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이순신 바라기
이순신 같은 정치인, 정치인 같은 이순신
4·10 총선이 코앞에 다가왔다. 선거 계절이 오면 정치인들은 어김없이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장군을 끌어들인다. 여당의 모 고문은 자당의 비대위원장을 이순신과 비유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배 12척이 남았는데도 그걸 이끌고 승리했다.”며 그의 역할을 강조했다. 야당의 모 중진은 “그가 여당의 비대위원장이 되면 이순신이 아니라 원균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정치 평론가 모 교수는 "그가 어떤 길을 걷느냐는 대통령과의 관계 속에 나오는 거고, 결국 대통령이 무능한 군주인 선조에 비유가 된다”고 했다. 이쯤 되면 4백 년 전 임진왜란의 주역, 이순신과 원균 그리고 군통수권자 선조까지 소환당한 셈이다.
정치인들은 왜? 선거 때가 되면, 위기가 닥쳐오면 이순신을 들먹일까? 그 바탕엔 이순신은 승장(勝將), 원균은 패장(敗將), 선조는 무능한 암군(暗君)이란 인식이 깔려있다. 그리고 이순신을 상징하는 어록 필사즉생(必死則生), 백의종군(白衣從軍), 금신전선상유십이(今臣戰船尙有十二)를 자기의 언어로 둔갑시킨다. 마치 자기가 이순신인 양, 자기만이 나라를 지키고 국민을 위하는 척한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불신의 대상이다. 일본군들이 몰려오자, 종묘와 사직을 버리고 도성과 백성을 버리고, 북으로 북으로 도망치던 임금 선조와 위정자들을 향해 백성들이 호통을 쳤다. “너희들이 평일에 국록만 훔쳐 먹다가 이제는 나라를 그르치고 백성을 속이는가?”
이순신은 4백 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나라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역사의 인물이다. 임진왜란 전후 시기, 조선에는 목릉성세(穆陵盛世)라 할 만큼 내로라하는 명신들이 많았다. 이황·조식·이이·이산해·류성룡·윤두수·정철·이원익·이항복·이덕형 등이다. 그러나 이들은 을해당론(1575), 삼윤논핵(1578), 기축옥사(1589), 세자건저(1591) 등으로 동인·서인·남인·북인으로 갈라지고 찢어져 서로를 물고 뜯었다. 당쟁의 소용돌이는 미구에 닥칠 일본의 침략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결국 역사는 한 사람 무관 충무공 이순신을 주목한다. 명장(名將)이란 수식어로도 부족하여 성웅(聖雄)이라 부른다. 오늘날 이순신을 들먹이는 정치인들은 과연 이순신에게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
내가 오랫동안 드나든 아프리카 어떤 나라는 쿠데타, 내전 등으로 정치가 혼돈의 늪에 빠져있다. 불안한 치안, 피폐한 민생, 뒤처진 경제로 여전히 발전의 시계가 멈춰져 있다. 정치가 무너지면 사회가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면 경제가 무너진다. 역으로 정치가 안정되면 사회가 안정되고, 사회가 안정되면 경제가 안정된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다. 정치인의 책무가 매우 막중하다. 외교와 국방, 민생과 경제가 막강한 입법권을 가진 정치인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주변 강국의 위세에 짓눌려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다. 총선에 임하는 정치인들은 입으로만 이순신을 읊을 게 아니라, 다음 두 가지만이라도 정치인 이순신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순신의 소통(疏通), 설득과 대안 그리고 직언
이순신은 임진왜란 7년 전쟁, 그 질곡의 역사에서 꾸준히 소통했다. 임금과 세자와는 장계와 장달로, 조정의 대신들과는 편지와 정보로, 동료 장수와는 전술과 전략으로, 자기 자신과는 일기와 시문으로 소통했다. 휘하 장졸에게는 언제나 문턱을 낮추고 언로를 개방했다. 류성룡의 징비록(懲毖錄)이다. “이순신이 한산도에 운주당(運籌堂)이란 집을 짓고 밤낮을 그 안에서 지내면서 여러 장수와 함께 전쟁에 관한 일을 의논하였는데, 비록 졸병이라 하더라도 군사에 관한 일을 말하고자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와서 말하게 하여 군사적인 사정에 통하게 하였으며, 늘 싸움하려 할 때는 장수들을 모두 불러 계교를 묻고 전략이 결정된 뒤에야 싸운 까닭으로 싸움에 패한 일이 없었다.”
이순신의 소통에는 지위고하, 당리당략이 없었다. 난중일기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종일 이야기했다.’ ‘함께 의논했다.’ ‘서로 약속했다.’ 등이다. 심지어 정적(政敵)의 관계였던 서인(西人)의 영수, 좌의정 윤두수와 예조판서 윤근수 형제를 비롯하여 후임 좌의정 김응남과 병조판서 심충겸 등과도 편지를 주고받았다. 비록 적대적 관계라도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서 공감을 이루고, 공감을 통해서 신뢰를 얻고, 신뢰를 통해서 화합을 이루고, 화합을 통해서 승리를 얻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임진왜란 중 이순신에게 가장 어려웠던 문제는 수군(水軍) 확보였다. 사람들이 수군을 천역(賤役)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순신도 “한번 수군의 병역을 짊어지면 자손들에게 누대로 전해져서 그 괴로움을 면치 못할 것이라, 진중(陣中)에서 근심하고 탄식하는 소리를 차마 들을 수 없습니다.”라고 임금에게 장계했다. 그야말로 노예와 다름없는 참혹함이었다. 당연히 수군 입대는 기피되었고 부대 탈영은 심각했다. 배를 끌고 나갈 군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아무리 막강한 거북선도 판옥선도 수군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이순신이 특단의 대책을 강구 했다. 도망병의 자리를 메우기 위해 그 친족과 이웃으로 대신 충원하는 대충징발(代充徵發)이었다. 그러나 임금은 불허했다. “무릇 군사들의 친족에게 대충 징발하는 일은 전란이 끝날 때까지 면제하도록 하라” 그러나 이순신은 그 명령을 취소해달라며 무려 4번이나 장계를 올렸다. 장계의 내용엔 설득과 대안 그리고 직언이 있었다. “만일 대충징발을 계속하면 임금의 분부를 어기게 될 것이고, 임금의 분부를 따른다면 적을 막아낼 대책이 없습니다. 따라서 ‘친족 중에서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과 늙거나 죽어서 자손이 끊어진 호구는 징발하지 않고, 다만 본인 및 친족과 이웃이 이것을 미끼 삼아 숨어서 피한 자는 전례대로 징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대충 징발하는 일은 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만 시행하겠습니다.”
이렇듯 임금의 명령에 반하는 장계의 말미가 비장하다. “처리할 일에는 경중(輕重)이 있고 완급(緩急)이 있는 법입니다. 호남 한쪽이라도 오늘까지 온전할 수 있었던 것은 절대적으로 수군의 대세에 힘입은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라를 회복할 시기도 또한 이때이니, ’친족이나 이웃으로 대충 징발하는 폐단을 중지하는 것’은 전쟁이 끝난 뒤에 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신이 죽음을 무릅쓰고 망령되이 진술하오니 조정에서 전후의 장계를 참작하시어 적을 막아 백성을 보호할 수 있도록 처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절대권력자 임금과 왕세자를 향한 훈계에 가까운 설득과 직언은 죽음을 무릅쓰고 써 올린 충심이었다.
이순신의 인사(人事), 내 편 네 편 아닌 오직 전문가
맹자의 이루(離婁) 하 20장이다. 입현무방(立賢無方), 사람을 쓸 때는 유능하고 현명한 사람을 세우되 친소(親疏)와 귀천(貴賤)에 구애받지 않아야 한다. 즉 혈연·지연·학연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네 편 내 편을 나누지 않고, 자기가 잘 아는 사람만 쓰는 게 아니라 오직 그 일을 잘할 수 있는 전문가를 쓰라는 말이다.
이순신은 행정전문가 정경달(丁景達, 1542)을 종사관으로 발탁했다. 이순신 휘하에도 무과에 급제한 인재들이 많았지만, 통제사의 행정을 보좌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문관 정경달은 둔전 경작과 군량 조달에 경험이 많은 전문가였다. 그러나 이순신(李舜臣, 1545)보다 나이가 3살이나 많았고 과거 급제도 6년이나 앞섰다. 이미 종3품 선산부사까지 역임한 고위 문신이라 부하로 쓰기엔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직 그 일을 잘할 수 있는 전문가를 중용한 결과 둔전 관리는 효율적이었고 군량 조달은 원활하게 되었다.
이순신은 군사전문가 정걸(丁傑, 1516) 을 조방장으로 발탁했다. 종6품 정읍현감에서 일약 7품계를 뛰어넘어 정3품 전라좌수사에 오른 이순신에겐 5관 5포 대군영을 지휘할 조방장이 필요했다. 관내에 정걸 장군이 있었다. 이미 전라도와 경상도의 수군절도사와 병마절도사를 두루 역임한 백전노장이었다. 정걸의 전투 경험과 지휘 경험을 공유할 수만 있다면 천군만마를 얻는 것이다. 47세 초임 수사 이순신은 76세 정걸에게 조방장을 맡아 달라고 간청했다. 범접조차 어려운 아버지 같은 원로 선배에겐 가당치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정걸은 준걸(俊傑)이었다. 망팔(望八)의 노구를 이끌고 조방장을 맡아 군영을 관리하고 해전에 참전하니 승리를 이끄는 견인차였다.
인사는 만사(萬事)라 했다. 측근이자 핵심인 종사관 정경달과 조방장 정걸은 오로지 전문성과 능력만으로 함께한 유능한 참모였다.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철저한 인사 원칙은 자신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순신이 벼슬길에 나가기 전부터 금과옥조로 삼았던 자신을 쓰는 원칙의 자작시다.
“장부생세 용즉효사이충 불용즉경야족의 약미요인절부영 오치야”
(丈夫生世 用則效死以忠 不用則耕野足矣 若媚要人竊浮榮 吾恥也)
대장부 세상에 태어나서 쓰임을 받으면 죽을힘을 다해 충성할 것이요, 쓰임을 받지 못하면 농사짓고 살면 그 또한 족하리라, 권세 있는 자에 아첨하여 뜬 영화를 구하는 것은, 내가 부끄러워하는 바이라.”
-끝-
<행복문학, 2024년 봄호 기고분>
첫댓글 깊이 공감하고 잘 배웁니다~~
정치인들이 잘쓰는 말 "백의종군" 헐~~~
종사관 정경달, 조방장 정걸장군과 같은 훌륭하신 분들이 지금도 계시면 좋겠습니다....
첫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나라의 운명을 가름 할 선거가 있을 때마다 늘 드는 생각입니다. 어디 충무공 이순신 같은 분이 없을까? 이순신을 말하는 사람은 많은 데 왜 이순신 같은 사람은 없을까?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데 있어서 이순신처럼 만 한다면 우리 정치는, 우리 사회는, 우리나라는 훨씬 더 수준 높은 나라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졸고를 올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순신의 정신을 진정으로 알기보다 선택적 취득을 하여 언어유희에만 능한 사람들, 일명 드립에 능한 사람들 말고 소신 있게 밀고 나갈 그런 정치인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많은걸 생각하게 하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이순신의 정신은 오직 백성과 나라 뿐이었습니다. 지역도, 이념도, 진영도 아닌 언제나 우리, 우리 백성, 우리나라였습니다. 아시타비(我是他非)가 아닌 내로남불이 아닌, 드립이나 레토릭이 아닌 진정한 언어로 진정한 애국으로 다가왔으면 좋겠습니다. 이순신 정신을 통해서......
잘 읽고 새겨갑니다
격려에 감사합니다. 오늘 이순신리더십연구회 세미나를 앞두고 경상우수사님 생각을 많이 생각합니다. 강령하십시오^^
잘 읽고 많이 배워갑니다 감사합니다!
이억기님께서 다 아시는 내용입니다. 정치인들도 알기를, 행동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썼습니다. 감사합니다.
요즘 충무공전서를 공부하면서..
읽기와 이해하기도 급급한데..
다행히 공부한 내용들을 떠올리게 하는 중요한 대목들이 머리를 스칩니다.
좋은 글..느끼게 만드는 글..
감사합니다!..🙆♀️🙆♀️
이순신을 배우면서, 충무공전서를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아! 이순신만 같았으면 얼마나 좋을까....이 땅에 지도자들이, 이 나라에 위정자들이....격려 말씀 고맙습니다.
공감합니다
요즘 정치인들이 절반만이라도 장군과 같이 한다면 좋을텐데...
정치인 이순신, 만약 이순신이 조정에 들어갔다면, 당상에서 국정을 논했다면 그도 마찬가지였을까요? 네 편 내 편 나누고, 나만 옳고 너는 그르고,.....그러지 않았을 겁니다. 사색 당쟁의 소용돌이에서도 올곧게 소신을 피력한 분들이 있었으니까요... 예컨대 정탁, 이원익 등등....그런 정치인을 기대해 봅니다.
매우 잘 보았습니다
통제사가 원균으로 바뀌고
장수들의 인사이동 요즘말로 개각이 있었다고 하는데
원균쪽 장수 중도파 그리고 이순신쪽 장수가 구별되나요
정유년 9월 8일 일기가 떠오릅니다. "우수사 김억추는 겨우 만호에나 적합하고, 곤임(병사나 수사)을 맡길 수 없는 인물인데 좌의정 김응남이 서로 친밀한 사이라고 해서 함부로 임명하여 보냈다. 이러고서야 조정에 사람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다만 때를 못 만난 것을 한탄할 뿐이다"
이번 총선에 도전하는 모든 이들이 꼭 좀 읽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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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렇게도 이시대 지도자요 지식인이라고 자부하는
고급 관료들이 이순신을 너무 모르고 있는 사실이 참으로 안따깝습니다.
시의적절한 옥고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들이 이순신을 말하고 이순신의 어록을 지껄이다 보면 시나부로 어느새 이순신을 닮아가기를 기대해 봅니다. 여기저기 이순신의 정신을 쓰고, 말하고, 기고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
공감이 되는 말씀입니다. 정치란 사람을 살리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작금의 정치는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실망이지만, 주권은 우리 국민에게 있으므로 선거를 통해 될만한 사람을 뽑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능력 본위로 사람을 잘 판단해야 나라도 살고, 정치도 살아날 것이라 봅니다. 감사합니다.
세계 여러 나라 정부와 거래하면서 느낀 것이 참 많습니다. 특히 아프리카, 서아시아, 중남미 등 소위 개발도상국은 정치 후진국이 많았습니다. 정치 낙후, 사회 낙후, 경제 낙후,,,정치 선진국이야말로 진정한 선진국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교수님 덕분에 이순신을 생각하면서, 공감과 격려에 늘 고맙고 감사합니다.
10여 년 전...동아일보 문화칼럼으로..<백의종군이란 말 함부로 쓰지마라>는 글을 쓴 것이 생각이 납니다. 정치인들이 이순신 장군을 입에 올리는 것은...우리 국민들이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분...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어떤 정치인이 이순신 장군을 입에 올리는 순간...그 정치인 또는 그 정치인이 속한 당을 추종하는 사람들만의 이순신 장군으로 ...전락되는...이용되는... 위험성 때문에..마음이 늘 편치 않습니다. 그렇다고..우리의 삶을 책임지고 있는 정치, 정치인에 대하여 무관심한 것도..국민의 도리가 아니고.....참 어렵네요. 방진님 말씀대로...정치인들.....말만 말고...행동으로 보여주면 참 좋겠습니다. 그러고 보니...위의 말씀이..정치인들뿐만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이순신을 배우는 이유.. 이순신을 배우는 정신/자세>에 대하여 짚어주신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감사...감사...ㅎ
<백의종군이란 말 함부로 쓰지 마라> , 그렇습니다. 진정으로 이순신 정신을 생각한다면 정치적 레토릭으로, 미사여구로 사용하는 말들이 깊이 와 닿지 않습니다. 정치인들을 경원해도 그들의 책무가 너무나 막중하기에 그저 비난만 할 수는 없음입니다. 그래도 이순신을 존경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은 이순신 정신이 스며들 여지가 많다는 뜻일 겁니다. 그래서 일심님의 역할과 책무 또한 막중하다고 사료 됩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 기회에 제 공부삼아 맹자 이루장구 下 20장을 한번 찾아 보았습니다. 다른 분들도 참고하십시요.
(원문) 湯(탕)은 執中(집중)하시며 立賢無方(입현무방)이러시다.
(해석) 湯王은 中道를 잡으시며, 어진 이를 세우되(등용하되) 일정한 方所가 없으셨다.
(주자 註) 執은 謂守而不失이라 中者는 無過不及之名이라 方은 猶類也니 立賢無方은 惟賢則立之於位하고 不問其類也라
(해석) ‘執’은 지키고 잃지 않음을 이른다. ‘中’은 過와 不及이 없는 것의 명칭이다. ‘方’은 類와 같으니, ‘어진 이를 세우되 方所가 없으셨다.’는 것은 오직 어진 자이면 지위에 세우고, 그 종류를 따지지 않은 것이다. 감사합니다.
좋은 가르침입니다. 저도 인용을 하지만 깊이가 많이 부족합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배웁니다. 고맙습니다.
오늘날 정치 현실에서
누구나가 읽고 느끼며, 실제 몸으로
실천할 좋은 글, 좋은 말입니다.
하지만 아전인수라고...
아무리 주옥같은 선생의 말일지라도
그저 자신에게 유리하게만 이용하려드는
이들 정치인들에게는 행여 돼지에게 진주를
틀이미는게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이
먼저 드네요.
그렇습니다. 그래도 그들에게 희망이 있어야 우리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좋은 정치인이 있어야 좋은 나라가 될 수 있으니까요. 정치인의 의식 속에 충무공 이순신의 정신이 깃들기를, 유권자의 의식에도 함께 깃들기를 기대하고 노력합니다. 감사합니다^^
정치권 인사들이 사리당략을 위해서 이순신을 외치는 현상이 자주 보이는 현실입니다. 그런 가운데 이순신을 이용하여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는 전문인들도 더러 있구요. 이순신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이순신을 찾는 그런 시대가 언제나 올런지 방진님의 옥고를 통해 기대해 보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순신이란 인물을 제대로 이해하고, 제대로 인식할 수 있다면 함부로 아전인수, 견강부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 '이순신을 배우는 사람들', [이배사]를 통해서 정치인 포함 많은 이들이 이순신의 언행을, 실천을, 공적을 배울 수 있다면 세상은 조금씩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격군님께서도 그런 희망과 기대를 갖고 열심히 노를 젖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배사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늘 고맙고 감사합니다.
방진님 ~공감 백배하면서 너무나도 소중히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동도의 동백은 아직도 아름답겠지요? 파란 바다, 파란 하늘 ,파란 여수가 그립습니다. 언제나 활발하신 천자총통님^^ 화이팅!!!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정치인들이 이순신의 애민정신과 소통력, 적재적소에 전문가를 기용하는 실천력을 배운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정치인이라 하면 권력욕으로만 가득하다고 인식하게 되는 작금의 현실이 안타깝죠. 바른 가치관으로 화합을 이끌어내는, 현재 산재한 정치, 경제, 민생, 외교 문제를 전문성으로 풀어내는, 능력있고 지혜로운 지도자를 기대하는 건 과욕일까요?
당연한 바람입니다. 이순신 같은 정치인, 능력 있고 지혜로운 지도자^^ 우리가 바라는 일꾼입니다. 그래서 유권자에게 정직하고 국가 미래에 유익한 그런 사람이 선택되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을미년 7월 1일자 일기의 •••나라의 형세를 생각하니 아침 이슬처럼 위태로운데 안으로는 정책을 결정할만한 동량이 없고 밖으로는 나라를 바로잡을만한 주춧돌이 없으니•••라고 쓰신 부분이 떠오르는 글이었습니다.
좋은 말씀입니다. 중요한 건 인식과 한탄만이 아니라 실천과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현실입니다. 감사합니다.^^
잘 배웠습니다. 오래만에 방진님의 글을 보았습니다.
오직 실력으로만 인재를 선발하는 이순신 장군의 탁월한 혜안이
21세기 대한민국 곳곳에 널리 퍼지기를 바랍니다.
선거철 귀감이 되는 글. 잘 읽었습니다.
장군님이 떠나신지 400년이 훨씬 넘었지만
아직도 우리는 장군님을 찾으며 부르고 있습니다. 난중일기를 검색하고 장계를 확인하며
장군님의 생각을 도용하기도합니다.
하늘에 계신 장군님은 우리를 보고 어떤생각을 하시며 어떤 조언을 주실까요?
방진님께 많이 고마워하실 것 같습니다.