시켰다.
마무정은 마병야를 힐끔 보며 입술을 열었다.
"천뢰전룡검과 천마단령검! 둘 중 어느것이 더 강한가?"
"강하기는… 천뢰전룡검 쪽입니다!"
"그럼 됐네. 이제 이 물건은 나의 애검(愛劍)이 될 것이니,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말게나!"
"신, 신병을 계속 쓰시려고요?"
"하하… 마병야, 그대가 할 일은 이 검에 조각을 하고 검집을 만들어 끼우는 일뿐이니 그리 하게!"
"대총수, 그게 아닙니다!"
"하하… 그것이든 아니든, 결정할 사람은 나네. 알겠는가?"
마무정은 늘 책을 보며 지냈다.
그가 출관의 날을 기다리며 보는 책은 주로 구대마가(九大魔家)의 비전절예에 대한 것을 기록한 마경(魔經)이었다.
구대마가는 절대마가와는 다른 뿌리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마도절기들은 부분 부분에서 절대마가의 것 이상이었다.
삼십일대 혈화삼은 그 이유를 이렇게 적었다.
<절대마가의 후예들은 무공만으로도 만사(萬事)를 처리할 수 있기에, 여타의 기예에 대해서는 등한시했다.
반면 구대마가의 사람들은 무공으로는 절대마가를 능가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기에, 다른 것들을 집중해서 개발시켰다.
그들의 절기는 예(藝)가 아니라 기(技)다.>
절대마가의 무공은 도(道)에 이른 것이었다. 반면, 구대마가의 것은 기의 경지에 이른 것이었다.
뇌정세가(雷霆世家).
그 곳 인물들은 비도술(飛刀術)과 암기술(暗器術)에 능하다.
그들은 화기술(火器術)과 비탄술(飛彈術)에 능한 마병세가(魔兵世家)와 대대로 혼약을 맺었다.
결국 양대세가의 힘은 하나로 뭉쳤고, 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마도의 암기술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 외, 호접세가(胡蝶世家)와 화화세가(花花世家)에서는 방중비기(房中秘技)들이 발달했다.
호접세가나 화화세가는 모두 창굴(娼窟)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다. 그들은 천하의 여인조직을 주무르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그들은 자연히 마약과 미혼술(迷魂術)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창굴에 들기를 거절하는 미인들을 다스리기 위해 마약이 필요했고, 그들은 독술에 천재들인 천외마가(天外魔家)를 동반자로 선택했다.
월영세가(月影世家)는 상재(商財)에 능하다. 그들은 고리채(高利債)로 부귀를 누린다.
그들의 자금은 마약과도 같다. 그들은 자금이 필요한 자들에게 황금을 주고 고리채를 뜯는다. 그리고 그들은 암중에서 다시 망하게 하고, 그들의 재산을 빼앗고 그들을 노예로 만든다.
무장세가(武藏世家).
이들은 왜구(倭寇)들과도 손이 닿아 있다. 이들은 도굴(盜掘)을 주로 하고, 비적(匪賊) 짓도 서슴지 않는다.
이들은 일국(日國)의 흑도조직이라는 국화방(菊花幇)의 창건을 돕기도 했고, 천산남북로(天山南北路)의 비적들을 배후에서 조종하기도 했다.
천하를 상대로 피바람을 일으키는 무리들, 이들이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
환락(歡樂).
그것이 바로 이들 구대마가와 절대마가의 상이점이었다.
절대마가는 환락이 아니라 야망(野望)을 바란다. 그래서 늘 구대마가와 충돌하곤 하는 것이다.
마무정은 출관에 앞서 세 가지를 시험받았다.
첫째 시험은, 마박사의 지혜 시험이었다.
두 사람은 일 장 거리를 두고 마주 앉았고, 마박사의 질문이 폭우처럼 퍼부어졌다.
마박사는 마교에서부터 유래된 고금마가의 모든 것을 외우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두서 없이 질문했고, 마무정은 질문을 즉시 응답해야만 했다.
열 중 일곱 개를 맞춰야 시험에 통과한다.
마문관(魔文關).
마박사는 마문관의 관주가 되어 마무정을 시험했다.
"구백 년 전 소림사의 광자성승(光慈聖僧)이 이끌던 백팔나한(百八羅漢)에 잡힌 후에도 마성(魔性)을 버리지 않고 자결한 마가의 영웅이 누군지 아십니까?"
마박사의 첫 번째 질문은 그런 것이었다.
"그는 철심수재(鐵心秀才) 도황(桃皇)이었소!"
마무정은 미소를 잃지 않고 대답한다.
"속하, 마박사를 제외하고 마도제일지(魔道第一智)로 불릴 사람은?"
"다섯이오!"
"다섯이라니요?"
"기문포학진(機門布學陣)에 있어서는 삼십일대 혈화삼의 좌비위(左臂衛)였던 음황군자(陰皇君子)가 있을 것이고, 신복학(神卜學)에서는 칠백 년 전의 인물인 마제갈(魔諸葛) 당청(唐淸), 병략(兵略)에 있어서는 마혼귀유(魔魂鬼儒) 사령신(射令神), 사술(詐術)에 있어서는 사뇌환요(邪腦幻妖) 검마풍(劍魔風)!"
"으… 음, 또 하나는?"
"용인술(用人術)에 있어서는 지검쌍절철사객(智劍雙絶鐵獅客) 독고존(獨孤尊)!"
"대… 대단하군요?"
마박사는 경탄하며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진짜 어려운 질문을 하자.'
마박사는 볼을 약간 붉히며 말했다.
"마교(魔敎)에 있어 십열사(十烈士)라 할 사람은?"
마교란 마가 이전의 조직이다. 그들은 정파연합군에 의해 해체되었다.
마가와 백도와의 싸움은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마교십열사는 황산혈전(黃山血戰)에서 죽음으로써 마교경전을 마도의 수호신들로, 십마성(十魔星)이라 불리오!"
"……."
"천마성(天魔星), 지마성(地魔星), 혈마성(血魔星), 잔마성(殘魔星), 요마성(妖魔星), 겁마성(劫魔星), 흑마성(黑魔星), 사마성(死魔星), 독마성(毒魔星), 철마성(鐵魔星)이고, 이름은……."
"……!"
마박사는 할 말을 잊고 만다.
"사백칠십 년 전 옥문관(玉門關)에서 북천산(北天山)의 고수들인 관산칠군(關山七君)과 동귀어진했던 절대마가의 형당주(形當主) 이름은?"
"그는 백골시마(白骨屍魔) 종각(鍾角)이란 사람으로, 당시 그는 철표영자(鐵豹影子)와 독각룡(毒脚龍)이라는 두 제자를 데리고 있었소. 관산칠군이 천폭굉뢰(天爆宏雷)라는 화탄을 쓰지 않았더라면 동귀어진하지 않았을 것이오."
"마도십이책(魔道十二冊)은?"
"마교의전(魔敎儀典)을 일책으로 하여, 뇌마심극경(腦魔心極經), 사유마마보(思唯魔魔譜), 마혼불사경(魔魂不死經), 천세유마록(天歲維魔錄)……!"
"그 내용은?"
"그것은……!"
마문관의 시험은 십 일을 끌었다. 그 안에서 어떤 말들이 오갔는지는 마박사와 마무정만이 알 것이다.
분명한 것은 마무정이 마문관을 통과했다는 것이다.
그는 전혀 지치지 않은 표정이었다.
한데, 마박사의 모습이 이상했다. 그는 웃으며 들어갔다가 석고같이 굳은 기색으로 나왔다.
놀라운 것은 그가 그 즉시 한쪽 눈썹을 깎았다는 것이었다.
-마도제일뇌(魔道第一腦)라는 명예로운 이름을 회복하기 위해 이 순간부터 독서를 시작한다. 눈썹을 깎는 것은 맹세를 실천하기 위한 표현이다.
그가 서고로 들어가며 한 말은 그러한 것이었다.
제이관은 마무관(魔武關).
그 관문은 일 대 이의 싸움이었다.
마무정은 눈을 가린 채, 마병야와 흑강을 상대로 싸워야 했다.
그 싸움은 아주 시시하게 결판이 났다.
마무정은 허기표영보(虛氣飄影步)로, 마병야와 흑강의 손바람을 피하다가 두 사람의 완맥을 거의 동시에 잡아 내며 싸움을 중단시킨 것이다.
"이 지겨운 시험은 언제까지 가는 것이지?"
제삼관은 고인(故人)이 만든 충허관(沖虛關)이었다.
그 관문은 천년절곡 뒤에 있었다.
마무정은 홍색유삼을 걸친 채 일단 마연관(魔練關)을 나섰다.
충허관 어귀, 붉은 대나무가 자라고 있고 자욱한 귀무가 퍼지고 있었다.
그 앞, 삼십일대 혈화삼이 세운 비석이 하나 서 있었다.
<비석 뒤에는 음양곡(陰陽谷)이 있다.
음양곡이 바로 충허관이다.
음양곡 안에는 가공할 잠경(潛勁)이 스며 있다.
대총수의 능력을 지니고 있지 못한다면 그 잠경을 격파하지 못한다.
잠경을 이긴다면 충허관을 뚫었다고 할 수 있다.
충허관을 나서는 찰나, 일천 위사(一千衛士)를 얻는다. 그들은 이후, 그대의 그림자(影)가 될 것이다.
그들은 기다리고 있다. 냉동(冷凍)이 되어서.
기다림은 오백 년을 갈 것이다.>
냉동이라니……?
마무정은 충허관으로 들어서는 찰나부터 환무에 휘감겼다.
땅이 사라지고, 안개의 바다가 나타났다.
사방에서 오색채운(五色彩雲)이 밀어닥치는 가운데, 온갖 망령(亡靈)이 나타나 너울너울 춤을 추기 시작했다.
수라(修羅)와 나찰(羅刹), 여귀(女鬼),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악귀들이 몰려든다.
마무정은 빙긋 웃고 있을 뿐이었다.
"충허제일관은 심마(心魔)! 훗훗, 한데 나는 마음마저 없는 돌덩어리이니… 이러한 난관은 있으나마나 한 것이지!"
그는 웃으며 저벅저벅 걸어갔다.
그리고 삼마관의 망령들은 해가 떠오르며 사라지는 이슬마냥 하나하나 사그러졌다.
제이관(第二關) 환환(幻幻).
그 곳은 지극히 너른 꽃밭이었다.
강한 마기(魔氣)가 흐르고, 돌을 녹이는 독기가 흐른다.
환환관에서 정신을 잃지 않으려면 숨을 멈추거나 내공으로 독을 몰아내야 한다. 그러한 가운데, 환환관을 이루는 진세를 알아내어 격파해야 한다.
화원 가, 마무정은 꽃 한 송이를 꺾어 들었다.
뚝-!
그의 손가락에 걸려 꺾여지는 꽃은 노오란 황국(黃菊)이었다.
"벌써 가을인가?"
그는 꽃송이를 코에 갖고 갔다.
사황국(死皇菊)!
무서운 독기를 품고 있는 꽃이었다.
"흐으으… 음……!"
한데, 마무정은 사황국의 향기를 폐부 깊이 빨아들이지 않는가?
"향기가 좋은데?"
그는 웃음을 흘리며 환환관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혈화삼은 후배를 경시하셨다."
그는 벌써 진세를 깨우친 듯, 여유 있는 걸음걸이로 꽃밭을 헤치고 걸어 들어갔다.
제삼관 유사(流砂).
흐르는 모래의 강(江), 그 곳은 경신술을 시험하는 장소였다.
마무정은 들길을 가는 양 유사관을 간단히 통과했다.
제사관(第四關) 태양(太陽),
제오관(第五關) 천독(千毒),
제육관(第六關) 철귀(鐵鬼),
제칠관(第七關) 음혼(淫魂),
제팔관(第八關) 마영(魔影),
제구관(第九關) 무한(無限).
마무정을 막을 관문은 없었다. 마무정은 이틀 정도 돌아다닌 결과, 제십관 충허지관에 이를 수 있었다.
그 곳은 아주 거대한 얼음의 산에 뚫린 동굴 안에 있었다.
마무정은 동굴 어귀에 이르며 한기를 느꼈다.
"다른 곳과는 다른데?"
마무정은 천단공을 일으켜 내장을 화기로 보호했다.
스으으… 스으으……!
지독한 한기가 동굴 안에서 흘러들었다.
뼈를 에이는 바람, 마무정의 가슴에는 벌써 눈꽃이 피어났다.
츠으으- 츠으으-!
차디찬 바람 가운데 뿌연 안개가 피어 나온다. 안개는 설룡(雪龍)으로 뭉쳐지며 묘한 환상을 만들었다.
흰 옷을 입은 유령들이 춤추며 돌아다니는 듯, 가공할 한백진기(寒魄眞氣)와 더불어 만사풍(萬死風)이라 일컬어지는 악의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얼어 죽기에는 너무 모진 놈이 되었소, 조상들!"
마무정은 싱긋 웃고 만다.
그의 체내에는 천단마공 이외에도 잠력이 있다. 그 기운의 정체는 마박사도 알아 내지 못했다.
허무하면서도 강인한 진기, 천축국의 유가진기(瑜佳眞氣)같이 변화막측하고 불가정종의 금강부동진기(金剛不動眞氣)같이 대유(大柔)한 그 힘.
표현하지 못할 신비를 지닌 그 힘이 마무정을 지켜 주고 있었다.
마무정은 흰 안개 속으로 느릿느릿 걸어 들어갔다.
십오 장 갔을까?
한기가 극심해져 마무정의 어깨 위에도 얼음이 두텁게 끼었다. 옷자락에도, 머리카락에도…….
설인(雪人)같이 된 마무정, 그는 점점 너른 빙굴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일천 위사, 그들이 이 안에 있단 말인가?'
마무정은 불안해 하는 표정이었다.
생기라고는 전혀 없는 장소, 천이통을 써도 인간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나의 청력은 절대적이다. 사람이라면 나의 청력을 속이고 숨어 있을 수 없다.'
마무정은 회의하며 걸어 들어갔다.
열 개의 굽이를 거듭 돌았을까?
빙무가 조금 여려졌고, 대신 가공할 사기(死氣)와 요기(妖氣)가 흘러들었다.
아무런 내음도 없는 뿌연 기류, 그 기류는 인공의 흔적이 역력한 장방형의 석실을 메웠다.
석실은 아주 거대했다.
<충렬관(忠烈關)>
어귀에 그러한 글이 적힌 현판이 하나 걸려 있었다.
현판은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다.
"저 안에 무엇이 있을까? 충렬관이라니?"
마무정은 계속 들어갔고, 일순 섬뜩한 표정이 되어 멈춰 서고 말았다.
죽음의 안개가 흐르는 너른 석실 안.
아아, 상상도 못할 것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다.
천 개의 관(棺), 빙옥(氷玉)으로 만든 천 개의 관이 질서정연하게 놓여 있었다.
관의 빛깔은 아주 희었다. 뚜껑이 달려 있지 않았기에 안에 든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강시(彊屍)들이다."
마무정은 흑의(黑衣)를 걸친 채 단아한 자세로 누운 천 인(千人)을 볼 수 있었다.
검을 한 자루씩 가슴에 얹고 두 눈을 떡 부릅뜬 채, 서리 속에 누워 있는 일천 인.
이들은 백여 년 전 천하를 호령하는 혈화삼의 친위대(親衛隊)였다.
혈화무정위(血花無情衛)!
천년 마도사상 가장 강했던 조직이다.
마가는 이들이 사라짐으로 인해 세력이 한결 줄어들었었다.
한데, 이들은 늙어 죽은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냉동되어 관에 누운 것이다.
옥대(玉臺).
거기 향로가 있고, 향로 안에는 이들이 관 안에 누운 사연이 담겨 있는 양피지 두루마리가 하나 꽂혀 있었다.
두루마리는 마무정의 떨리는 손길에 의해 펼쳐졌다.
<이 글을 적는 사람은 혈화무정위의 수석검사(首席劍士)외다!
이 글이 적히는 이 날, 우리들의 우상이신 삼십일대 혈화삼은 타계하시었소이다!
사인(死因)이 불확실하나, 필경 구대마가의 후예들이 쓴 만성독약 때문인 듯…….
그분은 이 일이 마가의 불행이라며 소문내기를 꺼려하며 돌아가시었고, 우리들은 복수를 맹세하며 한 가지를 결정하게 되었소!
오래 살기에는 내공이 모자라고, 늙어 죽기에는 너무도 분하기에 내린 죽음의 결정!
그것은 바로 냉동(冷凍)되어 복수의 날을 기다린다는 것!
사실, 구대마가의 총사(總師)들은 제거되지 않았소!
그들의 가주(家主)들은 제거되었으나, 그들의 조종(祖宗)들은 건재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이오.
그들은 절대마가가 두려워 깊이 숨었소!
아마도 그들은 절대마가의 힘이 약해지는 날, 천하에 나와 절대마가를 무찌를 것이오!
그리고 우리들은 절대마가의 충성스러운 가신(家臣)으로서 역할을 다하기 위해, 그 날 다시 절대마가의 척후병이 될 각오를 하고 얼음 속에 누웠소!
이것은 마교비전 음시냉령대법(陰屍冷靈大法)에 따른 것으로, 성공하기보다 실패할 위험이 많은 것이외다.
우리는 빙극단(氷極丹)을 먹었고 긴 잠에 빠져들 것이오!
깨어난다면… 마가의 제일충신이 될 것이오.
그 날, 우리를 제일위검대(第一衛劍隊)라 불러 주시오!>
가공스러운 사연이 적혀 있었다.
냉동된 고수들, 이들은 목숨의 불을 얼음에 얼려 버리며 가사지경에 빠졌다.
이들은 죽은 것이 아니라 잠든 상태였다. 비록 피가 얼고 심장이 멈추었으나, 혼백(魂魄)만은 몸을 떠나지 않았다.
이를테면 꽤나 긴 구식(龜息)의 상태랄까?
백 년 공력이 없다면 이러한 것을 시전할 수가 없다.
얼음 안개가 흐르고 천 개의 관과, 천 개의 흑삼(黑衫)과, 천 인(千人)의 손에 쥐어진 채 얼음을 뒤집어쓴 천 자루의 장검(長劍)이 두 개의 눈에 와락 들어서고 있었다.
"그대들은 진정한 마가의 충신들이다. 그대들은 깨어날 자격이 있다."
냉동인간(冷凍人間)들, 이들은 흑강과 같은 시기의 무사들이었다.
이들의 내외공이 흑강과 비슷한 수준이었더라면 이들은 냉동되어 기다리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불행히도 이들은 초상승고수가 아니었다. 이러한 수법을 쓰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이들은 모두 늙어 죽었을 것이다.
자욱한 빙무가 흐르는 곳, 마무정은 결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상리에 따른다면 꽤 오랜 시일을 두고 이들을 해동시켜 차츰차츰 기력을 되찾게 해야만 한다. 하나, 내겐 하나의 비법이 있다!"
그는 묘하게 웃고 있었다.
'나의 머리에는 두 개의 공간이 있다. 하나는 나의 진짜 모습이 들어 있고, 또 하나의 공간에는 나도 사연을 알 수 없는 괴이한 지식이 가득 들어 있다.'
마무정은 하나의 의전(醫典)을 기억했다. 그 안에는 기이한 활술(活術)이 가득 적혀 있었다.
그 중 창룡장공화풍후(蒼龍長空和風吼)!
그러한 음공절학이 마무정의 뇌리에 선명히 기억되었다.
"화타의전(華陀醫典)이다. 그 글귀가 적힌 비급은! 마가의 서고에서 배운 것이 아닌 것인데, 뛰어남은 마가의 마도의술 이상이다. 그것은 음공을 이용해 인간의 잠재력을 격발시키는 방법이다!"
마무정은 천천히 합장(合掌)을 했다.
'그리고… 마공을 써서는 시전하지 못할 신공절학이다. 불행히도 나는 신기(神氣)를 지니고 있으니, 그것을 시전할 수 있다.'
마무정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구결에 따라 진기를 운용하기 잠깐, 그의 몸에서는 기이한 안개가 겹겹이 흘렀고 안개가 몸을 휘감는 가운데 몸이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일순, 마무정은 소리내며 쌍수를 활짝 벌렸다.
"연화백팔품(蓮華百八品)!"
돌연, 허공 가득 마화(魔花)가 피어 오르더니 충렬관 가득 백팔 송이의 금빛 꽃이 뿌려졌다.
마무정의 가슴에 새겨진 천년화(千年花)가 백 팔 군데에서 나타났다.
방은 돌연 화원으로 변화하고, 천 개의 관 위로 백팔 명의 마무정이 동시에 나타났다.
"우우… 우……!"
백팔 하늘에서 용이 우는 소리가 흐르기 시작했다.
천지를 들썩이는 긴 부르짖음이여!
맑고 청아하며 긴 부르짖음!
그 소리는 막대한 진원지기를 소모하는 순양후(純陽吼)였고, 생명의 불꽃을 한 번에 살라 버리는 연혼신음(練魂神吟)이었다.
우르르르- 릉-!
빙굴이 뒤흔들렸고, 천 개의 관을 휘감은 얼음 안개가 흐트러지기 시작한다.
"깨어나라, 천년의 혼! 마풍과 더불어 호흡하며, 얼어붙은 몸뚱이를 장엄히 일으키라! 일어나라, 마가의 열사들아! 일어나라!"
부르짖음 소리는 오래 이어졌고, 마무정의 이마에서는 비지땀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 우……!"
그는 쉬지 않고 폐부의 숨을 토해 냈다.
단 한 번도 숨을 들이마시지 않고 잇따라 숨을 토해 내기 반시진.
콰아아아- 콰아아-!
충렬관은 지진을 만난 듯 뒤흔들렸고, 천 개의 관이 들썩이며 부르짖음 소리 가운데 기이한 소리가 섞이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부터 호흡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흐으으… 흐으……!"
"으으… 음!"
이 곳 저 곳에서 들리는 호흡 소리, 답답하고 혼탁한 숨소리들은 천 곳에서 동시에 터져 나왔다.
오오, 바닥에는 물이 흥건하고 벽을 휘감았던 얼음덩이는 녹아 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무정의 목소리와 함께 다른 목소리들이 시작되었다.
"일, 일어나라! 이제 때가 되었다! 백 년의 잠에서 깨어나라!"
탁하고 거친 목소리들!
"너, 너무도 긴 잠이었다!"
"우, 우리들 부르는 소리다!"
천 개의 관이 들썩거리고 있었다.
하나, 둘… 수많은 관들이 요동을 치고 안개가 흐트러졌다.
관목이 부서지며 손들이 튀어 나온다.
"우리는… 더 이상 잠잘 수 없다."
장검이 불끈 앙상한 손아귀에 쥐어져 관목에 걸쳐지고, 거의 다 삭은 흑삼자락이 휘날리기 시작한다.
우둑- 뚝-!
뼈마디 부서지는 소리가 나며, 강시같이 마른 동체들이 나타났다.
우지끈-!
관은 부서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몸을 일으켰다.
꾸역꾸역 일어나는 사람들,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일천 검사(一千劍士).
이들은 너무나도 긴 잠에 빠졌던 혈화무정위사들이었다.
그 때, 마무정은 허탈해 떨어져 내렸다.
"자네들은 진짜 충신들이다. 첫대면부터 나를 기쁘게 하니까."
그도 신(神)은 아닌 듯, 안색이 지극히 창백해져서 뚝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장차는 나 때문에 애를 꽤 끓일 걸세."
표정은 기쁨에 가득 찬 것인데… 그 표정은 막강한 수하들을 얻은 기쁨이 아니라 사람을 구한 의원의 기쁨이었다.
"되었다, 이제는……!"
그는 중얼거리며 스르르 의식을 잃는데, 그 순간 두 팔이 그를 받아 들었다.
저벅- 저벅-!
언제부터인가 방 밖에 와서 기다리고 있던 거인 하나가 철포자락을 휘날리며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마무정을 받아 든 사람은 바로 그 사람이었다. 흑강, 그가 방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는 마무정을 번쩍 쳐든 채 위사들을 둘러봤다.
"제군들은 살아난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전의 무공을 회복하기 위해 삼십삼 일 간 지옥훈련(地獄訓練)을 겪어야 하니까!"
흑강의 첫마디는 반갑다는 말과는 거리가 멀었다. 왜냐하면 그는 교두(敎頭)이기에…….
"관 속에서 자던 나날을 그리워할 것이다, 제군들은!"
흑강, 그는 일천 위사들을 상대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는 부드러운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백 년 전, 그는 혈화무정위사들이 냉동상태에 들 때에도 이랬었다.
그 때 그는 혈화무정위의 태감(太監)이었다.
그는 혈화무정위 수석검사 휘하 전 고수들을 앞에 두고 팔짱을 낀 채 이런 말을 했었다.
-멍청한 것들! 내공이 모자라 동면을 하다니…….
-당장 쳐죽이고 싶다만 참겠다. 깨어날 경우 나를 볼 것이고, 그 때 나는 너희들의 무공이 약함을 징계하겠다!
흑강과 일천 위사들, 이들은 한마음 한뜻이며 한몸이라 할 수 있었다.
제일위검대(第一衛劍隊).
이후 마무정의 그림자가 될 마도대총수의 호법조직은 이렇게 해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는 것이다.
일천 위사들은 안력이 회복되고 청력이 회복된 듯 흑강을 알아봤고, 알아본 사람은 모두 웃으며 허리를 숙였다.
"여전하시군요, 그 사자후는?"
정든 목소리들이다.
그러나 흑강의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무뚝뚝했다.
"대총수께 누추한 모습을 보이다니… 벌레 같은 것들!"
"……."
"당장 옷을 갈아입고 목욕을 하라! 너희들을 위해 단약(丹藥)이 하나씩 준비되어 있다. 귀한 것이니, 먹고 그 값을 해야만 한다. 그것을 복용한다면 능히 이전의 내공을 되찾을 수 있다!"
노한 듯 사자후를 토해 내는 흑강. 하지만 그는 속으로 울고 있었다. 그는 일천 위사들이 다시 살아난 것을 충심으로 기뻐하고 있는 것이다.
일천 위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흑강 대장(黑剛隊長), 건재하시군요?"
"현 강호의 정세는 어떠합니까?"
"아아, 우리들을 깨우신 분은 어떤 분이십니까?"
파리한 얼굴을 한 일천 고수, 이들은 바로 마가의 진짜 충신들이었다.
가장 나이가 적은 사람은 백이십칠 세,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은 이백사 세.
강호에서 제일가는 노령조직이나, 이들 가운데 자신들이 늙었다고 여기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보라! 차츰차츰 생기를 되찾아가는 눈들을.
불끈불끈 쥐어지는 주먹과 다물려지는 입을, 그리고 화산 안으로 쾌히 몸을 던질 장렬한 자세를!
"속하들, 죽기 위해 살아났소이다."
"흑강 대장, 충성스럽게 죽기 위해 꽤 오래 잤던 것입니다."
"으핫핫……!"
아아, 일천 위사!
이들이 있는 한, 아무도 마무정을 암살하지 못할 것이다.
첫댓글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