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해설
존재의 인식과 서정적 자아의 탐색
--송암 김종순 시집 『』
김 송 배
(시인.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
1. ‘나를 응시한’ 존재의 재인식
현대시 발상의 원류는 대체로 자아의 인식에서부터 출발하게 된다. 이는 시 창작의 동기가 그 시인의 삶의 궤적(軌跡)에서 추출(抽出)하는 경향이 많고 그 삶에 내포된 정한(情恨)이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경우를 많은 시인의 작품에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시의 흐름이나 투영된 주제에서 인지(認知)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존재를 확인하는 다양한 사유(思惟)의 지향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이 한 시인의 정서에서 천착(穿鑿)하는 인간의 진실이 시적으로 표현되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일찍이 프랑스의 근대 상징주의 비조(鼻祖)로 알려진 보들레르는 기쁨이든 슬픔이든 항상 그 자체 속에서 이상을 좇는 신과 같은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이 시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시를 읽고 그의 시법(詩法)이나 주제를 탐색하다보면 그 시인이 분사(噴射)하려는 시적 진실이 무엇인가를 확인하게 된다.
여기 송암 김종순 시인이 상재하는 시집 『』의 원고를 읽으면서 이와 같은 존재의 인식을 먼저 상기하게 되는 것은 그가 창출하려는 주제와 시적 전개는 그의 삶에서 생성(生成)된 자아의 인식이라는 점에서 보편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진실이 형상화하고 있음을 간과(看過)할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우선 그는 ‘책 머리에’에서 ‘메말라가는 정서의 솥에 감정이라는 물을 부어 열정이라는 불을 지펴 살맛나는 세상이라는 밥을 짓는데 미력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이 시집을 낸다는 시정신이 바로 우리 인간들의 근본 정신임을 일깨우면서 자신은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속에서 핵분열을 하고
다시 융합하고
지쳐 쓰러져서 잠든 육신을 떠나
어두운 밤길을 헤매노라면
초롱한 별빛이 영롱한
이슬방울로 세안을 시킨다
핏기 없는 달빛이 등을 떼밀며
내게 돌아올 땐
여명이 어둠을 밀어내고 있다
수없이 많은 날 밤
반복적으로 그리하든 어느 날
온갖 시련과 고뇌가 응집된
커다란 핏덩이를
울컥 몸 밖으로 쏟아낸다
미처 여물지 못한 꿈이
마땅찮은 안타까운 시선으로
나를 응시한다
거기엔 카르시스를 갓 경험한
백발이 성성한 칠십대 노인이 서 있다.
--「꿈(希望)」전문
이 작품에서 먼저 감응(感應)할 수 있는 것은 현실적인 생활(real life)을 통해서 예리하게 자신을 응시하고 있다. 그가 혼돈의 세계 즉 현실적인 혼란(‘어두운 밤길을 헤매노라면’)을 지나서 그는 ‘온갖 시련과 고뇌가 응집된 / 커다란 핏덩이를’ 경험하게 되면서 재인식하게 된 것은 ‘나를 응시한다 / 거기엔 카르시스를 갓 경험한 / 백발이 성성한 칠십대 노인이 서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적인 인식은 ‘미처 여물지 못한 꿈이 / 마땅찮은 안타까운 시선으로’ 응시하는 ‘꿈’이라는 단정으로 그의 내면 의식을 정리하고 있다. 이러한 시적 상황이 그의 의식의 흐름에서 상당한 갈등의 요소들이 동시에 현현하면서 그에게서 진정한 진실은 무엇인가를 탐색하고 있다.
모든 것이 점에서 시작되어
선을 이루고 세상 만물은
선에서 맺음을 맞는다
나 또한 예외 일수 없어
한낱 점이요, 선을 그리다 갈지니
그 안에 채우고 말 것이 무엇인가
점, 내가 점이요 선이니
나는 이미 세상 모든 것을 가졌도다
--「점(點)이 선상(線上)에서」중에서
김종순 시인의 이러한 인식은 고차원의 상상력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그가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나 ‘우리가 느끼는 존재감’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삶’ 등이 ‘점’과 ‘선’이라는 귀결점에서 시적 진실을 탐색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형상(形狀)을 ‘나 또한 예외 일수 없’음을 자인(自認)하고 있다.
그가 다시 ‘점, 내가 점이요 선이니 / 나는 이미 세상 모든 것을 가졌도다’는 결론에서 이해할 수 있듯이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면서 현재의 존재 이유를 구명(究明)하는 시법을 읽을 수 있게 한다.
그는 존재를 응시면서 새롭게 인식하는 방법을 다양하게 구사(驅使)하고 있는데 ‘밀겨울 개떡 쪄먹고 직장이 막혀 / 배변을 못해 야단이 나신 아버지 / 생피 빨아먹으며 초근목피 하던 / 나의 유년시절이 그래도 해방된 / 민족이었다는 것을 살아보니 알겠다(「회상 1」중에서)’거나 ‘보도 블록 사이사이 / 오만 것이 다 있다 / 쓸다보면 다 보인다 / 행인의 눈엔 그저 길일뿐 / 내 보기엔 너무나 어지럽다’ 혹은 ‘수없이 많은 사연을 지닌 족적이 / 또다시 어지럽힐지라도 / 새 하얀 화선지를 까는 마음으로 / 나는 오늘도 길 위에 길을 낸다(이상「길 위의 길」중에서)’는 어조(語調)와 같이 김종순 시인은 시적인 화자(話者)인 ‘나’가 현재 건재(建材)하면서 삶을 영위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2. ‘세월의 격랑’과 시간의 긍정
김종순 시인은 세월과 동행하는 시간성에 대하여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그 민감성은 바로 희망이거나 기원 의식이 시적 상황으로 설정되거나 작품의 전개로 변환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우리들은 이 시간성에서 창출하는 이미지들에서 많은 메시지를 체감(體感)할 수 있는데 이는 그 시간(혹은 세월)이 체험과 병행하면서 시적으로 동화(同化)하는 경향을 자주 대하고 여기에 투영된 시적 진실을 음미(吟味)하는 시법이 다양하게 창조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가고 오는 세월의 격랑 속에
초개처럼 떼밀려가는
내 생의 편린(片鱗)들이여
영겁의 시간 속에 수유의 존재여
촌음(寸陰)을 아쉬워하며 쉴새 없이
자신을 갈고 닦아 작은 이정표 하나
세울 수 있었음 좋으련만
--「섣달 그믐날」중에서
나도 몰래 흘린 눈물 서둘러 닦아낸다
이런 저런 상념 없이, 내님 옆에 같이 타고
아지랑이 피어 오른 저 넓은 꽃 길을
바다가 말릴 때까지 제한속도 밀쳐내며
무작정 한없이 달려가고 싶구나!
--「귀로」중에서
이 작품「섣달 그믐날」에서는 우선 ‘자신을 갈고 닦아 작은 이정표 하나 / 세울 수 있었음 좋으련만’이라는 화자의 어조에서 알 수 있듯이 아쉬움의 시간이 적시(摘示)되고 있어서 그가 전달하고자하는 메시지는 바로 ‘내 생의 편리들’이며 ‘영겁의 시간 속에 수유의 존재’에 대한 아쉬운 정념(情念)의 시정(詩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종순 시인은 ‘가는 세월은 다시 아니 오고 / 주위의 모든 인연 항상 머물지 아니하니/ 하나같이 귀히 여기고 아끼고 사랑할 것을, / 이제와 후회한들 되돌릴 수 없으니’라는 아쉬움이 곧 소망임을 간절하게 분사하고 있다.
또한 「귀로」에서도 ‘무작정 한없이 달려가고 싶구나!’라는 어조와 같이 기원이거나 여망이 포함된 요망사항임을 이해하게 되는데 이는 작품「섣달 그믐날」과 함께 외형적으로 언술된 표현에서 공통의 흡인력(吸引力)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에서도 ‘그리운 님 만났으니, 온 세상이 내 것처럼 / 기쁨으로 채워지고 훨훨 날아 가련마는 / 그녀를 뒤로하고 되돌아가는 내 마음은’이라는 아쉬움이 실재 상황에서 형상화하는 여운(餘韻)을 읽을 수 있게 한다.
내 마음 별이 되어
하늘 저 먼 곳에서
애틋한 정 소슬바람에 실어
밤새도록 그대와 밀어를 나누고 파
내 마음 이슬이 되어
방울방울 사랑을 실어
누구도 볼 수 없는 어둠을 타고
천사 같은 그대 얼굴 오롯이 적시고파
--「내 마음」중에서
저처럼 자식들도 은혜 받게 해 주십사
눈만 뜨면 제대 앞에 기도하는 어미 마음
오늘도 어제처럼 무아지경 다다르며
성모님 통한기도 주님의 이름으로 간구 하오니
저의 남편 건강도, 아들 딸 소원도
내 부모 내 형제, 일가친척 이웃집도
아니, 저를 아는 모든 사람들 에게도
지금껏 제게 주신 하늘 같은 은총을
오롯이 내리시어 두루 받게 하소서
--「기도」중에서
이렇게 김종순 시인은 시간성의 긍정에서 창출하는 것은 과거와 현재의 인생 체험에서 발현된 현실적인 상황은 미래에의 기원으로 변환하는 특성을 이해할 수 있는데 이는 간절한 여망(輿望)이거나 기도로 현현되고 있어서 우리들과 교감의 영역이 확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작품 「내 마음」에서 ‘밤새도록 그대와 밀어를 나누고 파’와 ‘천사 같은 그대 얼굴 오롯이 적시고파’, ‘백조의 꿈, 그대와 함께 꾸고파’, ‘그대 이마 땀방울 씻어 주고파’ 그리고 ‘온 가슴 활짝 열어 안아 주고파’ 등의 어조처럼 그의 담대(膽大)한 베품의 여망이 넘친다.
이러한 나눔과 베품의 여망도 김종순 시인이 체험한 상상력이 재생되고 다시 창조적으로 재생산된 진실임을 알 수 있다. 그는 ‘내 마음이 별이 되어’라는 상황을 설정하고 이 상황을 다변적으로 응용해서 ‘이슬’이거나 ‘호수’, ‘숲’ 그리고 ‘하얀 종이’라는 사물 이미지를 조화롭게 전개함으로써 공감은 더욱 깊어진다.
그리고 작품 「기도」에서도 ‘간구’의 기도로 그에게 내재된 정황(情況-situation)에서 애절한 기원을 현현하고 있다. ‘저처럼 자식들도 은혜 받게 해 주십사’라는 어조는 바로 그가 소망하는 내적인 진실을 여과(濾過) 없이 분출하고 있다.
또한 그는 결론으로 적시한 ‘아니, 저를 아는 모든 사람들 에게도 / 지금껏 제게 주신 하늘 같은 은총을 / 오롯이 내리시어 두루 받게 하소서’라는 인본주의(humanism) 차원의 조용한 기도문처럼 공감을 분사하고 있어서 ‘오늘도 기쁜 날, 행복한 하루’라는 시간성과 적절한 화해를 이루고 있다.
3. 시의 사회성 혹은 시사적 탐색
김종순 시인은 다시 시를 통한 현실적인 시사적(時事的)인 제재(題材)를 응용하여 강렬한 메시지를 분사하는 작품들을 많이 대할 수가 있는데 이는 그가 평소에 실생활에서 체득한 고뇌들이 시적으로 현현되는 특성을 엿보게 하고 있다.
또한 시의 사회성은 우리의 시들이 모두가 사회적인 제재를 통하지 않는 것이 없겠으나 김종순 시인은 특히 많은 소재를 사회의 현실과 직결하는 어조가 특이하게 많이 등장하고 있어서 그가 구현하려는 사회관이나 가치관의 실현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음을 간과하지 못한다.
앞이 안 보인다
칠흑 같은 어둠
허우적대며 그것을 헤친다
빠져나가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러면 그럴수록
너울성 파도가 밀려와
쓰나미처럼 떠밀어낸다
실종 ‘ 인본주의사고’
양심, 정의, 배려, 용서
다 쓰러져 나뒹굴어졌다
그 밑에 깔리어
신음하는 민초들
햇빛을 가린 체
춤추는 물신주의 物神主義
--「시류-세상살이가」전문
우리 인간들은 누구나 고립된 상태에서 생활할 수 없다. 어떤 형태로든지 서로 교류하고 집단을 이루어 사회를 형성하면서 살고 있다. 이와 같이 시도 그 사회생활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시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사회의 현실에 직면하여 거기로부터 끊임없는 주제를 찾아내는 특징이 있다.
현대의 사회는 더욱더 그 기구나 구성이 복잡화하고 모순과 갈등이 내포하고 있어서 불합리와 비정상이 항상 노출되어 있다. 그러므로 현대의 시인들은 비록 자기의 내부에 침잠(沈潛)할 때에라도 사유의 진폭이 확대되고 있다.
김종순 시인도 이러한 갈등의식이 분출하여 시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자신의 보편적인 정서에서 다시 사회적인 공통성의 주제를 능동적으로 작품에 융합(融合)하여 우리들에게 공감대를 흡인시키고 있다.
그는 울분에 가까운 언술로 ‘앞이 안 보인다 / 칠흑 같은 어둠 / 허우적대며 그것을 헤친다’는 상황 설정에서부터 감지할 수 있듯이 ‘시류’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다시 ‘실종 ‘ 인본주의사고’ / 양심, 정의, 배려, 용서 / 다 쓰러져 나뒹굴어졌다’는 그의 결론적인 단정은 이 사회가 얼마나 암울한가를 시사적으로 내 뿜는 절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 현실은 ‘신음하는 민초들’과 ‘춤추는 물신주의 物神主義’가 원인을 제공하고 있어서 우리가 시적인 진실의 구현에서 말하는 시의 본령(本領)인 진선미(眞善美)의 인도적 양심과 정의가 실종된 현실을 개탄(慨嘆)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 문명의 최첨단最尖端, 그 정점頂点에 서있다
고도의 문명과 정보화로
온 인류가 글로벌화하고 있다
국경과 이념理念을 초월하여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협의狹義의 패러다임을 과감히 탈피脫皮하여
세계 사조思潮의 물결에 합류해야 한다
개인의 생각만을 고집 할 때가 아니고
온 인류가 공존할 수 있는
안전지대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
--「지금 우리는」중에서
일찍이 시는 순수하게 생활과 사회로부터 동떨어진 미(美)를 추구하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현대의 시인들은 현대라고 하는 거대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거기에서 감득(感得)하는 위기의식이나 불확실성에서 탈출하기 위한 투쟁이나 개선의 기원을 다양하게 표면화하는 경향이 많이 생성되고 있다.
김종순 시인도 예외일 수는 없다. 그의 예리한 오감(五感)에는 이러한 사회적인 모순이 그의 진정한 시적인 정신에서 그것들을 거부하거나 개선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작품 「지금 우리는」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는 정의로운 결론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도 글로벌화 한 최첨단 고도의 문명과 정보화 사회에서 어떻게 공존(共存)할 것인가하는 현실적인 문제와 그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결단은 ‘국경과 이념理念을 초월하여 /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가는 현실을 직시하고 ‘협의狹義의 패러다임을 과감히 탈피脫皮하여 / 세계 사조思潮의 물결에 합류해야’하고 ‘온 인류가 공존할 수 있는 / 안전지대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화해의 해법을 주창(主唱)하고 있어서 지금 우리 사회가 당면한 국가적인 일들을 적나라(赤裸裸)하게 메시지로 전해주고 있다.
한편 작품 「망국의 한」에서도 ‘人類愛的 思考를 저버린 / 어리석은 획책은 / 위대한 단군후예의 / 자멸을 초래할 뿐, /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 순리에 부응하며 /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사랑해야지, / 누가 감히 亡國의 恨을 / 부르려는가’라고 감도(感度) 높게 적시하여 애국적인 신념을 분사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회적인 문제가 바로 우리의 비극인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 그의 심저(心底)에서 분출한 울분이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있어서 우리들의 심정을 다시 울컥하게 하고 있다. 그는 작품「이 몸 한 개의 별이 되어」와 「대 참사 그 후」,「아주 먼 여행」등에서 2014년 4월 16일 침몰한 세월호에 대한 애도의 시를 보여주면서 사회적 부조리 등을 고발하고 있다.
그는 ‘누구의 잘못을 탓하기 전에 / 저희들이 이곳에 오면서 / 우리나라의 구조적 비리와 / 탐욕으로 얼룩진 고질적 병폐를 / 저희들의 목숨과 바꾸어 / 몽땅 가져왔으니 / 엄마 아빠, 앞으로는 살기 좋은 / 대한민국이 될 거예요.’라거나 ‘네가 탐욕과 비정으로 / 범벅이 된 저주스런 인간들의 / 손에 맡겨질 줄 알았더면 / 내 어찌 마음 놓고 보냈으랴’는 어조는 ‘우리나라의 구조적 비리’를 고발하는 시사성이 넘치는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밖에도 작품「신도림역」「고 한주호 해군 준위」「대한의 딸, 우주에 서다」「오, 인천」「영웅이 된 사나이들」「망신일세 그려」「빚쟁이」등에서 시의 사회성과 시사성을 절실하게 분사하고 있어서 감동을 주고 있다.
4. 친자연의 이미지와 서정적 진실
김종순 시인은 어쩔 수 없는 서정시인이다. 그의 가슴이나 뇌리(腦裏)에는 언제나 자연과 전원의 이미지가 적체(積滯)되어 있다. 이와 같은 서정성은 우리 모두에게 잠재해 있는 우리 고유의 심성(心性)이다. 그것은 우리 시인들이 만유(萬有)의 자연과 대할 때 이미 시각적으로 하나의 이미지가 형성되어 시적 발상과 주제의 투영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서정시의 표현 형태에 관해서는 대체로 세 가지로 구분해서 시론가들은 설명하고 있다. 하나는 자아의 성숙에 의하거나 또는 이상적인 세계의 존재에 의해서 양자가 서로 행복하게 만나는 전통적으로 제기되어 온 서정적 표현만을 서정시로 보고 있는 입장이며 두 번째는 자아의 세계를 가공해서, 또는 이상적이지 않은 시적 대상을 허구적으로 이상적이게 꾸면서 서정적 세계가 이루어진 것, 이 또한 서정시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세 번째는 지금까지 발표된 많은 현대시들이 대부분 서정적 표현 형태를 띠고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창공에 빛나는 수많은 별들,
너와 나 함께 사는 우리들마냥,
겨울엔 찬바람 빗질하여 하얀 눈송이 만들고,
여름엔 초롱 한 빛, 풀벌레 노래 키고,
봄 가을엔 깜박깜박 온갖 생명 갈무리
쉴새없이 변화하는 계절이 와도
흩어진 듯 어우러진 아름다운 별 천지
우리네 인간사, 어찌 저와 다르랴!
저 별은 너의 별, 저 별은 나의 별
세고 또 세어도 끝없이 많은 별,
아무리 어울려도 하나되지 않으니
너는 너, 나는 나, 언제나 따로였구나!
--「별을 헤는 밤」전문
김종순 시인은 자연 현상이나 자연 사물을 중점적으로 관찰하거나 응시(凝視)하는 습성이 있다. 그는 이 대자연관에서 창출하는 이미지가 가장 중요한 시적 요인으로 발전한다는 사실을 이미 숙지하고 있기 때문에 자아와의 상관성으로 한 편의 작품을 완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밤마다 별을 헤고 있다. 그 별들은 ‘너와 나 함께 사는 우리들’로 의인화하고 있다. 그것이 ‘쉴새없이 변화하는 계절’과 동시에 ‘생명 갈무리’라는 자아의 서정세계로 형상화시키고 있다. 그는 앞에서 고찰해본 시간성의 변화에 따른 서정적 자아도 이처럼 잔잔한 시정을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벚꽃은 꽃비 되어
쏟아져 내리고
목련도 탐스런 꽃잎을
힘없이 떨구고
노란 개나리꽃
파란 싹에 자리를 내주며
가는 봄을 아쉬워하는데,
그 많은 상춘객이
가고 온 그곳에
나 홀로 저만치서
꽃 비 맞으며 걷고 있네
텅빈가슴 허전한 마음
가는 봄을 붙들려는가
--「가는 봄-공원에서」전문
이 작품에서도 계절적인 시간성에서 동화(assimilation)하는 서정이 돋보인다. 봄과 공원의 상관성에서 조망(眺望)하는 자연의 서정은 봄의 메아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 하다. 그러나 ‘나 홀로 저만치서 / 꽃 비 맞으며 걷고 있네’라는 어조의 대목에서는 약간 고독한 정감이 생성하여 더욱 서정의 개념을 확충시키고 있다.
또한 작품「봄은 오는데」에서도 ‘어릴 때 까치가 우는 아침이면 / 장독대에도 지붕 위에도 / 산도 들도 대나무 숲에도 / 온 세상이 깨끗하고 포근한 / 솜이불에 덮인 듯 / 밤새내려 소복이 쌓인 하얀 눈은 / 놀랍고도 신기하기만 했다’는 외형적인 시각에서 재생하는 추억의 한 풍경을 그리고 있다.
우리 시에서 이미지의 창출은 대체로 우리 신체가 간직한 오관(五官-眼耳鼻舌身)을 통해서 오감(視聽嗅味觸)의 작용으로 생성하게 된다. 대사물에서는 우선 시각(視覺)의 작용에 의해서 그 사물의 정감이 이미지로 추출되는 것이 첫째이며 다음으로 청각(聽覺), 후각(嗅覺), 미각(味覺), 촉각(觸覺)의 다양한 상상력을 유발할 수 있게 된다.
이 밖에도 김종순 시인의 서정성은 작품「달빛 연가」「꽃비」「성주산 둘레길」「초동서곡」「한가위 보름달」등등에서 그는 미적(美的)인 감응의 투영으로 서정적인 자아를 탐색하는 시법을 구사하고 있어서 그 정경(情景)이나 상황 전개와 주제의 정리는 우리의 설득력을 고양시키고 있다.
김종순 시인은 이 시집 『』을 통해서 그가 탐색하고 구현하려는 인생관이나 가치관이 존재의 의미를 인식하면서 시간의 긍정, 시의 사회성 그리고 친자연의 이미지로 서정적 자아의 지향점을 탐구하는 시의 위의(威儀)와 본령에 충실하려는 시정신(poetry)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시는 아름답기만 해서는 안 되고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어 읽는 사람의 영혼을 뜻대로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호라티우스의 시론도 오래도록 상기해볼 필요가 있으리라. 시집 상재를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